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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고수장에 대하여

2009년 6월 중국에서 근무시 시작하였습니다. 2016년초 Weblog로 바꾸어지면서 그전 글이 띄어쓰기도 없어졌고 사진들도 모두 사라져 버려서 볼품없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는 70대 후반이고, 경기도 북부에 살며 매일은 daymin@naver.com.입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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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인가요?

아직 할일이 위블에 많습니다.

조선일보아이디 따로있고 위블아이디도 따로있고 그래야 합니다.

조선일보만 그렇지요.

위블에 감칠나는 아름다운 글쓰시는 분이 많은데 그글들 사이버세상에는 보여지지도 안하고

볼려고 해도 보기도 어렵고요 조선일보에도 블로그가 있나 싶고요

등등 할일이 많이 있는데 어디 멀리 가신다 말씀인가요?

아니면 옆집으로 가신다 말인가요?

그러나 만남은 해어짐의 시작이라 하였던가요?

할수 없지요.

저니맨님의 앞날에 좋은 일이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울러 항상 자상한 보살핌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2일에 입원해서 경추수술을 하고 12일에 퇴원해서 아직은 어리버리 합니다.

써둔 글이나 포스팅하고 당분간 블로그도 쉬어야 합니다.

전도에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오늘 제헌절 태극기를 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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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헌절 태극기를 걸면서.

오늘이 제헌절이다 나라 잃고 36년간 식민지 백성이 되어 내 나라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뼈저리게 느끼며 지난 세월도 있었다 그러나 1945815일 해방이 되고 1948510일 우여곡절 후 총선을 하여 717일 제일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되는 대한민국헌법이 우리국회에서 만들어져서 공표된 너무나 좋은 날이다.

이 자랑스러운날 71769주년을 맞는 제헌절 날 나는 태극기를 아파트현관에 내다 걸면서 전과는 달리 조금은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외국 생활하는 중에도 내 책상 옆에는 느을 게양되어있었던 태극기고 오래도록 가가지고 다녔던국기 였는데 얼마전 대통령 탄핵정국 때 정신나간 대통령에게 마마님….’ 이라고하며 이 국기로 몸을 감사고 울부짓기도 하였으며, 어느 노변호사는 태극기를 어깨에 감사고 상식인이라면 부끄러워할 언행들을 하였으며 또 많은 국민들이 이런 대통령은 어서 빨리 하야 하겠다고 하여야 할 사람이나 그런 것 모르고 정신나간 사람에게 충성을 표현하는 행위에 즐겨 쓰였던 나라의 국기였다.

따라서 내 가치관으로는 무언가 그전에 국기보다 잘못 된 일부 계층을 대변하는 깃발로 보여지기도 하게 되어 조금은 찜찜한 생각도 들었다. 내 집을 보면서 저 집주인은 길거리에서 국기를 몸에 칭칭감고 마마님하며 다니던 사람의 집이 아닌가 또는 주말만 되면 국기 두개를 돌돌말아서 작은 배낭에 꽂아서 전철타고 광화문으로 가던 늙은이 집이구나 많은 국민들이 수구 꼴통으로 여기는 집이다고 여길 행위를 지금 내가 하는것이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다가 그러나 국기를 걸었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절대로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때 우리는 지금 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전직 대통령이라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직도 반성의 기미도 찾아볼수 없는 그분이 안타까웠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처럼 그런 줄 모르고 있다가 많은 국민이 싫어하는 줄 안후에는 바로 하야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쓸쓸한 여생을 보냈다.

그때 우리는 그래요 모든 것 내 잘못으로 이꼬라지가 되었고 나로 인해서 이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당하는데 다 풀어주세요, 내가다 지고 가겠습니다고 하여야 하는데라고 하면서 그러면 오히려 국민들의 동정이라도 받을건데 하면서 참으로 안타까워했었다.

나라의 국기는 제작된 경위야 어찌되었건 그후 많은 우여곡절과 희비가 쌓였고 나라의 표상인데 한 부류의 깃발로 전락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런데 1000여세대되는 아파트에 보이는 국기는 너댓 집뿐이고 건너편도 그 옆에도 제헌절 국기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다. 간혹 뉴스에서 미국을 보면 성조기가 사철 나부끼는 것 자주 볼수있는데 우리태극기 사랑하여야 할 것이다.

국기는 나라의혼이 들어있고 애국심을 가지게 하는 깃발로 여기도록 국가는 노력하고 우리스스로 만들어야 할것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다 썩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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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놀음에 도끼자루 다 썩는다.

오랜 역사를 두고 있는 말 ‘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다 썩는다’는 말이있다. 이 말의 기원은 언제 어느 왕조때 생겼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돌이켜 보면 별로 좋은 이미지로 여겨지지 않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주종관계 즉 하인과 지배계층이 연상되고 국가의 시대상으로 보면 양반과 상놈이 공존 하였는 그 극치 시대인 조선을 연상하게 하는 말이다.

