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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제라는 것 그거 효과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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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제라는 것 그거 효과있나?

북한이 미사일 한방씩 쏘면 유엔은 제 몇호 하면서 안전보장이사횐가 동원해서 결의해서 제재한다고 한다. 또 미국은 세컨더리보이콧인가 하는 것까지 하며 겉으로 보기에는 북한은 미사일 쏜 벌 받느라고 옴짝달싹 못하도록 될 것같이 하는것 발표하고 하였다.

그러나 북은 ‘웃기고 있네 하하’ 하는 것처럼 할 것 다한다 평양 유경거리라나 거기에는 70층높이의 메머드주상복합 건물이 준공되어 입주를 하고 있다고 하고 밤이 되면 휘황찬란한 화려한 거리라고 하고 그들의 경제가 지난해 3.9%성장 했다는 보도도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1999년이래 17년만에 큰폭의 성장이란다. 그리고 핵폭탄 실험에이어 계속해서 이번에는 핵탄두소형화, 이번에는 ICBM, 하며 지대공 미사일 실험을 하더니 이번에는 미국의태평양 요새 괌의 군기지를 포위하는 미사일을 쏘겠다는 등 압박을 하고있다. 이런 것들이 각종제재가 진행중인데 어찌 가능하였을까?

그런데 그들을 도와주는 거대한 국가 중국이 있어서 그런 것 같더니 이제보니 유엔의결의 그리고 미국이 독자적으로 제재한다는 것들 모두 북은 웃기고 있네 하는 것 같다. 핵 폭탄과 미사일 등 핵을 운용하여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는 구 소련 그러니 러시아 기술자들이고 그 엔진은 우크라이나 것을 사와서 하는 것 같다고 하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이 옛 소련 국방기술의 진수인 RD-250 엔진을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RD-250 엔진을 장착한 옛 소련의 SS-18 미사일은 수소폭탄 탄두 10개를 싣고 1만1000km를 날아가 현존하는 최강의 ICBM으로 꼽힌다. 북한은 이 엔진을 생산하던 우크라이나 기술자들을 빼돌려 재빨리 엔진을 복제한 것으로 보인다는 8월17일자 우리나라신문에 기사도 읽었다.

나는 이런 기사를 볼 때 마다 참으로 해괴한 일들로 들린다. 미국 CIA라는 정보국은 빈라덴을 찾아서 폭살시킨 가공할 정보기관이다. 그런데 이런 지켜지지도 않을 각종북 제제방안을 보고도 그런 제재방안만 되풀이하고 실지는 아무 변화 없는 제제를 왜 계속할까? 또 우리가 알기로 IAEA인가하는 몇몇나라 외에는 핵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감시하는 국제기구 그거는 무엇하는 기관인지 참 세상은 아리송하고 도깨비 세상 같으다.

중국이 이제 북한에 석탄 철광석등 광물자원을 수입 안하기로 했다고 하는 소리도 수없이 들었고 이제는 북한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져서 유엔결의를 안 따르면 안될 것처럼도 하는 것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중국은 아무런 조치 한 것 없고 북한은 희희나낙하며 할 것 다한다. 중국은 경상도 사투리말로 의심 많고 믿지 못할 사람보고 “저눔아 중국 놈 빤스를 입었나”하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능글스럽고 호의적이지만 그놈의 속을 알수없는 사람들이 사는 중국이다. 나는 그 사람들과 10년넘게 살아서 잘안다.

지금 주석 시진핑의 얼굴이 바로 못믿을 중국인들의 표본이다. 그놈의 속에는 무얼 생각하고 앞으로 어쩌자는 것인지 알수가 없는게 중국이고 동남아 각국의 경제를 휘두른다는 화상(華商)들 그런 사람들이기에 경제력이 있는 것이다. 불의를 보고도 내게 덕이 없으면 못 본체 뒷걸음질 하는 민족에게 무슨 북한 벌주는 결의를 지키게 한다니 너무나 순진하다. 또 북한이라는 나라가 중국에게는 수백만 군대와 온갖 첨단무기 수천개 가진 것보다 더 좋은 완충지역인데 그 나라가 핵을 가지고 머지않아 미국과 겨룰 착한 우방이 될건데 중국이 그것 못하게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중국은 능글스러운 민족성처럼 하는척하는 것이다.

바꾸어서 미국 또한 한국이란 나라가 지정학적으로 자기들 패권주의에 이를데 없이 소중한 나라로 되어있다. 이 와중에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것이 한국이다. 북한이 핵무장 하는 것 지금까지 해온 것 보면 무슨 수로라도 못 막고 우리 등은 터질지경인데 우리에게도 이제 핑계가 생겼다.

우리도 핵탄두 500KG옵션에서 풀려서 1000KG까지 늘려야 된다고하고 핵무기제조도 해야 한다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요구 해야 한다. 자기나라 국방이 위급한지경인데 신의니 체면이니 차리고 있을때가 아니다. 우선 여론 환기부터 해야 한다 작은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낸다. 국제사회에 공감을 얻자면 내가 노력해야한다 가만있는데 너 그렇게 해라 할 이웃도 없고 나라는 없다.

