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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나라 되니 3)감사할줄 모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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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참 중요한 교육이고 그것이 쌓이면 감사할줄도 알고 행복해진다.

네살 먹은 내 손자가 어느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네모난 틀을 머리에 끼우다가 목으로 내려갔다 들어가기는 했는데 위로 뺄려고 하니 빠지지 않는다 갑자기 울고 야단이 났다. 할부지가 빼 줄거니 울지 말아라고 하였으나 엉엉 운다. (위 사진참고).

아내와 나는 웃기도 하고 그러나 저렇게 우니 빨리 빼주어야 하는데 얼굴위로 나무틀을 올려 뺄려고하나 빠지지 않는다. 하기사 조용히 있으면 부셔버리면 되는데 아기는 겁나서 엉엉 울고 있으니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하기는 아이에게 미안하고… 나는 이 귀한 모습을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는 짓궂게 ㅎㅎ, 많이 울리고 이리저리 해서 드디어 빼내어 주었다.

그후 다음날 주었더니 아예 잡아보지도 않는다 옆에 두었더니 아이는 집어들고 가서 현관에 내다버리고 만다. 그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세살먹은 아이도 자기를 나쁘게 한 것이라고 거들떠보기도 싫어한다. 이토록 경험은 좋은 교훈이다.

우리 노인들은 지난 세월 사는 동안 온갖 경험들이 많다 일상 생활중에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찌 살았을까?

콩나물시루 같이 서서가는 기차를 타고 그것도 10리 이 십리 마다 있는 작은 역에도 다 서고 가고 하는 기차 태워 주어서 고맙고 가게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타고 다녔고 여름 방학때 항상 바쁘신 아버지가 짬 내시어 물놀이라도 한번 데려가서 먹던 밥과 김치 조각 몇 개로 간식 먹으면서도 행복 했던 우리 어릴 때였다.

그럭저럭 커서 직장에 다닐때 놀토가 어디 있으며 일요일도 없고 수시로 야근도 하느라고 자정가까이 되어야 퇴근하고 3일이 멀다하고 숙직도 하였다. 상급자들에게 모진소리 때로는 손지검도 당하는 것 예사로 여기고 나를 잘되게 할려고 한 것으로 여기면서 생활 하였다.

가정에 여자들은 마당에 물도 나오지 않는 집이 대다수고 빨래는 냇가에 가서 하면서 밭매기 남정네들 중참 점심 열 식구 치다꺼리 하는 것은 보통이고 없는 살림 꾸려가면서 맛있는 것 먹을 것 아이들 먹이고 자기는 배골아 가면서 살았는 사람도 너무나 많이 있었다.

그런 모진경험들이 남아서 요즈음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한 생각도 할줄 알고 국가에서 고려해주는 기초수급 연금 받으며 아껴쓰고 살면서도 행복 느끼고 살고있다.

오히려 요즈음 젊은이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보면 우리가 한 것이 정상이고 지금 그들의 생각이 비정상인 것처럼 여겨 지기도 하다.

간혹 여행하면서 무궁화 열차를 타보면 누구나 다 앉아서 가고 널다란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면 탐스럽게 자란 농산물이자라는 논밭 그리고 잘 정돈된 산천 등을 보면서도 행복한 감을 느끼고 조용한 차안에서 편하게 가는 열차도 내가 고객은 왕이라는 대우를 받고 가는 것 같아 행복해지고 가끔 지나다니는 열차원은 문간을 들어올 때 인사하고 나가면서 돌아서서 머리 숙여 묵례하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인다.

어릴 때 기차는 돈주고 탔지만 열차원의 무서운 눈초리는 아직도 잊지 않아지는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데려다 주니 고맙게 여겨라 그리고 모두들 그렇게 고맙게 생각도 하였었다.

그랬는데 요즈음은 모든 것이 경제 논리로 살고 있으니 내 돈내고 한 것이니 나는 이런 대우가 당연하고 조금만 소홀하면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든 나쁜 것이고 이해와 용서가 없는 세대가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이제 30%정도되는 나 같은 구세대들 그런 경험으로 그저 모든 것이 감사히 여기고 살아가는데 다 가고 나면 우리 인간이 만든 생각 없는 기계 로봇이 등장하여 자동차도 사람은 타고 있고 책 읽고 있는데 지가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는 식으로 사람들도 그런 사람만 사는 세상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잘사는 세상 만든다고 잘사는 나라 되고 보니 이래 되었는데 이것 잘하는 것인지…

 

잘사는나라 되니 2) 달도 별도 보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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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나라 되니 2) 달도 별도 보기 어려워.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이제는 옛날이야기다.

나라가 가난할 때 한여름에 평상이나 멍석에 홑이불 한자락으로 배가리고 누워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모깃불연기에 때로는 캑캑 하기도하면서 그러나 모기에 물리기도 하면서 할머니 아버지가 이야기 해주시던 충신 효도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자랐다.

