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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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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 마음이 아름답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따라서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고 남의 즐거움을 이해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루의 일상이 고달프면 세상은 잿빛으로 보이고 마음도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이 우중충 해지는데 그런 시기에 처한 사람에게는 활짝피어 아침 이슬먹고 있는 장미도 예뻐보이지 않는다.

흔히들 아름답게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고 한다. 그러면 건강에도 좋고 일도 잘된다고 하는 말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다 헛소리다. 마음이 우그러지도록 주변이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는다는 것은 어렵다.

지금부터 25년전에 불행한 일을 당해서 해매고 다니며 세상이 싫은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그때는 차를 몰고 정처없이 기약없이 휴대폰도 끈채로 다닐 때 세상은 온통 잿빛속에서 수년을 해맨 적이 있었다.

지금 말썽 많은 성주에 어느 작은 절에가서 텅빈 법당에 홀로 앉아서 부처님에게 절을 수없이 하며 나는 한없이 울었다. 한시간정도 그러다가 기진하여 그냥 업드려 잠이 들었는데 주지스님이 와서 깨웠다.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하고 하룻밤을 절밥먹고 자고 다음날 또 정처없이 가고를 하며 마음을 달래느라고 애쓴적이 있다. 그때 나는 참 억울하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정말 회사직원들에게 존경 받으며 나는 잘했다고 자부하고 모두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지났다. 그러나 내게 닥아온 불행을 내가 감당하기는 너무 벅찼다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고 많이 해매고 다녔다. 그때 봄이오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닥아 왔지만 그전에는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아름답고 그때마다 바뀌는 주변의 자연들 그리고 내 공장에 신입직원들 잘 몰라서 한 작은 실수도 그럴수 있다고 귀엽게 보였던 나였는데 그런 기억도 없고 세상이 너무 싫었다.

흔히들 죽어봐야 저승을 알지 하는데 나는 죽을 만큼의 불행을 겪어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 심정을 이해 할수가있다 아울러 그런 경험에서 터득한 내 지금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이나라가 세계에서 어느정도 살고 있는 나라인지를 잘 알수가있다.

사람은 좌절과 절망을 통해서 안으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영글어지는 것이다. 아무 고뇌도 없이 오랜 세월 편하게 산사람이 그런거 안다는 것은 어렵다.

요즈음 온천지가 아름답다 앙상하던 마뭇가지는 6월이되니 푸른 잎으로 뒤덮여 졌고 아파트 울타리에는 장미가 만발해서 너무 아름답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 마음도 편하고 아름답기에 그렇게 보이는것이다. 도둑의 심뽀로 지나는 사람에게 지금 저장미가 아름답게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동안의 어리석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 아름다운 계절에 김춘수님의 꽃을 읽어보며 이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본다.

그나저나 비가 오지않아서 타들어가는 논밭들을보니 안타깝다. 어재부터 올 것이다고 하던비가 아직도 찌뿌리고 있기만하지 안오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어찌 이런나라가 되었나, 이런 세상이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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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런나라가 되었나 이런 세상이되었나.

참 황당한 사건이다 잠시의 시끄러운 소리로 짜증이 나서 아파트외벽에서 외줄에 메달려 일하는 작업자 밧줄을 끊어서 죽게 했다니, 또 바로 그다음날 대학교수 한사람은 자기에게 전달된 소포를 풀었다가 사제 폭탄으로 큰 부상을 입고 다행스럽게 죽지는 안했다고 한다.

세상에 어찌하다가 이런나라 이런 세상이 되었나? 너무 황당한 좀 특이한 상식으로도 이해가 되지않는 일들이 요즈음 보면 심챦게 일어나서 내가 비정상이 아닌가 내 사고의 기준을 고쳐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높은 건물에 줄하나에 매달려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지러워서 현기증이 날곳에서 작업을 단지 자식 그리고 생활을 위해서 매일이다 싶이하는 험한 작업을 하는 사람 보통인들은 그 모습을 보기만해도 안타깝기도 하고 안 스럽다

얼마전에 우리아파트에도 도색을 다시 하느라고 물 청소를 하고 칠하고 하였는데 줄에 매달려서 작업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보고 있다가 마침 내 앞창에 왔길레 박카스한병을 주었다 그리고 일당이 얼마나 되나고 물었더니 한20만원된다고 하였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 사람은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이 거칠다는 말이있다. 그러나 그사람의 말과 행동이 너무나 사근사근한 것에 내 고정관념이 얼마나 독선적이였구나 하며 조금은 미안하였다.

그런데 생명을 잃을 것인 데 생명줄을 끊어버린다니 그 나쁜자 이때까지 무얼 먹고 어떤곳에 살았고 누구와 무었을 하며 사는 놈인지 세상에 이럴수가… 5남매와 아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쓴기사를 보니 글쎄 아이들이 울지않는다고 하였다 엄마가 너무 슬퍼 할까봐 울기를 멈추고 있다는 어린것들의 말이 너무나 가슴 아리게 한다.

또 연세대학교수에게 폭발물을 보낸자는 그 교수의 강의를 듣고 논문을 써서 석사가 될려고 하는 지식인이라고 하였다. 무얼 배웠고 어떤 가정에서 그런 놈이 글쎄 대학원이라는 최고 지성들이 연구하는 곳에 다니게 되었는지 자기가 강의를 받고있는 교수가 아무리 밉더라도 할짓이 있지 폭탄을 보내서 죽거나 병신이 되어도 좋다는 심산으로 그런짓을 했다는 것이 아닐까?

