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복덕방 옛날 다방
옛날다방은인생복덕방이였다

내가처음다방에가본것은대구에고등학교시험을보았으나낙방하고아버지와같이가보았다아버지가친구와약속을거기에서해놓고나혼자여관에두기도그렇고해서대리고간것이다.

처음가본다방좀어두컴컴하고무슨냄새인지이상한냄새가많이나고그후에보니그냄새가커피냄새담배연기냄새가범벅이된냄새이였다.

사람들이이곳저곳에앉아서이야기들을하고컵에물을홀짝홀짝마시고이상한노래도조용히흘러나오고예쁘장한누나들도왔다갔다하며심부름을하였다.

좁은공간비좁은자리에너도나도마구피워대는담배연기제가끔지껄여대는말그곳에서만볼수있는독특한문화였다.

그러고는한10여년지난후학교다닐때음악감상실에도,친구들과약속이있을때다방에자주갔다.

그후취직을하고직장따라나혼자하숙을하게되었다.

퇴근하고난다음심심하기도하고거기가면나처럼젊고예쁜여자아이들도있어서그들과이야기도하고싶어자주갔다.

그곳에는사업관계이야기,서로시간약속해서일을하기전에만나던장소로,계모임,무료한시간보내기등도하였지만남여사랑의시작,뜻이맞는사람과의사업의시작,젊은이들인생의길이열리는취직부탁,시골에서작은보따리안고와서돈벌어서엄마오빠동생공부시킬려고도시생활이처음시작되는곳,등등의모든시작과진행이대개거기에서이루어지는인생복덕방으로여러모로우리생활에요긴한장소였다.

주로커피를마시고홍차우유계란반숙쌍화차때로는간단한위스키한잔도할수있었다.

유행하고있는노래도또주인의취향에따라외국팝송도클라식음악도들을수있었고얼굴도그런대로괜찮게생겼고교양도어느정도갖춘나이좀많은여자는항상한복을곱게입고이곳저곳자리를옮겨가면서단골확보용으로주인이채용해서마담이라고하는사람큰곳에는반드시있었다.

젊은남여선을대개들거기서보았다이쪽저쪽에서로앉혀놓고중매쟁이가소개하고어느정도주거니받거니한후에는남여둘만남겨놓고슬그머니사라진다.그러면요즈음이야발랑까져서그렇지않지만그때는서로수줍어서말도잘못하고우물주물하다가다음약속날정하고해어지고그날까지마냥기다리고하였다.

요즈음에야전화도흔하지만그때는전화있는집이몇집않되었다.

연락은편지로하고급한일은전보라고우체국에가서신청하여하기도하였다.

또다방에서집토지등부동산계약도요즈음은공인중계사가있어서그곳에서하지만복덕방할아버지가팔사람살사람사이에서흥정해서계약서쓰고돈주고받기도했고한켠에는바둑장기도거기서두기도했다.

그후한참후에기원이라는곳도생겼다.

흑백TV가반드시있었는데김일이레스링할때면많은사람이거기와서보고내가하는것처럼흥분해서고함지르고일본선수와할때는김일이오래동안두들겨맞다가마지막에박치기몇번하면일본선수는뻗어버리고이기면가슴속이시원해하고너무좋아하고야단했고,

여로라는연속극을방영했는데그때는그것보면서주인공영구가자기인것처럼때로는불쌍해서울기도하고웃기도하고많이모여서보았다.

나는그때퇴근하면다방에자주갔다.

시골에서온아가씨가하나있었는데얼굴도예쁘고씩씩한아이가나를좋아해서같이있으면그렇게즐거웠다.

차도마시고주거니받거니두세시간보내고하숙집으로가고하였다.

순진해빠진둘이는손만잡아보았지그이상아무것도무서워서하지못하고그가다른지방으로가서우리는해어졌다.

그때는그런아이들을레지라고하였고다방에여러명이있었고취업알선해주는곳이있어서거기서소개받아자주옮겼다.

아마한곳에오래있으면대개들남자상대이니실증내서오지않을까봐그랬는거같았다.그녀들은시골에서나와서그렇게벌어서부모님께돈송금해서동생들오빠공부시킨이도많이있었다.

40여년이지난이야기다그들도이제는할머니가되어있을것이다.

많은세월이지났다그리고지난기간에비해서는너무나많이세상이달라젔다.

어찌보면오늘의경제발전의산실이라고도할수있는그런다방이제는없고커피샵인가이름조차저먼곳의이름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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