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다녀온 이야기

2016년 새해 첫날은 오후에 우리집에서 가까운 소래산에 가서 등산을 하고, 3일에는 딸네 식구들을 공항에 데려다 주고, 그리고 우리부부는 5일에 출발하여 싱가포르에 가서 거의 한달을 지내다가 며칠전에 귀국하였다. 나는 일정을 변경하여 예정보다 일찍 귀국하였다. 한국에서 몇년만의 기록적인 寒波가 극성을 부린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갈때는 별로 춥지 않아서 뒷베란다의 수도관을 제대로 덮어 놓지않고 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랴 부랴 일정보다 당겨서 밤늦게 공항에 도착하여 막차인 시내 버스를 타고 집에 와 보니 다행히도 수도관이 동파되지도 않고, 꽃들도 20일 이상 물을 안주었는데도 잘 자라고 있었다. 장기간 집을 비우기 때문에 앞집에 부탁하여 신문을 수거하여 보시라고 하고, 수위분들에게는 우편물을 잘 보관하여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싱가포르에 간 것이다. 전자키로 바꾸었으면 가까운 지인들에게 부탁하여 집안을 살펴달라고 전화를 할수 있었는데, 아직도 이사올 때 인계받은 열쇠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내가 일찍 당겨서 나만 귀국한 것이었다.

싱가포르에 새해벽두부터 간 이유는 딸아이가 다섯살 먹은, 실은 44개월된 손주를 보아달라는 간청때문이었다. 사위가 장기간 미국으로 출장을 가서, 직장을 다니면서 도우미가 있다하더라도 혼자 아이를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부탁을 한 것이다.  한참 개구장이인 이 외손주는 태어나서부터 싱가포르로 이사 가기전에는 우리집에서 할미가 전적으로 키웠다. 아내는 딸네 식구들 뒷치닥거리하다가 진이 빠진 상태에서 다시 짐을 꾸리어 싱가포르에 간것이다. 사연인즉은 작년 12월에 아들네 식구와 같이 싱가포르에 휴가차 갔다가, 23일에 딸네식구들까지 같이 귀국하였고, 딸네는 년말 휴가를 우리집에 짐을 풀어 놓고 지내다가, 몇가방 가득 채워서 3일에 출국하고 바로 우리 부부가 가방셋을 가득 채워서 뒤 따라 간 것이었다.

싱가포르에 가서는 나는 할일이 별로 없다. 나는 아파트(거기서는 콘도라부른다.)부근의 시장에 매일가서 식재료, 과일등을 사다 주는 것과, 손주가 유치원에 다녀 오면 가끔 아파트내에 있는 수영장에 데리고 가서 놀아 주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그나머지의 나의 일상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한잔을 마시면서 Notebook Computer를 켜놓고, Internet을 검색하여 뉴스를 보거나, 송금할일이 생기면 보안 카드를 이용하여 송금도하고, KBS Kong을 통하여 음악을 듣는 것이 거의 전부의 생활이었다. 그 사이에 아내의 생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핑계로하여 나가서 몇번 식사를 하였다. 그러나 시장 고기집에서 사온 값이 싸고 질이 좋은 쇠꼬리(싱가포르달러로 약 $20- 정도이다.) 곰탕을 해먹은 것이 맛있는 것에 대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할미는 손주에게 줄 음식을 부지런히 만들어서 유치원에 다녀 오면 먹이고, 그리고 요즈음에 손주가 푹 빠진 레고 조립을 하여 주면서 지내었다. 손주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여 주면 겨우 먹고서는 도우미가 유치원에 데려다 준다. 그리고 1시에 돌아 오는데, 오는 시간에 맞추어 내려가 보면 유치원버스에서 자고 있다. 참으로 안스럽기도 하고,  다른 대안이 없나 생각하여 보았지만 별로 뽀족한 방안이 떠 오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 아이들도 한국 아이들과같이 아침 일찍부터 뺑뺑 돌려지고, 주말에는 엄마가 여기저기에 데리고 다니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빨리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통합되고 공립유치원이 많이 개설되어서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안심하고 보내고 비용이 적게 부담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보살펴 주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라고 본다. 싱가포르의 사립 유치원도 비용이 매우 비싸다. 주말에는 한국어린이들을 위한 幼稚園이 개설된 곳이 있어서 손주를 두번 데리고 가보았다.   거기도 유치원비가 상당히 비싸다고 들었다.

주말에는 딸과 손주와 같이 센토사섬의 요트게류장을 구경하기도 하고, 여유롭게 요트게류장 앞의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싱가포르강 하구에 있는 FLYER에 가서 수륙양용 버스를 타고 머라이언상이 있는주위와 싱가포르강에 나가서 마리나샌즈등을 둘러 보았다.

SAM_2056

Flyer 모습/날씨가 흐리고 저녁때이어서 사진이 흑백으로 보인다

1454643959101

손주의 개구장이 모습

SAM_2049

싱가포르의 상징인 머라이언상 모습

 

내가 “할비가 한국에 간다.”하니 손주 왈, “가시고 싶으면 가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맥이 쭉 빠져 버렸다. 작년 9월에는 공항까지 쫒아 와서 같이 한국에 가겠다고 울고불고하여 간신히 달래서 떼어 놓고 올때에 마음이 아펐었다. 그런데 반년만에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할미와 같이 간다하니, 그것은 안되고 나 혼자 가라는 것이었다. 할미는 손주가 태어나서  싱가포르에 이사 가기전까지 우리집에서 키웠다. 그래서인지 손주의 할미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그런데 할미가 귀국할때에 같이 한국에 같이 갈테냐고 물어 보니 제 엄마 아빠에게 매달리고 웃으면서 빠이 빠이를 하였다는 것이 귀국한 할미의 말이었다.

혼자 귀국하여서는 식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고역이었으나, 아침에는 빵, 우유, 계란, 커피로 해결하고, 점심은 가끔 해먹고, 주로 나가서 사 먹었다. 저녁은 고구마와 호빵으로 해결하였다. 어느날은 저녁을 때울 방안을 생각하다가 운동겸하여 집을 나서서 송내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고 인천 도원역에 내려서 걸어서 이화순대국집에 가서 순대국 한그릇을 정말로 맛있게 먹고 집으로 왔다. 이렇게  혼자 사는 어느 하루는 카톡, 문자, 전화한통이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老年의 독거 노인들의 고독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알수 있었다. 거대한 도시속의 孤獨과 외톨이의 비애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1월을 보내고 나니 2월이 오고 立春과 설이 지나가고 있다. 설날은 先親의 기고일이고, 그 다음날은 선친의 생신이고, 그리고 나면 나의 백수 63년의 흔적인 생일이 다가 온다. 요즈음에 다시금 느끼는 말은, “하루는 길고 1년은 짧다.’라는 名言이다. 停年이라는 이름으로 퇴직을 한지가 벌써 만 3년이고 3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세월은 속절없이 화살과 같이 흐르고 있다.  2월말과 3월에는 아내를 데리고 검진차 병원에 다녀 오고, 오는 4월이면 다시 싱가포르에 가서 손주를 보고 와야할 것 같다.

외가에서 자라고 있는 3살먹은, 실은 20개월된 친손주가 내일이면 온다. 그러나 우리 부부와는 별로 만나지를 못하여 친하지를 못하다. 이번에는 좀 친해지도록 노력을 해 보아야할 것이다. 이번 설에는 세배돈을 주어야하는데 백수 할비의 고민이 크다. 할비의 제일 덕목은 손주들에게 지갑을 여는 것이라는데,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손주가 기다리어진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