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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는 서양 음식이 아니다.

우리나라우유의역사는삼국시대부터.

우유는서양에서전래된음식으로여기는데그렇지않다

우리나라백제사람들이즐겨마셨고고려때는크림치즈도있었다고한다.

7세기중엽백제사람복상(福常)이일본으로건너가서고도꾸(孝德)천황에게우유를짜바쳤더니매우기뻐하였고대대로우유짜는일을궁중에서하게하였다고일본의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기록이있다고하였다.백제사람들은우유짜는법그리고먹도록만들어마셨다고하고복상은선나(善那)라고불린다.

그러나그때는귀한음식으로왕이나귀족들만먹었다.

고려때는유우소(乳牛所)라는관청을두고소젖을짰다우유를이용한음식도개발하여다양하였다.

고려명종때순우가왕에게근래팔관회로인하여궁중에서약을달이는데쓰기위하여의관들이서울근처의소의젖을짜서달여수(酉+禾)를만드는데그로인해암소와송아지가다상합니다고하여왕이중지하여백성들이기뻐하였다고고려사에기록되어있다.

1385년에우왕이유우소를지나다가야윈소를보고락(酪)을바치지말라고도하였다.

수와락은모두우유를가공한음식이다.수는요즈음크림이고락은치즈와비슷한것이다.

조선시대에도타락죽(駝酪粥)이라고쌀을맷돌에갈아서잣을넣고쑤다가우유를넣고좀더끓이는것이타락죽인데왕에게드렸다고하는것들이1809년빙허각(憑虛閣)이씨가쓴규합총서(閨閤叢書)에쓰여있고세시풍속집동국세시기에내의원에서락을만들어왕과늙은신하들에게주었다는기록이있다.

동의보감에앵도창이라고하는목위에앵두만한크기의부스럼이생기면우유를마시면사라진다고하고증류초본에는대맥초한근과백복령가루4냥을생우유에개서먹으면백일동안배가고프지않아구황에도움이된다고우유의영양성과약재성을알리기도하였다.

과장이너무심하다백일동안배가안고파.ㅎㅎ

그런데문제는우유를생산하는데문제가있었다.

요즈음처럼젖소가있지않았고송아지를낳은암소의젖을빼았는것이기에송아지가삐쩍말라서큰문제가생겼다.

당시는소를키우는목적이농사를짓기위하여였는데송아지를굶기면않되었다이런폐단을막기위해중종은우유죽이폐단이다라고하며우유죽먹는것을금지했다.

영조는우유짜는것분만아니라아예소를잡는것도금지해서한동안소고기를먹지못하기도하였다.

또우유때문에큰봉변을당한사람도있었다명종의외척으로권력을행사하던윤원형은임금만먹을수있는우유죽만드는기구를집으로가져와서우유죽을만들어처자식과첩에게까지먹였다가신하들의상소로귀양갈뻔했다고종일년1901신록을보면우유를담당했던봉진관을제때우유를진상하지못했다고직무유기로면직하고우유감독관였던검독은사법부로이송해서징계하려다가고종이용서하여무마된적도있었다고하였다.

이와같이생산하여여러방법의요리를해서먹었다.

그러나우유하면우리는서양인들이들여온음식으로알고있다다만젖을대량으로만들어주는우유소홀스타인같은소가서양에서그후에들어와서대중화되기는그후이지만가공술의역사는우리나라에도오래전부터개발되었고우유를먹는것또한오래다는것이증명된다.

콩으로두부를하고청국장을만들고등등우리조상들이식품가공에도뛰어난지혜를엿보이는기사들이다.

지금은 사라져가는 숯의 다양한 용도

지금은사라져가는숯의다양한용도

숯은약6000년전부터인류가사용했고철기시대에는철을녹여농사나수렵도구를만들때썻다는기록이있다우리나라에는약2600여년전부터쓴것으로추정된다고한다.

온돌문화에서나온숯은지체높은집에서는취사약달이기다림질등여러방면으로쓰여서숯을저장해두는숯창고가있었다고한다.

서민들도난방취사등땔감에서마지막에나온불덩어리를물을뿌려서숯으로만들어서여러곳에썼다.

신라시대에큰종금은제품을만들때특수한나무로구운숯을사용했다고하고경국대전에보면각고을향리는차례로서울로가서각관사에배정된목탄과땔감을준비하라고하였다고한다예전부터숯은단단한참나무숯을참숯이라고제일좋은것으로여겼고굽는온도에따라600도가마에구운것은흑탄1000도에서구운것은백탄이라고하고흑탄은공업용으로백탄은연료용숯불구이로쓰였고소나무로구운숯은약으로또식용으로쓰기도하였다고한다.

내어릴때어른들이일하시면서’석탄백탄타는데연기만솔솔나고요여내의가슴에는….’하는노래를흥얼거리는것을듣기도했다.

숯은그용도가다양하였다

귀신을쫓아보내는물건이다고여기고정월보름다음날은귀신이성한날이라고아이들에게뽕나무를태운숯을가루로만들어서무명천으로싸서심지를넣고불을붙여서빙빙돌리는쥐불놀이를하면탁탁불꽃이튀는것을보면귀신이달아난다고여겼다.