북을 보라 척박한 여건속에서 세계의 욕을 무릅쓰고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내듯 30여년을 노력하더니 초강대국 미국을 가지고 논다. 꼴난 것 사드 몇기 들여놓는다고 야단하는데 그거는 국내 미국인들 보호용 이상도 아니다. 정신 차려야 한다 5년지나면 내 임기 끝이다고 허울좋고 폼 나는 것 만 하지 말고… 요즈음 미국 정가에서 중국과 빅딜이니 하면서 한미군사 훈련중단 주한미군 철수론을 들먹인다는 뉴스도있다. 무섭고 끔직스러운 소리다.나라 잃고 얼마나 고생했나? 어찌 만들어진 대한민국이냐?

 

 

 

2017년 삼일절 그리고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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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삼일절 그리고 태극기.

오늘 3월1일 삼일절이다. 1919년 3월1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본인들의 총칼 앞에 우리들 선조님들은 태극기만 들고 저항하였던 날이다 금년이 98년째 되는 날이다.

해마다 모든 국경일에는 거의 우리는 아침 일찍 태극기를 베란다 앞에 내어 걸었다. 중국에서 살때도 그랬더니 어느해 중국친구가 “저것이 너희나라 국기 아니냐, 네 책상 옆에 있더니 오늘은 밖에 걸렸네 무슨날 인데?” 하였다.

나는 오늘이 일본놈에게 저 국기만 들고 대들었던 날이다고 대강 설명을 하였더니 그래 일본놈들 아주 나쁜놈들…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였다.

내 아내는 이름있는 날은 반드시 챙기고 산다. 아내는 지금도 친정에 자기형제들, 시집에 우리형제 남매들 그리고 조카들도 생일 챙겨가면서 그날은 전화도 해준다. 그런데 조금전에 태극기를 끄집어내면서 “여보 이 태극기 올해는 걸지 맙시다!” 하였다. 나는 왜? 했더니 거꾸로 가자고 하는 데 쓰이는 태극기,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것을 들고 그렇게 할건데 하면서 하지 안을려고 하였다. 그래서 나도 오늘은 그렇게 합시다고 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 되어 찬성 반대로 주말만 되면 반대한다는 쪽에서 국기를 흔들며 야단이었으나 그르려니 하며 보았는데 얼마 전에 이나라에서 존경할 경륜을 가진 분, 대통령 측 변호인들 몇 분이 시정 잡배들처럼 과격한 언행을 하는 것을 보고는 저 사람들이 국기를 저렇게 써서는 안되는데 하는 생각을 나도 했었다. 그중 한 분은 헌재 법정에서도 일어서서 몸에다 감아싸고 변론을 하여 경고를 받았다는 기사도 보았다.

나라의 국기는 그렇게 쓰여서는 안 된다. 나라 잃고 그것을 감추어 두고 내다 게양하고 싶었으나 그 놈들의 총칼에 질려서 애태우기를 얼마나 했나? 그후 독재 대통령에 항거 하면서도 썼다. 우리국기 태극기는 민주주의 국가를 만든 우리국가의 존엄스러운 표상이다. 자유당 정부 때 부정선거를 해서 장기 집권하겠다는 초대대통령도 몰아낸 태극기이다. 그분은 나를 싫어하는 국민이 저렇게 많구나 하며 자진 하야 하였다.

그 국기를 국정을 잘못했다고 국민8,90%가 물러나세요 하는데 그게아니고… 하며 반대하는 쪽에서 주머니에도 등산 베낭에도 넣고 가서 마구 흔들어 대는데 쓰인 국기가 되었다.

아내와 나는 태극기를 게양하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당분간은 썩 내키지 않는다. 국민각자의 생각으로 자의로서 모여서 조용히 의견을 나타내는 시위는 민주주의 꽃이다. 그렇지만 나라의 마지막 보루인 재판을 하는 그 법원을 협박하고 담당판사가 위협을 느껴 경호를하게 하는 행위를 시정잡배도 아닌 나라의 원로라는 사람들이 조장하고 있고 그때 그 신성한 택극기를 몸에다가 칭칭감고…. 이 태극기 오늘따라 고민된다.

헌재의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도 궁급다 그러나 어떤 결정이든 존중하고 그에 따른 조속한 안정을 찾도록 온 국민이 노력 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혼란은 물론 폭력은 없어야한다.

 

행복한 삶 행복한 죽음.

 

며칠전 새벽에 잠이 깨어서 할일은 없고 잠은 오지 않고 인터넷에 신문을 주욱 훑다가 보니 ‘치매걸린 한 안노인의 죽기보다 불행한 삶’ 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91세된 어머니를 집에 두고 잠적한 아들(63세)을 서울 중앙지법 형사단독 이창경 판사는 1년2개월 징역을 선고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어머니는 중증치매환자인데 2014년 5월 함께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경매 배당금 2억8000만원을 챙겨서 어머니는 그대로 두고 아들은 가버렸다. 그리고는 연락이 끊어지고 어머니는 홀로 화상도 입고 한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지났으나 드디어 그 집에서 강제퇴거 될 위기에 아들에게 연락을 했다고 하나 아들은 나타나지 않아서 벌어진 재판이라고 한다.

