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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3. 병실에 모기 한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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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3. 병실에 모기 한마리.

목 경추수술은 하고 난 다음날 전신이 많이 아팠다 무기력한 것이 누워도 편하지 않고 앉아도 짜증스럽고 그런데 건너편 방에서 시장판처럼 시끄러웠다. 아마 문병온 친구들인가 본데 목소리와 주고받는 말들을 들어보니 60이넘은 노인들 너댓명인 것 같았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신경질이나 있었는데 천장에 보니 모기 한놈이 붙어있었다.

아니 병원 병실에 모기는 그냥 보고 넘길 것이 아니다 온갖 병으로 입원한 사람들이 있는데 저놈이 어디에서 무슨 짓을하고 여기 와서 있는지 또 무슨 병균을 지니고 와서 쉬고 있다가 옮길려고 하는지 저놈은 아프더라도 죽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보고 있으면서 연구를 해보아도 나로서는 뾰족한 묘책이 없다 천장이 의자위에 올라가야 처리할만큼 높고 모기 죽이는 약이 있어도 잘못하면 달아날 것이고… 나는 연구끝에 좀 큰소리로 천장에 모기가 있는데 저걸 잡아야 하는데 하였으나 옆에 환자들 그래요 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옆에 환자보호자들 여자가 한명 있고 내 아내 그리고 젊은이 한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제사 저놈이 어느 방에서 어떤 환자를 물었고 무슨균을 묻혀서 왔는지 잡아야 하는데 하였으나 그래도 젊은이도 와서 보더니 가버린다. 곧 안 보이는 곳으로 날아갈 것 같기도 하고 내 딴에는 애가 탄다.

아내에게 간호원실에 가서 킬라가 있는지 그리고 모기 잡아 달라고 이야기 해라고 했다. 그런데 예 약 찾아서 가지요 한다더니 오지 않았다. 드디어 옆방을 지나 복도에 있는 간호원실에 아픈 몸을 추스리며 가서 방에 모기가 있는데 약가지고 와서 잡아라고 하였다. 예 하더니 돌아와서 보니 그놈은 아직 그자리에 붙어있었는데 그리고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고 감감소식이다. 그리고 조금있으니 간호사가 왔는데 수시로 그들이 하는 혈압재고 약물들 들어가는 것 검사하고 하는 일상일하러 왔다.

나는 그제사 열이 올라 오라고하고 분풀이를 하듯이 시장판 처럼 시끄러운 것, 또 지난밤에 조선족 간병사들이 병실앞 복도에서 북한말 같은 저속스런 말로 목소리는 어찌 그리 큰지 지껄이고 하하하 하며웃고 하였는 것, 그리고 모기가 병실에 있어서는 않되지 않느냐 하며 조목조목 이야기를 했다. 시작할 때 지금 책임 간호사 좀 불러달라고 하였더니 지가 책임자라고하여 그래 그렇면 당해 봐라는 심산으로 약 5분동안 설교를 했더니 죄송합니다 내일 알아보고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며 나를 설득시켰다.

그러다가 보니 처음 시작할 때는 모기가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달아나고 없었다. 병실에는 모기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 아니냐. 그러나 모기는 많은 엘리베이터에 수시로 다니는 그많은 사람들 따라서 들어올수도 있다 그러나 그후 발견되면 즉시 죽여하는 약이라도 있어야 하고 죽여야 하는데 킬라가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니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한국의 대학병원의 민낯이냐고 나는 다음날 정말 간호실 책임자에게 어제 저녁에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죄송하단다.

그후 나는 까달스럽고 편한 환자가 아니다는 낙인이 찍혀서 내 나름대로 좀 불편한 병실생활로 이틀 있다가 퇴원했다. 좀 윗쪽에 가서 지난 사실들 이야기하고 기분도 풀 겸 할려다가 아내가 말려서 참고 왔다. 아내의 말 “당신이 이병원에 오래도록 있지도 않는데 또 그렇게 한들 습관화 된 관행들이 쉽게 고쳐 지겠소?” 하였다. 그래 알았다 이만 참자.

3D업종이라고 하며 어렵고 힘든 일 우리국민들이 안하니 그자리에 중국조선족이 그후에는 베트남 필리핀인 등 와서 하는데 그러면 교육은 철저히 시켜서 해야 하는데 그 병원에도 많이 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시장판 같기도 하였다. 할 사람없어 고통스러운 것 도움주고 해결해주는 그들이 조금은 고맙지만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늘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간혹 끔직스러운 범죄사건에는 그들이 종종 섞여있는 것을 보고있다.

그리고 간호사도 한 사람이 일반병실 3방을 혼자 담당하니 12,3명이 수시로 불편을 들어 줄려니 너무 바쁘고 어떤 때는 급한 일이 생겼으나 제때 처리가 안되는 경우도 있다. 이래도 저래도 아프지는 말아야 하는데…

 

 

투병생활 2. 현대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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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2. 현대의술.

70년이넘도록 살면서 발전되어가는 의술을 타인으로 또 내가 직접 체험해서 보고 겪을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초등하교 다닐 때 아버지 도와드린다고 보리베기를 하다가 낫에 손을 베어서 된장을 발라서 낫게 하느라고 그 흉터가 지금도 보면 많이 보기 싫다.

