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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나라 되니 2) 달도 별도 보기 어려워.

별밤

잘사는나라 되니 2) 달도 별도 보기 어려워.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이제는 옛날이야기다.

나라가 가난할 때 한여름에 평상이나 멍석에 홑이불 한자락으로 배가리고 누워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모깃불연기에 때로는 캑캑 하기도하면서 그러나 모기에 물리기도 하면서 할머니 아버지가 이야기 해주시던 충신 효도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자랐다.

그때 그 하늘은 검은데 별들이 총총히 밖혀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멀리 한줄기 별들이 긴꼬리를 이끌고 한쪽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은하수라는 것도 보면서, 견우직녀 이야기도 들으면서 북두칠성이니 오리온좌니 가시오피아 하면서 꿈을 기르면서 지났는데 그 세월이 70여년이 지났다.

그 동안 내가 산 이땅은 너무나 변했다. 흔히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생길 시기에는 그랬을 것이나 내가 살아온 그 70여년은 5년이면 아니 3년만에도 없던 도시가 하나씩 생기는 세상에서 살며지났다.

그런 세상에서 지나고 요즈음은 주야가 없어진 세상이 되었다. 그대신 이제는 우리도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 잘사는 나라는 밤인지 낮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세상, 말로는 밤이라고 하나 각종 등이 대낮처럼 밝게 켜진 환경에서 살다보니 5, 60여년을 살아온 그옛날 사람의 생체리듬이 허물어져서 밤도 낮 같고 자도 잔 것 같지않고 대기오염 수질오염으로 살기 어렵다고 하더니 요즈음은 인공조명 빛 공해 소음공해에 또 별과 달 못보는 밤 생체리듬이 일그러지며 살고있다.

사람도 우주 자연의 산물인데 밤과 낮의 조화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동물로 인체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져서 사람이나 짐승들도 잠을 충분히 자야 건강히 살고 제게 주어진 모든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밤은 종의 생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 아이를 낳지 않을려고 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가는 것은 밤이 밤같지 않는 곳에서 살고있는 인간들의 세상과도 무관하지는 않다.

심도 깊은 휴식을 하지 못하는데 먹을 거리만 온갖 것 먹는다고 건강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우울증, 면역력 저하 등도 무관하지는 않다 별이 있는 밤이 없어진 것도 많은 영향이 있다.

밤이 있는곳에 살면서 밤에 별도 달도 보면서 낮에는 들꽃도 마당으로 옮겨 심고 상추씨도 뿌리고 그것 키우며 하느라고 일하고 밤에는 깊은 잠도 잘건데 그것을 못하고 살아가니 우리들이 이토록 삭막한 삶이 아닐까?

잘사는 것이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네…

*이 글은 10월2일 등록되었던 글입니다.

 

 

잘사는나라 되니 1) 삼촌 사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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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나라 되니 1) 삼촌 사촌도 없다.

세상만사는 거의가 명(明)이 있는가 하면 반드시 암(暗)도있다. 우리들이 어릴때는 가난하여 하루 밥세끼 먹을수 있는 집은 드물었다 아주 가난한 집은 죽 먹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는 집도 있었다.

추운 겨울에 어린것들이 속옷은 없고 무명솜 조금 놓아 만든 무명바지 저고리 아래위로 입고 책보자기에 싸서 등에 빗게로 걸머지고 등성 넘어 10리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교실에도 장작을 난로에 때서 떨지 않게 할려니 적당량에서 항상 부족하여 벌벌떨며 손을 호호불며 공부를 했으며 밤에는 호롱불 켜서 그 아래에서 책 읽고 숙제하고 하였다.

가난한나라 어린이로 태어나서 온갖 고생하면서 자라서 성인이 되고 그렇게 살았는 나라를 오늘 같은 나라를 만드는 동안 일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일요일 쉬는 것은 사치고 잠자는시간 말고는 일만하였고 심지어는 외국에 외화 벌려고 목숨 걸고 하는 일도 등등 잡다한 것들은 여기서 굳이 더 안써도 잘 알것이다.

요즈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고생 한거는 오히려 그럴수 있고 요즈음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여러 모습이 모두가 잘못하고 있는 것같이 보여지고 정상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때 보통 형제자매들 합해서 5, 6명이여서 그 형제들이 결혼하고 나면 삼촌도 4촌도 많았다. 조금 규모 있는 집은 한동네는 물론이고 옆집 뒷집에 구역을 차지하고 평상시에도 서로 도우면서 삼촌 조카 4촌들이 너집 내집 구분 하지 않고 의좋게 살았다.

그렇게 살았는 경험을 가진 나는 요즈음 보면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서 잘먹고 입고 아플때도 병원가면 거의 못 고치는 병이 없을 정도로 잘사는 나라가 되어서 좋다. 그러나 이제는 그와 같은 명, 좋은것이 있는가 하면 가난할 때 있었던 좋은 것들이 많이 없어진 어두운 세상이 되었다.

결혼도 안하고 살려고 하는사람이 자꾸 늘어가고 해도 자식은 하나 아니면 없어도 좋다고도 하고, 부모 자식도 심지어는 남처럼 여기고 사는 자들도 있다. 따라서 삭막해진 것도 많고 아름다운 동식물도 없어진 것이 많고 살아가는 것도 풍요로우면 다 행복해져야 하는데 불행해 진 것도 많다.

