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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 꽃이 활짝 피었어요.

20140615_100523[1]

밤나무 꽃이 활짝 피었어요.

산책길에서 보니 밤나무가 꽃이 활짝피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단오날을 즐기시던 생각을 하였다.

그러니까 6.25전쟁이 끝나고 쯤인데 그때는 단오가 일년 중 여자들이 하루를 즐길수 있는 날이었다. 동내 남정내들은 단오 전날 짚으로 그네 줄을 매어 줄려고 어른 팔뚝만큼 굵은 그네 줄을 만들었다 물론 여럿이 모여서 짚도 품질이 좋은 것을 몇 짐을 지게에 지고와서 정성껏 비틀어 꼬아서 만들어 뒷산 오래 묵은 밤나무 튼실한 가지에 높게 그네를 맨다.

부실하면 사랑스런 자기아내를 비롯한 연인들이 떨어져서 다칠수도 있기에 정성을 들여서 끊어지지나 않을까, 또 다른 인근 나무에 닿지나 않을까, 그네를 맨 가지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등등 염려하며 정성스럽게 매어 검증까지 꼼꼼히 해서 마친다.

다음날 단오날에는 그네에 동네 젊은 여인들 누구나 와서 하루를 마음껏 즐겁게 노는 날이다. 그날은 시부모님 식사걱정도 어린것들도 할머니가 아니면 남편이 봐주며 하루를 즐겁게 쉬게 하였다.

어머니는 일찍이 창피라는 풀이 있는데 그것을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농안에 간직해두었던 새옷을 꺼내어 입으시고 향기가 좋은 청궁이라는 약초한가지를 꺾어서 옷고름에 꽂아서 들뜻 기분으로 나가시면 나도 엄마따라 가서 하루종일 졸졸 따라다녔다. 100여호 거의가 우리성이여서 서로가 아지매 할매 동생 등 친척들이었다.

밤나무 밑에는 벌써 많은 어머니와 머리를 길게 땋은 누나들이 와서 재잘거리며 즐기고 있었다. 하루 동안 그 밤나무는 수없이 타는 그네로 피곤하게 지탱해주어야 했다. 그때들은 말인데 그래야만 정받이가 잘되어 튼실한 밤이 많이 열린다고 하였고, 약간은 비릿한 밤꽃향기가 건강한 한창 나이의 남정내 냄세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그후 어른이 되어 그 말뜻을 알았다.

왜 하필 매년 밤나무에 그네를 매었느지 그당시는 무심코 지났으나 그후 장성하여서야 그뜻을 알았고 그 향기를 맡으며 곱게 입은 한복들 긴 치마가 공중으로 몸이 날라 올라갈때 바람에 몸을 감싸고 나부끼는 모습은 어린 마음으로 보아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 밤나무와 고생스럽게 살았는 우리 어머니대의 아련한 사연들이 있는 5월의 밤나무 꽃이 활짝피어 아름답게 보이는 밤나무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언제 있기나했나다 조금은 안타깝고 서운하기도 하다.

밤은 땅속에 밤알을 심으면 다른 식물과 달리, 싹이나는 것과 동시에 뿌리가 나와서 그것으로 영양 섭취를해서 자라고 밤알은 그대로 남아서 그 나무가 커서 밤이 열릴때까지 썩지 않는다는 말이있다. 믿기지 않는 말인데 그렇다고 한다.

모든 식물들은 씨가 싹이트고 자라는 동안 씨가 가진 영양을 먹으며 뿌리를 내리는데 밤은 그렇지않다고 하고 또 신주를 밤나무로 만들기에 밤은 노인이 심어서 그 나무가 크면 그 나무로 심은자의 신주를 만든다고 하였다.

또 있다 밤나무는 질기고 단단하며 타닌성분이 들어 있어서 잘썩지 않아 철도가 개발되고 초창기에 철도침목을 밤나무를 많이 썼다고도 하였다. 그런 밤나무에 대한 내가 겪었던 오래 묵은 추억과 말들을 곱씹으며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젊을 때 내가보기에도 키도 크시고 계란형의 어머니 예쁜 그당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는 돌아 가신지 3년이되었는 내 어머니생각도 하면서 이글을 쓴다.

사람은 자기가 겪어보아야 이해가 된다. 늙으신 어머니 다리가 아파서 병원으로 모시고 다니고 늙으셔도 손톱물도 들이고 돌아가실 때까지 얼굴화장도 하시며 머리염색도 새까맣게 하시며 사실 때 때로는 너무하다 이제는 마음도 좀 늙었으면 싶은 생각도 하게하신 아이들을 어렵게 하시기도 하시던 어머니였다. 병원생활도 자주 오래 하셨다.