기가차는 사연이다 아들 쪽에서 보면 치매중인 어머니와 살아간다는 것 하기 좋은 말로 아들이니당연히 모시고 고생해야 한다지만 함께 살아간다는 것 너무 어렵다. 내게 무슨 큰 죄가 있어서 이렇게 어머니가 애를 태우나 싶고 죽을 지경일 것이다.

또 어머니는 치매 중이니 흔히들 말하기를 앓는 환자는 세상 모르게 편하다고 하는데 그런지 모른다만 신체에 충격이 올 행위를 하였다면 얼마나 아프며 서글프고 불쌍하기 이를데 없다.

사람들은 생명이 길어져서 80세는 보통이고 90세가되어 행복한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지않다. 그런 늙은이들 대개가 걸핏하면 감기 들어서 약을 수일동안 먹어야 하고 어디가 결려서 또 그렇게 하고를 반복하거나 또는 몸 어느 한곳에 아프지 않는 노인은 없다.

많은 노인들 일상을 들여다보면 병원을 드나들거나 아니면 병 때문에 약을 나날이 먹으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나는데 이것이 행복한 삶은 아니다. 행복한 삶이란 그런 것 생기기 전에 80대 초반정도에 죽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즉 길어진 생명이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 행복하지 않고 고통을 안고 사는 기간이 늘어진 생명의 년수는 그렇게 행복하지 않고 삐치는기간이다. 사람에 따라서 차이는 있으나 내 주변에 보면 거의가 그렇게 지나고 있고 나 또한 젊을 땐 감기 들어도 약 2,3일 먹으면 나았지만 요즈음은 일주일도 가고 한다.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식들의 마음을 고려해보면 너무 미안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나는 저작년까지 어머니가계셔서 그때 직접 못 모셔서 죄송하였으며 편챦다고 하여 가서 보면 고통스러워하시는 것 보면 더 죄송하고 그러기를 수없이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이제 나 또한 80이가까워오니 지난 동안 자식으로서 애태웠던 그 마음, 내 주변에 아내를 비롯한 자식의 고민을 고려해보면 사는 것이 행복스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하고 그때는 또 더 행복해 질려고 아둥 바둥 하지만 그 행복은 가져지지 않고 또 저만치 아른거리는 것이 행복이란 것이다.

이제사 그래 행복이란 저 앞에서 아른거리는 것이 아니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사람은 잘 살았는 인생이고 늙어도 그것이 아니고 아직도 저 앞에서 아른거린다고 여겨지면 잘 살은 인생은 아니다. 따라서 죽을 때 내 사랑했던 옆에 있는 아내나 남편 그리고 자식들에게 골치 아프게 하지 않고 죽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잘살았다 못살았다고 구별하는 것 중에 죽음까지도 들어가야 할 것이다.

1년 2개월 감옥생활을 해라는 그 할머니의 자식에게 너무 돌팔매질할 것도 아닌것 아닐까 한다. 요즈음 어린이와 노인은 이제 국가가 책임져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해서 국가가 어떻게 하고 노인을 위해서 또 어찌하고 하는 식으로 국가가 잘해주는데 우리는…. 하는 말들을 자주 보는데 곧 국가가 책임질 시대가 오고 있다.

그렇지만 내 노년을 나라에 맡겨가면서 삐치며 지나는 노년의 일상을 자식과 옆 사람이 불편스럽게 생각 하는데 그것을 알고 지나는 생활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와 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할 골치 아픈 죽음이 곧 닥쳐오고 있다.

 

이제는 옛날이야기. 5) 미국군인을 위한 기지촌 정화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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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옛날이야기. 5) 미국군인을 위한 기지촌 정화작업.

6.25전쟁으로 우리나라에는 외국 군인들이 많이 와있었다. 그 후 다른 나라 군인들은 돌아 갔지만 미군은 유엔군으로 남아 지금도 있다.

미군기지는 대개 일제시대 일본군이 주둔했던 지역이었다 용산 미군기지는 일본 조선군사령부 자리 평택기지는 일본군의 비행장기지 그 외 대구 왜관 동두천 군산기지 등 미군기지가 산재해 있다. 그 기지에는 반드시 그들을 위한 기지촌이 있고 위안부도 있었다.

갑작스런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여자 내가 아니면 가족을 굶긴다고 여기는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 그런 여인을 지켜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만 여성의 순결은 목숨과 같은 것이다는 힘 없는 도덕관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운명 때문에 그런 여성을 지켜 줄 수가 없었다.

