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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흔적들 버릴려고 보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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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흔적들 버릴려고 보았더니.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급하게 쓰일 것과 그렇지 않는 것으로 구별해서 가져와서 쓰는것만 개봉하여쓰고 지났는데 요즈음 집에 있는 시간도 많고 이제는 선별해서 좀 버리자고 보니 한창시절 잘 나갈 때 중소기업 진흥청에서 주선한 산업시찰이라나 하며 외국에가서 찍은 사진들, 홍콩 여행시 그곳에 우리를 초청한 곳에서 만들어준 내 사진이 들어간 한뻠 정도의 접시도 있고, 여기 저기 다니며 찍은 사진들 정리한 앨범도 있다. 또 미국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 기념 앨범도 그것을 넘기다 보니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비옷입고 작은 배타고 폭포수를 맞으며 먼발치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시카고에서 골프를 쳤는데 미국 어중간한 골프장은 노인들 놀이터이다. 겨우 다니는 노인도 골프를 치는데 게다가 오리떼가 놀다가 지나가고 먼발치 숲속에는 젊은 남녀가 부둥켜안고 구불고 하는 외설스러운것도 보았고 재미있는 골프장이었다. 거기서 찍은 오리떼 사진도 있고 일본 히로시마 원폭 기념관에서 어린이 책가방과 신발을 찍은 애처러운 사진도 우리 일행이 비 맞으며 우산들고 찍은 사진들 중소기업 청에서 만들어준 사진앨범도 있다.

이제는 까맣게 잊어버린 그 옛날 정말 잘나갈 때 흔적이다. 그런 그 물건들 이제는 버리자고 마음먹고 버릴려고 하였는데 막상 그렇게 할려고 보니 버리는 것이 난감하다. 사진들이어서 아파트에서 분리수거 하는날 버리기도 그렇고 찢을려고 해도 한장 두장도 아니고 그 많은 것을 또 앨범으로 만들어 받은것은…. 고민을 하면서 뒤적이다 보니 묵직한 박스가 또 있다 열어보니 감사패 페넌트 액자에 넣은 기념사진 등 또 한 박스가 나왔다.

찬찬히 뒤적이다 보니 일일 소방서장 이라고 하루 대구중부 소방서장 질을 했는데 그때 페넌트 일일 대구은행 지점장 페넌트 테니스회에서 받은 감사패 그리고 상배 라이온스 클럽 감사패 지역 여흥민시 회장 감사패 등 나름대로 봉사 황동 한다고 돈 얼마 기부하면 주는 감사패들도 몇 개나 있었다.

아무짝에도 쓰지 못할 ㅇㅇ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시 받은 어줍잔케 찍은 사각모 사진도 액자에 넣어둔 것도 나왔다 갈수록 골치 아픈 것들이 나왔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감사패하고, 이름 민 아무개 귀하는 우리 ㅇㅇㅇㅇ에 많은 기여를 해서 이 감사패를 드립니다. 그곳 장, 아무개 이름 쓰인 것 그것 하나 받으면 기분이 괞찬았다.

그런데 그후 그런 것들 한번도 내 사무실이나 방에 진열을 했다든가 잘 보이는데 비치해두고 자랑 한번 해 보지 않고 바로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박스에 들어간 것 들이다. 그런데 이제 막상 정리 할려고 보니 난감하다. 그대로 버릴수도 없고 태울려니 아파트에서 태울 곳도 없고 얼굴이 들어간 사진 이름이 박힌 패넌트 그대로 종양제 봉투에 넣어서 버릴수도 없고 아내에게 이야기 했더니 그래 골치 아픈거 왜 들추어서 고민을 합니까, 지금까지 박스에 있었든 것 그대로 두세요 우리 죽고 나면 처리할 사람이 있을 거에요 한다 그 말이 맞는거 같다.

그러나 사람은 떠날 때 깨끗이 떠나고 자리도 말끔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내가 처리해야 한다 자식들에게 지저분하게 해놓을 수는 없자나 하는 생각이다.

얼마전에 현 대통령 취임하고 기념 우표를 발행하고 야단 법석이었다. 또 평창 동계 올림픽 기념주화 발행 한다고 하였다 그런것도 올림픽 기념주화 무슨 기념 우표 등 발행할 때 빠지지 않고 거의 구입해 둔 것 보따리째 중국에 있을 때 아내가 시집 온지 얼마되지 않은 며느리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던 팔지 목걸이 등 함께 며느리에게 주어버렸다는데 그때 그건 참 잘한거 같다. 나도 그당시 만들 때 청탁도 하고 추첨도 하여 만든 것 들인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다 벌거 아니었다,

책도 그렇다 세계대백과니, 세계사상전집이니 하는 좋은 책들 거지신세가 되었을 때 집과 함께 다 버리고 남은것 그후에 중국에 갈 때 마다 몇권씩 가져 갔으나 올 때 우리 조선족 직원 모두 주고 왔는데 그 후에 생긴 것이 또 책장이 거득하다 그렇다고 보물스러운 것도 없는데 그러나 이제는 다 없앨때가 되었다. 어느날 용기내어 들판에 싣고가서 다 태워버릴 것이다 아직은 살아 있는데 그러기는 꺼림직 하지만….