이제 내가 늙어보니 몸이 늙어서 추하게 보이는데 약간의 외모가 단정하게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해서는 오히려 추한늙은이로 보여질것이다. 아름답게 늙고 건강하게 살다가 가고 싶은데 그래 될는지….

 

추석 달처럼 커다란 어머니의 송편.

추석달처럼커다란어머니의송편.

참오래전초등학교다닐때그때추석의이야기다.

어머니는추석때만되면우리에게송편을만들어주셨다그때엄마가만든송편은요즈음우리옆에흔하게보이는작으만하고손가락자욱이쏘옥들어간기름칠을해서반들거리는그런송편은아니었다.

달덩이처럼둥글고커다란요즈음도너츠라는것만큼큰것이납작하게만든송편그속에는팥등을삶아서반정도으깬고물이들어있는그런좀우직스러운송편이었다.

그송편한두개정도먹으면배가부르고너무맛있었다.

그것을만들때는맏이인나도반드시한목을하느라고셋째,넷째동생을업기도하고같이놀아어서엄마를도와주어야했다.

동생업는이야기를하니말인데학교갔다가돌아오면동생돌보는것은내와내바로다음동생차지이었다.

나는크다고동생을업어야하고내와세살차이남동생은다음동생과함께놀아주어야하였다.

옷에오줌똥묻히는것은보통이고어떤때고뿔이라도들면보채고울고하는것달래느라고참힘들었다.

그때어머니는아버지를도와서일하시느라고어머니또한힘들게지나셨다.

그렇게살으셨던어머니지금연세가90이훨신넘으셨는데시골에계신다.

맏이인내가모시지도못하고또하나의추석을지나면서많이불편한마음으로이글을쓴다.

이런저런사정다이야기할수는없으나오래내려온우리나라의풍속맏이는부모를모셔야한다는그런관념에서해어나지못하고있는별로착하지도못한내알양한심성이라고할까그런것때문이아닌가한다.

지난어느날치료때문에병원셔틀버스를막탔는데전화밸이울렸다어머니시다.

옆에사람들을의식해서조용히“예어머니!”했더니답이없다.또“예엄마!”했으나역시그렇.난감하다

다시할려니많은사람들에게미안하고그냥있을려니엄마에게죄송스럽고그렇게하다가버스가병원에도

착하여내리고전화를하니받으시지를않는다.

그리고한참지난후다시했더니받으셨다그제사누구고하시며넷째이름을부르시며확인을하신다.

아니요맏이아무개다고했더니또넷째이름으로아무개가하신다나는큰소리로내이름을렀다그제사

알아들으시고“맏이가?”하셨다.

이제는귀도잘들리시지않아때로는왕청스러운말씀도하신다.

그런데어머니는이녁이전화를해놓으시고는이따끔넷째이름으로확인을하신다.

처음에는착오로알았는데이제사생각하니그게아니다분명나에게하시고는그렇게하시는것이다.

가만히생각을해보니이놈전화도자주안하고나쁜놈이라는것을알려주기위한것같기도하고늙은에미

죽었는지궁금하지도않느냐하시는것같기도하고….

이래저래마음이편치않다.

하기사그곳에는내바로동생과그아래두명이어머니옆에살고있고,서울쪽에나와또두명6남매가

반으로갈라져서살고있어서우리는명절때어렵게왔다가갔다가하지말고돌아가신

분들은서울쪽에있는남매들이모시고어머니옆에있는남매들은어머님과같이지나자고내가

귀국하자마자그렇게역할분담을해서명절을지내고있다.

아버지가계신다면어림도없는‘돌쌍놈들!’이라고할행위를하며지나고있다.

그렇다이거는경상도북부지방말,돌쌍놈들이하는행위다.

아들이늦게낳은아이키우느라고아내는지극정성이더니이제는힘겨워하여나도틈나는대조수로함

께하여주며지나고있다.

그리고부끄럽게도이나이에형편도넉넉지못하게살고있는신세이다보니의무이행도못하는이맏이의

심정이슬프다.

그러나인생살이는그런것이다.

내일이추석이라고아내와며느리그리고나도함께요즈음풍의작은송편한입에넣으면딱맞을기름이

발려서반들반들한현대식송편을만들면서60여년전에엄마가만들어주시던풍성한그리고그우직스러

운묵직한송편생각을하면서그것을만들어주셨던어머니,이제는90이훨신넘으신어머니,홀로그많은

나날을보내시는어머니얼굴을그려보며이제는나도늙은이마음을달래며어머니생각에눈가를적시며

이글을쓴다.

아들 건강 걱정되어 메일 쓰는 엄마

아들건강걱정되어메일쓰는엄마

하나뿐인아들이제는나이가40이넘은아들그들의가정이있고그의아이또한학교에도다니고회사에서많은부하들과동료들그리고상사들과원만하게사회생활도잘한다.

