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글목록: 노인들

지겹게 다녔던 병원진료 졸업.

20150426_155106

지겹게 다녔던 병원진료 졸업.

저 지난해 그러니 2016년 2월 잠시 실수로 신경 손상이 되어 만2년에서 한달 빠진 기나긴 투병생활을 하였다.

말만 듣고 강건너 불로여겼던 구급차에 실려서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가서 20일을 입원하고 퇴원을 했으나 하체 신경손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생활을 하면서 일 개월에 한번씩 전문의 예약해서 다니고 몇 달후 2개월에 한번씩 1년반을 다녔으나 호전 되지 않아서 다시 지난해 7월 초에 입원해서 수술을 했다.

목뼈로 지나가는 신경이 눌려서 그렇다나 그래서 경추 수술을 했다. 다쳤을 때 바로 해야할 수술인데 그때도 MRI라나 그런거까지 다 검사하였으나 어찌 그때는 곧 나을 것이라고 했는지 원망스러우나 그것은 마음뿐이지 원망한들 무었 하나.

또 10일간 입원해서 수술을 하고 많이 아팠다. 퇴원해서 집에서 재활해도 된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주의를 받아 퇴원하고 집에서 가까운 재활원에서 재활운동도하고 하였으나 역시 2개월마다 주치의한테 가서 영상검사하고 처방전 받아 약타오고 하였는데 지난 1월9일에 그 동안 잘 따라주시어 고맙습니다, 하면서 이제는 안 와도 되고 약도 먹을거 없고 노인들 흔히 먹는 뇌혈관질환 약이나 드시고 하면서 그것을 6개월분 처방해주고 6개월후에나 한번 오라고 하면서 이 겨울이 지나면 지팡이도 필요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내 생각에도 많이 좋아지고 있고 하니 그럴 것 같기도 하기는 하나 나이도 많고 정말 얼마나 좋아질지 염려를 하면서 매일 추운 날씨 때문에 멀리 다니지는 못하고 집안에서 운동용 자전거도 타고 하루 종일 걸으면서 빨리 좋아 질려고 애를 쓴다. 사람이 사는 것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히 알게 된 사고다.

저혈압이었는데 그 정도는 그런데로 조심하세요 하는 소리를 듣고 느을 조심을 하기는 했는데 계단을 내려간 것까지는 알았으나 그후 어찌되었는지 12계단바닥에 나 딩굴어져서 죽었었는데 지나는 사람에게 발견되어 살았다.

부끄러운 사고 경위여서 이제까지 ‘지겨운 병원생활’ 또 머머 하며 병중생활을 이 블로그에 몇번을 쓰고 하였으나 상세한 사고 경위는 쓰지 않았던 것 오늘은 이제는 곧 낫는다니 해본다.ㅎ

흔히들 개똥밭에 구불어도 이승이 났다고 하기도 하고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욕망이나, 그 동안 일그러진 코수술, 길게 찢어진 이마 꿰매고, 경추 수술한 후의 아픔 등 많이 아플 때도 있었고 움직이는 것이 어둔하니 누울 때나 일어날 때 정말 힘이 많이들고 짜증스러운 생활의 연속일 때, 그때 그만 죽었으면 이 아픔도 없을건데 하는 마음이 자주 있었다.

사람이 긴 인고의 세월을 지나고 보면 좌절과 절망을 통해서 안으로 눈이 열린다더니 많이 달라진 새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제발 낫기만 하면 사는 동안 나보다 힘든 사람 들께 많은 봉사를 하고 낮중에는 길거리에 다니면서 버려진 휴지도 줍고 이상하다고 할 정도로 세상이 바르게 되도록 애쓰면서 살려고 한다.

하기사 이것도 욕심이 아닐지, 그래서 마음이 어느날 변할지는 몰라도 지금은 변치말고 그리하면서 살 것이다고 마음먹고 어서 이 겨울이 가고 좀 더 회복되어 지팡이만 없다면 하는 마음이다.

그 동안 이렇게 살아있게 하는데 애써주신 의료계 여러분 그리고 음으로 양으로 산고수장 늙은이 쾌유를 바라신 여러 벗님들 감사합니다.

 

 

 

 

 

아내와 딴방을 쓰니 편하기는하나 씁슬하네.

DSCF4514

아내와 딴방을 쓰니 편하기는하나 씁슬하네.

지난해 초 내가 심한 낙상으로 많이 다쳐서 병원생활 한달후 거동이 많이 불편할때 퇴원후 생활을 해보니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아서 합의로 다른 방에서 잠자기로 하였다. 그렇게 산지가 이제 일년이 다되어간다.

자면서 몸을 뒤척일 때마다 아야야 하는 소리가 나오고 화장실도 두 세번 가야하고 그때마다 아내 잠을 깨우게 되고 또 아내가 화장실 갈때마다 방에 달린 화장실문 여닫는 소리, 물소리 등으로 서로가 너 댓번씩 잠을 깨게 되어서 우리 이러지 말고 낮에 컴퓨터 쓰고 책보기만 하고 비워져있는 방으로 내가 거기서 잠도 자고 아예 딴방 생활을 해야겠다고 제의를 했다.

아내는  그래도 그거는 좀 하면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영원히 해어질 것인데 좀 불편하더라도 참고 하루 종일 별 할일 없으니 늦잠도자고 낮잠을 자더라도 안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참고 한 달을 지나보니 계속되는 불편으로 이제는 마음조차 짜증이 나고 몸도 신경계통의 고장이니 별 차도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해서 또 제의를 했더니 그래요? 정 그러시다면 완쾌 될때까지 그리 합시다는 승낙을 받고 나는 그날부터 작은 침대도 작만하고 이런저런 살 환경을 구비하여 내가 낮에 주로 쓰던 방으로 아예 이사를 했다.

