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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생활이 세계화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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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우리나라의 모든 부문이 많이 달라졌다 빠른 산업화로 이제는 선진국 문턱이라고 할수 있는 국력이 되었다 그렇게 되느라고 생긴 이런저런 부작용을 야기할 부문도 있지만 이제는 한국하면 국가도 국민도 그런대로 대우도 받는 나라가되었다.

그런데 우리들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면 지금 4차원의세계로 되어가고 있는 세상인데 그에 적응할려면 고쳐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외국여행도 많이 하고 외국인들도 영주하러 또는 사업상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자들도 이제는 무시 못하게 많다. 이때 우리 지금 일상생활 하는 것 잘하는지 돌이켜 볼 시점이다.

나는 미국도 일본도 홍콩 등 50대에 일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각 나라마다 그곳 사람사는 모습 특히 가정생활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가는 곳마다 그쪽에 애써 들여다보았고 그후 중국에 일 때문에 11년을 있게 되어서 그들이 살아가는 것을 심도 깊게 들여다보았다.

중국은 넓은 나라여서 북쪽 선양지방과 칭다오 베이징지방과 중남부 상하이 부근 저장성과 남쪽 광저우지방 그리고 서북 칭하이 그리고 서남 윈난지방 등 골고루 다니며 보고 하였는데 그들과 우리는 생활이 많이 달랐다.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에 불교, 기독교의전래 그리고 외국 문믈의 전래가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다.

중국은 근세에 미국과는 교류가 없을 때도 유럽과는 활발한 교류가 있어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 중국인들 유학도 많이 하였고 그곳 사람들이 와서 살았는 지역 흔적도 보았는데 그런 영향인지 우리보다는 생활이 많이 서구화 되었다는 것을 보았다.

서구화된 것이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3차원세계는 이미 지났고 4차원의 세계라는 바쁘게 살아야 하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 가정생활도 변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럴려면 많이 변해야 한다. 중국보다도 우리 생활은 비효율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것이다.

세계시장에 티비 세탁기는 한국 것이 상위로 팔리고있다 그런데 그런 것 만드는 회사에서 만든 청소기 밥솥은 별로 알려지지 않고 따라서 수출물량도 미미하다. 그것은 세계는 그런 것 별나게 안쓰고 사는 문화여서 그렇다.

중국에는 잠자는 문화는 전국민이 침대생활이고 실내화를 신지만 신발을 신은채로 다니기도 한다바닥은 경우에 따라서는 한달에 한번 정도 빗자리로 쓸어내는 문화이고, 아침식사는 아주 간단히 콩물 또는 우유 한컵에 맛없는 빵 한 덩어리로 끝이다, 그것 집에서도 하지만 그렇게 준비된 식당에서 하고 출근한다. 점심은 직장에서 해주는 간단한 식사로 저녁은 또 외식 중국특유의 간편식당에서 부부가 또는 친구와 먹기를 자주한다.

집에서 만들어 먹어도 후라이팬으로 퇴근시 재료 사들고 온 것으로 즉석 지지지 하면서 볶아서하는 요리로 먹는다 우리처럼 반찬도 많지 않다.

그러니 청소 안하고 침대에 이불도 둔채로 요리가 간단하고 따라서 설겆이도 간단하고 그러니 여성들이 직업을 가져도 가정일이 거의 없으니 편하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방바닥에 이불개고 방바닥 쓸고 딱고 밥하고 국 끓이고 재료썰어 삶고 지지고 찬 만들고 하는데 양쪽을 비교해보면 우리들의 생황을 중국식을 하면 여유시간이 지금의 배가될 것이고 따라서 에너지소모도 적을 것이다

흔히들 맛벌이하는 여성이 적다고 하는데 우리 생활방식부터 빨리 바꾸어야 한다. 위에 예를 내가 체험한 곳이여서 중국을 들었는데 요즈음 책이나 각 매체에서 세계 여러나라의 사는 모습들을 자주 보는데 모습들이 거의가 그렇다. 그런데 유독시리 우리만 아직도 별로 바꾸지 않고 그 옛날 할아버지들이 살았던 방식에서 별로 바꾸지 않고 살고있다.

그래도 전보다는 잠자리는 침대로 바뀐 집들이 많이 있지만 방바닥 딱고 깨끗이는 안하면 개으른 것을 여기고 아침밥 해먹고 삼시 세끼를 먹을려고 하고 그것도 집에서 요리하는 것이 정상으로 여기고 살고있는데 이것 빨리 바꾸어야한다.

잠자는 문화와 먹는 문화만 부꾸면 우리나라 여성들 아이 하나둘 키우는 것 그리 힘들지 않을것이다. 키우는데 돈돈 하지만 그것도 유별나게 야단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람사는 것 다 자기 형편에 맞추어 살아가는데….

 

 

 

 

잘사는나라 되니 3)감사할줄 모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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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참 중요한 교육이고 그것이 쌓이면 감사할줄도 알고 행복해진다.

네살 먹은 내 손자가 어느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네모난 틀을 머리에 끼우다가 목으로 내려갔다 들어가기는 했는데 위로 뺄려고 하니 빠지지 않는다 갑자기 울고 야단이 났다. 할부지가 빼 줄거니 울지 말아라고 하였으나 엉엉 운다. (위 사진참고).