그당시는모든병은귀신이붙어서아프다고여겨서그렇게하였다고한다.

또아기가태어나면금즐을쳤는데거기에도숯을꽂았다.

또숯은공동우물의바닥에깔고방안에도숯주머니를두었다.

숯이왜이렇게많이썼으며무슨성분이있는지보니숯은나무를태워서만든탄소덩어리다탄소가85%미내랄이10%정도차지한다고한다.

숯은그안에천분의1mm되는수없이많은구멍을가지고있다이작은구멍을통해어떤물질에서산소를때어내거나전자를제공하는작용을하는환원제역할을하는물질이다.

녹슨철산화철을숯과함께가열하면환원제인숯으로인해다시철로변해지고탄소가주변의산소공급을차단시켜부패(산화)를방지하는역할을한다즉방부제역할을한다는말이다.

인체에해가되는것이아니고무공해천연방부제다음식과함께두면음식을상하지않게해주고그래서옛날에음식을두는광에는숯을함께넣어지금냉장고역할을하게하였다고한다.

1972년중국호남성장사시마왕퇴고분에서발견된시체는약2500년전에죽은시신으로밝혀졌는데썩지않았고몇일전에죽은사람의모습이였고더욱놀라운것은시체의내장에서오이씨앗이100여개가발견되었는데싺이텃다고한다.

그런데그시체의무덤위에는약5톤가량의숯이덮여있었다그리고그위에진흙과석회가덮여있었는데숯의작용으로그렇다고한다.

우리나라도문헌에보면고려시대와조선시대에고관이나왕실의장례때묘자리옆에숯을구워그것을무덤에넣었다는기록이있다.

또우물에숯을넣으면물맛이단맛이나고숯이가지고있는미내랄때문에맛이좋고미세한구멍이더러운물질을빨아들여많이사용하였고공기청정기역할요즈음전자파때문에말이많은데전자파를흡수하기도하고냄새와세균을빨리들이기때문에신발장냉장고화장실등에도유용하게쓰면좋다.

방안에두면습도조절이되어자고나면몸이가뿐해지고숯가루를종이에싸서베개에넣어두면숙면을취할수있다.

해인사팔만대장경이잘보존되는것은해인사장경각지하에다량의소금과숯이묻혀있다고한다.

또대장염이나위괘양숙변제거등에좋다고숯가루를타서마시거나상처부위에붙이면통증이나염증을완화시키고한다고하여질병에도쓰인다.

장담글때금줄에도반드시꽂아둔다그렇게유용하게썻던숯인데요즈음은전기다리미정수기냉장고가스전기가습기등등너무나쓰기편한생활용품들이많이생겼고숯불구이집에도등겨로만든열탄을쓰고거이사라져가고있다많이안타운일이다.

그렇지만강원도두매산골에가면숯의정갈함과조상님들의얼을이어가기위해서숯을굽는이들의고마운노력이아직은있다그러나그것도곧사라질것같다.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한지(韓紙).

우리민족의얼이담긴한지(韓紙)

(紙)천년견(絹)오백년,종이는천년가고비단은오백년간다.

한지의생명력을강조하는말이다.그언젠가한때는‘한(韓)브랜드화’6대품목,한글한식한복한옥한국음악에한지를포함한여섯가지의장점을살려서국가브랜드화하겠다고하기도하였다.

그중에한지즉창호지에대한내어릴때의기억을더듬어본다

한지장판위에서태어나서창호지와한지로바른벽지속에서살았다.

내어릴때는온돌방바닥에한지를바르고그위에들기름을먹여서닦으면반질반질한바닥이되고모든문은한지를발랐다.

나의증조할아버지는한지로만든책을읽었고,한지위에글을써서벼슬을하셨다.

그당시조선시대에는한지에쓰인어명은국법이였고사람의생사를갈랐다.

몇겹한지로만든갑옷은화살도막아냈다.한지에쓰인불경은평화를전달했고인간내면을가다듬었다.

집과땅문서도한지로하였고한때화폐에도쓰였다.

족보공문서에쓰였고복사지로도사군자화초를그리는화선지연하장청첩장부고또한지를겹겹이붙여서만드는지함등공예품도또돌돌말아서여러겹말면질긴줄도만들어썼다.

중국등외국과의외교문서에서도쓰였다지식을전파하고생활을윤택하게만드는모든곳에쓰였다.

책장·장농·함·반짇고리·부채같은생활용품도한지를겹겹이발라서만들어썼고좀이나벌레가먹지않게옷을싸두는데도썼다.

헌책으론끈을꼬아표주박,바구니,소반,쌈지,단지,방석,필통,자리깔개,화살통등두루만들었다.

가난한이들은겨울누비옷에한지를넣어추위를막았다고도한다.

또있다삶의마지막에수의를한지에싸두기도했고보통사람은염도한지로했다.

그렇게부자와서민가릴것없이모두가여러곳에썼다.

그러나무엇보다도가장널리그리고요긴하게쓰인곳은가난한서민의오두막집에서부터고관대작그리고왕실에서도창문에발라서은은한광선을들어오게하였고철따라냉온기를유지하게해주며방안습도조절도해준우리생활깁숙히자리했던그래서일명창호지라고부르기도하였다.