어느 통계에 보면 한국 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기지촌을 거처간 여성의 수가 30만여 명이 된다고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참 많은 숫자이다. 그 30만 명이 아무에게도 말하기 싫은 아픈 과거를 가슴에 안고 평생을 살다가 죽은자도 있고 이 땅에 아직 많이 살고 있다.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군이 6만2천여명 정도인데 2만명을 철군 단행 하였다. 그리고 추가로 더 할려고 하였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안보에 큰상처가 날 지경에서 전전긍긍 했다.그러나 미국 쪽에서 보면 자국 군대가 외국에 가서 언제 전쟁이 날지도 모르고 열악한 환경으로 고생하고 문란한 생활과 성병으로 건강이 악화되는 것 이대로 방치 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의 여론에 못 이겨 시행 할려는 계획이었다.

우리 정부는 미군을 붙들어 두기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감수하여야 할 시점 이여서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대대적인 기지촌 정화 작업도 하였다. 기지촌 여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미군을 위한 정화 운동 즉 주한 미군 붙들어두기 전투력 극대화를 위한 건강한 양공주 기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분의 글에서 보니 청와대 주도로 10여개 부처 차관급으로 기지촌 정화 위원회를 만들고 힘 있는 사람이 내려가서 군산에는 미군의 쾌락을 위해 건설된 미군을 위한 클럽, 식당, 미용실, 각종상점, 환전소, 기지여성이 사용하는 500여 개의 방을 갖춘 주식회사 같은 위안부촌 아메리카 타운을 건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기지촌 여성의 인권은 더 무시되고 미국 군인이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성병 퇴치는 물론이고 그 여성들은 미군을 위한 국가를 위한 소모품이었다. 청결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2번을 검진을 받아야 하였다. 검진대에 올라가서 남자 의사에게 여성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곳을 시키는 대로 보여 주어야 했고 검진증에 도장을 받아야 했다 그 도장 받은 검진증은 위안부 그들의 영업 허가증이다.

어떤 병사가 성병에 걸리면 관계한 여성은 바로 감금 시키고 그 병사가 나아야만 풀어 주었다 고도 한다. 그래도 원인 규명은 물론 왜 그러느냐 하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어야 하였다. 그렇게 사람대우는 물론 인권이니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사치였다 그러나 1964년 우리나라 외화 수입이 일년 일억 달러 정도일 때 그들이 벌어 들인 돈이 970만 달러 정도 약 10% 정도가 되었다고 하였다.

한국 정부는 외출 나온 병사들이 일본과 오끼나와로 가는 것을 안 가도록 기지촌을 업 그래이드 하여 국내에 붙잡아 둘려고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들 모아놓고 영어를 가르치고 에치켓 교육도 시키고 아양 떨고 많이 즐겁게 해주라는 교육도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어느 강사가 ‘여러 분들은 우리나라에 애국자 입니다 긍지를 느끼고….’하니 그렇게 좋은 일이면 자기 딸부터 시키지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세월도 많이 지났지만 이렇게 되도록 우리 온 국민이 어려웠던 시절 그렇게까지 하면서 미군을 국내 주둔해 주기를 바라기도 하였고 서독에 광부로 간호원으로, 월남전쟁에도 우리국군이 주저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가서 노력한 결실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내 나라의 안보를 미군이 지켜주기를 바라는 나라다.

 

 

 

 

상속세를 법대로 냈다는 오뚜기회장 이야기.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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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를 법대로 냈다는 오뚜기회장 이야기.

우리 서민생활에 친근한 기업 오뚜기, 그 회사는 케챱, 마요네스, 라면, 등등을 값싸게 맛있게 만들어 온 나라 서민들이 즐겨 먹게 해 주는 우리나라 서민생활을 편하게 도와주는 회사 이지요. 그런데 창업주인 함태호 명예 회장님이 작년에 작고 했다고 합니다.

그 분이 남긴 주식이 46만5543주 금액으로 3천5백여억원을 아들인 현 회장이 물려 받게 되어 법에 따라 상속세를 천여억원으로 추산되는 상속세를 5년간 나누어 내기로 했답니다.

이것을 한 상속세 전문가는 왜 그랬을까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어느 신문에는 “지극히 당연한 것 했고 그래야만 하는 일을 한 오뚜기그룹 함회장의 상속이 특별히 느껴지는 이유” 라고 쓴 글이 있었습니다.

법대로 당연히 낼 세금을 낸 것인데 별소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부모재산을 상속받으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세금을 더 적게 아예 안낼려고 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거대기업으로 알려진 기업들이 머리 좋은 법조인을 고용해서 어린 자식 또는 손자까지 동원해서 상속할려는 것을 공공연히 하면서도 이것은 탈세가 아니다 절세지 하며 하는 것을 보고 그외 유수기업들도 기업합병이니 또는 작은 기업 만들어서 불공정 하도급을 주어 키워 공개해서 상속세 수천억원의 세금을 안 내도 되게 하는 것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기사를 읽고 한 중견기업이 한 일도 아니고 몇 개의 기업을 거느린 오뚜기가 낸 상속세 일천여억원이 기사를 쓴 기자의 말과 같이 너무 생소롭고 신선해 보여서 이 글을 씁니다.

