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청강을하고돌아오는버스안에서잠깐음악방송중에윤이상선생에대한이야기가나오는것을들었다.평소독일의소설가루이제린저가선생을’상처입은용’이라고불렀다는데그것은선생의어머니가용이상처를입고승천을하지못하는태몽을꾸고선생을낳았다는데서기인했다는것이었다.
선생의태몽처럼이념적인상처를입은채외국에서세계적으로뛰어난작곡가로이름을날리면서도고향에는돌아올수없었던선생의일생이이제는어느쪽에서도따뜻한빛을받으며다시재조명되고피어나고있다고한다.
지난11월3일선생의서거10주기를맞아<윤이상평화재단>과<통영국제음악제>가주관하는기념행사가남과북을오가며진행되었고1997년에창단된<윤이상앙상블>이평양,파주,베이징등에서공연을하였다.그리고선생의삶과역경을담은영화가제작될예정이라고한다.
1917년경남충무에서태어난선생은17세에일본에유학하여음악에대해공부하였고무장독립운동을하려다1943년에는체포되었었으며해방후고아들을보살폈다.음악교사및대학강사로활동하다가1956년파리음악원으로유학을떠났고이후서베를린음악대학에서도공부하였다고한다.
독일에서<낙양>(1961년),관현악곡<바라>(1962),<오,연꽃속의진주여!>(1965)등을작곡하는등활발한활동을하던중동베를린간첩단사건으로1967년임의동행형식으로귀국하여재판을받고무기징역을선고받고복역하던중에동료음악가.교수들의항의와독일정부의도움으로감형되었다가석방되었다.
선생은이후독일국적을취득하였고<나비의미망인>(1967),오페라<요정의사랑>(1969),<광주여영원히>(1981),<예악>,<무악>,<무궁동>(1986),<나의땅나의민족이여>(1987)등을작곡하였다.선생의작품은중국,한국의궁중음악과불교,도교의신화적소재가주를이루었으며독일에서킬문화상,독일연방공화국대공로훈장,괴테메달등의상을받았고’현존하는유럽의5대작곡가’로꼽혀왔다.
한반도분단이라는비극으로인한상처야우리민족전체가입은것이지만선생처럼우리민족의뛰어난음악성과실력을세상에떨치고도정작고향에는오지도못하고인정도받지못한채로살아야했던선생에게는그것이더한이크고비극적이었을것이라는생각이든다.
이제선생은하늘나라에서평생을입은상처를치유하였을까?
GodsometimesputsusinthedarktoshowusthatJesusisthelight.
예수님이빛이신것을보여주기위하여어떤때는하나님께서우리를어둠속에두기도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