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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나라 되니 4) 점집 철학관이 늘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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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나라 되니 4) 점집 철학관이 늘어나고.

우리들 가난하게 살때 점 보는 집은 찾아볼래야 잘 못 찾고 입 소문으로 간혹 답답한 사람은 찾아가서 복채라고 몇 푼 놓고 물어보고 시원한 소리도 듣고 또 답답한 소리를 하면서는 귀신이 붙었다느니, 선조 묘를 잘못 섰다느니 하면서 굿을 하라느니, 무슨 무슨 양밥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혹시나 그러면 시원해 질까 싶어서 반드시 시키는대로 하였다.

그 당시 말로는 그런 사람을 ‘점쟁이’ 라고 하였다. 조금 현대물들은 사람은 미신이라고 안 믿고 안하고 하였는데 요즘 보니 점집들이 버젓이 ㅇㅇ보살, 무슨 철학관 등 하면서 수월치 않은 임대료를 주어야 하는 번화한 곳에 깨끗이 차려놓은 집들이 많이 있다. 그 속에 계시는 분께는  운명 예언가 라고 해야 하는지 철학사라고 해야 하고 선생님 소리는 반드시 해야하고 두손 합장하여 공손히 인사도 해야 한다 예전처럼 점쟁이라고 했다가는 뺨따귀를 얻어 맞을 것이다.

요즘은 모든 것 듣는 사람 위주로 이름이 지어진 것들이 많다. 법무사, 간호사, 환경미화원, 목욕관리사, 장의사, 식육처리기능사 등 예전 보다는 듣기 좋은 명칭이 많다.

그런데 예전보다 잘살게 되었고 선진국이 되었는데 왜 점집 철학관이 그렇게 많아졌을까? 대구에 팔공산 꼭대기에 갓을 쓴 부처바위가 있다. 내 어릴 때는 간혹 그 곳에 아기 못 낳는 사람들이 아이 낳게 해달라고 가서 빌기도 하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간혹 있었다.

그 부처 앞에는 맨땅이었고 치성을 들이도록 만들어 놓지도 않았었는데 요즘 가보면 아주 학교 운동장처럼 넓게 잘 만들어서 바닥은 방석이 깔려있고 그 곳에 참배하고 잘되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수 백 명이 되고 전국 방방곳곳에서 전세버스 내어 온다고 한다.

정말 그 곳에서 공을 들이면 무슨 큰 효험이 있었는지 또 있었다고 하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으나 끊임 없이 찾아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동네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폼 나게 꾸며놓은 점 하는 집에는 지나가다가 보면, 이름 알려진  외국차도, 최고급 승용차를 주차해놓은 것은 자주 보고 그 속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집도, 무슨 주문 같은 것을 외우고 짤랑짤랑 하는 방울 흔드는 소리도 들리고 때로는 징 소리도 난다. 아마 요즘은 돈도 많이 주어야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못살았으나, 그런 곳에 그렇게 기대보려고 하지 않았고, 점 집도 보기 드물었는데, 그때보다 더 잘살고 더 과학적인 공부도 더 많이했고 더 현명해 졌는데 왜 그런지 너무나 이상하다.

우리보다 한참 못 사는 사람이 많은 중국에 살 때 보니 점집 볼래야 볼 수 없고 간혹 길거리에 노인들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 작은 종이문서를 앞에 놓고 앉아있는 것밖에 보지 못했는데 선진국이라고 폼 내고 잘산다고 된 우리나라에 왜 이리 점보는 집이 많은지.

또 아주 궁금한것 그 점 봐주는분 그렇게 앞일을 예언까지 해준다면 그런 것 가르치는곳이 있는지 어디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알수없는 일이다. 어느 대학에 점학과가 있다는 것도 듣지 못했는데 사업은 번창하고 있다.

점과 선진국 잘사는 것과도 정 비례해지는 즉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과학과는 거리가 먼 미신이라고 여겼고 똑똑하다는사람들이 괄씨하였던 점쟁이에게 그똑똑한사람이 선생님이라고 하며 아양떠는 세상이되었다.ㅎ

이해 못 할 일들이 번창해 가고 있다 또 궁금한 것은 그런 집들은 소득도 수월치 않을 것 같은데 소득 있는 곳에는 반드시 세금도 뒤따르는데 무슨 업종으로 분류되고 세무서에서는 세금을 받는지도 궁금하다.

댓글에서 악플과 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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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서 악플과 선플.

인터넷시대에서 각종 매체로 하루에도 수 십만이랄까 그런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중에는 시급을 요하는 정보도 있어서 빠른 대비로 큰 손실을 막는 정보도, 이때까지 묻혀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알려지는 것, 등등 정말 귀중한 정보들도 있지만 별거 아닌 연예인들의 사생활 같은 거도 있고 때로는 엉터리 정보들도 또는 상대를 골탕 먹일려고 하는 정보도 많이 있다.