사람사는 세상이 동물과 거의 비슷하게 살아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그 옛날 아름답던 여러 것들을 너무 많이 버려서 아쉽기도 하고 이것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까지하였던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싶으다.

어쩌다가 이토록 삭막해졌고 또 앞으로 회복되기는 글렀고 더욱더 이런 것이 심하게 되어 가는것같아서 이런 나라에 내 자식들 그리고 손자손녀들이 살것을 생각하니 지금 우리들이 바로 세우는데 조금이라도 노력해야 할 것 같다만 너무 헝클어진 지금 쉽지 않을 것같다.

이런것들 투정이랄까 푸념이랄까 이것저것 주서서 20회정도 띄엄띄엄 쓸 것이다.

아이데리러 가야 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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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데리러 가야 한다는데…

아침에 안개로 앞이 잘 안 보이는 날이다. 블로그에 글 한줄 쓸려고 인터넷에 들어가서 보니 전날 한때 ‘특검복덩이’라고 칭하던 장시호의 선고공판이 있었는데 검찰의 구형보다 높게 2년 6개월이 선고되었다는 글과 그가 한말이 마음에 캥긴다.

“아이 대리러 가야 하는데 내가 어디로 도망가겠어요”하며 애타하는 세상 때 그리 묻지 않았는 그러나 법을 여겼는 가냘픈 여인, 한 어린아이 엄마가 하는 말을 보았다. 나는 왠지 덩달아 마음이 짜안하여 이글을 쓴다.

많은 사람이 보아주지도 않고 그리 깊은 공감도 얻지 못하면서도 내 마음 풀려고 하지만 그러나 이것도 내 남은 생동안 이땅에 함께사는 이들에게 조금의 보탬이 될가 싶기도 하여 이렇게 블로그를 하고있다.

한 어린아이 어머니의 진정어린 순수한 말이다. 한 아이는 엄마가 오늘은 왜 안 오는지 어리둥절 할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데리러 왔을 때 “엄마는…?” 이라고 물을 것이다.

그때 그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것이다. 바른대로 수갑차고 감옥에 갔다고 하지는 못하고, 해본들 그게 무슨 말인지도 알지 못할 아이다.

엄마는 끔직이 사랑하는 아이이고, 아이는 세상에서 내 엄마만 있으면 행복하여 방실방실 읏는다. 그런 엄마와 아이였었다. 그런 순수한 관계가 오늘은 허물어지고 엄마도 아이도 한없이 슬픈 날이다.

​그 어린것도 덩달아 벌을 받고 있는것이다. 어머니 장시호는 벌을 받을 짓을 했으니 받지만 그 어린것도 그렇게 해도 될까? 그것이 무슨 잘못을 했나 언제 돌아 올런지 모를 엄마를 그리며 울고 또 울고… 엄마장시호가 2년6개월 감옥생활하고 아이도 엄마없는 이땅에서 그 긴기간을 살아야한다.

그것은 엄마가 사는것보다 더힘든 벌이아닐까? 그것을 생각하니 내 풀에 마음이 짜안해서 눈가가 젖을려고 한다. 엄마와 아기 둘을 2년6개월 동안 즉 두명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잘 안다. 요즈음은 안 그렇지만 며느리가 늦게 늦둥이를 나아서 아내와 나는  살던곳을 떠나 이사까지 와서 도와 주느라고 2년 넘도록 며느리와 함께 키웠고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고 늦둥이 손자도 행복하게 자랐다.

그 길다면 긴 세월 동안 우리와 있으면서 한번도 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이 키우고 컸다 그것은 그만큼 지도 행복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얼굴만 맞대면 방실방실 우리도 우울할때도 그놈만 보면 다잊고 즐거웠다. 그런데 엄마와는 그몇배로 더 하는것을 보았기에 말이다.

며칠 전에 우리집에 지들 가족 넷이와서 함께 점심을 먹고 갔는데 아내와 나도 아파트 일층까지 내려가서 안녕하며 손을 서로 흔들었는데 이제 4살된 막내는 지 옆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고 우리가 안보일 때까지 내다보고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갔었다.

그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사랑으로 큰 자식은 사랑할 줄도 안다고 저것이 어찌 저럴줄 알겠나고. 그 귀엽고 간절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눈에선하다.

그런 아기가 집에서 울고 있을것이다. 못난 이모만 믿고 하라는데로 하고 따라다니다가 안타깝게 되었고 특검 사람들에게 그때 상세하게 말한 것은 뇌우쳤기에 그렇게 했다 벌은 사람을 고통 줄려고 주는것이 아니고 뉘우치게 할려고 벌을주는 것이다.

뉘우치는 것을 보았고 지금 그렇게 살고있으면 인정해주어도 되는 것아닐까? 검사가 구형한 것을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요즈음 보면 법원판결을 잘못했느니 어느 기관과 대적하느니 하는 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그런 맥락은 아니다. 다만 죄는 밉지만 인간은 미워 하지말아, 또 뉘우친 사람은 그것을 알아주자고 하는말이다.