 

며느리가 무섭다고 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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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무섭다고 아들도….

요즈음 시어머니들이 며느리가 무섭다고들 한다. 무서운 것은 두렵다는 것도 포함되는 말이 아닐까 한다. 대다수 노인들은 나이가 자꾸 먹어가니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혹시나 아이들에게 부담 주는 일이 일어날까 봐 염려도 되고 조심하며 산다.

내경우는 아이들에게 내 집에 생활하는 방식 또는 음식 등으로 잔소리를 들을 때가자주 있다. 늙은이 둘이 사는데 먹는 양이 적으나 우선 편할려고 또 평생을 검소하게살아서 그게 습관이 되어 가능하면 버리지 않고 쓰고 절약하면서 살아서 마트에서 사온 것들이 보관기한이 다된 것도 있고 조리하면서 고기를 굽고 나면 구운 냄세가 날 때도 간혹 있다.

한번은 전에 지들이 사와서 먹던 소주를 냉장고에 두었더니 어머니 이 소주 언제 거예요 하였다 그때 너희들과 먹던 것 내가 음식 조리할 때 쓸려고 두었다 했더니 버리세요 하였다. 소주도 날자가 넘은 것 조리 할때 쓰면 안 된단다. 또 그 다음에 한번은 들어오자마자 문을 마구 열어 제친다. 야야 추운데 왜? 했더니 고등어 구웠지요? 한다.

그래 구웠다 했더니 싱크대 환풍기를 반드시 오래 쓰세요 하였다. 아내는 그것이 시끄러워서 잘켜지 않는데 하지만 그까짓거 냄세 좀 나면 어떤데 하면서 가고 난다음 언짠아 하며 항상 자기보다 시원시원하게 모든 것 잘하는 며느리에게 지는 기분이었는데 그날은 많이 불쾌해하면서 내게 바가지 아닌 불평을 했다. 나는 그래~ “하면서도 그 조리 냄세 때문에 몇 번을 잔소리해도 잘 안되더니 속으로는 잘했다 싶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며느리가 온다고 하면 나 모르게 이런 것 저런 것 점검을 하는 것 같다. 자기보다 더 많이 배우고 지 차로 아이들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가정의 크고 작은 일들 머든지 시원시원하게 잘하는 며느리이다 또 간혹은 우리 태우고 창고형마트 코스트코에 가서 필요한 물건도 무더기로 사준다.

그러므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좀 버겁어 하는 것 같다 가뜩이나 요즈음 며느리를 모두 껄끄러운 존재라고 하기도 하는데 아내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도 며느리도 그렇지만 아들도 그리 만만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한번은 전화로 아버지 저들 오늘 대구 같다가 모래 오겠습니다 하였다. 나는 좀 자주 처가에 가는 것 같아서 얼마 전에 휴가로 그쪽으로 가더니 또 가느냐 요즈음 혼잡한 길을 가족모두 싣고 다니는 것이 염려되어 ktx 타고 가라 했더니 안 된다고 하였다.가서 여기저기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한다나.

그리고 늙었다고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간혹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 한 것을 대입해보면 이거는 말이 안된다. 내가 아버지에게 한 것은 그저 아버지마음상하게 하지 않을려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하고 모든 것 애를 쓰고 노력했는데 얘는 그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복종시키지는 못하니 버겁고 혹시나 내가 체면 구기는 일이나 생길까 봐 느을 조심을 하며 지난다. 그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아들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겁내는 것이다.

요즈음은 아내도 버겁다. 마음에 조금 안 들면 그래요 그러지 말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어떨가요 하면 나도 생각해보고 그래에~ 그것도 좋겠네할 것인데 당장 안돼요!” 하며 윽박지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 소리를 들으면 나도 당장 알았다!….” 또는 머라꼬?….” 하면서 서로 시끄러워지고 그 후는 며칠 서로 말없는 기간이 되고 그러면서 산다.

아마 이렇게 여기는 아버지이고 남편이 요즈음 나뿐이 아니고 많을 것이다. 손자들이 더 커서 세상물정 알면 그때는 또 손자에게도 그렇게 조심하여야 할거고 이래저래 조심하며 지나야 될 것들이 자꾸 늘어나고 그 기간도, 죽을 나이도 길어진다고 하는데 건강 조심해야 하고, 자식들에게 조심 해야 하고, 세상 조심 해야하고, 조심하고 살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이래저래 늙어서 오래사는 것은 즐겁지 않다, 느을 병원에도 자주가야 하고, 맨날 약먹으며 지나야하고, 행동도 가볍게 마음대로 잘못하고, 아이들도 무서워지는 것 같고…., 세상모두가 겁난다.

*이상해요. 내글은 블로그홈에 제목이 뜨지도 않고 다른분 뎃글 답글 쓸려고가서 쓸려니 특수입력창이라나 그런게 떠서 이름, 이메일, 주소 다 써야한다는데 이제 위블에서 쫓아내는 것인가요?

 

 

중은 떠나면 되는데 그게 쉽지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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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은 떠나면 되는데 그게 쉽지않네.

조선일보에 블로그를 가진지 벌써 13년이 되었다. 중국 상해에서 살 때 한국 신문도 tv도 보기가 어려울 때 고국소식 들을려고 매일로 연락하고 컴퓨터로 소식들보고 할 때 연 것이다.