무슨 변명을 해도 그것은 정상인 아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막살고 있는 옛말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로 표현될 자도 그런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어찌 이래되었나 이 나라가 어찌 이래되었나 역사를 보면 나라 지성인 또 지도자의 기준이 도덕과 품행을 기준으로 수천년을 지났다. 우리의 학문기준은 맹자 논어 사서 삼경 노,장자학 등 인간본연의 자세가 어느 정도 반듯하냐가 지도자의 덕목으로 삼고 지났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갖춘자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며 이나라 지도층을 이루고 있나 그렇지 않다 많이 달라져있다. 모든 것이 경제논리에 입각해서 그것에 연연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있다.

따라서 그것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도덕은 감추어지고 인간성은 비뚤어진 행위를 해도 그것을 극대화시키면 모든 흉허물은 묻혀지는 세상이 되어서 이런세상이 나라가 된 것이 아닐까? 참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왜 사나하는 말이 있는데 위에 두 사건은 최근에 일어난 한 예이다. 이보다 더한 일을 저지르고 그와 유사한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건물을 만든 것은 건축자재와 사람들의 기술이고 첨단 장비를 만드는 것은 첨단기술과 역시 첨단기술로 만들어진 부품의 결합이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교육이다 그리고 반듯하고 그런 사람들을 만드는 세상을 가질려면 10년도 안되고 적어도 반세기 50년은 되어야될 것이다 그런데 지난동안 이토록 망가트려놓은 나라, 사람이사는 세상을 다시 만들자면 하루속히 우리교육부터 바꾸어야 할것이다. 전국민 학사만들기 교육 돈많이 벌면되는 교육으로 이꼴이되었다.

 

 

조상님들 산소를 부관참시 한다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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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들 산소를 부관참시 한다 말인가?

오늘은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를 한다. 조상님들 산소를 이제는 파내어서 화장해서 버려야 한다고 전화를 받았다. 며칠전 동생에게서 조부님 위 어른들 산소를 모두 버리겠다고 큰집 형님이 연락이 왔는데 어쩌면 되겠어요 하였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아버지께서 이소리를 들으시면 벼락이 떨어질 소리다.

고향에서는 알아주는 명문집이었다 역사에 나오는 태종왕님 둘째 처남 무자질자(無疾)한분 손자대 어른으로부터 한동리에 100여호가넘게 살았고 그 많은 분들의 묘지가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내 조부님까지도 그곳에 산소가 있다. 우리집은 증조할아버지대에서 작은집, 할아버지대에서 또 작은집, 아버지대에서 또 작은집이다. 그런데 장손인 8촌형께서 동생에게 그렇게 의논이 왔다.

큰집의 많은 형제들과는 그렇게 합의가 되었다고 하면서 내 동생의 말은 큰집에서 하자고하면 우리는 막내집인데 반론할 수가 없고 또 지금까지 해마다 벌초 묘사 때문에 속썩이는 것들을 경험하여서 큰집형님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그래 그거 좀 생각해보아야 하겠는데 하였다 그러나 그후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이것은 현대판 부관참시가 아닐까?

옛 문헌들 보면 죽은지 몇대가 지나고 천하에 나쁜자로 낙인이 찍히면 시체를 파내어서 참시를 하였다는 것 보았는데 그것을 하자고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죽은 부모를 화장한다면 천하에 나쁜놈으로 여겨 임금이 큰벌을 내렸다. 그만큼 해서는 안될 것이었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요즈음은 공공연하게 화장을 하도록 된 세상이 되더니 이제는 증조부모 고조부모 조부도 등등 이미 매장된 묘지를 파내서 뼈조각들을 찾아서 불에 태워서 버리고 묘터의 흔적조차 없애버린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을 공공연하게 해주고 돈 받는사람이 있고 그렇게 해버리는 후손들이 그곳에는 있다고 한다. 요즈음 어느 문중이고 자손들 몇 명 안되는데 그나마 도시에 또는 외국에 살고있는 세상이 되어 아버지 할아버지도 아닌 그 윗대 조상산소 때문에 곤란을 겪고있는 집들이 많다 그리고 벌초도안 하고 상석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묘지도 많고 해마다 벌초 때문에 우리도 말들이 많았다.

뛰어난 자식 낳고 후손들 잘되라고 산소가 좀 크고 높은 산속 높은곳에 있어서 요즈음은 몇 안되는 후손들이 관리 하기는 버겁기는 하다. 그래서 큰집형님이 죽기전에 이렇게 괄시 받는 어른들을 내가 해결하겠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그 형님은 올해 8십 두세살정도 되었다.

살아있는 늙은 부모도 온갖 설어움 느끼며 지나고 그러다가 죽으면 바로 화장해서 흔적없이 버리기도하고, 사방이 에이4 용지만한 통속에 뼈가루를 넣어두기도 하는 세상, 그것조차도 손자대에 가면 일년에 한번이라도 갈자 있을지 몰라도 멀리있거나 또는 세계가 이웃처럼 된 세상인데 유럽이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 가서 산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으면 그것으로 이승에서의 모든 정과 연은 다 끝인 세상이 되었는데 증조부모 고조부모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데 고향에 계신 큰집 형님 많은 형제들과 이문제 때문에 마음상한이야기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생전에 이 결정을 하신 것 같다. 그렇지만 조상님들 산소를 세상이 달라졌다고 부관참시라는 것을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차라리 벌초하기 묘사지내기 버거우면 그냥 두는게 그보다는 낳을 것이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그냥 두세요 하였다. 이래도 저래도 돌쌍놈들이 틀림없는데 그냥 두어야 할것같다. 어차피 죽으면 흙속으로 돌아가는데 당시 풍습으로 그리된 어른들 지금 풍습 따라 살고있는 후손들이 윗대 어른들이 하신 것을 거부하고 그렇게 한다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 방식대로 살아온 심정은 많이 불편하다 그렇다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가서 벌초하고 묘사모시는 것도 하지 못하면서…. 지들끼리 모여서 일년 수십번 조상님 산소보다 몇배나 높은 산에, 먼곳에 희희닥거리며 등산이라고 다니고 요즈음 주말이면 이틀씩 반드시 놀면서 일년에 한번 가서 봉분 정결하게 하는 것이 싫어서 아예 수대로 내려온 산소를 파드배서 뼈 몇조각을 불태워서 버린다고 하니 이렇게 된 세상을 원망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야하나 싶은 생각이다. 오래도록 살기 싫어지는 일들이 자꾸 늘어나기만 한다.