또 그런 것을 당하는 본인이나 그런 정보를 제공 하는 자들의 생각들을 쓴글들을 보고 또 그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표시하는 정보는 제공자의 한가지에 대해서 수십만이 넘게 표현하는 댓글도 중요한정보다.

그런데 그 댓글은 또 공감하는 것으로 공감하지 않는 것으로 구분 할수 있는데 그 중에는 정보제공자에게 충격을 가지게 하는 비 공감의 글을 악플이라고 한다. 이 악플은 마음여린 사람이 당하면 심한 충격으로 의기소침해지고 그런 것을 많이 당하면 우울증 같은 병으로 접어들게까지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내가 오래 전에 블로그에서 신사임당에 대한 글을 썼는데 내용은 조선시대에 남편 홀로 두게하고 시부모도 모시지 않고 친정인 강릉에가서 있었고 자기취미를 즐기며 하였는데 그당시 시대상으로 며느리 의무와 시대적인 여성들에게 요구한 의무를 거절하며 살았는데 여성으로서 잘한 것은 아니다는 식의 글이었는데 등록하고 그후 악플이 100여개 이상이나 달려서 당황해 한적이 있었다. 심지어는 이년아 글 당장 내려라!” 하는것도 있었다.

나도 10수년동안 블로그를 계속하면서 악플도 많이 받았다. 며칠 전에는 이 늙은아, 너나 인공자궁 달고 아이 낳아라! 그게 그리 쉬운가? 나는 돈벌어 해외여행 다니고 맛있는거 사먹고 화장품이나 사겠다.”

하는 댓글을 며칠 전에 받고 이게 머냐 싶어 클릭을 해보니 요즈음 글도 아니고 2012127일에 쓴 글 아이낳기 싫어하는 여자들.”이라는 글에 달려 있었다.나보고 인공 자궁달고 해보란다. ㅎㅎ, 내야 이렇게 웃고 하지만 그 사람은 나 때문에 잠시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 사람을 화나게 한 가해자가 된 것이다. 조선일보 블로그에 회원이 아닌자가 댓글을 쓰려면 메일을 알리고 써야 하는데 메일주소를 보니 우리나라에 흔히 보는 메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댓글 밑에 답글을 이렇게 쓰고나니 시원하나요? ㅎㅎ, 건전한 생각으로 살면 행복해져요.” 라고 써놓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내가 또 한번 더 속상하게 한 것 같아 별로다.

그러나 마음에 안 들면 마음속으로 미친놈! 또는 년!” 하고 말면 될 것인데 머 그렇게까지 쓸것은 없고 왠만하면 ‘그렇지만 이러한 것이 있지요.’ 하는 덕플로 그리 마음 상하게 하지 말아도 될것이다. 악플의 반대는 선플이라고 해야할까, 그렇지만 마음에 안드는데 선플을 쓸수는 없다.

어떤이의 말에 칼로 입은 상처는 치료가 되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치료가 안된다.”는 말이있다. 요즈음 간혹 보면 악플 때문에 우울증이라는 병이 생기고 그것이 심해서 죽는 자도 있다.

엊그제 뉴스를 보다가 보니 지금 평창 동계 올림픽을 정부에서 너무 북한을 의식해 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평양올림픽이라고 야당에서 흠집을 내니 다른 쪽에서는 평화올림픽이라는 찬성쪽과 sns상 경쟁을 한다고도 한다.

이세상에는 내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것들 모두 융합해서 이세상이 온전히 유지되고 세월은 흐른다 좀 다르다고 모질차게 아픈 소리 하지 말고 좀 부드럽게 보고 이해해주면서 살면 자기가 행복하다.

 

 

 

kbs의 긴 파업이 이제 끝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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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긴 파업이 이제 끝났다고.

오늘 어느 매체에서 보니 141일 공영방송인 kbs의 기나긴 파업이 22일자로 끝내고 23일부터 정상으로 업무가 시작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22kbs이사회에서 고대영사장 해임 안이 가결되어 노조원들이 드디어 끝났다고 하면서 서로 얼싸안고 즐거워 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싸움이 더 어려울 것이다고 하면서 내부의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말, 말들을 보면 이제부터 mbc와의 선의의 경쟁을 하자.” 밖에서 싸움보다 어려운 싸움이 이제부터 시작될 것.” “우리가 이겼다 공영방송 되살리자.” 다시kbs! 국민방송으로등등의 말들을 하면서 즐거워했다.

Kbs 정신차리세요!

이렇게 141일이나 파업을 하는 동안 나라에는 대통령이 파면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고 북한은 우리한반도에 무서운 핵폭탄을 비롯한 무기를 만들어서 세계 최강한나라로 자타가 인정한 미국을 가지고 놀다 싶이 하고 있었고, 국내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신정부가 들어서서 전 정부에서 저지른 헝클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고 적폐청산이니 하는 어려운 업무를 하고 있으며, 평창에는 세계인들이 함께하는 대축제인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촛불을 들고 정권퇴진운동을 하였는 많은 일들로 국민들은 바쁘고 서글펐던 기간이었다.