한지가우리나라에들어온것은고구려소수림왕때서기372년불교전래와함께들어왔다고한다.

한지로된오래된자료는신라시대무구정광다라니경으로서기751년이전것으로추정된다고한다.

고려인종23년에왕명으로닥나무를심기를장려했고조선시대세조12년에는조지서(造紙署)를설립하여한지생산에힘을썼다.

조선시대는한지제조업이국가기간산업으로육성하고수공업분야에높은비중을두었다.

내어릴때까지한지는우리문화의바탕이자필수품이었다.

그러나물밀듯이밀려온서양문화로종이의수요가크게늘어나고현대인쇄술의발달로그에맞는매끄러운종이가필요해서펄프로만든종이를대량생산해서쓰고있다.

그러나한지에비하면질기기도떨어지고따뜻한촉감도비교되지않으나원재료구입과제조공법의어려움등으로질기고방음방습의효과있는한지는밀려나서이제는명맥잇기가바쁘게되어있다.

한복이양복에밀려나서명절때나한번씩사치로입어보고토종가옥이불편하여구경거리로보여주기만하는빈건물로간혹남아있고아름다운충효사상도등등세월이갈수록우리민족의얼이사라져가고있다.

한지도멀지않아서보기조차어려워질것이다.

사라져 가는 옹기의 과학적인 힘.

*이미지자료네이버에서

사라져가는옹기의과학적인힘.

우리나라에서옹기가처음사용되기는기원전4,5천년정도가될것이다고한다.

옹기는질그릇과오지그릇으로나눈다.

진흙만으로초벌구이한질그릇은선사시대부터썼으며자연의유약인잿물을입혀구운오지그릇은가야시대와신라초기부터사용되었다고한다.

조선시대에는서울과지방에이름난옹기장이가100여명정도있었다고한다.

그러나지금옹기장이의수는10명이내정도로겨우명맥만이어가고있다고한다.

옹기를빚는흙은한곳에흙으로하는것이아니고흙끼리궁합을맞추기위해서몇가지흙을썪어야좋은옹기가만들어진다고한다.

대장생질꾼뒷일꾼등3명이일을분담해서생질꾼은흙을날라다주고뒷일꾼은생질꾼이날라다준흙을가래를만들고유약을입히는일을한다.

대장은흙가래를받아서물레에서그릇빚는일을하는사람이다대장은물레에다흙을얹고그릇을빚어건조장으로보내어져말린후잿물을입힌다.

잿물은보통철분이섞인약토와나뭇재를1대1로썩어체에걸러서사용한다.

그렇게유약을먹인다음손가락으로무늬를넣고몇일씩말린다말린옹기는가마에넣고한꺼번에수천개씩가마속에재여서불을땐다.

그때나무는상수리나무와소나무를주로쓴다고한다.

처음3일은약하게5~7일째는밤새도록불을때며옹기가노릇하게굽혀지는8일째는느슨하게땐다마지막에는아궁이를막고너구리가마옆구리에난창으로창불을하루쯤땐다그리고는몇일그냥두었다가식은후에꺼낸다.

옹기를빚은흙은작은모래알갱이가수없이섞여있다.

유약도부엽토의일종인약토와재로만들기때문에가마안에서고열로구어지는동안표면에미세한숨구멍이생긴다.

이숨구멍을통해노폐물을박으로내보내고숨을쉰다안에담가둔김치나된장등이잘삭이고발효되는역할을하게하는것이다.

옹기는마치생명체와같다제몸속에습기가있으면숨을내쉬어그것을밖으로뿜어내고부족하면들이마셔습기를조절한다.

참으로신비한능력을갖고있는그릇이다예전에할머니와어머니가아침저녁으로항아리를닦아주던것도호흡하기를도와주는것이아니였을까한다.

그런옹기가재료에따라서만들기에따라서우수하게도나쁘게도되었다.

또어느계절에구웠는가에따라다르다고한다.

오뉴월에구운독은쉰독이라하여값이싸고쉰독에음식을담아두면쉽게썪고나쁘다.

장마철이니찰흙으로빚어만든옹기가잘마르지않아쎈불을때도옳지않다겨울에구운독을이른봄에구입하는것이가장좋다고하였다.

독을살때는모양도보고사야하지만두둘겨소리도들어보고색갈도살폈다.

맑은쇳소리가나야하고색갈도노르므래하면서붉으스름한것이최고로쳤다.

그러나19세기말엽광명단이라는화학적으로만든재료가생겨그것을유약에썪어쓰면독이번들거리고화려하였다고한다.

그러나독이스며들어바람구멍을막아버리고광명단에든납성분이적은양이지만산과열에약해서김치나간장등을오래담아두었다가그것을사람이먹으면해롭다그러나업자들은그것을쓰면연료비가절감되고때깔이좋아즐겨썼다.

그후옹기가스테인리스프라스틱등그릇들이가볍고쓰기편한그릇들이나왔고잘깨어지고둔탁한옹기가뒤로밀렸다주거공간이아파트생활이되엇는것도옹기가푸대접받는요인이되었다.

요즈음새삼세계에서옹기에과학적인성능생명에그릇이라고찬사들을하지만된장만드는공장에서김치만드는공장에서대량으로만들어져그것을사먹는시대가되어옹기가설자리는자꾸없어져가고있다.