저지난토요일처가에장모님생신이라고지방에가더니그는일요일에먼저오고며느리와아이는몇일후에온다고하였다.

아내는그러면별로멀지않는곳이니여기에와서출근하라고하였더니그렇게는안되고오늘이나내일저녁에가겠습니다고하더니저녁에직장상사와같이저녁먹으면서했다고하면서술이취해서왔다.

설때왔지만다른내형제들도있고바쁜관계로그후처음본나는이런저런이야기를하면서아내가담은포도주를함께먹었다.

좀과한것아니냐염려되었는데우리는부자간이지만만나면친구처럼이런저런이야기잘한다그리고잤는데염려했던대로잠을자지못하고화장실에자주가고토하기도하였다.

나는좀미안하기도하고제주량은알고먹어야지하는아쉬움이있었으나평상시에그의일상생활에일체관여하지않으므로그러려니하고말았다.

그러나아내는이제부터걱정이많다.

간혹술자리가잦은것을며느리에게들었고저러면안되는데하면서꿀물을타고약을찾고하였다.

아침에일찍일어나더니북어국을끊이고하였으나뜨는둥마는둥하면서출근을하였다.

그리고며칠이지났다그저께아침에일찍일어나더니컴퓨터에앉아서무엇을열심히쓰고있는것같았다나는잠결에이렇게일찍컴에서머하는데하였더니그냥뭐좀볼게있다나

컴에자주앉아궁금한것찾아보고간혹글도쓰고하니또그러는줄알았는데오늘은그게아니다한참있다가이거좀보세요한다.

아들에게메일을썼다.

내용은,말로하면,그래요걱정하지마세요,또머그런것가지고엄마는그러세요해서오늘은내가글을써서보낸다하고서두를하고내어멈에게물어보니간혹그런다고하던데술을그렇게먹으면쓰나하면서염려겸일장충고를하였다.

아직아이도어리고아버지가남겨줄유산도남들처럼없고네가모든걸잘해야하는데네가건강하지않으면큰일난다하면서직장또는다른곳에서받은크고작은스트레스도있겠지만그런걸어쩌다가술먹을기회가생기면술로푸는것아닌가싶어서안스러워하며건강은건강할때지켜야하고더건강토록해야하는데어멈도걱정을많이하는것같더라고썼다.

내게보여주며혹시잘못된것없나봐달라고하여서보니잘썼다.

엄마가다큰아들에게아직도염려되어며칠동안그것이머리에맴돌아서고민하다가쓴글이다.

내아내는흑백이너무분명하고남편에게자식들에게자기때문에난처하게하는행위는절대로하지않고모두가자기처럼그렇게해야만되는좀피곤한여자다.

아이들집에는떨어져살면서자주가보지도않는다그들이우리집으로간혹오는데가는것은며느리를불편하게하는것이라고하며일년이다되어가는데도아들집에는가지않았다그러다가보니아들에게도살가운소리를할기회가없어서인지오늘아침에작정을하고써서보내면서전화로이야기하는것보다효과가조금이라도더있었으면좋겠다는이야기를한다

중국에살때는통화료아끼느라메일을쓰더니지금은한달에한두번만나기도하고지척에살고있어보고싶으면만날수있는데만났을때말을할까메일로할까어느것이더효과적일까생각하다가메일로쓰는아내를보면서자식생각을아직도던지지못하는어머니이어미의자식걱정은언제쯤이면끝이날까?

죽어서저승에가면서도안고갈엄마의마음이아닐가여겨진다.

그렇다이것이어디내아내만그럴까?

이땅에수많은어머니는다그럴것이다많은아들들잘난남의아들도있고그보다못난내아들도있다.

그래도다른것같으면버리고갈아치우기도하지만자식은잘나도못나도못나면더안타까운것이그래서더마음아픈것이부모의마음이고그보다더아파하는사람이어머니이다.

잘난아들이면혹시나하여또더자나깨나염려하는사람이어머니이다.

그래서하해와같은어머니의마음이라고하는것이아닐까.

도지사와 어머니 도시락.

*촌길섭에가을이면지천으로볼수있는쑥부쟁이이다.

자식들이걱정할까봐노환이짙어졌는데도숨기고지나다가쓸쓸히유명을달리한

드라마가있었다그제목이쑥부쟁이였다.

도지사와어머니도시락.

자유당시절50년대의이야기다.

내중학교다닐적에학교마치고집으로가면서신문지국에서신문을받아아버지에게매일갔다드렸다.

