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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효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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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효도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러나 부모자식간의 부모가 있기에 내가있는 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는 변할 수가 없다. 요즈음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자들의 표현, 지들 좋아서 자식을 낳았지 하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가끔 듣기도 하는데 그말은 요즈음은 얼토 당토 않는 말이다.

오히려 그말은 옛날에는 있을수 있는 말이다. 한 두명은 낳고자해서 낳았지만 그 다음에는 정말 부모 지들이 좋아하다가 태어났다고 볼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시대에는 하나 아니면 둘뿐인데 낳고자 해서 낳는 사람이 대다수다. 간혹 자식이 많은 사람도 낳고자 해서 낳아진 것이지 낳기 싫은데 낳게 하지는 않는다.

피임하는 여러 방법도 있고 또 잘못해서 임신이 되어도 중절도 하면 되는데 그런 말이 안되는 말이 왜 있는지 부모를 욕보이는 말이다. 또 그렇게 태어난 하나뿐이거나 둘 뿐인 자식들이 효도도 옛날처럼 부모에게 무조건 순종하고 좋은 음식, 옷, 사드리고 유명한 곳에 여행 보내 드리고 하는 것이 효도가 아니다.

흔히들 오늘점심 또는 저녁 먹읍시다 하며 잘한다고, 한우니 하는 고기 구워먹는 곳에가서 구워서 먹고 하는데 늙은이들 먹고 나면 잇빨이 욱신거리고 많이 먹지도 못하나 그거 일인분이 3만원가까이 먹고 나면 돈 아깝다 양식당에 가도 그렇고.

좋은 옷들 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비싼 많큼 좋지도 않고 늙은이체형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더 흔하다. 그리고 입던 옷들 죽을 때까지 입어도 다 못입는다.

여행도 그렇다 좋다는 곳에 가보았지만 다 그것이 그거고 사진몇장 박아오면 그 사진은 설합속에 처박히고 돈 많큼 효용 값어치도 없다.

그러나 자식들 그런 것 하면 그게 가장 효도하는 것이라고 믿고 대다수의 자식들이 그렇게 한다. 내 경우도 아이가 남녀 하나씩 인데 나이가 40대중반이니 그런대로 남들만큼 지날 정도되니 따로 살고있는 아버지어머니에게 잘한다고 그렇게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봐서 날씨가 조금 쌀쌀할 때면 “오늘은 춥네요, 머 하세요?” 또는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하니 집에만 계세요.” 하며 전화 한번이라도 하고 또 좀 일찍 퇴근시에 잠간 들려서 나 같으면 글쓰기 좋아서 하는 아버지 블로그 글에 대한 평도, “아부지 그거는 좀 그래요.” 해주면, 또 세상이야기도 아부지 그거 어찌 생각하세요 든지 때로는 아양도 부리는 것도 좋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시대의 효도가 아닐까 한다.

내 경우는 고기도 잘먹지도 않고 또 많이 자주 먹으면 안되기도 한다. 천연적인 곳은 몰라도 다듬고 꾸미고 온갖 사람들 손때로 만들어진 곳 보기도 싫다. 지난여름 제주도에도 가보니 전부가 다듬은 것들 다리만 아프고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아버지어머니가 말한 것이 듣기나 또 수용하기 거북하면 “그레요? 그렇지만  그거는 이래 저래서 힘듭니다….” 하며 조용히 말하는 것은 필수다.”머요!…” 하는 조의 대응을 하면 그거는 아주 부모에게 불효하는 짓거리다.

그래서는 않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양떨기는 그렇지만 자식은 아버지에게 아양을 떨면 할수록 아버지도 좋고 따라서 지도 기분이 좋아진다 할 것 없으면 세상이야기 요즈음 같으면 아직도 머가 먼지 모르고 허둥대는 박 전대통령, 정신나간 국정원의 장들 이야기로도 할수있다.

돈드는 효자는 할려고 안해도 된다 일주일에 한번 연락하고 가끔은 퇴근하며 잠간 들렸다가 “아이들 기다립니다, 갑니다.” 하고 가거라 그러면 부모는 그보다 더 즐거움 주는 것은 없다.효도가 머가 효도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다. 그래서 아양도 떨고 가거라.

 

하늘이 말린 야구경기장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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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말린 야구경기장 구경.

아들이 광복절 오늘자 야구표 네장을 보내왔다. 아내와 딸은 간다고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저께는 아내가 몸도 아프고 안 갈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그렇다고 하고 네가 알아서 직원들 주던지 하여라 하였더니 아들은 머라고 그 표가 특실표다.”고 하면서 머라카노, “커피도 치킨도주고 하면서 그런 푠대 웬만하면 누나와 아부지도 다녀오세요.”하였다.

요즈음 아내가 많이 아프다 머 3개월동안 의원 병원을 다녔는데 노인 섬유근육통이라나 그런거로 앓는 것 같은데 동네의원은 거쳤고 중급병원에서도 잘 몰라 큰 병원에 류마치스내과 있는 곳에 가보라고 그 동안 검사하고 치료한 것 소견서를 써주어서 알아보니 이게 웬일이냐? 9월말까지 예약이 않된다 그 후에나한다. 또 다른 곳에 해보니 10월 중에나ㅎㅎ

세상에 이거 어쩌면 좋으냐 저녁마다 움직일 때마다 아야야야…” 하면서 통증을 호소하는데 병원도 많은데, 그놈의 병원 내가 수술을 해보니 중간 계산해주세요하면서 계산서 보니 150몇만원, 다른 것들은 들여다보고 혹시나 이의 달꺼나 있는지 보지만 병원비는 머가 먼지 달라면 두말 않고 누구나 다 준다. 잘은 몰라도 덜 받는 거는 절대로 없을 거고 더 받는 거도 비일비재 할거다.

