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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3. 병실에 모기 한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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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생활 3. 병실에 모기 한마리.

목 경추수술은 하고 난 다음날 전신이 많이 아팠다 무기력한 것이 누워도 편하지 않고 앉아도 짜증스럽고 그런데 건너편 방에서 시장판처럼 시끄러웠다. 아마 문병온 친구들인가 본데 목소리와 주고받는 말들을 들어보니 60이넘은 노인들 너댓명인 것 같았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신경질이나 있었는데 천장에 보니 모기 한놈이 붙어있었다.

아니 병원 병실에 모기는 그냥 보고 넘길 것이 아니다 온갖 병으로 입원한 사람들이 있는데 저놈이 어디에서 무슨 짓을하고 여기 와서 있는지 또 무슨 병균을 지니고 와서 쉬고 있다가 옮길려고 하는지 저놈은 아프더라도 죽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보고 있으면서 연구를 해보아도 나로서는 뾰족한 묘책이 없다 천장이 의자위에 올라가야 처리할만큼 높고 모기 죽이는 약이 있어도 잘못하면 달아날 것이고… 나는 연구끝에 좀 큰소리로 천장에 모기가 있는데 저걸 잡아야 하는데 하였으나 옆에 환자들 그래요 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옆에 환자보호자들 여자가 한명 있고 내 아내 그리고 젊은이 한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제사 저놈이 어느 방에서 어떤 환자를 물었고 무슨균을 묻혀서 왔는지 잡아야 하는데 하였으나 그래도 젊은이도 와서 보더니 가버린다. 곧 안 보이는 곳으로 날아갈 것 같기도 하고 내 딴에는 애가 탄다.

아내에게 간호원실에 가서 킬라가 있는지 그리고 모기 잡아 달라고 이야기 해라고 했다. 그런데 예 약 찾아서 가지요 한다더니 오지 않았다. 드디어 옆방을 지나 복도에 있는 간호원실에 아픈 몸을 추스리며 가서 방에 모기가 있는데 약가지고 와서 잡아라고 하였다. 예 하더니 돌아와서 보니 그놈은 아직 그자리에 붙어있었는데 그리고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고 감감소식이다. 그리고 조금있으니 간호사가 왔는데 수시로 그들이 하는 혈압재고 약물들 들어가는 것 검사하고 하는 일상일하러 왔다.

나는 그제사 열이 올라 오라고하고 분풀이를 하듯이 시장판 처럼 시끄러운 것, 또 지난밤에 조선족 간병사들이 병실앞 복도에서 북한말 같은 저속스런 말로 목소리는 어찌 그리 큰지 지껄이고 하하하 하며웃고 하였는 것, 그리고 모기가 병실에 있어서는 않되지 않느냐 하며 조목조목 이야기를 했다. 시작할 때 지금 책임 간호사 좀 불러달라고 하였더니 지가 책임자라고하여 그래 그렇면 당해 봐라는 심산으로 약 5분동안 설교를 했더니 죄송합니다 내일 알아보고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며 나를 설득시켰다.

그러다가 보니 처음 시작할 때는 모기가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달아나고 없었다. 병실에는 모기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 아니냐. 그러나 모기는 많은 엘리베이터에 수시로 다니는 그많은 사람들 따라서 들어올수도 있다 그러나 그후 발견되면 즉시 죽여하는 약이라도 있어야 하고 죽여야 하는데 킬라가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니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한국의 대학병원의 민낯이냐고 나는 다음날 정말 간호실 책임자에게 어제 저녁에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죄송하단다.

그후 나는 까달스럽고 편한 환자가 아니다는 낙인이 찍혀서 내 나름대로 좀 불편한 병실생활로 이틀 있다가 퇴원했다. 좀 윗쪽에 가서 지난 사실들 이야기하고 기분도 풀 겸 할려다가 아내가 말려서 참고 왔다. 아내의 말 “당신이 이병원에 오래도록 있지도 않는데 또 그렇게 한들 습관화 된 관행들이 쉽게 고쳐 지겠소?” 하였다. 그래 알았다 이만 참자.

3D업종이라고 하며 어렵고 힘든 일 우리국민들이 안하니 그자리에 중국조선족이 그후에는 베트남 필리핀인 등 와서 하는데 그러면 교육은 철저히 시켜서 해야 하는데 그 병원에도 많이 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시장판 같기도 하였다. 할 사람없어 고통스러운 것 도움주고 해결해주는 그들이 조금은 고맙지만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늘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간혹 끔직스러운 범죄사건에는 그들이 종종 섞여있는 것을 보고있다.

그리고 간호사도 한 사람이 일반병실 3방을 혼자 담당하니 12,3명이 수시로 불편을 들어 줄려니 너무 바쁘고 어떤 때는 급한 일이 생겼으나 제때 처리가 안되는 경우도 있다. 이래도 저래도 아프지는 말아야 하는데…

 

 

많이 놀면 경제가 좋아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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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놀면 경제가 좋아진다고?

다음달2일만 놀게 해주면 추석연휴, 토 일요일 등으로 내리 10일을 논다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 2일날을 놀게 해달라고 하더니 며칠전 국무회의에서 그렇게 합시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사사건건 생색나는 것은 자기가 발표하기 좋아하는 대통령은 “내수진작과 경제 활성화를 촉진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 또 “사상 유례없는 10일간의 긴 연휴를 보내게 되고 모처럼 휴식과 위안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고 하였다.

과연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긴 휴일로 휴식과 위안의 시간이 되어 즐거울까, 또 경제가 활성화되어 촉진되는 기회가 될까? 국세청에서 발표한 2015년 년말정산 근로자는1733만명이고 평균소득은 년 3249만원이라고 하고 1억원이 넘는자는 59만6천명 약 60만명이다 전체의3.4%다고 하는 기사를 본적이있다.