아내와 나는 웃기도 하고 그러나 저렇게 우니 빨리 빼주어야 하는데 얼굴위로 나무틀을 올려 뺄려고하나 빠지지 않는다. 하기사 조용히 있으면 부셔버리면 되는데 아기는 겁나서 엉엉 울고 있으니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하기는 아이에게 미안하고… 나는 이 귀한 모습을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는 짓궂게 ㅎㅎ, 많이 울리고 이리저리 해서 드디어 빼내어 주었다.

그후 다음날 주었더니 아예 잡아보지도 않는다 옆에 두었더니 아이는 집어들고 가서 현관에 내다버리고 만다. 그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세살먹은 아이도 자기를 나쁘게 한 것이라고 거들떠보기도 싫어한다. 이토록 경험은 좋은 교훈이다.

우리 노인들은 지난 세월 사는 동안 온갖 경험들이 많다 일상 생활중에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찌 살았을까?

콩나물시루 같이 서서가는 기차를 타고 그것도 10리 이 십리 마다 있는 작은 역에도 다 서고 가고 하는 기차 태워 주어서 고맙고 가게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타고 다녔고 여름 방학때 항상 바쁘신 아버지가 짬 내시어 물놀이라도 한번 데려가서 먹던 밥과 김치 조각 몇 개로 간식 먹으면서도 행복 했던 우리 어릴 때였다.

그럭저럭 커서 직장에 다닐때 놀토가 어디 있으며 일요일도 없고 수시로 야근도 하느라고 자정가까이 되어야 퇴근하고 3일이 멀다하고 숙직도 하였다. 상급자들에게 모진소리 때로는 손지검도 당하는 것 예사로 여기고 나를 잘되게 할려고 한 것으로 여기면서 생활 하였다.

가정에 여자들은 마당에 물도 나오지 않는 집이 대다수고 빨래는 냇가에 가서 하면서 밭매기 남정네들 중참 점심 열 식구 치다꺼리 하는 것은 보통이고 없는 살림 꾸려가면서 맛있는 것 먹을 것 아이들 먹이고 자기는 배골아 가면서 살았는 사람도 너무나 많이 있었다.

그런 모진경험들이 남아서 요즈음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한 생각도 할줄 알고 국가에서 고려해주는 기초수급 연금 받으며 아껴쓰고 살면서도 행복 느끼고 살고있다.

오히려 요즈음 젊은이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보면 우리가 한 것이 정상이고 지금 그들의 생각이 비정상인 것처럼 여겨 지기도 하다.

간혹 여행하면서 무궁화 열차를 타보면 누구나 다 앉아서 가고 널다란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면 탐스럽게 자란 농산물이자라는 논밭 그리고 잘 정돈된 산천 등을 보면서도 행복한 감을 느끼고 조용한 차안에서 편하게 가는 열차도 내가 고객은 왕이라는 대우를 받고 가는 것 같아 행복해지고 가끔 지나다니는 열차원은 문간을 들어올 때 인사하고 나가면서 돌아서서 머리 숙여 묵례하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인다.

어릴 때 기차는 돈주고 탔지만 열차원의 무서운 눈초리는 아직도 잊지 않아지는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데려다 주니 고맙게 여겨라 그리고 모두들 그렇게 고맙게 생각도 하였었다.

그랬는데 요즈음은 모든 것이 경제 논리로 살고 있으니 내 돈내고 한 것이니 나는 이런 대우가 당연하고 조금만 소홀하면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든 나쁜 것이고 이해와 용서가 없는 세대가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이제 30%정도되는 나 같은 구세대들 그런 경험으로 그저 모든 것이 감사히 여기고 살아가는데 다 가고 나면 우리 인간이 만든 생각 없는 기계 로봇이 등장하여 자동차도 사람은 타고 있고 책 읽고 있는데 지가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는 식으로 사람들도 그런 사람만 사는 세상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잘사는 세상 만든다고 잘사는 나라 되고 보니 이래 되었는데 이것 잘하는 것인지…

 

한 블로거의 죽음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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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블로거의 죽음을 보면서.

며칠 전이다. 조선일보 위블로그(weblog)에는 오래된 여성 블로거 한 분이 돌아가셨다. 위블로그는 우리들의 블로그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 아닌가 한다. 조선일보에 그러냐고 물어보지는 않아서 모른다. 그리고 찾아가자면 눈을 딱고 또 딱고 한참 찾아야 도착할수있게 해두었다. 그것도 안 물어봐서 왜 그랬는지 모른다.

저 지난해 조선일보는 너도나도 마구 회원이 되어 난잡하던 블로그를 정비하느라고 홍역을 한번치루었다. 대한민국의 유수저널에서 독자를 푸대접한다느니 이제 이만큼 되어서 우리를 푸대접 한다느니 하면서 몇몇 열성 분을 대표하여 담판을 지우고 하면서 우리 딴은 심각했다.

그후 여러가지 까다롭게 규정지어 대대적인 숙청을 하고 그때 새로 꾸며진 블로그다 그후 2년이되어간다. 과연 뜻대로 지금은 몇 안되는 이들이 조용히 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보니 그 중에 한 분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 하셨다는 것을 나는 늦게 알았다.

그분 블로그에 가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분이 사고 당하기 이틀 전에 쓴 글 아래 뎃글이 많이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살아있는자의 허세지 죽은자에게는 그것이 무슨 위로가 되나. 명복을 빕니다. 또는 세상에 어찌 당신에게 이런일이, 하는 조의 글등 허망한 인생을 한탄하는 글들이었다.