그 동안 공영방송 kbs는 주어진 업무모두를 팽개치고 임직원들 밥그릇 싸움 하느라고 눈감고 지났다. Kbs의 박터지는 싸움에도 국민들은 아무 문제없이 평상시보다 중대한 일들 수없이 하였고 우리들은 알 것 다 알고 위에 쓴 것처럼 어려움 다 해결하며 즐길 것 즐기며 살았다.

이제 끝내고 잘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만 과연 얼마나 잘할지 두고 보기는 하겠으나 주어진 의무를 말과 같이 과연 잘하겠나 싶으다.

지난 수십년 동안의 kbs는 공영방송이라고 하면서 시청자 즉 국민은 생각하지 않고 정권이 임명한 사장의지휘하에 전국민이 모아준 시청료로 아무 어려움 없이 마음에 드는 여러 협력업체들 데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이 시대에 구태의연하게 잘 지나는 꼴을 보며 시청자인 국민들은 참고지나 왔다는 것 알아야 한다.

일반 기업들도 고객들과의 분위기쇄신, 더 나은 발전을 바라서, 또 한 부서에서 같은 업무를 하는 것은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고 2년정도로 전근도 시키고 하는데 kbs는 그렇게 했는가?

한 사람을 위한 인사를, 그 사람 좋으라고 한 인사로 10년넘게 한 프로의 mc를 하고 있는 사람도 몇이나 있다, 그리고 저 사람이 저 프로를 이끌 자질은 아니다고 여겨지는 자도 버젓이 몇 해나 하고 있는 것, 시청자들은 보기도 싫지만 보고 있다.

또 인구가 줄어든다고 국가는 걱정이 태산 인인데 그에 대한 영국 같은 국가의 영아정책이 어떻한지 취제도 해보았는가?

이래하면서도 시청자를 위하는 공영방송이냐? 각종프로 mc도 운영자도 시청자를 위한다면 유능한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하는 여타 업체들처럼 바꾸어라 그래야만 발전이 있을 것 아닐까? 또 세계에서 상위급인 파업을 따라 하면서도 공영방송운운 하였다. 시청자는 안중에 두었냐고 묻고 싶고 더 신선하고 시대에 적응하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공영방송이라면서 이 나라에 방송매체들을 이끌고 가는 리더 역할을 했나고도 묻고 싶으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일년을 안채우고 그래도 141일동안 만에 끝났다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서글프다. 세계에서 141일이나 파업하는 것이 몇이나 있을까? 그런 반성도 해야 할것이다.

그 동안 보니 kbs가 업무 내동댕이쳐도 평상시보다 더 엄청난 일하는데 아무 문제 없었고 우리는 볼 것 다 보았고 알 것 다 알고 지났다 매달 꼬박꼬박 뜯기는 시청료 안 뜯기고 살면 돈 절약되고 차라리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국민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잘사는나라 되니 3)감사할줄 모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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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참 중요한 교육이고 그것이 쌓이면 감사할줄도 알고 행복해진다.

네살 먹은 내 손자가 어느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네모난 틀을 머리에 끼우다가 목으로 내려갔다 들어가기는 했는데 위로 뺄려고 하니 빠지지 않는다 갑자기 울고 야단이 났다. 할부지가 빼 줄거니 울지 말아라고 하였으나 엉엉 운다. (위 사진참고).

아내와 나는 웃기도 하고 그러나 저렇게 우니 빨리 빼주어야 하는데 얼굴위로 나무틀을 올려 뺄려고하나 빠지지 않는다. 하기사 조용히 있으면 부셔버리면 되는데 아기는 겁나서 엉엉 울고 있으니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하기는 아이에게 미안하고… 나는 이 귀한 모습을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는 짓궂게 ㅎㅎ, 많이 울리고 이리저리 해서 드디어 빼내어 주었다.

그후 다음날 주었더니 아예 잡아보지도 않는다 옆에 두었더니 아이는 집어들고 가서 현관에 내다버리고 만다. 그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세살먹은 아이도 자기를 나쁘게 한 것이라고 거들떠보기도 싫어한다. 이토록 경험은 좋은 교훈이다.

우리 노인들은 지난 세월 사는 동안 온갖 경험들이 많다 일상 생활중에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찌 살았을까?

콩나물시루 같이 서서가는 기차를 타고 그것도 10리 이 십리 마다 있는 작은 역에도 다 서고 가고 하는 기차 태워 주어서 고맙고 가게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타고 다녔고 여름 방학때 항상 바쁘신 아버지가 짬 내시어 물놀이라도 한번 데려가서 먹던 밥과 김치 조각 몇 개로 간식 먹으면서도 행복 했던 우리 어릴 때였다.