그후 그렇게 지나보니 너무나 편하고 아내에게 잠 깨우게 하는 것 미안해할 염려도 없고 좋았다 그렇게 시작한 별거 아닌 별방 살이를 우리는 하고 있다.

나는 서른살에 아내는 스물다섯 그 당시에는 조금은 늦은 결혼을 한후 40년넘는 동안을 한방에서 생활을 하였다. 그렇지만 남과 여로서 즐기는 것은 안 한지는 벌써 수년 전이었고 다만 룸 메이트로 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서로 건강 보살피며 자다가 이불을 차고 자면 덮어주고 가끔은 손도잡고 자기도 하며 함께 잠자고 살았었는데 이제는 아내도 혼자 잠자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나 역시 너무나 편하고 좋다.

예전에 우리할아버지들 젊을 때부터 사랑방이라고 방 따로 잠자고 하시는 것 보았고 그때는 아내와 함께 자고 싶으면 아버지어머니 눈치도 봐가며 또 틈 봐서 아무도 모르게 잠자리를 하기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친구의 아버지는 그때는 나무로 난방 할 때였는데 도끼터에서 도끼로 장작을 깨는 신호를 하면 아내가 눈치껏 나와서 여물간(소 먹이용으로 볏집을 썰어서 두는 곳)에서 서로 사랑을 하였다는 소리도 들었다.ㅎ

그당시는 부부이지만 함께 체온을 느끼며 정을 통하는 것도 뻔히 알면서도 아주 부끄럽게 여기는 시대였었다. 그리고 여자가 정해진 남자말고 다른 남자와 성행위를 자의건 타의건 하면 심하게는 죽어야 하는 시대였었다.

그런 성행위가 요즈음은 두남자 세남자 심하면 네번도 공공연하게 이혼을하고 또다른 남자와 결혼도하고 예전에는 남자들만 기녀로 정해진 여인들과 이여자 저여자와 즐겨도 되는 세상이였으나 요즈음은 여자가 아무 남자와도 즐겨도 별거 아닌 성을 즐기는 세상이 되었다. 별방 생활을 하니 편하다고 하다가 왜 이렇게까지 지껄이게 되었는지 ㅎㅎ.

그렇게 하여 우리는 별방에 살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몰라도 그렇게 계속 살 것 같다. 요즈음 나도 아직 걸음걸이가 어둔하여 지팡이를 집고 다니는데 아내도 이제 다리도 아프고 몸속도 크게 아픈 곳이 생겨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은 여보 이제 그만 살고 편한 세상으로 갔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하는 소리도 스스럼없이 하면서 산다. 방 함께 쓰면서 누우면 정신없이 자고 아침이 되어야 깨서 화장실가고 서로 체온느끼며 잔 세월이 이제는 아득한 옛날이고 이제는 그런 감미로운 기회는 우리는 끝났다.

 

하늘이 말린 야구경기장 구경.

2016081301001353700101021[1]

하늘이 말린 야구경기장 구경.

아들이 광복절 오늘자 야구표 네장을 보내왔다. 아내와 딸은 간다고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저께는 아내가 몸도 아프고 안 갈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그렇다고 하고 네가 알아서 직원들 주던지 하여라 하였더니 아들은 머라고 그 표가 특실표다.”고 하면서 머라카노, “커피도 치킨도주고 하면서 그런 푠대 웬만하면 누나와 아부지도 다녀오세요.”하였다.

요즈음 아내가 많이 아프다 머 3개월동안 의원 병원을 다녔는데 노인 섬유근육통이라나 그런거로 앓는 것 같은데 동네의원은 거쳤고 중급병원에서도 잘 몰라 큰 병원에 류마치스내과 있는 곳에 가보라고 그 동안 검사하고 치료한 것 소견서를 써주어서 알아보니 이게 웬일이냐? 9월말까지 예약이 않된다 그 후에나한다. 또 다른 곳에 해보니 10월 중에나ㅎㅎ

세상에 이거 어쩌면 좋으냐 저녁마다 움직일 때마다 아야야야…” 하면서 통증을 호소하는데 병원도 많은데, 그놈의 병원 내가 수술을 해보니 중간 계산해주세요하면서 계산서 보니 150몇만원, 다른 것들은 들여다보고 혹시나 이의 달꺼나 있는지 보지만 병원비는 머가 먼지 달라면 두말 않고 누구나 다 준다. 잘은 몰라도 덜 받는 거는 절대로 없을 거고 더 받는 거도 비일비재 할거다.

아버지 계실 때 허가 낸 도둑놈들 제발 아프지 말아야 된다 그럴려며 평상시 건강할 때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하셨고 또 있다 변호사도 합법적인 도둑놈들이다고 하시면서 절대로 소송은 하지 말게 살아야 하고, 당하지도 절대로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소시때 수천만원 떼이고도 버리고 말으시는 평생을 사셨는데 그것보고 나도 그렇게 살기는 했는데 지난 삶이 영 마음에 안들게 거의 평생을 살았다.