그것 말고도 고 함태호 명예 회장은 1992년부터 심장 재단을 통해 4242명의 어린이를 제 2의 생명을 얻을수 있도록 도와 주었고 또 2015년 11월에는 3백억원이 넘는 규모의 주식을 장애인 복지 재단에 남 몰래 기부도 했답니다 이 기부도 아무도 모르게 한 것이었으나 알려 지기는 금융 감독원 공시에서 지분이 줄어든 것 때문에 알려 졌답니다.

떠나는 길이 정말 아름답군요. 지난해 그분의 빈소에는 새 생명을 얻은 어린이들이 찾아와서 “대학 합격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 뵐려 했는데…” 하면서 목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소비자들의 힘이 대단하지요. 그리고 생필품 주 거래자는 거의가 여성 주부들인데 나쁜 마음가진 기업은 법보다 가혹한 응징을하고 위와 같이 아름다운 기업주가경영하는 기업의 제품은 많이 사주어서 힘나게해서 더 크게 되게 해지도록 또 더 잘하도록 해주었으면 합니다.

서민들이 응징이래야 별거 있나요 그 회사물건 안 사는 것이지요 더 할려면 소비자단체에서 불매운동을 하면 그것이 큰 징벌이 되겠지요.

 

국가를 너무 치사하게 만드는 국회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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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너무 치사하게 만드는 국회청문회.
지금 국회는 대통령실정을 탄핵 결의하여 헌법재판소로 결의서를 송부했고 며칠 전부터는 대통령 과 최순실이라는 여인이 저지른 청문회를 며칠째 열고 있다.
거기에 보면 그게이트에 관련 되었는 거대 재벌회사 총수도 나오고 청와대 전 왕비서실장이라는사람도 그리고 비서실의 여러 사람 또 그외 관련 민간인들이 불려 나와서 의원님들의 송곳질문에 고욕을 치른 것을 생중계로 보여주고 있다.

그 민간인중에는 의사도 있고 최순실 관련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정작 반드시 나와야 할 중심인물들은 안 나와서 그사람 끌어 올려고 동행명령장이니 하며 발부해서 찾아 다녀도 없거나 꼭꼭 숨어버린 사람도 있다고 하고 국회체면이 말이 아니게 보인다.
그리고 청문회도중에 의원님들의 질문도 수준이 저질스런 말을 들을수 있고 증인들도 모른다고 하면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전직 청와대 의무실장도 있고 그 외 의사도 나왔다.
그분들과 문답을 들어보면 대통령얼굴에 피멍 자국이니, 밤에 다녀간 의사니, 태반주사를… 어쩌고, 올림머리를 하는데… 등등 또 그외 사람들과 문답 중에 호텔 변기를 퇴실할 때 가져가고 하는말도 나오고…. 등등 너무나 쪼잔하고 듣기가 거북스러운 여염집여인들에게도 요즈음 그렇게 하면 당하는 사람은 물론 하는 자를 저질스럽게 취급하는 언어들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또 보고 있다. 앞으로도 몇번을 또 얼마나 더 깊숙이까지 파고들어가는 소리를 들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그것을 생중계를 하니 세계 여러나라에서 다 보고 듣고 있을것이다.

세상에 어느나라 국회가 이토록 여자들의 금기시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하게 하는 국회가 있을까 싶으다.
지금도 외신들은 대통령이 사이비종교 맹신자라고 한 나라도 있고 정경유착을 비꼬며 기업들에게 돈 내놔라고 하는 한국정부니, 일본인들은 한 여인과 결탁하여 어쩌고 하면서 비꼬고 있는데 곧 세상에 국회가 여인들 금기시하는 여러 부문들을 끄집어내어 대통령을 골탕먹이고 있는 한국국회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잘못한 여자대통령이라고 마구 윽발질러서 쳐박아놓고 그게 아니고요라는 말도 못하게 되어 있는데 이거는 너무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나도 그런 대통령을 미워하고 어찌 이렇게 모자라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우리는 선출했나고 하는 사람이지만 세상 만사들보면 한쪽 말만 듣고 평가하는 것은 많은 후회를 남긴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한쪽에서는 지금은 말할수도 없게 그로키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할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회가 좀 신중하고 권위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다.
대한민국 5000만이 살아가는 나라의 국회라는 것 잊지 말고 그곳의 의원은 국가명운을 책임지고 국민이 원하는 국민명예도 또 세계인들이 보고 있다는 것 명심하고 일하여야 하고 이번 일로인해서 곧 있을 개헌 그리고 대선 등 하셔야 할 일이 노도(怒濤)처럼 밀려오고 있는데 금기시하는 여인들의 구석구석이나 파드배는 것 대강하고 중대사들 잘 처리하는데 열중하기바라며 대통령 스켄들도 후회하지 않도록 잘 처리하기를 국민들은 간절히 바란다는 것 명심하시기 바란다.

