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기간동안광화문네거리로모이고또모인사람들을보며22년전서울역광장이기억났다. 1978년입학하고시위로인해가을에있는문리대축제가없었고2학년때에는봄에있는학교축제가없어졌다. 그리고맞은3학년봄. 하는수없이각과대표들을찾아나섰고설득을해서몇명의후보자들이나왔고바로선거운동이진행되었다. 그렇게해서영문과대표가문리대학생회장이되었고회장은4학년들을중심으로각부서의부장들을선정하면서3학년이었던내게홍보부를맡겼다. 그리고전국적으로학생들의매일행사가되어버린시위에전학교학생들이다참여하게되었다. 서울역광장에서종로로행진한어느날,경찰이시위대양쪽에서쳐들어왔다. Godcaresaboutourcaresbecausehecaresaboutus.
모든학교의학생회와교수들과총장까지함께공식적으로시위에참가했던그시절의함성이…
그해가을어느날새벽에공부하느라도서관으로가던중에10.26저격사건이있었고모든것이혼돈으로들어간듯했다.
민주화의거센물결은학교에도밀려왔다.
학도호국단이아닌학생회를구성하기위해단과대별로선거위원회가결성되었다.
어찌하다가문리대선거위원장이되어학생회장을뽑는일을하게되었다.
회장자격은4학년이었는데졸업을불과1년남겨둔시점에서누구도나서려고하지않았다.
각후보자에대한벽보를제작하고대강당에서몇번의합동연설회를주관하고투표함을만들어설치하였다.
모든것이처음이었고다들무슨힘들이났는지밤을새워일들을하였다.
홍보부장으로서내가처음했던사업이자유게시판설치였다.
누구든지자유롭게하고싶은말을쓰게하자는취지였는데처음에는하얗게남아있던공간이얼마지나자시국토론에서교수에대한비판까지온갖글들이올라갔다.
학생시위는급기야서울역광장,종로네거리로확장되었다.
저녁에는학교에서밤을새워가며토론으로지샜다.
당시학생회예산의상당부분이학생회관에서밤을새울때먹은밥값으로지출되었다.
당시옆에있던수학과대표와같이종로뒷골목으로뛰었다.
그친구는집이종로여서종로의골목을구석구석잘알고있던터였다.
(하나님은우리를보호하시기때문에우리의염려를돌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