그럭저럭 커서 직장에 다닐때 놀토가 어디 있으며 일요일도 없고 수시로 야근도 하느라고 자정가까이 되어야 퇴근하고 3일이 멀다하고 숙직도 하였다. 상급자들에게 모진소리 때로는 손지검도 당하는 것 예사로 여기고 나를 잘되게 할려고 한 것으로 여기면서 생활 하였다.

가정에 여자들은 마당에 물도 나오지 않는 집이 대다수고 빨래는 냇가에 가서 하면서 밭매기 남정네들 중참 점심 열 식구 치다꺼리 하는 것은 보통이고 없는 살림 꾸려가면서 맛있는 것 먹을 것 아이들 먹이고 자기는 배골아 가면서 살았는 사람도 너무나 많이 있었다.

그런 모진경험들이 남아서 요즈음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한 생각도 할줄 알고 국가에서 고려해주는 기초수급 연금 받으며 아껴쓰고 살면서도 행복 느끼고 살고있다.

오히려 요즈음 젊은이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보면 우리가 한 것이 정상이고 지금 그들의 생각이 비정상인 것처럼 여겨 지기도 하다.

간혹 여행하면서 무궁화 열차를 타보면 누구나 다 앉아서 가고 널다란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면 탐스럽게 자란 농산물이자라는 논밭 그리고 잘 정돈된 산천 등을 보면서도 행복한 감을 느끼고 조용한 차안에서 편하게 가는 열차도 내가 고객은 왕이라는 대우를 받고 가는 것 같아 행복해지고 가끔 지나다니는 열차원은 문간을 들어올 때 인사하고 나가면서 돌아서서 머리 숙여 묵례하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인다.

어릴 때 기차는 돈주고 탔지만 열차원의 무서운 눈초리는 아직도 잊지 않아지는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데려다 주니 고맙게 여겨라 그리고 모두들 그렇게 고맙게 생각도 하였었다.

그랬는데 요즈음은 모든 것이 경제 논리로 살고 있으니 내 돈내고 한 것이니 나는 이런 대우가 당연하고 조금만 소홀하면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든 나쁜 것이고 이해와 용서가 없는 세대가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이제 30%정도되는 나 같은 구세대들 그런 경험으로 그저 모든 것이 감사히 여기고 살아가는데 다 가고 나면 우리 인간이 만든 생각 없는 기계 로봇이 등장하여 자동차도 사람은 타고 있고 책 읽고 있는데 지가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는 식으로 사람들도 그런 사람만 사는 세상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잘사는 세상 만든다고 잘사는 나라 되고 보니 이래 되었는데 이것 잘하는 것인지…

 

한 블로거의 죽음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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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블로거의 죽음을 보면서.

며칠 전이다. 조선일보 위블로그(weblog)에는 오래된 여성 블로거 한 분이 돌아가셨다. 위블로그는 우리들의 블로그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 아닌가 한다. 조선일보에 그러냐고 물어보지는 않아서 모른다. 그리고 찾아가자면 눈을 딱고 또 딱고 한참 찾아야 도착할수있게 해두었다. 그것도 안 물어봐서 왜 그랬는지 모른다.

저 지난해 조선일보는 너도나도 마구 회원이 되어 난잡하던 블로그를 정비하느라고 홍역을 한번치루었다. 대한민국의 유수저널에서 독자를 푸대접한다느니 이제 이만큼 되어서 우리를 푸대접 한다느니 하면서 몇몇 열성 분을 대표하여 담판을 지우고 하면서 우리 딴은 심각했다.

그후 여러가지 까다롭게 규정지어 대대적인 숙청을 하고 그때 새로 꾸며진 블로그다 그후 2년이되어간다. 과연 뜻대로 지금은 몇 안되는 이들이 조용히 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보니 그 중에 한 분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 하셨다는 것을 나는 늦게 알았다.

그분 블로그에 가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분이 사고 당하기 이틀 전에 쓴 글 아래 뎃글이 많이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살아있는자의 허세지 죽은자에게는 그것이 무슨 위로가 되나. 명복을 빕니다. 또는 세상에 어찌 당신에게 이런일이, 하는 조의 글등 허망한 인생을 한탄하는 글들이었다.

나도 세상에 인명은 제차라더니 이럴수가 있나요등등하면서 명복을 빕니다 하고 썼다. 나이가 한살 두살 먹어 이 나이가 되니 요즈음 가끔씩 아플려고 사는 것 아닌가? 그래서 병원가고 약먹고 할려고 산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게 생각히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이가 몇인지 어디에 사는지 그런거는 모르고 이곳에서 함께하는 분이었고 그 이상은 알지도 못하고 내가 개으른 놈이어서 자주 가지도 않으나 나보다 더 열성적으로 활동하시던 분이다고 생각하였던 분이다.