중국인들 사진 한장을 보면서…

요우커

중국인들 사진 한장을 보면서…

이번 중국 구어칭제(國慶節)에 25만여명이 우리나라에 온다고 한다. 요즈음 평상시에도 중국인들이 많이 와서 우리 문화를 즐긴다고 하는 기사들을 자주보고 제주도는 이제는 중국 제주도가 아닌가 할 정도라고도 한다.

어찌되었건 좋은 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사는 한가지가 좋으면 그 반대로 나쁜 것도 반드시 뒤따르는데 중국인들이 저지르는 없어야 될 일들도 있다는 뉴스도 자주 보여진다.

나는 그 나라에 10년동안 살았다 그래서 중국인들의 생활들이 또다시 생각나서 이 글을 쓴다. 오래 전에 내 불로그에 ‘중국 정부는 밉지만 사람들은 사랑스럽다.’ 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댓글에 ‘뙤 놈들!’ 단 3글자만 쓰고 간 분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수십세기 동안 중국에게 무시당하고 산적이 있어 중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6.25 전쟁 중에 북한 편에서 우리에게 치명상을 입혀 더 나쁜 감정이 나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어도 고약한 나라이고 사람들이라고 여기고 살았다. 그런 감정은 중국에 가서도 오랫동안 가지고 경계하면서 살았다.

처음 중국 심양에 갔을때 들려오는 소리 열차를 타면 외국인에게는 돈을 더 받는다느니 승객을 태운 버스를 조폭 같은 놈들이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게 해서 승객들 돈을 모조리 빼앗고 돌려 보냈다느니 흉흉한 소리를 들었다.

많이 더운 여름날 장춘에서 심양가는 버쓰를 탓는데 흉측스럽게 생긴 놈 2놈이 중간에서 타더니 앞에서부터 자는 사람 주머니를 뒤진다. 오후3시쯤 아주 더운 날이어서 많이 잤다. 나는 맨 뒤쪽에 앉아 있는데 내 통역에게 머 저런 놈들이 있나 했더니 가만 있으란다 떠들면 크게 다친다고 하였고 버스 안은 쥐죽은드시 조용했다. 내 옆 옆의 자는 사람 앞주머니를 털어 유유히 앞쪽으로 가서 내렸다.

운전수도, 자지않고 있는 승객도, 말 한마디 없고 쥐 죽은드시 조용하던 버스안이 소란스러웠다 나는 궁금해서 “절마들 머라카노?” 했더니 어디에서는 어떻게 당했고, 저놈들은 여기서 자주 저렇게 한다는 둥 하며 버스 기사와 떠들어 댄다는 것이다. 파출소도 그 근처에는 없었나 싶었다.

그런 중국이었는데 그후 중국 남쪽에 가서 정착해서 살아보니 너무나 착하고 주어진 환경을 극복할려고 애쓰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20여평 작은 장식도 안 한집 월세 얻어서 3가구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도 보았고, 우리 협력업체 중에 2사람이 동업해서 작은 공장 만들어 20년째 30여명 종업원 대리고 운영하는 공장도 있었다.

한 사람은 외부일 또 한 사람은 내부일 하며 서로 믿고 사이좋게 운영하며 아들 대학 입학시험 합격 했다고 지인들 공장 사람들 함께 좀 큰 식당에서 회식도 하고 즐거워하고 축하해주고 하는 것도 보았다. 기차를 타고가면 만 2일 가야 하는 곳에서 온 농민공은 부모에게 자식 맡겨두고 2년 동안 돈만 보내고 가보지 못하고 살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그런 중국이 이제는 그들이 만든 제품이 세계 방방 곳곳에 팔려서 어떤 나라는 서민들 생필품 30% 이상을 쓰는 나라도 있고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이번 중국 국경절에 25만명 정도가 관광 겸 한국 문화를 즐기려 오는 나라가 되었다.

위 사진을 보면 어머니와 딸이 붕어빵이다. 중국은 처가 부모와 사는 부부가 많이 있다. 너무나 아름답고 즐거운 모습으로 공항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 국가는 많이 밉다. 중국은 남북한이 갈라져서 우리는 슬픔과 안타까움 속에서 지나지만 중국 정부는 그것으로 인한 즐거움을 만끽하며 지나고 있다.

요즈음 부쩍 미국과 대결하며 지나고 북쪽을 감싸고 돌며 지나고 있다. 또 한번 이야기하지만 중국은 우리 쪽으로 통일한국이 되어 긴 국경을 우리와 할까봐 겁나서 절대로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

또 북한의 핵은 중, 러,북, 연합의 힘으로 사용할 조짐도 배제 할수없다. 머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준수하고, 안 지키면 안될 것이라고? 턱도 없는 소리… 중국은 예! 우리 그렇게 할 것이다고 하지만 유엔의 결의는 준수 하는척 하지 실제로는 하지 않는다, 할것이다고 믿는다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과 접한 긴 국경 한끝은 단동과 신의주 동북쪽 끝은 훈춘과 나진 그 양쪽에 북한과 교역되는 각종 물자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없다고 보도되고있다. 그래서 석유, 석탄, 각종 생필품, 수입 수출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순진하다 하기사 순진 안 한들 무슨 수가 있나?