그때 시골농촌에 의원은 없고 몇 동내에 하나 한약방이 있었고 가서 보면 방 천장에 나무뿌리 풀뿌리 봉지가 주룽주룽 매달려 있었다. 병의 증세를 이야기하면 듣고 한문으로 쓰여진 너덜너덜한 책을 들여다보고 이것저것 조금씩 준비된 약초들을 한지종이에 싸서 몇봉지 주면 그것 달여먹으며 끙끙 앓으면서 낫기를 기다리고 그러다가 죽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상 즉 상처가나면 면소재지에 있는 약방이라는 신약파는 곳에 아까징키라는 빨간약을 사서 바르고, 부어있으면 옥도정기를 발라서 부기를 가라안치고 종기가나면 됴 고약이라고 고약을 환부크기에 알맞게 약을펴서 붙였다. 하루에 한번씩 갈아붙이는데 그러기를 몇날 며칠 계속하면 종기에 고름이 빨려나오고 속에서 새살이 돋아나와서 나았다.

그런데 그때 그 방식은 환부에 나쁜 불순물을 고약이 빨아내어서 속에서 새살이 차올라서 낫게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 내가 낙상으로 이마가 찢어져서 치료하는 것을 보니 먼저 흉터가 될수있는한 적게 꿰메어 버리고 항생제등으로 낫게 했는데 그후 일년동안 이마 땀구멍에서 불순물이 나왔다. 즉 나쁜 균들과 내몸에서 나온 균들이 약의 도움을 받아 싸워서 이기고 그때 죽은 균들의 시체가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목경추를 다쳤는데 일년이지나도 차도가 없어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 다음날 목에 달린 핏주머니 그리고 오줌 주머니, 팔로 들어가는 약물 등 모든 것을 다 떼어버려도 되겠다고 하면서 떼어버렸다.

나는 허전한 것이 다른거는 몰라도 약물은 흘러 들어가게 두었으면 싶었으나 의사가 하는데 그냥 두고 생각하니 그러면 어제 몸을 째고 속을 파드배고 해놓고 이제부터는 내몸이 스스로 그 아픔을 해결 하고 회복도 내 몸이 스스로 하라는 것인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며 궁금했으나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한번 걸어보니 전보다 다리가 가볍고 훨씬 좋아진 것 같아서 다음날 회진 왔을때 좋다고 했더니 그럴 것이다 수술하면서 신경검사기를 들여다보니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좋더라고 하였다. 그랬는데 그후 다음날 퇴원을 하고 날이 지날수록 확 달라지지 않고 전에 보다는 좋지만 아직은 걷기가 버겁다. 현대의술이 참 놀랍게 발전되었다 싶었지만 신경쪽에는 길만 잡아주지 내가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것인가 싶으다.

병실에 있을 때 보니 머리를 수술하고 칭칭붕대로 감고 누워있는데 아침 회진시에 담당의사가 와서 “이름이 머예요,” “여기가 어디에요,” “내가 누군지알아요,” 하면서 묻는데 들릭락 말락한 소리로 무슨 대답을 하는데 알수는 없으나 뇌수술하고 낳아서 퇴원하는 사람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그 어려운 뇌수술도 하는 것을 보고 현대의술이 대단히 발전했다고 무식하나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80살까지는 이제 보통이고 90살사는 사람이 많은 것이고 예전 같으면 모진 병 걸리면 바로 큰 고통을 느끼다가 죽는데 발달된 현대의술로 장기도 갈아 끼우고 하면서 전보다 수명은 많이 연장 되었지만 장애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갈수록 그런 현상은 늘어날 것 같다. 따라서 나이 많은 노인들은 사는것이 좋다고 하지만 살아가는 고통도 만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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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1. 수술한지 두달 되어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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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1. 수술한지 두달 되어 가는데…

작년 2월 낙상으로 목을 다쳤는데 그냥 두어도 좋아 질거다고 의사가 말했고 나도 수술 안 했으면 싶어서 일년을 약을 먹고 회복을 기다렸으나 별 진전이 없어서 결국은 지난달 초에 수술을 했다.

투병생활이 어렵다는 말 들어도 그거는 남의 일이라고 여기며 나이에 비해서 젊게 살았는데 이제는 내가 그눔의 투병생활 하느라고 폭삭 늙었고 행동거지가 불편하니 매사가 짜증스럽고 사는게 즐겁지는 않다. 또 일년을 수술후 회복을 기다리면서 지나야 한다.