조선시대의 조선의사상의 주류인 선비문화를 형성 하게한 지금 우리가 존경한다는 고매하다는 이황 그리고 이율곡님 송시열님을 비롯한 역사에 조선의 정치 철학 문화를 일깨운 분들 따라서 야단스럽게 포장해서 우리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하나 나는 그리 존경하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을 닮는다더니 내 아내는 여인들 대다수가 훌륭한 분이라고 흠모하여 여자고등학교 교정에 상을 만들어 두기도 한 신사임당을 바람직한 여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의 지론은 그 당시 시대상으로 볼 때 시가(媤家)뿌리치고 아이대리고 친정에가서 살았고 남편홀로 두게 한 아내요 따라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지않았는 며느리를 머 잘했다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알릴것이 머며 후세에까지 떠 받들 것이 있나는 주의다.

나는 위에 열거한 분들에 대한 생각은 그들이 중국의 주자학인가를 조선에는 성리학이니 하며 조선의 백성들에게 그것의 노예가 되게 하였으며 양반들이란 특수계층을 만들어 인간이 먹고사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과제인데 그것에는 손끝도 놀리지 않고 지배계층이 되어 군림한 세상에 드문 사상이 국가의 근본이 되게한 사람들이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때 나온 말이 아닌가 한다.

의관제복하고 무더운 여름 시원한 정자에서 시나 읊조리고 바둑이나 뜨면서 아니면 착하기 그지없는 아랫것들 착취하여 호의호식 거드름 피우면서 주색에 빠져 흐느적거리면서 지나다가 보니 가세가 기울어지고 폐가 망신한 시절에 그보다는 가볍게 흉내나 내던 당시 소위 말하는 양반들이 즐겨 하였는 자기 채찍질하는 소리였을 것이다.

도끼는 그 당시 연료생산에 중요한 도구였다. 그런데 얼마나 안쓰고 비맞고 얼리고 도끼터에 방치해두면 그자루가 썩겠나.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개을리 한다는 것이다.

비유는 조금 방향이 다르지만 요즈음 우리나라 신정부가 들어서고 돌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가끔 이 고사가 연상되어 쓰다가보니 서론도 길고 말도 어눌하다. 따라서 글도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똑똑한 국민들이 엉터리지도자를 쫓아내고 들어선 신정부인데 많이 달라질려는 조짐들이 보이는것 우선 눈으로 많이 보니 즐겁다. 곧 너무나 좋은 나라 우리가 평상시 바라고 바랐던 국민이 주인인 나라 대우받고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고싶은데 그런데 이제 불과 두달도 되지 않았는데 민노총인가 그 무시무시한 노동자연맹이 총 파업을하고 비 정규직이라고 명명한 저소득 월급자들이 빨리 공약 실천하라고 수만명이 똑 같은 옷 맞추어입고 거리로 나와서 정부를 압박하는 것도 보인다.

보기에 그리 가난하고 불쌍한 모습이 아니다. 정부는 아직 각료임명도 다 못한 시점이고 당선된 대통령은 인기영합에 도취되어 그것을 즐기는것 같이 보이고 따라서 좋아한다는 여론이 80%대에 육박했다고 희희락락하는데 그것을 보고있는 국민들도 도취되어 즐거워하는 자들이 많다.

그것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밀려오고 있다. 선거때 어찌되던 당선만 되자고 내걸었던 것 그 많은 공약들 다 실천하여야 하는데 그러면 나라는 그분 재임기 5년이야 별탈 없겠지만 그만두고 난후 10년쯤이면 지금 우리보다 한참 못한 필리핀이나 베트남처럼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승리에 도취되어 흥청대다가 도끼자루는 다 썩어 빠져서 못쓰게 된다 말이다. 그래 그것도 알았다 그때 말한 그것도 등등 허장성세 부리다가 거지나라 된다 말이다. 그리고 인기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너무 도취 되어도 않되고 믿어도 않된다.지금 국내 외 정세는 역사이래 가장 어려운 시점이아닐까 여겨지는데…

 

 

 

 

임진강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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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내집에서 내려다보면 임진강 굽이치는 곳이 마치 바다에 닿은 것처럼 넓게 보인다.오늘 아침은 기다리던 비가 내리고 넓은 임진강물위에 물안개가 자욱하다. 저 안개는 구름이 강물위에 내려앉은 것일까 강물이 구름이 되어 하늘로 올라 갈려는 것일까? 2017년 여름이 임진강물위에서 아른거리면서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것 같기도하다.