그때 그 하늘은 검은데 별들이 총총히 밖혀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멀리 한줄기 별들이 긴꼬리를 이끌고 한쪽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은하수라는 것도 보면서, 견우직녀 이야기도 들으면서 북두칠성이니 오리온좌니 가시오피아 하면서 꿈을 기르면서 지났는데 그 세월이 70여년이 지났다.

그 동안 내가 산 이땅은 너무나 변했다. 흔히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생길 시기에는 그랬을 것이나 내가 살아온 그 70여년은 5년이면 아니 3년만에도 없던 도시가 하나씩 생기는 세상에서 살며지났다.

그런 세상에서 지나고 요즈음은 주야가 없어진 세상이 되었다. 그대신 이제는 우리도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 잘사는 나라는 밤인지 낮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세상, 말로는 밤이라고 하나 각종 등이 대낮처럼 밝게 켜진 환경에서 살다보니 5, 60여년을 살아온 그옛날 사람의 생체리듬이 허물어져서 밤도 낮 같고 자도 잔 것 같지않고 대기오염 수질오염으로 살기 어렵다고 하더니 요즈음은 인공조명 빛 공해 소음공해에 또 별과 달 못보는 밤 생체리듬이 일그러지며 살고있다.

사람도 우주 자연의 산물인데 밤과 낮의 조화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동물로 인체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져서 사람이나 짐승들도 잠을 충분히 자야 건강히 살고 제게 주어진 모든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밤은 종의 생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 아이를 낳지 않을려고 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가는 것은 밤이 밤같지 않는 곳에서 살고있는 인간들의 세상과도 무관하지는 않다.

심도 깊은 휴식을 하지 못하는데 먹을 거리만 온갖 것 먹는다고 건강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우울증, 면역력 저하 등도 무관하지는 않다 별이 있는 밤이 없어진 것도 많은 영향이 있다.

밤이 있는곳에 살면서 밤에 별도 달도 보면서 낮에는 들꽃도 마당으로 옮겨 심고 상추씨도 뿌리고 그것 키우며 하느라고 일하고 밤에는 깊은 잠도 잘건데 그것을 못하고 살아가니 우리들이 이토록 삭막한 삶이 아닐까?

잘사는 것이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네…

*이 글은 10월2일 등록되었던 글입니다.

 

 

잘사는나라 되니 1) 삼촌 사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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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나라 되니 1) 삼촌 사촌도 없다.

세상만사는 거의가 명(明)이 있는가 하면 반드시 암(暗)도있다. 우리들이 어릴때는 가난하여 하루 밥세끼 먹을수 있는 집은 드물었다 아주 가난한 집은 죽 먹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는 집도 있었다.

추운 겨울에 어린것들이 속옷은 없고 무명솜 조금 놓아 만든 무명바지 저고리 아래위로 입고 책보자기에 싸서 등에 빗게로 걸머지고 등성 넘어 10리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교실에도 장작을 난로에 때서 떨지 않게 할려니 적당량에서 항상 부족하여 벌벌떨며 손을 호호불며 공부를 했으며 밤에는 호롱불 켜서 그 아래에서 책 읽고 숙제하고 하였다.

가난한나라 어린이로 태어나서 온갖 고생하면서 자라서 성인이 되고 그렇게 살았는 나라를 오늘 같은 나라를 만드는 동안 일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일요일 쉬는 것은 사치고 잠자는시간 말고는 일만하였고 심지어는 외국에 외화 벌려고 목숨 걸고 하는 일도 등등 잡다한 것들은 여기서 굳이 더 안써도 잘 알것이다.

요즈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고생 한거는 오히려 그럴수 있고 요즈음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여러 모습이 모두가 잘못하고 있는 것같이 보여지고 정상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때 보통 형제자매들 합해서 5, 6명이여서 그 형제들이 결혼하고 나면 삼촌도 4촌도 많았다. 조금 규모 있는 집은 한동네는 물론이고 옆집 뒷집에 구역을 차지하고 평상시에도 서로 도우면서 삼촌 조카 4촌들이 너집 내집 구분 하지 않고 의좋게 살았다.

그렇게 살았는 경험을 가진 나는 요즈음 보면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서 잘먹고 입고 아플때도 병원가면 거의 못 고치는 병이 없을 정도로 잘사는 나라가 되어서 좋다. 그러나 이제는 그와 같은 명, 좋은것이 있는가 하면 가난할 때 있었던 좋은 것들이 많이 없어진 어두운 세상이 되었다.

결혼도 안하고 살려고 하는사람이 자꾸 늘어가고 해도 자식은 하나 아니면 없어도 좋다고도 하고, 부모 자식도 심지어는 남처럼 여기고 사는 자들도 있다. 따라서 삭막해진 것도 많고 아름다운 동식물도 없어진 것이 많고 살아가는 것도 풍요로우면 다 행복해져야 하는데 불행해 진 것도 많다.