그때신문에서읽은이야기경상북도도지사하던분이영전이되어장관으로발령을받아대구역에서많은분들의환송을받으며서울로가는데그분의어머니가아들이차타려고홈으로나가는것을보고아들의이름을부르며이거가져가거라고큰소리로아들을불렀다.

아들은되돌아와서어머니가손수싸주신도시락을받으면서어머니는내가점심굶을까봐요하였다.

어머니는아니다내가싸주어야니가반드시먹지하는일화가있었다.

그때는대구에서서울행기차를타면6시간이넘어야서울에도착하였다그러니차안에서점심을먹어야한다.

어머니는장관이되어가는아들도시락을챙겨주었다.

부모의마음은예나지금이나달라지지않는다자식의머리가허옇고환갑이넘었는늙은이이고그래도지금은자기보다모든것이훨씬능력이있는데도아이처럼걱정한다.

내어머니는90이넘으셨으나지금도내가가면아침밥을손수차려서내게먹게해주시고옆에서아침은조금먹는습관이있어서적게먹으면더먹어라고하시고이넉이자실려고준비해두었던배지밀을가져와서먹으라고하시고또조금있다가아이들이올때사다드린과일을깎아서또먹어라하신다.

나는엄마요세먹는것이그렇게귀하지않고중요하지않다.또한끼꿂어도괞찬다고하면그러면안된다고펄쩍뛰시고손자들오면그놈들께도자꾸먹을것내오시고안먹으면안먹는다고언짠아하신다.

차조심해라날이춥다목도리하고나가거라등등아직도이넉보다는더건강하고다큰자식이지만곧장염려되시는모양이다.

그런것이어머니의마음이다나도늙어보니내아이들이늘염려되고그가정에별일이나없어라고하면서지난다.

이것이부모의마음이다앞서이야기한장관으로영전되어가는그자리는조선시대에는판서라는직함과비교되었고그당시에는조선시대사상이많이남아있어서세도도있었다.그런아들이점심굶을까봐염려하시고그래야만이넉의마음이흐뭇해지는것이어머니이다.

세상이많이바뀌어부모는나를이땅에태어나게한사람나를키워주신분들자나깨나자식걱정하는분들이라는관념은이제는희석되어가더니늙은부모를귀챦아하는생각이늘어만가는시대가되었는지금한번쯤이런이야기를듣고우리모두조금은부모에게고마운마음을잊지말아야할것이다.

내가낳은자식도소중하지만얼마안있으면우리와유명을달리하실부모님생각도자주하면안될까?

내일모래가우리최대명절설이다.

또한고향을찾아모든시름잊고조상님을모시고하루를보내는날이다.

아마열명중반이상이수개월만에뵙는어머니아버지일것이다.

그리고돌아오면또몇개월이지나야뵙을수있을지모른다산다는것이모두들수월치않다마음속으로염려가되어도쉽게가지지않는다.

갔을때나마성심껏잘해드리고편하게지나시도록해드리고왔으면하는데이런말을기회가오면밥먹듯이하는나도말뿐이고그리하지못한다.

어머님죄송합니다.

아내가 해주는 칼국수를 먹으며

아내가해주는칼국수를먹으며

아내가오늘저녁에칼국수를하였다.

식구가둘뿐이니주먹만하게반죽해서만두빚는방망이로하였다는데작은호박도썰어넣고조개살도들었고정성을들여서만들었다.

둘이서그것을먹으면서나는예전생각을했다내어릴때어머니는칼국수를자주하셨다지금보다좀지난

8월중반쯤그러니까음력7월들에힘든농사일은거의끝나고밀타작보리타작다끝나서옆동네에있는작은방앗간에서그런대로최신기계로밀을빻아가루를보관해서일년을먹는다.

그밀가루는지금밀가루와다르다조금은거무스레한것이음식을하면맛도조금달랐다.

그것으로소다넣어빵도만들어먹고국수는자주해먹었다.

아이들이많으니무엇이든지많이해야한다.

국수반죽할때보면된장끓이는툭사바리만큼크게반죽해서길이가1미터쯤되고굵기는야구방망이끝부분쯤되는홍두깨로밀고펴서또밀가루뿌려서또말아서밀고하여서요즈음스마트폰만큼크기로접고또접어서칼로썰어무쇠솥에물을끊여조금씩흩어지게넣는다.

작은호박을썰어넣고때로는감자도썰어넣기도하고해서만든국수요즈음처럼선풍기도없이둥그런부채붙여가며땀을철철흘리면서모기불피워놓고먹는맛은지금은찾아보지못한다.

그때쓰던그칼은요즈음처럼세련된칼이아니고장터에가면대장간이있는데거기에서큰망치작은망치로쇠를달구어서두들겨서만든무겁고두꺼운우직스러운칼이다.