3249만원 평균소득에는 소득 1억이 넘는자들의 것이 다 포함된 금액이다, 그러면 실지 소액봉급자들의 년봉은 그보다 많이 적다. 그중에 하위 년봉자는 2천만원도 안 된자도 많이 있다. 이렇게 소득이 하늘과 땅 그런자들의 수가 1733만명에서 1억넘는고액자 약60만명을 빼면 1670여만명정도가 소액 년봉자 들이다. 이런 구조인데 머라고 많이 놀아서 즐겁다고?

소득 불균형으로 상대적 빈곤감으로 국민행복지수가 하위급이고 대기업 년봉 반이 안 되는 소액년봉자와 자영업자가 국민수 반이 넘는 나라에서 그런 봉급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이 10일을 논다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촉진될까? 싶으고 또 긴 휴가를 고소득자들이 국내에 돌아다니며 경제가 활성화되게 돈을 쓸까? 서민들은 쓸레야 쓸돈 없어 못쓰고 많이 가진자들이 써야 하는데 그들은 국내에서 쓰지 않고 외국으로 날아간다. 겹쳐지는 연휴 첫날 매번 보면 인천공항이 미어 터진다는 뉴스를 자주보고, 맨위에 사진처럼 사상 유례없는 출국장인원 하는 것 자주보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저소득의 근로자들과 자영업자들 남들처럼 그런 여행 못해서 열 받고 문열어 놓고 있어도 파리만 날려 속상하고 그 긴 기간 동안 죽을 맛이다.

그렇게 연휴를 보내는 국민의수가 즐거운 국민보다 배도 넘는다 그런데 이나라 정부는 굼꾸는 정부가 아니면 이런 조치를 국무회의에서 결의하고, 머라고 경제가 활성화되고…, 세상에 많이 놀아야 소득이 늘고 잘 살게 된다는 그런 경제학 논리가 어디있노?

국가경제를 떠받치고있는 제조업 쪽에서 보면 이거는 미친 짓거리다. 요즈음 보면 노조에 욕먹고, 투자 안한다고 정부에 욕먹고, 별거아닌 거로 떼스는 시민단체들에게 시달림 받고 온갖 욕먹으며 그래도 국내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크고 작은 제조업 쪽 기업가들 보면 불만스런 말도 과거 고약한 정부 때문에 말도 못하고 울면서 겨자국 먹기로 지나고 있는데 정 놀리고 싶으면 대체근무를 해주어야 할것이다. 다음번 토,일요 일에 대체근무를 하면 서로 별 불만이 없을 것 아닐까?

일용직시급을 올려라, 최저임금을 올려라, 휴업수당을 올린다, 육아휴가를 해주어라, 그때 수당도 올려주어라, 등등 자기가 주는 돈아니고 자기일 아닌데 권력 잡았는 권세로 마구 기업들에게 강요해도 되나?

이나라가 어찌될까 많이 염려된다 우리세대는 배골아 가면서 많이 일하고 많이 만들어야 잘살고 아껴 써야 잘산다고 믿고 그렇게 살았다. 그 결과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인들 모두가 거들떠 보지 않았는 불쌍한 나라를 60년이지난 당대에 세계에서 20몇번째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는 우리세대가 볼때는 너무나 불안하다.

게다가 지금이 태평성대냐 북쪽 놈들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만들었고 수소폭탄을 만들어서 잘못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공산통일을 할려고 안 한다는 보장이 있나 그런데 이나라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소리만으로 전쟁은 안 일어날까 하는 걱정도 된다.

제발 정신 차리시요. 세상만사는 겸허하게 신중하게 그리고 노력하는 자에게 좋은 결과가 얻어지게 된다는 그 진리는 만고불변의 진리고 그래야만 됩니다.

놀아야 되고 많이 써야된다는 정책이 나라 살리고 부강해지지는 않습니다.

 

 

일년만에 해보는 뒷산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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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만에 해보는 뒷산산책.

병중에 회복하면서 가보지 못했던 뒷산을 지팡이를 집고 아내와 둘이서 큰맘 먹고 가보았다. 전처럼 완주는 못하고 반쯤에 내려오는 길이 있어서 내려오면 조금 아래 홈플러스마트가 있다 날이 많이 더우나 쇼핑하러온 사람들의 차가 마당에 즐비하다. 산에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 또는 둘셋이 씩씩하게 걸으면서 다녔다.

625전쟁후에 심은 소나무와 자생한 잡목들이 이제는 많이 자라서 빽빽하게 들어차서 저들끼리 거기도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개중에는 경쟁에서 치이고, 나처럼 다처서 뿌러지고 찌그러진 볼품이 없는 리키다 소나무도 많다 그놈들은 생명력이 강해서 씩씩한데 이곳은 꼴들이 가난하다.

아마 6,25전쟁으로 산들이 포화로 폐허가 되고 불타버린 산에 군인들이 동원되어 어린 묘목을 심었는데 그때는 드문드문 심었지만 그놈들이 자라서 성목이 되니 서로의 가지가 부딛치고 둥치끼리도 부딛치는 것이 아닐까 나혼자 생각대로다.ㅎ

아마 심을 때 정성들여 심지 않고 한사람 당 몇포기가 아니고 한 묶음씩 배부하여 심으라고 하였는데 그것 빨리 없애버리자는 씩으로 간격도 중요시 하지 않고 마구 심었는 것이다. 바람통과 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촘촘하고 거기에 또 휴전선이 10km정도 되는 곳이니 전쟁중에 포화로 산 전체가 다탔으나 뿌리가 살아남은 잡목들이 크고 그 또한 욱어져서 힘약한 놈은 볼품이 없고 산 전체가 나무성벽이다.