아직도 안개는 걷어지지 않고 그대로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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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 마음이 아름답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따라서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고 남의 즐거움을 이해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루의 일상이 고달프면 세상은 잿빛으로 보이고 마음도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이 우중충 해지는데 그런 시기에 처한 사람에게는 활짝피어 아침 이슬먹고 있는 장미도 예뻐보이지 않는다.

흔히들 아름답게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고 한다. 그러면 건강에도 좋고 일도 잘된다고 하는 말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다 헛소리다. 마음이 우그러지도록 주변이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는다는 것은 어렵다.

지금부터 25년전에 불행한 일을 당해서 해매고 다니며 세상이 싫은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그때는 차를 몰고 정처없이 기약없이 휴대폰도 끈채로 다닐 때 세상은 온통 잿빛속에서 수년을 해맨 적이 있었다.

지금 말썽 많은 성주에 어느 작은 절에가서 텅빈 법당에 홀로 앉아서 부처님에게 절을 수없이 하며 나는 한없이 울었다. 한시간정도 그러다가 기진하여 그냥 업드려 잠이 들었는데 주지스님이 와서 깨웠다.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하고 하룻밤을 절밥먹고 자고 다음날 또 정처없이 가고를 하며 마음을 달래느라고 애쓴적이 있다. 그때 나는 참 억울하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정말 회사직원들에게 존경 받으며 나는 잘했다고 자부하고 모두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지났다. 그러나 내게 닥아온 불행을 내가 감당하기는 너무 벅찼다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고 많이 해매고 다녔다. 그때 봄이오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닥아 왔지만 그전에는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아름답고 그때마다 바뀌는 주변의 자연들 그리고 내 공장에 신입직원들 잘 몰라서 한 작은 실수도 그럴수 있다고 귀엽게 보였던 나였는데 그런 기억도 없고 세상이 너무 싫었다.

흔히들 죽어봐야 저승을 알지 하는데 나는 죽을 만큼의 불행을 겪어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 심정을 이해 할수가있다 아울러 그런 경험에서 터득한 내 지금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이나라가 세계에서 어느정도 살고 있는 나라인지를 잘 알수가있다.

사람은 좌절과 절망을 통해서 안으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영글어지는 것이다. 아무 고뇌도 없이 오랜 세월 편하게 산사람이 그런거 안다는 것은 어렵다.

요즈음 온천지가 아름답다 앙상하던 마뭇가지는 6월이되니 푸른 잎으로 뒤덮여 졌고 아파트 울타리에는 장미가 만발해서 너무 아름답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 마음도 편하고 아름답기에 그렇게 보이는것이다. 도둑의 심뽀로 지나는 사람에게 지금 저장미가 아름답게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동안의 어리석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 아름다운 계절에 김춘수님의 꽃을 읽어보며 이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본다.

그나저나 비가 오지않아서 타들어가는 논밭들을보니 안타깝다. 어재부터 올 것이다고 하던비가 아직도 찌뿌리고 있기만하지 안오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어찌 이런나라가 되었나, 이런 세상이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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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런나라가 되었나 이런 세상이되었나.

참 황당한 사건이다 잠시의 시끄러운 소리로 짜증이 나서 아파트외벽에서 외줄에 메달려 일하는 작업자 밧줄을 끊어서 죽게 했다니, 또 바로 그다음날 대학교수 한사람은 자기에게 전달된 소포를 풀었다가 사제 폭탄으로 큰 부상을 입고 다행스럽게 죽지는 안했다고 한다.

세상에 어찌하다가 이런나라 이런 세상이 되었나? 너무 황당한 좀 특이한 상식으로도 이해가 되지않는 일들이 요즈음 보면 심챦게 일어나서 내가 비정상이 아닌가 내 사고의 기준을 고쳐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높은 건물에 줄하나에 매달려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지러워서 현기증이 날곳에서 작업을 단지 자식 그리고 생활을 위해서 매일이다 싶이하는 험한 작업을 하는 사람 보통인들은 그 모습을 보기만해도 안타깝기도 하고 안 스럽다

얼마전에 우리아파트에도 도색을 다시 하느라고 물 청소를 하고 칠하고 하였는데 줄에 매달려서 작업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보고 있다가 마침 내 앞창에 왔길레 박카스한병을 주었다 그리고 일당이 얼마나 되나고 물었더니 한20만원된다고 하였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 사람은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이 거칠다는 말이있다. 그러나 그사람의 말과 행동이 너무나 사근사근한 것에 내 고정관념이 얼마나 독선적이였구나 하며 조금은 미안하였다.

그런데 생명을 잃을 것인 데 생명줄을 끊어버린다니 그 나쁜자 이때까지 무얼 먹고 어떤곳에 살았고 누구와 무었을 하며 사는 놈인지 세상에 이럴수가… 5남매와 아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쓴기사를 보니 글쎄 아이들이 울지않는다고 하였다 엄마가 너무 슬퍼 할까봐 울기를 멈추고 있다는 어린것들의 말이 너무나 가슴 아리게 한다.