세상사 뜬 구름 같다더니 부운 같은 인생살이를 살고 있다. 지난해2월에 죽었다가 현대 의술덕으로 또 한번 살아서 이렇게 블로그도 하고 때로는 귀여운 손자와 놀기도 한다. 10년전 중국에서 심근경색으로 10분마다 숨이 멎을 정도의 통증을 중국산 좁쌀알 같은 구급약을 먹으며 비행기로 와서 용케 의술덕으로 살았고 이번에 또 피치못할 모진낙상으로 몸뚱이도 정신도 죽었다가 말만 들었던 구급차로 실려가서 살았다. 그러나 그후 일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과 같을수야 없지만 일년 사이에 5년이상 팍 늙은 노인이 되었다.

매일 한번 먹는 심장약을 먹으면서도 참 건강하게 가벼운 운동도 많이하고 일상생활에 건강상 부족함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행동에 지장을 느낄 불편함으로 지나니 많이 불편하고 또 신경외과의 약을 먹으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있다. 그러느라고 많은 것을 경험했고 느꼈다. 건강이 이토록 소중한 것 건강할 때는 몰랐는데 불편해보니 아무 생각없이 불편없이 걸어다니는 것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빵 한조각 사과반개 그리고 두부 설은 것 두 조각 먹고 우유 한술 넣어 탄 커피한잔으로 아침 먹고 여보 오늘 우리 북한산갈까 하면서 전철타고 가서 무리하지 않게 걷고 오고, 소래포구로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로 가기도 하고 많이 다니며 걸었는데 걷기가 버거우니 기껏해야 서울에 다녀오는 것 이곳 마트에 걸어가는 것 등 하루에 5000보걷기도 힘드니 살맛이 안난다.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죽어봐야 아는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없으니 그거는 알수가 없는데도 세상사람들은 사는게 좋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이는 개똥밭에 구불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 또 어떤이는 이 골치아픈 것이 즐거운 것 보다 훨신 많은 세상 이나이가 되었으니 죽으면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성할때는 몰랐는데 다리가 불편하니 마음대로 걸을수 있는 것이 소중한 것이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요즈음 사람수명이 80이보통이라고 할 세상이 되어서 살아보니 수천년 전부터 인간의 소망중에 부귀다남장수에 들어갔던 장수의 욕망이 그게 아니구나 오래 명줄이 붙어있는 것은 별로이고 건강히 살아야 하는데 늙으니 온몸이 쑤시고 결리고 걸핏하면 감기도 들고 또 많이 써먹은 몸의 각 기구들이 노쇄해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해서 불편하고 어떤 부위가 지독하게 아파서 병원에 가서 절제도하고 하니 긴 수명이 달가워하지 않은 시대라고 여기는 사람이 점차 늘어가고있다.

내 주변에 분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면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죽기로 오래살고 더 살고 싶어만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요즈음 보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주변에 어려운 모습들도 많이 보이고 또 나로 인해서 불편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만 가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산다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하는 노인들이 많다.

맞아 사람들은 당해보고 경험을 해봐야만 그것이 어떤지 알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좌절과 절망을 통해서 안으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영글어 진다더니 이제사 안으로 눈이 열리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다 버릴 줄도 알고 빈껍데기로 사니 죽는것도 무섭지 않아지네.

*참 하기 싫은 수술을 하러 오늘 또 병원에 입원을 하여야한다. 따라서 며칠 동안 유일한 내 일(?) 이블로그도 휴업.ㅎㅎ

그렇게라도 웃으면서 병원 간다 어느 의사의 말. ‘웃으면서 오는 환자는 빨리 낫는다고 하였는데 그리되고 싶어서…  건강한 나날 되세요.

 

 

 

 

 

 

 

조선시대 왕권을 행사한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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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권을 행사한 여인들.

조선시대 왕은 왕후의 몸에서 원자로 태어나서 세자 자격으로 후계자 수업을 받고 관례식을 거처 성인이 된 다음에 아버지가 죽은뒤 왕위에 오른 신체 건강한 남자 여야 했다.

이런 요건중에 하나만 부족해도 정통성의 문제가 생겼다 즉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거나 원자로 태어나지 않았거나 세자를 거치지 않았거나 살아있는 아버지를 제치고 왕이 되었거나 건강이 아주나쁜 군주는 정치적 권위가 약하게 여겨졌다.

그러므로 1468년 7대 세조가 사망했을 때 세조에게는 의경세자와 해양대군 적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둘다 몸이 건강치 못해 의경세자는 앓다가 죽고 형을 대신해서 세자가된 해양대군 역시 허약했다.

세조가 어린조카를 죽이고 왕이 되어 정통성에 흠이 가서 고심한 왕권이었고 조카를 죽이고 이룬 왕업에 벌을 받는다는 원성이 자자 했는 시점에 참으로 고심 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서자들에게 왕위를 물려 줄수도 없고해서 해양대군 예종이 왕이 되고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 윤씨에게 수렴청정 권한을 맡겼다.