산림녹화니 하면서 많은 돈들여서 한 정책이었는데 이제는 살만한 나라가 되었는데 쏙가 내기도 하고 쓸만한 나무는 골라서 쓸곳도 연구하여 간벌도 해야 할때가 되었는데 이 또한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신 없이 자기와 당 정권욕에 집착만 하는데 혈안이 되어 정책적으로 돌봐주지 않으니 나무들도 개 고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길섶에 핀 이름 모를 작은 나무는 꽃을 아름답게 피워서 한포기 잘 캐서 집에 심을 곳이 있으면 옮겨오고 싶은 귀여운 것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저절로 태어나고 자라서 주변과 어우러져서 사진에 담아오고 싶은 것도 있고 어쩌다가 보이는 하늘이 구름과 함께 어우어져서 너무 아름다워 그것도 사진기에 담아오기도 했다.

오래만에 무리해서 와본 산책길이 생각보다 그래도 즐거웠다. 무심코 그냥 걷기도 많이 했으나 오늘은 왠지 이런저런 생각 위와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안죽고 살았으니 그것이 고마웠던지 해보았다.

지난해 2월 9일 날자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 1950년 6,25전쟁이 있었는데 내게는 2016년 2월9일 설날이 6,25전쟁만큼 무시무시한 날이었다. 그냥 약 먹으며 재활운동 잘하면 회복될거다고 하여서 그리했으나 일년이 넘었는데 별 진전이 없어서 지난달 초에 경추수술을 했다. 라라라… 또 러러러…등등 괴상한  소리내면서 몸 구석구석을 빛으로 찍어대는 MRI라는 것을 세번이나 찍고… 지긋지긋한 병 생활이다.

국가는 애쓰고 노력한 결과 세계에서 스무번째 조금 넘게 정도 되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데 나는 이제 황혼 길에서 잘 되어본들 전처럼 활발하게 걷기도 어려울 처지가 되었다.ㅎ 그래 웃자 성내고 찡그린다고 잘되는 것도 아니고 또 당장 죽어지지도 아닐 건데 흘러가는 물처럼 귓전을 스치는 바람처럼 남은 여생 살자고 마음먹고 이 블로그나 하며 지난다.ㅎ

사람은 아픈 많큼 성숙한다고 하더니 긴 투병생활로 욕심도 버리고 그저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고 어서 지금보다 더 좋아지기나 했으면 하는 소박한 생각으로 사니 그런지 요즈음에사 눈에 보이는 것도 많고 매일 마음도 편안하다. 어서 좀 회복되어 전라도 고흥에 가서 힘자랑 말고 진도가서 소리자랑 말아라 그리고 벌교도 순천에도 그런거 유명한거 있다는데 다녀보고 싶으다만 그것도 욕심이겠지 다 버렸다고 하면서.

 

밤나무 꽃이 활짝 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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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꽃이 활짝 피었어요.

산책길에서 보니 밤나무가 꽃이 활짝피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단오날을 즐기시던 생각을 하였다.

그러니까 6.25전쟁이 끝나고 쯤인데 그때는 단오가 일년 중 여자들이 하루를 즐길수 있는 날이었다. 동내 남정내들은 단오 전날 짚으로 그네 줄을 매어 줄려고 어른 팔뚝만큼 굵은 그네 줄을 만들었다 물론 여럿이 모여서 짚도 품질이 좋은 것을 몇 짐을 지게에 지고와서 정성껏 비틀어 꼬아서 만들어 뒷산 오래 묵은 밤나무 튼실한 가지에 높게 그네를 맨다.

부실하면 사랑스런 자기아내를 비롯한 연인들이 떨어져서 다칠수도 있기에 정성을 들여서 끊어지지나 않을까, 또 다른 인근 나무에 닿지나 않을까, 그네를 맨 가지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등등 염려하며 정성스럽게 매어 검증까지 꼼꼼히 해서 마친다.

다음날 단오날에는 그네에 동네 젊은 여인들 누구나 와서 하루를 마음껏 즐겁게 노는 날이다. 그날은 시부모님 식사걱정도 어린것들도 할머니가 아니면 남편이 봐주며 하루를 즐겁게 쉬게 하였다.

어머니는 일찍이 창피라는 풀이 있는데 그것을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농안에 간직해두었던 새옷을 꺼내어 입으시고 향기가 좋은 청궁이라는 약초한가지를 꺾어서 옷고름에 꽂아서 들뜻 기분으로 나가시면 나도 엄마따라 가서 하루종일 졸졸 따라다녔다. 100여호 거의가 우리성이여서 서로가 아지매 할매 동생 등 친척들이었다.

밤나무 밑에는 벌써 많은 어머니와 머리를 길게 땋은 누나들이 와서 재잘거리며 즐기고 있었다. 하루 동안 그 밤나무는 수없이 타는 그네로 피곤하게 지탱해주어야 했다. 그때들은 말인데 그래야만 정받이가 잘되어 튼실한 밤이 많이 열린다고 하였고, 약간은 비릿한 밤꽃향기가 건강한 한창 나이의 남정내 냄세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그후 어른이 되어 그 말뜻을 알았다.

왜 하필 매년 밤나무에 그네를 매었느지 그당시는 무심코 지났으나 그후 장성하여서야 그뜻을 알았고 그 향기를 맡으며 곱게 입은 한복들 긴 치마가 공중으로 몸이 날라 올라갈때 바람에 몸을 감싸고 나부끼는 모습은 어린 마음으로 보아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 밤나무와 고생스럽게 살았는 우리 어머니대의 아련한 사연들이 있는 5월의 밤나무 꽃이 활짝피어 아름답게 보이는 밤나무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언제 있기나했나다 조금은 안타깝고 서운하기도 하다.