또 연세대학교수에게 폭발물을 보낸자는 그 교수의 강의를 듣고 논문을 써서 석사가 될려고 하는 지식인이라고 하였다. 무얼 배웠고 어떤 가정에서 그런 놈이 글쎄 대학원이라는 최고 지성들이 연구하는 곳에 다니게 되었는지 자기가 강의를 받고있는 교수가 아무리 밉더라도 할짓이 있지 폭탄을 보내서 죽거나 병신이 되어도 좋다는 심산으로 그런짓을 했다는 것이 아닐까?

무슨 변명을 해도 그것은 정상인 아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막살고 있는 옛말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로 표현될 자도 그런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어찌 이래되었나 이 나라가 어찌 이래되었나 역사를 보면 나라 지성인 또 지도자의 기준이 도덕과 품행을 기준으로 수천년을 지났다. 우리의 학문기준은 맹자 논어 사서 삼경 노,장자학 등 인간본연의 자세가 어느 정도 반듯하냐가 지도자의 덕목으로 삼고 지났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갖춘자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며 이나라 지도층을 이루고 있나 그렇지 않다 많이 달라져있다. 모든 것이 경제논리에 입각해서 그것에 연연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있다.

따라서 그것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도덕은 감추어지고 인간성은 비뚤어진 행위를 해도 그것을 극대화시키면 모든 흉허물은 묻혀지는 세상이 되어서 이런세상이 나라가 된 것이 아닐까? 참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왜 사나하는 말이 있는데 위에 두 사건은 최근에 일어난 한 예이다. 이보다 더한 일을 저지르고 그와 유사한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건물을 만든 것은 건축자재와 사람들의 기술이고 첨단 장비를 만드는 것은 첨단기술과 역시 첨단기술로 만들어진 부품의 결합이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교육이다 그리고 반듯하고 그런 사람들을 만드는 세상을 가질려면 10년도 안되고 적어도 반세기 50년은 되어야될 것이다 그런데 지난동안 이토록 망가트려놓은 나라, 사람이사는 세상을 다시 만들자면 하루속히 우리교육부터 바꾸어야 할것이다. 전국민 학사만들기 교육 돈많이 벌면되는 교육으로 이꼴이되었다.

 

 

조상님들 산소를 부관참시 한다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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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들 산소를 부관참시 한다 말인가?

오늘은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를 한다. 조상님들 산소를 이제는 파내어서 화장해서 버려야 한다고 전화를 받았다. 며칠전 동생에게서 조부님 위 어른들 산소를 모두 버리겠다고 큰집 형님이 연락이 왔는데 어쩌면 되겠어요 하였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아버지께서 이소리를 들으시면 벼락이 떨어질 소리다.

고향에서는 알아주는 명문집이었다 역사에 나오는 태종왕님 둘째 처남 무자질자(無疾)한분 손자대 어른으로부터 한동리에 100여호가넘게 살았고 그 많은 분들의 묘지가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내 조부님까지도 그곳에 산소가 있다. 우리집은 증조할아버지대에서 작은집, 할아버지대에서 또 작은집, 아버지대에서 또 작은집이다. 그런데 장손인 8촌형께서 동생에게 그렇게 의논이 왔다.

큰집의 많은 형제들과는 그렇게 합의가 되었다고 하면서 내 동생의 말은 큰집에서 하자고하면 우리는 막내집인데 반론할 수가 없고 또 지금까지 해마다 벌초 묘사 때문에 속썩이는 것들을 경험하여서 큰집형님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그래 그거 좀 생각해보아야 하겠는데 하였다 그러나 그후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이것은 현대판 부관참시가 아닐까?

옛 문헌들 보면 죽은지 몇대가 지나고 천하에 나쁜자로 낙인이 찍히면 시체를 파내어서 참시를 하였다는 것 보았는데 그것을 하자고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죽은 부모를 화장한다면 천하에 나쁜놈으로 여겨 임금이 큰벌을 내렸다. 그만큼 해서는 안될 것이었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요즈음은 공공연하게 화장을 하도록 된 세상이 되더니 이제는 증조부모 고조부모 조부도 등등 이미 매장된 묘지를 파내서 뼈조각들을 찾아서 불에 태워서 버리고 묘터의 흔적조차 없애버린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을 공공연하게 해주고 돈 받는사람이 있고 그렇게 해버리는 후손들이 그곳에는 있다고 한다. 요즈음 어느 문중이고 자손들 몇 명 안되는데 그나마 도시에 또는 외국에 살고있는 세상이 되어 아버지 할아버지도 아닌 그 윗대 조상산소 때문에 곤란을 겪고있는 집들이 많다 그리고 벌초도안 하고 상석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묘지도 많고 해마다 벌초 때문에 우리도 말들이 많았다.

뛰어난 자식 낳고 후손들 잘되라고 산소가 좀 크고 높은 산속 높은곳에 있어서 요즈음은 몇 안되는 후손들이 관리 하기는 버겁기는 하다. 그래서 큰집형님이 죽기전에 이렇게 괄시 받는 어른들을 내가 해결하겠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그 형님은 올해 8십 두세살정도 되었다.