그러나 허약한 예종은 왕이 된지 15개월만에 사망하여 13살 밖에 안된 9대 성종이 즉위하고 정희왕후 수렴청정은 1476년까지 성종이 20세가 되어 독자적으로 왕권을 행사하기 전까지 통치권을 행사했다. 이씨 왕조의 왕통을 이으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다.

정통성은 유지하되 예외를 인정하여 대비가 왕을 대신하여 왕권을 가지는 유연성을 인정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이 창업한지 76년만에 끈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식으로 수렴청정한 대비는 정희왕후 외에도 5명이나 된다 즉 여자 6명이 왕 행세를 하였다.

11대 중종의 부인 문정왕후 윤씨는 13대 명종때 대왕대비 자격으로 8년간 통치했고 명종의 부인 인순왕후 심씨는 14대 선조때 대비자격으로 1년간 통치했다

21대 영조의 젊은 부인으로 등장한 정순왕후 김씨(영조와 나이차 51세)는 제23대 순조때 대왕대비 자격으로 3년간 통치했다.

순조의 부인 순원 왕후 김씨는 24대 헌종과 25대 청종때 대왕대비 자격으로 7년과 6년간 통치했다. 또 추존왕 익종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부인인 신정왕후 조씨는 26대 고종때 대왕대비자격으로 2년간 통치했다. 이때는 흥선대원군에게 섭정의 권한을 부여했으므로 큰 권한은 없었다.

이분들 6명 수렴 청정 기간을 합하면 조선왕조 5백년 역사중에 35년간 실질적으로 여왕의 역사 였다 통치권은 남자가 행사해야 한다는 원칙이 그대로 지켜졌다면 조선은 일찍이 멸망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수렴청정은 단순한 권한 대행이 아니고 주상의 의견을 듣는게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입각해서 통치권을 행사했다 즉 막후에서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즉 당시는 여왕의 시대였다 합법적 절차에 따라 수렴 청정이 끝나지 않는한 주상은 통치권이 없었다.

대신들이 조언과 세력에 의해서 했다고도 할것이나 그것은 친정을 하였는 임금도 그렇게 한 시대가 많았으니 여인들의 수렴청정이 권한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렇게 된 근거는 국가의 주권이 왕실에 있다 즉 국가의 주인이 왕실이니 주상이 죽으면 주인인 어머니나 아내가 최고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기에 그렇게 했다. 대비들은 왕을 낳은 신성한 몸이라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겉보기로는 조선은 남성중심사회고 여성은 무력한 존재같이 보이지만 왕실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막강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개국한지 76년 세조가 마지막 임금으로 끝났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민주국가여서 여자가 대통령 되는 것도 선출이 되면 권력자가 되나 실지권력은 국민인데 왕처럼 여기고 군림하다가 방금 쫓겨난 것을 보았다.

*위의 사진은 문정왕후어보다(왼쪽) 이번 우리 대통령 방미에 미국에서 돌아온다고 하였다. 이처럼 대행시에는 어보도 자기것을 사용했다.

*문정왕후어보는 1547년(명종2년) 중종비인 문정왕후에게 聖烈大王大妃라는 존호를 올리고 그 기념으로 제작했는데 6.25때 분실되었으나 최근 미국 LA박물관에서 발견되어 문화재청이 교섭하여 현종어보(오른쪽)와함께 들여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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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 마음이 아름답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따라서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고 남의 즐거움을 이해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루의 일상이 고달프면 세상은 잿빛으로 보이고 마음도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이 우중충 해지는데 그런 시기에 처한 사람에게는 활짝피어 아침 이슬먹고 있는 장미도 예뻐보이지 않는다.

흔히들 아름답게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고 한다. 그러면 건강에도 좋고 일도 잘된다고 하는 말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다 헛소리다. 마음이 우그러지도록 주변이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는다는 것은 어렵다.

지금부터 25년전에 불행한 일을 당해서 해매고 다니며 세상이 싫은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그때는 차를 몰고 정처없이 기약없이 휴대폰도 끈채로 다닐 때 세상은 온통 잿빛속에서 수년을 해맨 적이 있었다.

지금 말썽 많은 성주에 어느 작은 절에가서 텅빈 법당에 홀로 앉아서 부처님에게 절을 수없이 하며 나는 한없이 울었다. 한시간정도 그러다가 기진하여 그냥 업드려 잠이 들었는데 주지스님이 와서 깨웠다.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하고 하룻밤을 절밥먹고 자고 다음날 또 정처없이 가고를 하며 마음을 달래느라고 애쓴적이 있다. 그때 나는 참 억울하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정말 회사직원들에게 존경 받으며 나는 잘했다고 자부하고 모두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지났다. 그러나 내게 닥아온 불행을 내가 감당하기는 너무 벅찼다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고 많이 해매고 다녔다. 그때 봄이오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닥아 왔지만 그전에는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아름답고 그때마다 바뀌는 주변의 자연들 그리고 내 공장에 신입직원들 잘 몰라서 한 작은 실수도 그럴수 있다고 귀엽게 보였던 나였는데 그런 기억도 없고 세상이 너무 싫었다.