목은 우리몸의 감각을 느끼게하고 움직이게 하는 신경이 지나는 곳이여서 건드리기도 껄끄러운 곳 그곳을 건드려서 그런지 조금 좋아 지긴 해도 시원하게 달라진건 없다. 대학병원의사도 일년 넘게 다니다가 보니 친구가 되어 많이 친하다. 별 진전이 없어 MRI 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해보았더니 어찌된 일인지 작년 두번째 찍은 것과 별차이가 없어서 의사도 나도 바로 수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수술직전 인턴이 병실에 와서 수술 동의서를 보여주면서 목뒤가 아니고 앞쪽을 째서 하는데 숨 쉬는 관, 음식물 먹는 관, 또 무슨관, 각 신경줄 핏줄 등을 밀치고 하다가 보면 목소리가 쉰 소리하는 사람이 될수도 있고 갑상선이 손상 될수도 있고 음식물을 구멍을 뚫어서 먹을 수도… 등등하며 겁을 주어서 그만 하지 말고 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로 나빠지더라도 그냥 지날까 곧 80이될것인데 이것 잘 하는 짓인가 하는 회의도 가졌고 당장… 하는 나쁜 생각도 들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한 수술이었다. 지금 보니 인턴의 그 말은 기우였고 별일 없고 다만 신경계이니 그런지 전신에 힘이 없고 다리가 근육통을 앓는 것 같다. 훌륭한 교수님이 정성들여서 했다고 하시면서 지금 좀 괴롭더라도 잘 참고 수칙 잘 지키고 지나보라고 하였다.

회복이 되고 얼마나 잘 될런지는 모르나 지난 세월 아무 거리낌없이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다니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고 지금 내게 어찌 이런일이 싶으며 또래 잘 다니는 이들 보면 많이 부럽기도하다.

나는 젊을 때 사람은 먹고 싶은 것 잘못 먹고, 하고 싶은 것 몸 때문에 못하고, 가고 싶은곳 또한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되면 죽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하며 살았는데 그런 날이 올 즈음은 65세에서 70정도쯤으로 생각하고 하였는데 다행히 그 시기는 한참 지나서 이제 곧 80이 될 나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인력으로 자기생명을 마음대로 못하는 현실이니 앞으로 얼마나 고생을 더하며 살지 걱정도 많이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크고 작은 병치례를 더 많이 할 것을 목전에 번히 보면서 지금의 이 고생을 참으며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지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것도 내게 주어진 운명인지 업본지 내 삶이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여기고 그르려니 하고 살아야 한다. 세상에는 평생을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것 생각하면서 느긋하게 지날것이다. 내게는 아직 이렇게 블로그에 글이라도 긁적일 기력도 쓸능력있으니….

그런데 조선닷컴 위블로그 요즈음 왜 이런지….

 

 

 

 

하늘이 말린 야구경기장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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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말린 야구경기장 구경.

아들이 광복절 오늘자 야구표 네장을 보내왔다. 아내와 딸은 간다고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저께는 아내가 몸도 아프고 안 갈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그렇다고 하고 네가 알아서 직원들 주던지 하여라 하였더니 아들은 머라고 그 표가 특실표다.”고 하면서 머라카노, “커피도 치킨도주고 하면서 그런 푠대 웬만하면 누나와 아부지도 다녀오세요.”하였다.

요즈음 아내가 많이 아프다 머 3개월동안 의원 병원을 다녔는데 노인 섬유근육통이라나 그런거로 앓는 것 같은데 동네의원은 거쳤고 중급병원에서도 잘 몰라 큰 병원에 류마치스내과 있는 곳에 가보라고 그 동안 검사하고 치료한 것 소견서를 써주어서 알아보니 이게 웬일이냐? 9월말까지 예약이 않된다 그 후에나한다. 또 다른 곳에 해보니 10월 중에나ㅎㅎ

세상에 이거 어쩌면 좋으냐 저녁마다 움직일 때마다 아야야야…” 하면서 통증을 호소하는데 병원도 많은데, 그놈의 병원 내가 수술을 해보니 중간 계산해주세요하면서 계산서 보니 150몇만원, 다른 것들은 들여다보고 혹시나 이의 달꺼나 있는지 보지만 병원비는 머가 먼지 달라면 두말 않고 누구나 다 준다. 잘은 몰라도 덜 받는 거는 절대로 없을 거고 더 받는 거도 비일비재 할거다.

아버지 계실 때 허가 낸 도둑놈들 제발 아프지 말아야 된다 그럴려며 평상시 건강할 때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하셨고 또 있다 변호사도 합법적인 도둑놈들이다고 하시면서 절대로 소송은 하지 말게 살아야 하고, 당하지도 절대로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소시때 수천만원 떼이고도 버리고 말으시는 평생을 사셨는데 그것보고 나도 그렇게 살기는 했는데 지난 삶이 영 마음에 안들게 거의 평생을 살았다.

야구 구경 이야기나 할 것이지 왜 이래 됬노? ㅎㅎ

그나저나 아내가 빨리 나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야구구경도 이런말 저런말 특별표니 나발이니 하더니 오늘 비가 와서 보지도 못하게 하늘이 말렷다. 작년에도 아들이 표를 보내주어서 가서 보고왔다. 아내는 야구마니아다. 아들이 적을 둔 곳이라고 엘지 경기는 빼먹지 않고 밤늦도록 중계방송을 다 보는데 선수이름 경기규칙 등 할머니치고는 박사라고 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경기장에 가겠다고 할 때 아픈데 네시간 정도를 버티기나 할까? 했더니 그래도 간다고 하면서 어제는 바르는 모기약, 부채, 간식거리 과일 빵 주스도, 혹시나 얇은 겉 잠바도 챙기고 했는데 가서 보게 했으면 좋을 것을 하늘이 말렸다.ㅎㅎ