살아있는 늙은 부모도 온갖 설어움 느끼며 지나고 그러다가 죽으면 바로 화장해서 흔적없이 버리기도하고, 사방이 에이4 용지만한 통속에 뼈가루를 넣어두기도 하는 세상, 그것조차도 손자대에 가면 일년에 한번이라도 갈자 있을지 몰라도 멀리있거나 또는 세계가 이웃처럼 된 세상인데 유럽이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 가서 산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으면 그것으로 이승에서의 모든 정과 연은 다 끝인 세상이 되었는데 증조부모 고조부모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데 고향에 계신 큰집 형님 많은 형제들과 이문제 때문에 마음상한이야기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생전에 이 결정을 하신 것 같다. 그렇지만 조상님들 산소를 세상이 달라졌다고 부관참시라는 것을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차라리 벌초하기 묘사지내기 버거우면 그냥 두는게 그보다는 낳을 것이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그냥 두세요 하였다. 이래도 저래도 돌쌍놈들이 틀림없는데 그냥 두어야 할것같다. 어차피 죽으면 흙속으로 돌아가는데 당시 풍습으로 그리된 어른들 지금 풍습 따라 살고있는 후손들이 윗대 어른들이 하신 것을 거부하고 그렇게 한다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 방식대로 살아온 심정은 많이 불편하다 그렇다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가서 벌초하고 묘사모시는 것도 하지 못하면서…. 지들끼리 모여서 일년 수십번 조상님 산소보다 몇배나 높은 산에, 먼곳에 희희닥거리며 등산이라고 다니고 요즈음 주말이면 이틀씩 반드시 놀면서 일년에 한번 가서 봉분 정결하게 하는 것이 싫어서 아예 수대로 내려온 산소를 파드배서 뼈 몇조각을 불태워서 버린다고 하니 이렇게 된 세상을 원망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야하나 싶은 생각이다. 오래도록 살기 싫어지는 일들이 자꾸 늘어나기만 한다.

가정의달 감사의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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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달 감사의달에….

이제는 바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도 감사의 글을 써야할 것 같다. 열심히 일하며 주변 돌보며 살고있다. 아버지에게도 잘 할려고 애쓰나 내가 지들만할 때 아버지에게 마음 쓰는것에 비하면 좀 섭섭 하다 그러나 그렇게 비교하는 것은 내가 욕심이 많은 것이다고 자신을 타이른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아버지도 내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고….

이달은 우리 집은 행사가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아내생일, 우리집의 행복동이 막내 손자 이제 36개월이 되는날도 26일이다 등등 바쁘고 따라서 돈도 들어간다. 29일에는 귀국하고 몇해 동안 벼르던 여행을 외국으로 가자고 하는데 기어코 아내가 고집 부려서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에 갈려고 아이들이 준비를 해두었다.

사람은 자주보고 연락을하고 하여야 정이 식지않고 서먹했던 관계도 사라지는데 귀국하면 10년동안 소홀 했던 그래서 느을 미안했던 것들 많이 할거라고 마음먹었으나 와서 지나보니 그 또한 그때 마음처럼 한 것이 없다. 몇 않되는 사람들 내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던 주변에 사람들과도 자주 보지 못하고 연락하지 못하고 지나고있다. 예전 같으면 한 울타리에 살고 있겠지만 요즈음은 어쩌다 보면 일년에 한두번 볼수도 있는 내 동생들께도, 처가 쪽에도 못난 형부 끔찍히 마음 쓰는 처제 그들 내외 건강히 잘 있냐고 하여야 할건데 하면서 올해도 그냥 지난다.

바로 아래 동생은 나보다는 3살 아래이고 돈도 많이 벌어 기업체도 가지고 잘 살고 있다. 그 다음 이제는 모두 할머니가 된 두 여동생에게도, 그리고 나보다 스무살이나 적은 막내, 중간 셋째는 군에 장교로 제대해서 야망이 너무커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큰물에 놀고 싶어 허둥대는 놈도 있다.

부모님 선생님 나에게 도움을 준 윗분들에게도 마음보내자, 아들딸 동생 등 나를 위해서 끔찍히 애써준 아랫사람들께는 받기만 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나를 건강히 살도록 마음써 주는 젊은제자 직장후배 친구에게도 마음 써주자. 위에서 받은 사랑만 감사히 여기지 말고 내 옆에서 나를 아껴준 나의 지팡이들에께도 감사하자는 생각이 든다 전화로 나마 연락하고 건강히 잘 지나라고 그리고 열심히 살자고하자.

요즈음은 너무 지나치게 쓸대 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 이야기를 블로그에 많이 쓴다 이렇게 된것 모두 블로그 친구님들 배려라 여겨 지금 감사의 말씀드린다. 격려해 주셨던 분들께도 일일이 전화 드리고 싶으나 번호도 모르고 이 지면을 통해서 “너무 감사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는일들 모두 이루십시요” 고 말씀을 드린다.

때로는 쓸쓸해서 쓴 글도 있고 세상 살아 가는게 너무 답답해서 투정하는 이야기도 있다. 모두들 너그러이 봐 주시고 항상 아껴 주신 것 너무 고맙게 여긴다. 그리고 또 하루에도 수많은 글 모두다 보시고 검토하여 많이 보았으면 싶은것 오래 머물게 해주시는 운영자님께도 심심한 감사 드린다.