그때 조선일보에 블로그명을 ‘산고수장’이라고 지어서 블로그를 오픈하고 중국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우리와는 너무 다른 모습들을 보고 글도 쓰고 이국에서의 고독하고 서러운 삶을 달래고 산 것이 귀국 하고도 계속하면서 벌써 7년이 되었다.

이분은 여행, 이분은 살아가는 삶의 글, 이분은 정겹고 아름다운 글 쓰는 분, 그런 분들과 함께 또 조블에 운영자분들 조선일보독자님들 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으며 글도 즐겁게 쓰고 때로는 소재가 궁하면 짬내어 전시회도, 시장도, 고궁도, 여행도 다니며, 그런 기행담도, 견문 이야기도 쓰고, 보고 역겨운 꼬라지도 쓰면서, 정말 귀여운 모습도 함께 볼려고 옮겨오고 하였다.

그 후 조선일보의 블로그 개편으로 많은 회원이 줄어들어 지금은 위블로그라고 명칭변경도 하고 또 다른 모습으로 운영자분들이 잘 다듬어 가꾸고 하고 있었는데 요즈음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세인데 알수도 없고 지난번처럼 또 괄씨 받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절에 주지가 돼지처럼 욕심 체우기만 하면 중은 떠나고 신도도 그런 절 미워서 떠나면 된다. 오랫동안 쌓인 내공들인 탑이 아깝지만 미운 곳에서 인내심으로 그탑 지킬려고 하지 말고 시주한걸로 여기고 훌훌 떠나고 그절 있는 쪽으로 얼굴도 돌리지 않고 살면 되는데 그래도 미련이남아 오늘 또 포스팅을 한다.

얼마 전에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내블로그는 로그인이 안되어 들어 갈수도 없어서 참 황당했는데 그후 일주일쯤 되어 다행히 로그인이 되었다 그러나 추석연휴고해서 한 반달을 쉰 기분이다.

저지난해 이맘때 조블을 없애겠다고 하더니 이런저런 곡절 끝에 지하주차장 맨 끌에 입구도 잘 찾지못하는 쪽방 같은 곳에 위불로그라고 이름지어 만들어주어서 그래도 감지덕지로 여기고 적응할려고 버벅거리고 이거 좀 도와주세요 하면서 운영 자님들에게 귀찮게 하며 지도를 받아가면서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거의 떠나고 여나믄 사람이 남아서 남의 블로그 글 잘 읽지도 않고 외부인들은 조선일보 블로그가 있는지도 모르는 곳, 눈 씼고 보아야 보일 정도로 해두고 괄씨가 말이 아니었다.. 세상에 서러운 것도 많지만 괄씨 받는 것은 괴로움의 상위급이다.

내자신도 이제는 모든게 우둔해져서 때로는 이제 그만 접을까 싶을때도 있으나 안 하는 것 보다는 하면서 지나는 것이 내 건강 그리고 일상에 더 도움이 되고 그래 하면서 지나야 밥을 먹어야 살고 내 마음의 이야기를 하여야 살수 있드시 이것도 이제는 그와 같은 내게는 안 하면 안될 일상으로 습관화된 것이다.

또 이것을 하면서 많은 지식도 얻고 그래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도, 남을 용서하는 아량도, 또 무엇을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삶일까? 또 건강상식도 그리고 좀더 보람되게 살아가는 방법도, 추하지 않게 늙어가는 것 터득도 하며, 때로는 내 나름대로 쌓인 스트레스도, 또 무료한 하루하루 일상을 여기에서 적어도 너 뎃시간은 쓰면서 지나고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인간관계로 일어나는 잡다한 것들 친척, 부모, 자식들로 일어나는 일상의 고민들은 노력하여도 안 풀어지는 것들이 많다. 그런 것 지금까지 살면서 얻은 온갖경험으로 쌓아진 지혜 미천하나마 나누어주는 보시(布施)로 여기기도 하여 즐겁게 하였다.

돈이야 별거아니다 우리나이의 늙은이들은 다산 정약용님이 자식에게 물려준다고 하였던 근검절약이라는 그 좋은 재산을 가졌으니 절약해서 쓰고 일찍 일찍이 준비해서 다니고 소득에 맞추어서 쓰면 별 불편이 없다. 오래 하면서 수양을 더 많이 하고 모든 것 다 내려 놓을 수 있는 날까지 노력 할 것인데 계속해서 하도록 되었으면 하는데 그 쉬운 중 떠나는 것 쉽지가 않네.

*

 

 

 

 

 

투병생활 3. 병실에 모기 한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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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3. 병실에 모기 한마리.

목 경추수술은 하고 난 다음날 전신이 많이 아팠다 무기력한 것이 누워도 편하지 않고 앉아도 짜증스럽고 그런데 건너편 방에서 시장판처럼 시끄러웠다. 아마 문병온 친구들인가 본데 목소리와 주고받는 말들을 들어보니 60이넘은 노인들 너댓명인 것 같았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신경질이나 있었는데 천장에 보니 모기 한놈이 붙어있었다.

