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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과 양심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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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과 양심고백.

요즈음 배신(背信)이라는 단어가 언론 각 매체에 자주등장하고 배신했다는 사람 이름도 버젓이 등재되는 것 자주 본다. 일찍 공자께서는 ‘교묘한 말과 위선적인 얼굴을 한 사람은 인덕(人德)이 없다’고 했다. 또 일본의 이나모리가즈다씨는 대접받고 싶거든 먼저 대접하라고 했으며, 또 어느 선인의 말, 복은 검소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謙讓)에서 생긴다, 근심은 욕심에서 생기며 화(禍)는 남을 원망하는데 생긴다, 인생은 세옹지마 재앙도 너무 슬퍼할 것 없고, 굴러 들어온 복은 기뻐할 것 없다고 하였다.

사람을 보는 지혜가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하다, 자기와 함께 일을 할 사람 윗 분이든 아래 사람이든지 함께 할려면 위에 선인들이 말씀하신 사람의 됨됨이를 보는 지혜가 매우 중요 한 것이다. 그것 잘못해서 어느날 후회스러운 일을 당하는 것을 요즈음 자주 보고 있다.

배신이란 것 사전에 보면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림’이라고 하였다, 그 믿음이나 의리는 누가 먼저 저버렸는지에 따라서 배신도 되고 그 반대로 복수랄까 그런 행위도 될것이다. 상대가 먼저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렸을 때 당하는 자는 믿음과 의리를 잃어버렸는데 그 잃어버린 자에게 배신 즉 등을 돌린다고 해서는 안된다.

배신이라는 것은 상대가 잘해주고 토라질 이유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당신이 싫소 하였을때 그것이 배신이다. 그배신의 표현은 지나치면 복수라는데까지 이르를수도있다.

최근에 전직 국가 최고위분들 옆에서 수십년을 함께했던 몇 분들이 지난날 재직시에 한일들이 문제가되니 과오를 뉘우치고 그 진실을 솔직하게 고백하였는데 누구 누구도 배신을 하였다고 하는걸 보았다. 그런데 내가보기에는 그 분들은 배신이 아니다 따라서 배신이라는 단어는 써서는 안될 것이다. 배신한자는 모셨던 윗사람지고한 권력자가 배신했으니 당연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 중 한분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슨 사건으로 감옥 생활을 잠시 하였고 그때 주군이라고 해야 할분은 거들떠 보지 않아서 주변사람들이 지나치다고 하였고 심지어는 그로인한 우울증과 극심한 생활고로 아내가 자살 했다는 데도 장례시에 돈 멏푼 부의금도 보내지 않았고 부하 직원시켜 조문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어느 종편 매체에서 들었다.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애쓴 사람을 그렇게 대우해서는 안된다, 항차 일국의 최고 권력자가 그런 사고(思考)를 가진자에게 수년을 함께한 부하직원이 상급자에게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지 그것은 배신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배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찬찬히 보면 그 동안 한 일들이 잘못으로 여겼으나 윗분이 시키니 안 할수 없는 일들을 한 것에 대한 양심 선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하라는 것을 그것을 저는 못하겠어요 할자는 아무도없다.

하기 싫었으나 윗분의 심경을 거역하지 못해서 한 것인데 지금 고백하지 않으면 그중 몇분은 10년정도의 감옥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 고약한 윗분을 감싸 주어야 한다는 논리로 오해하게 하는 말이다.

덕이 없는 사람은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 배신했다고 지칭되는 그분들의 주군들 덕인으로 보이지는 않아 염려스럽더니 옆에 도와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해진걸 보면서 사람을 보는 지혜가 새삼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게 한다.

사람은 덕이라는 그것이 무엇 무엇이란 것이 덕이다고 딱 뿌러지게 표현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없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머지않아 큰 후회를 낳게 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이다는 것을 새삼 알려주는 교훈으로 여겨야 할 것이며 배신자라는 말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