아버지 계실 때 허가 낸 도둑놈들 제발 아프지 말아야 된다 그럴려며 평상시 건강할 때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하셨고 또 있다 변호사도 합법적인 도둑놈들이다고 하시면서 절대로 소송은 하지 말게 살아야 하고, 당하지도 절대로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소시때 수천만원 떼이고도 버리고 말으시는 평생을 사셨는데 그것보고 나도 그렇게 살기는 했는데 지난 삶이 영 마음에 안들게 거의 평생을 살았다.

야구 구경 이야기나 할 것이지 왜 이래 됬노? ㅎㅎ

그나저나 아내가 빨리 나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야구구경도 이런말 저런말 특별표니 나발이니 하더니 오늘 비가 와서 보지도 못하게 하늘이 말렷다. 작년에도 아들이 표를 보내주어서 가서 보고왔다. 아내는 야구마니아다. 아들이 적을 둔 곳이라고 엘지 경기는 빼먹지 않고 밤늦도록 중계방송을 다 보는데 선수이름 경기규칙 등 할머니치고는 박사라고 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경기장에 가겠다고 할 때 아픈데 네시간 정도를 버티기나 할까? 했더니 그래도 간다고 하면서 어제는 바르는 모기약, 부채, 간식거리 과일 빵 주스도, 혹시나 얇은 겉 잠바도 챙기고 했는데 가서 보게 했으면 좋을 것을 하늘이 말렸다.ㅎㅎ

그래서 그만 많이 아프다고 누웠고 나도 수술후 회복 중이어서 이 글이나 쓰고 누워야 할 것 같다. 아파도 괴로워도 웃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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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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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1.

지난 주말 28일 아이들과 제주도에 가서 4일을 있었다. 제주도는 운동하는 모임에서 여럿이 다녀오긴 했으나 별로였고 그거는 하도 오래되어서 지금 오라 아라라는 골프장이름 기억뿐이었는데 여행이라고 할 여행은 처음이다.

아들이 지난달 초에 아부지 작년에 고생하셨는데 어디 휴가 겸 저희들과 제주도 갑시다 했다 전에도 일년에 한 두번씩 저들과 함께 이곳 저곳을 다닌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일년 동안 내가 다처서 못했는데 가잔다.

나는 선듯 그래 그거 좋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따라 다니는데 힘들 것이다는 생각이 들고 다니는것이 겁나서, 또 늙은 우리 때문에 지들이 불편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경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고 선뜻 그러자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 좀 생각해 보자 했더니 그후 며칠이 지나더니 28에 예약을 모두 해 두었으니 그렇게 합시다 한다.

내 아들이지만 나와는 많이 다른 무엇이든 박력있게 처리하는 아이인데 이번에 또 그렇게 했다.않된다 소리도 못하고 “그래 애~”라고 하며 성사된 여행이다. 아내도 나와 같이 중국으로 다니며 볼 것도 많이 보고 항상 하는 이야기 중국 유명지를 많이 보니 한국 명승지는 장난감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며 별로로 여겼으나 막상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보니 너무 좋아했다. 나도 덩달아 찜찜하던 기분은 간곳없고 아들네와 가는 여행이 즐거웠다.

누군가가 했는지는 몰라도 ‘인생은 여행이고 여행은 인생이다. 여행은 체험의 보고이며 아름다운 추억의 산실 또 여행은 삶을 풍요롭게 하며 영혼을 살찌운다’고 했다 그 말중에 영혼을 살찌운다는 말이 내게는 너무나 와 닫는 문구다. 그냥 무엇을 보고 예쁘다 좋다 보다 그것을 보고 느끼는 마음속의 물결이 영혼을 살찌게 하는 것 아닐까? 여행이 별거냐 가고 오고 다니면서 보고느낌이 풍부하면 그것이 가장 좋은 여행이 아닐까.

6학년이된 큰손자 이제는 너무 어른스럽고 세상에 태어난지 엊그제 3돌이 지난 막네 손자놈 이제는 비행기도 잘 타고 말도 조금씩하고 어린이 집에 다니더니 서로 협조하는 것 배워서 적응 잘하는 기특한 놈이다. 지도 아기인데 뒷좌석에서 우는 아기보고 아기가 운다고 어서 달래주라고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이야! 아이야” 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보이고 무언가를 지껄이는데 에미는 알아듣는 것 같으나 나는 모르는 말이다.ㅎ

5시 조금넘어 도착했는데 우리는 9인승 승합을 렌트해서 저녁을 먹고 ‘절물자연휴양림’ 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8시가넘었다. 휴양림 이름이 이상하다 절물이 무슨 의미일까? 주욱 주욱 곧은 깔끔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속에 숲만큼 깔끔한 숙소가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여 지어져서 춥지도 덥지도 않고 또 파리 모기들도 아직은 없는 좋은 계절에 행복하다고 해도 될 여행이었다.

