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9순 연(宴)을 하고.

어머니9순연(宴)을하고.

나는내불로그를2009년6월21에개설하고23일에어머니라고글을쓴적이있다.

그때나는아내와함께중국에살때다.

내잘못으로어려워져서어머니는동생집으로가시게하던날동생차를타고떠나시는뒷모습을보고내어려워진현실과겹처한없이울었다.

아버지돌아가시고홀로계시는어머니가힘겨워하였던기간이불과3년이지나고그동안어머니는남편을잃은슬픔에맨날우시고마음잡지못하시다가겨우안정을되찾을무렵에이불효한자식이가사탕진하고이넉마저항상내집에만계시고그게정상이라고여기고사셨는데가시게하고나마저정처없이정든대궐같은내집을비워주고떠나야하는내신세가한없이서러워서그랬는것같다.

그렇게보내신어머니,몇년은작은아들집에계셨는데혼자따로살고싶다고하셔서작은아파트를사서혼자살고계신다.

소시적에예쁘고깔금한것좋아하셔서인지매일오는도우미아줌마덕인지잘정리정돈된집이내집보다더깔끔하고장롱을열어보면화사한색갈의옷들최신핸드폰각종영양제등동생들이잘보살펴드려서가득하다.

나는국내에돌아왔지만아무도움도드리지못하고바라만보는형의심정은편치않다.

외국에사는관계로생신때에도밥한끼도함께먹어보는기회가드물었다있어도아내가혼자아니면나혼자한두번이였는데이번에는아들며느리딸손자들과함께모두모여이넉이한사코마다하시는일이나함께작은식당에서간단하나마정성들인어머니90세생일잔치를하였다.

돌아왔지만모시지도못하고혼자계시게하는맏이,아무도움도드리지못한죄스러움으로지나고있는데맏이라고한말씀드리라는데긴말하다가는좋은자리에조카들보는데울것같아서그저오래도록살아주셔서고맙습니다,동생들고맙다는말만하고말았다그래도울컥거리는마음을진정시키느라애를먹었다.

연세높으시지만아직도기억력이좋아누구생일은언제고누구는몇시에태어났고옛날어느때는집안에어떤일이있었고언제는무슨일이있었다는이야기를해주신다.

9순을맞아전국방방곳곳에흩어져살고있는이넉의자손들중외국장기출장중인몇명만빼고는거의다모였다일가친지들은초청하지않고어머니직계만모였는데도어느집잔칫집같이많이모였다.

식당을빌려식사도하고뒷풀이를했는데언제배웠는지동생둘이는어머님은혜를색스폰으로멋지게연주를하니우리모두어머님은혜를합창하고돌아가며노래도부르고춤도추고잔치가더욱흥겨워졌다.

둘째는취미로그림을그리더니국전에입선도하고내가중국살때는국내는물론중국북경에서도개인전을열기도했다.

그림만그리는줄알았는데연주실력도좋다열심히사는동생들칭찬해주고싶다.

어머니가마흔이되어낳았던막내도벌서오십이되었고큰손자는벌써마흔이넘어어디에세워도의젓한사회인이되어있다.

이모저모따져보면어머니는복이많으신분이시다아버님돌아가시고20년이지나는동안홀로사시지만이넉의자식들아들4명딸2명그아래자손들모두건강하고말썽없이잘살고있다.

이제는살이다빠지고앙상한어머니의손을만지다가눈물이왈칵났다.

젊으실때그렇게도예쁜것좋아하시고더예뻐지고싶어하셨던어머니,우리들더잘키우실려고자나깨나애쓰시던어머니,이제몇번의생신을더맞으실까?

밤새안녕하십니까라는말이있는데90이넘으신어머니가얼마나더사실까하는생각이들어많이슬프다.

지금은우리들께아무것도도움주시는것없어도우리형제자매들의정신적인지주구심점이되어어머니계신집은우리의마음속안주의집이였는데가시고나면오늘과같은이런기회가다시또있을까하는못된생각도났다.

아무도움주시지못하고때로는아이들혼줄나게하더라도오늘도안부전화를드릴수있게해주셔서참으로고맙습니다어머니오래오래건강하세요어머니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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