가정의달 감사의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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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달 감사의달에….

이제는 바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도 감사의 글을 써야할 것 같다. 열심히 일하며 주변 돌보며 살고있다. 아버지에게도 잘 할려고 애쓰나 내가 지들만할 때 아버지에게 마음 쓰는것에 비하면 좀 섭섭 하다 그러나 그렇게 비교하는 것은 내가 욕심이 많은 것이다고 자신을 타이른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아버지도 내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고….

이달은 우리 집은 행사가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아내생일, 우리집의 행복동이 막내 손자 이제 36개월이 되는날도 26일이다 등등 바쁘고 따라서 돈도 들어간다. 29일에는 귀국하고 몇해 동안 벼르던 여행을 외국으로 가자고 하는데 기어코 아내가 고집 부려서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에 갈려고 아이들이 준비를 해두었다.

사람은 자주보고 연락을하고 하여야 정이 식지않고 서먹했던 관계도 사라지는데 귀국하면 10년동안 소홀 했던 그래서 느을 미안했던 것들 많이 할거라고 마음먹었으나 와서 지나보니 그 또한 그때 마음처럼 한 것이 없다. 몇 않되는 사람들 내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던 주변에 사람들과도 자주 보지 못하고 연락하지 못하고 지나고있다. 예전 같으면 한 울타리에 살고 있겠지만 요즈음은 어쩌다 보면 일년에 한두번 볼수도 있는 내 동생들께도, 처가 쪽에도 못난 형부 끔찍히 마음 쓰는 처제 그들 내외 건강히 잘 있냐고 하여야 할건데 하면서 올해도 그냥 지난다.

바로 아래 동생은 나보다는 3살 아래이고 돈도 많이 벌어 기업체도 가지고 잘 살고 있다. 그 다음 이제는 모두 할머니가 된 두 여동생에게도, 그리고 나보다 스무살이나 적은 막내, 중간 셋째는 군에 장교로 제대해서 야망이 너무커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큰물에 놀고 싶어 허둥대는 놈도 있다.

부모님 선생님 나에게 도움을 준 윗분들에게도 마음보내자, 아들딸 동생 등 나를 위해서 끔찍히 애써준 아랫사람들께는 받기만 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나를 건강히 살도록 마음써 주는 젊은제자 직장후배 친구에게도 마음 써주자. 위에서 받은 사랑만 감사히 여기지 말고 내 옆에서 나를 아껴준 나의 지팡이들에께도 감사하자는 생각이 든다 전화로 나마 연락하고 건강히 잘 지나라고 그리고 열심히 살자고하자.

요즈음은 너무 지나치게 쓸대 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 이야기를 블로그에 많이 쓴다 이렇게 된것 모두 블로그 친구님들 배려라 여겨 지금 감사의 말씀드린다. 격려해 주셨던 분들께도 일일이 전화 드리고 싶으나 번호도 모르고 이 지면을 통해서 “너무 감사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는일들 모두 이루십시요” 고 말씀을 드린다.

때로는 쓸쓸해서 쓴 글도 있고 세상 살아 가는게 너무 답답해서 투정하는 이야기도 있다. 모두들 너그러이 봐 주시고 항상 아껴 주신 것 너무 고맙게 여긴다. 그리고 또 하루에도 수많은 글 모두다 보시고 검토하여 많이 보았으면 싶은것 오래 머물게 해주시는 운영자님께도 심심한 감사 드린다.

이 싱그러운 달 5월 가정의 달, 감사 표시를 하는 달이라고 하는 달, 이땅의 모든 식물들 점점 싱그러워 저서 멀지 않아 푸르고 울창한 숲을 이루듯이 모두들 건강하게 우리라는 커다란 무리되어 힘을 합해 건강한 사회가 되고 부강한 국가가 되었으면 한다. 나 또한 그리 되도록 작은 힘이지만 쉬지 않고 힘써 볼려고 한다.

내일은 대통령이 선출되는 날이다. 짧은 선거기간이었지만 흉측스러운 말도 많았고 마음상한 언행들이 많았지만 모두 관용하여 새 출발하는 정부 마음껏 도와서 5월의 자연만큼 아름다운 나라 되기를 우리모두축복하자.

*요즈음 내블로그에는 스팸뎃글이 너무많이 달려서 걱정입니다. 일본어로 영어로 쓴 뎃글인데 비아그라라는 단어도 있고 그런 댓글이 며칠전에는 글 등록할려고 보니 198개나 와 있어서 기가막혀 닫아버리고 일이 있어서 다녀 왔는데 오늘보니 또 337개나 몹쓸 뎃글이 또 달려있어요 이거 야단 났습니다. 보통  20개정도의 스팸이 달렸는데 이럴 때는 하나 하나씩 처리해야 하는지 일괄처리하는 무슨 방법이 있는지 번번이 운영자님께 말씀 드릴수도없고….

2017년 5월 8일. 산고수장.

 

벗꽃이 만발한 4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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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꽃이 만발한 4월에…

올해도 벌써 4월 중순, 이곳에도 봄에피는 꽃이 만개한 무르익은 봄이 되었다. 곧 장미의 계절이라는 5,6월이 올 것이다.