아니 병원 병실에 모기는 그냥 보고 넘길 것이 아니다 온갖 병으로 입원한 사람들이 있는데 저놈이 어디에서 무슨 짓을하고 여기 와서 있는지 또 무슨 병균을 지니고 와서 쉬고 있다가 옮길려고 하는지 저놈은 아프더라도 죽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보고 있으면서 연구를 해보아도 나로서는 뾰족한 묘책이 없다 천장이 의자위에 올라가야 처리할만큼 높고 모기 죽이는 약이 있어도 잘못하면 달아날 것이고… 나는 연구끝에 좀 큰소리로 천장에 모기가 있는데 저걸 잡아야 하는데 하였으나 옆에 환자들 그래요 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옆에 환자보호자들 여자가 한명 있고 내 아내 그리고 젊은이 한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제사 저놈이 어느 방에서 어떤 환자를 물었고 무슨균을 묻혀서 왔는지 잡아야 하는데 하였으나 그래도 젊은이도 와서 보더니 가버린다. 곧 안 보이는 곳으로 날아갈 것 같기도 하고 내 딴에는 애가 탄다.

아내에게 간호원실에 가서 킬라가 있는지 그리고 모기 잡아 달라고 이야기 해라고 했다. 그런데 예 약 찾아서 가지요 한다더니 오지 않았다. 드디어 옆방을 지나 복도에 있는 간호원실에 아픈 몸을 추스리며 가서 방에 모기가 있는데 약가지고 와서 잡아라고 하였다. 예 하더니 돌아와서 보니 그놈은 아직 그자리에 붙어있었는데 그리고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고 감감소식이다. 그리고 조금있으니 간호사가 왔는데 수시로 그들이 하는 혈압재고 약물들 들어가는 것 검사하고 하는 일상일하러 왔다.

나는 그제사 열이 올라 오라고하고 분풀이를 하듯이 시장판 처럼 시끄러운 것, 또 지난밤에 조선족 간병사들이 병실앞 복도에서 북한말 같은 저속스런 말로 목소리는 어찌 그리 큰지 지껄이고 하하하 하며웃고 하였는 것, 그리고 모기가 병실에 있어서는 않되지 않느냐 하며 조목조목 이야기를 했다. 시작할 때 지금 책임 간호사 좀 불러달라고 하였더니 지가 책임자라고하여 그래 그렇면 당해 봐라는 심산으로 약 5분동안 설교를 했더니 죄송합니다 내일 알아보고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며 나를 설득시켰다.

그러다가 보니 처음 시작할 때는 모기가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달아나고 없었다. 병실에는 모기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 아니냐. 그러나 모기는 많은 엘리베이터에 수시로 다니는 그많은 사람들 따라서 들어올수도 있다 그러나 그후 발견되면 즉시 죽여하는 약이라도 있어야 하고 죽여야 하는데 킬라가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니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한국의 대학병원의 민낯이냐고 나는 다음날 정말 간호실 책임자에게 어제 저녁에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죄송하단다.

그후 나는 까달스럽고 편한 환자가 아니다는 낙인이 찍혀서 내 나름대로 좀 불편한 병실생활로 이틀 있다가 퇴원했다. 좀 윗쪽에 가서 지난 사실들 이야기하고 기분도 풀 겸 할려다가 아내가 말려서 참고 왔다. 아내의 말 “당신이 이병원에 오래도록 있지도 않는데 또 그렇게 한들 습관화 된 관행들이 쉽게 고쳐 지겠소?” 하였다. 그래 알았다 이만 참자.

3D업종이라고 하며 어렵고 힘든 일 우리국민들이 안하니 그자리에 중국조선족이 그후에는 베트남 필리핀인 등 와서 하는데 그러면 교육은 철저히 시켜서 해야 하는데 그 병원에도 많이 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시장판 같기도 하였다. 할 사람없어 고통스러운 것 도움주고 해결해주는 그들이 조금은 고맙지만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늘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간혹 끔직스러운 범죄사건에는 그들이 종종 섞여있는 것을 보고있다.

그리고 간호사도 한 사람이 일반병실 3방을 혼자 담당하니 12,3명이 수시로 불편을 들어 줄려니 너무 바쁘고 어떤 때는 급한 일이 생겼으나 제때 처리가 안되는 경우도 있다. 이래도 저래도 아프지는 말아야 하는데…

 

 

투병생활 2. 현대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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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2. 현대의술.

70년이넘도록 살면서 발전되어가는 의술을 타인으로 또 내가 직접 체험해서 보고 겪을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초등하교 다닐 때 아버지 도와드린다고 보리베기를 하다가 낫에 손을 베어서 된장을 발라서 낫게 하느라고 그 흉터가 지금도 보면 많이 보기 싫다.

그때 시골농촌에 의원은 없고 몇 동내에 하나 한약방이 있었고 가서 보면 방 천장에 나무뿌리 풀뿌리 봉지가 주룽주룽 매달려 있었다. 병의 증세를 이야기하면 듣고 한문으로 쓰여진 너덜너덜한 책을 들여다보고 이것저것 조금씩 준비된 약초들을 한지종이에 싸서 몇봉지 주면 그것 달여먹으며 끙끙 앓으면서 낫기를 기다리고 그러다가 죽기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상 즉 상처가나면 면소재지에 있는 약방이라는 신약파는 곳에 아까징키라는 빨간약을 사서 바르고, 부어있으면 옥도정기를 발라서 부기를 가라안치고 종기가나면 됴 고약이라고 고약을 환부크기에 알맞게 약을펴서 붙였다. 하루에 한번씩 갈아붙이는데 그러기를 몇날 며칠 계속하면 종기에 고름이 빨려나오고 속에서 새살이 돋아나와서 나았다.