흔히들 죽어봐야 저승을 알지 하는데 나는 죽을 만큼의 불행을 겪어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 심정을 이해 할수가있다 아울러 그런 경험에서 터득한 내 지금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이나라가 세계에서 어느정도 살고 있는 나라인지를 잘 알수가있다.

사람은 좌절과 절망을 통해서 안으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영글어지는 것이다. 아무 고뇌도 없이 오랜 세월 편하게 산사람이 그런거 안다는 것은 어렵다.

요즈음 온천지가 아름답다 앙상하던 마뭇가지는 6월이되니 푸른 잎으로 뒤덮여 졌고 아파트 울타리에는 장미가 만발해서 너무 아름답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 마음도 편하고 아름답기에 그렇게 보이는것이다. 도둑의 심뽀로 지나는 사람에게 지금 저장미가 아름답게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동안의 어리석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 아름다운 계절에 김춘수님의 꽃을 읽어보며 이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본다.

그나저나 비가 오지않아서 타들어가는 논밭들을보니 안타깝다. 어재부터 올 것이다고 하던비가 아직도 찌뿌리고 있기만하지 안오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막말은 건전한 사회의 폭력이고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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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은 건전한 사회의 폭력이고 적이다.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 볼수 있는 방법으로는 그사람의 말과 행동, 표정 그리고 의복차림새, 지난동안 살아온 행적 등등 몇가지로 알수 있다. 그중에 말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상대에게 자기를 알리는 수단이다.

그것을 듣고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며 따라서 말은 수 많은 사람의 감정을 사로잡아 기를 못쓰게 만들 중요한 무기가 되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도급인사들의 말은 듣는 사람이 그 말에 대한 영향을 크게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잘못하면 그 반대가 되어 자기 인격 손상도 되고 그로 인해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

역사를 통해 보면 말 잘못해서 귀양 간 사람도, 죽은 사람도 있고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얼마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란 사람 천박한 막말을 많이 하며 미국에서 당선되었는데 그 직후여서인지 지난 대선 때 보니 국가의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 중에 막말을 자주하는 후보자 몇이 사이다 발언이니 하면서 찬사아닌 찬사를 듣는자도 있었는데 그러나 당선되지는 못했다.

언어는 사회상을 잘 표현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러니 민감한 사항을 함축성 있는 저속한 말로 표현하면 듣는이의 취향, 지적 수준에 따라 현혹 될수도 있다. 따라서 지도급 인사들이 사용하는 막말은 영향력이 클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것에 현혹될 수준의 국민이 이제는 많지는 않다. 따라서 대중의 지지를 받아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국가이지만 그 사회 내부를 보면 지식의 첨단 계층도 있지만 또 어느나라들 만큼 하층 국민들도 많은 나라다 선거권을 가진 대중의 수준은 그리 높지않다 그러나 선거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되는 제도이기에 트럼트 같은 막말 하는 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 아닌가 한다.

유럽의 선진국 같은 나라에서는 그런자가 국가 지도자 되기는 어렵다 지난 선거때 보니 우리나라도 과거와는 너무 다르다 짧은 민주주의 역사지만 그 동안 그 어느나라 보다 역사상 우여 곡절을 많이 겪었으므로 빠르게 국민 수준이 올라 간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세계에서 드문 전국민 교육수준이 높은 것도, 우리 국민의 사회성 국가의식 준법성 등이 상당히 높은 것도 한몫하여 한 정부가 전복 되는데 과거 같으면 수명이 죽거나 온갖 불상사가 일어 날수도 있었으나 한 사람의 희생없이 이룬 역사는 한국이 처음 아닌가 한다, 이런 나라에 막 말로서 대권을 잡을려고 한자는 너무나 어리석은 자가 아닌가 한다.

그랬는데 그런말을 어느 여자 국회의원은 과거에 한솥밥 먹으며 잘해보자고 애쓰던 동지, 국무총리 후보자를 “… 도저히 팔아즐수 없는 물건이니하며 쌍소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지금도 정치인들 몇몇은 수시로 쓰고있는 것을 본다. 인수위도 없이 국정을 인계받아서 갈길이 바쁜 신정부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그런 막말들이 자주나온다, 그후 어느 당에서는 외무장관 후보자를 상한 음식…”이라고도 하는 것도 보았다.

막말은 상대방을 비판할 때 흔히들 쓰는데 상대를 비판하면서 막말로 하는 것은 수준이 낮은 대중에게는 사이다 마시는 것처럼 시원 할지 몰라도 어느정도 이성을 갖춘 대중에게는 눈살을 찌프리게 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의 인격 수준이 바로 보이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폭력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처참한 분노의 폭발로 보여지기도 하고 또 한풀이로도 들린다.