사람사는 세상이 동물과 거의 비슷하게 살아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그 옛날 아름답던 여러 것들을 너무 많이 버려서 아쉽기도 하고 이것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까지하였던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싶으다.

어쩌다가 이토록 삭막해졌고 또 앞으로 회복되기는 글렀고 더욱더 이런 것이 심하게 되어 가는것같아서 이런 나라에 내 자식들 그리고 손자손녀들이 살것을 생각하니 지금 우리들이 바로 세우는데 조금이라도 노력해야 할 것 같다만 너무 헝클어진 지금 쉽지 않을 것같다.

이런것들 투정이랄까 푸념이랄까 이것저것 주서서 20회정도 띄엄띄엄 쓸 것이다.

아내 블로그 글 백업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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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블로그 글 백업을 하면서.

며칠 전에 우연히 동아일보 블로그에 들렀더니 이제 종료하겠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중앙일보 조인스 블로그도 그리하겠다고 하면서 회원들 글 백업하도록 준비를 하라고 하고 있다.

아내는 백업이니 할것도 없고 글을 당신이 퍼주세요고 해서 오늘 일삼아 퍼다가 내컴 내문서에 민속촌의 글이라는 새폴더를 만들어서 퍼다 날라보니 예삿일이 아니다. 아내가 쓴 글이 대부분이 중국에서 쓴 글인데 너무 순진하고 때묻지 않고 착한 글들이 참 많이 있었다.

중국에서 내가 조선일보에 산고수장이라는 명으로 블로그를 개설하고 글 쓰는 것을 보더니 아내는 중앙일보에 만속촌이라고 이름지어 블로그를 만들어 달라고 하여 우리와는 다른 중국사람들의 생활상을 보고 쓴 글 자기는 자기본대로 썼다.

그후 아내의 블로그 민속촌은 중앙 조인스블로그에 파워블로거가 되어서 예전 J필진에 자주 올려져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20126월에 귀국하고도 쓰더니 아들딸 며느리 손자들과의 일상으로 바쁘다며 쉬고 있었는데 이제는 폐쇄 한다고 하니 그 글들을 기념으로 가지고 싶으다고 하였다.

오늘 퍼나르면서 지난 10년 중국 생활들을 되 세겨보았다. 지난 중국생활 하면서 황당한 모습도, 또 우리와 너무나 같은 생활들 등 많이 썼는데 그것들 모두모아 시리즈로 다시한번 쓸까 하는 생각도 간혹 해보면서지난다.

그런데 저지난해 조선블로그를 폐쇄한다고 할 때 조선블로그 회원들 다른 매체들은 잘 하도록 하는데 조선만 독자들을 슬프게 한다고 야단하였었는데 그후 weblog라고 꾸며서 하고는 있으나 이런저런 연유로 거의 떠나고 몇 안되는 올드 조블맨들이 남아서 하고 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메인 화면은 바뀔줄 모르고 길도 희미한 산골에 폐가처럼 되어서 불만스럽더니 중앙도 동아도 다 폐쇄하겠다니 저널지들에게 블로그가 그토록 징그러운 존재가 되었는가 싶어서 씁슬한 마음이다.

위블도 곧 몇안되는 올드맨에게 이제 그만 가거라 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이나라 대표 저널 조중동이 모두 블로그가 징그러운가보다.

오늘보니 내가 쓴 글들이 1334개다 오랜 기간도 지났지만 쓴 것도 많다.요즈음 간혹 지난글들 읽어보면 정성들여서 많은 자료들 참고하여 쓴 좋은 글도 있다.

중국에 살면서 중학교 때 황하가 고대문명의 발생지 인류의 출발지라고 하는 것을 배웠고 오늘의 중국을 만든 황하와 양자강을 쓰고 싶어서 많은 자료들을 보고 썼는데 요즈음 읽어보면 정성이 많이 들여서 썼다.

그리고 내블로그 명이 산고수장인데 그것도 쓰고 싶어서 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썼는데 지금 읽어보면 너무 잘썼다 그에 비하면 요즈음은 질이 많이 떨어진 블로그가 되었다. 제발 이렇게라도 쓰고 지나게나 해주면 감사한 마음이다만….

이제 내일 하루만 지나면 이 해가 다 간다. 말도 많고 위태위태한 한해였다 썩어 문드러진 정치계에는 큰 사건이 있었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토록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도 보여준 해였다.

지금부터 60여년전 일본에서 해방되고 갖 탄생한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때 1952년 영국의 더 타임즈기자가 한국에 민주주의 나라가 된다고? 차라리 쓰레기통에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려라는 식의 글을 썼다고 하였는데 그런나라 였었던 적도 있었다.

참 많은 일을 짧은 기간에 해낸 나라다. 경제가10, 1,2위 국가고 이런저런 것 통털어서 볼때 국력이 세계11위 국가라는 통계도 보았다. 지금 이토록 시끄러워도 너무 큰 걱정 안해도 또 해결하고 이해보다 내년은 좋은 해가 될것이다. 대망의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자.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산고수장.

