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이 임종시에 자식들에게 한 말.

완용이임종시에자식들에게한말.

이완용은죽으면서자녀들을불러놓고이런말을하였다고하였다.

내생애는오욕으로끝난다.그러나남들은영광을치지도외(置之度外)하고오욕의생애만을클로즈업시킬것이다.그것은당연하다.인생은동기보다남긴발자취가중요하니까.

그는착잡한심경으로흐느끼는자녀들에게또말했다.

친청이나친로파에겐무관심의아량들을베풀면서왜친일파에겐그토록가혹한지모르겠다.

아마결과적으로나라가망해서그렇겠지.나도자주독립만을절대치로믿는사람이다.단지그차선이친일이었을따름이다.왜합방조약을전후해서이나라의독립주의자들이나를타살하지못했는지못내아쉽게여긴다.이재명그얼빠진녀석은왜나를헛찔렀어!

내가왜농군의자식으로태어나질못했는지한스럽구나!

이완용은안간힘을쓰면서마지막말을했다.

역사적인관점에서보면일본도언젠가는망할날이올것이다이나라가언젠가는흥할날도있을게다.그때이완용이늘본보기로비판이된다면나의존재의의가거기있다.

이완용은역시세상에태어난것을후회하지않는다.

그는아들이항구의손을부여잡고눈물을주르르흘렸다.

너나네아들이나아들의아들이또그아들이,이완용의후예임을창피하게여겨기를못펴고살겠지?그들에겐아무런죄도없는걸.내선친(이호준)은척족김씨네에게서대원군한테정권을넘겨주는역할을했고,나는내나라를일본에넘겨주는교량의구실을했다.

이무슨숙명의소치냐?

이상은그가임종시에한말이라고한다.

실지로이렇게말을하였는지어느작가의상상력으로지어낸말인지알수는없다.

그의아들들이아버지가이렇게이야기하였소라고하였는지는모를일이다.

그러나공감이간다.

생전에주변에서자기를미워하는사람이많다는것은알았을것이고내아이들이나로인해서고통스러울것이다는것도모른다면그것은짐승이다.

사람은일생을살면서나름대로많은상황을접하고그에따라여러방법으로대처하면서산다.

그결과가때로는많은이들에게칭찬받고때로는원성의대상이되기도한다.

그당시대한제국의상황그리고주변의열강들의힘겨루기그리고국제정세를보면그는그전에러시아에게도미국에게도호감을가지고접근하며나라위해애쓴흔적도있다.

그런것으로볼때내얕은식견으로무어라하기는버겁지만조심스럽게이야기한다면차라리이럴바엔그래도일본이하는생각을그는하였을것이다.

그리고요즈음젊은이들순간포착이일생을좌우한다는말처럼그의식견으로볼때이나라가일본과오래도록함께한다면내영광이고우리나라영광이아닐까하는생각도할수있었을것이다.

불교에서말하는영겁의경지에서볼때는우리인생이한찰라이겠지만사람일생이하루하루를살아가는나날로따지면무척긴기간이고세월이다.

누구나정도의차이이지공과과가있다그러나이완용의과는지금우리들이볼때그과가너무나크다.

그의후손들이너무나안타깝다그의말과같이뭇세인들이이완용의후손이라는것말고는큰잘못이없는데도살아가기가어렵겠다.

이완용이없었더라면일본식민시대가없었고우리대한제국은건강하게유지되었을까?

나혼자해보는생각,또다른이완용이있었지않을까?

세상살아가는것쉽지않다.

*이완용은1905년학부대신으로서을사조약체결을지지하고이토오히로부미의지원으로내각대신으로된다.

1909년이재명의사에게칼을맞지만살아서1910년한일합병조약체결시송병준과경쟁적으로지도적인역할을하고조선통감부는조선총독부가되고그는총독부중추원부의장이되어일본의앞잡이로맹열한할약을하다가1926년에죽었다.

그의묘는전북익산시낭산면터좋은산골에썼는데그의증손이유골을화장해서장암천에뿌렸다고하기도하나인터넷에보니그의묘라고많이훼손된묘가보이기도한다.

위의글은그때상황을그린유주현씨의조선총독부를참고하여쓴글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