그런데 그때 그 방식은 환부에 나쁜 불순물을 고약이 빨아내어서 속에서 새살이 차올라서 낫게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 내가 낙상으로 이마가 찢어져서 치료하는 것을 보니 먼저 흉터가 될수있는한 적게 꿰메어 버리고 항생제등으로 낫게 했는데 그후 일년동안 이마 땀구멍에서 불순물이 나왔다. 즉 나쁜 균들과 내몸에서 나온 균들이 약의 도움을 받아 싸워서 이기고 그때 죽은 균들의 시체가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목경추를 다쳤는데 일년이지나도 차도가 없어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 다음날 목에 달린 핏주머니 그리고 오줌 주머니, 팔로 들어가는 약물 등 모든 것을 다 떼어버려도 되겠다고 하면서 떼어버렸다.

나는 허전한 것이 다른거는 몰라도 약물은 흘러 들어가게 두었으면 싶었으나 의사가 하는데 그냥 두고 생각하니 그러면 어제 몸을 째고 속을 파드배고 해놓고 이제부터는 내몸이 스스로 그 아픔을 해결 하고 회복도 내 몸이 스스로 하라는 것인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며 궁금했으나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한번 걸어보니 전보다 다리가 가볍고 훨씬 좋아진 것 같아서 다음날 회진 왔을때 좋다고 했더니 그럴 것이다 수술하면서 신경검사기를 들여다보니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좋더라고 하였다. 그랬는데 그후 다음날 퇴원을 하고 날이 지날수록 확 달라지지 않고 전에 보다는 좋지만 아직은 걷기가 버겁다. 현대의술이 참 놀랍게 발전되었다 싶었지만 신경쪽에는 길만 잡아주지 내가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것인가 싶으다.

병실에 있을 때 보니 머리를 수술하고 칭칭붕대로 감고 누워있는데 아침 회진시에 담당의사가 와서 “이름이 머예요,” “여기가 어디에요,” “내가 누군지알아요,” 하면서 묻는데 들릭락 말락한 소리로 무슨 대답을 하는데 알수는 없으나 뇌수술하고 낳아서 퇴원하는 사람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그 어려운 뇌수술도 하는 것을 보고 현대의술이 대단히 발전했다고 무식하나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80살까지는 이제 보통이고 90살사는 사람이 많은 것이고 예전 같으면 모진 병 걸리면 바로 큰 고통을 느끼다가 죽는데 발달된 현대의술로 장기도 갈아 끼우고 하면서 전보다 수명은 많이 연장 되었지만 장애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갈수록 그런 현상은 늘어날 것 같다. 따라서 나이 많은 노인들은 사는것이 좋다고 하지만 살아가는 고통도 만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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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1. 수술한지 두달 되어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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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1. 수술한지 두달 되어 가는데…

작년 2월 낙상으로 목을 다쳤는데 그냥 두어도 좋아 질거다고 의사가 말했고 나도 수술 안 했으면 싶어서 일년을 약을 먹고 회복을 기다렸으나 별 진전이 없어서 결국은 지난달 초에 수술을 했다.

투병생활이 어렵다는 말 들어도 그거는 남의 일이라고 여기며 나이에 비해서 젊게 살았는데 이제는 내가 그눔의 투병생활 하느라고 폭삭 늙었고 행동거지가 불편하니 매사가 짜증스럽고 사는게 즐겁지는 않다. 또 일년을 수술후 회복을 기다리면서 지나야 한다.

목은 우리몸의 감각을 느끼게하고 움직이게 하는 신경이 지나는 곳이여서 건드리기도 껄끄러운 곳 그곳을 건드려서 그런지 조금 좋아 지긴 해도 시원하게 달라진건 없다. 대학병원의사도 일년 넘게 다니다가 보니 친구가 되어 많이 친하다. 별 진전이 없어 MRI 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해보았더니 어찌된 일인지 작년 두번째 찍은 것과 별차이가 없어서 의사도 나도 바로 수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수술직전 인턴이 병실에 와서 수술 동의서를 보여주면서 목뒤가 아니고 앞쪽을 째서 하는데 숨 쉬는 관, 음식물 먹는 관, 또 무슨관, 각 신경줄 핏줄 등을 밀치고 하다가 보면 목소리가 쉰 소리하는 사람이 될수도 있고 갑상선이 손상 될수도 있고 음식물을 구멍을 뚫어서 먹을 수도… 등등하며 겁을 주어서 그만 하지 말고 휠체어를 타고 다닐 정도로 나빠지더라도 그냥 지날까 곧 80이될것인데 이것 잘 하는 짓인가 하는 회의도 가졌고 당장… 하는 나쁜 생각도 들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한 수술이었다. 지금 보니 인턴의 그 말은 기우였고 별일 없고 다만 신경계이니 그런지 전신에 힘이 없고 다리가 근육통을 앓는 것 같다. 훌륭한 교수님이 정성들여서 했다고 하시면서 지금 좀 괴롭더라도 잘 참고 수칙 잘 지키고 지나보라고 하였다.