얼마전에어느매체에서보니옹기도이제는장인의정성들여만든것이아니고흙반죽그리고만드는것등모두기계로만들고모양도예전것보다못한것같고값도다른그릇들보다엄청비싸서사쓰기가더어려워지는것아닌가한다.

역사적인민족의얼이담긴그리고과학적인그릇인데사라지지는말았으면하는데.

원 적외선을 내 뿜는다는 황토.

*60년전에만해도우리는위와같은곳에서황토집에흙길을밟으며흙먼지속에서살았습니다.

가난하였지만마음은여유로웠고불행한줄알았던그때생각이지금보니그것이아닌것같습니다.

원적외선을내뿜는다는황토.

황토로항아리를만들어물을담아두면물이변하지않고오래간다고하고황토를보자기에넣어물속에넣어두면지장수가된다고한다.

예전에그장수에갖태어난아기를씻기면태열이라는것이깨끗이사라지고여름내내땀띠한번나지않는다고한다.

또채소를지장수에10여분담가두었다가씻으면농약찌꺼기가없어지고쌀을씻고밥을하면흙에섞인원적외선때문에밥맛이좋아진다.

예전에유명한스님들이기나긴참선중에지장토라고흙을먹기도하였다고한다.

또옛날에배탈이나면황토물을마셨고독충에물린자리에도황토를발라독을뺏다.

황토에서나온원적외선은태양광선이내뿜는방사선액스광선자외선가시광선적외선마이크로파전파가운데적외선에속하는광선의하나다.

내어릴때실지로부엌에는물독이부뚜막높이로묻혀있었고몸이가려우면황토물로씼었고그때집은하나같이요즈음씨멘트쓸곳에모두황토를썼다.

원적외선이나와서인지는몰라도황토냄세를맡으면기분좋은향기가나고코속이시원했다또황토때문인지는몰라도빈대벼룩에게뜯기면서그놈들을잡으면서자랐다.

원적외선은인체의독소를없애주고곰팡이및세균에대해항균작용을한다.

황토속에는원적외선이다량함유되어있다예전에그황토를집짓는데많이썼다.

물론시멘트나벽돌등이없으니그럴수도있었겠지만우리조상들은많은종류의흙중에주로황토를썼다.

초가집지붕속에기와지붕속에도벽에도방바닥에도또는토담집은모두황토중간에약간의돌을넣어지었다황토는열기와냉기를차단해주는효과도컷다.

황토의집에서는가습기가필요없고저절로습도조절을황토가해주었다.

황토의미립자틈속으로바람도들어와환풍기구실도해준다창을열어놓지않아도서서히환기가된다.

지붕벽구들등에쓰는황토속에는반드시볏짚을썰어서함께버물러서썼다그래서황토속에카타라제라는효소가볏짚속에있는아스파가기라스라는성분과결합하여인체에노화원인이되는체내과산화지질의분해를돕는다고한다.

그런데그황토중에도가장좋은황토는태양을먼저쪼이는곳동쪽황토와지는서쪽황토의오래묵은것이가장좋다고한다.

그황토를가저와서썼고음식을장만하는부엌바닥에도깔고부뚜막은물론물을길러와서담아두는물독옆에도반드시황토를붙였다.

우리조상님들의황토사랑은대단하였다.

그러던황토대신에요즈음은가는곳보이는곳마다씨멘트석유화학부산물로길바닥건축물집안에가구들도원목은거의없고나무를가루로만들어접착제와버물러압축한판데기를쓴다.

그외벽지방바닥어느것하나예전에쓰던천연재료로된것은없다.

모두화학가공물로만들어진속에살다가보니사람도자연에서탄생된동물인데그환경이달라져서그것에면역을길들어질려고하나이기지못해서피부가가렵고이상한병들이창궐하고많이어렵다.

드디어요즈음이런저런연구결과시멘트석유화학제품등에서나오는여러독성으로인해서습도조절등인체에나쁜영향으로인해서이다고알려지고새삼황토에대한여러장점이알려져서시골에가서황토로지은집에아예사는분도있고도시에도황토방이라고만들어서즐겨목욕을하면서황토맛사지도하고황토에대해서새삼관심을갖고가까이할려고하는사람들이늘어나고있다.

어느매체에서보니아이들이알레르기성피부염때문에고생하다가우연히시골로가게되어간김에흙을많이사용한한옥을지어서생활을했더니모두가아름답고건강한피부가되었고자연과가까이살고있으니행복하다고자랑하는것을보았다.

자료를얻을려고네이버에찾으니의외로황토집을지어주는업체도있고많은사람들이지어서살고있다.

이제다시예전으로돌아갈수는없겠지만황토의효능이이토록있고조상님들이재료없어서쓴것만은아니다는것을알고친환경쪽으로살려고노력해야할것같은시점이다.

그러나이제우리들의생활이그쪽으로돌아가기에는너무나먼아득히보이는강건너까지와버렸다.

신비로운 된장, 날것으로 먹어야 된다고.

신비로운된장,날것으로먹어야된다고.

서양사람들은우리나라토종된장을불결하기짝이없는음식이라고여길것이다.