끊이는솥도담아먹는그릇도먹고있는공간도그때보다요즈음은너무나세련되었지만그때그국수맛이내게는더좋은것은왜일까?

분위기하니생각나는것,초가지붕이엉을벗기지않고또덮고또덮고한지붕위에해지고어두워지기시작하면하얀박꽃이활짝피어있고낮에는길섶호박넝쿨에핀호박꽃에는벌이잉잉거리고그옆에는호박이열려서씩씩하게자라고앞들논에는줄지어서늘어서서따가운태양살을먹고벼가싱싱하게자라는농촌에서먹는국수맛이다를수밖에없지요.

엄마는그것밀어서접어칼로썰때마지막꼬리는우리손바닥만한것아이수대로만들어나무때어국수끊인불남은숯불에구우면군데군데불룩하게꽈리가진것설탕도안넣은국수꼬랑지가그렇게맛이있었다.

하나더먹고싶지만그것많이만들면국수가적어서않된다.

요즈음처럼냉장고도없고조미료도없다집에서담근간장에약간매운고추잘게썰은간장에간맞추어먹는그국수맛은오늘저녁에아내가자기딴은잘한다고만든국수맛과는너무다르다.

어머니혼자서식사준비아무리많이해도일꾼과3살터울인우리가자라며먹는데는언제나모자랐다.

풍부하지못해서많이만들지도못하지만혼자서만드는것도힘들었다.

그러니그때음식이아직도지금것보다맛있게느껴지는것아닌가한다,

흔해빠진음식그동안달라진입맛이아직도기억에남은그맛을찾기란어렵다.

그렇게해주시던어머니얼마전에90이되어생신날구워주신국수꼬랑지를더먹고싶어걸신거렸던우리남매들그후에우리남매들에게생긴크고작은혹들모두모여서작은음식점에서점심을먹었다.

흥겹게노는동생들과좋아하시는어머니를보면서내년에또이런기회를만들수있을는지하는생각이나서눈물이나는걸애써참았다.

늙어가니안해도될쓸데없는생각을자주하게된다.

정성들여만든국수아무생각없이맛있게잘먹으면될건데.

어머니 9순 연(宴)을 하고.

어머니9순연(宴)을하고.

나는내불로그를2009년6월21에개설하고23일에어머니라고글을쓴적이있다.

그때나는아내와함께중국에살때다.

내잘못으로어려워져서어머니는동생집으로가시게하던날동생차를타고떠나시는뒷모습을보고내어려워진현실과겹처한없이울었다.

아버지돌아가시고홀로계시는어머니가힘겨워하였던기간이불과3년이지나고그동안어머니는남편을잃은슬픔에맨날우시고마음잡지못하시다가겨우안정을되찾을무렵에이불효한자식이가사탕진하고이넉마저항상내집에만계시고그게정상이라고여기고사셨는데가시게하고나마저정처없이정든대궐같은내집을비워주고떠나야하는내신세가한없이서러워서그랬는것같다.

그렇게보내신어머니,몇년은작은아들집에계셨는데혼자따로살고싶다고하셔서작은아파트를사서혼자살고계신다.

소시적에예쁘고깔금한것좋아하셔서인지매일오는도우미아줌마덕인지잘정리정돈된집이내집보다더깔끔하고장롱을열어보면화사한색갈의옷들최신핸드폰각종영양제등동생들이잘보살펴드려서가득하다.

나는국내에돌아왔지만아무도움도드리지못하고바라만보는형의심정은편치않다.

외국에사는관계로생신때에도밥한끼도함께먹어보는기회가드물었다있어도아내가혼자아니면나혼자한두번이였는데이번에는아들며느리딸손자들과함께모두모여이넉이한사코마다하시는일이나함께작은식당에서간단하나마정성들인어머니90세생일잔치를하였다.

돌아왔지만모시지도못하고혼자계시게하는맏이,아무도움도드리지못한죄스러움으로지나고있는데맏이라고한말씀드리라는데긴말하다가는좋은자리에조카들보는데울것같아서그저오래도록살아주셔서고맙습니다,동생들고맙다는말만하고말았다그래도울컥거리는마음을진정시키느라애를먹었다.

연세높으시지만아직도기억력이좋아누구생일은언제고누구는몇시에태어났고옛날어느때는집안에어떤일이있었고언제는무슨일이있었다는이야기를해주신다.

9순을맞아전국방방곳곳에흩어져살고있는이넉의자손들중외국장기출장중인몇명만빼고는거의다모였다일가친지들은초청하지않고어머니직계만모였는데도어느집잔칫집같이많이모였다.

식당을빌려식사도하고뒷풀이를했는데언제배웠는지동생둘이는어머님은혜를색스폰으로멋지게연주를하니우리모두어머님은혜를합창하고돌아가며노래도부르고춤도추고잔치가더욱흥겨워졌다.