너무 답답하다.

 

 

노욕이 노인을 불행하게 하는 것 아닐까?

 

노욕이 노인을 불행하게 하는 것 아닐까?

세계 적으로 노인들이 가난하고 생명은 전보다 길어져서 늙은 몸으로 살기가 어렵다고 하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그 중에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 그런 노인이 가장 많은 나라라고 자주 말한다.

2013년 어느 통계에서 보니 지금 노인들이 겪고 있는 만성질환자가 66%정도이고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살수 있는 자들은 33%이다고 하는 통계를 보았고, OECD국가중에서 노인 빈곤율이 47%로 가장 높다는 2014년 통계도 보았다.

그것을 들여다 보면서 왜 이럴까하며 생각을 해보면 그 원인은 빠른 기간 중에 국가는 우선 먹는 것이라도 걱정 덜하고 국민들 살게 하겠다는 의욕으로 먹고 사는 정책으로 급급했지 국민들 노후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했고 국민 개개인들 또한 노후생활에 대한 내 나중에 늙을 때 살 걱정보다 우선 자식들 교육이 우선이었다.

그 결과 한국은 대학을 졸업한 국민이 세계에서 상위국가라고 하도록 되었다. 그로인해서 지금은 우리노동 인력은 고급화되었고 그 인력들로 1980년이후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여서 단기간에 개인소득은 3만여 달러의 국가로 지금 되었지만 쓰는 것 또한 그만큼 성장하여 실익 없는 나라가 되었다.

어느 자료를 보니 1954년에 노동자임금이 2만환었고 그 당시 쌀 가격이 80kg 한가마니 가격이 1만4천환이었다. 즉 한달 월급 받아서 쌀 한가니 사고 나면 6천환이 남는다는 시기도 있었다.

그때 지금 70세 노인은 12살이었다. 엥겔지수가 가장 높은 시대이고 먹는 것만 해결되면 다른 것에는 돈들 곳이 별로 없을 시대이다. 그후 10년이지나서부터 즉 25세 때부터 지금 노인들은 위에 말한 것처럼 정신 없이 일만 하였지 오늘처럼 늙었을 때의 대한 대비는 하지 못했는 세대들이다. 소처럼 일만 하고 서글픈 세대라고 할수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겨우 밥 안 굶을 정도가 되기는 90년대였는데 그때 그 사람들의 나이는 산업전선에서 퇴역할 나이 40대후반 50대가 되었다 그제사 노후생활에 대한 제도도 만들고 준비를 하였는데 때는 너무 늦었다. 그러니 노인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지금 노인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재산이 있다. 밥을 굶어본 쓰라렸던 그러나 참으며 살았는 재산이 있다. 조선시대 정다산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식들에게 보낸 서신에 보면 ‘절약과 근면’은 이세상 어느 재산보다도 큰 재산이 될 것이니 나는 너희들에게 그것을 주노라고 하였다.

나도 70이 훨신 넘은 늙은이다 우리에게는 요즈음 퇴역하는 세대들이 가지지 못한 돈 주고도 못사는 산 경험, 지금 생각하면 아득한 옛날 같은 밥 굶은 경험이 있다, 이 경험으로 살면 우리는 가난하지 않다.

우리가 그 동안 노력한 결과로 지금 우리의 자식들 40대 50대들은 어디에 가서도 뒤지지 않을 똑똑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노후가 우리만큼 불안하지 않게 된 것으로 만족하고 우리들은 지금의 생활로도 만족하다고 마음먹고 지나면 그리 불행하지 않다.

내 잘아는 한 친구가 살아가는 것을 소개한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데 차는 팔아버리고 전철을 타고 집은 전세로 살고 있다.

노인부부에게 국가에서 주는 기초연금 32만원 그리고 자기는 노인들이 하는 사회 봉사해서 20만원을벌고 자식 둘에게 한달에 20만원씩 받으니 모두 합하면 약 백 만원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아내는 마트며 재래시장에서 날아오는 전단지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할인하는 것 찾아서 생활 필수품을 사서 알뜰하게 사니 아내 또한 20만원정도 벌어드리는 것과 같으니 한 달에 백이십 만원 정도로 사니 가난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분의 말이 공감이 가고 너무 현명한 분 같아서 존경심이 나기도 하였다. 그분도 그 당시에 대학도 나왔고 좋은 직장도 다녔으며 사업도 하였으나 과욕으로 인해서 어렵게 되었으나 그로 인해서 욕심을 다 버리고 마음 내려놓으니 이렇게 편하게 지난다고 하였다.

사람에 따라 환경과 건강 등이 다르겠지만 70이넘은 노인이 아프면 건강공단에서 치료비 거의 부담해주고 일부만 내면 되고 심심하면 공짜 전철 타고 서울 근방에 다니면서 고궁 시가지 시장 등 사람 사는 것 구경하며 지나기도 하며 오래오래 살아야 되겠다는 욕심도 버리고 살면 그리 불행하지도 않다.