하루밤을 자고 아침산책길에서 보니 빽빽하게 들어찬 그 멋쟁이 나무들은 삼나무란다. 절물이란 이름의 유래는 그곳에 예전에 절과 물이 있었다고 절물 이란다. 머 그렇게 멋대가리 없이 지어진 이름인지.ㅎ 그러나 절은 없어지고 산중턱에 약수터가 있는데 그물이 제주에서 가장 좋다고 하였다 없어진 절 대신에 약사암이란 암자가 있는데 이른 아침인데 스피카로 염불소리만 청아하게 들리고 중도 사람도 볼수는 없었다.

차라리 삼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빽빽하게 들어찼는데 삼나무휴양림이고 하면…. 나 혼자 내방식의 생각이다.ㅎㅎ

*참고. 위치. 제주시 명림로 584 (산림청소관국유림). 전화. 064 728 1510. 홈페이지.http://jeolmul.jeju.go.kr  시설사용료. 6인실기준 비수기 4.5만원 성수기 8만원 정도. 4인실 6인실 8인 12인 20인실등 다양함

가정의 달에 가족들과 여행도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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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에 가족들과 여행도 좋지만

일년내내 가정의 달이였으면 좋지만 요즈음 시대에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우선 가족모두가 어린이까지 일들이 있어서 한집내에 살아도 아버지는 아이들 잠자는 얼굴보고 출근하고 요즈음은 어머니도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할아버지들은 아들네와 같이 한집에 사는 이들이 드무니 몇주를 지나도 대화도 할수 없고 얼굴보기가 어렵다.

예전 같으면 3대가 한집에 사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그리고 또 50이된 아들도 퇴근시에는 다녀왔습니다 하고 문안들이고 서로 간단한 이야기도 하고 하였으며 식사시간에는 함께 하니 마음속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요즈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달은 가정의 달이라고 하며 가족끼리도 또는 3대가 가까운 곳에 함께 가서 하룻밤 함께 지나기도 하고 어떤 집은 형제 자매들 그짝들과 함께 여행도가고 하는 것 많이 보인다. 내 처가에서도 처남들 부부와 출가한 딸들 사위들 합하면 10명이넘는데 며칠 전에 이번 주말에 가까운 곳에가서 일박하자고 제의가 왔다.

그러나 우리는 저지난해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신이여서 아직은 3년내이고 한식 때도 가서 보지 못했는데 아이들과 동생들이 모여 어머니 아버지산소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해서 못 갔다.

그렇게 형제들이 모이는 것도 중요하고 좋지만 늙어가니 아이들이 보고 싶고 아들며느리와 함께 이야기도하고 온가족이 함께 다니며 보고느끼고 대화하는 것이 하고 싶어진다.

내 경우는 같은 지역에서 가까이 살지만 어떤 때는 몇주를 대화없이 지날때가 많다. 어린손자는 어린이집에서 일주일에 한번정도 바로 와서 재롱부리다가 며느리가 와서 데려가지만 아내가 데려다주니 나는 보지도 못하고 그럴때는 공연히 궁급고 혹시 무슨 고민거리가 생겼나 왜 아무 연락이 없나 싶으다.

어린손자도 이제는 오면 반갑고 좋기도 하지만 제 마음대로 할려고 하고 이제는 버겁다. 그리고 지 엄마가 어쩌면 그리 좋은지 놀다가 할머니 전화벨 소리가 나면 쫓아가서 들고 와서 할머니를 주고는 바로 양말을 신고 윗옷을 챙겨 입을려고 하고 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할머니와 나가면서 내게 하부지 안뇽하며 간다.

가고난 다음에 나는 그놈이와서 저질러놓은 장난감들 그리고 내 책상에서 종이에 그려놓은 황칠한 것들도 그대로 두고 그것 하면서 하던 모습들을 머리속으로 그리며 있기도한다. 참 귀엽다. 할아버지 집에서는 별로 즐겁지 않지만 그렇게 잠시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여기고 참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 우리도 아이들 가족과 점심을 먹었다. 아내가 외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자주하지는 않지만 무슨날 때는 그래도 하는데 그래봐야 한우고기 몇 절음 먹고 마는 것 별로다. 별 말도 없다, 아이들이 주가 되어 그놈들 챙기다 보면 모처럼 만난 시간들 다가고 해어진다.

한달쯤 되었는데 아들과 둘이서 장어집에를 가서 오래만에 장어도 많이 먹고 아들과 이런저런 집안 이야기도 하고 세상이야기도 하고 나니 마음이 시원하고 즐거웠다. 블로그에서 누가 노인이 가장 즐거운 것은 아이들과 마음속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다고 하더니 느을 아이들과 식사를 해도 별로이고, 집에가서 보아도 별로고 아이들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도 별 말없고 일상적인 인사만 하고 가니 먼가 모자랐는데 그날은 그러고 집에 왔더니 아들이 너무 자상한 아들, 착한 아들처럼 여겨 지고 참 즐거웠고 믿음직스러운 아들이었다.

