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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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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2.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한 시간이 넘도록 다니다가 숙소에 돌아가니 네 명은 아직 한밤중이다. 시끄러우면 곤하게 자는 아이들 깰가봐 아침준비를 할수도 없고 tv도 볼수없고 아무것도 할수없다 그렇다고 다시 또 나갈려니 그것도 그렇고 할 수 없이 다시 우리도 잘려고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뒤척이기를 하면서.

데리고 다니며 돌보아주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느을 염려했던 아버지어머니는 이제 거꾸로 지들의 염려를 받으며 이렇게 늙었다. 이렇게 여행이라고 함께하는 것도 이제 몇번을 할려는지 또 이런 조금은 서글픈 생각도 한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나니 어린손자가 들어오면서 하부지하며 할머니에게 안긴다. 할머니소리는 안하고 할머니도 하부지 할배도 하부지다ㅎ. 시계를 보니 10시다 집에서는 7시에 식빵과 계란한개 사과반쪽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며느리가 만든 늦은 아침밥을 먹고 우리는 제주도구경을 하러 나갔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것 가시고 싶은곳 있어요 하였으나 그런거도 없고 니들 가고 싶은 곳에 가자고 하였더니 유모차타는 아이가 있지 내가 많이 걷는 것이 부담되어 그런 것 참고 하니 별로 갈곳이 없었다.

멀리 가지 말고 해안도로를 가다가 바닷가에서 아이들 흙장난이나 하는 것 물에 첨벙거리는 것이나 보자고 했더니 그것도 하고 민속촌인가도보고 몇군데 들러보았으나 과대포장으로 내용은 모두가 시시하고 어둔 하기만 한곳들이고 다리만 아프다. 그러나 애써서 연구하면서 다니는데 힘빠질까 봐 다른 소리도 못하고 내리라면 내리고 타라면 타고 즐러운 표정을 억지로 지으면서 다니는 것 그리 쉽진 않다.

그러다가 제주흑돼지집이라고 인터넷에 유명하다는 곳으로 알려진 곳에서 점심을 2시가넘어서 먹었고 다음날은 비싸다는 요리집에서 제주은갈치 점심도먹었고 서귀포 제래 시장에서 줄을서서 기다리며 사서먹은 흑되지고기 꼬치구이도 먹어보고 차를타고 이쪽에서 주문하고 조금 돌아가서 찾아먹는 쓴맛커피도 먹어보았다.

커피집은 집안에 들어가서 앉아서 마시기는 하지만 길가에서 사서한손에 들고다니며 마시는 것은 보았으나 차타고 입구에 들어가면서 주문하고 돌아나오면서 찾아마시는 것은 말만 들었지 나는 처음 보았다.

그런데 그후 며느리가 운전하고 다녔는데 치킨도 그렇게 해서 사와서 숙소에 와서 먹었다. 지들은 몇번을 다녀왔으니 제주도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다.

세상에, 언제부터 이렇게 이나라가 이토록 현대화되었는지 이번 여행으로 나는 전장에서 말했다싶이 마음속으로 물결이 출렁거리고 내 영혼이 살이 많이 쪘다 먹어서 몸이 살찌고 ㅎㅎ

그리고 또 어린 막내손자 할배가 걸음이 둔하고 다리가아파 앉아서 쉬고있으면 오라고 손짓하고 그래도 안가면 쫓아와서 손을잡아 끌면서 무어라 지껄이며 끌고가면 또 따라가야 한다 조금은 괴로우면서도 그게 내게는 너무 즐겁고 그놈이 너무나 이뻤다. 지금도 그놈이 여행에서 한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고 마냥 즐겁다.

성산포 일출봉, 한라산, 천제연폭포도 걷는 것이 많아 못보고 이틋날은 제주에서 다음날은 서귀포에서 이곳 저곳을 많이 보았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도 어렵고 그래도 아무런 아쉬움도 없다. 다만 아이들과 34일을 함께지나며 있었고 많은 모습들보고 이야기하며 지난 것이 그어떤 것 보다 더즐거웠다. 그리고 행복감에 젖어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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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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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1.

지난 주말 28일 아이들과 제주도에 가서 4일을 있었다. 제주도는 운동하는 모임에서 여럿이 다녀오긴 했으나 별로였고 그거는 하도 오래되어서 지금 오라 아라라는 골프장이름 기억뿐이었는데 여행이라고 할 여행은 처음이다.

아들이 지난달 초에 아부지 작년에 고생하셨는데 어디 휴가 겸 저희들과 제주도 갑시다 했다 전에도 일년에 한 두번씩 저들과 함께 이곳 저곳을 다닌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일년 동안 내가 다처서 못했는데 가잔다.

나는 선듯 그래 그거 좋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따라 다니는데 힘들 것이다는 생각이 들고 다니는것이 겁나서, 또 늙은 우리 때문에 지들이 불편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경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고 선뜻 그러자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 좀 생각해 보자 했더니 그후 며칠이 지나더니 28에 예약을 모두 해 두었으니 그렇게 합시다 한다.

내 아들이지만 나와는 많이 다른 무엇이든 박력있게 처리하는 아이인데 이번에 또 그렇게 했다.않된다 소리도 못하고 “그래 애~”라고 하며 성사된 여행이다. 아내도 나와 같이 중국으로 다니며 볼 것도 많이 보고 항상 하는 이야기 중국 유명지를 많이 보니 한국 명승지는 장난감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며 별로로 여겼으나 막상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보니 너무 좋아했다. 나도 덩달아 찜찜하던 기분은 간곳없고 아들네와 가는 여행이 즐거웠다.