 

 

 

 

이재용 부회장의 최후진술을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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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의 최후진술을 읽으면서…

27일 10시 이재용 삼성부회장 항소심 재판이 있었다 선고를 앞두고 그는 최후진술을 했다. 그 진술이 내 가슴을 멍멍하게 하였다.

나는 금년 초 2월20일 이부회장이 박 전대통령과 최순실의 얽히고 설킨 사건의 중심에 연루되어 구속될 때 ‘이재용 부회장 이 아픔이 계기 되어서…’ 라며 철없이 엉겁결에 물려받은 대기업 실질총수 이재용이 안타 깝다, 다 잊고 감옥생활 하면서 새로운 인생 경험도하고 거기에서 세계적인 대기업가의 자질을 터득해서 나오길 바란다는 글을 쓴적이 있다.

그후 징역 5년의 선고를 받고 항소를 하여 어제 항소재판 날이었다. 마지막즈음  그가한 최후진술에 “대한민국에서 저 이재용은 제일 빚이 많은 사람”이라며 “좋은 부모 만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나름 고민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후 “모든 문제가 저와 대통령 독대에서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은 다 제 책임”이라며 “엉망으로 꼬여버린 이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지만, 죄가 된다면 모든 법적 책임을 지고, 도덕적 비난도 제가 받겠다” 고 하며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그는 “회사 일 열심히 하시다 이 자리에 선 최지성 실장, 장충기 사장에게 선처를 베풀어주시길 간청 드린다”고도 했다는 어느 기자의 참관한 글을 읽었다. 최 전 실장과 장 전 사장은 1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됐다.

맞다 이 나라에서 대통령이 보자고 하는데 안 가겠소 할 자는 그 어떤자도 없다. 그의 말따나 간 것부터 그는 범인이 되는 문턱으로 간 것이다 운명이다. 그리고 그는 돈으로 빚이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 마음의 빚을 많이지고 있는것이다.그것을 이제사 알아차린 것이다.

대통령을 아직도 왕정시대에 왕처럼 여기는 국민도 많이 있는 나라에서 마마님하며 울부짓는 자가 수없이 많고, 국가법이 있는데 지금 석방하라는 자들이 연일 거리를 메워 길이 마비 되는 나라, 박전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로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였었고, 졸업 후에는 그의 아버지 독재가 최고 정점일 때까지 보좌 했던자, 어디까지가 민주국가의 대통령의 권력인지 모르는 자, 그래서 휘두른 오만의 대통령이 그를 이래 만든 것이다 그 서슬에 어느 누가 못 가겠소 할 자가 있겠는가?

장충기사장 최지성실장 모두가 나로 인한 죄, 내가 다 쓰겠다는 말에 인간 이재용을 보는 것 같다 마음이 아리다.

한때 온 국민의 성원을 한몸에 받았으며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을 한 사람은 조사도 안받겠다, 재판도 안 받겠다, 국가법도, 법원도 모든 것을 무시하겠다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하고 있는 모습이 저런자를 대통령으로 선출, 우리는 속아도 너무 속았다 아니면 우리가 이렇게 바보 였던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여 너무나 속이 상한다.

지금이라도 “그래요 이모든 것이 내 잘못 판단한 것으로 나라가 이토록 혼란스럽고 많은 공직자들이 법원에 들락거리게 되었고 충직스럽던 자들이 영오의 몸이 되어 고생하는데 내가 다 지고 가겠소 나를 처벌 하시요.” 한다면 이 나라의 어느 국민이든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응당의 벌을 주는 직위의 자들도 아린 마음으로 임할 건데 너무나 아쉬운 현실을 보면서 마음이 서글프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굳게 마음먹고 더 건강한 기업가 되어 형기 마치고 대한민국이 나은 세계적인 기업가가 되시기 바란다. 그리고 머리는 빌릴수 있지만 건강은 아무데도 빌리지 못하는데 건강하세요.

그래야 국민에게 진 많은 빚도 갚을수 있지요.

 

 

 

 

 

세계는 한국국력을 11위로 본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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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잘 알아야 정확한 목표설정을 할수 있고 빠른 성공을 할수 있다.

흔히들 주변에 일어나는 인간사들 보면 자기를 과신해서 낭패보는 것 자주보고 자기를 낯추어보고 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그런 사람은 소심하고 용기 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자기 또한 그저 편하게 살지 큰 발전은 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사이에 끼여있는 반도국가인데 그것도 요즈음 반 쪼가리가 되어 볼품이 없다. 그런데 크기로 따져보면 중국은 약960만평방km이고 한반도의 44배다 일본은 38만평방km그렇지만 일본의 해양 면적은 중국보다 3~4배 나 크다 그에 비해서 우리는 너무나 작은 나라다.