그래서 그만 많이 아프다고 누웠고 나도 수술후 회복 중이어서 이 글이나 쓰고 누워야 할 것 같다. 아파도 괴로워도 웃자. ㅎㅎㅎ

 

 

 

임진강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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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내집에서 내려다보면 임진강 굽이치는 곳이 마치 바다에 닿은 것처럼 넓게 보인다.오늘 아침은 기다리던 비가 내리고 넓은 임진강물위에 물안개가 자욱하다. 저 안개는 구름이 강물위에 내려앉은 것일까 강물이 구름이 되어 하늘로 올라 갈려는 것일까? 2017년 여름이 임진강물위에서 아른거리면서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것 같기도하다.

세상사 뜬 구름 같다더니 부운 같은 인생살이를 살고 있다. 지난해2월에 죽었다가 현대 의술덕으로 또 한번 살아서 이렇게 블로그도 하고 때로는 귀여운 손자와 놀기도 한다. 10년전 중국에서 심근경색으로 10분마다 숨이 멎을 정도의 통증을 중국산 좁쌀알 같은 구급약을 먹으며 비행기로 와서 용케 의술덕으로 살았고 이번에 또 피치못할 모진낙상으로 몸뚱이도 정신도 죽었다가 말만 들었던 구급차로 실려가서 살았다. 그러나 그후 일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과 같을수야 없지만 일년 사이에 5년이상 팍 늙은 노인이 되었다.

매일 한번 먹는 심장약을 먹으면서도 참 건강하게 가벼운 운동도 많이하고 일상생활에 건강상 부족함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행동에 지장을 느낄 불편함으로 지나니 많이 불편하고 또 신경외과의 약을 먹으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있다. 그러느라고 많은 것을 경험했고 느꼈다. 건강이 이토록 소중한 것 건강할 때는 몰랐는데 불편해보니 아무 생각없이 불편없이 걸어다니는 것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빵 한조각 사과반개 그리고 두부 설은 것 두 조각 먹고 우유 한술 넣어 탄 커피한잔으로 아침 먹고 여보 오늘 우리 북한산갈까 하면서 전철타고 가서 무리하지 않게 걷고 오고, 소래포구로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로 가기도 하고 많이 다니며 걸었는데 걷기가 버거우니 기껏해야 서울에 다녀오는 것 이곳 마트에 걸어가는 것 등 하루에 5000보걷기도 힘드니 살맛이 안난다.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죽어봐야 아는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없으니 그거는 알수가 없는데도 세상사람들은 사는게 좋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이는 개똥밭에 구불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 또 어떤이는 이 골치아픈 것이 즐거운 것 보다 훨신 많은 세상 이나이가 되었으니 죽으면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성할때는 몰랐는데 다리가 불편하니 마음대로 걸을수 있는 것이 소중한 것이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요즈음 사람수명이 80이보통이라고 할 세상이 되어서 살아보니 수천년 전부터 인간의 소망중에 부귀다남장수에 들어갔던 장수의 욕망이 그게 아니구나 오래 명줄이 붙어있는 것은 별로이고 건강히 살아야 하는데 늙으니 온몸이 쑤시고 결리고 걸핏하면 감기도 들고 또 많이 써먹은 몸의 각 기구들이 노쇄해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해서 불편하고 어떤 부위가 지독하게 아파서 병원에 가서 절제도하고 하니 긴 수명이 달가워하지 않은 시대라고 여기는 사람이 점차 늘어가고있다.

내 주변에 분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면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죽기로 오래살고 더 살고 싶어만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요즈음 보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주변에 어려운 모습들도 많이 보이고 또 나로 인해서 불편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만 가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산다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하는 노인들이 많다.

맞아 사람들은 당해보고 경험을 해봐야만 그것이 어떤지 알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좌절과 절망을 통해서 안으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영글어 진다더니 이제사 안으로 눈이 열리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다 버릴 줄도 알고 빈껍데기로 사니 죽는것도 무섭지 않아지네.

*참 하기 싫은 수술을 하러 오늘 또 병원에 입원을 하여야한다. 따라서 며칠 동안 유일한 내 일(?) 이블로그도 휴업.ㅎㅎ

그렇게라도 웃으면서 병원 간다 어느 의사의 말. ‘웃으면서 오는 환자는 빨리 낫는다고 하였는데 그리되고 싶어서…  건강한 나날 되세요.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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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 마음이 아름답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따라서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고 남의 즐거움을 이해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루의 일상이 고달프면 세상은 잿빛으로 보이고 마음도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이 우중충 해지는데 그런 시기에 처한 사람에게는 활짝피어 아침 이슬먹고 있는 장미도 예뻐보이지 않는다.

흔히들 아름답게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고 한다. 그러면 건강에도 좋고 일도 잘된다고 하는 말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다 헛소리다. 마음이 우그러지도록 주변이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는다는 것은 어렵다.