누군가가 했는지는 몰라도 ‘인생은 여행이고 여행은 인생이다. 여행은 체험의 보고이며 아름다운 추억의 산실 또 여행은 삶을 풍요롭게 하며 영혼을 살찌운다’고 했다 그 말중에 영혼을 살찌운다는 말이 내게는 너무나 와 닫는 문구다. 그냥 무엇을 보고 예쁘다 좋다 보다 그것을 보고 느끼는 마음속의 물결이 영혼을 살찌게 하는 것 아닐까? 여행이 별거냐 가고 오고 다니면서 보고느낌이 풍부하면 그것이 가장 좋은 여행이 아닐까.

6학년이된 큰손자 이제는 너무 어른스럽고 세상에 태어난지 엊그제 3돌이 지난 막네 손자놈 이제는 비행기도 잘 타고 말도 조금씩하고 어린이 집에 다니더니 서로 협조하는 것 배워서 적응 잘하는 기특한 놈이다. 지도 아기인데 뒷좌석에서 우는 아기보고 아기가 운다고 어서 달래주라고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이야! 아이야” 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보이고 무언가를 지껄이는데 에미는 알아듣는 것 같으나 나는 모르는 말이다.ㅎ

5시 조금넘어 도착했는데 우리는 9인승 승합을 렌트해서 저녁을 먹고 ‘절물자연휴양림’ 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8시가넘었다. 휴양림 이름이 이상하다 절물이 무슨 의미일까? 주욱 주욱 곧은 깔끔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속에 숲만큼 깔끔한 숙소가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여 지어져서 춥지도 덥지도 않고 또 파리 모기들도 아직은 없는 좋은 계절에 행복하다고 해도 될 여행이었다.

하루밤을 자고 아침산책길에서 보니 빽빽하게 들어찬 그 멋쟁이 나무들은 삼나무란다. 절물이란 이름의 유래는 그곳에 예전에 절과 물이 있었다고 절물 이란다. 머 그렇게 멋대가리 없이 지어진 이름인지.ㅎ 그러나 절은 없어지고 산중턱에 약수터가 있는데 그물이 제주에서 가장 좋다고 하였다 없어진 절 대신에 약사암이란 암자가 있는데 이른 아침인데 스피카로 염불소리만 청아하게 들리고 중도 사람도 볼수는 없었다.

차라리 삼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빽빽하게 들어찼는데 삼나무휴양림이고 하면…. 나 혼자 내방식의 생각이다.ㅎㅎ

*참고. 위치. 제주시 명림로 584 (산림청소관국유림). 전화. 064 728 1510. 홈페이지.http://jeolmul.jeju.go.kr  시설사용료. 6인실기준 비수기 4.5만원 성수기 8만원 정도. 4인실 6인실 8인 12인 20인실등 다양함

가정의달 감사의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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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달 감사의달에….

이제는 바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도 감사의 글을 써야할 것 같다. 열심히 일하며 주변 돌보며 살고있다. 아버지에게도 잘 할려고 애쓰나 내가 지들만할 때 아버지에게 마음 쓰는것에 비하면 좀 섭섭 하다 그러나 그렇게 비교하는 것은 내가 욕심이 많은 것이다고 자신을 타이른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아버지도 내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고….

이달은 우리 집은 행사가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아내생일, 우리집의 행복동이 막내 손자 이제 36개월이 되는날도 26일이다 등등 바쁘고 따라서 돈도 들어간다. 29일에는 귀국하고 몇해 동안 벼르던 여행을 외국으로 가자고 하는데 기어코 아내가 고집 부려서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에 갈려고 아이들이 준비를 해두었다.

사람은 자주보고 연락을하고 하여야 정이 식지않고 서먹했던 관계도 사라지는데 귀국하면 10년동안 소홀 했던 그래서 느을 미안했던 것들 많이 할거라고 마음먹었으나 와서 지나보니 그 또한 그때 마음처럼 한 것이 없다. 몇 않되는 사람들 내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던 주변에 사람들과도 자주 보지 못하고 연락하지 못하고 지나고있다. 예전 같으면 한 울타리에 살고 있겠지만 요즈음은 어쩌다 보면 일년에 한두번 볼수도 있는 내 동생들께도, 처가 쪽에도 못난 형부 끔찍히 마음 쓰는 처제 그들 내외 건강히 잘 있냐고 하여야 할건데 하면서 올해도 그냥 지난다.

바로 아래 동생은 나보다는 3살 아래이고 돈도 많이 벌어 기업체도 가지고 잘 살고 있다. 그 다음 이제는 모두 할머니가 된 두 여동생에게도, 그리고 나보다 스무살이나 적은 막내, 중간 셋째는 군에 장교로 제대해서 야망이 너무커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큰물에 놀고 싶어 허둥대는 놈도 있다.

부모님 선생님 나에게 도움을 준 윗분들에게도 마음보내자, 아들딸 동생 등 나를 위해서 끔찍히 애써준 아랫사람들께는 받기만 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나를 건강히 살도록 마음써 주는 젊은제자 직장후배 친구에게도 마음 써주자. 위에서 받은 사랑만 감사히 여기지 말고 내 옆에서 나를 아껴준 나의 지팡이들에께도 감사하자는 생각이 든다 전화로 나마 연락하고 건강히 잘 지나라고 그리고 열심히 살자고하자.

요즈음은 너무 지나치게 쓸대 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 이야기를 블로그에 많이 쓴다 이렇게 된것 모두 블로그 친구님들 배려라 여겨 지금 감사의 말씀드린다. 격려해 주셨던 분들께도 일일이 전화 드리고 싶으나 번호도 모르고 이 지면을 통해서 “너무 감사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는일들 모두 이루십시요” 고 말씀을 드린다.