또 우리국력에 큰 도움을 주는 나라 미국도 거리는 멀지만 실은 우리 바로 옆에 있는 나라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나라여서 사실은 중국, 일본, 미국 사이에 끼인 한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랬는데 얼마전에 중앙일보 어느 기자가 쓴 것인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는 미국이고…’ 하면서 국가순위를 알리는 기사를 보았다. 미국이 1위고 주욱 내려가서 우리나라가 11위라고한다. 그 선정 기준이 정치적, 시민권리, 경제여건, 군사력, 첨단기술력, 등이 포함되어서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비즈니스인사이더(BI)사가 발표를 했는데 유에스월드리포트가 펜실바니아대 와튼스쿨, 글로벌브렌드 컨설팅업체 BAU와함께 세계 80여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서 발표된 것이다고 한다.

​상세한내용은 1위가 미국이고 2위는 러시아, 3위중국, 4위영국, 5위독일, 6위프랑스, 7위일본 (세계3위경제대국 첨단기술강국), 8위이스라엘(800만인구에도 강력한 경제력과 높은 교육수준), 9위사우디아라비아, 10위 UAE(아랍에미리트) 그리고 11위에 한국이라고한다.

우리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2016년말기준 세계6위 무기수출국 등이 참고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엊그제 영국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해마다 그해 두드러진 성과가 있었는 나라 ‘올해의나라'(Country of the year)를 선정하는데  프랑스가 선정 되었는데 우리나라와 끝까지 프랑스와 경합 되었다는 그사도 보았다.

이것을 보면서 간혹 12, 3위 무역국이니 하는 소리는 들었지만 우리가 우리자신을 너무 모르고 지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이렇게 세계는 우리를 평가하는데 우리는 그에 걸맞게 처신해야 할 의무도 알아야 할것이다. 우리나라를 세계사람들이 이렇게 여기는것 생각을해보면 이해가 충분히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선진국은, 또 세계복지국가는, 하면서 불평을 자주하였는데 스웨덴, 덴마크도, 노르웨이, 네델란드,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을 걸핏하면 들먹이고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형편없는 나라인 것처럼 여기는 말도 하고 인식도 그런 인식으로 살고 있는 것 같은 감을 자주 가진다 이제는 확 바꾸고 살아야 할 것이다.

​좀더 상세히보면 노르웨이 인구는 470만이고 GDP는 99,000불, 덴마크는 인구가 560만이고 GDP는 55,000불, 스웨덴은 970만 GDP는 51,000불이다. 네델란드는 인구16,000만 GDP는 45,000불이고, 세계경제중심이라는 독일이 대학 진학율이 28%이고 덴마크는 41%이나 우리는 78%다. 이수치는 2012년에나온 대략적인 수치 몇 해전의 수치이나 인구와 소득도 그후 별로 많이 다르지는 않다.

인구가 500만 정도면 우리나라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를 합한 정도다 그런 나라를 그정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고 남북이 갈라져서 대치하고 있어서 군사문제로 어려워하는 우리와는 비교 할수 없다.

우리는 그 10배정도인 인구가 5000만이 넘는나라고 경제력으로 12, 3위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 비하면 대국이고 GDP는 조금적으나 30,000만불이다.

그러나 물가를 고려해야 할것이고 그리고 어느 통계를 보니 국가치안이 가장안전한나라 어린이가 안전한 순위는 OECD국가중에 7위라나 그리고 전국민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것으로는 세계 상위 국가이다고 하는 그런 통계도 보았다.

​이런 것 종합해보면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이고 따라서 행복한나라로 여겨야 한다. 그런데 국민 행복도는 OECD국가중에서 하위라고 하니 우리들 관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치쪽에 교육쪽에 노동관계쪽에 간혹 불만스러운 모습들이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미국도 걸핏하면 총격사건 방화사건 인종갈등이 자주 일어나고 미국에 빈부격차는 우리보다 훨신 심하다.

행복도가 항상 하위고 살기 어려운 나라로 여기는데 국민의식을 개선하고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하면 그것이 올라갈 것이다. 흔히 말하는 목에 힘주고 어깨 펴고 뻐기며 살아야 할 것이다. 행복은 행복하다고 여겨야 행복해 진다고 하는데….

 

마음 조금 바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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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안타깝고 거북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여선생님에게 성희롱 비슷한 행위를 하는 중학생을 여선생이 약간의 체벌했다고 변호사사서 고소하고, 아버지가 잘못한 딸 손 지검을 했는데 경찰에게 고소하여 그것을 보고 경찰이 그래 왜 아버지에게 그렇게 반항을 했나고 충고를 하니 경찰을 고소 하겠다는 기사도 보았고, 또 벗다 싶은 옷을 입은 어느 여자아이가 못된 남자아이에게 성추행을 당해서 경찰이 좀 조신하게 다니지 한다고 너는 누구를 위한 경찰이냐고 하는 세상이 되었다.