야구 구경 이야기나 할 것이지 왜 이래 됬노? ㅎㅎ

그나저나 아내가 빨리 나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야구구경도 이런말 저런말 특별표니 나발이니 하더니 오늘 비가 와서 보지도 못하게 하늘이 말렷다. 작년에도 아들이 표를 보내주어서 가서 보고왔다. 아내는 야구마니아다. 아들이 적을 둔 곳이라고 엘지 경기는 빼먹지 않고 밤늦도록 중계방송을 다 보는데 선수이름 경기규칙 등 할머니치고는 박사라고 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경기장에 가겠다고 할 때 아픈데 네시간 정도를 버티기나 할까? 했더니 그래도 간다고 하면서 어제는 바르는 모기약, 부채, 간식거리 과일 빵 주스도, 혹시나 얇은 겉 잠바도 챙기고 했는데 가서 보게 했으면 좋을 것을 하늘이 말렸다.ㅎㅎ

그래서 그만 많이 아프다고 누웠고 나도 수술후 회복 중이어서 이 글이나 쓰고 누워야 할 것 같다. 아파도 괴로워도 웃자. ㅎㅎㅎ

 

 

 

임진강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DSCF4246

임진강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내집에서 내려다보면 임진강 굽이치는 곳이 마치 바다에 닿은 것처럼 넓게 보인다.오늘 아침은 기다리던 비가 내리고 넓은 임진강물위에 물안개가 자욱하다. 저 안개는 구름이 강물위에 내려앉은 것일까 강물이 구름이 되어 하늘로 올라 갈려는 것일까? 2017년 여름이 임진강물위에서 아른거리면서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것 같기도하다.

세상사 뜬 구름 같다더니 부운 같은 인생살이를 살고 있다. 지난해2월에 죽었다가 현대 의술덕으로 또 한번 살아서 이렇게 블로그도 하고 때로는 귀여운 손자와 놀기도 한다. 10년전 중국에서 심근경색으로 10분마다 숨이 멎을 정도의 통증을 중국산 좁쌀알 같은 구급약을 먹으며 비행기로 와서 용케 의술덕으로 살았고 이번에 또 피치못할 모진낙상으로 몸뚱이도 정신도 죽었다가 말만 들었던 구급차로 실려가서 살았다. 그러나 그후 일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과 같을수야 없지만 일년 사이에 5년이상 팍 늙은 노인이 되었다.

매일 한번 먹는 심장약을 먹으면서도 참 건강하게 가벼운 운동도 많이하고 일상생활에 건강상 부족함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행동에 지장을 느낄 불편함으로 지나니 많이 불편하고 또 신경외과의 약을 먹으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있다. 그러느라고 많은 것을 경험했고 느꼈다. 건강이 이토록 소중한 것 건강할 때는 몰랐는데 불편해보니 아무 생각없이 불편없이 걸어다니는 것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빵 한조각 사과반개 그리고 두부 설은 것 두 조각 먹고 우유 한술 넣어 탄 커피한잔으로 아침 먹고 여보 오늘 우리 북한산갈까 하면서 전철타고 가서 무리하지 않게 걷고 오고, 소래포구로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로 가기도 하고 많이 다니며 걸었는데 걷기가 버거우니 기껏해야 서울에 다녀오는 것 이곳 마트에 걸어가는 것 등 하루에 5000보걷기도 힘드니 살맛이 안난다.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죽어봐야 아는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없으니 그거는 알수가 없는데도 세상사람들은 사는게 좋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이는 개똥밭에 구불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 또 어떤이는 이 골치아픈 것이 즐거운 것 보다 훨신 많은 세상 이나이가 되었으니 죽으면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성할때는 몰랐는데 다리가 불편하니 마음대로 걸을수 있는 것이 소중한 것이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요즈음 사람수명이 80이보통이라고 할 세상이 되어서 살아보니 수천년 전부터 인간의 소망중에 부귀다남장수에 들어갔던 장수의 욕망이 그게 아니구나 오래 명줄이 붙어있는 것은 별로이고 건강히 살아야 하는데 늙으니 온몸이 쑤시고 결리고 걸핏하면 감기도 들고 또 많이 써먹은 몸의 각 기구들이 노쇄해서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해서 불편하고 어떤 부위가 지독하게 아파서 병원에 가서 절제도하고 하니 긴 수명이 달가워하지 않은 시대라고 여기는 사람이 점차 늘어가고있다.

내 주변에 분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면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죽기로 오래살고 더 살고 싶어만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요즈음 보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주변에 어려운 모습들도 많이 보이고 또 나로 인해서 불편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만 가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산다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하는 노인들이 많다.

맞아 사람들은 당해보고 경험을 해봐야만 그것이 어떤지 알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좌절과 절망을 통해서 안으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영글어 진다더니 이제사 안으로 눈이 열리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다 버릴 줄도 알고 빈껍데기로 사니 죽는것도 무섭지 않아지네.

*참 하기 싫은 수술을 하러 오늘 또 병원에 입원을 하여야한다. 따라서 며칠 동안 유일한 내 일(?) 이블로그도 휴업.ㅎㅎ

그렇게라도 웃으면서 병원 간다 어느 의사의 말. ‘웃으면서 오는 환자는 빨리 낫는다고 하였는데 그리되고 싶어서…  건강한 나날 되세요.

 

 

 

 

 

 

 

가정의 달에 가족들과 여행도 좋지만…

naver_com_20150514_174858[1]

가정의 달에 가족들과 여행도 좋지만

일년내내 가정의 달이였으면 좋지만 요즈음 시대에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우선 가족모두가 어린이까지 일들이 있어서 한집내에 살아도 아버지는 아이들 잠자는 얼굴보고 출근하고 요즈음은 어머니도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할아버지들은 아들네와 같이 한집에 사는 이들이 드무니 몇주를 지나도 대화도 할수 없고 얼굴보기가 어렵다.