밤은 땅속에 밤알을 심으면 다른 식물과 달리, 싹이나는 것과 동시에 뿌리가 나와서 그것으로 영양 섭취를해서 자라고 밤알은 그대로 남아서 그 나무가 커서 밤이 열릴때까지 썩지 않는다는 말이있다. 믿기지 않는 말인데 그렇다고 한다.

모든 식물들은 씨가 싹이트고 자라는 동안 씨가 가진 영양을 먹으며 뿌리를 내리는데 밤은 그렇지않다고 하고 또 신주를 밤나무로 만들기에 밤은 노인이 심어서 그 나무가 크면 그 나무로 심은자의 신주를 만든다고 하였다.

또 있다 밤나무는 질기고 단단하며 타닌성분이 들어 있어서 잘썩지 않아 철도가 개발되고 초창기에 철도침목을 밤나무를 많이 썼다고도 하였다. 그런 밤나무에 대한 내가 겪었던 오래 묵은 추억과 말들을 곱씹으며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젊을 때 내가보기에도 키도 크시고 계란형의 어머니 예쁜 그당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는 돌아 가신지 3년이되었는 내 어머니생각도 하면서 이글을 쓴다.

사람은 자기가 겪어보아야 이해가 된다. 늙으신 어머니 다리가 아파서 병원으로 모시고 다니고 늙으셔도 손톱물도 들이고 돌아가실 때까지 얼굴화장도 하시며 머리염색도 새까맣게 하시며 사실 때 때로는 너무하다 이제는 마음도 좀 늙었으면 싶은 생각도 하게하신 아이들을 어렵게 하시기도 하시던 어머니였다. 병원생활도 자주 오래 하셨다.

이제 내가 늙어보니 몸이 늙어서 추하게 보이는데 약간의 외모가 단정하게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해서는 오히려 추한늙은이로 보여질것이다. 아름답게 늙고 건강하게 살다가 가고 싶은데 그래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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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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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제주도여행 1.

지난 주말 28일 아이들과 제주도에 가서 4일을 있었다. 제주도는 운동하는 모임에서 여럿이 다녀오긴 했으나 별로였고 그거는 하도 오래되어서 지금 오라 아라라는 골프장이름 기억뿐이었는데 여행이라고 할 여행은 처음이다.

아들이 지난달 초에 아부지 작년에 고생하셨는데 어디 휴가 겸 저희들과 제주도 갑시다 했다 전에도 일년에 한 두번씩 저들과 함께 이곳 저곳을 다닌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일년 동안 내가 다처서 못했는데 가잔다.

나는 선듯 그래 그거 좋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따라 다니는데 힘들 것이다는 생각이 들고 다니는것이 겁나서, 또 늙은 우리 때문에 지들이 불편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경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고 선뜻 그러자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 좀 생각해 보자 했더니 그후 며칠이 지나더니 28에 예약을 모두 해 두었으니 그렇게 합시다 한다.

내 아들이지만 나와는 많이 다른 무엇이든 박력있게 처리하는 아이인데 이번에 또 그렇게 했다.않된다 소리도 못하고 “그래 애~”라고 하며 성사된 여행이다. 아내도 나와 같이 중국으로 다니며 볼 것도 많이 보고 항상 하는 이야기 중국 유명지를 많이 보니 한국 명승지는 장난감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며 별로로 여겼으나 막상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보니 너무 좋아했다. 나도 덩달아 찜찜하던 기분은 간곳없고 아들네와 가는 여행이 즐거웠다.

누군가가 했는지는 몰라도 ‘인생은 여행이고 여행은 인생이다. 여행은 체험의 보고이며 아름다운 추억의 산실 또 여행은 삶을 풍요롭게 하며 영혼을 살찌운다’고 했다 그 말중에 영혼을 살찌운다는 말이 내게는 너무나 와 닫는 문구다. 그냥 무엇을 보고 예쁘다 좋다 보다 그것을 보고 느끼는 마음속의 물결이 영혼을 살찌게 하는 것 아닐까? 여행이 별거냐 가고 오고 다니면서 보고느낌이 풍부하면 그것이 가장 좋은 여행이 아닐까.

6학년이된 큰손자 이제는 너무 어른스럽고 세상에 태어난지 엊그제 3돌이 지난 막네 손자놈 이제는 비행기도 잘 타고 말도 조금씩하고 어린이 집에 다니더니 서로 협조하는 것 배워서 적응 잘하는 기특한 놈이다. 지도 아기인데 뒷좌석에서 우는 아기보고 아기가 운다고 어서 달래주라고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이야! 아이야” 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보이고 무언가를 지껄이는데 에미는 알아듣는 것 같으나 나는 모르는 말이다.ㅎ

5시 조금넘어 도착했는데 우리는 9인승 승합을 렌트해서 저녁을 먹고 ‘절물자연휴양림’ 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8시가넘었다. 휴양림 이름이 이상하다 절물이 무슨 의미일까? 주욱 주욱 곧은 깔끔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속에 숲만큼 깔끔한 숙소가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여 지어져서 춥지도 덥지도 않고 또 파리 모기들도 아직은 없는 좋은 계절에 행복하다고 해도 될 여행이었다.