위에 예로든 그 모든 것 나이든 사람이 살아온 경험으로 그렇게 타이를 수도 있고 또 나무랄 수도 있는 말이었는데 그런 충고도 하면 안되는 세상이 되었다. 걸핏하면 옷을 같이 맞추어 입고 여자들 수 백명이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주먹을 하늘로 내지르면서 고함지르며 시위 하는 것도 자주 보면서 산다.

예전에 한 여자스님이 구도를 할 때 였습니다. 날이 어둑하여 한 마을로 들어서서 밤을 지낼 곳을 구하여 이집 저집을 찾아다니며 재워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집집마다 거절 당해 잘 곳이 없어 동네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마을은 유교 전통을 지닌 마을이여서 인지 스님에게는 너무나 매정했습니다. 매섭게 추운 이른봄 밤, 밥 한술도 얻어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동네 밖 야산 한 벗나무 밑 한구석에 바람이 막힌 것 같이 보여 거기에서 잘여고 하나 날이 너무 추워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들짐승들이 어둠 속을 설치고 다녀 무섭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지친 몸이여서 깜빡 졸았습니다. 한기가 들어 깨어보니 밤하늘에는 총총히 별이 박혀있고 달이 유난히 밝게 산천을 비추고 있었는데 바로 머리 위에 고고한 달빛을 받은 벗꽃이 활짝 피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마을 쪽을 향해 큰절을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고하면서

‘내 잠자리를 거절한 사람들 덕분에 깨알같이 박힌 아름다운 하늘의 별이 고고한 달빛과 벗꽃 아래에서 나를 찾았네…‘ 그녀는 자신의 잠자리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크게 감사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느집 지붕 밑에서 잠 들었을 것이고 총총히 박힌 하늘의 별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고고한 달빛아래 저 활짝 핀 벗꽃과 나 자신을 깨닫지 못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을을 향해 마음속 깊이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고 합니다. 손바닥을 바로 했다가 뒤엎었다가 하는 것처럼 그 스님은 미움과 감사의 마음을 쉽게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네탓만하고 각박한 세상이되게 한 것은 우리들이 잘못해서 만들어진 세상입니다. 모두가 내 책임입니다. 자업자득 입니다. 지금 너무나 헝클어졌지만 지금이라도 고삐를 단단히 잡고 고쳐지도록 노력하면 예전처럼은 몰라도 조금씩 좋아질 것입니다. 좋은 머리로 연구도 하고 국민들은 애써 노력해서 밤하늘에 총총하게 박힌 별도보게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매사를 자기아집에 결부시켜서 타협하기 싫어하고 흑아니면 백 이여야 하는 고칠줄 모르고 안달하는 우리들을 많이 부끄럽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르면 절대로 같이 할수 없고 영원한 평행선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들을 많이 볼수 있는데 다시 한번 상대편을 고려 해볼수는 절대로 없을까요?

대화하고 타협하고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행복 할수도 있을 것인데….

낙시배 사고도 국가가책임 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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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시배 사고도 국가가책임 진다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인천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고에 대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 국가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를 맡고 한 사람이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고 했다. 참 갸륵한 마음이고 국가가 민간들끼리의 사고에서 한사람 생명에 까지도 철저히 돌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내생각은 국가가 책임질 것과 그럴수 없는 것을 구분하여야 한다. 국가를 위해 일하다가 일어난 사고도 아닌 자기취미 즐길려고 그 꼭두새벽에 비싼돈 주고 배 전세내어 가는것은 즐길려고 하다가 당한 일반 사고를 그렇게 야단시리 대통령이 선두에서서 직원들 묵념을 시키고 모든걸 국가가 책임진다고 하는데 그러자면 막대한 국가 돈이 없어진다.

요즘보면 1억이니 40억이니 하는 거액의돈 고위공직자들이 너도나도 바치고 쓰고 한 것으로 이게 나라냐 싶은 생각을하게 한것들 국민들이 보고있다.

국가돈은 모두가 국민의 세금이다 그중에는 거리에 종이박스 주워 팔아 사시는 할머니도, 배속에든 태아도 내어야 하는 국가 잘되라고 내는 세금도 들어있다.

무슨 소리냐고? 세금은 직접 내 명의로 내는 세금 직접세가 있고 내명의는 아니지만 내는 세금 간접세도 많다 과자를 사먹으면 그 과자회사가 내는 소득세(법인세), 부가가치세, 그외 교육세, 휘발유세, 재산세, 등등 국내세법에 명기된 세금들이 포함되어 정해진 가격을지불하고 사서 먹는다. 이것은 태아도 어머니에게 받아먹는 영양소에도 포함된 것을 먹고자라 세상에 태어난다. 또 길가에 있는 노숙자들이 마시는 음식과 술에도 그런 세금이 들어있어 그들도 낸 세금이다.

이렇게 모아진 세금을 대통령 되었다고 마구 그래 이것도, 그것도, 저것도 해 주겟소 하는 것은 자기인기 유지하기 위한 마음이 전혀없이 그렇게 한다고 여기는 국민이 드물다. 국가 돈은 피묻은 돈도 많이 있는 것 명심하고 정무를 보아야 할것이다.