둘째는취미로그림을그리더니국전에입선도하고내가중국살때는국내는물론중국북경에서도개인전을열기도했다.

그림만그리는줄알았는데연주실력도좋다열심히사는동생들칭찬해주고싶다.

어머니가마흔이되어낳았던막내도벌서오십이되었고큰손자는벌써마흔이넘어어디에세워도의젓한사회인이되어있다.

이모저모따져보면어머니는복이많으신분이시다아버님돌아가시고20년이지나는동안홀로사시지만이넉의자식들아들4명딸2명그아래자손들모두건강하고말썽없이잘살고있다.

이제는살이다빠지고앙상한어머니의손을만지다가눈물이왈칵났다.

젊으실때그렇게도예쁜것좋아하시고더예뻐지고싶어하셨던어머니,우리들더잘키우실려고자나깨나애쓰시던어머니,이제몇번의생신을더맞으실까?

밤새안녕하십니까라는말이있는데90이넘으신어머니가얼마나더사실까하는생각이들어많이슬프다.

지금은우리들께아무것도도움주시는것없어도우리형제자매들의정신적인지주구심점이되어어머니계신집은우리의마음속안주의집이였는데가시고나면오늘과같은이런기회가다시또있을까하는못된생각도났다.

아무도움주시지못하고때로는아이들혼줄나게하더라도오늘도안부전화를드릴수있게해주셔서참으로고맙습니다어머니오래오래건강하세요어머니사랑합니다.

엄마가 굽어 주시던 국수꼬랑지

엄마가굽어주시던국수꼬랑지

어릴때농촌에살면서쌀이귀할때이야기이다.

밭에는늦가을이면보리,밀을파종해서봄이되면온들판이파랗고좀건조한논에도심어서겨울에땅이얼고부풀어올랐는것을이른봄이면보리이랑을밟아서뿌리가활착되게할려고우리도학교에서보리밭밟기를하기도했다.

6월이되면그것을배고논에는모심기를한다.

그때는요즈음처럼모심는기계가없어서엎드려서한포기씩손으로심었다.

온동네사람들이품앗이라고오늘은누구네집내일은우리집하며서로모여서모내기를해주었다논매기도그렇게서로해주고하였다.

여자들은그때새참,점심만들어머리에이고들로가고아이들은막걸리주전자들고강아지도뒤따라논둑길로가서논과논사이에손바닥만한둑에앉고서고함께둘러앉아서먹는다.

쌀이귀하여대개들보리밥이고쌀은조금넣어할아버지와아버지밥그릇에넣어드리고엄마와우리아이들은꽁보리밥이었다.

가끔은국수도만들어서먹었다.

모두들바쁘고아이들도학교갔다오면소풀배기새참갔다드리기동생들보기등을도왔다.

늦은여름이되면초가지붕위에하얀박꽃이낮에는오무려있다가저녁때해지고나면활짝피어아름답다.

길섶이나밭둑에는호박넝쿨에호박꽃이탐스럽게피어있고벌들이깁숙이들어간호박꽃술에잉잉거리며이꽃저꽃으로날아다니고싱싱한호박넝쿨사이사이에는작은호박좀큰호박이자란다.

엄마는그중에가장큰호박을따서지짐도굽고국수에썰어넣기도하셨다.

밀을추수해서동네정미소에서빻아그밀가루로콩가루조금넣고함께반죽해서홍두께라고1미터정도되는어른팔뚝만한잘다듬어진막대기로한번밀고또밀고수차레하면애기머리통만하던밀가루반죽덩어리가종이두께처럼얇게둥그렇게된다.

그것을밀가루뿌려서몇번접어서칼로곱게썰때마직막에남은꼬랑지손바닥만한것을불에구워주셨다.

엄마가국수하는날은국수꼬리그것남겨주지않고다썰어버릴까봐자리를뜨지못하고엄마가국수를다밀고끝낼때까지옆에붙어있었다.

그당시에는요즈음처럼군것질할거리가별로없어서그것을너무나맛있게먹었다.

항상모자라서더먹고싶었으나엄마는국수양을조금이라도더많게하실려고종이찢어놓은것같은마지막꼬랑지만구워주셨다.

그꼬랑지요즈음아이들먹으라고하면단맛도없고불에그을려서볼품도없는것얼굴찡그리며버릴것이다.

그러나우리어릴때에는너무맛있었고60년이지난지금영감이되어서도그것한번더먹어보고싶지만그렇게국수만들지도않고있어도숯불도없어가스불에또는후라이팬에구우면그맛이나오지도않을것이다.

그때엄마가만들었던애호박썰어넣은국수도너무나맛있었다.