이 싱그러운 달 5월 가정의 달, 감사 표시를 하는 달이라고 하는 달, 이땅의 모든 식물들 점점 싱그러워 저서 멀지 않아 푸르고 울창한 숲을 이루듯이 모두들 건강하게 우리라는 커다란 무리되어 힘을 합해 건강한 사회가 되고 부강한 국가가 되었으면 한다. 나 또한 그리 되도록 작은 힘이지만 쉬지 않고 힘써 볼려고 한다.

내일은 대통령이 선출되는 날이다. 짧은 선거기간이었지만 흉측스러운 말도 많았고 마음상한 언행들이 많았지만 모두 관용하여 새 출발하는 정부 마음껏 도와서 5월의 자연만큼 아름다운 나라 되기를 우리모두축복하자.

*요즈음 내블로그에는 스팸뎃글이 너무많이 달려서 걱정입니다. 일본어로 영어로 쓴 뎃글인데 비아그라라는 단어도 있고 그런 댓글이 며칠전에는 글 등록할려고 보니 198개나 와 있어서 기가막혀 닫아버리고 일이 있어서 다녀 왔는데 오늘보니 또 337개나 몹쓸 뎃글이 또 달려있어요 이거 야단 났습니다. 보통  20개정도의 스팸이 달렸는데 이럴 때는 하나 하나씩 처리해야 하는지 일괄처리하는 무슨 방법이 있는지 번번이 운영자님께 말씀 드릴수도없고….

2017년 5월 8일. 산고수장.

 

벗꽃이 만발한 4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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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꽃이 만발한 4월에…

올해도 벌써 4월 중순, 이곳에도 봄에피는 꽃이 만개한 무르익은 봄이 되었다. 곧 장미의 계절이라는 5,6월이 올 것이다.

며칠전 새벽에 화장실 가고싶어 잠이 깨어보니 넓은 창으로 달빛이 들어와서 방안이 환 하였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둥근달이 보이고 그 옆에는 커다란 별도 보인다. 아, 보름이구나 연일 구름도 많고 또 요즈음 괴롭히는 먼지들 때문에 멀리 볼수는 없었는데 오늘은 청명한 날이 될 것 같다.

거실에서도 방안에서도 시야가 탁트여서 멀리 볼수 있고 더 좋은 것은 임진강 흐르는 물이 보이는 그 경치를 보고 산 집이다. 참 행복한 집이다 큰 자식을 낳을려면 집 앞 시야가 적어도 수십리는 트여야 한다고 하시던 아버님 말씀을 생각하며 산 집이다. 하기사 이 나이에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만…

어제 보니 아파트 경내 화려하게 핀 벗꽃들 목련꽃들이 뎅강 뎅강 짤려 나가고 어떤 것은 커다란 가지도 짤려서 동댕이 쳐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사 나무들 전지한다고 그런 것이다. 진작 겨울이 끝날 즈음 했으면 나무도 수고를 덜하였으며 애처롭게 나 딩구는 꽃들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을 하는 생각을 하였다. 세상에 모든 것은 하여야 할 때가있다.

올해의 봄은 예상에 없던 대선이 있게 되어서 요즈음 연일 시끄럽다. 너도나도 대통령 되겠다고 머라카노, 열 세명이 등록 했다나ㅎㅎ. 시끌시끌한 날의 연속이다 어서 5월 9일이 지났으면 한다만 그것이 지난들 지금보다 조용해지겠나? 세상은 더 시끄러워 질 것 같다만 그것도 사람들 인생살이처럼 그렇게 하면서 지나갈 것이다.

언제 태평성대구나 한 생각으로 산적이나 있었나, 그렇게 티격태격 하면서 걱정해가면서 살았지만 그래도 이제 우리나라도 좋은 나라가 되었다. 돈이 없어 작은 병은물론 큰병도 병원 못가고 자랐으나 살다 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

옷이나 신발 하나 사면 그것이 떨어져서 너덜너덜 하도록 입고 신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커서는 쥐꼬리 만한돈 월급 받아서 아이들 키우고 부모님 모시고 사느라고 그저 아끼고 살아가느라고 그 흔하게 먹는 보약한재도 안먹고 지났는데 그게 지금 보니 이 건강이 유지되는데 일조를 한 것 같다. 못 먹고 지나서 건강하다는 생각…ㅎ, 좀 우습다.

그러고 보니 참 좋은 나라가 되었다 요즈음 신발 한켜레 쌀 한가니 값 주고 산 소위 유명메이커신발도 떨어지기는커녕 실증 나서 안 신고 버리는 것이 대다수이고 옷도 유행 지나서, 입기 싫어서 버리는 것 내집의 경우도 부지기수다. 폐품 버리는 날 동마다 버려진 폐품들 보면 멀정한 물건 새것 같은 가구들, 아이들 유모차, 자전거, 방안에 두고 요긴하게 쓰던 소품들도 전자제품도 많이 버려져 있다. 몇 번을 서비스센타에서 고쳐 쓰는 우리집 것보다 훨씬 뒤에 나온 새것 같은 것들도 많이 보인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귀가 멍멍해서 동내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같더니 의사가 들여다 보면서 새까만 귀지를 끄집어내주었다 갑자기 시원하고 말이 청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돈은 1400원을 주었다. 집에서 끄집어내는 기구로 잘못 수셔서 아프기도 한적이 많았는데 그럴 필요도 없다.