노인이 가장 고픈 것은 맛있는 식사 한끼도 아니고 돈들여서 사주는 옷도 아니고 전화 자주해서 별일없어요 하는 것도 아니다. 한달에 한번이라도 마음속에 저장된 가정에서 겪는 불만의 소리라도 진심의 말 한마디가 가장 즐거운 것이다. 노인은 진심이 담긴 자식들의 말 한마디가 아쉽다.

 

 

 

오늘은 하부지 기분이 너무 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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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부지 기분이 너무 좋은날.

30개월된 손자가 지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전화를 할머니가 받는 것을 빠안히 쳐다보더니 벗어둔 양말과 윗옷을 안고 오더니 할머니 앞에 놓는다 입혀주니 내게로 오더니 내 손을 꼭 잡고 일어서라고 끈다. 아마 같이 가자는 것 같다. 그렇게 끌려서 현관문을 열고 아내와 셋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래도 손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끌고 가더니 지가먼저 어미에게 안겨서 타고는 나도 타라고 “타 타” 하였다.ㅎ

보통은 할머니와 함께 내려가면 며느리가 받아 뒷좌석의 아기 카시트에 앉힌다 내가 집에서 내려다 보면 아내는 서서 지켜보다가 며느리차가 안보이면 올라오는데 오늘은 나도 그 놈에게 끌려 내려갔다가 왔다.

손자는 나를 부를 때 “하부지”라고 한다 ‘할’ 발음이 어려운 것 같다.ㅎ 아직 나는 몸이 덜 나아서 몸이 가볍지 못한데 갑자기 끌려 내려가서 추운데 벌을 섰다. 그래도 어린 것이 할아버지를 좋아해서 제집에 함께 가자고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참 좋다.

할미는 느을 그놈 자식 나는 지가 오는 날이면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다가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면 추울가봐 보듬어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와서는 손 씼기고 지가 좋아하는 치즈, 요플레, 쵸콜렛도 챙겨 먹이고 티비 어린이프로 켜놓고, 컴켜서 딩동뎅도 열어서 함께 놀아주고 하는데 할아버지만 좋아한다고 불평을 한다.

손자는 일주일에 두번 어린이 집에서 우리 집으로 와서 두어 시간 있다가 가는데 어쩌다가 감기라도 걸려서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날은 그 주일에는 만날 수가 없다 가서 보고 올때도 있지만 며느리가 불편해 할까봐 그것도 염려가 되어 참고 있으면 10일 만에 볼때도 있다. 그럴 때면 많이 보고싶다

며칠 전에는 집에 갈 때 먹던 포도쥬스병을 가지고 가야 한단다 2 리터 반병도 먹지 않아 무거울건데 할머니가 안된다고 두고 가라고 하는데 기어코 지가 안고 갔다. 아범은 욕심이 너무 없는데 이아이 욕심이 있을려나 조금 컷는가 싶어 기분이 좋다. 그후 어느날은 장난감버스를 또 그렇게 가지고 가더니 오늘은 내가 필요해서 사둔 시트지를 가지고 가겠다고 하여 안 된다고 하나 기어코 가져간다고 하여 빼았겨 버렸다. 한 장을 말아둔 것인데… 집에 가면 이런저런 장난감이 진열장에 가득한데 참 히한한 놈이다.

할머니에게 안겨서 집에 들어오면 바로 나를 끌고 내방으로 가서 컴을 켜라고 한다. 켜주면 바탕화면에 저장된 딩동댕(아이들프로) 아이콘을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딩딩딩” 하며 켜라고 한다. 켜주면 거기서 또 몇 종류가 뜨는데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나에게 “이거 이거”하며 지시를 하고 이 하부지는 지가 시키는데로 해주면 된다.

그렇게 나를 끌고 다니며 이런거 저런 것 하라고 하는 것 돌봐주고 두 세시간을 하고 돌아가고 나면 좀 힘겨울 때도 있다 그러나 재롱스럽게 놀았던 귀여운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아내와 둘이는 즐겁다.

두 늙은이가 사니 별로 웃을 일도 없고 조용한 일상으로 지나는데 그놈이 오는 날에는 먹을 것 챙겨주고 놀아주고 하느라고 바쁘고 통통걸음으로 다니는 모습, 어린이 집에서 배운 어린이 프로를 보고 팔을 어설프게 벌리고 옆으로 아래로 움직이며 율동도 하고, 먹는것도 지가 싫으면 절대로 안 먹는것, 문 뒤에 숨어서 숨바꼭질도 하자고 하고, 내가 보이지 않으면 “하부지!” 하면서 좀 큰소리로 오라고 명령도 한다.

이제는 많이 컷다 가고난 후에도 그런 것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하며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도, 아직은 채워주는 하기스 기져귀도 이뻐서 가끔 끄집어내어 보면서 둘이는 즐겁다. 어린이 집에서는 지난 여름부터 선생님이 화장실에 대려가기도 하고 혼자 화장실의 소변기에 바지를 내리고 한다는데 집에서는 절대로 안한다.ㅎ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힘나게 하는 너무나 귀여운 늦둥이 손자다.ㅎ

 

 

 

아들에게 지금도 미안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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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은 아들네와 이틀을 함께하면서 지났다.

요즈음 부모자식이 함께 사는 집이 드물고 내 남없이 서로 떨어져서 살고 구세대 신세대가되어 한 가족이라도 남남인 것처럼 살고있다. 그믐날은 아들과 나는 아이들보는 담당이 되어 함께 있었고 설날은 또 설날이어서 함께 하루 종일 있다가 밤에 지들 집으로 갔다.