회복이 되고 얼마나 잘 될런지는 모르나 지난 세월 아무 거리낌없이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다니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고 지금 내게 어찌 이런일이 싶으며 또래 잘 다니는 이들 보면 많이 부럽기도하다.

나는 젊을 때 사람은 먹고 싶은 것 잘못 먹고, 하고 싶은 것 몸 때문에 못하고, 가고 싶은곳 또한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되면 죽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하며 살았는데 그런 날이 올 즈음은 65세에서 70정도쯤으로 생각하고 하였는데 다행히 그 시기는 한참 지나서 이제 곧 80이 될 나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인력으로 자기생명을 마음대로 못하는 현실이니 앞으로 얼마나 고생을 더하며 살지 걱정도 많이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크고 작은 병치례를 더 많이 할 것을 목전에 번히 보면서 지금의 이 고생을 참으며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지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것도 내게 주어진 운명인지 업본지 내 삶이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여기고 그르려니 하고 살아야 한다. 세상에는 평생을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것 생각하면서 느긋하게 지날것이다. 내게는 아직 이렇게 블로그에 글이라도 긁적일 기력도 쓸능력있으니….

그런데 조선닷컴 위블로그 요즈음 왜 이런지….

 

 

 

 

하늘이 말린 야구경기장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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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말린 야구경기장 구경.

아들이 광복절 오늘자 야구표 네장을 보내왔다. 아내와 딸은 간다고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저께는 아내가 몸도 아프고 안 갈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그렇다고 하고 네가 알아서 직원들 주던지 하여라 하였더니 아들은 머라고 그 표가 특실표다.”고 하면서 머라카노, “커피도 치킨도주고 하면서 그런 푠대 웬만하면 누나와 아부지도 다녀오세요.”하였다.

요즈음 아내가 많이 아프다 머 3개월동안 의원 병원을 다녔는데 노인 섬유근육통이라나 그런거로 앓는 것 같은데 동네의원은 거쳤고 중급병원에서도 잘 몰라 큰 병원에 류마치스내과 있는 곳에 가보라고 그 동안 검사하고 치료한 것 소견서를 써주어서 알아보니 이게 웬일이냐? 9월말까지 예약이 않된다 그 후에나한다. 또 다른 곳에 해보니 10월 중에나ㅎㅎ

세상에 이거 어쩌면 좋으냐 저녁마다 움직일 때마다 아야야야…” 하면서 통증을 호소하는데 병원도 많은데, 그놈의 병원 내가 수술을 해보니 중간 계산해주세요하면서 계산서 보니 150몇만원, 다른 것들은 들여다보고 혹시나 이의 달꺼나 있는지 보지만 병원비는 머가 먼지 달라면 두말 않고 누구나 다 준다. 잘은 몰라도 덜 받는 거는 절대로 없을 거고 더 받는 거도 비일비재 할거다.

아버지 계실 때 허가 낸 도둑놈들 제발 아프지 말아야 된다 그럴려며 평상시 건강할 때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하셨고 또 있다 변호사도 합법적인 도둑놈들이다고 하시면서 절대로 소송은 하지 말게 살아야 하고, 당하지도 절대로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소시때 수천만원 떼이고도 버리고 말으시는 평생을 사셨는데 그것보고 나도 그렇게 살기는 했는데 지난 삶이 영 마음에 안들게 거의 평생을 살았다.

야구 구경 이야기나 할 것이지 왜 이래 됬노? ㅎㅎ

그나저나 아내가 빨리 나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야구구경도 이런말 저런말 특별표니 나발이니 하더니 오늘 비가 와서 보지도 못하게 하늘이 말렷다. 작년에도 아들이 표를 보내주어서 가서 보고왔다. 아내는 야구마니아다. 아들이 적을 둔 곳이라고 엘지 경기는 빼먹지 않고 밤늦도록 중계방송을 다 보는데 선수이름 경기규칙 등 할머니치고는 박사라고 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경기장에 가겠다고 할 때 아픈데 네시간 정도를 버티기나 할까? 했더니 그래도 간다고 하면서 어제는 바르는 모기약, 부채, 간식거리 과일 빵 주스도, 혹시나 얇은 겉 잠바도 챙기고 했는데 가서 보게 했으면 좋을 것을 하늘이 말렸다.ㅎㅎ

그래서 그만 많이 아프다고 누웠고 나도 수술후 회복 중이어서 이 글이나 쓰고 누워야 할 것 같다. 아파도 괴로워도 웃자. ㅎㅎㅎ

 

 

 

임진강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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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내집에서 내려다보면 임진강 굽이치는 곳이 마치 바다에 닿은 것처럼 넓게 보인다.오늘 아침은 기다리던 비가 내리고 넓은 임진강물위에 물안개가 자욱하다. 저 안개는 구름이 강물위에 내려앉은 것일까 강물이 구름이 되어 하늘로 올라 갈려는 것일까? 2017년 여름이 임진강물위에서 아른거리면서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것 같기도하다.