지금부터 25년전에 불행한 일을 당해서 해매고 다니며 세상이 싫은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그때는 차를 몰고 정처없이 기약없이 휴대폰도 끈채로 다닐 때 세상은 온통 잿빛속에서 수년을 해맨 적이 있었다.

지금 말썽 많은 성주에 어느 작은 절에가서 텅빈 법당에 홀로 앉아서 부처님에게 절을 수없이 하며 나는 한없이 울었다. 한시간정도 그러다가 기진하여 그냥 업드려 잠이 들었는데 주지스님이 와서 깨웠다.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하고 하룻밤을 절밥먹고 자고 다음날 또 정처없이 가고를 하며 마음을 달래느라고 애쓴적이 있다. 그때 나는 참 억울하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정말 회사직원들에게 존경 받으며 나는 잘했다고 자부하고 모두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지났다. 그러나 내게 닥아온 불행을 내가 감당하기는 너무 벅찼다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고 많이 해매고 다녔다. 그때 봄이오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닥아 왔지만 그전에는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아름답고 그때마다 바뀌는 주변의 자연들 그리고 내 공장에 신입직원들 잘 몰라서 한 작은 실수도 그럴수 있다고 귀엽게 보였던 나였는데 그런 기억도 없고 세상이 너무 싫었다.

흔히들 죽어봐야 저승을 알지 하는데 나는 죽을 만큼의 불행을 겪어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 심정을 이해 할수가있다 아울러 그런 경험에서 터득한 내 지금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이나라가 세계에서 어느정도 살고 있는 나라인지를 잘 알수가있다.

사람은 좌절과 절망을 통해서 안으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영글어지는 것이다. 아무 고뇌도 없이 오랜 세월 편하게 산사람이 그런거 안다는 것은 어렵다.

요즈음 온천지가 아름답다 앙상하던 마뭇가지는 6월이되니 푸른 잎으로 뒤덮여 졌고 아파트 울타리에는 장미가 만발해서 너무 아름답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 마음도 편하고 아름답기에 그렇게 보이는것이다. 도둑의 심뽀로 지나는 사람에게 지금 저장미가 아름답게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동안의 어리석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 아름다운 계절에 김춘수님의 꽃을 읽어보며 이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본다.

그나저나 비가 오지않아서 타들어가는 논밭들을보니 안타깝다. 어재부터 올 것이다고 하던비가 아직도 찌뿌리고 있기만하지 안오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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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2.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한 시간이 넘도록 다니다가 숙소에 돌아가니 네 명은 아직 한밤중이다. 시끄러우면 곤하게 자는 아이들 깰가봐 아침준비를 할수도 없고 tv도 볼수없고 아무것도 할수없다 그렇다고 다시 또 나갈려니 그것도 그렇고 할 수 없이 다시 우리도 잘려고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뒤척이기를 하면서.

데리고 다니며 돌보아주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느을 염려했던 아버지어머니는 이제 거꾸로 지들의 염려를 받으며 이렇게 늙었다. 이렇게 여행이라고 함께하는 것도 이제 몇번을 할려는지 또 이런 조금은 서글픈 생각도 한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나니 어린손자가 들어오면서 하부지하며 할머니에게 안긴다. 할머니소리는 안하고 할머니도 하부지 할배도 하부지다ㅎ. 시계를 보니 10시다 집에서는 7시에 식빵과 계란한개 사과반쪽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며느리가 만든 늦은 아침밥을 먹고 우리는 제주도구경을 하러 나갔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것 가시고 싶은곳 있어요 하였으나 그런거도 없고 니들 가고 싶은 곳에 가자고 하였더니 유모차타는 아이가 있지 내가 많이 걷는 것이 부담되어 그런 것 참고 하니 별로 갈곳이 없었다.

멀리 가지 말고 해안도로를 가다가 바닷가에서 아이들 흙장난이나 하는 것 물에 첨벙거리는 것이나 보자고 했더니 그것도 하고 민속촌인가도보고 몇군데 들러보았으나 과대포장으로 내용은 모두가 시시하고 어둔 하기만 한곳들이고 다리만 아프다. 그러나 애써서 연구하면서 다니는데 힘빠질까 봐 다른 소리도 못하고 내리라면 내리고 타라면 타고 즐러운 표정을 억지로 지으면서 다니는 것 그리 쉽진 않다.

그러다가 제주흑돼지집이라고 인터넷에 유명하다는 곳으로 알려진 곳에서 점심을 2시가넘어서 먹었고 다음날은 비싸다는 요리집에서 제주은갈치 점심도먹었고 서귀포 제래 시장에서 줄을서서 기다리며 사서먹은 흑되지고기 꼬치구이도 먹어보고 차를타고 이쪽에서 주문하고 조금 돌아가서 찾아먹는 쓴맛커피도 먹어보았다.

커피집은 집안에 들어가서 앉아서 마시기는 하지만 길가에서 사서한손에 들고다니며 마시는 것은 보았으나 차타고 입구에 들어가면서 주문하고 돌아나오면서 찾아마시는 것은 말만 들었지 나는 처음 보았다.

그런데 그후 며느리가 운전하고 다녔는데 치킨도 그렇게 해서 사와서 숙소에 와서 먹었다. 지들은 몇번을 다녀왔으니 제주도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다.