해마다 제사 모시고는 처가로 가더니 얼마 전에 처 할머니가 위중하다고 다녀오더니 올해는 가지않았다. 그래서 금년 설은 이틀을 아들네와 함께 지나게 되었다. 그러나 별로 한 말도 없고 주가 이제 30개월된 늦둥이 노는 것이 되어 웃고 따라다니고 주방에서 준비하는 두 여자들 시중도 들고 하였다.

그렇게 이틀을 지나보니 아무것도 한것도 없이 지났는데도 저녁때는 그만 갔으면 싶었다. 둘만이 조용히 살다가 네 식구가 보태어졌고 설날에는 다녀간 동생들과 북적거려서 잔치를 치룬 기분이고 몸도 많이 피곤하고 어제 저녁에는 정신 없이 잤다. 사람의생활은 길들이기에 달렸다더니….

오늘아침이 되니 세상이 조용하고 이제는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 밖을 내다보니 눈이 펑펑 내리고있다. 거실에서나 내가 하루 종일 노는 서재랄까 컴 있는 방에서도 넓은 창으로 내다보면 10여km정도 시야가 탁 트였는데 오늘은 온통 컴컴하더니 금방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다.

이렇게 늙은 둘이 살다가 하나가 죽으면 그때는 어쩌나 아내가 먼저 죽고 나혼자는 하는 걱정도 되지만 내가 먼저 죽고나면 저 늙은 할마시가 어찌 살까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질 때도 있다. 아내는 남에게 폐끼치는 것은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라도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이라 더 걱정이다 말로는 그때는 요양원에 간다고 나모르게 준비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들며느리가 지금으로 봐서는 그렇게 하도록 두지는 않을 것 같으나 안 그러더라도 위와 같은 성격이여서 염려를 많이 하면서 지난다. 또 그때 아들과 며느리는 얼마나 고달프겠나 등등을 생각도 한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니다 잘 할것이다 하고 잊으려고 한다.

설을 지나고 이제 나이가 80이 되어가니 그런 걱정도 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들에게는 많이 미안한 생각을 할때가 자주 있다. 그가 대학 2학년말때 내가 많이 어려워져서 3학년초에 군으로 입대시키고 제대하고도 형편이 풀리지 않아서 어렵게 등록하여 다니게 하였고 4학년때는 어느 은행 전산실에 야간 알바를 하며 졸업을 했다.

대학 2학년까지는 제 친구들이 형편 좋은 친구로 여겨 아내는 많은 친구들의 어머니로 여러 애로를 들어주고 먹여주고 잠재워 주고 하여 폼잡고 다니던 놈이 그런 일을 하며 쭈그러져서 학교에 다니게 한 것이 너무나 미안하다.

오늘은 멀 찾다가 나온 지 누나 대학 졸업때 사진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너무 짜안해서 이 글을 쓴다. 아들은 졸업사진도 앨범이 없다. 그때 졸업앨범에 대해서는 아무말 없어서 나는 잊고 지났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아니고 .아버지에게 부담 덜어 줄려고 말하지 않은것이다.

나는 그것을 그때는 몰랐는데 그후 오래 지나서 가정사정 때문에 그가 그렇게 한 것이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부터는 느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그러나 아들은 단 한번도 그 말을 한적이 없다. 한참 희망이 부풀어 지나고 큰 꿈을 그리며 지날 대학생활을 그는 곤궁한 부모를 보고 어렵게 지나게 한 것이 아직도 마음 아프다.

다행히 그것이 그의 생활에 좋은 거름이 되었는지 지금은 건강한 사회인이고 아버지가 되어 살고 있어서 대견스럽다.

 

아들고파 만나서 서로 나눈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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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고파 만나서 서로 나눈 대화.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 그거 머 대단하냐? 그렇다 별거 아니다 수시로 이야기 하며 지나는 사이가 부자간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것이 참 어려울 수도 있는 집이 많다. 함께 살고 있다고 해도 아들은 매일 늦게 들어오고 와서도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한다면 일주일 만에 아들구경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것도 요즈음 함께사는 가정이 드물다. 서로 떨어져 산다면 부근에 산다고 해도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내 경우는 같은 지역에 살고 아들 집과 거리도 1km될까 그렇게 가까이 살면서 손자는 일주일에 두번 어린이집에서 바로 우리집으로 데려다 준다 와서 2시간정도 놀면 며느리가 데려가고 따라서 며느리는 보지만 아들은 두어 주일만에 잠간 볼때도 있고 어떤 달은 한달이 지나도 못볼 때도 있다. 그러니 때로는 배고프다더니 아들고플 때가 있다.

며칠 전에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기분이 좀 나빴다. 이놈 봐라 요즈음 날씨도 추운데 전화 한번도 안 하고는 소식이 없다. 그래도 그르려니 한때도 있었지만 지난 일요일에는 긴히 의논 할 것도 있고 내가 전화를 했다 “요즈음 많이 바쁘냐?” 하였더니 “예!” 한다. “오늘 점심 약속있나?” 했더니 “없습니다.” 그러면 점심을 너와 내 둘이 만나서 하자고 했다.

