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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찬은 미물의 생명도 소중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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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명도 존귀한 것으로 여기고 일생을 살면 그에 상응하는 좋은 일들이 있다.아주오래전 젊을 때 아버지께서 추어탕을 자시고 싶어서 미꾸라지를 사오셨다. 시집 온지 얼마 안되었는 며느리에게 주시면서 “얘야 오늘 추어탕을 해먹자”고 하셨다.

아내는 내게와서 “이거 어쩌면 좋아요?” 하였다.시아버지께서 하자고 하시니 안 할수도 없고 또 아내는 할 줄도 몰랐다. 주변머리 없는 며느리는 시어머니께도 여쭐 만큼의 사이도 아니었다.

한번도 해보지 않았고 또 꼬물거리는 수많은 미꾸라지를 죽이는 것도 겁도 났을 것이다. 친정 어머니에게 물어 볼려니 그당시는 전화도 동내에 한 두집 정도 있었는데 그럴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간혹 안스럽게 여기는 이웃 분에게 물어보고 서툴게 하였다.

그후 얼마 안되어 방생하는 시기가 왔다. 아내는 그때 그것이 죄업이 되어 그 양 만큼을 시장에서 사서 동내 앞 내에서 방생을 하였다.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으로 유지되도록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노력했지만 여러 관습들을 보면 불교의식들이 깊숙이 박혀 그런 생활을 하면서 우리세대는 자랐다.

고사 지내는 것 그리고 명절 때의 의식들, 점을 보는 것 등 그러나 그것보다 생명에 대한 존귀한 사상은 불교의식 그대로 지키고 살았다. 불교를 생명 평화의 종교라고 한다. 출가자나 재가 수행자가 지켜야 할 첫째 계율이 ” 산 생명 함부로 죽이지 말아라.” 라는 계율 때문이다.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생명을 다루는 도덕심도 다르게 나타나게 되고 그사람 성격도 달라지고 삶이 또한 달라진다. 옛날에 바르게 살았는 할머니들은 개미를 밟아 죽여도 그날은 절에가서 불공을 드리지 않았고 절에 갔다가는 집으로 바로 왔지 중간에 어디 들리지도 않았다.

불교에서는 음력 정월에 방생법회를 갖는다. 정초에 죽을 목숨을 살려주어 일년 동안의 신수 평안을 기원하는 법회의식이 방생이다. 작은 미물의 생명을 많이 죽이면 살생의 업이 마음에 눈덩이처럼 쌓이게 된다. 많은 생명을 살려주거나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끝이 잘 풀린다고 믿고 지킬려고 하였다.

내 어릴 때는 나무를 태워서 밥도 짓고 난방도 했다. 나는 산골동내에 살아서 중학교 다닐 때 집에 오면 떌 나무를 뒷산에 가서 해 날랐다. 어머니는 좀 아껴 쓰시기도 했지만 금방 거덜나고 나는 친구들 몇하고 그런 일을 많이 했다. 그때 산에 가면 토끼, 뱀도 자주 보았고 개구리도 길에서 자주 밟히고 하였다.

그때 한 친구는 모질차게 그것들을 보며 잡아죽이기는 것을 즐겼다. 그때 나는 그것들이 안스러워 마음 졸이며 지났고 땔 나무하러 가서 소나무 중심 가지를 꺾어서 것 껍데기를 벗기고 가장안쪽의 연한 겁때기를 송기라고 즐겨먹었는데 그 소나무 중심 순 그것 하나 꺾어보지를 못했다 그것을 꺾어버리면 그 소나무는 바르게 자라지 못하고 볼품 없는 나무 화목이나 하는 잡목이 된다.

일생을 살아오며 작은 많은 생명을 잡아먹기도 했고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자신을 위해서 부득이한 것은 몰라도 하릴없이 함부로 죽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것들 많이 살려주기도 했다. 죽을 처지에 놓여있는 생명을 살려준 일이 더 진하게 가슴에 남아 있다.

작은 생명도 소홀히 하지 않고 방생도하면 마음이 행복이다 내가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사한 것을 보답하는 것이기도 하고 나에게 많은 것을 나날이 많이 주는 자연에 대한 은혜를 조금씩 갚아 나가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은 미물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 명심하고 아껴주면  유익하고 그 사람에게도 상응하는 대가가 있다.