며칠전 새벽에 화장실 가고싶어 잠이 깨어보니 넓은 창으로 달빛이 들어와서 방안이 환 하였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둥근달이 보이고 그 옆에는 커다란 별도 보인다. 아, 보름이구나 연일 구름도 많고 또 요즈음 괴롭히는 먼지들 때문에 멀리 볼수는 없었는데 오늘은 청명한 날이 될 것 같다.

거실에서도 방안에서도 시야가 탁트여서 멀리 볼수 있고 더 좋은 것은 임진강 흐르는 물이 보이는 그 경치를 보고 산 집이다. 참 행복한 집이다 큰 자식을 낳을려면 집 앞 시야가 적어도 수십리는 트여야 한다고 하시던 아버님 말씀을 생각하며 산 집이다. 하기사 이 나이에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만…

어제 보니 아파트 경내 화려하게 핀 벗꽃들 목련꽃들이 뎅강 뎅강 짤려 나가고 어떤 것은 커다란 가지도 짤려서 동댕이 쳐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사 나무들 전지한다고 그런 것이다. 진작 겨울이 끝날 즈음 했으면 나무도 수고를 덜하였으며 애처롭게 나 딩구는 꽃들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을 하는 생각을 하였다. 세상에 모든 것은 하여야 할 때가있다.

올해의 봄은 예상에 없던 대선이 있게 되어서 요즈음 연일 시끄럽다. 너도나도 대통령 되겠다고 머라카노, 열 세명이 등록 했다나ㅎㅎ. 시끌시끌한 날의 연속이다 어서 5월 9일이 지났으면 한다만 그것이 지난들 지금보다 조용해지겠나? 세상은 더 시끄러워 질 것 같다만 그것도 사람들 인생살이처럼 그렇게 하면서 지나갈 것이다.

언제 태평성대구나 한 생각으로 산적이나 있었나, 그렇게 티격태격 하면서 걱정해가면서 살았지만 그래도 이제 우리나라도 좋은 나라가 되었다. 돈이 없어 작은 병은물론 큰병도 병원 못가고 자랐으나 살다 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

옷이나 신발 하나 사면 그것이 떨어져서 너덜너덜 하도록 입고 신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커서는 쥐꼬리 만한돈 월급 받아서 아이들 키우고 부모님 모시고 사느라고 그저 아끼고 살아가느라고 그 흔하게 먹는 보약한재도 안먹고 지났는데 그게 지금 보니 이 건강이 유지되는데 일조를 한 것 같다. 못 먹고 지나서 건강하다는 생각…ㅎ, 좀 우습다.

그러고 보니 참 좋은 나라가 되었다 요즈음 신발 한켜레 쌀 한가니 값 주고 산 소위 유명메이커신발도 떨어지기는커녕 실증 나서 안 신고 버리는 것이 대다수이고 옷도 유행 지나서, 입기 싫어서 버리는 것 내집의 경우도 부지기수다. 폐품 버리는 날 동마다 버려진 폐품들 보면 멀정한 물건 새것 같은 가구들, 아이들 유모차, 자전거, 방안에 두고 요긴하게 쓰던 소품들도 전자제품도 많이 버려져 있다. 몇 번을 서비스센타에서 고쳐 쓰는 우리집 것보다 훨씬 뒤에 나온 새것 같은 것들도 많이 보인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귀가 멍멍해서 동내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같더니 의사가 들여다 보면서 새까만 귀지를 끄집어내주었다 갑자기 시원하고 말이 청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돈은 1400원을 주었다. 집에서 끄집어내는 기구로 잘못 수셔서 아프기도 한적이 많았는데 그럴 필요도 없다.

먹고 싶은 것 찾아 다니며 먹을수 있고 볼거리 볼려고 외국에도 마음대로 다니는 사람들로 곂치는 연휴마다 맛집이며 공항은 북새통이고 맛있는 것 너무 자주 많이 먹어서 살 빼느라고 고민하는 사람이 전체 반이나 되는 이런 좋은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나라가 되었는데도 어느 통계에서 보니 나는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세계 평균은 고사하고 하위라고 하였다. 유명한 분들이 말한 행복은 자기 마음속에 있다 그것을 끄집어 내서 나는 행복하다고 여기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고 그놈의 돈 벌어도 더 벌어야 되고 남이 살아가는 것 보면 다 잘사는데 나만 그렇지 않는 것 같다고 여기니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밖앝을 보니 꽃도 많이 피어있고 새파란 연약한 잎사귀들이 점점 커지고 있는 풀들 나무들이 너무 예쁘다. 이 찬란한 봄 곧 무성해지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우리며 이래도 되는가 생각해보자.

 

 

살아갈 공부는 이제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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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공부는 이제 시작해야.

올해도 수많은 대학 졸업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따라서 새롭게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젊은이 일거리 찾느라고 고민 하고 있다.

어느 시대고 그런 것은 다 있었다. 우리들이 젊었을 때도 할일 없어 빈둥대는 젊은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다 살았고 아들 딸 낳아 공부시켰고 들판에 자지 않고 집이라고 만들어진 속에서 잠자고 북쪽 공산당 놈들이 쳐들어와서 전쟁도 하고 경부 고속도로도 만들고 공장도 만들고 일할 것 찾아 독일 광부로 간호부 하러 가기도 하고 살았다.

사람 사는 곳에는 찾아 나서면 일거리는 구석구석에 있다. 요즈음은 나라간에 국경이 없어진 세상에 젊은 패기로 저 먼곳을 내다보면 할일이 많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어서 세계구석구석을 들여다 볼수있고 다행이 세계어라는 영어를 20여년 배워서 의사소통도 할 수 있는데 좁은 나라 안에서 일거리 없다고 투덜대고 하지 말아야 한다.

