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각스님을 죽기로 사랑한 한 신라여인.

교각스님을죽기로사랑한한신라여인.

신라성덕왕의아들김중경(법명喬覺)은당나라에서등신불이되어지장법사로지금구화산에동남제일사라는절에모셔저서중국인들의삶에지금도큰영향을주고있다는것은많은한국인들이알고있습니다.

해마다우리나라많은불자들이구화산에가서참배를하고있습니다.

이스님이구도할당시의한여인의애절한사랑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신라왕자김중경이당나라로간후수년이되어도돌아오지않자랑랑(娘娘)이라고하는소녀는스님을만나기위해멀고험한길을나섰습니다.

뱃길도그당시는나룻배였을것인데가다가죽는한이있더라도그의일편단심에는장애가되지못했습니다.

옛말에여인의한이오뉴월에도서리를내리게한다더니머나먼그리고바다건너타국아마지금산동성위해근방에도착하였지않았나싶습니다.

거기서안휘성구화산까지는우리나라부산에서함경북도최북방나진까지의거리입니다.

묻고또묻고발이부르터가면서사랑하는연인교각스님을찾아갔습니다.

불원천리라더니불원삼천리를남의나라에서몇달동안걸려드디어도착했습니다.

산설고물설다더니말도통하지않는데고생끝에드디어도착해서보니사랑하는김중경은이제는한여인이사랑하기에는너무나많은사람들의존경을받는대스님이되어저높은곳오르지못할산위에있었습니다.

여인들의마음은사랑하는남자가유명해지는것보다평범한보통사람이더라도자기를끔찍이사랑해주는게더행복으로여기는거는예나지금이나다르지않지요.

그렇게그리워서찾아갔건만이제는내사람이될수는없다고여겨졌을때의심정을생각해보았습니다.

얼마나슬펏겠으며바로죽어버리고싶었을것입니다.

그러나기록에보면몇날몇일울고고심끝에아니다먼발치라도좋으니모습이라도보면서있고싶어스님께찾아가서아무것도바라지않겠습니다옆에서시중이나들게해달라고했다는말이있습니다.

그렇게라도해야살것같았겠지요.

그래서잠시동안은허락을받아그렇게했다고합니다.

스님얼굴도처다보지못하고그저앞마당도쓸고먼발치서뒷모습옆모습만보아도살것만같았겠지요.

그러나세상은그것도용서하지않습니다스님은중생을구하는게가장큰의무이고자기를사모하여그먼길을온가냘픈여인의소박한한을들어주었으나주변에서철없는중생들이그냥두지않습니다.

그리안보았더니그스님신라에사랑하는여자가있었구나,그래서여기와서같이산다더라’는둥발없는말은천리를가고나무가지를보고둥치를보았다하고부풀려져서또한번의곤혹스러움을당하게됩니다.

할수없이랑랑은신라로돌아가야합니다얼마나괴로웠을가요,드디어중대한결심을합니다.

이한몸희생하드라도고매한스님에게누가되어서는안되겠다고다짐하여월아지(月芽池)에몸을던져죽고맙니다.

그지극한사랑애절한마음이결국은일을내었습니다.

물속에서라도스님곁에있고싶었는지도모릅니다.

나는그월아지물속을들여다보면서혹시나랑랑의흔적이있나찾아보았습니다.

깨끗하지도않는흐리멍텅한물속에는비단잉어들만한가로이노닐고있었습니다.

혹시나무슨기록이라도있을까또두리번거리며찾아보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옆한쪽에랑랑탑이라고쓰인작은방석만한돌이서있었습니다.

그외에또혹시나무슨글이라도….들여다보았으나아무것도보이지않았습니다.

우둘투둘한것보니오랜세월동안비바람에깍겨없어진거같기도하고주변에는나무한그루없는황량한연못늦가을스산한찬바람만쓰치고지나갑니다.

가이드에게물어도보았으나처음듣는말이라고합니다.

스님도한인간이었습니다.

자기를그렇게애타게보고파서그먼거리남의나라에까지불원천리하고수개월동안을고생하며온여인을보살펴주지못하고자기가기거하고있는영역에작은못에빠져죽게한것그업보를짊어지고더정진하여오늘날까지사후천수백년이지난지금도추앙받는큰스님이된것아닌가하여마음이숙연해졌습니다.

그때까지는몰랐는데갑자기많이피로하고다리도아팠습니다.

*이이야기는약30여년전에읽은석용산이라는스님이쓴등신불이라는소설에서잠간언급되어있는것을보고중국에살고있을때벼르고별러확인도할겸구화산을가서교각스님의흔적을탐사했으며그때월아지를들여다보며사진도찍어둔것이며느낀것을쓴이야기입니다.

고승의그늘에는거의가애절한사랑이야기가있습니다.

의상대사는선묘낭자가있었습니다.원효대사에게는요석공주가,사명대사는현옥이라는여인이애타게따라다녔습니다임진왜란때큰전공뒤에는현옥의숨은공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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