얼마 전에 어느 노인이 한말이 생각난다. 죽을려니 돈이 아까워 못 죽겠다고 하였다. 내가 알기로 그노인은 재산이 별로없다 그래서 무슨 돈이 그리 아깝냐고 물었더니 매달 나오는 국가유공자가 받는 돈 150만원이 아깝단다. 무얼 했는지 어찌하여 그렇게 많이 매월 받고 사는지는 모른다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런 나라다. 공무원하고 나면 죽을때까지 보훈대우 받고 보훈병원에서 무료치료 라고할 대우 받으며 살아있는 한 연금도 그렇게 받는 나라 그 돈은 모두가 국민들이 낸 세금이다. 틀을 잘 만들어서 남이 낸 세금들 모아서 내는 자들이야 몰라도 정말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낸세금도 너무나 많다. 그런 것 고려해서 잘써야 할것이다.

통신업하는 대기업 수백억 내는 세금은 가난한 이’산고수장’이 쓰는 휴대폰 때문에 내가낸 각종 세금도 들어있다 그런 것 모아서 내었다고 얼굴은 지들이 낸다 말이다. 그런 돈을 법규위반하고 잘못해서 사고당한 것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 어찌해서 그런 발상을 또 하고 있는지, 세월호사고 때 한사람의 시신이라도 다 찾도록 하겠다고 세계역사상 유래 없는 짓거리를 수년이 지나도록 온갖 작단 해가며 하더니 세월이지나도 또 반복인 것 같으다.

중소기업들 청년 취업시키면 국가 돈 보태준다, 놀고있는 자들 실업수당도 더 올려준다, 지금 65세면 10년전에 50세정도의 건강한 사람이다 이들에게도 노인 대우해서 전철공짜로 태워주고 기초연금도 주고, 나라 돈은 내돈 아니니 마구 퍼주는 행위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아니다.

노인의 기준도 70세로올리고, 국가 돈은 공익성을 철저히 따져서 써야하며, 청년들 너도나도 공무원 될려고 아우성인나라는 공무원 천국이여서 그런 것이다. 집행 잘못하여 사고 났으면 그 담당 공직자는 엄벌에 처하는 것부터 하여야 할것이다.

국가돈 쓰는 것 보통사람들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곳에 써야 한다 절대로 그잘난 인기위주로 쓴다는 소리 듣지나 않을지 한번더 생각 해보고써라.

 

아이데리러 가야 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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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데리러 가야 한다는데…

아침에 안개로 앞이 잘 안 보이는 날이다. 블로그에 글 한줄 쓸려고 인터넷에 들어가서 보니 전날 한때 ‘특검복덩이’라고 칭하던 장시호의 선고공판이 있었는데 검찰의 구형보다 높게 2년 6개월이 선고되었다는 글과 그가 한말이 마음에 캥긴다.

“아이 대리러 가야 하는데 내가 어디로 도망가겠어요”하며 애타하는 세상 때 그리 묻지 않았는 그러나 법을 여겼는 가냘픈 여인, 한 어린아이 엄마가 하는 말을 보았다. 나는 왠지 덩달아 마음이 짜안하여 이글을 쓴다.

많은 사람이 보아주지도 않고 그리 깊은 공감도 얻지 못하면서도 내 마음 풀려고 하지만 그러나 이것도 내 남은 생동안 이땅에 함께사는 이들에게 조금의 보탬이 될가 싶기도 하여 이렇게 블로그를 하고있다.

한 어린아이 어머니의 진정어린 순수한 말이다. 한 아이는 엄마가 오늘은 왜 안 오는지 어리둥절 할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데리러 왔을 때 “엄마는…?” 이라고 물을 것이다.

그때 그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것이다. 바른대로 수갑차고 감옥에 갔다고 하지는 못하고, 해본들 그게 무슨 말인지도 알지 못할 아이다.

엄마는 끔직이 사랑하는 아이이고, 아이는 세상에서 내 엄마만 있으면 행복하여 방실방실 읏는다. 그런 엄마와 아이였었다. 그런 순수한 관계가 오늘은 허물어지고 엄마도 아이도 한없이 슬픈 날이다.

​그 어린것도 덩달아 벌을 받고 있는것이다. 어머니 장시호는 벌을 받을 짓을 했으니 받지만 그 어린것도 그렇게 해도 될까? 그것이 무슨 잘못을 했나 언제 돌아 올런지 모를 엄마를 그리며 울고 또 울고… 엄마장시호가 2년6개월 감옥생활하고 아이도 엄마없는 이땅에서 그 긴기간을 살아야한다.