곰팡이가하얗게피어있는매주를또그냄새를맡으면기겁을한다그것으로만든된장비위생적인식품이라며비난한다고한다.

그들의음식중에도발효음식으로요구르트치즈등동물성식품이있다.

우리는콩이나엿기름등을이용한순식물성재료로만든발효음식이있다.

우리김치는우리음식중에식물로만든대표적이발효식품이기도하다.

우리나라된장이휼륭한음식이라는것이점점증명되어서암을예방하고노화방지하고죽어가는사람까지살리는효험까지지닌치료음식이라고도하고있다.

몇해전에된장이피가굳는것을막아준다는것이밝혀졌다생명공학연구소김승호박사연구팀이지혈제를개발하는과정에서우연히발견했다고한다.

혈관내에혈전이형성되면영양소와산소공급을방해해서뇌혈전증이나뇌출혈등을일으키게된다그런데된장속에바실루스균이특수한단백질을분비해서혈전덩어리를잘게부순다는사실을알아냈다된장을많이먹으면뇌졸증이나뇌출혈등혈액순환장애로인한질병을충분히예방할수있다는말이다그런데이바실루스균은열을가하면파괴되기때문에날로먹는게가장좋다고한다.

된장찌개를끓일때도5분을넘기는것은아무효험이없다고한다.

두부와같이넣어한소끔끊어오르면바로먹어야한다.

날된장이좀짜다싶으면양파다진것과멸치가루를섞어서날로먹으면좋다고한다.

고추장을약간섞어서밥과같이먹으면먹을만하다.

된장을담글때콩이제일중요하다.

콩도여러가지가있으나다른콩은안되고백태로메주를쑤어야한다.

우리조상들은왜콩으로매주를쑤었을까여기는이유가있다콩은식물성단백질의으뜸으로불리울만큼영양가치가있는것도이유지만콩은우주원리를따르는곡식이기때문에사람몸에좋다는것이다.

콩은음과양이조화를이루는식품이다콩에불을가하면콩은콩기름때문에불에타서하늘로올라가버린다반대로콩에다물을주면콩나물이되어아래로내려간다즉음양운동을하는물질이다콩을날것으로먹으면설사를하고볶은콩은고소하긴해도끼니가될수는없고콩나물도삶거나국을끊여먹지만그것도그렇다.

그런데매주는콩을삶아서짓이겨만든다즉물과불을동시에더해서음양이합해진종합화된중성이된식품이다그래서만들어진된장이야말로인간에게가장이로운음식이다.

우리조상들은이런것을터득해서모든음식에조금씩된장이다들어가게만들어서밥과함께먹어체력에도움되게하였다.

된장은계란이반쯤뜰정도의소금물에매주를넣고담군지40일에서60일정도숙성기간이지나매주와즙액을분리한다즉장을뜬다고말한다.

간장과된장이이렇게갈라진다간장을뜨고남은된장은약간의소금을뿌린뒤약두달정도매일아침에뚜껑을열고저녁에덮는볕쬐기를한뒤뚜껑을닫아놓고그다음해부터먹으면가장맛있는된장이된다고한다.

즉일년정도묵혀서먹으면좋다는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장담그기역사는2000년이넘는다고한다문헌상에서확인할수있는것은7세기말신라신문왕3년경이라고한다.

쌀과보리가주식이었던우리민족은부족한단백질특히필수아미노산을보충하기위해일찍부터콩을가공한음식을개발했는것아닌가한다.

지형상으로목축업이발달할수도없었고생선류도내륙지방에는귀했다그리하여콩을다양하게가공해서먹었는매우과학적인것같다.

통도사된장은조선시대중엽부터스님들의부식으로전승된것으로그맛이특이했다고한다.

각가정에도우리어릴때만해도설이지나고날씨가조금따뜻해지면집마다장담그기를정성들여하였다.

그러나아파트가보급되고핵가족시대가되어가면서이제는집집마다된장맛이똑같아져버렸다.

공장에서나온된장을사먹고우리생활에장독대가사라진지오래다.

물론어렵겠지만시장에가면매주를팔고있는데작은항아리하나사서내가족이먹는데정성들여한번공부삼아담구어보는것을권해본다.

제아내는그렇게해서아이들과나누어먹고있다.

지금생각해보니이렇게신비스러운된장을우리조상님들은그당시에어찌알았을까?

우리는대단한조상들의후예이다.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는 짚.

요람에서무덤까지요긴하게쓰였는짚.

짚은사람이태어나는요람에서무덤에갈때까지여러모로쓰이기도하였다.

아기가태어날때산모방에짚북대기를깔았다.

이것은삼신짚이라고했다그짚은분만을도와주는힘갖태어난아기가병없이성장을지켜주는신앙적인힘이있다고믿었다.

그리고대문에는왼쪽으로꼰새끼줄을숯또는고추를달아서쳤다.

이렇게짚위에서사람이태어나고죽으면짚으로만든거적대기를덮어서장사를치루었다또살아가는동안거의매일이다싶이짚한두개를어린이한뼘정도로몇번접어서용변후뒷처리도하였다.

옆동네에서역병이생겼다면집집마다왼새끼줄에솔잎을꽂아서금줄을대문에쳤다.

그때사람들은병을막아준다고믿어서전염병이들면대문밖에짚신한짝을걸어놓기도하였다고한다.