내게 자주 오는 분에게 뎃글 쓰려고 갔더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글이 있어서 알지 어디서 어떻게 등등은 모른다만 더 아나 모르나 그거는 중요하지 않다 같이 일상을 털어놓고 함께 하던 친구가 유명을 달리 한 것이 중요하지.

사람 사는 것 정말 별거 아니다. 나도 저지난해 사고때 시간이 조금 더 지났으면 그길로 이땅에서는 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될 인생을 살면서 너무 아웅다웅 하였다. 요즈음 내 블로그에서 보면 지가 머 인생을 달통 했는 것처럼 이런 소리를 한 구절이 자주있다.

그것도 많이 부끄럽고 이렇게 이 귀중한 면을 내 별 값어치 없는 소리들로 낭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이제 이 블로그도 닫을까 하는 생각도 간혹은 한다. 그리고는 아니다 이것조차 안하면 그러면 내가 하는게 머 있나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도 바로 하면서 지난다.

예전에 어른들에게 아침인사가 밤새 안녕하십니까? 였다 그렇지만 사실 그때는 인명을 손상케 할 것들이 요즈음처럼 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인사가 그랬는데 요즈음은 정말 밤새 안녕 하냐 할 것들이 우리주변에 차고 넘친다.

그저 오래 살고 싶으거던 먹는 것도 다니는 것도 말하는 것도 사람 만나는 것도 그저 조심조심 또 조심 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버거운 욕심은 가지지 말아야한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평창이 북쪽 콘서트장이 되서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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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갑자기 회의를 하자고 하더니 전에는 보기드문 쉬운 합의로 이번 동계 올림픽 평창에 많은 북한 사람들이 올 것 같다.

유엔의 결의로 많은 북한규제가 시행 중이다 다 정직하게 세계가 지켜만 준다면 아무리 거지같이사는데 이골이 났다고 해도 바로 죽기 전까지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웃기지 말아 이차제에 이것을 기회로 떼돈 좀 벌자고 하는 국가도, 단체도, 개인들로 인하여 별 흔들림 없이 지나는 것 아닌가 여겨지고 있고 간혹 그런 나쁜 무리들이 잡혔다고 하기도 한다. 심지어 우리 여수항에서 북한에 갈 유류를 싣고가는 선박도 잡혔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때 북한은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또 참관단 그리고 또 머머 하고 등등 4~500명이 올 것 같다고 한다. 하기사 원칙만 협의하였고 이제 곧 실무회의를 할 것이라고 하니 또 무슨 변수가 있을지는 몰라도 만약에 지금 계획대로 된다면 대대적인 인원이 와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청정한 지역이고 대회조차도 어느 행사보다 깨끗하게 보이는 세계적인 축제장에 그들이 와서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모양새들, 그리고 유치스러우나 신기한 짓거리들을 하면 우리들이 많은 돈 들여서 치루는 축제장에 정작 폼나기는 그들이 될 것이고 우리는 조소거리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골치덩이 조선인민공화국의 축제장이 될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않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모란봉악단이니 연예단이라나 그런 것들이 김정은 찬양을 하고 핵폭탄을 완성한 핵보유국이 되었다고 하고 보기드문 독재자를 위대한 김정은… 어쩌고 하며 우리의 맹방 미국에게 욕지거리나 하는 선전장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안할 수가 없다.

너희들은 지껴라 우리는 할 것 다 한다 하면서 이때까지 속태우며 한 짓거리들을 보면 내 이 우려가 기우는 아닐 수도 있다.

또 더 우려 스러운건 단일팀이니 하는 소리도 있는데 그래되면 이때까지 애쓰며 노력한 우리선수 몇이 출전 못하게 되는 허망스러움과 개최국의 국기인 태극기도 사라지는 올림픽이 될 것 같은데 이 무슨 꼬라지냐? 손 안대고 코푼다고 하는 말이 있더니 왜 이토록 그들에게 매달리는 행위를 할려고 하는지 모르는 일이다. 정신 좀 차리고 이성을 도로 찾기 바란다.

이번을 계기로 무리한 요구를 해도 될 것이다는 확신으로 밀어부칠 것이다. 바로 엊그제 핵과 관련 지운다고 합의문지연 사건도 있었다.

지금까지 한 것들을 종합해 보면 그들의 심중에는 이래 봐야 남쪽에서 전쟁 날까봐 겁내서 애써서 절대로 미국이 우리를 침공하지는 않게 할 것이다는 생각으로 미국을 공격하느니, 남쪽부터 불바다니 하며 촐삭대는 너무나 영악스러운 북한인데 이번 회의 정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 등 그들의 수교국에 가서 외화벌이 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못하게 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반해가면서는 그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될것이다. 그랬을 때 지금 여러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는 미국이 올림픽 끝나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 여러 조짐도 외신으로 보여주고 있는 시점이다.