낙엽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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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늦은 가을에 한동안 곱게물들어 예쁘던 잎들이 떨어져 내려 낙엽이 되어 나 딩굴고있다. 이 떨어진 낙엽이 나는 꽃보다 더 아름답다.그냥 무심코 쓸어버리는 것이 너무 아깝다. 꽃을보고 화무 10일홍이라고 하며 그 10일을 보면서 아름답다고하며 야단하였는데 가을에 곱게 물들어 수십일을 우리들 마음에 이 한해도 이제는 기우러져 가는구나, 곧 겨울이 되겠지 그리고 이한해는 다가고 …  하는 차분한 감정을 일으키게 하고, 지나온 한해를 되 세겨보게도 하는 마음을 일깨워 주는 낙엽이다.

그 낙엽들을 전에도 쓸었으니 그렇게 쓸어버리자 하며 쓸지말고 두고 그위를 밟으며 걸어보자. 요즈음 도심에도 나무를 많이 심어서 그렇게 삭막하지 않다. 한 여름에 푸르른 숲도 있고, 매미소리도 귀가 따갑게 들리고, 지금 같은 늦은 가을에는 떨어진 낙옆이 쌓여 보기만해도 운치가 있고,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그 위를 걸으면서 아득히 잊혀졌던 그 옛날 젊을 때 기분 좋았던 추억을 돌이켜 보기도 한다.

이제는 늦은 가을이라고 해야 하나 초겨울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두꺼운옷 깃을 여미고 목도리도 하고 다녀야 하는 날씨가 연속이다. 나무들도 성급한 놈들은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무성하던 잎을 다 내려놓고 앙상한 가지만으로 서있다. 산에는 물론 거리에도, 길섶에 낙엽이 깔려있다.

바람에 또르르 날려가기도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고 재롱스럽기도 하다. 아직은 독한 놈은 아름다운 색깔로 메달려 있기도 한 것도 있지만 그것들도 머지않아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집 주변에는 떨어진 낙엽을 열심히 매일매일 쓰는 분들이 있다. 청소하는 분들 그분들에게는 미운 낙엽이다. 주변을 깨끗이 하여야만 하는게 주어진 임무인데 당연히 쓸어야 한다.

어제는 이곳에서 중심길인데 인도에 늘어선 나무도 많은길에서 수북히 쌓여있는 낙엽을 밟으며 걸어보니 내 자신은 모습을 보지 못해서 잘 몰랐는데 저만치 한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운치가 있어 보인다. 일찍 떨어진 것들은 많이 밟혀 만신창이가 되었고 이번 추위에 떨어진 것들은 아직도 생생한 고운 색깔을 지니고 있다.

이제부터 생각을 바꾸어서 이낙엽을 꽃으로 볼것이다. 나무에 붙어있는 꽃 보다 덜 예쁘지도 않다 쌓여있는 낙엽은 꽃보다 더 예뻐 보인다. 그 위를 밟고 지날려니 내 마음이 미안해 질려고 하는 이런 마음은 나 뿐일까? 낙엽을 쓰레기로 여기고 쓸지 말고 그냥 두고 그 위를 걸어가고 우리와 함께 이 가을을 보내자 그것들이 있다고 나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연이 순리로 쏟아내는 모든 것은 모두가 하나같이 예쁘고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것은 없다. 거리에도 우리가 사는 동내에도 온통 화학물질이 범벅이 되어 숨쉬는 공기도 마시는 물도, 씻는 물마저 모두가 오염되어 있는데 자연이 준 낙엽이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중화시킬 것이다는 생각을 해 본다. 쌓여 있을수록 운치도 있지만 위생상에도 좋은 면이 많지 해로울 것은 없지 싶으다.

한 겨울까지 있어서 썩고 거름이 되도록 두면 나쁘겠지만 느긋하게 두었다가 주변에 나무가 나목(裸木)이 다 되고 이 가을이 다 가고 한겨울 다가올 때 치우자.우리 모두 생각을 그렇게 바꾸어보자.

‘간밤에 불던 바람 만정 도화 다 지거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려고 하는구나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 하리요’ 하는 선우협이라는 분의 낙엽에 대한 시가 갑자기 떠오른다. 낙화와 낙엽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둘다 나무에서 내려온 것이고 신이 만든 창조물들인 자연의 생태에서 볼수 있는 일부분이다.

요즈음처럼 보이는 곳마다 시멘트 숲 그리고 광물질들을 태우고 사는 도심에서 낙엽도 꽃잎도 쓰레기로 여기지 않을 여유로움을 가질 수는 없을까? 쌓여있는 길 위를 천천히 걸으며 이 도심에서도 자연의 깊은 품속으로 안겨보는 것도 운치있고 멋스러움이 아닐까?