하루밤을 자고 아침산책길에서 보니 빽빽하게 들어찬 그 멋쟁이 나무들은 삼나무란다. 절물이란 이름의 유래는 그곳에 예전에 절과 물이 있었다고 절물 이란다. 머 그렇게 멋대가리 없이 지어진 이름인지.ㅎ 그러나 절은 없어지고 산중턱에 약수터가 있는데 그물이 제주에서 가장 좋다고 하였다 없어진 절 대신에 약사암이란 암자가 있는데 이른 아침인데 스피카로 염불소리만 청아하게 들리고 중도 사람도 볼수는 없었다.

차라리 삼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빽빽하게 들어찼는데 삼나무휴양림이고 하면…. 나 혼자 내방식의 생각이다.ㅎㅎ

*참고. 위치. 제주시 명림로 584 (산림청소관국유림). 전화. 064 728 1510. 홈페이지.http://jeolmul.jeju.go.kr  시설사용료. 6인실기준 비수기 4.5만원 성수기 8만원 정도. 4인실 6인실 8인 12인 20인실등 다양함

소래포구 어시장이 다 탔다고…

소래포구 어시장이 다 탔다고…

또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소래포구 어시장(재래시장)이 220여점포가 18일새벽에 탔다고한다.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들이 조개와 꽃게를 한상자 사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소래 갔다가 왔다고 하였다 소래가 어디 있노? 했더니 인천에 있다고 하였다. 며칠을 두고 먹었다 그후 우리는 놀기도 할 겸 가보자고 하면서 인터넷에서 가는 길을 찾아서 전철을 타고 가서 회도 먹고 김장할 젓갈도사고 하였다.

그리고 그후 간혹 아이들과 함께도 가고 우리둘은 자주 다녀오고 했는데… 참 무서운 세상이다. 나는 아무리 잘해도 남 때문에 죽기도하고 거지도 되고 하는데 한사람이 잘못으로 일어난 불로 220여개의노점 상가가 다탓다고 하니 그 많은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이 거지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집이 그집 같은 많은 상가중에서 고른 젓갈집 상냥한 할머니가게도 탔겠지…

그때 쓴 내 블로그의 글을 찾아 읽어보았다. 그때는 내가 한국에 온지도 얼마되지 않아서 아직은 남의나라 같을 때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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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나는 아직도 이곳에서 차 몰고 다니는 것 시내에는 몰라도 멀리 나가기가 버겁어 아내와 둘이서 전철을 3번 갈아타고 소래 시장에 도착하니 2시간 반이나 걸렸다. 차내가 복잡하지 않으면 아무데나 앉았다가도 복잡해 지면 경노석으로 간다 나 때문에 젊은이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이다. 노인들 무임 승차 혜택을 톡톡히 받으며 지정된 경노석에 앉아서 지난 세월 보낸 기억을 더듬었다.

경찰서는 지나가도 무섭고 면소나 군청에가면 큰 혜시나 베푸는 것 같이 고압 적이었던 공무원들, 열차를 타면 서서도 몇 시간씩 다녔던 시절,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어릴 때 보리 베기 하다가 낫에 크게 베어서도 병원에 갈 생각도 안하고 된장 발라서 나은 왼손가락의 큰 상처는 아직도 보면서 지난다.

뼈 빠지게 일해도 하루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자유니 인권이니 하는 말은 듣기는 했으나 그것을 누리면 얼마나 좋은지 즐거운지 몰랐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은 강간한 놈도 사람 죽인놈도 인권 지켜주는 세상이 되었다. 늙었다고 기차도 공짜 태워 주고 적지만 푼돈도 국가가 주는 이래 좋은 세상이 되었고 온 국민이 보험 혜택으로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는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도 살기 좋은 나라이다.

추석이 몇일 남아 있지 않고 모두들 바쁜 사람들이여서 인지 소래 포구역에 내리는 사람들 거의가 노인들이다. 포구 시장에는 아래와 같이 많은 종류의 생선들이 있었고 파는사람 사는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가게도 많고 사람도 많고 싱싱한 꽃게, 조개, 갈치, 고등어, 문어 그리고 커다란 왕새우 등등 많이 있고 맛있게 보이는 젓갈도 미식가들 유혹하고 물통 속에 가두어져 있는 이름 모를 물고기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저 만치에서 고깃배 한 척이 도착하고 좀 있으니 배에서 내린 꽃게 등 해물들이 공판장에서 팔려 상점으로 운반되고 있다. 우리와 같이 부부로 온 사람도 있고 손 수레를 끌고 온 몇 무리의 할매 부대도 보이고 간혹 젊은 아낙들도 보였다. 우리는 조개와 젓갈 꽃게 몇 마리를 사서 오면서 보니 입구쯤에 60년 전에 먹어보았던 국화빵을 젊은 아낙이 굽고 있었다 아니 이거 생선시장에 왠 국화빵! 우리는 오면서 먹을려고 한 봉지를 삿다.

그런데 오면서 먹어보니 옛날 그 맛이 아니다. 모양만 같고 굽는 방법이 같으나 맛이 영 아니다 내입이 달라졌는 것이다. 노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고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가 기구도 새것이더니 더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의 입이 얼마나 총명한데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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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부지 기분이 너무 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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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부지 기분이 너무 좋은날.

30개월된 손자가 지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전화를 할머니가 받는 것을 빠안히 쳐다보더니 벗어둔 양말과 윗옷을 안고 오더니 할머니 앞에 놓는다 입혀주니 내게로 오더니 내 손을 꼭 잡고 일어서라고 끈다. 아마 같이 가자는 것 같다. 그렇게 끌려서 현관문을 열고 아내와 셋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래도 손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끌고 가더니 지가먼저 어미에게 안겨서 타고는 나도 타라고 “타 타” 하였다.ㅎ

보통은 할머니와 함께 내려가면 며느리가 받아 뒷좌석의 아기 카시트에 앉힌다 내가 집에서 내려다 보면 아내는 서서 지켜보다가 며느리차가 안보이면 올라오는데 오늘은 나도 그 놈에게 끌려 내려갔다가 왔다.

