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사회현실을모르고산다면마음이편할것이다.
그러나어설프게라도진실을알고난후에옳다고생각하는길을가지못한다면그것처럼괴로운일이없을것이다‘
들을때에는대수롭지않게들었던선배의그말은예언처럼맞아떨어졌다.
대학을졸업하는날까지하루도마음이편치못했으며늘어떤죄의식에시달려야했다.
어떤길이더옳은길인가를알면서도포기했고친형제처럼가까이지내던선배와친구들곁을떠나‘배신자’가되었다는죄책감이었다.
그런생각때문이었는지행동은하지않았지만계속모여서‘공부하는모임’에들어갔다.
이사회의잘못된점이무엇인지또어떻게되어야하는지말그대로공부를계속하였다.
졸업전학교의추천으로H사에서류를내고시험을보던날아침이었다.
광화문네거리에있는사무실에서기다리고있는데밖에서학생들의시위대가지나가고있는것을보았다.
그광경을내려다보면서내가‘보통의평범한삶’을선택했고결과가어찌하였던그것은내가책임지는나의인생길이라는생각을하였다.
매일밤늦게까지야근을하고바쁜사회생활을하면서서서히나의‘죄의식’과괴로움’은적어져갔다.
J교회대학부를떠난후로5년여의세월이지난시점이었다.
다니는동안한번도만날기회가없었던J교회의담임목사이신P목사님에대한소식은늘신문지상을통해알았다.
그리고24년이지난올해4월그목사님을가까이서뵐수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사무실을옮기고정식으로청사를공개하는날이었다.
많은민간단체의몇년에걸친투쟁과노력으로만들어진국가인권위원회가초청손님으로민간단체의원로인사들을모셨기때문이었다.
평생을투쟁과고생으로일관한P목사님을비롯한여러원로들을만나면서24년전피했던아니도망치다시피떠났던그때를떠올렸다.
이렇게도만나는구나하는…
그러면서문득어쩌면내가이렇게국가인권위원회에들어와서일을하게된것도그동안살아오면서어찌하였건사람들을위한일을해보겠다고했던그모든노력들이젊은시절에나를괴롭혔던
‘죄의식’을갚기위한’속죄의길’이아니었나하는생각을하였다.
Beagrace-giver,notafaultfinder.
(흠잡는사람보다은혜베푸는사람이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