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Singapore/新加坡)에서 쓰는 片紙/백수 5년의 歲月

지금 싱가포르에서 이 글을 쓴다.

외손주녀석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발목이 접질려서 반기부스를 하고 휄체어를 타고 도우미랑 택시로 학교를 다니는 형편이어서 딸 아이가 다시 우리를 부른 것이다. 우리 부부는 보따리를 여러개를 꾸려서 이곳에 월요일 밤 늦게 도착하였다. 이곳의 일상은 손주의 뒷바라하느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할미는 여기에서도 손주와 식구들에게 제대로된 飮食을 해 먹이느라고 바쁘게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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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에 1월이 지나가고, 2월이 왔다. 이제 며칠이 잇으면 立春이 될 것이다. 여기는 더워서 에어컨을 켜고 지내지만 한국은 날씨가 춥기도하지만 여러가지 사정(북한핵문제, 평창올림픽인지 혹은 평양올림픽인지하는 混沌, 최저임금인상을 비롯한 경제의 후퇴, 積弊청산한답시고 위장을 하고서는 자리차지와 이권에 沒入하는 등) 때문에 봄이오지만 봄같지않은 요즈음, “즉 春來不似春”의 혹한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오면 좋은 단물만 빼어 먹고 避難을 온 것 같아 영 마음이 찜찜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손주가 아침을 먹으면서 “할머니가 여기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하여서 마음이 찡하였다.

그런데 2월에 접어들고 보니 내가 停年이라는 이름으로 白首가 되어서 歲月을 보낸지 벌써 5년이 되고 60개월이 지나가버렀다. 아 세월의 빠름이여, 그리고 無常함이여!

그동안 백수가 되고 보니  가장으로서 33년의 직장생활과 가장으로서의 役割은 끝나고 할미로부터 3식이라고 지청구나 먹고, 특히 집안에 그냥 박혀 있으면서 집안 청소하나 제대로 해 주지 않는다고 구박을 많이 받고 살아 왔다. 지난 5년을 생각하여 보니,

첫째로 친손주가 태어나서 3살이 되어서 유치원에 다니며,

둘째로 딸네가 이곳 싱가포르로 직장을 옮겨서 이사하였다. 그래서 이번 旅程까지 10번 째 방문이 되었다.

셋째로는 아내가 가슴 종양 수술을 하고서는 3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것 때문에 남편으로서 너무도 미안하고, 마음을 졸이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 보는 사람도 심적 스트레스가 상당한데, 당사자인 우리 함멈의 마음은 어떠하였는가를 상상하기 어렵지가 않다고 본다. 이제는 6개월 마다 정기적인 檢診을 하면서 일상을 “感謝와 謙遜”이라는 命題를 가지고 나날을 영위하고 지나고 있다.

넷째는 아내의 시골 집에 가서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 해마다 고추, 오이, 호박, 박, 상추, 옥수수, 들깨, 배추, 무, 시금치, 파등을 심고 가꾸었다. 정말로 땀을 흘리면서 일한다는 것은 해보지 않으면 그 기쁨을 모를 것이다.Resized_20170814_160240내가 심어서 기른 박이다. 그런데 이놈의 박이 문제이었다. 진박, 찐박, 조롱박이 세상을 판을 치고 있다. 이제는 어떤 문장이 나서서 이세상을 휘저어갈까?

다섯째는 旅行을 몇번 다닌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정년을 하고서는 제일 먼저 아내와 일본 관서와 북규수지방을 여행하였으며,

다음으로는 2013년 봄에 포루투칼, 스페인, 그리고 모로코를 나혼자 다녀 왔다.

451 바로세나의 성가족성당, 가우디가 살계한 성당임.

그리고는 2014년에는 서유럽(런던, 파리, 스위스 인터라켄, 이태리, 오스트리아, 독일하이델베르그등)을 등을 돌아 보았으며,

다시 2015년에는 동유럽과 발칸 지역(독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체코)을 주마간산격을 돌아 다니었다.

2016년에는 베트남 북부 하노이, 엔트, 하롱베이 지역을 다녀 왔다.

작년에는 전직장 동료들과 日本 북해도를 다녀 왔으며, 다시 11월에는 중학교 졸업 50주년 기념으로 동창들과 말레이 보르네오 사바주에 있는 코타키나발루 지역을 다녀 왔다.

지난 5년동안에도 아내의 수술을 한 것이 가장 큰 고비이었다면, 나머지는 그런대로 잘 지내 왔다고 본다.

그래서 정년을 하면서 지켜 나가야할  宿題를 나에게 스스로 주었었다.

앞으로도, 매일의 일상에 감사와 겸손으로 지내며, 그리고 매일 17,600보이상을 걸으며,

생활은 돈에 욕심을 내지 말고, 安分知足하면서 나의 능력껏 분수를 지키면서 살아가자.

아내와 나는 지병을 달고 다는 사람들로서 매 3개월 마다 검진을 하면서 약을 제대로 복용하면서 지내기,

그리고 자식들이나 친지들에게 弊를 않끼치고 살기를 실천하자.

아내의 건강상 그동안 같이 장거리 여행을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정상화가 되는 시점이라 3월에는 뉴질랜드에 가서 청정 자연을 맛보고 돌아 올것이다.

아내는 여기에서도 한국에 가서 설 명절을 셀것을 걱정하고 있다.

정말로 나는 이세상에서 잊혀진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어느날은 전화, 문자, 카톡 하나 오지앟는 날도 있다. 그리고 세상이 보기 싫어서 공중파방송, 종편등을 아에 보지 않고 지낸다.

이것이 올바른 삶인가? 혹은 세상으로 뛰어들어서 외쳐 보야할 것인가?

“젊은이들이여 현실을 직시하고 제대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 가라고!”

2 Comments

  1. 데레사

    2018년 2월 1일 at 6:02 오후

    저는 정년퇴직을 한지가 어느새 18년째입니다.
    곧 여든의 상할매가 됩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병원에 돈 갖다 바치고 있습니다.

    우리딸네는 내년까지는 싱가폴에 있을겁니다.
    그후는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대학
    다니는 손주들이 오는 여름에나 한번 다녀옽까
    생각중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사모님과 함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이길영

      2018년 2월 2일 at 7:00 오전

      감사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세요. 그런데 조선은 Weblog로 개편하여 놓고 이 좋은 疏通의 장을 사장시키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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