예전 같으면 3대가 한집에 사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그리고 또 50이된 아들도 퇴근시에는 다녀왔습니다 하고 문안들이고 서로 간단한 이야기도 하고 하였으며 식사시간에는 함께 하니 마음속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요즈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달은 가정의 달이라고 하며 가족끼리도 또는 3대가 가까운 곳에 함께 가서 하룻밤 함께 지나기도 하고 어떤 집은 형제 자매들 그짝들과 함께 여행도가고 하는 것 많이 보인다. 내 처가에서도 처남들 부부와 출가한 딸들 사위들 합하면 10명이넘는데 며칠 전에 이번 주말에 가까운 곳에가서 일박하자고 제의가 왔다.

그러나 우리는 저지난해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신이여서 아직은 3년내이고 한식 때도 가서 보지 못했는데 아이들과 동생들이 모여 어머니 아버지산소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해서 못 갔다.

그렇게 형제들이 모이는 것도 중요하고 좋지만 늙어가니 아이들이 보고 싶고 아들며느리와 함께 이야기도하고 온가족이 함께 다니며 보고느끼고 대화하는 것이 하고 싶어진다.

내 경우는 같은 지역에서 가까이 살지만 어떤 때는 몇주를 대화없이 지날때가 많다. 어린손자는 어린이집에서 일주일에 한번정도 바로 와서 재롱부리다가 며느리가 와서 데려가지만 아내가 데려다주니 나는 보지도 못하고 그럴때는 공연히 궁급고 혹시 무슨 고민거리가 생겼나 왜 아무 연락이 없나 싶으다.

어린손자도 이제는 오면 반갑고 좋기도 하지만 제 마음대로 할려고 하고 이제는 버겁다. 그리고 지 엄마가 어쩌면 그리 좋은지 놀다가 할머니 전화벨 소리가 나면 쫓아가서 들고 와서 할머니를 주고는 바로 양말을 신고 윗옷을 챙겨 입을려고 하고 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할머니와 나가면서 내게 하부지 안뇽하며 간다.

가고난 다음에 나는 그놈이와서 저질러놓은 장난감들 그리고 내 책상에서 종이에 그려놓은 황칠한 것들도 그대로 두고 그것 하면서 하던 모습들을 머리속으로 그리며 있기도한다. 참 귀엽다. 할아버지 집에서는 별로 즐겁지 않지만 그렇게 잠시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여기고 참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 우리도 아이들 가족과 점심을 먹었다. 아내가 외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자주하지는 않지만 무슨날 때는 그래도 하는데 그래봐야 한우고기 몇 절음 먹고 마는 것 별로다. 별 말도 없다, 아이들이 주가 되어 그놈들 챙기다 보면 모처럼 만난 시간들 다가고 해어진다.

한달쯤 되었는데 아들과 둘이서 장어집에를 가서 오래만에 장어도 많이 먹고 아들과 이런저런 집안 이야기도 하고 세상이야기도 하고 나니 마음이 시원하고 즐거웠다. 블로그에서 누가 노인이 가장 즐거운 것은 아이들과 마음속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다고 하더니 느을 아이들과 식사를 해도 별로이고, 집에가서 보아도 별로고 아이들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도 별 말없고 일상적인 인사만 하고 가니 먼가 모자랐는데 그날은 그러고 집에 왔더니 아들이 너무 자상한 아들, 착한 아들처럼 여겨 지고 참 즐거웠고 믿음직스러운 아들이었다.

노인이 가장 고픈 것은 맛있는 식사 한끼도 아니고 돈들여서 사주는 옷도 아니고 전화 자주해서 별일없어요 하는 것도 아니다. 한달에 한번이라도 마음속에 저장된 가정에서 겪는 불만의 소리라도 진심의 말 한마디가 가장 즐거운 것이다. 노인은 진심이 담긴 자식들의 말 한마디가 아쉽다.

 

 

 

환자를 봉으로 여기는 병원이 많다. 2.

 ³ëÀÎ °Ç°­°È±â´ëȸ 24ÀÏ ¿ÀÀü °æºÏ °æÁÖ Çü»ê°­ ¼­ÃµµÐÄ¡¿¡¼­ ¿­¸° 'Á¦1ȸ ³ëÀÎ °Ç°­°È±â´ëȸ'¿¡ Âü°¡ÇÑ 2õ¿©¸íÀÇ ³ëÀεéÀÌ °­º¯À» °ÉÀ¸¸ç °Ç°­À» ´ÙÁö°í ÀÖ´Ù./À̽ÂÇü/Áö¹æ/»çȸ/Àü±¹ºÎ ±â»ç ÂüÁ¶/ 2006.10.24 (°æÁÖ=¿¬ÇÕ´º½º) haru@yna.co.kr (³¡)

환자를 봉으로 여기는 병원이 많다. 2.

우리가 이상하게 보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의사들은 자기수술은 받지 않고 약먹는 것을 가능한 잘 한다고 한다. 점쟁이 자기 점 못하고 이발사가 자기머리 못깍는 그런 말이 아니고, 목수가 자기집은 허술하고, 일류요리사가 자기는 그런 요리 해먹지 않는다는 쪽으로 대입하면 될 것 같다. 집은 불편 없이 살수 있으면 되고 요리는 영양 갖춘 자기가 맛있는 음식 먹으면 되는데 비싸고 어렵게 할일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 몸도 어지간한 병 자기 몸이 알아서 회복기능 치료기능이 있기에 그냥 두어도 되고 어디 한곳을 치료하다가 보면 그로 인해 다른 곳이 또 탈이나니 이거나 그거나 경중을 따져서 한다 그러니 의사들은 그런 것 잘 알고한다.