그러나요즈음은그런국수도없다.

간혹칼국수집이라고있어옛날생각하고가서먹어보나그맛과는너무나다르다.

아내는그렇게할줄도모르고그국수맛나게만들어주시던엄마는이제90이다되어예전처럼만들어먹자고보챌수도없다.

60몇년이지난옛날이야기를오랬만에우리집에서동생들과아이들데리고이설날차례를지

내면서이제는기력이많이쇄잔하신엄마를보면서써보았다.

사랑하는엄마국수꼬리는만들어주시지않아도좋으니오래오래건강히우리들곁에계셔

주세요.

그 큰 뜻을 모르고…

또금년어버이날을맞이하여이곳에는모친날이라고하면서길거리에

현수막도보이고음식점에는모친모시고오면10%할인해준다는유혹의안내글도있다.

나는20여년동안홀로계시는어머니가계시지만이곳에온지10년이넘어서도한번도

이날같이보낸적이없다.

바빠서너무머니하면서전화한통으로때우고산지가오래다.

간혹귀국도내편의대로하여서얼굴한번보고오는아들,생신이되어도전화한통으로만

때우는무심한아들90이다되셔가는어머니금년생신에는같이할수있겠지하는건마음뿐이다.

오늘도전화한통"엄마아픈신데없읍니까?아이들다잘있지요…"하였다.

말도않되는소리,90이다되신노인이어찌아픈데가없겠노?이런나쁜놈…

그래도외국에서고생하는맏아들때문에주야로마음아파하시는어머니

나는얼마나생각했나오늘은아침부터마음이편치않다.

그러던중아내는몰래글을써서블로그에올려놓고나더러보라고한다.

그것을읽고또이울보는티슈종이를여러장버리면서이글을쓴다.

아버지너무나도무서웠던아버지내게만은더더욱엄격하셨던아버지,

맏이는동생들보다더완벽한인간이되어야된다고우리집안에기둥이되어야된다고

여기셨던아버지그큰뜻모르고나는때로는원망스러웠던아버지가신지20년이넘었다.

간혹귀국해서일년에한번정도내마음좋을려고산소다녀오는것으로때우고하였다.

이제는곧이곳생활청산하고귀국하여이런저런밀린숙제들해볼려고한다만

숙제가너무많아다할수나있을런지.

이아침에멀리계시는어머니오래전에사랑하셨던이넉의아내나의어머니두고가신

아버지생각에또이나이에남의나라에살면서

사람구실잘못하고사는내서글픈현실로많이울면서이글을쓴다.

오늘 두 여인 때문에…

두여인때문에오늘은두번울었다.

남자는태어나서3번운다고하던데요즈음나는칠칠치못하게잘운다.

그렇다고내생활이고달퍼서세상이원망스러워서우는것은아니다,사람이살면서슬플때도울지만즐거울때도울고감동적일때도운다.

잃어버렸다싶은사랑스러운사람을만났을때도울고,소중한사람을잃었을때도슬퍼운다아버지돌아가시고슬퍼서많이울었다.

아끼고모았던재산몽땅잃었을때도한없이눈물이나오더라,재산도명예도생활터전도다잃고나니그럴수밖에없었다.

눈물도마른다더니나중에는나올눈물이없어인지그냥멍청해지더라,그런데오늘은이것도저것도아닌데두번울었다.

나도좀독하다는소리듣는놈인데나이탓인지요즈음은자주감상에젖는다.

몇일동안친구가와서같이다니느라블로그에도최소한의시간만쓰느라고가볼곳도못가보았으나어제친구가가서오늘일찍부터다녀보았다.

내게자주오시는어느블로거항상상큼한말로많은불로거들께때로는즐겁게또어떤때는깜짝놀랄말을잘하던여자친구가어머니를보내고오랬만에귀국하여슬퍼하는

글을읽었다.

그도그럴것이자기는외국에있고한국에계시는어머니멀기도하지만사는데바빠서누구나그러듯이내옆에있는가족신경쓰느라고소홀했던엄마였을것이다.

다시못볼먼곳으로보내고마음아파한동안보이지않더니오늘아침에보니엄마와같이찍은사진을블로그대문에다가올려두었다.

갑자기내어머니가생각났다한동안큰아들죽는줄알고마음아파하셨던어머니,잘살아도못살아도너희집에같이있다가죽겠다던어머니,지금은동생들과같이있게하고남의나라에산지10년이넘었다.

90이가까워오는어머니생각에아내모르게가만이울었다.

그리고는몇시간이지났는데이번에는아내가또나를울린다.