대기업에 취직 되어야 한다고 머리 싸매고 시험준비하고, 한편에는 취업율 높일려고 기업들에게 공장 지어라고 하는데 그것은 공염불이다. 내가 잘 할수있는 능력은 다른곳에 있는데 머리만 싸매면 머하며, 또 이익이 나지 않을 곳에 애국 할려고 투자할 기업가는 없다. 그런 생각이 있어서 한다 한들 나중에는 그것이 큰 재앙이 될수도 있는데 하지 않아야 한다.

또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절박감 없는 자에게 일거리 만들어주는 기업가도 없다.서양속담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고 동양속담에는 ‘버는 자랑 하지 말고 규모있게 쓰는 것을 익혀라’는 말이있다. 년봉이 중소기업보다 좀더 많이 받고 남 보기에 뻐기고 싶어 너도나도 모두가 대기업에, 철밥 통이라는 공무원, 공기업에 취업하고 싶어하는데 이것부터 버려야한다.

예전에 학교처럼 어떤분들이 교육이라는 사명감으로 만든 학교가 아니고 인생이먼지 어찌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를 가르치지 못하는 장사꾼 심리로 만든 대학은 돈 투자하여 이익 남기는 주식회사와 다를 것 없다. 요즈음  대학들이 거의가 그런 학교 인데 거기서 수학한 젊은이들이 졸업하고 빨리 돈벌이만 잘하면 최고라고 가르친대학을 나왔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자기를 모르고 잘된 사람만 바라보는 허황된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진전은 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그런 구별 잘못해서 한동안 많이 좌절하고 곤궁한 삶을 살았다 지금 그런 경험을한 경륜이라는 큰 재산을 가지고 시대상 등을 고려해서 근과 검에 이골이 나서 경제적으로 큰 재산 없이도 잘 지나고 있다.

그거야 늙은이기에 하는 소리니 귀담아들을 것 없지만 정말 철밥통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에 목매는 것, 그래서 그 많은 세월을 허비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기회 때마다 이야기 하지만 내 가진 것만큼 알맞은 곳 택해서 일 하면 멀지 않아 새로운 더 좋은 길이 보이고 그 길로 가면 곧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시대 잘 만나서 이때까지 나라가 감싸주는 세상에서 보호 많이 받고 컸고 잘사는 부모 보호 속에서 이 만큼 컸는데 이제는 저 높은 절벽에서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 먹고 자라서 넓은 바다 에서 홀로 살아야 하는 갈매기 새끼처럼 독한 마음먹고 세상을 보고 용기내어 절벽에서 뛰어 내려야 할 것이다.

자랄 때 온실에서 자랐으니 이제 장성해서라도 모진 고통은 아니라도 배도 곺아 보고 먼길 걸어 발도 부르터져 보고 타인에게 괄시도 받아 보면 거기에서 새로운 인생이 보이고 일거리가 눈에 보일 것이다. 세상에는 학교 공부로만 잘된다는 것 말고도 성공할 것이 많다.

그럴려면 어찌해야 되느냐? 여행을 떠나자 조촐한 준비해서 비행기표사서 중국 척박한지역 스촨성이나 네팔 희말라야 산 밑에서 그산 때문에 그 산을 이용해서 힘들게 사는 것 보면서 내가 지금껏 살아온 것과 비교해보면서 성찰을 해보면 내가 해야 할 일 그리고 길이 보일 것이다.

인간은 처절한 고뇌 없이는 길이 열리지 않는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 나보다 잘 된 사람들의 지난날을 곰곰히 알아보면 나보다는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이 보여야 나도 남들과 같은 대열에 끼일 수 있다.

 

 

 

 

풍수라는 것 믿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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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라는 것 믿어야 할까?

옛날이야기다. 어느 부자집에 손님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집 며느리는 손끝에 물 마를 시간 없이 밥해서 상차려 들이고 술상 차리고 너무 힘겨웠다.

어느날 한 중이 시주를 청하려고 왔다 며느리는 쌀을 한 바가지 퍼주면서 집에 손님이 너무와서 참 힘든다고 하면서 안 오게 할수 없을가요? 하였다. 중은 조금 망설이더니 따라오라고 하더니 뒷산으로 데리고 가서 한곳을 가리키며 여기 돌 기둥을세우라고 하였다. 시키는 데로 하였더니 얼마 안가서 그 집이 망했다따라서 손님은 오지 않았다.

그 뒷산이 자라 목혈인데 거기다가 돌기둥을 세우니 자라가 모가지를 들수가 없으니 망할 수 밖에 없다. 예부터 내려온 이야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터를 보고 좌향을 정해서 짓고 묘자리는 잘못 쓰면 큰 화를 입는다고 여기고 여유있는 집들은 중요시 하는 것 자주 본다.

제비가 와서 집을지을 때 보면 짓기도 편하고 드나들기도 편한 들 바로 옆집에는 안 짓고 동네 중앙에 있는 집에도 짓고, 우리조상들은 저 먼곳 앞산과 옆 언덕도 참고하고 좌향을 보느라고 패철 들여다보고 옆집과 나란하게도 아니고 틀어서 짓고 하였는데 나는 어릴 때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자랐다. 뒷산의 지형도보고 심지어는 지하에 물이 흐른다고 하시면서 그것은 피해서 지어야 한다고 하셨다.

조선시대 학자 중에 풍수론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홍만선이라는 분이 <산림경제>라는 책에서 밝힌 집터의 풍수론에 보면 집터가 좋다는 곳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곳이 좋고 그 반대면 부자는 못되나 부귀는 누린다. 또 앞이 높고 뒤가 낮으면 집안이 망하고, 뒤가 높고 앞이 낮으면 집 짐승이 늘어난다, 움푹 들어간 곳은 가난해지고 평평해야 한다는 등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데 무식한 내가 쓰기는 버겁다.