그러나 환자들에게는 의료상식도 그들만큼 없으니 잘못해서 병이 갑자기 커질 수도 있는 환자불신과, 너도 나도 경쟁하여 들여놓고 돈 많이들인 병원, 운영 잘못하면 곧 문닫을 수도 있으니 돈벌이가 앞에 왔는데 그냥 보내기란 여간 인내심으로는 참기 어렵다.

그래서 그냥 두면 될 것도 돈드는 것 자꾸 하라고 한다 또 전국민 의료보험시대가 되어서 치료비 염려 별로 없는 것도 그렇게 부추기는데 한몫하는 것 아닐까? 어느 사회나 나라나 지식인들이 건강한 이성을 가져야 할 의무가 여기에 있다. 의료행위에 관한 한 종사자 말고는 모두가 어리석다 그 어리석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을 저야한다.

어느 양심적인 의사의 글에 가장 좋은 치료는 환자가 항상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몇 년전에 보았는데 김현정이라는 여의사는 ‘의사는 자기 수술은 안받는다’ 하는 자기가 느낀 것을 써서 남용되고 있다는 의료세계를 고백한 책을 본적이 있다. 거기에 보면 가능한 한 수술은 안하고 치료하는 것을 권하였다. 아픈 상황을 설명 할때도 웃으면서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과 회복기간이 빠르다고 하였다.

좀 아프다고 의사 너무 믿지 말고 병원가지 말고 즐거울수 있는 것 찾아 하면서 자기가 원인 분석도 하며 자기 병에 대해서 연구도하자. 또 사람의 몸은 자기회복능력이 탁월하다. 자기 몸의 의사는 자기자신이다 내 병은 내가 안다는 말도 있다.

나는 지난해 2월에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서 앞으로 넘어져서 가무러쳐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깨어나서 보니 머리털이고 온몸이 피떡지가 말라붙어있고 신경이 마비되어 몸뚱이를 움직일 힘이 없고 코가 터지고 이마가 찢어지고 엉망이 되어서 그후 한달 가까이 병원에서 살았는데 찢어진 이마 꿰메고, 낮아진 코 수술해서 바르게 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후 일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걷기가 어둔하여 좀 부자연스럽다.

2개월마다 신경외과에 다니지만 의사도 별 도움이 안되고 내 자신이 재활운동을 하라는 말 뿐이고 나이가 많아서 회복이 늦다고 한다. 그러느라고 MRI라는 것을 두번이나 찍었는데 확실히 알수 있을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또 찍어보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별 도움이 안 될수도 있다고 하였다.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아서 젊은 재활전문의원 원장 아는분이 있어서 자문을 받아보니 그분 역시 그런 말을 해주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며 있어 볼까한다 그의사 시키는데로 착하게 다했고 많이 걸어라고해서 걷기도 많이한다.

요즈음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보면 개 눈에는 머만 보인다고 늙은이들 지팡이 짚고 다니는 사람이 어찌 그리 많은지…. 그래서 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지금 이렇게라도 회복된거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지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 더 완쾌되기를 바라서 안달한다면 내 눈에는 활발히 잘 다니는 노인만 보일 것인데 이런 것 보니 앞에서 말한 병을 이제는 내 마음속으로 이대로라도 감사히 여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즐거운 생각은 환자에게 약보다 더 좋은 효험이 있다는데 이제 나이도 이 나이가 되었고 이만큼 살았는 것도 감사한데 전보다는 고생스럽지만 참고 지나자 이달에 병원예약이 되어있는데 가서 이제는 자연 치유되도록 할 것이다고 통고를 하고 말려고 한다.ㅎ

그래도 아내의 극성스러운 간호와 내조로 노인들이 흔히 가진 고혈압, 당뇨 그외 긴 투병중 그리고 외과치료와 신경치료 중에 이런저런 약도 엄청 먹으며 거동이 안되는 기간도 있어서 몸 움직이는 것도 잘못 하였으나 그런 거 없고 이 정도로 치료되고 있는 것 감사히 여긴다. 별로 하는 일 없이 지나는데 좀 불편하게 살면 된다. 그리고 젊은 사람은 몰라도 늙은이들은 죽는 것 너무 겁내지 말자 병이들지 않으면 죽지않는다 살만큼 살았으니 골치 아픈 늙은 몸 쉬게하는 것도 괜챦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시간도 잘간다 행복이 마음속에 있다고도 하던데….

아름다운 자연 2)나무는 겨울에 잎을 내려 놓는다.

20130419_074831_1a7ca2b2025757b1bdf21fe307fba57b

아름다운 자연 2)나무는 겨울에 잎을 내려 놓는다.

자연은 정직하고 아름답다.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미래를 가르쳐주나 사람은 허망한 욕심 때문에 보지 못하고 그 가르침을 읽지 못하고 살아간다.

자연의 가르침은 물론 인간사에서도 욕심을 버리면 보이는 것이 많은데 그 놈의 욕심이라는 허망한 괴물에 가려서 보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결국은 불행해지는 일들을 당하고 또 당하고 하면서 살아간다. 잘 들여다 보면 사람은 참 불쌍하고 가여운 존재다. 욕심을 버리면 인간 세상이 보이고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보이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수도 있다.

