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옛날이야기. 5) 미국군인을 위한 기지촌 정화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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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옛날이야기. 5) 미국군인을 위한 기지촌 정화작업.

6.25전쟁으로 우리나라에는 외국 군인들이 많이 와있었다. 그 후 다른 나라 군인들은 돌아 갔지만 미군은 유엔군으로 남아 지금도 있다.

미군기지는 대개 일제시대 일본군이 주둔했던 지역이었다 용산 미군기지는 일본 조선군사령부 자리 평택기지는 일본군의 비행장기지 그 외 대구 왜관 동두천 군산기지 등 미군기지가 산재해 있다. 그 기지에는 반드시 그들을 위한 기지촌이 있고 위안부도 있었다.

갑작스런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여자 내가 아니면 가족을 굶긴다고 여기는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 그런 여인을 지켜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만 여성의 순결은 목숨과 같은 것이다는 힘 없는 도덕관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운명 때문에 그런 여성을 지켜 줄 수가 없었다.

어느 통계에 보면 한국 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기지촌을 거처간 여성의 수가 30만여 명이 된다고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참 많은 숫자이다. 그 30만 명이 아무에게도 말하기 싫은 아픈 과거를 가슴에 안고 평생을 살다가 죽은자도 있고 이 땅에 아직 많이 살고 있다.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군이 6만2천여명 정도인데 2만명을 철군 단행 하였다. 그리고 추가로 더 할려고 하였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안보에 큰상처가 날 지경에서 전전긍긍 했다.그러나 미국 쪽에서 보면 자국 군대가 외국에 가서 언제 전쟁이 날지도 모르고 열악한 환경으로 고생하고 문란한 생활과 성병으로 건강이 악화되는 것 이대로 방치 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의 여론에 못 이겨 시행 할려는 계획이었다.

우리 정부는 미군을 붙들어 두기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감수하여야 할 시점 이여서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대대적인 기지촌 정화 작업도 하였다. 기지촌 여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미군을 위한 정화 운동 즉 주한 미군 붙들어두기 전투력 극대화를 위한 건강한 양공주 기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분의 글에서 보니 청와대 주도로 10여개 부처 차관급으로 기지촌 정화 위원회를 만들고 힘 있는 사람이 내려가서 군산에는 미군의 쾌락을 위해 건설된 미군을 위한 클럽, 식당, 미용실, 각종상점, 환전소, 기지여성이 사용하는 500여 개의 방을 갖춘 주식회사 같은 위안부촌 아메리카 타운을 건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기지촌 여성의 인권은 더 무시되고 미국 군인이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성병 퇴치는 물론이고 그 여성들은 미군을 위한 국가를 위한 소모품이었다. 청결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2번을 검진을 받아야 하였다. 검진대에 올라가서 남자 의사에게 여성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곳을 시키는 대로 보여 주어야 했고 검진증에 도장을 받아야 했다 그 도장 받은 검진증은 위안부 그들의 영업 허가증이다.

어떤 병사가 성병에 걸리면 관계한 여성은 바로 감금 시키고 그 병사가 나아야만 풀어 주었다 고도 한다. 그래도 원인 규명은 물론 왜 그러느냐 하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어야 하였다. 그렇게 사람대우는 물론 인권이니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사치였다 그러나 1964년 우리나라 외화 수입이 일년 일억 달러 정도일 때 그들이 벌어 들인 돈이 970만 달러 정도 약 10% 정도가 되었다고 하였다.

한국 정부는 외출 나온 병사들이 일본과 오끼나와로 가는 것을 안 가도록 기지촌을 업 그래이드 하여 국내에 붙잡아 둘려고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들 모아놓고 영어를 가르치고 에치켓 교육도 시키고 아양 떨고 많이 즐겁게 해주라는 교육도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어느 강사가 ‘여러 분들은 우리나라에 애국자 입니다 긍지를 느끼고….’하니 그렇게 좋은 일이면 자기 딸부터 시키지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세월도 많이 지났지만 이렇게 되도록 우리 온 국민이 어려웠던 시절 그렇게까지 하면서 미군을 국내 주둔해 주기를 바라기도 하였고 서독에 광부로 간호원으로, 월남전쟁에도 우리국군이 주저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가서 노력한 결실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내 나라의 안보를 미군이 지켜주기를 바라는 나라다.

 

 

 

 

2 Comments

  1. journeyman

    2017년 2월 23일 at 11:24 오전

    일제 강점과 분단, 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은 시대의 아픔이기도 하죠.
    그 분들이 나라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기는 했다는데 누구라도 억울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산고수장

      2017년 2월 24일 at 7:35 오전

      어느나라없이 어둡고 부끄러운 과거가
      없지는 않지만 우리는 너무많고 또 오래동안
      그런 행위가 진행되는것이 부끄럽지요.
      사람이란 잠시 순간의 잘못은 누구나 있을수있지만.
      바쁘신분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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