손자는 나를 부를 때 “하부지”라고 한다 ‘할’ 발음이 어려운 것 같다.ㅎ 아직 나는 몸이 덜 나아서 몸이 가볍지 못한데 갑자기 끌려 내려가서 추운데 벌을 섰다. 그래도 어린 것이 할아버지를 좋아해서 제집에 함께 가자고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참 좋다.

할미는 느을 그놈 자식 나는 지가 오는 날이면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다가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면 추울가봐 보듬어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와서는 손 씼기고 지가 좋아하는 치즈, 요플레, 쵸콜렛도 챙겨 먹이고 티비 어린이프로 켜놓고, 컴켜서 딩동뎅도 열어서 함께 놀아주고 하는데 할아버지만 좋아한다고 불평을 한다.

손자는 일주일에 두번 어린이 집에서 우리 집으로 와서 두어 시간 있다가 가는데 어쩌다가 감기라도 걸려서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날은 그 주일에는 만날 수가 없다 가서 보고 올때도 있지만 며느리가 불편해 할까봐 그것도 염려가 되어 참고 있으면 10일 만에 볼때도 있다. 그럴 때면 많이 보고싶다

며칠 전에는 집에 갈 때 먹던 포도쥬스병을 가지고 가야 한단다 2 리터 반병도 먹지 않아 무거울건데 할머니가 안된다고 두고 가라고 하는데 기어코 지가 안고 갔다. 아범은 욕심이 너무 없는데 이아이 욕심이 있을려나 조금 컷는가 싶어 기분이 좋다. 그후 어느날은 장난감버스를 또 그렇게 가지고 가더니 오늘은 내가 필요해서 사둔 시트지를 가지고 가겠다고 하여 안 된다고 하나 기어코 가져간다고 하여 빼았겨 버렸다. 한 장을 말아둔 것인데… 집에 가면 이런저런 장난감이 진열장에 가득한데 참 히한한 놈이다.

할머니에게 안겨서 집에 들어오면 바로 나를 끌고 내방으로 가서 컴을 켜라고 한다. 켜주면 바탕화면에 저장된 딩동댕(아이들프로) 아이콘을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딩딩딩” 하며 켜라고 한다. 켜주면 거기서 또 몇 종류가 뜨는데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나에게 “이거 이거”하며 지시를 하고 이 하부지는 지가 시키는데로 해주면 된다.

그렇게 나를 끌고 다니며 이런거 저런 것 하라고 하는 것 돌봐주고 두 세시간을 하고 돌아가고 나면 좀 힘겨울 때도 있다 그러나 재롱스럽게 놀았던 귀여운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아내와 둘이는 즐겁다.

두 늙은이가 사니 별로 웃을 일도 없고 조용한 일상으로 지나는데 그놈이 오는 날에는 먹을 것 챙겨주고 놀아주고 하느라고 바쁘고 통통걸음으로 다니는 모습, 어린이 집에서 배운 어린이 프로를 보고 팔을 어설프게 벌리고 옆으로 아래로 움직이며 율동도 하고, 먹는것도 지가 싫으면 절대로 안 먹는것, 문 뒤에 숨어서 숨바꼭질도 하자고 하고, 내가 보이지 않으면 “하부지!” 하면서 좀 큰소리로 오라고 명령도 한다.

이제는 많이 컷다 가고난 후에도 그런 것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하며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도, 아직은 채워주는 하기스 기져귀도 이뻐서 가끔 끄집어내어 보면서 둘이는 즐겁다. 어린이 집에서는 지난 여름부터 선생님이 화장실에 대려가기도 하고 혼자 화장실의 소변기에 바지를 내리고 한다는데 집에서는 절대로 안한다.ㅎ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힘나게 하는 너무나 귀여운 늦둥이 손자다.ㅎ

 

 

 

근검하지 말아라는 세상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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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검하지 말아라는 세상에 살면서….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를 받고 장래가 촉망 되었으나 갑자기 정조가 죽고 순조초 신유사옥으로 귀양살이가 시작된다. 형은 사약을 받고 자기와 둘째 형은 귀양살이를 하는 폐족이 되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아들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서 교육을 시켰다 그가 자식에게 보낸 편지 글에 보면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큰 흉년에 굶어 죽는 백성이 수 만명이나 되어 하늘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나 굶어 죽은 사람 들을 살펴보니 모두가 개을러서이다. 하늘은 개으른자를 미워하며 벌을 주어서 죽인다.

내가 벼슬을 했으나 너희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고 오직 두 글자 부적이 있으니 이는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 할수 있기에 너희들에게 주노니 야박하다 생각지 말거라. 한 글자는 근(勤)자요 또 한글자는 검(儉)자다. 이 두글자는 좋은 전답이나 비옥한 토지보다 나은 것이어서 일생 동안 수용해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이하 략.

1810년 경오년 9월 다산은 동암에서 이런 글을 써서 아들에게 전해줄 때 그는 전라도 외진곳 강경에서 구걸하며 귀양살이를 하였고 귀양살이 5년만에 아들은 마늘농사가 잘되어서 그것을 팔아서 귀양살이 하시는 아버지를 보러 왔을 때 며칠 먹고 자게 할 곳이 없어 절에 가서 며칠만 아들이 먹고 자게 해달라고 구걸을 하였던 때였다.