때로는 쓸쓸해서 쓴 글도 있고 세상 살아 가는게 너무 답답해서 투정하는 이야기도 있다. 모두들 너그러이 봐 주시고 항상 아껴 주신 것 너무 고맙게 여긴다. 그리고 또 하루에도 수많은 글 모두다 보시고 검토하여 많이 보았으면 싶은것 오래 머물게 해주시는 운영자님께도 심심한 감사 드린다.

이 싱그러운 달 5월 가정의 달, 감사 표시를 하는 달이라고 하는 달, 이땅의 모든 식물들 점점 싱그러워 저서 멀지 않아 푸르고 울창한 숲을 이루듯이 모두들 건강하게 우리라는 커다란 무리되어 힘을 합해 건강한 사회가 되고 부강한 국가가 되었으면 한다. 나 또한 그리 되도록 작은 힘이지만 쉬지 않고 힘써 볼려고 한다.

내일은 대통령이 선출되는 날이다. 짧은 선거기간이었지만 흉측스러운 말도 많았고 마음상한 언행들이 많았지만 모두 관용하여 새 출발하는 정부 마음껏 도와서 5월의 자연만큼 아름다운 나라 되기를 우리모두축복하자.

*요즈음 내블로그에는 스팸뎃글이 너무많이 달려서 걱정입니다. 일본어로 영어로 쓴 뎃글인데 비아그라라는 단어도 있고 그런 댓글이 며칠전에는 글 등록할려고 보니 198개나 와 있어서 기가막혀 닫아버리고 일이 있어서 다녀 왔는데 오늘보니 또 337개나 몹쓸 뎃글이 또 달려있어요 이거 야단 났습니다. 보통  20개정도의 스팸이 달렸는데 이럴 때는 하나 하나씩 처리해야 하는지 일괄처리하는 무슨 방법이 있는지 번번이 운영자님께 말씀 드릴수도없고….

2017년 5월 8일. 산고수장.

 

벗꽃이 만발한 4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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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꽃이 만발한 4월에…

올해도 벌써 4월 중순, 이곳에도 봄에피는 꽃이 만개한 무르익은 봄이 되었다. 곧 장미의 계절이라는 5,6월이 올 것이다.

며칠전 새벽에 화장실 가고싶어 잠이 깨어보니 넓은 창으로 달빛이 들어와서 방안이 환 하였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둥근달이 보이고 그 옆에는 커다란 별도 보인다. 아, 보름이구나 연일 구름도 많고 또 요즈음 괴롭히는 먼지들 때문에 멀리 볼수는 없었는데 오늘은 청명한 날이 될 것 같다.

거실에서도 방안에서도 시야가 탁트여서 멀리 볼수 있고 더 좋은 것은 임진강 흐르는 물이 보이는 그 경치를 보고 산 집이다. 참 행복한 집이다 큰 자식을 낳을려면 집 앞 시야가 적어도 수십리는 트여야 한다고 하시던 아버님 말씀을 생각하며 산 집이다. 하기사 이 나이에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만…

어제 보니 아파트 경내 화려하게 핀 벗꽃들 목련꽃들이 뎅강 뎅강 짤려 나가고 어떤 것은 커다란 가지도 짤려서 동댕이 쳐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사 나무들 전지한다고 그런 것이다. 진작 겨울이 끝날 즈음 했으면 나무도 수고를 덜하였으며 애처롭게 나 딩구는 꽃들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을 하는 생각을 하였다. 세상에 모든 것은 하여야 할 때가있다.

올해의 봄은 예상에 없던 대선이 있게 되어서 요즈음 연일 시끄럽다. 너도나도 대통령 되겠다고 머라카노, 열 세명이 등록 했다나ㅎㅎ. 시끌시끌한 날의 연속이다 어서 5월 9일이 지났으면 한다만 그것이 지난들 지금보다 조용해지겠나? 세상은 더 시끄러워 질 것 같다만 그것도 사람들 인생살이처럼 그렇게 하면서 지나갈 것이다.

언제 태평성대구나 한 생각으로 산적이나 있었나, 그렇게 티격태격 하면서 걱정해가면서 살았지만 그래도 이제 우리나라도 좋은 나라가 되었다. 돈이 없어 작은 병은물론 큰병도 병원 못가고 자랐으나 살다 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

옷이나 신발 하나 사면 그것이 떨어져서 너덜너덜 하도록 입고 신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커서는 쥐꼬리 만한돈 월급 받아서 아이들 키우고 부모님 모시고 사느라고 그저 아끼고 살아가느라고 그 흔하게 먹는 보약한재도 안먹고 지났는데 그게 지금 보니 이 건강이 유지되는데 일조를 한 것 같다. 못 먹고 지나서 건강하다는 생각…ㅎ, 좀 우습다.

그러고 보니 참 좋은 나라가 되었다 요즈음 신발 한켜레 쌀 한가니 값 주고 산 소위 유명메이커신발도 떨어지기는커녕 실증 나서 안 신고 버리는 것이 대다수이고 옷도 유행 지나서, 입기 싫어서 버리는 것 내집의 경우도 부지기수다. 폐품 버리는 날 동마다 버려진 폐품들 보면 멀정한 물건 새것 같은 가구들, 아이들 유모차, 자전거, 방안에 두고 요긴하게 쓰던 소품들도 전자제품도 많이 버려져 있다. 몇 번을 서비스센타에서 고쳐 쓰는 우리집 것보다 훨씬 뒤에 나온 새것 같은 것들도 많이 보인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귀가 멍멍해서 동내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같더니 의사가 들여다 보면서 새까만 귀지를 끄집어내주었다 갑자기 시원하고 말이 청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돈은 1400원을 주었다. 집에서 끄집어내는 기구로 잘못 수셔서 아프기도 한적이 많았는데 그럴 필요도 없다.