나도 세상에 인명은 제차라더니 이럴수가 있나요등등하면서 명복을 빕니다 하고 썼다. 나이가 한살 두살 먹어 이 나이가 되니 요즈음 가끔씩 아플려고 사는 것 아닌가? 그래서 병원가고 약먹고 할려고 산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게 생각히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이가 몇인지 어디에 사는지 그런거는 모르고 이곳에서 함께하는 분이었고 그 이상은 알지도 못하고 내가 개으른 놈이어서 자주 가지도 않으나 나보다 더 열성적으로 활동하시던 분이다고 생각하였던 분이다.

내게 자주 오는 분에게 뎃글 쓰려고 갔더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글이 있어서 알지 어디서 어떻게 등등은 모른다만 더 아나 모르나 그거는 중요하지 않다 같이 일상을 털어놓고 함께 하던 친구가 유명을 달리 한 것이 중요하지.

사람 사는 것 정말 별거 아니다. 나도 저지난해 사고때 시간이 조금 더 지났으면 그길로 이땅에서는 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될 인생을 살면서 너무 아웅다웅 하였다. 요즈음 내 블로그에서 보면 지가 머 인생을 달통 했는 것처럼 이런 소리를 한 구절이 자주있다.

그것도 많이 부끄럽고 이렇게 이 귀중한 면을 내 별 값어치 없는 소리들로 낭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이제 이 블로그도 닫을까 하는 생각도 간혹은 한다. 그리고는 아니다 이것조차 안하면 그러면 내가 하는게 머 있나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도 바로 하면서 지난다.

예전에 어른들에게 아침인사가 밤새 안녕하십니까? 였다 그렇지만 사실 그때는 인명을 손상케 할 것들이 요즈음처럼 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인사가 그랬는데 요즈음은 정말 밤새 안녕 하냐 할 것들이 우리주변에 차고 넘친다.

그저 오래 살고 싶으거던 먹는 것도 다니는 것도 말하는 것도 사람 만나는 것도 그저 조심조심 또 조심 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버거운 욕심은 가지지 말아야한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또 새로운 한해가 시작 되는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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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한해가 시작 되는날이다.

우리또래가 태어 날 때의 일년의 기준과 나이 기준은 설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12월 말일이 지나면 즐거웠던 또는 지겨웠던 한해는 지나고 나름대로의 새로운 기대를 안겨주는 일년의 기준이 1월의 1일이다. 그렇지만 내 일년의 기준은 아직도 설이다 이러니 아이들이 꼰대라고 하지.ㅎㅎ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시절은 있다.
어떤 이는 높은 자리에 있어서 말 한 마디면 많은 사람이 자기 의사와는 동떠러 지더라도 예!예하며 많은 이들이 부러움 받으며 산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자기주변에 어려운 이를 위해 자기는 버리고 평생을 헌신하며 살았는 이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박봉 받아 가족들과 가난하게 일생을 살았는 사람도 많이있다.
그런가 하면 평생을 남 속이고 남 이용해서 자기만 잘 될려고 바둥거리며 많은 사람들께 지탄받고 살았는 사람도있다.


며칠전에 나는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 어느 증권회사에 다닌다고 하였고 잘살고 있다는 소문만 들었지 보지도 못하고 60년을 살았는 어릴 적의 친구를 고향도 아니고 이곳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우연히 만났다.  세상 좁다더니……

객지에서 사귄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내친구가 다닌다는 증권회사에 근무 했다고 하여 어릴때 친구이름을 물었더니 잘 안다고 하였다.
나는 반가워서 그에게 연락을 해서 보자고 하여서 만나게 되었다 40대 후반에 회사 그만두고 이런 저런 일들 하다가 가산 탕진하고 고생한 이야기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가족의 행복은 이웃의 행복이 되고 사회와 나라의 행복이된다.
그나 나나 지난날 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살았던 방법 환경은 달랐지만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족 사랑하고 부여된 일 열심히 하고 주변 사람들께 공헌하며 살았는데 이제 모두 노인이 되어 소주잔 앞에 놓고 쭈그러진 얼굴을 서로 처다 보면서 지난 이야기를하였다.

부잣집 외동아들, 조선에 없는 아들로 모두들 검정 고무신도 떨어져서 구멍이 나도록 신고 다녔으나 그 친구는 하얀 테 둘러진 운동화신고 그때 많은 또래 아이들의 부러움을 싸고 자랐고 우리는 촌에서 소 풀 뜯기며 촌 중학교 다닐 때 그는 대도시에서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고 산사람이다 그러나 어렵게 되어 오만 고생하고 가족들께 존경 받지도 못하고 지금 아주 어렵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삶은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겨 아무도 없는 산 속에가서 엉엉 울고 싶을 때도 있고 또 그렇게 아버지도 있다. 그러나 남자는 태어날 때 울고 부모가 죽었을 때 운다는 말도 있고 언제나 커다란 산같이 보여야 하기에 남몰래 소리 없이 가슴으로 울고 술 한잔에 눈물을 담아 삼키는 경우도 많이있다.