금년들어서이곳생활을청산할려고하고있었다,작년에그만들려고했으나연이란끈질긴것이여서모질게저버리지못하고한해만하고있었는데금년에는그만두고아이들께갈려고준비하는중이였는데아내가지금의심중을글로써두고이것한번봐주세요해서보았더니

오기싫은중국에와서그동안에있었던애증의중국을글로써서또나를울린다.

미운정고운정이라고하더니미운중국일때도많이있었고빈털털이가되어가진것은세상살이이겨내고살아갈재능밖에없었던나를받아준중국이였다.

내가좋아서살려고왔던중국에서세월이약이라고세월을10년넘도록먹으며별로가진것도없고빈털털이라도아쉬운것도없고원망스러운것도없고어느누구보다행복히지날수있는사람이되었다.

아내는값있는물건들도아니지만쓰던가구들이며수년동안기르던수족관의열대어화분의화초들을두고갈려니마음아프고우리를외국사람이라고언제나감싸주고아껴주던이웃사람들을두고어찌갈까하며눈물어린글을썼다.

그걸읽으니나또한지난긴세월동안의흘러간많은것들이머리를무겁게하여울었다.

지겨울때도있었지만넓은중국에신기한것들보면서즐거웠던때도많이있었다.

그렇게마음먹으니모든게사랑스럽고그리운곳이다.

진달래 꽃을 보면서

이곳에는진달래가없다.

어느분의블로그에서화사하게진달래꽃을많이올려놓은걸보고

어릴때생각을았다.

흔히들그해에가장먼저피는꽃은매화이고매화는속에서핀다고하지만

우리동네에는고귀한매화도없고요즈음에야매화연산홍개나리목련등

귀한꽃도있지만

그때는그런꽃들은볼수없었고흔해빠진진달래가제일먼저피었다.

봄이무르익을즈음에는산이빠알갛게들여저너무아름다웠던고향이다.

그때겨울은너무나추웠다.

요즈음처럼집안에물이나오는시설은없었고

동내한가운데우물에두레박으로퍼서물지게에지고오거나

여자들물동이를머리에이고와서물독에부어놓고썼다.

세수는마당가에넓은돌을놓고위에세수대야에물을담아세수하고

방에들어갈려고동그란문고리를잡으면손이달라붙었다.

옷은목화를따서뽑아배틀에할머니가짜서놓아만든바지저고리를입었고

내복이니팬티런닝구는없었다.

그러니겨울을보내는게추웠다그러다가봄이되면너무좋았다.

동무들과같이뒷산에올라가면

어느어른의옆에노란잔디할미꽃이곱게잔디밭에앉아

따사한햇볕을받으며멀리보이는들판을내려다보면

아지랑이가피어오르고진달래꽃잎을따서혓바닥이분홍색이되도록먹기도했다.

누나들엄마따라들판에서냉이도캐고쑥도뜯어끊여주시면맛있게먹었다.

조금봄이무르익으면동네젊은아낙과처녀들이화전놀이라고

진달래가곱게산에모두가서하루를즐겁게놀도록하였다.

어린우리도따라가고엄마들은집에있는중에가장예쁜옷을입고

그날은남편시중도시어머니의잔소리도듣지않고하루를마음놓고보낼수있는

일년에한번뿐인휴가날이다.

나도엄마따라가면곳에많은여자들중에엄마가가장예쁘고

옷도잘입어서많이기뻤다.

집에기르던닭도마리잡아서검은무쇠걸어놓고끊이고

옆에짖고전부치고따라온아이들과같이먹고즐거운하루를보냈다.

그때우리들의엄마들은불쌍하였다.

터울또는터울로아이는그렇게많이낳았는지

낮에는밭에나가밭을매고머슴들남자들이들에서일하면10시쯤부친게

막걸리간단한음식중참이라고들에갇다주어야하고

돌아와서점심해야하고오후에중참저녁손끝에마를날없고

빨래는볏짚태워서재에다물걸러그물에쌂아서냇가에가지고가서

방망이로두들겨빨았다..

양잿물이나오기전이다.

요즈음이야양잿물이무언지모르는아이들도지만

남자들도편치않았다갈아서뿌리고매고소풀배어소죽

끓여먹이고겨울에는산에가서일년나무나르고365편할날이없었다.

그래도너도나도모두다그렇게살아가니요즈음처럼상대적빈곤감도없고

모두들위로하고좋은것도보지도했고상상도못하니

지금이가장행복한것으로여기고즐겁게살았다.

요즈음에야지구반대편어느나라에조차도10여분이지나면알게되는데

온갖문화혜택누리고세상모든것아는것도너무많은데그때보다우리는행복한가?

그분의블로그에서아름답고곱게진달래를보면서

어릴때엄마따라화전놀이보았던흐드러지게진달래를생각하면서

많은생각을하였다.

*이봄에가내모두건강하시고행복한나날이계속되시길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