먹고 싶은 것 찾아 다니며 먹을수 있고 볼거리 볼려고 외국에도 마음대로 다니는 사람들로 곂치는 연휴마다 맛집이며 공항은 북새통이고 맛있는 것 너무 자주 많이 먹어서 살 빼느라고 고민하는 사람이 전체 반이나 되는 이런 좋은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나라가 되었는데도 어느 통계에서 보니 나는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세계 평균은 고사하고 하위라고 하였다. 유명한 분들이 말한 행복은 자기 마음속에 있다 그것을 끄집어 내서 나는 행복하다고 여기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고 그놈의 돈 벌어도 더 벌어야 되고 남이 살아가는 것 보면 다 잘사는데 나만 그렇지 않는 것 같다고 여기니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밖앝을 보니 꽃도 많이 피어있고 새파란 연약한 잎사귀들이 점점 커지고 있는 풀들 나무들이 너무 예쁘다. 이 찬란한 봄 곧 무성해지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우리며 이래도 되는가 생각해보자.

 

 

이제는 옛날이야기 8) 한번은 입어야 하는 삼배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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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옛날이야기 8) 한번은 입어야 하는 삼배옷.

철커덕 척, 철커덕 척… 배틀에 앉아 삼배짜는 소리는 다듬이 방망이이 소리와 함께 우리나라 고유 정서에 녹아있는 대표적인 한국의 소리다.

찢어지도록 가난했던 시절 다듬이질 소리가 늦가을 정서라면 배틀소리는 뜨거운 땡볕을 떠 올리는 여름의 풍경이었다. 그런 배틀로 짠 삼배는 오랫동안 우리 조상님들의 옷 원단이었으며 삼을 기르고 가공해서 짜느라고 얽힌 애환도 참으로 많다.

삼밭은 기름진 옥토가 아니고 산비탈 밭에도 잘 자란다. 3,4월에 씨를 뿌리고 쇠스랑으로 두드려 놓으면 사람 키보다 크게 자라고 그것 배어서 잎은 훑어버리고 줄기만 2,3일동안 물에 담가둔 후 개울가에 특별히 만든 구덩이에 넣어 쌂아 껍대기를 벗겨서 실이 되도록 가늘게 째서 한올씩 빼어서 끝부분을 2, 3cm정도 겹쳐서 무릎 위 맨살에 대고 손으로 비비면 올이 연결된다.

그것을 물레를 돌려서 꼬이게 하면 배를 짜는 실이 된다. 그실을 우리할머니 어머니들이 배틀에 올리고 손으로는 북실을 좌측에서 우측으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보내고 발로는 앞두로 밀어서 한올씩 한올씩 철커덕 거리며 배를짜서 삼배 원단을 만든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수 없고 중국에서 원단이 많이 수입되고 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내어 주었을 때 마이태자는 삼배 옷을 갈아입고 망국의 슬픔을 되 씹으며 개골산(금강산)에 입산했다 왕자에서 평민으로 되었다고 할수도 있겠으나 상을 당하면 삼배 옷을 입드시 나라가 망했는데 그처럼 그의 행위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사회 과학적 철학이 깊이 담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부모가 죽으면 상주가 삼배옷을 입고 3년동안 묘지기를 했다고 하였다 삼배는 이토록 우리 조상들의 애절한 풍습과 철학이 배어있는 섬유다.

삼배에 얽힌 애환으로 또 조선초기 정종때 여진족에게 되 찾은 육진 지역에서는 관에서 아들을 낳자마자 군적에 올려 병력세인 군포로 삼배를 거둬 들였다. 이 군력세가 얼마나 혹독 했던지 서민들이 이것을 면하기 위해 사내아이를 낳으면 고추를 짤랐다는 참혹한 기록이 있다.  삼배는 부녀자들의 원한이 맺힌 원포(怨布)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삼배는 질겨서 농사일에는 제격 이다, 더위를 쫓아 줄뿐 아니라 김매기 거름주기 물대기 등 바쁜 농번기에 작업복으로는 너무나 편리하고 질긴 옷, 한번 장만하면 몇년을 입을 수 있었다. 삼배 바지자락을 걷어 올리고 논이나 밭에서 웅크리고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은 전통적인 그 당시 풍경이었다. 몸에 달라붙지도 않고 까슬 까슬한 식물성 섬유가 몸과 여유 공간을 만들어 공기가 잘 통하고 천연섬유로 목화로 만든 무명배와 함께 요긴한 섬유였다.

그 삼배옷 그리고 무명옷 지금 80대이상 늙은이들은 입고 자란 사람들이다. 나도80은 안 되었지만 어릴 때 많이 입었다. 내 초등학교 졸업사진 보면 검은 바지저고리입고 찍었다.ㅎ

여름에 그 삼배 옷을 입으면 참 시원하고 좋으나 사타구니가 옷에 쓰처서 헐기도 했으며 겨울에는 두텁게 솜 놓은 무명 바지 저고리 한 개만 입고 벌벌 떨면서 냇가에서 얼음지치기도 들불 놀이도 하였던 세대다. 그때는 요즈음 반드시 입어야 하는 속옷은 없었다.

지금은 삼 잎이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물질이 있다는 대마초가 되어서 재배가 엄격히 제한을 받고있다. 또 요즈음 화학 섬유에 밀려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저승갈 때 입고가는 수의로 쓰이고 그 수의는 누구나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죽으면 반드시 입고 가는 옷이다.

요즈음 흔한 알레르기라는 피부염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는것은 화학섬유로 인한 영향이 아닐까 하는데 그렇다고 삼을 심고 목화를 심고 누에 쳐서 비단을 만들고 나무섬유로 만든 인견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면 좋지 않을가 하나 여러 사정상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이제는 삼배와 무명천으로 옷 만들어 입는 것은 옛날 이야기다.