먹고 싶은 것 찾아 다니며 먹을수 있고 볼거리 볼려고 외국에도 마음대로 다니는 사람들로 곂치는 연휴마다 맛집이며 공항은 북새통이고 맛있는 것 너무 자주 많이 먹어서 살 빼느라고 고민하는 사람이 전체 반이나 되는 이런 좋은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나라가 되었는데도 어느 통계에서 보니 나는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세계 평균은 고사하고 하위라고 하였다. 유명한 분들이 말한 행복은 자기 마음속에 있다 그것을 끄집어 내서 나는 행복하다고 여기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고 그놈의 돈 벌어도 더 벌어야 되고 남이 살아가는 것 보면 다 잘사는데 나만 그렇지 않는 것 같다고 여기니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밖앝을 보니 꽃도 많이 피어있고 새파란 연약한 잎사귀들이 점점 커지고 있는 풀들 나무들이 너무 예쁘다. 이 찬란한 봄 곧 무성해지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우리며 이래도 되는가 생각해보자.

 

 

살아갈 공부는 이제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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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공부는 이제 시작해야.

올해도 수많은 대학 졸업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따라서 새롭게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젊은이 일거리 찾느라고 고민 하고 있다.

어느 시대고 그런 것은 다 있었다. 우리들이 젊었을 때도 할일 없어 빈둥대는 젊은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다 살았고 아들 딸 낳아 공부시켰고 들판에 자지 않고 집이라고 만들어진 속에서 잠자고 북쪽 공산당 놈들이 쳐들어와서 전쟁도 하고 경부 고속도로도 만들고 공장도 만들고 일할 것 찾아 독일 광부로 간호부 하러 가기도 하고 살았다.

사람 사는 곳에는 찾아 나서면 일거리는 구석구석에 있다. 요즈음은 나라간에 국경이 없어진 세상에 젊은 패기로 저 먼곳을 내다보면 할일이 많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어서 세계구석구석을 들여다 볼수있고 다행이 세계어라는 영어를 20여년 배워서 의사소통도 할 수 있는데 좁은 나라 안에서 일거리 없다고 투덜대고 하지 말아야 한다.

대기업에 취직 되어야 한다고 머리 싸매고 시험준비하고, 한편에는 취업율 높일려고 기업들에게 공장 지어라고 하는데 그것은 공염불이다. 내가 잘 할수있는 능력은 다른곳에 있는데 머리만 싸매면 머하며, 또 이익이 나지 않을 곳에 애국 할려고 투자할 기업가는 없다. 그런 생각이 있어서 한다 한들 나중에는 그것이 큰 재앙이 될수도 있는데 하지 않아야 한다.

또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절박감 없는 자에게 일거리 만들어주는 기업가도 없다.서양속담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고 동양속담에는 ‘버는 자랑 하지 말고 규모있게 쓰는 것을 익혀라’는 말이있다. 년봉이 중소기업보다 좀더 많이 받고 남 보기에 뻐기고 싶어 너도나도 모두가 대기업에, 철밥 통이라는 공무원, 공기업에 취업하고 싶어하는데 이것부터 버려야한다.

예전에 학교처럼 어떤분들이 교육이라는 사명감으로 만든 학교가 아니고 인생이먼지 어찌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를 가르치지 못하는 장사꾼 심리로 만든 대학은 돈 투자하여 이익 남기는 주식회사와 다를 것 없다. 요즈음  대학들이 거의가 그런 학교 인데 거기서 수학한 젊은이들이 졸업하고 빨리 돈벌이만 잘하면 최고라고 가르친대학을 나왔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자기를 모르고 잘된 사람만 바라보는 허황된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진전은 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그런 구별 잘못해서 한동안 많이 좌절하고 곤궁한 삶을 살았다 지금 그런 경험을한 경륜이라는 큰 재산을 가지고 시대상 등을 고려해서 근과 검에 이골이 나서 경제적으로 큰 재산 없이도 잘 지나고 있다.

그거야 늙은이기에 하는 소리니 귀담아들을 것 없지만 정말 철밥통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에 목매는 것, 그래서 그 많은 세월을 허비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기회 때마다 이야기 하지만 내 가진 것만큼 알맞은 곳 택해서 일 하면 멀지 않아 새로운 더 좋은 길이 보이고 그 길로 가면 곧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시대 잘 만나서 이때까지 나라가 감싸주는 세상에서 보호 많이 받고 컸고 잘사는 부모 보호 속에서 이 만큼 컸는데 이제는 저 높은 절벽에서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 먹고 자라서 넓은 바다 에서 홀로 살아야 하는 갈매기 새끼처럼 독한 마음먹고 세상을 보고 용기내어 절벽에서 뛰어 내려야 할 것이다.

자랄 때 온실에서 자랐으니 이제 장성해서라도 모진 고통은 아니라도 배도 곺아 보고 먼길 걸어 발도 부르터져 보고 타인에게 괄시도 받아 보면 거기에서 새로운 인생이 보이고 일거리가 눈에 보일 것이다. 세상에는 학교 공부로만 잘된다는 것 말고도 성공할 것이 많다.