조금 내렸다고 쓸어버리고 또 쓸어버리고 너무나 삭막하고 어찌 보면 좀 무식하게 여겨지기도 하다. 생각을 바꾸어 낙엽도 꽃으로 보고 이 가을을 살것이다.

 

가난했던 시절 흔하게 보았던 반딧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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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시절 흔하게 보았던 반딧불이.

어릴 때 밤에는 모기도 많았다. *멍석이라는 깔 자리를 마당에 깔고 앉기도 하고 홑이불을 덥고 누워서 쉬면서 멍석 옆 마당에는 모기를 쫓아버리기 위해서 보리껍데기나, 왕겨, 덜 마른 들풀 등에 불을 붙여두면 쉬엄쉬엄 타면서 연기를 내 품는다 모기는 그 연기가 싫어서 달아나는 원리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모기란 놈이 쳐들어와서 더워서 벗은 다리나 얼굴이 물리기도 하였다. 보통 두 세곳에 물려도 예사로 여기고 가려워서 침을 바르며 긁적거리며 지나다가 보면 저절로 가려움이 사라진다.ㅎ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면 별이 어쩌면 그렇게도 많고 아름다울까 그 모습은 60년이지난 지금도 우리주변 어느 곳에서 보아도 보이지 않는 도시에 살고 있어서 그 아름다운 모습은 볼수가 없지만 잊지 않고 눈에 선하다.

지난해가을 아이들과 강원도 삼양목장을 갔는데 그날 밤 콘도에서 잘 때 밖앝에 나와서 하늘을 보니 많은 별들이 총총히 박힌 것을 보았으나 어릴 때만큼 아름답지는 않더라.

그뿐이 아니다 가끔씩 반딧불이가 멍석 위를 휙 지나간다 그 반딧불이는 숫컷 몸 자체에서 발광이 되어 빛이 나도록 되어있다. 네이버에 두산백과에 보니 개똥벌레라고도 하는 곤충인데 몸 색갈은 검은색이고 크기는 1cm정도인데 빛이 나는 곳은 배면2~3째마디에 있다고 하고 종류에 따라서 깜박이는 리듬이 다르고 그것을 보고 같은 종류의 암컷이 찾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들의 삶 과정을 보니 너무나 가엽어 불쌍하다. 어른이 되고2~3일 뒤에 짝짓기를 하면 4~5일뒤 밤에 300~500개정도의 알을 이끼위에 낳고 20~30일만에 부화가 되고 그 애벌레는 그 이듬해 4월까지 250일동안 6회에걸쳐 허물을 벗으며 자란다고 한다.

그 긴 기간동안 수중생활을 하며 다슬기를 먹이로 15mm 정도 자라서 땅 위로 나와서 번대기가 되어 땅속에서 살고 6월경에 깨어나 어른 반딧불이가 되어 빛을 내며 밤에 활동한다고 한다.

알을 낳고는 12일정도 살다가 죽는다 그러니까 알에서부터 태어나서 활동하는 우리가 보는 기간은 기껏해야 20일이고 기나긴 기간 260여일은 우리가 볼수 없는 인고의 세월 동안 변하고 크고 허물 벗기를 반복하며 살았는 것이다. 그냥 반딧불이는 빛을 내는 작은 곤충으로 알았는데 이제 이런 글을 쓰고 싶어 자료를 뒤적이다가보니 그토록 고달픈 그들의 일생을 알게 되었다.

가난했던 시절에 그 흔하게 보았던 아름다운 모습의 반딧불이가 요즈음 볼수 없게 된 원인은 그렇게 커가는 과정 동안의 곳곳에 환경이 그들이 번식하기에는 불편한 곳이 많아져서 이제는 주변에서는 볼수 없고 아주 오염이 덜 된 곳 시골 벽지에는 아직도 간혹 보인다고 한다.

생물들이 하나씩 사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도 살아가기가 버거워지는 곳이다. 편하게 즐겁게 살려고 애쓰지만 세월이지날수록 생존이 버겁고 살기가 힘들어지는 또 다른 우리를 어렵게하는 것들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은 전남 무주군 설천면 남대천 부근에 가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볼수 있다고 한다.

*멍석은 볏짚으로 가는 새끼를 꼬아서 씨줄로 하고 날줄은 집을 틀어가면서 만들었으며 이것은 우리조상들이 1960년대 이전 약1000여년 동안 길흉사시에도 요긴하게 쓰였으며 여름 밤 더위를 식히고 쉴수있는 야외용 앉아서 쉴 자리다 지금은 골동품점에서 간혹 볼수있다. (짚으로 만든 가로3m세로5m 뚜께 1cm정도의 깔자리.)