자연은 욕심이 없다. 겨울이 온다고 나무는 자기가 가졌던 많은 잎을 내려놓고 최소한의 둥치만으로 외부 추위를 적게받으며 지나고 흙속에 있는 뿌리와 자기와 함께 살고 있는 생물의 뿌리를 추위에 얼지 않게 낙엽이라는 이불을 덮어서 얼지 않게 해주고 수분의 증발을 막아 주기도하며 살을 애이는 모진바람에 꽁꽁 얼어버린다고 하늘에서 눈이 내려서 큰 이불처럼 땅 전체를 덮어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기나긴 추위를 견디며 지난다. 훈풍이 불면 나무는 가지에서 잎이 돋아나고 꽃을 피우고 번식을 할 기운을 북돋아주기도 한다. 모두가 그렇게 되도록 함께 도와주고 협력도 한다.우리 인간은 자연에게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 인간은 홀로 하늘에서 뚝 떨어저져 내려온 독재자가 아니다. 그것들이 내 뱉아주는 산소를 마시고 살고 그것들이 간직하고 있었던 물기를 보내준 작은 물들이 모여진 강물을 마시고 살아간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도시화되어서 그 도시 생활을 하면서 먹는 것 입는 것 살고 있는집들이 모두가 가 간접적인 자연의 산물과 화학물질로 만든 것으로 입고 자고 하지만 간혹 tv에서 보여주는 자연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우리와 같이 먹고 입고 자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고 모든 것을 자연에서 직접 채취하여 즉석에서 장만하여 먹고 지나는 것을 본다.

그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면 집은 최소한의 공간이고 먹는 것도 바로 옆 자연에서 버섯 산나물 나무 삶은 물 약초 등으로 국 끌이고 무치고 밥해서 먹는다. 그것이 그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더 특이한 공통점은 하나같이 몸이 곧 죽을 병이 들려서 그곳에 와서 그런 생활을 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건강해 졌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암 말기가 되어서 그곳에 와서 건강해 졌다고도 하고 정신이 이상해져서도 하며 보통 10여년을 낮 되면 산에 다니며 먹거리들 채취하나 그것도 절대로 욕심내지 않고 오늘 내일 먹을 만큼만 채취한다. 집 옆 공터에 씨 뿌리고 야채들 심고 연못 만들어서 강에서 간혹 잡은 물고기방사하고 전기도 없는 생활을 하면서 살면서도 너무 행복해 하는 것을 보았다.

겨울이 되면 죽은 나뭇가지들 가져다가 구들에 불 넣고, 산 다니며 약초 캐며 운동도하고 여름에는 일년 먹을 것들 심고 기르고 자연을 아껴주고 거기서 조금만 얻어서 그렇게 살아간다. 하나같이 뚱뚱한자도 없고 번들번들하게 기름기가 주줄흐르는 미륵 돼지 같은 사람도 없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하나같이 이곳에서 그렇게 계속 살지 하산은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 나무들처럼 자연이 되어 자연을  즐기며 산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생각을 하였다. 도시에 살면서도 그와 꼭 같이 할 수는 없을지라도 먹고 입고 생활 하는것 비슷하게는 할 수는 있다. 나무들이 살아가는 것을 연구하고 배우고 따라하자. 긴긴 추운겨울 다 내려놓고 훈풍오기를 기다리는 인고도배우고 내것 다 내주며 이웃 도와주는 거룩함도 배우자, 그리고 틈내어 명상도 자주하자 그렇게 1년만하면 나무들처럼 마음은 소박하고 몸은 저절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거다.

 

 

 

 

 

늙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만리포

늙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우리는 서른이 넘어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4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아이들도 이젠 중년이 되었고 우리는 많이 늙었습니다.
아내는 허리도 아프다고 하고 예전 같지 않습니다.
눈가에 실낱 같은 잔주름이 솔잎처럼 굵어져가고
언제나 아름답고 명랑하고 건강하던 모습이 차츰 양 볼도 처지고
허리선은 없어지고 절구통 같아 졌고
위로는 그대로이지만 옆으로 벌어져서 걸어가는지 굴러 가는지…
쌍거풀도 있고 크던 눈이 이제는 축처져서 눈도 작아졌습니다.
나는 늙어도 아내는 늙지 말았으면 합니다.

사는 동안 우리도 맨날 좋은 날만 있었지는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아닌걸 꼬투리 잡아 토라져서 수일 동안 괴롭힐 때
많이 밉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즐겨입던 그의 예쁜 옷가지도 보기 싫어지기도 했습니다.
어른들과 사이가 나빠 질려고 할 때 나는 쩔쩔 맨적도 있었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아내눈치보고
어머니 아버지 눈치도 보면서…
남편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궁색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평화가 오고 예쁠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벗어놓은 펜티도 예뻐서 만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살은 날이 반세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기도 내가 한없이 미울 때도 많이 있었겠지요
젊은 혈기에 사업인가 먼가 하다가 길바닥에 내 몰렸을 때
얼마나 미웠겠어요 돈 없고 할일 없고 희망 없는 이남자를
믿고 살아야 하나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좌절하지 않고 나를 바로 세워 줄려고 사모님이 어느날 갑자기
아줌마로 변해 험한 일 할때 또 삭막하고 낯설은 나라 중국에 살면서
많이 울리기도 하였습니다.
뒤돌아 보면 씩씩하게 나와 살아준 것 지금 생각하니 너무 고맙습니다.
긴 세월 동안 잘 참고 견뎌준 내 아내가 대견스럽습니다.
이제는 잠자리도 같이 할 수 없는 늙은이가 되어도
인정 없는 늙은 남편 위해서만 하루 일과를 사는 늙은 아내가
요즈음은 너무나 기특하고 예쁩니다.