그것은 엄마가 사는것보다 더힘든 벌이아닐까? 그것을 생각하니 내 풀에 마음이 짜안해서 눈가가 젖을려고 한다. 엄마와 아기 둘을 2년6개월 동안 즉 두명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잘 안다. 요즈음은 안 그렇지만 며느리가 늦게 늦둥이를 나아서 아내와 나는  살던곳을 떠나 이사까지 와서 도와 주느라고 2년 넘도록 며느리와 함께 키웠고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고 늦둥이 손자도 행복하게 자랐다.

그 길다면 긴 세월 동안 우리와 있으면서 한번도 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이 키우고 컸다 그것은 그만큼 지도 행복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얼굴만 맞대면 방실방실 우리도 우울할때도 그놈만 보면 다잊고 즐거웠다. 그런데 엄마와는 그몇배로 더 하는것을 보았기에 말이다.

며칠 전에 우리집에 지들 가족 넷이와서 함께 점심을 먹고 갔는데 아내와 나도 아파트 일층까지 내려가서 안녕하며 손을 서로 흔들었는데 이제 4살된 막내는 지 옆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고 우리가 안보일 때까지 내다보고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갔었다.

그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사랑으로 큰 자식은 사랑할 줄도 안다고 저것이 어찌 저럴줄 알겠나고. 그 귀엽고 간절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눈에선하다.

그런 아기가 집에서 울고 있을것이다. 못난 이모만 믿고 하라는데로 하고 따라다니다가 안타깝게 되었고 특검 사람들에게 그때 상세하게 말한 것은 뇌우쳤기에 그렇게 했다 벌은 사람을 고통 줄려고 주는것이 아니고 뉘우치게 할려고 벌을주는 것이다.

뉘우치는 것을 보았고 지금 그렇게 살고있으면 인정해주어도 되는 것아닐까? 검사가 구형한 것을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요즈음 보면 법원판결을 잘못했느니 어느 기관과 대적하느니 하는 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그런 맥락은 아니다. 다만 죄는 밉지만 인간은 미워 하지말아, 또 뉘우친 사람은 그것을 알아주자고 하는말이다.

아직도 안개는 걷어지지 않고 그대로네…

 

가난했던 시절 곱장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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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시절 곱장리를 아시나요.

지금 이 글을 읽으면 젊은이들 세상에 그런 세상도 있었군요 할 것이다.

이른봄 춘궁기 그러니 보리가 필 무렵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 초롱초롱한 자식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가난한 아비는 기가 찬다. 쌀은 없어진지 오래고 보리쌀, , 등 잡곡도 달랑달랑 하던 때 동내 배불뚝이 영감네 집에가서 먹을거리 쌀이나 보리나 조 등을 꾸어온다가을걷이 추수를해서 배로 주기로 하고, 그게 곱 장리다.

그걸로 막 돋아나는 쑥이나 산나물 먹다 남은것, 저장해둔 무를 썰어넣고 쌀 조금넣은 멀건 죽으로 보리가 여물 때까지 그렇게 먹으며 연명을 한다.

, 세살 터울의 아이들 대 여섯명이 눈알만 커다랗고 영양실조로 다리 팔은 나뭇가지같이 머리만 커다랗게 보이는 그런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엄마는 이놈의 가난이원수다.

물론 쑥죽은 말할 것도 없고 소나무껍질 벗기고 속에 연한껍질은 송기라고 그것을 빻아서 죽도 끓여먹으며 몇 개월을 살았다. 그런 시대도 있었다. 그렇게 이른봄을 지나며 안죽고 살아서 보리가 채 여물자 말자 조금 베어서 말려서 보리죽을 끓여 먹는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동내에 30%정도 되었다.

그때가 50년대 그러니 지금부터 60~70년 전쯤 그런 세상을 경험했거나 보았거나 한 세대들이 아직 살아 있다.

그때 곱장리 놓으며 살았는 사람들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 시절은 그게 이해가 어느 정도 되는 시대였고 요즈음도 간혹 소설 같은데서 10리길동안 내땅 밟지 않고는 다닐수 없었다고 쓴 것 보는데 그렇게 하면서 살았는 그 부자들은 왜놈의 세력과 결탁하여 축재한자들이 많았으므로 지금도 부자를 꼬갑게 여기는 사고가 있는 것 아닌가 한다.

그런 곱 장리는 기간으로 따지면 6개월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세상에 6개월만에 배로 늘어나는 이자 놀이다. 그 시대는 은행들도 이자가 월 15%넘는 곳도 있었다. 그것을 정점으로 차츰 내려와서 요즈음 년 2, 3%가되었다.

세상도 나라도 너무나 변했다. 그저께 보니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년 1.25%에서 1.5%로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따라서 조금은 더 오를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사 금융은 존재하는데 가난한 사람들 급히 돈이 필요하나 시중은행, 저축은행, 신협 등 제도권 금융에는 거들떠보지도 못하고 사채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로 인해 무서운 사건들도 일어나는 것 심심찮게 간혹 보기도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예나 지금이나 부익부 빈익빈은 사라지지 않고 세월이 지날수록 더 심각해 지고있다. 곱장리는 참 오래 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