약간 밉기도 하고 집안에 이야기와 세상이야기 등 함께 하고 싶어서 주문을 했다. 전에 한번은 그랬더니 지 가족들 세명을 데리고 와서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하더니 일산까지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 점심 먹기위해서 먼거리까지 가고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예 1시에 집앞에 가서 전화 드리겠습니다.” 하였다 이번에는 그동안 느을 할려고 마음먹었던 것들 상세히 메모를 하였다. 해야할 안건과 그리고 섭섭했던 감정도 아들이 불쾌하게 안들리게 이번에는 해야지 하면서 적었더니 7가지가 되었다 그 메모 쪼가리를 주머니에 넣고 준비를 하고 있었더니 전화가 왔다. 그렇게 만나서 “아버지 장어집에 갑시다.” 하였다 “머 가까운데 복어집이 어떻냐.” 했더니 아니 장어 요리 잘하는 집이 있는데 차 대기도 좋고 거기 갑시다 하여 둘이는 지가 회사일로 간혹 간다는 장어집을 갔다.

점심을 먹으면서 오랬만에 부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는데 우리에게 신경을 좀 쓰라고 하여야 하는데 그말을 하면 나는 바빠죽겠는데 아부지는 이런소리를 한다고 여길 것 같아 조심스럽게 나는 이런저런 수인사로 마음을 풀고 “내집은 너집이지만 너의집은 내집이 아니다. 이따끔 엄마한테 퇴근시에 너 혼자 잠간 들렀다가 가기도 하고 자주 전화라도 해주어라”고 했다.

아들이야기는 “그래요. 그러지요 요즈음은 너무 바쁩니다 제시간에 퇴근한날이 드뭅니다 하였다.” 그말에 그만 나는 약해진다 그래 대기업들 선호하지만 사람을 대우해주는 것만큼 부려먹는다 평사원 때는 퇴근도 주말도 소기업들과는 별로 다른거 잘 몰랐는데 간부가 되어서 인지 지 말따나 많이 바쁘다.

드디어 나는 마음속으로 조금 미안해지고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해지나 아니 오늘은 다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메모한 것을 끄집어냈더니 아들 말이 “적어오셨네요.” 하였다 “그래 할려고 한 것들 너만 보면 빠트리고 잊어먹어서 오늘은 적어왔다.” 하고 우리는 서로 웃었다.

현 시국에 대해서 이야기도 서로 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떻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그 역시 내 생각과 같았다. 어떤 이들 선거때만 되면 아이들과 의견이 서로 다르다는데 우리는 오래 전부터 부자 고부간에 그것은 서로 같다.

대화란 자주 해야 한다 오늘 같은 날을 만들지 않고 그냥 지나면 아버지는 많이 섭섭해지고 그것이 오래가면 못난 자식으로 여겨지고 그렇게 되면 아들은 또 이상한 아버지로 여기고 그것이 쌓이면 흔히들 이야기하는 부자간에 서로 못 믿어서 하는 행위들이 있게 되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상속도 해주지 말고…’ 하는 등의 불미스러운 말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쓰고 검토하고 있는데 아내가 자기가 머 검색할거 있다고 잠간만 하길래 비켜주었더니 이 글을 읽은 아내가 말한다. “그만하면 1 등 아들인데 무슨 청문회 하러 갔어요 메모까지 해 가지고 가게?” 하였다. 우리 둘은 한참을 크게 웃었다.ㅎㅎ

늙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만리포

늙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우리는 서른이 넘어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4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아이들도 이젠 중년이 되었고 우리는 많이 늙었습니다.
아내는 허리도 아프다고 하고 예전 같지 않습니다.
눈가에 실낱 같은 잔주름이 솔잎처럼 굵어져가고
언제나 아름답고 명랑하고 건강하던 모습이 차츰 양 볼도 처지고
허리선은 없어지고 절구통 같아 졌고
위로는 그대로이지만 옆으로 벌어져서 걸어가는지 굴러 가는지…
쌍거풀도 있고 크던 눈이 이제는 축처져서 눈도 작아졌습니다.
나는 늙어도 아내는 늙지 말았으면 합니다.

사는 동안 우리도 맨날 좋은 날만 있었지는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아닌걸 꼬투리 잡아 토라져서 수일 동안 괴롭힐 때
많이 밉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즐겨입던 그의 예쁜 옷가지도 보기 싫어지기도 했습니다.
어른들과 사이가 나빠 질려고 할 때 나는 쩔쩔 맨적도 있었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아내눈치보고
어머니 아버지 눈치도 보면서…
남편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궁색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평화가 오고 예쁠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벗어놓은 펜티도 예뻐서 만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살은 날이 반세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기도 내가 한없이 미울 때도 많이 있었겠지요
젊은 혈기에 사업인가 먼가 하다가 길바닥에 내 몰렸을 때
얼마나 미웠겠어요 돈 없고 할일 없고 희망 없는 이남자를
믿고 살아야 하나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좌절하지 않고 나를 바로 세워 줄려고 사모님이 어느날 갑자기
아줌마로 변해 험한 일 할때 또 삭막하고 낯설은 나라 중국에 살면서
많이 울리기도 하였습니다.
뒤돌아 보면 씩씩하게 나와 살아준 것 지금 생각하니 너무 고맙습니다.
긴 세월 동안 잘 참고 견뎌준 내 아내가 대견스럽습니다.
이제는 잠자리도 같이 할 수 없는 늙은이가 되어도
인정 없는 늙은 남편 위해서만 하루 일과를 사는 늙은 아내가
요즈음은 너무나 기특하고 예쁩니다.