식물들의 피나는 생존 경쟁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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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피나는 생존 경쟁을 보면서.

이제 한여름이 되었다 지난겨울 죽은 듯이 모든 생물이 자취를 감추었던 맨땅으로 보이던 땅에서 온갖 풀들이 자라서 무성하더니 지금은 우거져서 무리 지어 위용을 자랑한다.

길가 작은 공원 긴 의자에 앉아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할일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보니 저만치 앞에 한 무리 흰 꽃 무리들을 보았다 크로바 토끼풀의 무리이다. 면적이 약 반 평정도 자기들이 차지하고 다른 풀들은 없고 그 영역에는 순수히 자기들만이 나도 꽃도 있다고 하는 것 같이 하나같이 가는 꽃대를 높이 치켜들고 그 꼭대기에 큰 구슬처럼 굵기의 흰 꽃을 피웠다.

바람이 부니 무리가 통째로 파도처럼 흔들리고 그것도 꽃이라고 독특한 종종 맡아본 그 어떤 향수 보다 다른 독특한 자꾸 맡고 싶은 상큼한 향기가 있다. 그전에는 나도 크로바 꽃 향기가 이렇게 좋은 줄을 몰랐다.

어릴 때 여자아이들이 꽃과 꽃을 엮어 긴 줄기를 서로 묶어서 꽃 시계도 만들었고 반지도 만들어서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내와 자주 만나서 놀면서 그것을 내게 주었을 때 그것을 받고 그 귀엽고 착한 여자아이가 나를 좋아하는 줄 여겨졌고 자꾸 보고 싶기도 하였고 소꿉놀이도 함께하고 하였다.

크로바 일명 토끼풀 그 잎이 보통 세 잎이나 네 잎을 발견하고 그것을 가지면 행운이 온다고 하고 그래서 크로바 밭을 보면 할일 없는 이들 그 네잎 크로바 찾느라고 장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 크로바 무리 속에는 다른 풀이 없다 간혹 있어도 치여서 볼품이 없고 곧 죽을 것 같이 비실비실하다.

강하기로 알려진 잔디도 그 옆에는 있으나 그 무리 속에 있는 것은 잎이 가늘고 죽기 직전인 것 같이 보인다. 그 옆을 보니 크로바와 맞닿아서 서로 큰 싸움을 하고 있고 그곳에는 잔디만 푸른 모습을 뽑내며 그들만이 또 무리지어 있다 여기는 내 영역이다고 소리는 없으나 분명히 고함 지르고 있다.

식물의 세계에서도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자기 종족만 살고 다른 침범 자들을 못살게 만들고있다. 활엽수속에 침엽수는 햇빛을 못 받아서 고사하고 속성수 속에 일반 식물들은 치여서 죽는다 그리고 종족 번식의 욕망도 치열하다 자기 종족만 무리 지어서 번창 할려고 여타 놈들은 발도 못 부치게 하는 씨를 많이 만들어서 또는 뿌리로 주변에 모두 자가 영역으로 만들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나 나름대로 관찰을 해보니 바로 붙은 잔디밭을 토끼풀들이 맹렬히 처 들어가서 조금씩 조금씩 자기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토끼풀이 잔디를 이기고 있다.

저 만치에는 민들레가 보잘것 없는 잎 몇 개이지만 노란 꽃을 귀엽게 피우고 있다 그래 저놈들도 저 꽃이 지고 나면 많은 씨를 덮어쓰고 씨를 영글게 만들고 날개는 가볍게 하여 이곳 저곳으로 멀리 멀리 날려보낸다 바람에 잘 날아가서 애미가 있던 곳 보다 더 비옥한 땅에 가서 잘 자라거라….

위를 처다 보니 나에게 그늘을 주고 있던 나무 봄에 온통 화사한 꽃을 피워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던 벗꽃 나무에서 염주 알 굵기의 시커먼 열매가 주렁 주렁 달렸다. 그러고 보니 땅 바닥는 열매가 떨어져서 주변의 사람들이 밟아서 주변이 멍물 덩어리가 되어있고 사람들 발길에 밟혀 씨가 하얗게 나 딩굴고있다.

식물들의 치열한 자기영역 확보 그리고 종족 늘리기를 보면서 이지구상에 모든 생물은 끼리끼리 뭉처야 산다는 원리를 잘알고 그렇게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