세상에, 언제부터 이렇게 이나라가 이토록 현대화되었는지 이번 여행으로 나는 전장에서 말했다싶이 마음속으로 물결이 출렁거리고 내 영혼이 살이 많이 쪘다 먹어서 몸이 살찌고 ㅎㅎ

그리고 또 어린 막내손자 할배가 걸음이 둔하고 다리가아파 앉아서 쉬고있으면 오라고 손짓하고 그래도 안가면 쫓아와서 손을잡아 끌면서 무어라 지껄이며 끌고가면 또 따라가야 한다 조금은 괴로우면서도 그게 내게는 너무 즐겁고 그놈이 너무나 이뻤다. 지금도 그놈이 여행에서 한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고 마냥 즐겁다.

성산포 일출봉, 한라산, 천제연폭포도 걷는 것이 많아 못보고 이틋날은 제주에서 다음날은 서귀포에서 이곳 저곳을 많이 보았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도 어렵고 그래도 아무런 아쉬움도 없다. 다만 아이들과 34일을 함께지나며 있었고 많은 모습들보고 이야기하며 지난 것이 그어떤 것 보다 더즐거웠다. 그리고 행복감에 젖어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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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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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1.

지난 주말 28일 아이들과 제주도에 가서 4일을 있었다. 제주도는 운동하는 모임에서 여럿이 다녀오긴 했으나 별로였고 그거는 하도 오래되어서 지금 오라 아라라는 골프장이름 기억뿐이었는데 여행이라고 할 여행은 처음이다.

아들이 지난달 초에 아부지 작년에 고생하셨는데 어디 휴가 겸 저희들과 제주도 갑시다 했다 전에도 일년에 한 두번씩 저들과 함께 이곳 저곳을 다닌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일년 동안 내가 다처서 못했는데 가잔다.

나는 선듯 그래 그거 좋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따라 다니는데 힘들 것이다는 생각이 들고 다니는것이 겁나서, 또 늙은 우리 때문에 지들이 불편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경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고 선뜻 그러자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 좀 생각해 보자 했더니 그후 며칠이 지나더니 28에 예약을 모두 해 두었으니 그렇게 합시다 한다.

내 아들이지만 나와는 많이 다른 무엇이든 박력있게 처리하는 아이인데 이번에 또 그렇게 했다.않된다 소리도 못하고 “그래 애~”라고 하며 성사된 여행이다. 아내도 나와 같이 중국으로 다니며 볼 것도 많이 보고 항상 하는 이야기 중국 유명지를 많이 보니 한국 명승지는 장난감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며 별로로 여겼으나 막상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보니 너무 좋아했다. 나도 덩달아 찜찜하던 기분은 간곳없고 아들네와 가는 여행이 즐거웠다.

누군가가 했는지는 몰라도 ‘인생은 여행이고 여행은 인생이다. 여행은 체험의 보고이며 아름다운 추억의 산실 또 여행은 삶을 풍요롭게 하며 영혼을 살찌운다’고 했다 그 말중에 영혼을 살찌운다는 말이 내게는 너무나 와 닫는 문구다. 그냥 무엇을 보고 예쁘다 좋다 보다 그것을 보고 느끼는 마음속의 물결이 영혼을 살찌게 하는 것 아닐까? 여행이 별거냐 가고 오고 다니면서 보고느낌이 풍부하면 그것이 가장 좋은 여행이 아닐까.

6학년이된 큰손자 이제는 너무 어른스럽고 세상에 태어난지 엊그제 3돌이 지난 막네 손자놈 이제는 비행기도 잘 타고 말도 조금씩하고 어린이 집에 다니더니 서로 협조하는 것 배워서 적응 잘하는 기특한 놈이다. 지도 아기인데 뒷좌석에서 우는 아기보고 아기가 운다고 어서 달래주라고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이야! 아이야” 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보이고 무언가를 지껄이는데 에미는 알아듣는 것 같으나 나는 모르는 말이다.ㅎ

5시 조금넘어 도착했는데 우리는 9인승 승합을 렌트해서 저녁을 먹고 ‘절물자연휴양림’ 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8시가넘었다. 휴양림 이름이 이상하다 절물이 무슨 의미일까? 주욱 주욱 곧은 깔끔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속에 숲만큼 깔끔한 숙소가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여 지어져서 춥지도 덥지도 않고 또 파리 모기들도 아직은 없는 좋은 계절에 행복하다고 해도 될 여행이었다.

하루밤을 자고 아침산책길에서 보니 빽빽하게 들어찬 그 멋쟁이 나무들은 삼나무란다. 절물이란 이름의 유래는 그곳에 예전에 절과 물이 있었다고 절물 이란다. 머 그렇게 멋대가리 없이 지어진 이름인지.ㅎ 그러나 절은 없어지고 산중턱에 약수터가 있는데 그물이 제주에서 가장 좋다고 하였다 없어진 절 대신에 약사암이란 암자가 있는데 이른 아침인데 스피카로 염불소리만 청아하게 들리고 중도 사람도 볼수는 없었다.