살던곳 멀리 떠나 친구하나 없고 마음속 이야기 할곳 없는 이 수도권에서
그래도 내만 옆에 있으면 신이 납니다.
내 얼굴에 약간의 걱정이라도 보이면 그도 당장 시무룩해집니다.
내만 편하면 자기는 한없이 기쁩니다.
어제도 이 늙은 영감테기 먹일려고 시장으로 맛트로 다녀 왔습니다.
과일도사고 생선도사고 채소도사서 먹도록 만들어
내가 잘 먹으면서 맛있다는 한마디에 그렇게 행복해 합니다.

간혹 한번씩 허리 때문에 고생을 하더니
어제부터 또 안 좋아서 파스도 붙이고 약을 먹고 합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차라리 내가 아픈게 낫겠어요.
이 나이 되니 이제는 이런 일이 자주 있을 것입니다.
나도 금년 봄에 사고로 식구를 혼줄내 주었고 아직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자기도 나도 이제는 그런 것 경험 덜하고 살다가 쉽게 죽었으면 하는데
인간에게는 가장하고 싶은 것은 가장 얻기 어렵다고 하던데…
며칠 후 멀지 않은 곳 아내가 좋아하는 파도 소리 들리는 만리포에라도
다녀 올가 합니다.

세상이야기 4) 도지사와 어머니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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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4) 도지사와 어머니 도시락.

자유당 시절 50년대의 이야기다. 내 중학교 다닐 적에 학교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신문 지국에서 신문을 받아 아버지에게 매일 갔다 드렸다.

그때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 경상북도 도지사 하던 분이 영전이 되어 장관으로 발령을 받아 대구역에서 많은 분들의 환송을 받으며 서울로 가는데 그분의 어머니가 아들이 차 타려고 홈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이거 가져 가거라 고 큰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아들은 되돌아 와서 어머니가 손수 싸주신 도시락을 받으면서 “어머니는 내가 점심 굶을 까봐요.” 하였다. 어머니는 “아니다 내가 싸 주어야 니가 반드시 먹지.” 하는 일화가 있었다.

그때는 대구에서 서울행 기차를 타면 6시간이 넘어야 서울에 도착 하였다 그러니 차 안에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 어머니는 장관이 되어가는 아들 도시락을 챙겨 주었다.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다 자식의 머리가 허옇고 환갑이 넘었는 늙은이이고 그래도 지금은 자기보다 모든 것이 훨씬 능력이 있는데도 아이처럼 걱정한다.

내 어머니는 90이 훨신 넘으셔서 작년에 돌아가셨다 그러나 내가 가면 아침밥을 손수 차려서 내게 먹게 해 주시고 내 옆에서 아침은 조금 먹는 습관이 있어서 적게 먹으면 더 먹어야지 얼라들도 그보다는 더 먹는다고 하시며 언짠아 하시고 이녁이 자실려고 준비해 두었던 배지밀을 가져와서 먹으라고 하시고 또 조금 있다가 아이들이 올 때 사다드린 과일을 깎아서 또 먹어라 하셨다.

나는 엄마 요세 먹는 것이 그렇게 귀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 또 한끼 안 먹어도 괞찬다고 하면 그러면 안 된다고 펄쩍 뛰시고 손자들 오면 그들께도 자꾸 먹을 것 내 오시고 안 먹으면 안 먹는다고 언짠아 하셨다.

차 조심해라 날이 춥다 목도리 하고 나가거라 등등 돌아가실 때까지 이녁 보다는 더 건강하고 다 큰 자식이지만 곧장 염려 되시는 모양이셨다. 그렇게 하셨던 어머니 이제는 볼수 조차없다.

그런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나도 늙어보니 내 아이들이 늘 염려 되고 그 가정에 별일이나 없어라고 하면서 지난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앞서 이야기한 장관으로 영전되어가는 그 자리는 조선 시대에는 판서라는 직함과 비교 되었고 내무부 장관으로 신생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자리였다. 그 당시에는 조선시대 사상이 많이 남아 있어서 세도도 있었다.

그런 아들이 점심 굶을까 봐 염려 하시고 그래야만 이녁의 마음이 흐뭇해 지는 것이 어머니 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부모는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사람, 나를 키워주신 분들, 자나 깨나 자식 걱정 하는 분들이라는 관념은 이제는 희석되어 가더니 늙은 부모를 귀챦아 하는 생각이 늘어만 가는 시대가 되었는 지금 이런 이야기를 듣고 우리 모두 조금은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했으면 한다.

내가 낳은 자식도 소중하지만 얼마 안 있으면 우리와 유명을 달리하실 부모님 생각도 자주하면 안될까?

유별스리 덥고 길던 여름, 지겹기도 하더니 이제는 온천지가 가을 모습을 하고 있고 곧 겨울이 올 것 같은 조금은 으시시한 날씨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더 더욱 그렇다 황금색 들판이 군데군데 아름다운 벽 타일이 한장씩 떨어져 달아나 흉물스럽게 보이는 벽처럼 된 논에는 일찍 온 기러기들의 식당이고 놀이터다. 추수한 논바닥을 분주하게 파먹고 있다.