 

 

 

풍수라는 것 믿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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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라는 것 믿어야 할까?

옛날이야기다. 어느 부자집에 손님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집 며느리는 손끝에 물 마를 시간 없이 밥해서 상차려 들이고 술상 차리고 너무 힘겨웠다.

어느날 한 중이 시주를 청하려고 왔다 며느리는 쌀을 한 바가지 퍼주면서 집에 손님이 너무와서 참 힘든다고 하면서 안 오게 할수 없을가요? 하였다. 중은 조금 망설이더니 따라오라고 하더니 뒷산으로 데리고 가서 한곳을 가리키며 여기 돌 기둥을세우라고 하였다. 시키는 데로 하였더니 얼마 안가서 그 집이 망했다따라서 손님은 오지 않았다.

그 뒷산이 자라 목혈인데 거기다가 돌기둥을 세우니 자라가 모가지를 들수가 없으니 망할 수 밖에 없다. 예부터 내려온 이야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터를 보고 좌향을 정해서 짓고 묘자리는 잘못 쓰면 큰 화를 입는다고 여기고 여유있는 집들은 중요시 하는 것 자주 본다.

제비가 와서 집을지을 때 보면 짓기도 편하고 드나들기도 편한 들 바로 옆집에는 안 짓고 동네 중앙에 있는 집에도 짓고, 우리조상들은 저 먼곳 앞산과 옆 언덕도 참고하고 좌향을 보느라고 패철 들여다보고 옆집과 나란하게도 아니고 틀어서 짓고 하였는데 나는 어릴 때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자랐다. 뒷산의 지형도보고 심지어는 지하에 물이 흐른다고 하시면서 그것은 피해서 지어야 한다고 하셨다.

조선시대 학자 중에 풍수론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홍만선이라는 분이 <산림경제>라는 책에서 밝힌 집터의 풍수론에 보면 집터가 좋다는 곳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곳이 좋고 그 반대면 부자는 못되나 부귀는 누린다. 또 앞이 높고 뒤가 낮으면 집안이 망하고, 뒤가 높고 앞이 낮으면 집 짐승이 늘어난다, 움푹 들어간 곳은 가난해지고 평평해야 한다는 등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데 무식한 내가 쓰기는 버겁다.

다만 사람도 자연 속에 있는 한 개체이니 자연과 조화롭게 잘 맞추어 살면 편하게 될것이다는 것으로 여기면 될 것 아닐까 한다. 그런가 하면 요즈음 허허벌판인 논이나 밭 심지어는 묘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어서 그 위 백세대도 살고 큰 단지는 1000여세대도 지어서 살고있다.

즉 현대과학적인 면에서 보면 풍수를 본다는 것은 웃기는 풍습이고 또는 미신이다고 할수있다. 그렇지만 강가에 대단지 아파트는 물안개 때문에 습도문제로 질병과 관련이 있고 차들이 많이 다니는 대도로 옆에 있는 아파트들보면 소음 때문에 차벽을 높게 설치하였으나 그 소리가 완전차단이 안되고 자동차들 배기가스로 건강에 해롭다. 거기다가 풍수설까지 대입시키면 어찌될까 싶으나 그래도 빈집은 없고 사람들이 다 살고있다.

그런데 예전에 없던 흉측스러운 병들이 많이 생기고 그로 인해서 고생을 오랫동안하고 따라서 그것 고치는 병원도 아주 많이 생기고 하는데 그중에 그런 환경 무시하고 지은 집에서 살아 그렇게 되는 현상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즉 풍수는 사람사는 환경을 보는 것 아닐까?

수 백년을 이어져 살고 있는 농촌 동내를 잘 보면 대개들 약간의 거리 차이는 있어도 배산임수 인 동내이고 문외한이라도 보이는 것이 있다. 그 중에 저 집은 싶은 집은 자손들이 잘 된 집이다.

농촌에 사람 사는 환경 즉 앞에 큰 산이 막혀 있는 곳은 음지여서 일조량이 적을 것이고 지하에 수맥이 흐르는 곳 위에는 땅 마를 날이 적을 것이고 위에 언급한 것들처럼 남향이고 평지고 집 뒤가 약간 높은곳 보기만해도 살고 싶은집이 있는가 하면 보기에도 으시시해 보이는 집이있다.

따라서 아무리 현대이고 풍수니 하는 것 따를수 없는 세상이지만 아파트도 지형지물도 보고 요즈음 도시 조화도 중요시 하는데 그런 것도, 또 집 에서 앞을 내다보면 경관도 좀 괜찬은지 보고 구입해서 살면 좋을 것이다. 옛말에 저 멀리까지 시야가 확 트이고 밝은 집에살면 큰 인물이 난다는 말도있다.

 

 

 

 

이제는 옛날이야기 7) 여자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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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옛날이야기 7) 여자의 목소리.

여자가 시집을 가면 벙어리로 산다 3년, 나는 귀먹어리다 3년, 앞을 못본다 3년이라고 한 시대도 있었다. 또 칠거지악이라고 행실이 나쁜 여자를 응징하는 7가지 무서운 규범도 있었다. 나 또래의 어머니들까지도 그런 규범으로 살았는데 그분들도 이제는 옛날이야기라고 여기면서 기죽어 사시다가 많이 유명을 달리하셨고 몇 안남았다.

그리고 난후 한 세대가 지난 우리 때부터 아니 무슨 소리세요 왜 이나라의 여성에게 이토록 홀대를 하나요 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오더니 그리고 또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여자는 이땅에서 주인이 되었다. 남자들은 너나할것없이 들러리이고 여자를 위하여 살아가는 노복처럼 되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는데 지금은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조차도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 세상이 있었다는 것도 잘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불과 60여년이 지났는데 이토록 달라 질수가 있나?