이런 경우를 당한 이들 또한 요즈음 세상에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것도 세월을 보내면서 노력 하다보면 정도의 차이이지 해결된다산다는 게 다 그런거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살았는 이도 돈이 많아 남에게 부러움을 사면서 살았는 이도 별로 자랑 할 것도 없이 세끼 밥이나 먹고 가족에게 헌신하며 어렵게 살았는 이나, 나보다는 이웃을 위해 나를 버리고 살았는 사람이나 그 모두가 황혼기에 다달아 이제 내가 살날이 얼마나 되겠나 생각하면서 돌이켜보면 후회스러운 일도 많고 거드럼 피웠던 삶도 부질없는 것이 아니였던가 싶은 게 인생이다.

새해 아침에 이세상 모든 이들 아프지 않고 걱정없이 이 한해 즐겁게 지나는 해가 되었으면한다.

* 2018년 새해는 모두들에게 행복한 해 되기를 기원합니다. 산고수장.

동짓달 동지(冬至)와 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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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 동지(冬至)와 팥죽.

동짓달은 음력으로 11월이고 양력으로는 12월 그 해의 마지막 달이자 새해를 맞이하는 달이다. 옛날 중국의 주(周)나라 때는 동지를 해 바뀌는 날로 삼았다고 한다. 동지 한문을 보면 추운겨울의 끝이다는 뜻이다.

동지는 일년 중에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낮을 양(陽)으로 밤을 음(陰)으로 여기는 풍속에서 음이 극치에 이르지만 동지 날이 지나면 낮이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니 일년의 시작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달은 또 중동(仲冬), 대설 동지의 절기가 들어있는 동짓달로 농가월영 가에 “11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불고 서리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어 지루하다…., 등잔불 긴긴밤에 길쌈을 힘써 하노니…., 늙은이 일 없으니 기작이나 매어보세” 고 춥고 바람불고 긴 밤에 여자들은 등잔불아래서 배 짜고, 옷 만들고 남자는 돗자리 짜는 계절이다고 노래하였다.

그때는 방바닥 또는 마당에 깔 자리를 왕골로 짚으로 남자들은 짰다

황진이는 그의 시에서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거든 구비구비 펴리라.’ 고 그 당시 남존여비 시대에 님을 향한 사모의 마음을 일년 중 가장 긴 밤을 읊은 시도있다.

또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서 먹고 역귀를 막는다고 붉은 팥죽 물을 바가지에 담아 대문 또는 마당에 뿌리며 역귀야 물렀거라 하기도 하는 종교적인 풍습도 있었다. 그리고 그 팥죽에는 찹쌀이나 수수쌀을 빻아서 만든 옹심이를 넣어 끓여서 세알이라고 하면서 나이 수만큼 먹고 그 세알을 먹으면 한살 더 먹고 건강한 한해가 된다고 하였다.

경사스러운 또는 재앙이 있을 때 팥죽 또는 팥떡을 해서 고사도 지내고 일이 잘되도록 하고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믿고 먹었다.

그 풍습이 아직도 전해 내려와서 요즈음도 집을 짓거나 큰 공사를 할 때 고사라고 돼지 머리와 팥이 들어간 시루떡을 해서 지내고 있다.

또 동지가 10일안에 들면 ‘애기동지’라고 하며 밭죽을 쑤어 먹으면 아이들께 나쁘다 고하여 쑤지 않았다.

금년동지가 내일인데 음력으로 5일 애기동지다 아내는 막내손자 때문에 그것 지킨다고 팥죽을 쑤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부터 무슨 연유로 그런 풍습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훈훈한 민속적인 풍습이 오래도록 계속되어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요즈음 젊은이들 그런 거 알려고도 하지 않고 시장에서 팔고 있는 단팥죽이 팥죽인줄 알지나 않을가 싶으다.

이 동짓달 우리 집에는 세 사람의 생일이 있다. 맨 먼저 아들생일이 있고 그 다음에 며느리가 그 다음이 내 생일이다.

예전 같으면 같은 달에 아버지 생일보다 아들 생일이 먼저면 생일을 하지 않다가 아버지 생일 때 같이한다, 내 아들은 아버지 계실 때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 생일을 하지 못하였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 계실 때는 그런 것 오만 것 다 지키라고 하시고, 어렵게 살도록 하여 많이 귀찮고 별나게 하신다 싶고 싫었는데, 돌아가시고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내 또한 늙은이가 되어보니 예전 내려온 지키기 어렵기는 하지만 그런 풍습들이 성급하게 버려지지 말고 더 오래 이어졌으면 싶어진다.

그렇다고 나도 내 아버지처럼 내 뜻대로 하여라 고 강요하여서는 않된다는 생각으로 매사를 그저 참고 또 인내 하고산다.

 

아내와 딴방을 쓰니 편하기는하나 씁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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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딴방을 쓰니 편하기는하나 씁슬하네.

지난해 초 내가 심한 낙상으로 많이 다쳐서 병원생활 한달후 거동이 많이 불편할때 퇴원후 생활을 해보니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아서 합의로 다른 방에서 잠자기로 하였다. 그렇게 산지가 이제 일년이 다되어간다.

자면서 몸을 뒤척일 때마다 아야야 하는 소리가 나오고 화장실도 두 세번 가야하고 그때마다 아내 잠을 깨우게 되고 또 아내가 화장실 갈때마다 방에 달린 화장실문 여닫는 소리, 물소리 등으로 서로가 너 댓번씩 잠을 깨게 되어서 우리 이러지 말고 낮에 컴퓨터 쓰고 책보기만 하고 비워져있는 방으로 내가 거기서 잠도 자고 아예 딴방 생활을 해야겠다고 제의를 했다.