잘못하면 노스코리아는 구제불능의 김정은 왕국이지만 코리아도 이상한 나라로 여겨 질수도있다. 따라서 안보리결의의 범위 내에서 안 오면 그만이고 오면 좋고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회의가 진행되어 부끄러울 수 있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본이 위안부 합의 불이행을 말하면서 단 1mm도 안 움직이겠다고 하던데 애써하게된 우리 축제장이 북쪽의 황당한 콘서트장이 될것 같은데 우리도 단1mm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될것이다.

 

 

잘사는나라 되니 2) 달도 별도 보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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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나라 되니 2) 달도 별도 보기 어려워.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이제는 옛날이야기다.

나라가 가난할 때 한여름에 평상이나 멍석에 홑이불 한자락으로 배가리고 누워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모깃불연기에 때로는 캑캑 하기도하면서 그러나 모기에 물리기도 하면서 할머니 아버지가 이야기 해주시던 충신 효도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자랐다.

그때 그 하늘은 검은데 별들이 총총히 밖혀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멀리 한줄기 별들이 긴꼬리를 이끌고 한쪽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은하수라는 것도 보면서, 견우직녀 이야기도 들으면서 북두칠성이니 오리온좌니 가시오피아 하면서 꿈을 기르면서 지났는데 그 세월이 70여년이 지났다.

그 동안 내가 산 이땅은 너무나 변했다. 흔히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생길 시기에는 그랬을 것이나 내가 살아온 그 70여년은 5년이면 아니 3년만에도 없던 도시가 하나씩 생기는 세상에서 살며지났다.

그런 세상에서 지나고 요즈음은 주야가 없어진 세상이 되었다. 그대신 이제는 우리도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 잘사는 나라는 밤인지 낮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세상, 말로는 밤이라고 하나 각종 등이 대낮처럼 밝게 켜진 환경에서 살다보니 5, 60여년을 살아온 그옛날 사람의 생체리듬이 허물어져서 밤도 낮 같고 자도 잔 것 같지않고 대기오염 수질오염으로 살기 어렵다고 하더니 요즈음은 인공조명 빛 공해 소음공해에 또 별과 달 못보는 밤 생체리듬이 일그러지며 살고있다.

사람도 우주 자연의 산물인데 밤과 낮의 조화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동물로 인체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져서 사람이나 짐승들도 잠을 충분히 자야 건강히 살고 제게 주어진 모든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밤은 종의 생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 아이를 낳지 않을려고 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가는 것은 밤이 밤같지 않는 곳에서 살고있는 인간들의 세상과도 무관하지는 않다.

심도 깊은 휴식을 하지 못하는데 먹을 거리만 온갖 것 먹는다고 건강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우울증, 면역력 저하 등도 무관하지는 않다 별이 있는 밤이 없어진 것도 많은 영향이 있다.

밤이 있는곳에 살면서 밤에 별도 달도 보면서 낮에는 들꽃도 마당으로 옮겨 심고 상추씨도 뿌리고 그것 키우며 하느라고 일하고 밤에는 깊은 잠도 잘건데 그것을 못하고 살아가니 우리들이 이토록 삭막한 삶이 아닐까?

잘사는 것이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네…

*이 글은 10월2일 등록되었던 글입니다.

 

 

조선시대의 파격적인 다산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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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파격적인 다산정책.

인구는 국가의 중요한 재원이여서 조선때도 다산정책을 폈다는 기록이있다. 국가가 부강하자면 국방이 튼튼해야 하는데 그 국방은 군인수가 많아야 하고 생산인력이 많아야 부자나라가 되니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을 장려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의료수준이 낮아서 평시에도 낳자마자 죽기도하고 전염병이 한번씩 지나가고 나면 30%정도 인구가 줄어드는 때도 있으니 요즈음처럼 정책적으로 다산을 장려하였다고 한다.

조선 명종초 강원도 원주에 사는 한 여인이 세 쌍둥이를 낳고 경상도 양산에서는 천인 한사람이 네 쌍둥이를 낳았다.

그때 세 쌍둥이를 낳으면 조정에서 쌀과 콩 10섬을 장려금으로 지급하였는데 몇해 동안 가뭄이들어 국고가 바닥이 난 시점이어서 그렇게 줄수 없다고 하면서 쌀 한 가마니를 주었다고 하였다 (명종실록1년 2월1일에기록). 한 섬은 두 가마니가 한 섬이고 한 가마니는 80kg 정도인데 10섬이면 당시에 산골 비탈진 층층으로 된 논 열 마지기를 살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 보고를 받은 명종은 당장 전례대로 주라고 하였다고 하여 주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그토록 인구문제는 심각한 문제였던 것 같다. 그리고 국가의 정책은 이랫다 저랫다 해서는 안되고 어렵더라도 백성들이 신뢰하도록 주어야 하고10섬도 없는냐고 하면서 시행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교육도 부귀다남, ‘다남’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큰 효도하는 것이라고 자식들 몸속에 머리속에 못으로 박는 교육을 하였다 우리처럼 자식은 가난 해지고 수고만 하는 것이다는 관념은 하는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가르켰다.