차라리 삼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빽빽하게 들어찼는데 삼나무휴양림이고 하면…. 나 혼자 내방식의 생각이다.ㅎㅎ

*참고. 위치. 제주시 명림로 584 (산림청소관국유림). 전화. 064 728 1510. 홈페이지.http://jeolmul.jeju.go.kr  시설사용료. 6인실기준 비수기 4.5만원 성수기 8만원 정도. 4인실 6인실 8인 12인 20인실등 다양함

가정의달 감사의달에…

13,11.25 122

가정의달 감사의달에….

이제는 바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도 감사의 글을 써야할 것 같다. 열심히 일하며 주변 돌보며 살고있다. 아버지에게도 잘 할려고 애쓰나 내가 지들만할 때 아버지에게 마음 쓰는것에 비하면 좀 섭섭 하다 그러나 그렇게 비교하는 것은 내가 욕심이 많은 것이다고 자신을 타이른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아버지도 내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고….

이달은 우리 집은 행사가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아내생일, 우리집의 행복동이 막내 손자 이제 36개월이 되는날도 26일이다 등등 바쁘고 따라서 돈도 들어간다. 29일에는 귀국하고 몇해 동안 벼르던 여행을 외국으로 가자고 하는데 기어코 아내가 고집 부려서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에 갈려고 아이들이 준비를 해두었다.

사람은 자주보고 연락을하고 하여야 정이 식지않고 서먹했던 관계도 사라지는데 귀국하면 10년동안 소홀 했던 그래서 느을 미안했던 것들 많이 할거라고 마음먹었으나 와서 지나보니 그 또한 그때 마음처럼 한 것이 없다. 몇 않되는 사람들 내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던 주변에 사람들과도 자주 보지 못하고 연락하지 못하고 지나고있다. 예전 같으면 한 울타리에 살고 있겠지만 요즈음은 어쩌다 보면 일년에 한두번 볼수도 있는 내 동생들께도, 처가 쪽에도 못난 형부 끔찍히 마음 쓰는 처제 그들 내외 건강히 잘 있냐고 하여야 할건데 하면서 올해도 그냥 지난다.

바로 아래 동생은 나보다는 3살 아래이고 돈도 많이 벌어 기업체도 가지고 잘 살고 있다. 그 다음 이제는 모두 할머니가 된 두 여동생에게도, 그리고 나보다 스무살이나 적은 막내, 중간 셋째는 군에 장교로 제대해서 야망이 너무커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큰물에 놀고 싶어 허둥대는 놈도 있다.

부모님 선생님 나에게 도움을 준 윗분들에게도 마음보내자, 아들딸 동생 등 나를 위해서 끔찍히 애써준 아랫사람들께는 받기만 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나를 건강히 살도록 마음써 주는 젊은제자 직장후배 친구에게도 마음 써주자. 위에서 받은 사랑만 감사히 여기지 말고 내 옆에서 나를 아껴준 나의 지팡이들에께도 감사하자는 생각이 든다 전화로 나마 연락하고 건강히 잘 지나라고 그리고 열심히 살자고하자.

요즈음은 너무 지나치게 쓸대 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 이야기를 블로그에 많이 쓴다 이렇게 된것 모두 블로그 친구님들 배려라 여겨 지금 감사의 말씀드린다. 격려해 주셨던 분들께도 일일이 전화 드리고 싶으나 번호도 모르고 이 지면을 통해서 “너무 감사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는일들 모두 이루십시요” 고 말씀을 드린다.

때로는 쓸쓸해서 쓴 글도 있고 세상 살아 가는게 너무 답답해서 투정하는 이야기도 있다. 모두들 너그러이 봐 주시고 항상 아껴 주신 것 너무 고맙게 여긴다. 그리고 또 하루에도 수많은 글 모두다 보시고 검토하여 많이 보았으면 싶은것 오래 머물게 해주시는 운영자님께도 심심한 감사 드린다.

이 싱그러운 달 5월 가정의 달, 감사 표시를 하는 달이라고 하는 달, 이땅의 모든 식물들 점점 싱그러워 저서 멀지 않아 푸르고 울창한 숲을 이루듯이 모두들 건강하게 우리라는 커다란 무리되어 힘을 합해 건강한 사회가 되고 부강한 국가가 되었으면 한다. 나 또한 그리 되도록 작은 힘이지만 쉬지 않고 힘써 볼려고 한다.

내일은 대통령이 선출되는 날이다. 짧은 선거기간이었지만 흉측스러운 말도 많았고 마음상한 언행들이 많았지만 모두 관용하여 새 출발하는 정부 마음껏 도와서 5월의 자연만큼 아름다운 나라 되기를 우리모두축복하자.

*요즈음 내블로그에는 스팸뎃글이 너무많이 달려서 걱정입니다. 일본어로 영어로 쓴 뎃글인데 비아그라라는 단어도 있고 그런 댓글이 며칠전에는 글 등록할려고 보니 198개나 와 있어서 기가막혀 닫아버리고 일이 있어서 다녀 왔는데 오늘보니 또 337개나 몹쓸 뎃글이 또 달려있어요 이거 야단 났습니다. 보통  20개정도의 스팸이 달렸는데 이럴 때는 하나 하나씩 처리해야 하는지 일괄처리하는 무슨 방법이 있는지 번번이 운영자님께 말씀 드릴수도없고….