아내는  그래도 그거는 좀 하면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영원히 해어질 것인데 좀 불편하더라도 참고 하루 종일 별 할일 없으니 늦잠도자고 낮잠을 자더라도 안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참고 한 달을 지나보니 계속되는 불편으로 이제는 마음조차 짜증이 나고 몸도 신경계통의 고장이니 별 차도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해서 또 제의를 했더니 그래요? 정 그러시다면 완쾌 될때까지 그리 합시다는 승낙을 받고 나는 그날부터 작은 침대도 작만하고 이런저런 살 환경을 구비하여 내가 낮에 주로 쓰던 방으로 아예 이사를 했다.

그후 그렇게 지나보니 너무나 편하고 아내에게 잠 깨우게 하는 것 미안해할 염려도 없고 좋았다 그렇게 시작한 별거 아닌 별방 살이를 우리는 하고 있다.

나는 서른살에 아내는 스물다섯 그 당시에는 조금은 늦은 결혼을 한후 40년넘는 동안을 한방에서 생활을 하였다. 그렇지만 남과 여로서 즐기는 것은 안 한지는 벌써 수년 전이었고 다만 룸 메이트로 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서로 건강 보살피며 자다가 이불을 차고 자면 덮어주고 가끔은 손도잡고 자기도 하며 함께 잠자고 살았었는데 이제는 아내도 혼자 잠자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나 역시 너무나 편하고 좋다.

예전에 우리할아버지들 젊을 때부터 사랑방이라고 방 따로 잠자고 하시는 것 보았고 그때는 아내와 함께 자고 싶으면 아버지어머니 눈치도 봐가며 또 틈 봐서 아무도 모르게 잠자리를 하기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친구의 아버지는 그때는 나무로 난방 할 때였는데 도끼터에서 도끼로 장작을 깨는 신호를 하면 아내가 눈치껏 나와서 여물간(소 먹이용으로 볏집을 썰어서 두는 곳)에서 서로 사랑을 하였다는 소리도 들었다.ㅎ

그당시는 부부이지만 함께 체온을 느끼며 정을 통하는 것도 뻔히 알면서도 아주 부끄럽게 여기는 시대였었다. 그리고 여자가 정해진 남자말고 다른 남자와 성행위를 자의건 타의건 하면 심하게는 죽어야 하는 시대였었다.

그런 성행위가 요즈음은 두남자 세남자 심하면 네번도 공공연하게 이혼을하고 또다른 남자와 결혼도하고 예전에는 남자들만 기녀로 정해진 여인들과 이여자 저여자와 즐겨도 되는 세상이였으나 요즈음은 여자가 아무 남자와도 즐겨도 별거 아닌 성을 즐기는 세상이 되었다. 별방 생활을 하니 편하다고 하다가 왜 이렇게까지 지껄이게 되었는지 ㅎㅎ.

그렇게 하여 우리는 별방에 살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몰라도 그렇게 계속 살 것 같다. 요즈음 나도 아직 걸음걸이가 어둔하여 지팡이를 집고 다니는데 아내도 이제 다리도 아프고 몸속도 크게 아픈 곳이 생겨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은 여보 이제 그만 살고 편한 세상으로 갔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하는 소리도 스스럼없이 하면서 산다. 방 함께 쓰면서 누우면 정신없이 자고 아침이 되어야 깨서 화장실가고 서로 체온느끼며 잔 세월이 이제는 아득한 옛날이고 이제는 그런 감미로운 기회는 우리는 끝났다.

 

가난했던 시절 곱장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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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시절 곱장리를 아시나요.

지금 이 글을 읽으면 젊은이들 세상에 그런 세상도 있었군요 할 것이다.

이른봄 춘궁기 그러니 보리가 필 무렵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 초롱초롱한 자식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가난한 아비는 기가 찬다. 쌀은 없어진지 오래고 보리쌀, , 등 잡곡도 달랑달랑 하던 때 동내 배불뚝이 영감네 집에가서 먹을거리 쌀이나 보리나 조 등을 꾸어온다가을걷이 추수를해서 배로 주기로 하고, 그게 곱 장리다.

그걸로 막 돋아나는 쑥이나 산나물 먹다 남은것, 저장해둔 무를 썰어넣고 쌀 조금넣은 멀건 죽으로 보리가 여물 때까지 그렇게 먹으며 연명을 한다.

, 세살 터울의 아이들 대 여섯명이 눈알만 커다랗고 영양실조로 다리 팔은 나뭇가지같이 머리만 커다랗게 보이는 그런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엄마는 이놈의 가난이원수다.

물론 쑥죽은 말할 것도 없고 소나무껍질 벗기고 속에 연한껍질은 송기라고 그것을 빻아서 죽도 끓여먹으며 몇 개월을 살았다. 그런 시대도 있었다. 그렇게 이른봄을 지나며 안죽고 살아서 보리가 채 여물자 말자 조금 베어서 말려서 보리죽을 끓여 먹는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동내에 30%정도 되었다.

그때가 50년대 그러니 지금부터 60~70년 전쯤 그런 세상을 경험했거나 보았거나 한 세대들이 아직 살아 있다.