정권을 물러나게 하면서도 법 위배 되지 않고 수 십만 인파가 모인 자리에 휴지한장 버리지 않고 일상일들 철저히 하고 주말마다 많게는 전국적으로 100만여명이 모이는 조직적인 저항으로 수개월동안 하며 모인 그 현장에 종이조각 한장도 죄다 주워가는 국민 그래서 목적을 달성한 국민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다. 지도급 지식인들의 막 말은 저급한 계층에 쓰는 쌍 욕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런자는 저급한자와 별로 다를게 없는자 들이다.

 

어찌 이런나라가 되었나, 이런 세상이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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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런나라가 되었나 이런 세상이되었나.

참 황당한 사건이다 잠시의 시끄러운 소리로 짜증이 나서 아파트외벽에서 외줄에 메달려 일하는 작업자 밧줄을 끊어서 죽게 했다니, 또 바로 그다음날 대학교수 한사람은 자기에게 전달된 소포를 풀었다가 사제 폭탄으로 큰 부상을 입고 다행스럽게 죽지는 안했다고 한다.

세상에 어찌하다가 이런나라 이런 세상이 되었나? 너무 황당한 좀 특이한 상식으로도 이해가 되지않는 일들이 요즈음 보면 심챦게 일어나서 내가 비정상이 아닌가 내 사고의 기준을 고쳐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높은 건물에 줄하나에 매달려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지러워서 현기증이 날곳에서 작업을 단지 자식 그리고 생활을 위해서 매일이다 싶이하는 험한 작업을 하는 사람 보통인들은 그 모습을 보기만해도 안타깝기도 하고 안 스럽다

얼마전에 우리아파트에도 도색을 다시 하느라고 물 청소를 하고 칠하고 하였는데 줄에 매달려서 작업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보고 있다가 마침 내 앞창에 왔길레 박카스한병을 주었다 그리고 일당이 얼마나 되나고 물었더니 한20만원된다고 하였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 사람은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이 거칠다는 말이있다. 그러나 그사람의 말과 행동이 너무나 사근사근한 것에 내 고정관념이 얼마나 독선적이였구나 하며 조금은 미안하였다.

그런데 생명을 잃을 것인 데 생명줄을 끊어버린다니 그 나쁜자 이때까지 무얼 먹고 어떤곳에 살았고 누구와 무었을 하며 사는 놈인지 세상에 이럴수가… 5남매와 아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쓴기사를 보니 글쎄 아이들이 울지않는다고 하였다 엄마가 너무 슬퍼 할까봐 울기를 멈추고 있다는 어린것들의 말이 너무나 가슴 아리게 한다.

또 연세대학교수에게 폭발물을 보낸자는 그 교수의 강의를 듣고 논문을 써서 석사가 될려고 하는 지식인이라고 하였다. 무얼 배웠고 어떤 가정에서 그런 놈이 글쎄 대학원이라는 최고 지성들이 연구하는 곳에 다니게 되었는지 자기가 강의를 받고있는 교수가 아무리 밉더라도 할짓이 있지 폭탄을 보내서 죽거나 병신이 되어도 좋다는 심산으로 그런짓을 했다는 것이 아닐까?

무슨 변명을 해도 그것은 정상인 아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막살고 있는 옛말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로 표현될 자도 그런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어찌 이래되었나 이 나라가 어찌 이래되었나 역사를 보면 나라 지성인 또 지도자의 기준이 도덕과 품행을 기준으로 수천년을 지났다. 우리의 학문기준은 맹자 논어 사서 삼경 노,장자학 등 인간본연의 자세가 어느 정도 반듯하냐가 지도자의 덕목으로 삼고 지났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갖춘자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며 이나라 지도층을 이루고 있나 그렇지 않다 많이 달라져있다. 모든 것이 경제논리에 입각해서 그것에 연연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있다.

따라서 그것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도덕은 감추어지고 인간성은 비뚤어진 행위를 해도 그것을 극대화시키면 모든 흉허물은 묻혀지는 세상이 되어서 이런세상이 나라가 된 것이 아닐까? 참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왜 사나하는 말이 있는데 위에 두 사건은 최근에 일어난 한 예이다. 이보다 더한 일을 저지르고 그와 유사한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건물을 만든 것은 건축자재와 사람들의 기술이고 첨단 장비를 만드는 것은 첨단기술과 역시 첨단기술로 만들어진 부품의 결합이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교육이다 그리고 반듯하고 그런 사람들을 만드는 세상을 가질려면 10년도 안되고 적어도 반세기 50년은 되어야될 것이다 그런데 지난동안 이토록 망가트려놓은 나라, 사람이사는 세상을 다시 만들자면 하루속히 우리교육부터 바꾸어야 할것이다. 전국민 학사만들기 교육 돈많이 벌면되는 교육으로 이꼴이되었다.