다만 사람도 자연 속에 있는 한 개체이니 자연과 조화롭게 잘 맞추어 살면 편하게 될것이다는 것으로 여기면 될 것 아닐까 한다. 그런가 하면 요즈음 허허벌판인 논이나 밭 심지어는 묘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어서 그 위 백세대도 살고 큰 단지는 1000여세대도 지어서 살고있다.

즉 현대과학적인 면에서 보면 풍수를 본다는 것은 웃기는 풍습이고 또는 미신이다고 할수있다. 그렇지만 강가에 대단지 아파트는 물안개 때문에 습도문제로 질병과 관련이 있고 차들이 많이 다니는 대도로 옆에 있는 아파트들보면 소음 때문에 차벽을 높게 설치하였으나 그 소리가 완전차단이 안되고 자동차들 배기가스로 건강에 해롭다. 거기다가 풍수설까지 대입시키면 어찌될까 싶으나 그래도 빈집은 없고 사람들이 다 살고있다.

그런데 예전에 없던 흉측스러운 병들이 많이 생기고 그로 인해서 고생을 오랫동안하고 따라서 그것 고치는 병원도 아주 많이 생기고 하는데 그중에 그런 환경 무시하고 지은 집에서 살아 그렇게 되는 현상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즉 풍수는 사람사는 환경을 보는 것 아닐까?

수 백년을 이어져 살고 있는 농촌 동내를 잘 보면 대개들 약간의 거리 차이는 있어도 배산임수 인 동내이고 문외한이라도 보이는 것이 있다. 그 중에 저 집은 싶은 집은 자손들이 잘 된 집이다.

농촌에 사람 사는 환경 즉 앞에 큰 산이 막혀 있는 곳은 음지여서 일조량이 적을 것이고 지하에 수맥이 흐르는 곳 위에는 땅 마를 날이 적을 것이고 위에 언급한 것들처럼 남향이고 평지고 집 뒤가 약간 높은곳 보기만해도 살고 싶은집이 있는가 하면 보기에도 으시시해 보이는 집이있다.

따라서 아무리 현대이고 풍수니 하는 것 따를수 없는 세상이지만 아파트도 지형지물도 보고 요즈음 도시 조화도 중요시 하는데 그런 것도, 또 집 에서 앞을 내다보면 경관도 좀 괜찬은지 보고 구입해서 살면 좋을 것이다. 옛말에 저 멀리까지 시야가 확 트이고 밝은 집에살면 큰 인물이 난다는 말도있다.

 

 

 

 

이제는 옛날이야기 6) 데릴사위 시집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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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옛날이야기 6) 데릴사위 시집살이.

시집살이 하면 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찢어지게 가난한 품계가 조금 나은 집 아들이 재산이 있는 집에 데릴사위로 장가가서 아들 노릇하고 자기집 형편 나아지게 했던 남자들이 있었다. 또 아들이 없고 딸 뿐인 집이 데릴사위를 들여오는 집도 있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아내뿐만 아니고 장인 장모의 시집살이도 했다. 그때 그 데릴사위가 살아가면서 겪는 서러움 때문에 생긴 말이 껏보리 서말만 있어도 데릴사위는 가지 말아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의 위력은 다름없다 그 돈이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치사하게도 만든다. 우리나라가 산업화가 되어질때 갑자기 부자가 된 집들이 생겨서 돈의위력으로 명문가가 탄생할 무렵 가난한집 머리 좋은 아들들 윗 학교에 돈 없어서 못가는 아이들 학비 대어주고 출세 시켜서 사위로 삼을려고 하는 부자도 있고 어떤 국회의원은 서울에 그 지방 장학숙사를 만들어 지방에 우수한 인재들 숙사에서 장학금 대주며 공부 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공부한 사람을 자기의 버팀목으로 만들어서 두번 세번 다섯번 국회의원이 되는데 일꾼으로 쓴 사람도 있다.

그렇게 공부하여 고등고시 합격하여 판 검사가 되고 그분의 사위가 되어 정부요직에 근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 가난하게 살고 있는 시골의 어머니생각 그리고 많은 동생들 아내 모르게 돌봐주며 지나는 사람 신세 타령조의 글을 옮겨 본다.

‘아내는 생활비 보내주면 주었지 합가는 절대로 안되요. 동생들 공부시켜주면 되었지 더 이상은 안되요 한다. 우리집안 가장은 내가 아니고 아내다 가끔씩 밀려오는 외로움에 내가 왜 이래 되었나, 이럴려고 어머니 고생 시키며 이것 할려 고 했나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아내는 보기도 싫다. 어디 술이라도 먹고 가자 그러나 아무에게도 나 이 꼴을 보이기가 싫다 그래서 요즈음 말 ‘혼술’ 을하고 늦게 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어주는 식모 아주머니가 저어 사모님이 화 나셨어요.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술이예요! 소파에서 도사리고 있던 아내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내 쏘았다 비틀거려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오늘이 토요일인 것 몰라요! 애들하고 집(장인 장모보러)에 가는 것 잊었어요, 저 따위 약속 안 지키니 애들이 멀 배우겠어요 검사아빠 참 자알 한다 오늘부터 술 냄새 풍기며 이 방에서 못 자요!” 그리고 안방 문을 탁 받아버리고 들어가 버린다, 해어져서…. 그래 그거 바라던 것이다’ 고 쓴 푸념 조의 글을 읽었다.