아마병을옮기는귀신이들어오지못하게하는일종의토템적인행위가아닌가한다.

그옛날에는병은병균때문이라는것을모르고귀신에의해서생기는것이다고믿었다.

내어릴때눈에핏발이서면할머니가해뜰때물한그릇떠서장독대에올려놓고동쪽을보고두손을비비며세상을밝게해주는해님에게빨리낫게해달라고빌었다.

그리고그해먹을메주를짚으로묶어벽이나서까래에걸어두었고장을담그고는장독대에도왼새끼로숯과솔잎을꿰어금줄을쳤다.

그때장담그는일은대단한행사이고혹시나실패하면큰낭패이니정성을들였다.

사람이죽으면시신이안치되어있고상문객을맞이하는방앞에는짚으로꼰새끼를나무에감아서문앞에장식처럼들러쳤다아마귀신이문상객을해코지못하게하고기쁜마음으로접객을맞이한다는신앙적인의미가아니였을까하는생각을해본다.

이토록사람은태어날때어머니배속에서나와제일처음자리로쓰였고사는동안짚에게많이의지하고짚이위험에서방어해줄것이다고믿고살았으며죽으면또그짚속에쌓여땅속으로들어갔다.

그외에도중요한행사에도요긴하게쓰였다.

음력정월보름에는그해첫명절이고온동네사람들의정성을모아가장정갈한집으로하여금제물을장만하여추운새벽에목욕제계하고동내융창하게해달라고서낭당에가서당제를지내고역시왼손으로꼰새끼줄에창호지와천조각을꽂은금줄을친다.

그리고그날은축제의날인데손으로잡을가지줄이주렁주렁달린나무둥치만한굵은새끼줄을만들어남자와여자가동편서편으로나누어서온동네사람들어른아이모두달라붙어줄당기기를하였다여자편이이겨야그해풍년이든다고여자가이기도록했다.

또짚으로소등에흙담아나르는큰자루같은것을만들어서나무로만든틀에달아서거름흙등을날랐고밭곡식을뜯어먹지못하게소주둥이를가리우는멍에도만들었다.

소의잠자리마구간에넣어서소가춥지않게잘수있게하고소가밟고잔짚은소의분뇨와버물려져중요한거름으로쓰였다.

또가축의사료로손가락두마디만큼작두에썰어서가마솥에물붇고콩깎지등섞어서쌂아서먹이는소에게중요한양식이다.

그렇게다용도로쓰였던짚이현대문명의이기에밀려농약의과다사용벼품종개량으로짚이그때짚보다키가작고열매인벼알이많이열리는것으로바뀌어져서요즈음별로쓸모가없다.

내어릴때까지도볏짚은부드럽고키도크고질기기도하였다아마그당시에는쌀이많이나게하는것도중요했지만일상생활에없어서는안될아주중요한역할을한짚을많이생산하는대도요즈음학자들이연구하는것처럼연구하였는것아닌가여겨진다.

이토록우리조상들은나쁘게살면귀신이잡아간다고여기고하늘이내려다보고응징한다고여기며자연에서나온재료를잘이용하여보람있게쓰면서착하게살았다.

이렇게사람사는일상에짚이쓰이는것을나는겪고살았다그러나불과한세기도안되는동안이렇게세상이달라졌다.

지금도잊혀지지않는집,내어릴때친구의집토담집벽이4,50센치두껍고지붕에이엉이덕지덕지덮인작은집에서겨울에는토굴속같고여름에는동굴속같이서늘했던그집흙냄새가나고바닥에깔린짚자리의향긋한냄새를맡으며호롱불밑에서그친구와어울려긴겨울밤시조줍기도하고놀던그런집이요즈음그리워진다.

지혜롭게 쓰였던 짚(볏짚)의 미학.

조상의지혜가스며든짚(볏짚)의미학.

요즈음은민속촌에나가야볼수있는초가집재료가짚밖에없으니그렇게지었을것이다고여길것이다.

그러나나는어릴때실지로그초가집에서살아보아서잘안다.

재료가짚밖에없어서그런것이아니고여러가지신비스러운성능이짚에는많다.

초가집은기둥은나무이고벽은수수대를얽은틀을감싸흙을발라서벽을하였고지붕에는서가래위에나무막대기를엮어서흙을씌우고그위에볏짚으로엮은이엉으로덮었다방바닥은중간중간디딤돌위에얇은돌을덮어그위에흙을바르고또그위에짚자리를깔았다.

그초가집에살아보면겨울에는따뜻하고여름에는서늘하였다그당시에는난방방법은산에서나무를배어와서아궁이에때어서방바닥을따뜻하게하였다.

여름에는불때지않고짚으로만든자리위에자면바닥이통풍이되어서늘하고그렇게덥지않았다.

짚은지붕위에도흙벽속에도소먹이여물처럼썬짚이들어가서흙의응집력을도우고방바닥을바르는흙에도짚이들어있고자리도짚으로쓰였다.

짚의성능을알고그것을잘활용하였다.

그당시에흙으로구운기와를덮은집도있었으나그런집은기와무게때문에서가래기둥등모두가튼튼하여야만되어서짓기도어려울뿐더러돈도많이들었다.