2017년 5월 8일. 산고수장.

 

벗꽃이 만발한 4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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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꽃이 만발한 4월에…

올해도 벌써 4월 중순, 이곳에도 봄에피는 꽃이 만개한 무르익은 봄이 되었다. 곧 장미의 계절이라는 5,6월이 올 것이다.

며칠전 새벽에 화장실 가고싶어 잠이 깨어보니 넓은 창으로 달빛이 들어와서 방안이 환 하였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둥근달이 보이고 그 옆에는 커다란 별도 보인다. 아, 보름이구나 연일 구름도 많고 또 요즈음 괴롭히는 먼지들 때문에 멀리 볼수는 없었는데 오늘은 청명한 날이 될 것 같다.

거실에서도 방안에서도 시야가 탁트여서 멀리 볼수 있고 더 좋은 것은 임진강 흐르는 물이 보이는 그 경치를 보고 산 집이다. 참 행복한 집이다 큰 자식을 낳을려면 집 앞 시야가 적어도 수십리는 트여야 한다고 하시던 아버님 말씀을 생각하며 산 집이다. 하기사 이 나이에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만…

어제 보니 아파트 경내 화려하게 핀 벗꽃들 목련꽃들이 뎅강 뎅강 짤려 나가고 어떤 것은 커다란 가지도 짤려서 동댕이 쳐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사 나무들 전지한다고 그런 것이다. 진작 겨울이 끝날 즈음 했으면 나무도 수고를 덜하였으며 애처롭게 나 딩구는 꽃들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을 하는 생각을 하였다. 세상에 모든 것은 하여야 할 때가있다.

올해의 봄은 예상에 없던 대선이 있게 되어서 요즈음 연일 시끄럽다. 너도나도 대통령 되겠다고 머라카노, 열 세명이 등록 했다나ㅎㅎ. 시끌시끌한 날의 연속이다 어서 5월 9일이 지났으면 한다만 그것이 지난들 지금보다 조용해지겠나? 세상은 더 시끄러워 질 것 같다만 그것도 사람들 인생살이처럼 그렇게 하면서 지나갈 것이다.

언제 태평성대구나 한 생각으로 산적이나 있었나, 그렇게 티격태격 하면서 걱정해가면서 살았지만 그래도 이제 우리나라도 좋은 나라가 되었다. 돈이 없어 작은 병은물론 큰병도 병원 못가고 자랐으나 살다 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

옷이나 신발 하나 사면 그것이 떨어져서 너덜너덜 하도록 입고 신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커서는 쥐꼬리 만한돈 월급 받아서 아이들 키우고 부모님 모시고 사느라고 그저 아끼고 살아가느라고 그 흔하게 먹는 보약한재도 안먹고 지났는데 그게 지금 보니 이 건강이 유지되는데 일조를 한 것 같다. 못 먹고 지나서 건강하다는 생각…ㅎ, 좀 우습다.

그러고 보니 참 좋은 나라가 되었다 요즈음 신발 한켜레 쌀 한가니 값 주고 산 소위 유명메이커신발도 떨어지기는커녕 실증 나서 안 신고 버리는 것이 대다수이고 옷도 유행 지나서, 입기 싫어서 버리는 것 내집의 경우도 부지기수다. 폐품 버리는 날 동마다 버려진 폐품들 보면 멀정한 물건 새것 같은 가구들, 아이들 유모차, 자전거, 방안에 두고 요긴하게 쓰던 소품들도 전자제품도 많이 버려져 있다. 몇 번을 서비스센타에서 고쳐 쓰는 우리집 것보다 훨씬 뒤에 나온 새것 같은 것들도 많이 보인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귀가 멍멍해서 동내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같더니 의사가 들여다 보면서 새까만 귀지를 끄집어내주었다 갑자기 시원하고 말이 청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돈은 1400원을 주었다. 집에서 끄집어내는 기구로 잘못 수셔서 아프기도 한적이 많았는데 그럴 필요도 없다.

먹고 싶은 것 찾아 다니며 먹을수 있고 볼거리 볼려고 외국에도 마음대로 다니는 사람들로 곂치는 연휴마다 맛집이며 공항은 북새통이고 맛있는 것 너무 자주 많이 먹어서 살 빼느라고 고민하는 사람이 전체 반이나 되는 이런 좋은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나라가 되었는데도 어느 통계에서 보니 나는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세계 평균은 고사하고 하위라고 하였다. 유명한 분들이 말한 행복은 자기 마음속에 있다 그것을 끄집어 내서 나는 행복하다고 여기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고 그놈의 돈 벌어도 더 벌어야 되고 남이 살아가는 것 보면 다 잘사는데 나만 그렇지 않는 것 같다고 여기니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밖앝을 보니 꽃도 많이 피어있고 새파란 연약한 잎사귀들이 점점 커지고 있는 풀들 나무들이 너무 예쁘다. 이 찬란한 봄 곧 무성해지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우리며 이래도 되는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