 

 

밤나무 꽃이 활짝 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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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꽃이 활짝 피었어요.

산책길에서 보니 밤나무가 꽃이 활짝피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단오날을 즐기시던 생각을 하였다.

그러니까 6.25전쟁이 끝나고 쯤인데 그때는 단오가 일년 중 여자들이 하루를 즐길수 있는 날이었다. 동내 남정내들은 단오 전날 짚으로 그네 줄을 매어 줄려고 어른 팔뚝만큼 굵은 그네 줄을 만들었다 물론 여럿이 모여서 짚도 품질이 좋은 것을 몇 짐을 지게에 지고와서 정성껏 비틀어 꼬아서 만들어 뒷산 오래 묵은 밤나무 튼실한 가지에 높게 그네를 맨다.

부실하면 사랑스런 자기아내를 비롯한 연인들이 떨어져서 다칠수도 있기에 정성을 들여서 끊어지지나 않을까, 또 다른 인근 나무에 닿지나 않을까, 그네를 맨 가지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등등 염려하며 정성스럽게 매어 검증까지 꼼꼼히 해서 마친다.

다음날 단오날에는 그네에 동네 젊은 여인들 누구나 와서 하루를 마음껏 즐겁게 노는 날이다. 그날은 시부모님 식사걱정도 어린것들도 할머니가 아니면 남편이 봐주며 하루를 즐겁게 쉬게 하였다.

어머니는 일찍이 창피라는 풀이 있는데 그것을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농안에 간직해두었던 새옷을 꺼내어 입으시고 향기가 좋은 청궁이라는 약초한가지를 꺾어서 옷고름에 꽂아서 들뜻 기분으로 나가시면 나도 엄마따라 가서 하루종일 졸졸 따라다녔다. 100여호 거의가 우리성이여서 서로가 아지매 할매 동생 등 친척들이었다.

밤나무 밑에는 벌써 많은 어머니와 머리를 길게 땋은 누나들이 와서 재잘거리며 즐기고 있었다. 하루 동안 그 밤나무는 수없이 타는 그네로 피곤하게 지탱해주어야 했다. 그때들은 말인데 그래야만 정받이가 잘되어 튼실한 밤이 많이 열린다고 하였고, 약간은 비릿한 밤꽃향기가 건강한 한창 나이의 남정내 냄세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그후 어른이 되어 그 말뜻을 알았다.

왜 하필 매년 밤나무에 그네를 매었느지 그당시는 무심코 지났으나 그후 장성하여서야 그뜻을 알았고 그 향기를 맡으며 곱게 입은 한복들 긴 치마가 공중으로 몸이 날라 올라갈때 바람에 몸을 감싸고 나부끼는 모습은 어린 마음으로 보아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 밤나무와 고생스럽게 살았는 우리 어머니대의 아련한 사연들이 있는 5월의 밤나무 꽃이 활짝피어 아름답게 보이는 밤나무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언제 있기나했나다 조금은 안타깝고 서운하기도 하다.

밤은 땅속에 밤알을 심으면 다른 식물과 달리, 싹이나는 것과 동시에 뿌리가 나와서 그것으로 영양 섭취를해서 자라고 밤알은 그대로 남아서 그 나무가 커서 밤이 열릴때까지 썩지 않는다는 말이있다. 믿기지 않는 말인데 그렇다고 한다.

모든 식물들은 씨가 싹이트고 자라는 동안 씨가 가진 영양을 먹으며 뿌리를 내리는데 밤은 그렇지않다고 하고 또 신주를 밤나무로 만들기에 밤은 노인이 심어서 그 나무가 크면 그 나무로 심은자의 신주를 만든다고 하였다.

또 있다 밤나무는 질기고 단단하며 타닌성분이 들어 있어서 잘썩지 않아 철도가 개발되고 초창기에 철도침목을 밤나무를 많이 썼다고도 하였다. 그런 밤나무에 대한 내가 겪었던 오래 묵은 추억과 말들을 곱씹으며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젊을 때 내가보기에도 키도 크시고 계란형의 어머니 예쁜 그당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는 돌아 가신지 3년이되었는 내 어머니생각도 하면서 이글을 쓴다.

사람은 자기가 겪어보아야 이해가 된다. 늙으신 어머니 다리가 아파서 병원으로 모시고 다니고 늙으셔도 손톱물도 들이고 돌아가실 때까지 얼굴화장도 하시며 머리염색도 새까맣게 하시며 사실 때 때로는 너무하다 이제는 마음도 좀 늙었으면 싶은 생각도 하게하신 아이들을 어렵게 하시기도 하시던 어머니였다. 병원생활도 자주 오래 하셨다.