기와이기때문에짚으로이은지붕보다냉난방효과가떨어졌다.

서민들은대개들초가집이다여름에는시원하고겨울에는따뜻하고장마때는수분을짚이먹고흙이먹고위생상에는가장친환경적이었다.

주거하는집에그렇게쓰였고그외에도비올때옷이젖지않게서양사람망토처럼도롱이라는등에입어서비를맞지않게하는것을만들었고

멍석이라고만들어서마당에깔고온식구가저녁식사도하고여름초저녁에홑이불덮고하늘에별을새며잠시쉬는큰이동식자리그멍석은마당에펴면잠자는시간을가질수있는간이방역할을하였다.

결혼잔치회갑또초상이들었을때는몇개를마당에깔면회식장이되었는아주요긴하게쓰였고다쓰고는돌돌말아서헛간에달아메어둔다.

또짚으로신을만들어신었다.

우리민족의오랜세월동안신었던신발의재료는짚이였다.

옛날영남지방선비가한양에과거보러갈때짚신을몇켤레봇짐에주렁주렁매달고가면서떨어지면버리고갈아신고하였다.

소에게도신발을짚으로만들어신겼다그때소는재산증식에큰역할을하였고또농사일에없어서는안될중요한가축이었다.

추운겨울에먼산으로나무하러갈때같이가서무거운나무들을소등에싣고왔는데언땅을밟는소발이안스러워또짚은눈길위에서도잘미끄러지지않아서그랬는것아닌가여긴다.

그외에도그물처럼엮어진망태기라고만들어매고다니는요즈음말하는가방이다.

나무하러갈때도시락도넣어가고소먹이용꼴배러갈때크게만들어매고가서풀을담아오기도하였다.

그것말고도사과감등과일을담아두는광주리로도쓰였다.

이런짚으로만든소품들은만들려면먼저가는새끼줄을꼬아야한다.

그꼰새끼줄을씨줄로하고짚과잘엮어서탄탄하게만들었다.

새끼는굵게꼬아서동여매는줄로쓰고가늘게꼬아서망태기도롱이짚신멍석등을만드는데썼다.

새끼줄은반드시오른손을바깥으로비비는오른쪽으로꼬아야된다왼쪽으로꼰새끼는쓰임새가전혀달랐다신앙심용으로쓸때는반드시왼손으로꼰새끼를써야만한다.

아기낳으면금줄서낭당나무에치는줄자식들잘되게하고동네질병없이한해를보내달라는등신앙심으로쓴새끼는반드시오른손을위에서아래로밀어꼬는오른새끼는쓰면않된다.

또짚으로가마니를짜서곡식보관용운반용으로쓰고마당한켠에짚으로우리를크게만들어곡식창고로도썼다.

그리고또급할때는연료로도쓰였고그때나온재는빨래할때잿물대용으로쓰기도했다그재에서물받아서빨래를쌂아서빨면때가잘갔다.

이토록짚의성능을알고우리조상님들은잘활용하였고그용도는참다양했다.

*다음번에는요람에서무덤까지쓰인짚을쓸가합니다.

*위자료들네이버이미지에서

아버지가 하신 옛날 이야기.

내가초등학교다닐때의이야기입니다.

한여름이되면낮에는아버지는들에서어제는친구네집오늘은형님집내일은내집하면서품앗이라고돌아가면서수명이나락()논에엎드려직접논에구정물을일으키며풀을뽑는논매기를하였습니다.

그후수년이지나고손으로밀면서가면되는논매는기계가나와서혼자그것밀고다니면서논을매고하였습니다.

우리들은학교갔다집에오면소풀을배어야하고동생을업기도하고같이놀아주어야하였습니다.

저녁에는마당에모기불피워놓고멍석위에서저멀리하늘을처다보면총총이박힌하늘에많은별들큰별도있고긴꼬리를이끌고어디론가선을그으며떨어지는별똥별도보이고강물처럼길게흘러가는은하수를보면서들은이야깁니다.

모기장도없고선풍기도티비도없던시절이웃에있는친척어른과이런저런이야기도하며때로는아버지는나와내동생과홑이불덥고누워서옛날이야기도해주셨습니다.

어떤사람이길을가다가날이저물어어느집에하루밤묵고가자고하여그렇게해주었습니다.

그때는방수도적고방도자그만한방이여서그과객과같이주인이한방에잤다고합니다.

처음본사람들이지만과객을재워주거나남에게도움주는일을좋은일로여겼던것같습니다.

사람을믿고선악이분명한시절,작은도움에도감동했던시절,서로의대화의문을꼭꼭잠그게하고인간을사악하게만드는티비가없던시절입니다.

처음본사람이지만서로주거니받거니세상이야기도하고요즈음처럼먼곳이야기듣는것은그렇게입에서입으로전해지던시절이니낯선사람도집에오면무척반기고하였답니다.

이런저런이야기를하다가잠을자는데한밤중집주인이발을덜덜떨고방바닥을타닥타닥하면서발을들었다놓았다하였답니다.

과객은아니이래서이집이사람들을보니고생할사람이아니고생김새도준수하고나무랄대없는데이나쁜버릇때문에이렇구나고여겨몰래밖에나가마당가에있는도끼를가지고와서떨고있는발목을잘라버리고달아났다고합니다.