그렇게 사셨던 어머니들은 이제 할머니가 되어서 너무 달라진 세상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한탄하면서도 며느리에게 할말도 못하고 살았는데 그 아래대 시어머니들은 오히려 자기자식의 아내에게 눈치 코치보며 숨도 크게 못 쉬고 살아간다. 누가 모진 시집살이한 사람이 모진시어머니 된다고 하였나 그런 말은 사라진지 오래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하는 말 “말조심해라 너 말 한번 잘못하면 금지옥엽으로 키운 내아들이 설음 당한다, 나가서도 기죽어 살고 집에서도 할말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 아들 불쌍 하쟌니? 그저 니가 보고도 못 본척 듣고도 안 들은척 하고 하고싶은 말도 참고 또참고 살아라.”고 하면서서로 격려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살면서 그 스트레스는 이제는 다 늙었는 남편들 소위 영감에게 풀기도 한다. 내 경우도 아내가 요즈음 조금 무섭다. 때로는 그날 기분이 어떤지 나는 살피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도 참고 조심해서 한다. 돈을 많이 벌어놓지 못해서 일직이 경제권도 주어버렸더니 살아가는데 그런 것 걱정하지 않고 지나니 편하기도 하지만 아내는 쪼개고 아끼고 하면서 살아는 것 보면 나는 때로는 아내가 안스럽고 나는 조금 처량한 생각이 들때도 있다.

물론 아내도 조심은하나 간혹은 어딜 좀 다녀 올려면 거기 왜 가나요? 하면서 물을때 구구한 설명 해서 설득시켜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럴 때면 자존심도 상하지만 꾹 참아야 한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걸핏하면 외식을 자주하는 것 보면서 돈 쓰고 나쁜 음식들 자주 먹어 살이 찐다고 걱정하고 손자도 그런 음식들 자주 먹어서 장차 체형에 체질에 변화가 오고 건강이 나빠진다고 느을 걱정도 한다. 그외 여러가지 못마땅한 것들 많다 그렇지만 여기에 쓰지도 못한다. 혹시나 아들며느리가 이 블로그를 간혹 보는데 그럴까 싶어서 못쓴다.

그런 불평은 내게 하고 집안친척들 간에 일들도 거슬리는 것 있으면 내게 불평을 하고 어떤 때는 내가 동내 북이가 싶을 때도 있다.ㅎ

자기자식이라고 다큰 자식에게 우리 부모님들처럼 언성 높여 야단치고 며느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절대로 못하고 손자에게도 옷가지 하나를 사줄려고 해도 늙은이 관점에서 본 마음에 안 드는 옷 사주면 안 입힐려니 미안하고 입히기 싫고 할까 봐 그것도 못한다.

한번은 겨우 걸음 걷는 어린것 신발이 요즈음 유명메이커제품 투박스러운 것이여서 내딴은 가벼운 것 사준다고 남대문 시장에 가서 온 시장 돌아다니며 겨우 가벼운 것 사주었더니 신기지않았다. 유명제품이 아니여서인지 그렇다고 물어 볼수도 없고….ㅎ 내 아들과 며느리가 어른들 무시하고 그런 아이들은 아니고 착한 아이들인데도 그렇다. 세상이 너무 빨리 많이 달라졌다. 별거아닌 부끄러운 지난 이야기를 오늘 또 한참 썼네.

 

 

 

 

 

 

 

나날이 늘어나는 커피숍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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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늘어나는 커피숍을 보면서.

거리를 다니면서 보면 한집건너 커피숍이다 상호도 이상하게 반드시 영어로 쓰인 것이 특징이다 들여다 보면 약속 장소로 정하고 한잔 앞에두고 마실수 있는 집은 드물다 그 이름도 생소한 것들이고 아매리카노라나 그거는 4천원 그 외 다른 것 들은 6천원 7 천원 나는 아~ 입이 벌어진다.

그리고 거리에서 보면 아기를 앞에 메고 한손에는 아기가방들고 다른 한손에는 뚜껑이 동그란데 빨때가 꼽혀있는 커피컵을 들고 다니는 것 흔히 볼수있다. 연약해 보이는 젊은 여인이 그런 모습으로 사람속을 해 집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혹시나 잘못하면 컵을 엎지르기도 하고 넘어질까 불안한 마음으로 본다.

그런 커피 한때는 몸에 해롭다고 공부 많이 한 박사라는 사람들이 논문으로 발표해서 겁나게 하고 우리차 마시기 하자고 하면서 록차, 영지차, 쌍화차, 생강차, 둥굴레차 하면서 장려 한때도 있었는데 요즈음은 그게 아니고 마셔도 좋다는 쪽으로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나 같이 어리버리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배운 사람들이 그 지식으로 세상을 바르게 인도 해야지 그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햇 갈리게 한다.

그런데 어떤분이 쓴 글을 읽으니 우리나라 커피 관련 시장 규모가년 5조3천억원 (2014년 기준)이고 우리나라의 주식인 쌀매출 보다 규모가 더 크다고 하는 것을 읽었다 하기사 한잔에 5, 6천원 계산하고 커피잔 거리에 들고 나니며 그것을 하루에 5, 6회씩을 마셔대니 그럴 것 같다.