이제 내가 늙어보니 몸이 늙어서 추하게 보이는데 약간의 외모가 단정하게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해서는 오히려 추한늙은이로 보여질것이다. 아름답게 늙고 건강하게 살다가 가고 싶은데 그래 될는지….

 

위블님에게 받은 컵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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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블님에게 받은 컵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오랜만에 비다운 비가 내리고 있다.

타 들어가는 밭에 안간힘을 다해서 살고 있는 작물들을 하루 한번씩 산책할 때마다 보면서 애처로운 생각을 하며 다닌지 꽤 오래다.

어서 비가와야 할텐데 저 작물들이 자랄려고 한지는 포기한지 오래고 요즈음은 안죽고 살기위해서 안깐 힘을 다해서 애처롭게 지나고 있다.

내밭 같으면 아내가 가끔씩 요긴하게 쓰는 장보기 손구루마로 물을 날라서라도 물을 줄 것이나 그럴수도 없다.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바로 우리아파트 옆 산기슭에 있다.

콩도 심어져있고 고추도 파란색은 적고 노르스름해지면서 가냘픈 일상으로 늘어서있는 것 다니며서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다니고 있다.

이토록 비가 안와서 대지가 건조해지니 숨쉬기가 버겁고 때이른 여름기후로 그에 따른 여러 부작용도 있다 자주 불이나서 산이 타고 먼저온 여름기후로 인체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늦지만 오늘아침에 일어나보니 아파트현관 난간에 빗물이 조롱조롱 매달려있고 소리없이 조용한 비가 내리고 있다.

자연이란 우리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한없이 주고 있지만 인간들은 그렇게 고맙게 여기는 것 같지않다. 우선 눈앞에 보이는 삶에 정신이 몰두하며 산다.

온대지가 타들어가는 것을 보고 비를 내리는것같으다.

나는 느을 위블지기님에게 받은 머그컵으로 생수도 마시고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는데 오늘은 확터진 베란다 넓은 창으로 비내리는 들판과 안개인지 비인지 희뿌연 먼산을 바라보면서 한잔커피와 고마운 비를 감상하면서 이글을 쓴다.

커피는 나는 한창때는 잘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가는곳 마다 내놓아서 안마실수도 없고 해서 주는 것 몇잔을 마시고 나면 속이 이상하고 눈도 뻑뻑하고 잠이 안오고 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하루 두잔을 습관처럼 마신다 반드시 저지방분유 차 숟갈로 세 숟갈과 막대커피를 넣고 저으면 커피 냄세도 나고 우유 맛도 나고 해서 아내 시키지 않고 항상 내가 직접 타서 마신다. 한동안 둥굴레차니 록차니 등등해서 마시기도 했는데 요즈음 커피만 두잔씩 마신지 오래되었다. 얼마 전에 제게도 컵을 보내주시어서 너무나 고맙게 받아서 요긴하게 쓰고 있으나 변변히 고맙다는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우연히 오늘 비 때문에 그 인사 겸해서 이글을 쓴다. 제 컵에 글은 김춘수님의 이란 시를 쓴 것이다.

한창때 한 고운 여학생이 내게 보낸 글에서 이 시를 써서 보내서 착한 시절에 가슴이 울렁거렸던 시다. 컵에 넣고싶은 마음속의 글귀가 있나고 하셔서 그 글로 쓰게 되어서 컵을 쓰면서 까맣게 잊었던 옛날 마음이 아렸던 그때 일들을 가끔씩은 속으로 그려본다.

세월이 많이 지난 이야기이고 까맣게 잊고 산 내생에 있는 작은 한점이다. 그 후는 어디에서 무엇하며 누구와 사는지 죽었는지 알지 못하고 산 세월이 많이 흘러갔다.

비 이야기하다가 삼천포로 빠졌다. 저니멘님에게 감사합니다 하며 그 야기는 그치자.

비 많이와서 마음도 메마르고 기후도 땅도 온 세상이 마른데 촉촉히 젖게 해서 푸근한 세상이 되게 해 주었으면 한다.

5월이가고 6월이되었다 이곳은 아파트촌이어서 가는 곳마다 질서있게 늘어선 곳도 헝클어진 담장에도 하나같이 싱그럽고 탐스럽게 핀 장미꽃들이 만발해서 참 아름답다. 몇가지 몰래 꺽어다가 집안에 꽂아두고 싶기도 하다만 그런 짓은 해서는 안된고 하며 참는다.

비가 시작한 김에 좀 많이 와라 내일 아침에 산책길에서는 촉촉히 빗물 맞아 영롱한 물방울이 조롱조롱 달린 장미를 보고싶으다.

*이글은 지난 6일아침에 촉촉히 내리는 비를 보면서 써두고 우물 쭈물 하다가 보니 버려질 글인데 늦게나마 포스팅했다.

*이 한주일도 모두들 건강한 한 주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