오래 사는것 말이 나왔으니 좀더 쓰겠다. 기계는 나쁜 곳 있으면 갈아 끼우고 좋은 윤활유로 기름칠 자주하고 환경 좋은 곳에서 쓰면 그 수명이 길다 사람도 그처럼 하면서 90살 백살까지 살려고 바둥바둥하는데 아무것 내가 도움 줄수도 없고 오히려 나로 인해서 불편을 느끼게 하는 기간을 연장하며 오래 오래 살고 싶어 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에 따라 삶의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삐치며 오래 살려고 애쓰지 말면 거기에 또한 가치가 있고 자기자신도 행복이 있을 수도 있다. 노욕이 노인들을 불행하게 한다고 여겨진다.

 

 

위블에서 첫글을 쓰면서.

위블에서 첫 글을 쓰면서.

우여 곡절 끝에 살았다 그러나 살길이 막막하네 위블 이라는 곳으로 왔는데 전에 살던 곳 보다는 낯설고 어려운 것이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도 하기 어렵고 가뜩이나 컴맹이 당최 이해가 잘 않되고 살아가기가 막막하다.

그러나 서로가 도와주면 살기야 하겠지만 많은 이웃들이 사라진 다른 세상에서 산 자의 마음이 내 잘못은 없는데도 미안 하기도 하다.

그러나 주변의 남 사정 나 몰라라 하고 활개치는 족속들 남의 글 출처도 밝히지 않고 수십편식 퍼다가 도배하는 족 속들 나날이 보고, 읽고 나서도 무엇을 보았는지 읽었는지 제목만 그럴싸하게 해 둔 내용은 없는 저질 포스트 하는 족속들이 하는 꼴 볼견들이 사라졌으니 개운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해서는 않될 일을 하면서도 당연한 것처럼 욕지거리를 하며 지나는 불한당들 때문에 애꿋게 욕을 많이 얻어먹으며 이 조치를 한 조선 닷컴에 감사들이고 싶다.

남이야 욕하던 죽던 말던 내게만 잘해주면 그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때 내가 해야 할 것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 다 반사다 그래 그렇구나 하고 용감히 물러서주는 멋진 아량을 베풀 때 그것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개중에 그런 멋진 분도 많이 보았다 나도 그 중에 끼여 볼려고 좀 늦게나마 “절 싫어 중 떠나는 마음” 이라는 글을 남기고 오래 전에 내 메일이 있는 네이버에 옮겨 간다고 갔으나 그 역시나 오래전에 만들어 두기만 하고 간혹 조선 블로그의 글을 통채로 “이 글은 조선 블로그에 있는 글” 입니다 하며 가져가기도 했던 곳이어서 인지 따뜻한 구석은 아무데도 없고 찬바람만 구석 구석이 나오는 곳 정 붙이기가 어려웠다.

어느날 조블에 와서 보니 이사 갔다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려 난감 하였더니 내 이메일에 위블로그로 등록을 할 생각이 있느냐? 하는 메일을 보고 아이고 이런 좋은 일이 하여 등록을 하였는데 이제 열어져서 이곳에서 이 글을 쓴다.

오랫동안 정 들었던 곳 특히 내게는 춥고 힘들었던 중국생활 때 나를 잡아준 조선 블로그다. 여기에서 말 알아 듣지 못하고 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씼을수 있었고 돈 한푼 나오지 않는데도 이것 하느라고 지루한 시간도 보내며 힘든 외국생활을 이겨내는데 많이 도와주었던 조블이었다.

그런 조블이 이제는 또 늙어 할일 없고 그러나 아직 마음은 살아서 팔팔한 나를 함께 해준다니 너무나 고맙다.

힘이 자라는 데까지 하고 싶은말 쓰고 싶은글 그리고 아름다운 경치도 정겨운 모습도 보고 보여주고 오래오래 할 것이다.

대게들 구면이지만 그래도 낯선 곳에서 다시 만났으니 우리 전보다 정겹게 많은 말들 하면서 서로 위로 하고 도울일 있으면 도우며 도움 받으며 살고 싶으다.

지금 우리주변은 많이 헝클어져있다. 잘나가던 수출은 줄어들었다고 하고 금년이 총선이 있다고 가뜩이나 미운 정치판이 지난해보다 더 미운 행위 하는 꼴을 또다시 많이 보아야 할 것이고, 청년들 일할 것 못찾아 웅성대는 안타까운 모습을 계속 보아야 할 것이고 미운 이웃나라들 설치는 모습을 또 보아야 할것이고, 그런 것들로 나라안이 더 살벌 해질 이때 우리 조선닷컴에 위블의 블로거들도 일익을 담당한다는 심정으로 올바른 생각으로 많이 활약하여 조금이라도 국가에 기여 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모습이고 살아가는 보람이 않을까 한다.

우리모두 이런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지나고, 글을 쓰고, 좋은 사회 만들기,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 할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블로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위블로그에 첫 글을 쓴다.

 

*컴 맹이 많이 더듬거리고 해멜 때 좀 도와주세요. 위블의 운영자님 그리고 회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