가난한 집 맏이로 태어나서 시골 국회 의원이 서울에 만들어둔 장학숙사에 들어가서 법과 대학 다니고 고등고시에 합격 하였다. 서울에서 돈 가지고 권력 가진 사람이 되었다. 경제권을 쥔 그의 아내는 친정 협조하에 시동생들 그리고 늙은 시어머니에게 한달에 얼마의 돈을 보내주었다. 그것이면 되었지 머 자꾸 신경 쓰느냐 하는 아내와의 갈등으로 고민하며 돈이 주는 힘으로 단련 되어만 가는 아내를 보며 장인장모 알까 봐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였다.

한 많아서 시작한 처가살이가 새로운 한을 낳았다. 옛날이야기이다 요즈음 그렇게 할려는 사람 있을까? 하기사 간혹 재벌 집 사위가 되어 한 기업 물려받아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이토록 종이다 싶이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이지 예나 지금이나 돈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요술을 부려서 망치게도 한다. 요즈음 처가살이가 아니라도 경제권은 아내가 가진 집이 대다수인 시대가 되었고 못난 여자는 그래서 기고 만장하여 남자를 종으로 만들기도 한다.

요즈음 보면 재벌가에 장가들었던 사위들 이혼하는 것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린다. 경위가 어찌되어서 인지 알 필요는 없지만 그래서 위자료를 받는 건지 주는 건지 그것도 알필요 도 없다. 세상이 이혼 하는 것을 별거 아닌 것으로 여기고 딸린 자식들도 어머니 이혼 하세요고 했다는 소리도 들리고 당사자의 어머니도 얘야 그러면 이혼 해라 요즈음 세상에 그런 놈 또는 년하고 어찌사냐? 하는 엄마도 아버지도 있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리는 시대가 되었다.

한동안 재벌집의 사위 또는 며느리 된다고 좋아하고 부러워한 시절도 있었다만 요즈음은 그것도 시들해졌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돈이 인생살이에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기고 돈 많은 사람을 배필로 삼으려고 하더니 요즈음은 홀로 사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는 시대가 되었는지 결혼도 아예 하지 않고 홀로 사는 사람이 자꾸 늘어나서 국가가 고민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고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를 안 낳고 둘만이 살려고도 한다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데릴사위 같은 것이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이제는 옛날이야기. 4) 금기시 했던 이상한 관습들.

소달구

이제는 옛날이야기. 4) 금기시 했던 이상한 관습들.

어릴 때 어른들에게 듣고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하여라고 하여 지키고 살았던 금기시하는 관습들을 써봅니다. 이런 것은 충효사상으로 이렇게 하여라 또는 하면 않된다 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는 것들입니다.

요즈음이야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고 연일 각종 정보 매체에서 분초를 다투어 알려주고 있는 시대니 전국이 별로 다르지 않고 차이가 있었던 것들도 같아지고 있지만 교통이 불편하여 지방에서 서울에 가자면 몇날 며칠을 걸어서 가기도 하고 내가 어릴 때만해도 서울에 가는 것은 지금 먼 아프리카에 가는 정도로 어려웠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들은 경상도 내륙 지방에 내가 겪은 것들이나 전라도 쪽이나 바닷가 쪽 또 제주도 같은 섬 지방은 또 다른 것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오랜 관습에서 얻은 금기를 하면 살아가는데 삶이 부드러워지고 남을 배려하고 자기마음도 행복해지고 또 더 위생적이다 고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이런 사항들을 지키는 것은 좀 불편하기도 하였지만 지키고 살았는 조상님들의 슬기를 느끼게 합니다. 좀 토템적이다고 여겨 지는 것도 있으나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지금도 지키면 손해 볼 것은 없을 것 같고 각박한 우리생활이 좀더 여유로워 질 것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래 지키느라고 약간의 인내가 필요했던 것들 지금 잊지 않았는 것들 적어봅니다. 순서는 별 의미가 없고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입니다.

1 손톱 발톱을 밤에 깍지 않는다.

2 아플 때 국수를 먹지 않는다.

3 여자들 바느질 할 때 반드시 실을 잘라서 바늘에 꾄다.

4 문전을 딛거나 위에는 앉지 않는다.

5 해질 무렵 문을 고치거나 창호지를 바르거나 하기 위해서 손 대지 않는다.

6 생일에는 국수를 먹어라.

7 아이를 낳으면 대문에 금줄을 친다.

8 아침 일찍 여자는 남의 집에 가지 말아라.

9 오전에 상점에 갔을 때는 물건 안 사면 안 된다.

10 다리를 떨지 말아라 복이 나간다.

11 큰 일을 시작 할 때 고사는 반드시 지낸다 그때 돼지 머리는 중앙에 두고

12 붉은 팥은 귀신을 물리친다.

13 절에 갔다가 올때는 중간에 다른 곳에 들리지 않고 집으로 곧 바로 온다.

14 미운 사람이 다녀가면 소금을 확 뿌린다.

15 집안 사람이 멀리 외출하면 그날은 집 청소를 하지 않는다.

16 중요한 일을 하러 갈때는 미역국을 먹지 말아라.

17 이사 갈 때는 삼살 대장군의 방향을 알아서 그쪽으로 가지 말아라.

18 이사는 좋은 날을 받아서 가거라 아무 때나 가면 큰 재앙이 올 것으로 여긴다.

19 잠잘 때 동쪽으로 머리를 두면 오래 살고 남쪽은 부자가 되고 서쪽 북쪽은 그 반대이다고 여기고 반드시 지키고 살았다.

20 길 가다가 어른이 가는 길은 먼저 지나가지 않는다 특히 여자는 남자 앞의 길을 끊어 지나가면 재수 없다고 하였다.

21 윗 사람과 같이하는 술 자리에서 술잔은 머리 돌려서 마신다.

22 어른 앞에서 담배는 피우면 안 된다.

23 며느리는 어른들 앞에서 아이를 업으면 안 된다.