나쁘다고 하는 쪽의 말을 간추려 보면 독성이 있는 향 정신성 물질이 있으므로 해롭다. 또 발암 물질이 들어있다 하루에 3잔 이상은 안 먹는게 좋다 고 한다. 또 다른 쪽의 말을 들어보면 만병 통치의 음료가 아닌가 한다 그 향을 맡으면 참 좋다 고소하기도 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그 맛 누룽지 먹는맛 같기도 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 좋은 맛 카페인이 들어서 피곤한 두뇌를 맑게해서 상쾌하게 해주고 암 발생을 예방해주고 심장질환 치매예방 등등 너무 좋은 것이다고 한다.

어느것이 맞는 말인지 누구가 정직하게 알려준 것 인지 확신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향과 맛이 취향에 맞고 마시고 싶으면 약간의 무게감도 있는 고풍스러운 커피잔으로 바로 뽑은 커피한잔 탁자에 놓고 창밖을 내다보며 오늘같이 시야가 멀리보이는 저 먼곳 내다 보면서 마시자 하루에 2 .3 잔만 그렇게 아침식후 낮 중에 퇴근하고 또 한잔씩 즐겁게 마시면 좋은 음료라고 여겨진다.

아랍 쪽의 사람들에게 처음 알려져서 유럽으로 전해질 때 기독교인들이 사람을 흥분시키는 사탄의 음료라고 하면서 교황에게 못마시게 건의했으나 교황은 오히려 아주 좋은 음료라고 하면서 기독교인들이 많이 마셔서 이교도인 회교도들의 콧대를 꺽어주라고 했다더니 그 교황님은 수세기를 내다보신 통찰력이 있는 분이셨다.ㅎ

나는 그 교황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 잘 만나서 많이 배운 지식이 많다는 그 사람들이 제 나름대로 말하는 것 이랬다 저랬다 하거나 말거나 마시고 싶을 때 마시며 살리라.

세상에 의사들도 지식인들도 지금 이나이 되어보니 일찍이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던 마카 나쁜 놈들 이라고 하시더니 지 자신이 자기를 가장 잘 알지 믿을 사람 없다. 요즈음 시국이 이토록 복잡해서 보니 법도 믿을 수 없고 그것 때문에 때돈 벌고 사는 변호사는 허가 받은 도둑놈이라고 하시더니 그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난다.

세상에 제명대로 살다가 큰 병이 들리면 그로 인해 죽는 것이 사람 한평생이고 자연의 섭리다. 살려고 애쓰고 또 더 살릴려고 해서 더 산다고 별로 즐거울 것도 없는 것 같고, 법이란 것이 갑이나 을이나 병, 정, 무에게도 같이 적용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갑에게는 솜방망이로 적용되고 변호사라는 사람들 모두다는 아니지만 그중에는 저것도 배운 놈이고 사람인가 싶은 행위를 하는 늙은 놈도 있다.

더러운 세상이다.

 

 

오늘은 하부지 기분이 너무 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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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부지 기분이 너무 좋은날.

30개월된 손자가 지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전화를 할머니가 받는 것을 빠안히 쳐다보더니 벗어둔 양말과 윗옷을 안고 오더니 할머니 앞에 놓는다 입혀주니 내게로 오더니 내 손을 꼭 잡고 일어서라고 끈다. 아마 같이 가자는 것 같다. 그렇게 끌려서 현관문을 열고 아내와 셋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래도 손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끌고 가더니 지가먼저 어미에게 안겨서 타고는 나도 타라고 “타 타” 하였다.ㅎ

보통은 할머니와 함께 내려가면 며느리가 받아 뒷좌석의 아기 카시트에 앉힌다 내가 집에서 내려다 보면 아내는 서서 지켜보다가 며느리차가 안보이면 올라오는데 오늘은 나도 그 놈에게 끌려 내려갔다가 왔다.

손자는 나를 부를 때 “하부지”라고 한다 ‘할’ 발음이 어려운 것 같다.ㅎ 아직 나는 몸이 덜 나아서 몸이 가볍지 못한데 갑자기 끌려 내려가서 추운데 벌을 섰다. 그래도 어린 것이 할아버지를 좋아해서 제집에 함께 가자고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참 좋다.

할미는 느을 그놈 자식 나는 지가 오는 날이면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다가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면 추울가봐 보듬어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와서는 손 씼기고 지가 좋아하는 치즈, 요플레, 쵸콜렛도 챙겨 먹이고 티비 어린이프로 켜놓고, 컴켜서 딩동뎅도 열어서 함께 놀아주고 하는데 할아버지만 좋아한다고 불평을 한다.

손자는 일주일에 두번 어린이 집에서 우리 집으로 와서 두어 시간 있다가 가는데 어쩌다가 감기라도 걸려서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날은 그 주일에는 만날 수가 없다 가서 보고 올때도 있지만 며느리가 불편해 할까봐 그것도 염려가 되어 참고 있으면 10일 만에 볼때도 있다. 그럴 때면 많이 보고싶다

며칠 전에는 집에 갈 때 먹던 포도쥬스병을 가지고 가야 한단다 2 리터 반병도 먹지 않아 무거울건데 할머니가 안된다고 두고 가라고 하는데 기어코 지가 안고 갔다. 아범은 욕심이 너무 없는데 이아이 욕심이 있을려나 조금 컷는가 싶어 기분이 좋다. 그후 어느날은 장난감버스를 또 그렇게 가지고 가더니 오늘은 내가 필요해서 사둔 시트지를 가지고 가겠다고 하여 안 된다고 하나 기어코 가져간다고 하여 빼았겨 버렸다. 한 장을 말아둔 것인데… 집에 가면 이런저런 장난감이 진열장에 가득한데 참 히한한 놈이다.

할머니에게 안겨서 집에 들어오면 바로 나를 끌고 내방으로 가서 컴을 켜라고 한다. 켜주면 바탕화면에 저장된 딩동댕(아이들프로) 아이콘을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딩딩딩” 하며 켜라고 한다. 켜주면 거기서 또 몇 종류가 뜨는데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나에게 “이거 이거”하며 지시를 하고 이 하부지는 지가 시키는데로 해주면 된다.