그때 곱장리 놓으며 살았는 사람들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 시절은 그게 이해가 어느 정도 되는 시대였고 요즈음도 간혹 소설 같은데서 10리길동안 내땅 밟지 않고는 다닐수 없었다고 쓴 것 보는데 그렇게 하면서 살았는 그 부자들은 왜놈의 세력과 결탁하여 축재한자들이 많았으므로 지금도 부자를 꼬갑게 여기는 사고가 있는 것 아닌가 한다.

그런 곱 장리는 기간으로 따지면 6개월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세상에 6개월만에 배로 늘어나는 이자 놀이다. 그 시대는 은행들도 이자가 월 15%넘는 곳도 있었다. 그것을 정점으로 차츰 내려와서 요즈음 년 2, 3%가되었다.

세상도 나라도 너무나 변했다. 그저께 보니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년 1.25%에서 1.5%로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따라서 조금은 더 오를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사 금융은 존재하는데 가난한 사람들 급히 돈이 필요하나 시중은행, 저축은행, 신협 등 제도권 금융에는 거들떠보지도 못하고 사채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로 인해 무서운 사건들도 일어나는 것 심심찮게 간혹 보기도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예나 지금이나 부익부 빈익빈은 사라지지 않고 세월이 지날수록 더 심각해 지고있다. 곱장리는 참 오래 전 이야기다.

 

 

 

내 흔적들 버릴려고 보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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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흔적들 버릴려고 보았더니.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급하게 쓰일 것과 그렇지 않는 것으로 구별해서 가져와서 쓰는것만 개봉하여쓰고 지났는데 요즈음 집에 있는 시간도 많고 이제는 선별해서 좀 버리자고 보니 한창시절 잘 나갈 때 중소기업 진흥청에서 주선한 산업시찰이라나 하며 외국에가서 찍은 사진들, 홍콩 여행시 그곳에 우리를 초청한 곳에서 만들어준 내 사진이 들어간 한뻠 정도의 접시도 있고, 여기 저기 다니며 찍은 사진들 정리한 앨범도 있다. 또 미국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 기념 앨범도 그것을 넘기다 보니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비옷입고 작은 배타고 폭포수를 맞으며 먼발치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시카고에서 골프를 쳤는데 미국 어중간한 골프장은 노인들 놀이터이다. 겨우 다니는 노인도 골프를 치는데 게다가 오리떼가 놀다가 지나가고 먼발치 숲속에는 젊은 남녀가 부둥켜안고 구불고 하는 외설스러운것도 보았고 재미있는 골프장이었다. 거기서 찍은 오리떼 사진도 있고 일본 히로시마 원폭 기념관에서 어린이 책가방과 신발을 찍은 애처러운 사진도 우리 일행이 비 맞으며 우산들고 찍은 사진들 중소기업 청에서 만들어준 사진앨범도 있다.

이제는 까맣게 잊어버린 그 옛날 정말 잘나갈 때 흔적이다. 그런 그 물건들 이제는 버리자고 마음먹고 버릴려고 하였는데 막상 그렇게 할려고 보니 버리는 것이 난감하다. 사진들이어서 아파트에서 분리수거 하는날 버리기도 그렇고 찢을려고 해도 한장 두장도 아니고 그 많은 것을 또 앨범으로 만들어 받은것은…. 고민을 하면서 뒤적이다 보니 묵직한 박스가 또 있다 열어보니 감사패 페넌트 액자에 넣은 기념사진 등 또 한 박스가 나왔다.

찬찬히 뒤적이다 보니 일일 소방서장 이라고 하루 대구중부 소방서장 질을 했는데 그때 페넌트 일일 대구은행 지점장 페넌트 테니스회에서 받은 감사패 그리고 상배 라이온스 클럽 감사패 지역 여흥민시 회장 감사패 등 나름대로 봉사 황동 한다고 돈 얼마 기부하면 주는 감사패들도 몇 개나 있었다.

아무짝에도 쓰지 못할 ㅇㅇ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시 받은 어줍잔케 찍은 사각모 사진도 액자에 넣어둔 것도 나왔다 갈수록 골치 아픈 것들이 나왔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감사패하고, 이름 민 아무개 귀하는 우리 ㅇㅇㅇㅇ에 많은 기여를 해서 이 감사패를 드립니다. 그곳 장, 아무개 이름 쓰인 것 그것 하나 받으면 기분이 괞찬았다.

그런데 그후 그런 것들 한번도 내 사무실이나 방에 진열을 했다든가 잘 보이는데 비치해두고 자랑 한번 해 보지 않고 바로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박스에 들어간 것 들이다. 그런데 이제 막상 정리 할려고 보니 난감하다. 그대로 버릴수도 없고 태울려니 아파트에서 태울 곳도 없고 얼굴이 들어간 사진 이름이 박힌 패넌트 그대로 종양제 봉투에 넣어서 버릴수도 없고 아내에게 이야기 했더니 그래 골치 아픈거 왜 들추어서 고민을 합니까, 지금까지 박스에 있었든 것 그대로 두세요 우리 죽고 나면 처리할 사람이 있을 거에요 한다 그 말이 맞는거 같다.

그러나 사람은 떠날 때 깨끗이 떠나고 자리도 말끔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내가 처리해야 한다 자식들에게 지저분하게 해놓을 수는 없자나 하는 생각이다.