살던곳 멀리 떠나 친구하나 없고 마음속 이야기 할곳 없는 이 수도권에서
그래도 내만 옆에 있으면 신이 납니다.
내 얼굴에 약간의 걱정이라도 보이면 그도 당장 시무룩해집니다.
내만 편하면 자기는 한없이 기쁩니다.
어제도 이 늙은 영감테기 먹일려고 시장으로 맛트로 다녀 왔습니다.
과일도사고 생선도사고 채소도사서 먹도록 만들어
내가 잘 먹으면서 맛있다는 한마디에 그렇게 행복해 합니다.

간혹 한번씩 허리 때문에 고생을 하더니
어제부터 또 안 좋아서 파스도 붙이고 약을 먹고 합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차라리 내가 아픈게 낫겠어요.
이 나이 되니 이제는 이런 일이 자주 있을 것입니다.
나도 금년 봄에 사고로 식구를 혼줄내 주었고 아직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자기도 나도 이제는 그런 것 경험 덜하고 살다가 쉽게 죽었으면 하는데
인간에게는 가장하고 싶은 것은 가장 얻기 어렵다고 하던데…
며칠 후 멀지 않은 곳 아내가 좋아하는 파도 소리 들리는 만리포에라도
다녀 올가 합니다.

지겨운 투병생활.

20160109_180136

지겨운 투병생활.

건강할 때는 건강한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냥 마음대로 다니고 운동도 닥치는 대로 몸에 무리가 없도록 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동내뒷산을 돌아보기도 하고, 좀 먼곳 산행도 하고 싶으면 하고,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에는 친구 세명이 골프존에서 만나서 몇 시간을 즐겁게 운동도 하였다.

이모임은 벌써 4년이 되었는데 그 중에 지금도 출근하는 친구가 있어서 토요일에 만났다.

흔히들 골프하면 돈이 많이 드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내 골프장들이 많이 생겨서 노인들이 하기는 딱좋다. 우리모임은 한곳에 4년을 다니니 주인이 경노차원에서 그린피가 1만원이다.

모두 젊은 시절에 여러 필드를 다니며 즐겼던 운동이지만 지금 이나이에는 실내에서 4시간을 하니 적당하고 그 보다 더 싸고 재미있고 전신운동이 되는 운동은 드물다고 하면서 우리는 즐겁게 하였다.

그런데 내가 지난 이른봄에 다쳐서 그 모임이 와해되고 나 빼고 간혹 둘이 만나서 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와서 점심이라도 함께 먹고 얼굴이라도 보자고 하여서 가서 둘이 게임 하는 것 보고 놀다가 왔다.

그 친구들은 이곳에서 만난 친구로 나보다는 몇 살 위이나 항상 끔직이 여기고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 두번이나 다녀가고 전화도 자주해서 용기를 돋우어주고 한다 너무나 고맙고 존경스럽다.

이제 80이갓넘은 분도 있고 80이 내일모래라고 할 고령인데 다 아직은 내외가 함께 살고있다. 그러고 보니 참 행복한 친구들이다.

이제는 가진 것들도 머지않아 다 버릴 것이다는 생각으로 그러나 젊을 때 검소하게 살은 경험이있어서 헛돈은 쓰지 않고 행복한 생각을 하루 종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요즈음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들과 같이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몸뚱이를 못 움직이기도 했는데 이만큼 나아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렇지만 6개월이 지난 아직 마음대로 걷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걸어야 되고 하라고 하는 운동을 못하는 기간이 6개월이 넘고 나니 항상 67kg넘지 않던 몸 무개가 68kg이되고 없던 뱃살도 만지면 뚜꺼워지고 몸이 둔하기가 그지없다.

이제사 건강이 이토록 중요한 것을 알겠는데 언제쯤이면 완쾌가 될는지 너무나 지겹다. 투병생활이니 재활이니 하는 소리도 강건너 불로 듣고 보았었는데…

요즈음 밖앝에서 더듬거리며 걸으면서 보면 지팡이 집고 다니는 사람이 어찌 그리 많은지 젊은이도 안노인들도 많이 보인다. 머 눈에는 머만 보인다고 하더니… 이 고생을 앞으로 몇 개월을 더해야 편하게 걸을수 있을는지 정말 지겹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그러다가도 아니다 이만해도 다행이고 행복으로 여겨야 한다고 마음을 다그치며 올해 따라 너무더운 이 여름을 이겨 내고 약도 부지런히 먹고 운동이래야 걷는 것인데 매일 한 두시간을 반드시 걷기를 하고 지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걱정, 이런 생활을 오래하면 또다른 합병증이 생겨서 또 아이들과 아내를 힘들게 할까 겁난다.

그리고 내 막내 손자와 마음껏 놀지 못해 그것이 많이 아쉽다.

여러 번 블로그에 우리집 해결사고 너무 귀엽다고 자랑도 많이 한 막내 손자가보고 싶어 아들 집에 가지만 업어주지도 못하고, 놀고 있는 것이 너무 귀여워서 그냥 바라보고 있으면 쪼르르 와서 내 손을 이끌고 가자고 한다. 그럴 때 민첩하게 지가 하자는 데로 하지 못하면 나를 바라본다.