세상사 뜬 구름 같다더니 부운 같은 인생살이를 살고 있다. 지난해2월에 죽었다가 현대 의술덕으로 또 한번 살아서 이렇게 블로그도 하고 때로는 귀여운 손자와 놀기도 한다. 10년전 중국에서 심근경색으로 10분마다 숨이 멎을 정도의 통증을 중국산 좁쌀알 같은 구급약을 먹으며 비행기로 와서 용케 의술덕으로 살았고 이번에 또 피치못할 모진낙상으로 몸뚱이도 정신도 죽었다가 말만 들었던 구급차로 실려가서 살았다. 그러나 그후 일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과 같을수야 없지만 일년 사이에 5년이상 팍 늙은 노인이 되었다.

매일 한번 먹는 심장약을 먹으면서도 참 건강하게 가벼운 운동도 많이하고 일상생활에 건강상 부족함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행동에 지장을 느낄 불편함으로 지나니 많이 불편하고 또 신경외과의 약을 먹으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있다. 그러느라고 많은 것을 경험했고 느꼈다. 건강이 이토록 소중한 것 건강할 때는 몰랐는데 불편해보니 아무 생각없이 불편없이 걸어다니는 것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빵 한조각 사과반개 그리고 두부 설은 것 두 조각 먹고 우유 한술 넣어 탄 커피한잔으로 아침 먹고 여보 오늘 우리 북한산갈까 하면서 전철타고 가서 무리하지 않게 걷고 오고, 소래포구로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로 가기도 하고 많이 다니며 걸었는데 걷기가 버거우니 기껏해야 서울에 다녀오는 것 이곳 마트에 걸어가는 것 등 하루에 5000보걷기도 힘드니 살맛이 안난다.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죽어봐야 아는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없으니 그거는 알수가 없는데도 세상사람들은 사는게 좋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이는 개똥밭에 구불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 또 어떤이는 이 골치아픈 것이 즐거운 것 보다 훨신 많은 세상 이나이가 되었으니 죽으면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성할때는 몰랐는데 다리가 불편하니 마음대로 걸을수 있는 것이 소중한 것이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요즈음 사람수명이 80이보통이라고 할 세상이 되어서 살아보니 수천년 전부터 인간의 소망중에 부귀다남장수에 들어갔던 장수의 욕망이 그게 아니구나 오래 명줄이 붙어있는 것은 별로이고 건강히 살아야 하는데 늙으니 온몸이 쑤시고 결리고 걸핏하면 감기도 들고 또 많이 써먹은 몸의 각 기구들이 노쇄해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해서 불편하고 어떤 부위가 지독하게 아파서 병원에 가서 절제도하고 하니 긴 수명이 달가워하지 않은 시대라고 여기는 사람이 점차 늘어가고있다.

내 주변에 분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면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죽기로 오래살고 더 살고 싶어만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요즈음 보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주변에 어려운 모습들도 많이 보이고 또 나로 인해서 불편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만 가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산다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하는 노인들이 많다.

맞아 사람들은 당해보고 경험을 해봐야만 그것이 어떤지 알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좌절과 절망을 통해서 안으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영글어 진다더니 이제사 안으로 눈이 열리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다 버릴 줄도 알고 빈껍데기로 사니 죽는것도 무섭지 않아지네.

*참 하기 싫은 수술을 하러 오늘 또 병원에 입원을 하여야한다. 따라서 며칠 동안 유일한 내 일(?) 이블로그도 휴업.ㅎㅎ

그렇게라도 웃으면서 병원 간다 어느 의사의 말. ‘웃으면서 오는 환자는 빨리 낫는다고 하였는데 그리되고 싶어서…  건강한 나날 되세요.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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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 마음이 아름답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따라서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고 남의 즐거움을 이해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루의 일상이 고달프면 세상은 잿빛으로 보이고 마음도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이 우중충 해지는데 그런 시기에 처한 사람에게는 활짝피어 아침 이슬먹고 있는 장미도 예뻐보이지 않는다.

흔히들 아름답게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고 한다. 그러면 건강에도 좋고 일도 잘된다고 하는 말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다 헛소리다. 마음이 우그러지도록 주변이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는다는 것은 어렵다.

지금부터 25년전에 불행한 일을 당해서 해매고 다니며 세상이 싫은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그때는 차를 몰고 정처없이 기약없이 휴대폰도 끈채로 다닐 때 세상은 온통 잿빛속에서 수년을 해맨 적이 있었다.

지금 말썽 많은 성주에 어느 작은 절에가서 텅빈 법당에 홀로 앉아서 부처님에게 절을 수없이 하며 나는 한없이 울었다. 한시간정도 그러다가 기진하여 그냥 업드려 잠이 들었는데 주지스님이 와서 깨웠다.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하고 하룻밤을 절밥먹고 자고 다음날 또 정처없이 가고를 하며 마음을 달래느라고 애쓴적이 있다. 그때 나는 참 억울하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정말 회사직원들에게 존경 받으며 나는 잘했다고 자부하고 모두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지났다. 그러나 내게 닥아온 불행을 내가 감당하기는 너무 벅찼다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고 많이 해매고 다녔다. 그때 봄이오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닥아 왔지만 그전에는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아름답고 그때마다 바뀌는 주변의 자연들 그리고 내 공장에 신입직원들 잘 몰라서 한 작은 실수도 그럴수 있다고 귀엽게 보였던 나였는데 그런 기억도 없고 세상이 너무 싫었다.

