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순시와 화장실 이야기.

대통령순시와화장실이야기.

50년대이야기다.

이승만대통령때이대통령은미국생활에익숙해져서우리나라생활이많이불편했는것같았다.

그의부인도외국여자인프란체스카여사이다.

그분이대통령재임시1957년10월에경상북도순시로대구에온일이있었는데경호문제와침실문제등그때만해도그분이살았던곳보다는너무나열악해서여러곳을탐색해보아도거기는싶은곳이없어제일모직에숙소를정했다고한다.

그당시제일모직은우리나라에서제일큰기업제일현대적인기업이었다.

공장을둘러보고전쟁후가는곳마다그거야싶은것없었는시기에너무나뛰어난시설들을보니놀랍다고당시병철회장에게찬사를하고온국민에게의복을입혀라는뜻의의피창생(衣被蒼牲)이라는휘호를남기고거기에서묵었다.

60년도초자유당정권이무너지고신정부가들어서고또얼마안되어군사혁명정부시절에나는야간대학을다녔는데나와같이다니는친한친구가모일간신문대구지사에있었다그친구는낮에는지사에서일하고밤에는학교에오고또은행행원회사에다니는사람등야간대학에다니는학생이많았다.

그친구는언론사에있어서시사적인여러가지세상돌아가는것많이알고그당시만해도정부주도언론이어서세상에알려져서는안될이야기는보도하면제재를받았는데그친구가흥미거리이야기를자주해주었다.

대구매일신문은바른소리한다고정간도되고하던시절이야기이다.

그가전해준이야기는대통령이제일모직에숙소를정한가장중요한것은화장실때문이었다고하였다.

그때제일모직이좌변기가설치되어있었기때문이였다고한다.

그때에화장실은거의가집본체와함께있는곳은없고떨어져있는별체에있었고지금처럼시설이잘된호텔도없었고대구에가장오래된금호호텔이있었는데거기에도일본사람들이설계한시설이여서한쪽켠에좌변기는없는화장실이었다고했다.

가정집관공서사무실공장은물론학교도화장실은별체에있었고근방에만가도냄새가많이나는쪼그려앉아일보는푸세식이였다.

가정에는똥장군이라는것에바가지로퍼담아서지게에지고밭작물에거름으로사용하였고학교에도별체에있었고남자소변은긴도랑뚝에서서보면아래로흘러가고대변은소변보는뒷편에10개정도작은칸을만들어있었다.

남자여자구분도별도로없고다만몇칸을여자용이라고표시해두었다.

초등학교다닐때나는적령에들어가서어렸지만학교생긴지오래되지않아서나이가나보다5살정도많은아이도함께다녔다짓궂은아이가퍼내는구멍또냄새가밖으로빠져나가기위한구멍이있었는데그구멍으로거울을비추어어느여선생볼일보는중요한부분을보았다고자랑을해서우리는신기해하였고웃고하였데그후그는한번으로그치지않고몇번을그러더니들켜서퇴학되기도하였다.

학교는별도로농장이있었는데그것을퍼서거름으로썼다.

그것을거름으로퍼부은곳에우리는실습시간이되면삽과호미로흙을파고어린파같은것을옮겨심기도했으나별거부감이없이하였다.ㅎ

가정에는화장실이멀다가보니밤중에볼일볼려면나가기가귀챦아서요강을머리맡에두고거기에다보았다.

그때는집도작기도했지만난방때문에한방에서5,6명이같이지나고자고하였다.

그요강은아버지도어머니도아이들도함께쓰고잘못해서엎질러져서온방이오줌으로뒤범벅이된적도있었다.

지금돌이켜보면다큰아이들남매엄마와같이자고머리맡에요강에서볼일보고세상에그렇게어찌살았을까.

그렇지만우리세대는그때그것이정상으로여기고살았다.

우물안개구리라는말이있고무식하면용감하다더니더잘된것보지못하니당연하게여겼다고할까?ㅎ

그렇게자란우리는오늘을만들었으니지금보는세상이혼란스러울수밖에없는것아닌가한다.

이렇게까지현란할줄은몰랐는데우리늙은이들은이제무섭다.

*자료화면네이버이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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