얼마전에 현 대통령 취임하고 기념 우표를 발행하고 야단 법석이었다. 또 평창 동계 올림픽 기념주화 발행 한다고 하였다 그런것도 올림픽 기념주화 무슨 기념 우표 등 발행할 때 빠지지 않고 거의 구입해 둔 것 보따리째 중국에 있을 때 아내가 시집 온지 얼마되지 않은 며느리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던 팔지 목걸이 등 함께 며느리에게 주어버렸다는데 그때 그건 참 잘한거 같다. 나도 그당시 만들 때 청탁도 하고 추첨도 하여 만든 것 들인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다 벌거 아니었다,

책도 그렇다 세계대백과니, 세계사상전집이니 하는 좋은 책들 거지신세가 되었을 때 집과 함께 다 버리고 남은것 그후에 중국에 갈 때 마다 몇권씩 가져 갔으나 올 때 우리 조선족 직원 모두 주고 왔는데 그 후에 생긴 것이 또 책장이 거득하다 그렇다고 보물스러운 것도 없는데 그러나 이제는 다 없앨때가 되었다. 어느날 용기내어 들판에 싣고가서 다 태워버릴 것이다 아직은 살아 있는데 그러기는 꺼림직 하지만….

 

며느리가 무섭다고 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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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무섭다고 아들도….

요즈음 시어머니들이 며느리가 무섭다고들 한다. 무서운 것은 두렵다는 것도 포함되는 말이 아닐까 한다. 대다수 노인들은 나이가 자꾸 먹어가니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혹시나 아이들에게 부담 주는 일이 일어날까 봐 염려도 되고 조심하며 산다.

내경우는 아이들에게 내 집에 생활하는 방식 또는 음식 등으로 잔소리를 들을 때가자주 있다. 늙은이 둘이 사는데 먹는 양이 적으나 우선 편할려고 또 평생을 검소하게살아서 그게 습관이 되어 가능하면 버리지 않고 쓰고 절약하면서 살아서 마트에서 사온 것들이 보관기한이 다된 것도 있고 조리하면서 고기를 굽고 나면 구운 냄세가 날 때도 간혹 있다.

한번은 전에 지들이 사와서 먹던 소주를 냉장고에 두었더니 어머니 이 소주 언제 거예요 하였다 그때 너희들과 먹던 것 내가 음식 조리할 때 쓸려고 두었다 했더니 버리세요 하였다. 소주도 날자가 넘은 것 조리 할때 쓰면 안 된단다. 또 그 다음에 한번은 들어오자마자 문을 마구 열어 제친다. 야야 추운데 왜? 했더니 고등어 구웠지요? 한다.

그래 구웠다 했더니 싱크대 환풍기를 반드시 오래 쓰세요 하였다. 아내는 그것이 시끄러워서 잘켜지 않는데 하지만 그까짓거 냄세 좀 나면 어떤데 하면서 가고 난다음 언짠아 하며 항상 자기보다 시원시원하게 모든 것 잘하는 며느리에게 지는 기분이었는데 그날은 많이 불쾌해하면서 내게 바가지 아닌 불평을 했다. 나는 그래~ “하면서도 그 조리 냄세 때문에 몇 번을 잔소리해도 잘 안되더니 속으로는 잘했다 싶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며느리가 온다고 하면 나 모르게 이런 것 저런 것 점검을 하는 것 같다. 자기보다 더 많이 배우고 지 차로 아이들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가정의 크고 작은 일들 머든지 시원시원하게 잘하는 며느리이다 또 간혹은 우리 태우고 창고형마트 코스트코에 가서 필요한 물건도 무더기로 사준다.

그러므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좀 버겁어 하는 것 같다 가뜩이나 요즈음 며느리를 모두 껄끄러운 존재라고 하기도 하는데 아내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도 며느리도 그렇지만 아들도 그리 만만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한번은 전화로 아버지 저들 오늘 대구 같다가 모래 오겠습니다 하였다. 나는 좀 자주 처가에 가는 것 같아서 얼마 전에 휴가로 그쪽으로 가더니 또 가느냐 요즈음 혼잡한 길을 가족모두 싣고 다니는 것이 염려되어 ktx 타고 가라 했더니 안 된다고 하였다.가서 여기저기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한다나.

그리고 늙었다고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간혹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 한 것을 대입해보면 이거는 말이 안된다. 내가 아버지에게 한 것은 그저 아버지마음상하게 하지 않을려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하고 모든 것 애를 쓰고 노력했는데 얘는 그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복종시키지는 못하니 버겁고 혹시나 내가 체면 구기는 일이나 생길까 봐 느을 조심을 하며 지난다. 그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아들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겁내는 것이다.

요즈음은 아내도 버겁다. 마음에 조금 안 들면 그래요 그러지 말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어떨가요 하면 나도 생각해보고 그래에~ 그것도 좋겠네할 것인데 당장 안돼요!” 하며 윽박지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 소리를 들으면 나도 당장 알았다!….” 또는 머라꼬?….” 하면서 서로 시끄러워지고 그 후는 며칠 서로 말없는 기간이 되고 그러면서 산다.

아마 이렇게 여기는 아버지이고 남편이 요즈음 나뿐이 아니고 많을 것이다. 손자들이 더 커서 세상물정 알면 그때는 또 손자에게도 그렇게 조심하여야 할거고 이래저래 조심하며 지나야 될 것들이 자꾸 늘어나고 그 기간도, 죽을 나이도 길어진다고 하는데 건강 조심해야 하고, 자식들에게 조심 해야 하고, 세상 조심 해야하고, 조심하고 살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이래저래 늙어서 오래사는 것은 즐겁지 않다, 느을 병원에도 자주가야 하고, 맨날 약먹으며 지나야하고, 행동도 가볍게 마음대로 잘못하고, 아이들도 무서워지는 것 같고…., 세상모두가 겁난다.