24 어른 앞에서 눈이 나빠도 안경은 끼면 안 된다.

25 부부가 외출 시에는 여자는 남자보다 2.3보 뒤 처져서 간다.

26 여자가 술을 마시는 것은 상것들이나 마신다.

27 여자들 아기를 배면 오리고기 닭고기 문어 등을 먹지 말고 상모서리에 앉지 말아라. 등등 생각 나는대로 적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중에 이해가 되는 것들도 있지만 아직도 그 이유가 궁금한 것도 있으나 가능한 한 지키며 불편하게 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와 아내는 어릴 때 어른들이 위의 것들을 지키며 지나시는 것을 보아서 될 수 있으면 그렇게 지키며 살고 있으나 간혹 위반하면 마음이 편하지를 않았습니다. 부부는 끼리끼리 만난다더니 제보다 제 아내가 좀더 잘지킵니다.ㅎ

사람사는 세상 이야기 좀 무식한 이야기입니다.ㅎㅎ

욕심부리는 늙은 남편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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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부리는 늙은 남편 때문에….

나는 며칠 전에 오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님이 귀국하는 날 그동안 온갖 무성한 말들이 많던 분이기에 관심이 있어서 보았는데 금의환향이라더니 저런걸 그렇게 표현 하겠지 하는 생각을했다.

세계무대에서 모든나라에 좋던 나쁘던 영향을 미치게 하는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직함으로 일을하며 지났던 분이 자기고국으로 돌아오는 그러나 또 큰 포부를 가지고 내 조국을 위해서 자기 말따나 이한몸 불사르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귀국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분이 공항에서 많이 운집한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무슨 말을할까 궁금했는데 많은 욕심스러운 말들을 조금은 상세히 길게 했다. 그날 늦게 인터넷에서 위에 사진을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분과 나는 모든 것이 비교되지 않겠지만 한가지 같은 공통점이 있다 딱 10년을 외국에서 살다가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분은 73세에 돌아오지만 나는 72살에 돌아온 것이 좀 틀리나 다 노인이라는 것은 같다. 그것 외에는 감히 그분과 나를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살아온 방법도 환경도 돌아올 때의마음 가짐도 지명도 등 너무나 다른 것이다.

나는 돌아오는 것 계획을 하고 이런저런 일들 마무리하고 그곳에 지인들과 해어질려니 짜안한 마음도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이륙할 때 지난 10년세월생각에 눈가가 촉촉히 젖었다. 처음 발 디뎠을 때 그 황량하여 실망하였던 일, 그후 말 통하지 않고 사는 방식이 틀리는 곳에서 그들과 지났던 일들, 그리고 작지만 일 만들어 그곳 사람들과 아웅다웅 하며 살아온 10년세월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고국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중국을 잘 아니 그것으로 일거리를 만들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아내는 한사코 이제는 다 접고 손자나 보며 살자고 졸랐다. 나는 그 말을 따르려고 애를 썼다. 나는 그래 지난 세월 고생만 시켰는데 따라주자고, 내 나이도 72살이다 이제는 욕망 접고 좀편하게 지나다가 마무리를 하자는 생각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할려고 조금은 힘도 들었지만 꾹꾹 누르고 지나다가 보니 지금은 그래 그때 내가 한 결정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옛말에 천석군 하고나면 만석꾼이되고 싶다는 말이 있더니 판검사가 되고 나면 부장소리 듣고 싶고 그리고 그 위로 장관이 되고나면 또…. 욕심이 끝없다. 그렇게 해야만 그것이 행복인 줄 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을 훤하게 바라볼 줄 아는 지혜많은 분들이 간혹 말하는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는 말을 들으면 미친놈 지가 머 대단한 놈이라고 쓰잘데기 없는 소리로 들리고 아무 공감을 가질수가 없다.

그러나 인생이란 별거 아니다 태어나서 세상 관조할 나이가 되어서 지난 세월 그리고 현실 미래를 관조하며 살 지혜를 가지고 사는 것은 너무나 행복하다. 위에 제목이 ‘욕심부리는 늙은 남편 때문에….’다.

언젠가 대권 욕심이 있다고 할 때 자기부인은 극구 반대한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저 사진의 그리 밝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제 나는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서 역사에 참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어야 하겠다고 하니 그래 해보세요 하였는지는 모른다. 나도 그런 대통령이 되어주셨으면 싶은 생각이다만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는 잘 모르나 훌륭한 대통령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어느 종교에서 흔히 말하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도 4년 또는 5년에 그리 되도록 하지는 못할 나라로 되어있다.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 국민의식과 소득격차 그리고 줄기차게 기어올라가던 경제지표도 이제는 기나긴 정체시기가 온지 몇 년 되었다. 가장 걱정스러운 국방은 손오공도 우리국방을 풀기는 어려운 시점에 있는데 대통령 한 사람이 5년내에 온 국민이 잘합니다 소리 나오게 할수 있을까? 그분이 말한 정치교체 그것 그리 쉬울까? 등등 어느것 하나도 녹녹한 것은 없다.

이런 나라에 10년이라는 기간을 주변에 모든 사람들에게 모진 소리 듣지 않고 고고하게 지났던 분이 인생 느즈막에 굽힐 줄 모르는 큰 욕심으로 그동안 쌓아온 좋은 모습이 허물어질 것 같은 시작의 길로 접어드는 것 같아서 그렇게 보고 있는 나에게 보이는 저 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써본 글이다.

사람은 떠날 때가 아름다워야 한다. 이제 며칠 후면 그만두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보면 너무나 아름답다. 많은 미국대통령이 있었지만 지금 이분같이 박수 받으며 떠난 분이 몇이나 될까? 훌륭한 대통령이 못될 것 같으면 전 유엔사무총장이 더 명예로운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