이런 인구문제를 우리나라는 지난 한 동안 전 가임 여성들 그리고 청년들 더 낳지 못하게 몸에다가 시술을 하기도 하였고 그후 국가에서 시행한 정책들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럽다. 그것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아예 안 낳으려는 마음을 가지도록 한 인성을 가진 젊은이들을 만든 정책을 한 것이 지금 한스럽다.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등 우리보다 선진국 어디에도 자식을 골치덩이로 여기는 나라는 없다. 그러면서 개(犬)는 얘는, 쟤는 심지어는 개에게 자기를 엄마는, 아버지는 하면서 함께 이불속에 데리고 자고, 안고 업고 다니는 것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니고 싶은 인성을 가진 젊은이가 많은 나라로 만들어놓았다.

이제 와서 이거 야단났다 하면서 찔끔찔끔 외국인력 데려오고 하던 정책도 그런 규제들 풀어서 그것으로 우선 생산인력을 대체하고 아이 둘셋 낳도록 장려금이라고 주어가면서 국가가 키워준다고 어쩌고 하면서 야단하는데 그 정책들 속을 들여다 보면 그래서는 큰 기여가 되지 못할것 같다.

장려금을 줄려면 조선시대 명종 때처럼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하던지 당시 비탈 논이지만 열 마지기면 먹고 살만 하였을 것이다. (한 마지기는 곳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200평정도) 꼴란거 지금 경제여건에 돈 기백만원 도와주는 것은 내 정권 5년이면 끝나는데와 연관 지은 싸구려 선심일 뿐이다.

제일 중요한 것 결혼 안 하는 것은, 낳고 애지중지 황제처럼 키워준 부모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4, 50 되어가는 아들이 홀애비로 지나고 딸이 홀로살며 늙어가는 자식 보고 애타지 않는 부모는 없다.

이때까지 애태웠으면 이제는 호강은 몰라도 애태우는 것은 그만해야 하는 것 아니니?

부부 둘이서 둘 안 낳는 것은 이지상에 생명으로 태어나서 이세상을 살았는 인간이 하여서는 안 된다는 인성, 즉 그런 가치관을 가진 자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 안한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다고 여겨야 한다.

이런 인간성 만드는 교육을 늦지만 국가가 하도록 해야 한다 말이다.

 

 

잘사는나라 되니 1) 삼촌 사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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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나라 되니 1) 삼촌 사촌도 없다.

세상만사는 거의가 명(明)이 있는가 하면 반드시 암(暗)도있다. 우리들이 어릴때는 가난하여 하루 밥세끼 먹을수 있는 집은 드물었다 아주 가난한 집은 죽 먹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는 집도 있었다.

추운 겨울에 어린것들이 속옷은 없고 무명솜 조금 놓아 만든 무명바지 저고리 아래위로 입고 책보자기에 싸서 등에 빗게로 걸머지고 등성 넘어 10리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교실에도 장작을 난로에 때서 떨지 않게 할려니 적당량에서 항상 부족하여 벌벌떨며 손을 호호불며 공부를 했으며 밤에는 호롱불 켜서 그 아래에서 책 읽고 숙제하고 하였다.

가난한나라 어린이로 태어나서 온갖 고생하면서 자라서 성인이 되고 그렇게 살았는 나라를 오늘 같은 나라를 만드는 동안 일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일요일 쉬는 것은 사치고 잠자는시간 말고는 일만하였고 심지어는 외국에 외화 벌려고 목숨 걸고 하는 일도 등등 잡다한 것들은 여기서 굳이 더 안써도 잘 알것이다.

요즈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고생 한거는 오히려 그럴수 있고 요즈음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여러 모습이 모두가 잘못하고 있는 것같이 보여지고 정상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때 보통 형제자매들 합해서 5, 6명이여서 그 형제들이 결혼하고 나면 삼촌도 4촌도 많았다. 조금 규모 있는 집은 한동네는 물론이고 옆집 뒷집에 구역을 차지하고 평상시에도 서로 도우면서 삼촌 조카 4촌들이 너집 내집 구분 하지 않고 의좋게 살았다.

그렇게 살았는 경험을 가진 나는 요즈음 보면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서 잘먹고 입고 아플때도 병원가면 거의 못 고치는 병이 없을 정도로 잘사는 나라가 되어서 좋다. 그러나 이제는 그와 같은 명, 좋은것이 있는가 하면 가난할 때 있었던 좋은 것들이 많이 없어진 어두운 세상이 되었다.

결혼도 안하고 살려고 하는사람이 자꾸 늘어가고 해도 자식은 하나 아니면 없어도 좋다고도 하고, 부모 자식도 심지어는 남처럼 여기고 사는 자들도 있다. 따라서 삭막해진 것도 많고 아름다운 동식물도 없어진 것이 많고 살아가는 것도 풍요로우면 다 행복해져야 하는데 불행해 진 것도 많다.