다산은 부지런하면 먹고 살 방도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하여 쓴 글이다. ‘머 쾌쾌 묵은 조선시대 이야기를 지금 시대에 하는가?’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다산이 말한 ‘근’자를 광의로 해석해보면 남보다 더많이 노력하고 쉬지 말고 일 하라는 것이고 ‘검’자는 효용성 있게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보면 휴일을 많이 가지고 많이 놀아라 빚내어서 쓸것도 많이 써라 그래야만 돈이돌고 돈이돌면 내가 하는 일도 혜택을 보아서 잘살게 된다 즉 소득이 높아진다고 국가에서 그렇게 권장한다.

부지런하고 절약하라는 근검은 구시대 적인 말이다. 따라서 정 다산도 고약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촌부보다 못한 사람이다.

설이라고 내리4일을 놀았다. 내 집앞 200m쯤 시에서 시민 체육 휴식공원을 만들고 있다. 토목 공사하는 차들이 오락가락하고 포크레인은 연신 흙을 퍼담고 하는데 토 일요일은 반드시 놀고 붉은 동그라미 날 다 놀고 비오고 눈오면 또 놀고 하면서 2년이 넘도록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일년 365일동안 반은 논다 거기에 장비 인원 등 많이 동원되어 있는데 저만큼 놀고도 그 곳에 일하는 사람들이 먹고 살고 돈 벌수가 있을까 싶으다.

간혹 OECD국가중에 한국이 노동시간이 아직 가장 길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그것에 연연할 것 없다 남이 내 살림 살아주지 않고 내 빚 갚아주지 않는다 너도 나도 대기업이나 공무원 철 밥통속에 가고 싶으나 내가 갖추어진 것이 그만 못하면 이제 아무리 노력해도 않된다.

소위 스카이 대학 못 나온 내가 되기 어렵다 현 시대를 원망하지 말고 빨리 잊어야 할 것이다. 오늘이라도 ‘잡 코리아’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중소기업들 사원모집 광고가 수없이 많다.

괜챤은 중소 기업들도 인재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곳에서 마음에는 좀 미흡 하지만 들어가서 정약용님이 자식에게 보낸 ‘근’자의 뜻을 새기고 부지런히 남보다 열심히 하면 대기업에 가서 과장 될 때 부장 되고 부장 될 때 이사가 될 것이다 그러면 기업 커지고 나의 보람도 커질 것이다.

또 다산이 말한 ‘검’자 실천해 보면 처음에는 어렵지만 소득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어 씀씀이를 숙달 시키면 얼마든지 잘 살수있다. 요즈음 세상에 먹고 살고 적당한 문화생활 하면서 사는 것 충분하다.

대기업 연봉 높지만 그대신 받는 스트레스 그리고 수명이 짧다 물론 대기업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능력이 안되는 것 마냥 바라보고 허송세월 하는 것은 바보스러운 짓이다. 그리고 받는 돈 검소하 게 안쓰면 그게 그거다. 사람 사는 것 예전이나 지금이나 모습만 달랐지 근본은 다른 것 없다 근과 검은 지금도 그 효능이 좋은 것이다.

많이 놀고 돈 많이 쓰라는 국가정책은 정권잡은 이들이 좋아하는 국가 총매출 늘릴려고 그래서 그것이 2또는 3%늘었다고 업적 뻥튀기 하려고 하는 그 소리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보잘것없는 시골 노인이 하는 소리지만 귀담아 듣고 따라 해 보면 먼 훗날 잘 했다고 여겨질 것이다. 사람 사는데 가장 지켜야 될 것은 근과 검이다.

 

 

아들에게 지금도 미안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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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은 아들네와 이틀을 함께하면서 지났다.

요즈음 부모자식이 함께 사는 집이 드물고 내 남없이 서로 떨어져서 살고 구세대 신세대가되어 한 가족이라도 남남인 것처럼 살고있다. 그믐날은 아들과 나는 아이들보는 담당이 되어 함께 있었고 설날은 또 설날이어서 함께 하루 종일 있다가 밤에 지들 집으로 갔다.

해마다 제사 모시고는 처가로 가더니 얼마 전에 처 할머니가 위중하다고 다녀오더니 올해는 가지않았다. 그래서 금년 설은 이틀을 아들네와 함께 지나게 되었다. 그러나 별로 한 말도 없고 주가 이제 30개월된 늦둥이 노는 것이 되어 웃고 따라다니고 주방에서 준비하는 두 여자들 시중도 들고 하였다.

그렇게 이틀을 지나보니 아무것도 한것도 없이 지났는데도 저녁때는 그만 갔으면 싶었다. 둘만이 조용히 살다가 네 식구가 보태어졌고 설날에는 다녀간 동생들과 북적거려서 잔치를 치룬 기분이고 몸도 많이 피곤하고 어제 저녁에는 정신 없이 잤다. 사람의생활은 길들이기에 달렸다더니….

오늘아침이 되니 세상이 조용하고 이제는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 밖을 내다보니 눈이 펑펑 내리고있다. 거실에서나 내가 하루 종일 노는 서재랄까 컴 있는 방에서도 넓은 창으로 내다보면 10여km정도 시야가 탁 트였는데 오늘은 온통 컴컴하더니 금방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다.

이렇게 늙은 둘이 살다가 하나가 죽으면 그때는 어쩌나 아내가 먼저 죽고 나혼자는 하는 걱정도 되지만 내가 먼저 죽고나면 저 늙은 할마시가 어찌 살까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질 때도 있다. 아내는 남에게 폐끼치는 것은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라도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이라 더 걱정이다 말로는 그때는 요양원에 간다고 나모르게 준비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들며느리가 지금으로 봐서는 그렇게 하도록 두지는 않을 것 같으나 안 그러더라도 위와 같은 성격이여서 염려를 많이 하면서 지난다. 또 그때 아들과 며느리는 얼마나 고달프겠나 등등을 생각도 한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니다 잘 할것이다 하고 잊으려고 한다.

