어머님 기일에 쓰는 편지

어머님!당신이먼하늘나라에가신지도벌써세월이흘러19년이되었습니다.30여년을같이사신아버님과같이조부모님선영밑에편히잠들어계십니다.이제세월이흘러서자식인저도60줄을지나고있습니다.일제강점기인1929년8월에태어나셔서20살에가마타고시집오신것이7남매의3째이신국민학교선생님이셨던아버님과의30여년의멀고도험한결혼생활의첫발이셨습니다.그때에는우리나라가한국전쟁중이었고,가진것없던대식구의며느리로서조석을해내느라고무척고생을하셨다고합니다.특히큰댁(조부모님이사시던시골의집)은높은지대에있어서아래의논가운데에있는샘에가서지게로물을길어오는것이참으로어려웠다고합니다.특히겨울에는춥고미끌럽고하여서그고생이란말로표현할수없다고하였답니다.

참으로아버님,어머님세대는불행하셨습니다.일제강점기에태어나시고,소학교는창씨개명의상태로다니셨고,해방의소용돌이와대한민국의건국,그리고신혼의시작과한국전쟁의발발로인한여러가지고통을온몸으로격어내신부모님세대이셨습니다.이제70년대가되어서우리나라가살만하니(각가정에전기가들어오고,TV가설치되고,쌀밥걱정을하지않고하는등),젊었을적의고생으로인하여몸과마음이망가지고제대로치료도못받으시고돌아가신것을생각하니,자식된도리로서제대로당신들을돌보아드리지못하였음을가슴아프게생각합니다.그리고항상아버님의기일과어머님의기일이되면가슴이멍하여지고혼자눈물을흘리는것이버릇이되다시피하였습니다.

아버님은국민학교선생님이셨지만약주를좋아하시는한량에가까운분이셨고,그래서어미님이가정경제를책임지다시피하시면서저희3남매를키우셨습니다.큰집에서분가하여사시면서농사지으시고,살림에보탬이되고자고닭을키우시고하시는등참으로억척스럽게사셨습니다.그래서인지어머님은잔정은없으시되,자식들을위하여,그리고평생의병마와같이사신아버님으르위하여헌신하셨습니다.특히70년대말아버님의병환이깊어지셔서30년동안다니시던교사직을사직하시고고향의조그마한가게집을사가지고오셔서의그고투는말로표현할수가없었습니다.어머님의각고의노력에의하여모아놓은돈은아버님의치료비로다탕진되었고,그와중에서도두애는대학에다니는등의아주앞이아주캄캄한지경이었습니다.길옆의조그마한가게집에서잡화를팔아서생계를꾸려가시면서도아주열심히사셨습니다.당신을위해서는약한첩제대로쓰시지않고,제대로된옷도안걸치시고,제대로된음식도드시지않고,오직당신남편과자식들을위하여헌신하셨던것입니다.그러다가아버님이83년에작고하시고나니,어머님은몸과마음이무너져내리시고그동안의고생으로인하여각종의만성질환이나타나고마지막생애의1년은치매증세까지오셔서우리집으로오셔서8개월을누워서지내시다가한겨울크리스마스지경에하늘나라로가셨습니다.

어머님!이제는아버님과같이지금도아옹다옹하시는지는모르겠지만,하늘나라에서편히우리들을지켜보시겠지요.평생을헌신하여키워주신3남매중,이제저는손녀손자다결혼시키고외손주도보고,친손주도곧나온답니다.그리고항상걱정하시던둘째도잘살고있고,애들이다커서대학도다니고,손녀는직장생활도잘하고있답니다.당신의그외동딸,아버님,어머님의병수발을위하여대학진하고포기한채시골에남아있던그딸은지금은형제둘을키워서큰애를장가보내고곧손주를본답니다.그리고사위가사업에성공하여아주잘살고있답니다.나의생각으로는여동생이부모님의병수발을위하여대학진학을마다하고헌신하여서지금그복을받아서잘살고있다고봅니다.이제와서야참으로어머님과아버님께감사의헌사를드립니다.

큰아들로서부모님을좀더잘모시지못한자괴감이제가나이가들수록자주듭니다.이제저도다니던직장을정년이라는이름으로올해2월에33년동안의생활을마감하고는손주와재미있게살아가고있습니다.

지난가을에동생들과같이산소를참초하여드리고왔습니다만,돌아오는봄에좋은나무를더심고가꾸어서아버님어머님산소를꽃동산으로가꾸고할것입니다.내년봄에산소에찾아가서술한잔올리고몇구루의나무를심는다는것을약속드리며이만편지를줄입니다.

하늘나라에계신두분안녕히계세요.

2013년12월23일어머님19주기기일에큰아들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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