그럴려면 어찌해야 되느냐? 여행을 떠나자 조촐한 준비해서 비행기표사서 중국 척박한지역 스촨성이나 네팔 희말라야 산 밑에서 그산 때문에 그 산을 이용해서 힘들게 사는 것 보면서 내가 지금껏 살아온 것과 비교해보면서 성찰을 해보면 내가 해야 할 일 그리고 길이 보일 것이다.

인간은 처절한 고뇌 없이는 길이 열리지 않는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 나보다 잘 된 사람들의 지난날을 곰곰히 알아보면 나보다는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이 보여야 나도 남들과 같은 대열에 끼일 수 있다.

 

 

 

 

풍수라는 것 믿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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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라는 것 믿어야 할까?

옛날이야기다. 어느 부자집에 손님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집 며느리는 손끝에 물 마를 시간 없이 밥해서 상차려 들이고 술상 차리고 너무 힘겨웠다.

어느날 한 중이 시주를 청하려고 왔다 며느리는 쌀을 한 바가지 퍼주면서 집에 손님이 너무와서 참 힘든다고 하면서 안 오게 할수 없을가요? 하였다. 중은 조금 망설이더니 따라오라고 하더니 뒷산으로 데리고 가서 한곳을 가리키며 여기 돌 기둥을세우라고 하였다. 시키는 데로 하였더니 얼마 안가서 그 집이 망했다따라서 손님은 오지 않았다.

그 뒷산이 자라 목혈인데 거기다가 돌기둥을 세우니 자라가 모가지를 들수가 없으니 망할 수 밖에 없다. 예부터 내려온 이야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터를 보고 좌향을 정해서 짓고 묘자리는 잘못 쓰면 큰 화를 입는다고 여기고 여유있는 집들은 중요시 하는 것 자주 본다.

제비가 와서 집을지을 때 보면 짓기도 편하고 드나들기도 편한 들 바로 옆집에는 안 짓고 동네 중앙에 있는 집에도 짓고, 우리조상들은 저 먼곳 앞산과 옆 언덕도 참고하고 좌향을 보느라고 패철 들여다보고 옆집과 나란하게도 아니고 틀어서 짓고 하였는데 나는 어릴 때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자랐다. 뒷산의 지형도보고 심지어는 지하에 물이 흐른다고 하시면서 그것은 피해서 지어야 한다고 하셨다.

조선시대 학자 중에 풍수론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홍만선이라는 분이 <산림경제>라는 책에서 밝힌 집터의 풍수론에 보면 집터가 좋다는 곳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곳이 좋고 그 반대면 부자는 못되나 부귀는 누린다. 또 앞이 높고 뒤가 낮으면 집안이 망하고, 뒤가 높고 앞이 낮으면 집 짐승이 늘어난다, 움푹 들어간 곳은 가난해지고 평평해야 한다는 등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데 무식한 내가 쓰기는 버겁다.

다만 사람도 자연 속에 있는 한 개체이니 자연과 조화롭게 잘 맞추어 살면 편하게 될것이다는 것으로 여기면 될 것 아닐까 한다. 그런가 하면 요즈음 허허벌판인 논이나 밭 심지어는 묘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어서 그 위 백세대도 살고 큰 단지는 1000여세대도 지어서 살고있다.

즉 현대과학적인 면에서 보면 풍수를 본다는 것은 웃기는 풍습이고 또는 미신이다고 할수있다. 그렇지만 강가에 대단지 아파트는 물안개 때문에 습도문제로 질병과 관련이 있고 차들이 많이 다니는 대도로 옆에 있는 아파트들보면 소음 때문에 차벽을 높게 설치하였으나 그 소리가 완전차단이 안되고 자동차들 배기가스로 건강에 해롭다. 거기다가 풍수설까지 대입시키면 어찌될까 싶으나 그래도 빈집은 없고 사람들이 다 살고있다.

그런데 예전에 없던 흉측스러운 병들이 많이 생기고 그로 인해서 고생을 오랫동안하고 따라서 그것 고치는 병원도 아주 많이 생기고 하는데 그중에 그런 환경 무시하고 지은 집에서 살아 그렇게 되는 현상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즉 풍수는 사람사는 환경을 보는 것 아닐까?

수 백년을 이어져 살고 있는 농촌 동내를 잘 보면 대개들 약간의 거리 차이는 있어도 배산임수 인 동내이고 문외한이라도 보이는 것이 있다. 그 중에 저 집은 싶은 집은 자손들이 잘 된 집이다.

농촌에 사람 사는 환경 즉 앞에 큰 산이 막혀 있는 곳은 음지여서 일조량이 적을 것이고 지하에 수맥이 흐르는 곳 위에는 땅 마를 날이 적을 것이고 위에 언급한 것들처럼 남향이고 평지고 집 뒤가 약간 높은곳 보기만해도 살고 싶은집이 있는가 하면 보기에도 으시시해 보이는 집이있다.

따라서 아무리 현대이고 풍수니 하는 것 따를수 없는 세상이지만 아파트도 지형지물도 보고 요즈음 도시 조화도 중요시 하는데 그런 것도, 또 집 에서 앞을 내다보면 경관도 좀 괜찬은지 보고 구입해서 살면 좋을 것이다. 옛말에 저 멀리까지 시야가 확 트이고 밝은 집에살면 큰 인물이 난다는 말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