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어느 독립투사의 이야기

오늘로서일제로부터해방이된지70년이되는해이다.아직도대한민국은통일이미완성인채로남아있어서진정한광복인가하는느낌이들고,나이가든기성세대의한사람으로서통일이안된현실에대하여일말의책임을느끼지않을수가없다.특히조선말부터의병활동,항일운동,해방,한국전쟁을겪고,그어려움을헤쳐나온우리선조들에게부끄럽고죄송할뿐이다.

이시점에서우리가해야할일은통일을위한준비가차근차근히해나가야하며,또한갑작스러운북한의와해에대비한시나리오도잘만들고,북한의국지적인도발에는강력한대응을통하여우리의의지를보여주어야한다.그리고더중요한것은정치권에서보수냐진보냐하는구태의연한싸움에서벗어나서하나로뭉치고,힘을합하여국방과외교에온전력을쏟아야할것이다.그래서국제사회의4강(일본,중국,러시아,미국)으로부터한반도통일에대한확고한지지와협조를얻어내어야할것이다.그러기위해서는우리나라의국력과국격이좀더높아져야한다.그리고소위진보라는사람들의황당무계한자충수를두는언행이중단되어야한다.

오늘광복70주년을맞아서어느이름이알려져있지않은독립투사에대한이야기를쓰고자함이다.

故南正선생모습,독립투사의의지가묻어나옴

선생의친칠과제헌의원출마시의소개서

고택과대전현중원의묘역모습

그분은"故南正"이라는분이고,1880년에출생하여1950년8월에작고하신분이다.이분은조선조말에태어나서어려서한학을익히고,바로의병활동(민종식과같이청양의정산에서소모장으로활동함),일본으로의강제합방후에는만주로망명하여,인재양성,민족정기를세우기위한종교운동,그리고일제의강점과횡포에대항하기위하여경성의중앙부서에대한공격등을모의하다가경찰에체포되어서대문형무소에서수형생활을1년여를한후에,주거제한에따른가택연금을당하고,다시고향에서의항일운동으로인한다시금옥고를치루었다.연금생활의한단면을들어보면(그분의큰손자로부터들은이야기임),경찰서에서순사가매달자택을감시차방문하면순사는대청마루에올라큰절을올리며일본말로인사를드리면,그분도사랑에서인사를우리말로답하시고는하였다는것과,그옆의손자는자전거뒤에싣고온화과자에만관심이있었다고,그리고그런래방과대화가무엇을의미하는지몰랐다는이야기를들었다.

그분은자택의연금생활중에도근면,독서로지내시다가45년의독립이된후에는옛동지들과제대로된조국을만들기위하여다시노구를일으켜활동을하셨다.그분의자부로부터들은이야기중하나는해방이되고나서옛날만주에서같이독립을위하여고생하던동지들이그댁으로모여들어서그많은사람들의식사를준비하는것이큰일이었다는말씀을직접들었다.그분들은한겨울에도윗통을벗어부치고집앞의큰저수지를구보하면서독립운동하던기상을이어갔다는것이다.

그분(고남정)은고향에서제헌국회의원선거에나서셨다가낙선하시고,다시자택에칩거하시는중에한국전쟁이발발하여서,그와중에서공산당원들에게피체되어인근면사무소에서취조받던중에8월에작고하셨다.그래서전쟁중이고경황이없어서그냥장례를황망히치루고자택뒷산에유해를모시었다.

그분의생애는만주벌판의풍찬노숙을통하여외동딸하나를슬하에두시어서일가중에서양자를입적하여가계를잇게되었는바,입적된양자는두분(양부와생부)을극진히모시고,슬하에는9남매를다복하게두었다.양부께서독립운동을하시고선거에나가는등의활동때문에가산을많이없애셨지만,양자로입적되신그분은진심으로양부를모시고,가계를꾸리고,양부의활동을을위한자금을대셨다는것이다.

그분의평생을받쳐서구하고자한조국으로부터아주후일1980년대후반에독립유공자로늦게나마현창이되셨다.그래서후손(손자들이)들이1994년에대전의국립현충원의애국지사묘역에이장을해드려서지금은평안한사후를영위하시고계실것이다.

이이야기를왜쓰냐하면,이런알려져있지않은많은선각자들이있었기에우리나라가일제로부터독립하고,이렇게잘사는기틀을마련하지않았나하기때문이다.

다시한번우리의선조들의희생과노력에대하여후손의일원으로서감사드리며,아직도잘정리되지않은조국의독립을위하여희생되신선열들의명예회복과그후손들에대한정당한대우에정부와사회에관심을가지고노력해야한다고본다.

광복과일제로부터의해방70년을맞이하여우리의최대숙제인통일과,국제사회의리더로거듭나야만수많은선열들의희생에보답하는길이아니겠는가?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