흔히들 죽어봐야 저승을 알지 하는데 나는 죽을 만큼의 불행을 겪어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 심정을 이해 할수가있다 아울러 그런 경험에서 터득한 내 지금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이나라가 세계에서 어느정도 살고 있는 나라인지를 잘 알수가있다.

사람은 좌절과 절망을 통해서 안으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영글어지는 것이다. 아무 고뇌도 없이 오랜 세월 편하게 산사람이 그런거 안다는 것은 어렵다.

요즈음 온천지가 아름답다 앙상하던 마뭇가지는 6월이되니 푸른 잎으로 뒤덮여 졌고 아파트 울타리에는 장미가 만발해서 너무 아름답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 마음도 편하고 아름답기에 그렇게 보이는것이다. 도둑의 심뽀로 지나는 사람에게 지금 저장미가 아름답게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동안의 어리석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 아름다운 계절에 김춘수님의 꽃을 읽어보며 이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본다.

그나저나 비가 오지않아서 타들어가는 논밭들을보니 안타깝다. 어재부터 올 것이다고 하던비가 아직도 찌뿌리고 있기만하지 안오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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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2.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한 시간이 넘도록 다니다가 숙소에 돌아가니 네 명은 아직 한밤중이다. 시끄러우면 곤하게 자는 아이들 깰가봐 아침준비를 할수도 없고 tv도 볼수없고 아무것도 할수없다 그렇다고 다시 또 나갈려니 그것도 그렇고 할 수 없이 다시 우리도 잘려고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뒤척이기를 하면서.

데리고 다니며 돌보아주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느을 염려했던 아버지어머니는 이제 거꾸로 지들의 염려를 받으며 이렇게 늙었다. 이렇게 여행이라고 함께하는 것도 이제 몇번을 할려는지 또 이런 조금은 서글픈 생각도 한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나니 어린손자가 들어오면서 하부지하며 할머니에게 안긴다. 할머니소리는 안하고 할머니도 하부지 할배도 하부지다ㅎ. 시계를 보니 10시다 집에서는 7시에 식빵과 계란한개 사과반쪽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며느리가 만든 늦은 아침밥을 먹고 우리는 제주도구경을 하러 나갔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것 가시고 싶은곳 있어요 하였으나 그런거도 없고 니들 가고 싶은 곳에 가자고 하였더니 유모차타는 아이가 있지 내가 많이 걷는 것이 부담되어 그런 것 참고 하니 별로 갈곳이 없었다.

멀리 가지 말고 해안도로를 가다가 바닷가에서 아이들 흙장난이나 하는 것 물에 첨벙거리는 것이나 보자고 했더니 그것도 하고 민속촌인가도보고 몇군데 들러보았으나 과대포장으로 내용은 모두가 시시하고 어둔 하기만 한곳들이고 다리만 아프다. 그러나 애써서 연구하면서 다니는데 힘빠질까 봐 다른 소리도 못하고 내리라면 내리고 타라면 타고 즐러운 표정을 억지로 지으면서 다니는 것 그리 쉽진 않다.

그러다가 제주흑돼지집이라고 인터넷에 유명하다는 곳으로 알려진 곳에서 점심을 2시가넘어서 먹었고 다음날은 비싸다는 요리집에서 제주은갈치 점심도먹었고 서귀포 제래 시장에서 줄을서서 기다리며 사서먹은 흑되지고기 꼬치구이도 먹어보고 차를타고 이쪽에서 주문하고 조금 돌아가서 찾아먹는 쓴맛커피도 먹어보았다.

커피집은 집안에 들어가서 앉아서 마시기는 하지만 길가에서 사서한손에 들고다니며 마시는 것은 보았으나 차타고 입구에 들어가면서 주문하고 돌아나오면서 찾아마시는 것은 말만 들었지 나는 처음 보았다.

그런데 그후 며느리가 운전하고 다녔는데 치킨도 그렇게 해서 사와서 숙소에 와서 먹었다. 지들은 몇번을 다녀왔으니 제주도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다.

세상에, 언제부터 이렇게 이나라가 이토록 현대화되었는지 이번 여행으로 나는 전장에서 말했다싶이 마음속으로 물결이 출렁거리고 내 영혼이 살이 많이 쪘다 먹어서 몸이 살찌고 ㅎㅎ

그리고 또 어린 막내손자 할배가 걸음이 둔하고 다리가아파 앉아서 쉬고있으면 오라고 손짓하고 그래도 안가면 쫓아와서 손을잡아 끌면서 무어라 지껄이며 끌고가면 또 따라가야 한다 조금은 괴로우면서도 그게 내게는 너무 즐겁고 그놈이 너무나 이뻤다. 지금도 그놈이 여행에서 한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고 마냥 즐겁다.

성산포 일출봉, 한라산, 천제연폭포도 걷는 것이 많아 못보고 이틋날은 제주에서 다음날은 서귀포에서 이곳 저곳을 많이 보았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도 어렵고 그래도 아무런 아쉬움도 없다. 다만 아이들과 34일을 함께지나며 있었고 많은 모습들보고 이야기하며 지난 것이 그어떤 것 보다 더즐거웠다. 그리고 행복감에 젖어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