저것들의 계절마다 날아오는 기나긴 여정 그리고 살고있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눈만 뜨고 주변을 둘러보면 보이는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없으나 사람 사는 세상은 너무 달라진 것이 많다. 살고있는 모습도 달라 졌고 인성이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싫던 좋던 잔소리 말고 적응하며 잘 살아야한다.

 

 

 

세상이야기 3) 여보 오늘 하늘이 참 아름다워요.

하늘

세상이야기 3) 여보 오늘 하늘이 참 아름다워요.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렸다, 기상청예보에 경기 북부지방에 100밀리 이상의 비가 내릴 것이다고 하더니 요즈음 기상예보 참 잘 맞친다. 아내가 일찍 밖을 내다보더니 “여보 오늘 하늘이 너무 아름답네요, 사진기 어디 있어요.” 하였다. 설합속에서 꺼내어 주었더니 몇 장을 찍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기러기가 벌써 오고 있어요.” 하면서 그것도 찍을려고 했으나 못 찍었다고 아쉬워한다. 나는 “머어? 벌써 기러기가 온다고” 하며 나가 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저 멀리로 6마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자연은 참 정직하다 요 며칠 날씨가 조금 서늘 하더니 북한 쪽에까지 내려온 놈들이 오늘 기온이 더 내려가니 이리로 날아서 더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추워지는 것 같고 벌써 겨울이 된 느낌으로 마음이 추워졌다.

하기사 겨울이 된다고 할일 없는 늙은이가 달라질 것도 없다. 추우면 안 나가면 되고 나갈 일 있으면 오리털 잠바든지 두꺼운 것 꺼내서 입고 다니면 된다 그러나 이제는 겨울이 온다니 조금 걱정되고 감기 들릴까도 겁난다.

초여름 어느날 아내는 어서 빨리 나아서 가을이 오기 전 한 여름, 어디 한적한 시골에 여행가서 우리 별이 총총한 여름밤 하늘을 바라보면서 옛날 어릴 때 이야기 아직 우리 서로에게 하지 않았던 것들을 조용조용히 이야기도하고 조용히 보내고 오자고 하였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요즈음은 시골 산속에도 조용한 모텔도 있으니 그러자고 하였다. 그러나 내 몸 상태가 허락지 않아 아직까지 못하고 지났는데 벌써 지난 이른봄에 날아갔던 기러기가 돌아오는 10월이 되었다.

아내는 많이 배우지는 못했으나 가끔식 그의 블로그에 세상이야기 글도 써서 올리고 오늘같이 하늘이 예쁜 것 볼 줄도 알고 그런대로 우리는 잘 만났다 나에게 시집 온지가 벌써 46년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참 긴 세월이 지났고 우리는 그 세월을 겪었다. 그 동안 우리라고 맨날 하하호호 한 날만 있지는 않았다 세상에 인생이 그런 것이 어디 있으며 그렇게 살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참고 이해 할려고 노력하고 살다가 보니 많은 세월을 함께 살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큰 고민이 있다. 쉽게 나날이 덤덤하게 보내면 별거 아니나 좀 곰곰히 생각해보면 일생을 함께 살았고 요즈음은 둘만이 서로 쳐다보고 의지하고 살고 있는데 둘 중에 하나가 먼저 죽으면 그후 남은 사람은 어찌살까 하는 화두가 생겨서 그것으로 걱정을 하며 지난다.

먼저 죽는 자가 안타깝지는 않다. 우리는 언제 죽어도 된다고 마음 비우고 살고 있다. 그러나 한날 함께 죽을 수는 없고 한사람을 남겨놓고 죽는 것 그것은 필연이다 그때 혼자 어디에서 어찌 살 것인가.

아들도 잘 살고 있고 딸 또한 그렇다만 옛말에 효자 열보다 그래도 내영감 내할마시가 더 좋다는 말과 같이 아내 없는 이땅에 늙은 것이 살것이 너무 무섭다. 살려고 홀로 밥해서 처량하게 먹는 것 상상하면 너무 서글프고 눈만 뜨면 서로 함께 지나고 때로는 말다툼 하여 며칠을 삐저서 지나기도 하고 그러나 밥은 반드시 함께 먹고 지나고 살았는데 머 바라서 무슨 즐거움 있어서 그 꼬라지로 살아야 할까?

오늘까지도 자기가 안챙기면 누가 해 주느냐면서 열심히 이것 저것 사와서는 귀찬을 법도 한데 정성들여 만들어 외식은 특별한 날만 하면서 살며 그것 하는 즐거움으로 살다시피 한 아내 그것도 못하고 머 즐거운것 하며 살까? 홀로 산책이라도 하다가 또래 늙은이 부부가 함께 지나가는 것 보고는 울지나 않을까? 또 몸이 아파서 홀로 얼마나 고생할까, 그런 것 생각하니 그만 울고 싶으다.

밖으로 나갔다 저 멀리 바라보니 간밤에 비가 모두 씼어가서 시야가 멀리까지 선명하고 하늘이여전히 너무나 아름답다.

혜민스님의 말처럼 먼저 마음속으로 감옥을 만들지 말자. 세상사람들이 모두 그러나 그렇게 살아 가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