사람사는 세상이 동물과 거의 비슷하게 살아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그 옛날 아름답던 여러 것들을 너무 많이 버려서 아쉽기도 하고 이것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까지하였던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싶으다.

어쩌다가 이토록 삭막해졌고 또 앞으로 회복되기는 글렀고 더욱더 이런 것이 심하게 되어 가는것같아서 이런 나라에 내 자식들 그리고 손자손녀들이 살것을 생각하니 지금 우리들이 바로 세우는데 조금이라도 노력해야 할 것 같다만 너무 헝클어진 지금 쉽지 않을 것같다.

이런것들 투정이랄까 푸념이랄까 이것저것 주서서 20회정도 띄엄띄엄 쓸 것이다.

또 새로운 한해가 시작 되는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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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한해가 시작 되는날이다.

우리또래가 태어 날 때의 일년의 기준과 나이 기준은 설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12월 말일이 지나면 즐거웠던 또는 지겨웠던 한해는 지나고 나름대로의 새로운 기대를 안겨주는 일년의 기준이 1월의 1일이다. 그렇지만 내 일년의 기준은 아직도 설이다 이러니 아이들이 꼰대라고 하지.ㅎㅎ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시절은 있다.
어떤 이는 높은 자리에 있어서 말 한 마디면 많은 사람이 자기 의사와는 동떠러 지더라도 예!예하며 많은 이들이 부러움 받으며 산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자기주변에 어려운 이를 위해 자기는 버리고 평생을 헌신하며 살았는 이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박봉 받아 가족들과 가난하게 일생을 살았는 사람도 많이있다.
그런가 하면 평생을 남 속이고 남 이용해서 자기만 잘 될려고 바둥거리며 많은 사람들께 지탄받고 살았는 사람도있다.


며칠전에 나는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 어느 증권회사에 다닌다고 하였고 잘살고 있다는 소문만 들었지 보지도 못하고 60년을 살았는 어릴 적의 친구를 고향도 아니고 이곳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우연히 만났다.  세상 좁다더니……

객지에서 사귄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내친구가 다닌다는 증권회사에 근무 했다고 하여 어릴때 친구이름을 물었더니 잘 안다고 하였다.
나는 반가워서 그에게 연락을 해서 보자고 하여서 만나게 되었다 40대 후반에 회사 그만두고 이런 저런 일들 하다가 가산 탕진하고 고생한 이야기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가족의 행복은 이웃의 행복이 되고 사회와 나라의 행복이된다.
그나 나나 지난날 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살았던 방법 환경은 달랐지만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족 사랑하고 부여된 일 열심히 하고 주변 사람들께 공헌하며 살았는데 이제 모두 노인이 되어 소주잔 앞에 놓고 쭈그러진 얼굴을 서로 처다 보면서 지난 이야기를하였다.

부잣집 외동아들, 조선에 없는 아들로 모두들 검정 고무신도 떨어져서 구멍이 나도록 신고 다녔으나 그 친구는 하얀 테 둘러진 운동화신고 그때 많은 또래 아이들의 부러움을 싸고 자랐고 우리는 촌에서 소 풀 뜯기며 촌 중학교 다닐 때 그는 대도시에서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고 산사람이다 그러나 어렵게 되어 오만 고생하고 가족들께 존경 받지도 못하고 지금 아주 어렵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삶은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겨 아무도 없는 산 속에가서 엉엉 울고 싶을 때도 있고 또 그렇게 아버지도 있다. 그러나 남자는 태어날 때 울고 부모가 죽었을 때 운다는 말도 있고 언제나 커다란 산같이 보여야 하기에 남몰래 소리 없이 가슴으로 울고 술 한잔에 눈물을 담아 삼키는 경우도 많이있다.

이런 경우를 당한 이들 또한 요즈음 세상에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것도 세월을 보내면서 노력 하다보면 정도의 차이이지 해결된다산다는 게 다 그런거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살았는 이도 돈이 많아 남에게 부러움을 사면서 살았는 이도 별로 자랑 할 것도 없이 세끼 밥이나 먹고 가족에게 헌신하며 어렵게 살았는 이나, 나보다는 이웃을 위해 나를 버리고 살았는 사람이나 그 모두가 황혼기에 다달아 이제 내가 살날이 얼마나 되겠나 생각하면서 돌이켜보면 후회스러운 일도 많고 거드럼 피웠던 삶도 부질없는 것이 아니였던가 싶은 게 인생이다.

새해 아침에 이세상 모든 이들 아프지 않고 걱정없이 이 한해 즐겁게 지나는 해가 되었으면한다.

* 2018년 새해는 모두들에게 행복한 해 되기를 기원합니다. 산고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