설을 지나고 이제 나이가 80이 되어가니 그런 걱정도 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들에게는 많이 미안한 생각을 할때가 자주 있다. 그가 대학 2학년말때 내가 많이 어려워져서 3학년초에 군으로 입대시키고 제대하고도 형편이 풀리지 않아서 어렵게 등록하여 다니게 하였고 4학년때는 어느 은행 전산실에 야간 알바를 하며 졸업을 했다.

대학 2학년까지는 제 친구들이 형편 좋은 친구로 여겨 아내는 많은 친구들의 어머니로 여러 애로를 들어주고 먹여주고 잠재워 주고 하여 폼잡고 다니던 놈이 그런 일을 하며 쭈그러져서 학교에 다니게 한 것이 너무나 미안하다.

오늘은 멀 찾다가 나온 지 누나 대학 졸업때 사진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너무 짜안해서 이 글을 쓴다. 아들은 졸업사진도 앨범이 없다. 그때 졸업앨범에 대해서는 아무말 없어서 나는 잊고 지났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아니고 .아버지에게 부담 덜어 줄려고 말하지 않은것이다.

나는 그것을 그때는 몰랐는데 그후 오래 지나서 가정사정 때문에 그가 그렇게 한 것이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부터는 느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그러나 아들은 단 한번도 그 말을 한적이 없다. 한참 희망이 부풀어 지나고 큰 꿈을 그리며 지날 대학생활을 그는 곤궁한 부모를 보고 어렵게 지나게 한 것이 아직도 마음 아프다.

다행히 그것이 그의 생활에 좋은 거름이 되었는지 지금은 건강한 사회인이고 아버지가 되어 살고 있어서 대견스럽다.

 

이제는 옛날이야기. 3) 1950년대 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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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옛날이야기. 3) 1950년대 설 이야기.

지금처럼 입을 옷,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했고 돈이 많이 있어도 살수없는 모든것이 귀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내가 살았던 곳은 아주 시골농촌, 등잔불도 있었고 대개들 석유호롱불로 살았던 시절입니다. 전기 불을 중학교 졸업하고 외가에 가서 보았습니다. 그때 보았던 동그란 작은 유리공 같은게 공중에 가는 선에 매달린 곳에서 나오는 섬광 같은,말만 들었던 전기불빛 호롱불에서 살았던 촌놈에게는 너무나 신기 했습니다.

설에는 할머니와 엄마가 몇 개월 동안 무명실 뽑아 베틀에서 짠 무명천에 솜 놓아 만든 바지저고리를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만들어 주셔서 입고 다녔습니다. 입던 옷도 설 전에 깨끗이 빨아서 엄마께서 손수 솜놓아 새 옷처럼 만들어 주십니다. 그 바지저고리 입고 찍었던 초등 졸업식 사진 지금 보면 참 우습습니다.

5일마다 읍내에 장 서는날 엄마따라 가보면 신기한 물건들을 많이 팔았고 고무신 공책등은 장날 사 두셨다가 설 때면 주십니다만 내복 양말 등 메리야스로 된 물건은 그때는 없었습니다. 엄마는 콩, 깨, 등 잡곡, 닭, 강아지 등을 머리에 이고 들고 가서 팔아서 필요한 그런 것들 사 오셨습니다.

군걸질 거리라고는 콩을 볶아 한 알씩 먹기도 하고 국수꼬랑지 무 등을 먹기도 하였지요. 내가 자라던 곳은 그 때는 고구마도 없었고 감자도 삶아 먹으면 아리는 자주색 감자 뿐이었습니다. 간혹 사탕과 꼬부라진 나뭇잎 같은 것 셈베이라는 과자, 엿, 같은 것을 사다 주시기도 하셨습니다만 군것질 할 것도 귀하고 먹을 것, 입을 것 귀할 때 설은 어린이에게는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설 날에는 일년 내내 먹어 보지 못하는 떡국은 물론이고 엿, 엿콩, 유과, 감주, 곳감, 홍시 등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엿콩은 엿과 콩 또는 쌀 튀김, 깨를 엿과 버물러서 추운 다락 방에 두면 딱딱해진 것인데  풍부하게 많이 만들지 못해서 조금씩 감질나게 맛만 볼 수 있으나 설날에는 100여호 정도 되는 온 동네가 같은 성이 살아서 어른들께 세배하러 다니면 집 집마다 떡국 감주 엿콩 등 내어놓아 그날은 실컷 먹습니다.

요즈음은 옷도 일년내내 유행 따라 사 입고 떡국 과자 과일 주스 등 과일들도 계절 없이 냉장고에 두고 먹고 싶을 때 마다 먹고 있지만, 그때는 계절 지나고 철 지나면 없고 있는 것들도 살 수 있는 곳 멀어서, 돈 없어서 사 먹지 못하였던 시절이었으나 설때 또는 추석때 명절에는 그철에 있는 음식은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 가질수 있고 일상 생활하는데, 사는데 필요한 물건들 많이 있고 그 것 가지는데 큰 어려움 없는 지금 우리아이들 그때 내 어릴 때 겪었던 설 때 그 행복한 마음같이 그들도 행복하겠나 싶은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써봅니다.

없어서 모르고 살았고 별로 가지고 싶은 절실함도 없다가, 설 때 사주시면 너무나 행복했고 지금처럼 난방 잘된 집도 아니고 보온 잘된 옷도 아니고 영양가 풍부한 음식도 아닌 그때였지만 내가보고 느끼는 지금 설이 그때만큼 즐겁지 않게 보이는 것은 내 나이 탓 일까요?

*금년 신정과 설이 다 지나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한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