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얼마지나서손님과저녁을하게되었다.태국에파견되어대사관(일하던곳이외교부산하기관이라사무실이대사관에있었다)에서일하던때그곳에서근무하시던참사관이일이있어잠깐한국에나오신것이었다.태국파견당시나이많은노처녀과장시절이었고추석에혼자외로이(?)집에서책을보고있었는데참사관님부부가김치를담궈가지고오셔서무척놀라기도하고감사한일이있었다.
귀국한후결혼을하게되었고신랑이오랫동안외교부에근무했던사람이라그참사관님도신랑을잘알고계셨다.대사관소식과우리기관소식등을반갑게주고받으며저녁을먹는도중갑자기참사관님왈,
"강집사님은헌금을많이해서시집을잘갔다고생각해요"
"예?아,예….그렇게생각하세요?"
(태국한인교회의같은성도이셨고집사님)참사관님의확신에찬말씀으로인해난확실하게"헌금을많이해서시집잘간여자"가되어버렸다.
당시는기관의정책으로파견된인력들이약6개월간근무하고귀국하던때였다.얼마나오래근무할지확정이안된상태였는데나는태국에파견된직후교민들이나가는한인교회에바로등록을하고성가대에서활동을하였다.
몇달이지나서교회에서부흥회가있었다.한인교회가교인수는500여명으로많았으나나같이일정기간파견나왔다가돌아가는신도가많아서인지교회건물이없이주일에호텔을빌려예배를보는형편이었다.
강사로오신목사님께서부흥회마지막날인금요일에교회건축에대한설교를하신후각자가하나님이허락하시는헌금을하자고권고하시고다들동시에기도를하였다.얼마를해야하나요?그때눈앞에커다랗게떠오르는숫자는100,000이었는데가슴이철렁하였다.100,000원이아니고100,000바트(4,000달라)였다.맙소사…
당시나의해외수당이월1,800달러약간넘었는데석달치를한꺼번에받았었다.마침삼일전에생활을하자면신용카드가있어야할것같아확인했더니외국인은4,000달러를예치하면은행에서발급해준다고하여십일조헌금과생활비를제외한나머지를탈탈털어은행에맡겼는데바로그금액이었다.어떡하나…그러다가하나님께탄원(?)을하였다.’하나님제가여기서생활은해야하니까요제가한국에돌아가는것이확정되면찾아서헌금하겠습니다’
그리고다음날토요일에사무실로갔다가너무놀랐다.모든것을정리하고3주후에귀국하라는공문이팩스로와있었다.월요일에비서를시켜돈을찾아왔고수요예배에가면서헌금을하였다.그이틀후금요기도회가있었는데벌써부터담당하시는집사님이간증을부탁하셨던터라무엇을이야기할까계속기도하던중이었다.
금요일저녁교회에가기전기도를하는데’건축헌금을하게된경과’를말하라는확신이왔다.
그러나그것은나의상식(?)과자세와는먼이야기라그냥어떻게내가하나님을떠났다가10년만에돌아오게되었는가의경과를이야기하리라마음먹고교회로갔다.막상간증시간이되자약10분정도가시간이주어졌는데문제가발생을했다.내가나의말을조절을할수없는이상한(?)현상으로나의말이끝나지를않았고,계속’건축헌금’이야기를해야한다는초조감으로어찌할바를모르는상태가되었던것이다.
그래서그냥세상의판단에신경쓰지않고무조건순종하기로마음을바꿔먹고부흥회에서어떻게사인을받았고어떻게하나님과타협하기를원했고그타협이기가막히게받아들여져다음날귀국명령을받게되었다는이야기를하였고이야기는바로끝났다.
그날저녁에약50명정도의성도들이모였었는데나중에들으니내가하나님께다시붙잡혀오게된것과헌금이야기가상당히퍼졌고기존성도들이많은자극(?)을받았다고하였다.불과몇개월간출석했던나의헌금순종이쉬운일이아니라고들생각했던모양이었다.당시태국화폐와한국화폐를비교할때한국화폐가몇배로가치가높았기때문에현지에서보면큰(?)금액으로생각되는액수이기는했다.
한인교회는그부흥회가계기가되어3년후에좋은지역의좋은빌딩의한층을온전히구입해서설립된지몇십년만에헌당예배를드렸고목사님께서한국에오셔서한인교회를다니다귀국했던신도들과만나시는자리에서자세하게하나님의역사에대해설명을하셨다.
매년한번씩목사님과사모님이한국을방문하실때만나뵙게되는데뵐때마다"집사님의귀한헌신이큰도움이되었습니다."하시는데참들을때마다민망한마음을금할수가없다.(이분들께는아마도계속집사로불릴것같다)
결혼한지벌써10년째로접어들게되는데지내면지낼수록더좋아지고더이뻐만보이는남편을보면하나님께서확실하게나를잘시집보내셨다는것은확신하는데과연그것이태국에서한헌금때문이었는지는잘모르겠다.
TounderstandGodisimpossible-toworshipHimisimperative.
하나님을이해하기는불가능하지만그분에대한경배는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