*이상해요. 내글은 블로그홈에 제목이 뜨지도 않고 다른분 뎃글 답글 쓸려고가서 쓸려니 특수입력창이라나 그런게 떠서 이름, 이메일, 주소 다 써야한다는데 이제 위블에서 쫓아내는 것인가요?

 

 

중은 떠나면 되는데 그게 쉽지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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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은 떠나면 되는데 그게 쉽지않네.

조선일보에 블로그를 가진지 벌써 13년이 되었다. 중국 상해에서 살 때 한국 신문도 tv도 보기가 어려울 때 고국소식 들을려고 매일로 연락하고 컴퓨터로 소식들보고 할 때 연 것이다.

그때 조선일보에 블로그명을 ‘산고수장’이라고 지어서 블로그를 오픈하고 중국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우리와는 너무 다른 모습들을 보고 글도 쓰고 이국에서의 고독하고 서러운 삶을 달래고 산 것이 귀국 하고도 계속하면서 벌써 7년이 되었다.

이분은 여행, 이분은 살아가는 삶의 글, 이분은 정겹고 아름다운 글 쓰는 분, 그런 분들과 함께 또 조블에 운영자분들 조선일보독자님들 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으며 글도 즐겁게 쓰고 때로는 소재가 궁하면 짬내어 전시회도, 시장도, 고궁도, 여행도 다니며, 그런 기행담도, 견문 이야기도 쓰고, 보고 역겨운 꼬라지도 쓰면서, 정말 귀여운 모습도 함께 볼려고 옮겨오고 하였다.

그 후 조선일보의 블로그 개편으로 많은 회원이 줄어들어 지금은 위블로그라고 명칭변경도 하고 또 다른 모습으로 운영자분들이 잘 다듬어 가꾸고 하고 있었는데 요즈음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세인데 알수도 없고 지난번처럼 또 괄씨 받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절에 주지가 돼지처럼 욕심 체우기만 하면 중은 떠나고 신도도 그런 절 미워서 떠나면 된다. 오랫동안 쌓인 내공들인 탑이 아깝지만 미운 곳에서 인내심으로 그탑 지킬려고 하지 말고 시주한걸로 여기고 훌훌 떠나고 그절 있는 쪽으로 얼굴도 돌리지 않고 살면 되는데 그래도 미련이남아 오늘 또 포스팅을 한다.

얼마 전에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내블로그는 로그인이 안되어 들어 갈수도 없어서 참 황당했는데 그후 일주일쯤 되어 다행히 로그인이 되었다 그러나 추석연휴고해서 한 반달을 쉰 기분이다.

저지난해 이맘때 조블을 없애겠다고 하더니 이런저런 곡절 끝에 지하주차장 맨 끌에 입구도 잘 찾지못하는 쪽방 같은 곳에 위불로그라고 이름지어 만들어주어서 그래도 감지덕지로 여기고 적응할려고 버벅거리고 이거 좀 도와주세요 하면서 운영 자님들에게 귀찮게 하며 지도를 받아가면서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거의 떠나고 여나믄 사람이 남아서 남의 블로그 글 잘 읽지도 않고 외부인들은 조선일보 블로그가 있는지도 모르는 곳, 눈 씼고 보아야 보일 정도로 해두고 괄씨가 말이 아니었다.. 세상에 서러운 것도 많지만 괄씨 받는 것은 괴로움의 상위급이다.

내자신도 이제는 모든게 우둔해져서 때로는 이제 그만 접을까 싶을때도 있으나 안 하는 것 보다는 하면서 지나는 것이 내 건강 그리고 일상에 더 도움이 되고 그래 하면서 지나야 밥을 먹어야 살고 내 마음의 이야기를 하여야 살수 있드시 이것도 이제는 그와 같은 내게는 안 하면 안될 일상으로 습관화된 것이다.

또 이것을 하면서 많은 지식도 얻고 그래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도, 남을 용서하는 아량도, 또 무엇을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삶일까? 또 건강상식도 그리고 좀더 보람되게 살아가는 방법도, 추하지 않게 늙어가는 것 터득도 하며, 때로는 내 나름대로 쌓인 스트레스도, 또 무료한 하루하루 일상을 여기에서 적어도 너 뎃시간은 쓰면서 지나고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인간관계로 일어나는 잡다한 것들 친척, 부모, 자식들로 일어나는 일상의 고민들은 노력하여도 안 풀어지는 것들이 많다. 그런 것 지금까지 살면서 얻은 온갖경험으로 쌓아진 지혜 미천하나마 나누어주는 보시(布施)로 여기기도 하여 즐겁게 하였다.

돈이야 별거아니다 우리나이의 늙은이들은 다산 정약용님이 자식에게 물려준다고 하였던 근검절약이라는 그 좋은 재산을 가졌으니 절약해서 쓰고 일찍 일찍이 준비해서 다니고 소득에 맞추어서 쓰면 별 불편이 없다. 오래 하면서 수양을 더 많이 하고 모든 것 다 내려 놓을 수 있는 날까지 노력 할 것인데 계속해서 하도록 되었으면 하는데 그 쉬운 중 떠나는 것 쉽지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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