그렇게 나를 끌고 다니며 이런거 저런 것 하라고 하는 것 돌봐주고 두 세시간을 하고 돌아가고 나면 좀 힘겨울 때도 있다 그러나 재롱스럽게 놀았던 귀여운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아내와 둘이는 즐겁다.

두 늙은이가 사니 별로 웃을 일도 없고 조용한 일상으로 지나는데 그놈이 오는 날에는 먹을 것 챙겨주고 놀아주고 하느라고 바쁘고 통통걸음으로 다니는 모습, 어린이 집에서 배운 어린이 프로를 보고 팔을 어설프게 벌리고 옆으로 아래로 움직이며 율동도 하고, 먹는것도 지가 싫으면 절대로 안 먹는것, 문 뒤에 숨어서 숨바꼭질도 하자고 하고, 내가 보이지 않으면 “하부지!” 하면서 좀 큰소리로 오라고 명령도 한다.

이제는 많이 컷다 가고난 후에도 그런 것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하며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도, 아직은 채워주는 하기스 기져귀도 이뻐서 가끔 끄집어내어 보면서 둘이는 즐겁다. 어린이 집에서는 지난 여름부터 선생님이 화장실에 대려가기도 하고 혼자 화장실의 소변기에 바지를 내리고 한다는데 집에서는 절대로 안한다.ㅎ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힘나게 하는 너무나 귀여운 늦둥이 손자다.ㅎ

 

 

 

아들에게 지금도 미안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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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은 아들네와 이틀을 함께하면서 지났다.

요즈음 부모자식이 함께 사는 집이 드물고 내 남없이 서로 떨어져서 살고 구세대 신세대가되어 한 가족이라도 남남인 것처럼 살고있다. 그믐날은 아들과 나는 아이들보는 담당이 되어 함께 있었고 설날은 또 설날이어서 함께 하루 종일 있다가 밤에 지들 집으로 갔다.

해마다 제사 모시고는 처가로 가더니 얼마 전에 처 할머니가 위중하다고 다녀오더니 올해는 가지않았다. 그래서 금년 설은 이틀을 아들네와 함께 지나게 되었다. 그러나 별로 한 말도 없고 주가 이제 30개월된 늦둥이 노는 것이 되어 웃고 따라다니고 주방에서 준비하는 두 여자들 시중도 들고 하였다.

그렇게 이틀을 지나보니 아무것도 한것도 없이 지났는데도 저녁때는 그만 갔으면 싶었다. 둘만이 조용히 살다가 네 식구가 보태어졌고 설날에는 다녀간 동생들과 북적거려서 잔치를 치룬 기분이고 몸도 많이 피곤하고 어제 저녁에는 정신 없이 잤다. 사람의생활은 길들이기에 달렸다더니….

오늘아침이 되니 세상이 조용하고 이제는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 밖을 내다보니 눈이 펑펑 내리고있다. 거실에서나 내가 하루 종일 노는 서재랄까 컴 있는 방에서도 넓은 창으로 내다보면 10여km정도 시야가 탁 트였는데 오늘은 온통 컴컴하더니 금방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다.

이렇게 늙은 둘이 살다가 하나가 죽으면 그때는 어쩌나 아내가 먼저 죽고 나혼자는 하는 걱정도 되지만 내가 먼저 죽고나면 저 늙은 할마시가 어찌 살까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질 때도 있다. 아내는 남에게 폐끼치는 것은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라도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이라 더 걱정이다 말로는 그때는 요양원에 간다고 나모르게 준비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들며느리가 지금으로 봐서는 그렇게 하도록 두지는 않을 것 같으나 안 그러더라도 위와 같은 성격이여서 염려를 많이 하면서 지난다. 또 그때 아들과 며느리는 얼마나 고달프겠나 등등을 생각도 한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니다 잘 할것이다 하고 잊으려고 한다.

설을 지나고 이제 나이가 80이 되어가니 그런 걱정도 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들에게는 많이 미안한 생각을 할때가 자주 있다. 그가 대학 2학년말때 내가 많이 어려워져서 3학년초에 군으로 입대시키고 제대하고도 형편이 풀리지 않아서 어렵게 등록하여 다니게 하였고 4학년때는 어느 은행 전산실에 야간 알바를 하며 졸업을 했다.

대학 2학년까지는 제 친구들이 형편 좋은 친구로 여겨 아내는 많은 친구들의 어머니로 여러 애로를 들어주고 먹여주고 잠재워 주고 하여 폼잡고 다니던 놈이 그런 일을 하며 쭈그러져서 학교에 다니게 한 것이 너무나 미안하다.

오늘은 멀 찾다가 나온 지 누나 대학 졸업때 사진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너무 짜안해서 이 글을 쓴다. 아들은 졸업사진도 앨범이 없다. 그때 졸업앨범에 대해서는 아무말 없어서 나는 잊고 지났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아니고 .아버지에게 부담 덜어 줄려고 말하지 않은것이다.

나는 그것을 그때는 몰랐는데 그후 오래 지나서 가정사정 때문에 그가 그렇게 한 것이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부터는 느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그러나 아들은 단 한번도 그 말을 한적이 없다. 한참 희망이 부풀어 지나고 큰 꿈을 그리며 지날 대학생활을 그는 곤궁한 부모를 보고 어렵게 지나게 한 것이 아직도 마음 아프다.

다행히 그것이 그의 생활에 좋은 거름이 되었는지 지금은 건강한 사회인이고 아버지가 되어 살고 있어서 대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