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시대 (4) 흙과 돌을 재료로 지은 토담집.

*이미지하나찾을려고네이버에서옛날토담집이라고찾으니

옛날토담집은없고음식이가득하고쓸만한것이없다내사진창고에서찾은

그런대로비슷한것이다.

아래토담집이야기는이사진보다짚으로엮은이엉이덕지덕지덮였고

사방벽은나무기둥하나없는나지막한순수토담집이였는데.

여명의시대(4)흙과돌을재료로지은토담집.

집은사람만이자기가만들어서살려고하는너무나필요한삶의공간이다.

그속에서함께생활하는공간이고자식을낳을수있는종족번영의공간이고편안히쉬어서다음일을할충전소이기도한사람만누릴수있는건물이다.

내어릴때는그집이대다수가뼈대는나무를쓰고부자재로흙을써서지었고지붕은간혹기와를이은기와집도있으나대게는초가집들이많았다그러나동네몇집은순흙집이있었다.

그렇게오래전에지은집도아닌데내친구집은순흙집이였다.

그집의크기는부엌그리고작은방두개였는데벽은흙과중간에돌을박아넣어서두께가3,40센치정도의두꺼운벽이고천정은팔뚝만큼굵은나무를서까래로써서흙을덥고그위에짚으로짠이영을덮고또덮고하여그림에서보는오래된초가지붕모습이였다.

집의높이는어른은키가천정에닿을정도로나지막하였고창은방마다한개가있었는데가로세로50센치정도의창호지를바른것이고열지는못했다.

그때는이상히보지도않았고그러나그집에는우리가지금쯤겨울에가면내친구부모는60은안된정도였고그친구가막내아들이다위에두아들은결혼하여그이웃에살고있었다.

지금커서보니그친구는막내여서그부모에게는늦게얻은귀여운자식이고그놈의친구인우리도덩달아서귀여움을받아그부모는옆방을우리놀이방으로주었는것같았다.우리는서너명이밥만먹으면그집이본부가되어서개구쟁이질하는것모의도하고그곳이재미있는놀이터였었다.

그때나무집은목수가있어야나무다듬고구멍파고톱으로설고하여서지으나흙집은별로기술도필요없고그냥무너지지않게담쌓아서힘만들이면지을수있어서내친구아버지가손수큰두아들이출가하기전에지은거같았다.

내가열세살까지그렇게그친구와는단짝이였는데그때는그흙집이장단점도모르고그냥놀수있는공간이기에좋았던것만있었는데그후그곳을떠나고이런집저런집시멘트가원료로된그리고그후에석유화학에서나온재료가범벅이된집에까지살아보니그흙집이그렇게좋았던집이였구나하는것을알았다.

그집은여름에는너무나시원하였다푹푹찌는날에도그방에만들어가면조금있으면시원하였고그보다겨울에지나기가너무좋았다.

옛문헌에황토방은병자들의치료방으로썼다고하고조선시대철종이강화에두고온첫사랑대한상사병을고치기도하였고현대병이라고불리는비염알레르기성질환안질환천식등은석유화학제품으로오는병이다.

황토는이런공해를해독하는큰역활을하지않을가하는데그때그집은순황토집이였다.

나지막한것이들어가는입구문은작고사람이만든토굴이다요즈음친환경이라는것속을뒤집어보면먹을거리도건물도어울리지않는가당치안는친환경이라는단어를마구쓰는데그집이야말로너무나친환경집이였다.

그방에는소죽끓이는큰솥이있었는데저녁때소죽을끓이고난방이그다음날까지방바닥도식지않고방안공기는지나기가좋았고흙내음과바닥에짚으로짠자리를깔았는데그향기가어울려서그냄세는지금60여년이지났지만아직도코에남아있다.

어릴때그집의기억이자주되살아서지금어디농촌으로가서흙집을지어서살고싶으나이제는늙어서지을힘도없을뿐더러그렇게지을려면그에따른장비도또부자제도없을뿐더러인력을구하기도어렵고불가능하다.간혹호기있는분들농촌에가서흙집을짓고산다고하는기사들을보기는하나그것도그친구집과는너무나다른집이고그러기는별로내키지도않고또이나이에얼마나더살려고그야단법석을할필요가있을가한다.

아이들에게이야기해보아야아부지는참별나다는말만들을것이고또내가죽고나면그집도터도팔아야하는데살사람도쉽게있을것같지도않고그럴돈도힘도용기도없다다만늙으면지난추억되세기며산다더니그런맥락으로반추하는것이다그리고이런저런것다버리고잊으려고하고하루가편하면일주일이편하고그일주일이더모이면한달이되고그렇게사니이삶도흙집생활만큼좋다.

그집은그곳을떠난후20여년이지난후에가보았더니그때도있었는데지금은어찌되었는지모를일이다그토담집참좋았는데..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