하부지가 왜 이럴까? 하는 것 같고 미안하고 아무것도 못해주는 할비가 되어 때로는 서글플 때도있다. ‘하부지’는 그가 나를 지칭하는 소리다. 받침있는 말이 아직은 그 아이에게는 너무나 어렵다.ㅎ

어서 많이 좋아져서 손잡고 데리고 다니며 잡다한 세상 구경도 시키고 사람 사는 것 알리기도 하고 전철도 태우고 맛있고 지가 좋아하는 먹을 거리들도 사주고 싶다, 아빠, 엄마가 알면 놀랄 것들 그러나 맛있는 것 불량식품도…ㅎㅎ

뜻있는 곳에는 반드시 길이 있다는데 그런 것 마음껏 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낙원동 이발사들.

 

 

ugc[3]

낙원동 이발사들.

돈은 흔히들 말하기를 다다익선이고 한다. 그래서 아예 없는 자는 포기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가진 자들은 더 가질려고 때로는 욕먹을 짓거리도 서슴없이 하면서도 더 늘릴려고 하고 또 많이 가진 자들은 줄어들까봐 전전긍긍하며 나날이 그리 즐겁지 못한 사람도 많다.

나는 이것도 저것에도 들수없는 어리버리한 사람이 되어서 노년을 보내며 내 나름대로 얻은 지혜, 적지만 그것으로 맞추어 살자는 심산으로 다행히 아내가 따라주어서 지나고 있다. 남이 10만원으로 기쁨을 느낄일은 나는 5만원으로 써서도 그보다 더 행복감을 느끼게 될때도 있더라.ㅎ

학교다닐 때 경제 원론 시간에 경제학 교수가 하신 말씀 ‘경제 라는거 별거아니다. 더 많은 효용 값어치가 있도록 돈을 쓰는 것이다’는 간결하게 설명을 한 것 잊지 않고 살고 있다.

더 늘릴려고 하며 쓰는 것은 투자이고, 즐거울려고 쓰는 것은 소비다. 그럴 때 어느것이 더 효용성이 있을가 하는 생각을 해서 쓰면 되는 것이고 그러다가 때로는 생각보다 틀러서 후회도 하고 잘되어 큰 돈이 생기기도 하고 하는 것이다.

이제 이 나이가되어 투자가 될 행위는 해서도 안되고 할수도 없다. 소비는 살아있는 동안 안할수 없으니 가진 것이 적으니 그에 맞추어 써야한다.

몇해 전 어느날 서울 종로3가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다가 보니 약간 뒤진 골목에 이발 3500원이라고 쓰여진 이발소가 있었다 아주 유리문에 써두었다. 응 머 이런거도 있나? 이발이 3500원이라니 하며 유리창속을 기웃거리며 들여다 보았더니 이발사 5명이 열심히 노인들 머리를 깍고있고 대기하고 있는 노인도 서너명이 윗도리를 벗고 앉아있다.

그때 나는 서울이 아닌 내 집주변에서 미장원에서 5000원으로 머리를 깍고 다녔다. 그곳에서는 그것이 제일 싼 집이고 머리컽만 하는 곳이다 그러면 되고 면도는 집에서 하면되니 내딴은 절약하고 잘한다고 했는데…

그 후부터는 이발은 다른 일들과 함께 종로역에까지 전철타고 가서 하곤 한다. 그런데 그후 돌아오면서 보니 그런 집이 한 두집이 아니고 여러 곳이었다. 그후 부터는 서울배우기 익히기를 좀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시간이 나는 데로 자주 서울을 들락 거렸는데 다녀보니 이래서 서울이 가난한 사람도 많고 천문학적으로 많은 돈 가진 사람도 머리 좋은 사람도 몸뚱이 뿐인 거지도 모든 사람들을 다 포용하는 서울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으나 그곳보다 다니며 보니 서민들이 주로 쓰는 생필품이 서울이 더 싼 것이 많고 주거비가 더 들지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 가난한 사람이 살도록 된 곳 또한 서울이다.

그 3500원하는 이발소에 이발사들은 젊은 사람이 60대후반이고 대개 그보다 나이가 많다. 나는 그사람들 열심히 가위질하는 것을 보면서 어릴 때 이발소를 그려본다.

빡빡머리 깎을 때 옆에 어른들 이발하는 것을 보면 얼굴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수건을 씨우고 난후 조금 있다가 벗기고는 면도칼을 가죽혁대에 좌우로 문질르고는 면도를 하고 다음에 한쪽구석에 마련된 머리 씻는 곳에 처음 이발기술을 배우려고 온 13,4세정도의 아이가 열심히 감겨주고 하였다.

이 이발사들은 그렇게 배워서 자격증을 딴사람들이 아닐까? 많은 경험으로 시원하게 잘한다. 젊은이들은 없고 모두가 늙은이들이다. 이발소내부도 별다른 장치도 없고 간결하다 씼어주면 4000원을 받는다. 하기사 요즈음 거의 매일 샤워를 하는데 집에가서 저녁에 씻는 것이 더 미덥고 시간도 절약하고 그래서 나는 씻지는 안는다.

그런데 분이기가 너무딱딱하다. 이제 평생을 살았는 사람들이 모두가 너는 너고 나는 나다. 한쪽구석에 고물 티비만 혼자 지껄이고 이발소 안은너무나 조용하다 그후 다른곳에 가 보아도 역시나 그렇다. 평생을 살면서 여유로운적이 없어서일까?  이 나이에도 일을 해야하니 일까?  

옮겨가면서 두세번 말을걸어 보았으나 거의가 그런데 그이유는 모른다.돈 벌기가 어려운 요즈음 쓰는 것 절약 할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도 벌이는 것만큼 중요하다. 지나면서 살펴 보면 세일 하는 곳도 많고 물건도 많다. 서울 수도권이 이래서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살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