그때는나무가에너지의원료여서집집마다나무를패는곳이있었습니다.

이집에는야단이났지요요즈음처럼범인잡는것도어렵고권세가있으면포졸풀어서찾기도하겠지만가난한집에서그렇게못하고치료하고지난것같습니다.

그리고그후부터는발목이없으니덜덜떨지도못하였지요,그런데이상하게도계획했던일들이잘풀리고가세가급작스레낳아지고주인은불구가되었으나아들딸들이모두잘되고동내사람들이모두부러워하는집이되었습니다.

수년이지난후그때과객이다시그집에가보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동내에가서들어보니집도큰집을다시짖고부자가되었다고하여서그집에갔으나처음에는알아보지못하고또하룻밤을자기로하고이런저런이야기를하다보니자기발목을잘랐던사람이라는걸알고이놈죽일놈하고야단이났습니다.

과객은그때당신집에와보니식구모두관상이너무나좋고번창할집이였는데가난하기에이상히여겼더니밤에잘때보니당신이발을덜덜떨고해서이것이다고판단하고내가그랬다.

지금보니너무나많이좋아졌지않느냐너무화내지마시요고하였더니그제사알아듣고오히려고맙다고하고융숭한대접을받았다고하는이야기를아버지께서는해주셨습니다.

그리고사람은말도희망적이고좋은말을써야겠지만행동도바르게하고다리를덜덜떤다든가눈을깜박깜박하거나목소리가부드럽지못한것등나쁜버릇은빨리고쳐야한다고하셨습니다.

지금생각하면말도안되는이야기이고아마좋은버릇을익혀야된다고아버지가지어낸말슴이아닌가여겨지는황당한이야기를오늘제가하였습니다.

그러나오랜기간살면서어릴때들었는아버지의말씀들이하나하나가내가살아가는데너무나중요한말씀이다고느낄때가많았습니다.

오랜옛날에는지금의잣대로는이해하기어려운일들도있었다고합니다.

그리고예전에는그런것볼줄아는뛰어난의인도있었다고하셨습니다.

우리나라 돈을 최초로 만든사람

우리나라돈을최초로만든사람

고려11대임금문종은어느날왕비와마주앉아어느아들을출가시키면좋겠소?"

의천이가장불심이두터운것같습니다그러나그아이를중으로만들기는어렵습니다왕비이씨는이자연의딸로자신의오라버니가출가해중이되어있었다.

사랑하는자식일수록부처님께바처야하오조정의중신들의자식들도의례히출가하는것이요하물며임금자리에있으면서자식하나를부처님께바치는것을아껴서야쓰겠소?여러번왕비에게말하였다.

왕비는마지못해그럼대왕의뜻대로하십시요

그리하여문종의넷째아들의천은절로보내젔다.

열한살의의천은대궐을떠나영통사에들어가경덕국사에게불경을배우기시작했다그후십년이지나승려가된의천은송나라로가서불교를더공부하고싶어1085년4월수제자한사람만대리고송나라로가는배에올랐다무사히송나라에도착하여소승은멀리고려에서왔습니다법사의높으신법을배우고자하니잘선도하여주십시요

나도아는것이별로없소우리열심히연구하여불도를닦아봅시다고하며송나라각엄사에유성법사는반갑게맞이하였다.

어느날유성법사와거리산책을나갔는데시가지는잘정리되었고몇층씩되는큰집들이즐비하고찻집과음식점등그리고거리에는고려에서는보지못했던온갖물건들이있었다.

유심히살펴보니사람들은물건을파고사는데돈을사용하고있었다옳치저렇게하면물건의매매가쉽고좋겠구나고국에돌아가면돈을쓰도록왕에게권해야되겠다고생각하였다.

그후의천은천태종을열심히공부하여1086년불경3,000여권을싣고고려로돌아왔다.

흥왕사에교장도감을두고4,740여권의불경을간행하고고려불교를번창하게하였다.

15대숙종때의천은백성들이잘살수있도록하자면세금을적게거두어야합니다돈으로백성들이물건을사고파는데편하도록해주십시요고왕께간청하여숙종은돈만드는관청인주전도감을설치하고엽전을만들도록하였다.

1097년백성들은돈으로물건을거래하며상업이크게발달하였다.

최초로만들어진돈엽전이해동통보인데15,000관을만들어문무양반과군사들에게나누어주어쓰도록한것이우리나라최초의돈이고이후상업이발달하였다.

의천은흥왕사에서천태종을가르켜전국의많은승려들이모여들었고후에지눌이더욱발전시켜조계종을만들었다고한다.

의천은1101년47세로세상을떠났다숙종은의천에게대각국사라는칭호를내렸다.

*나는이글을쓰면서다시한번생각합니다.

위에말한돈,한자가,불교가,목화가,과거제도가,국가관직의명칭이,유교가,우리가쓰고있는이름의첫째자성이,생활풍속이,절후가,명절이,일상쓰고있는말,등등깁숙히아직도진행되고있는중국의영향을이후에더이상은이런일들이늘어나지않았으면하는마음입니다만

지금은우리의통일문제에까지큰작용을하도록되어가고있어이후가많이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