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잡지기사

이기사작성이계기가되어서마지막으로수양막내딸을만났다.

사람을위해걸어온한길인생
-강명옥국가인권위원회국제협력담당관

월드컵열기가달아오르기시작한5월말,일본과중국의법조계인사들과민간단체(NGO)들이한국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를찾았다.그들보다앞서설립돼활동하고있는한국인권위에게한수배우기위해서다.그들에게한국인권위와인권법을설명하는데앞줄에서있는사람,강명옥(44)국제협력담당관이그주인공이다.그는"동북아에서인권에관한한한국은선도적이다"라고자부한다.

마흔넷,이젠일을정리할나이?

국가인권위원회10층국제협력담당실.창문너머시청과덕수궁이보이는강명옥씨의자리에는두꺼운파일들이흐트러짐없이쌓여있고몇건의서류들이결재를기다리고있다.책상벽에붙여놓은공식회의일정은숨돌릴틈이없다.주인없는책상을구경하던사이,그가날쌘걸음으로다가왔다."오래기다렸어요?급하게국장님이부르셔서…"하루에도몇번씩건물위아래를뛰어다녀야하는그에게구두는사치인듯하다."구두?두시간도못버텨요."그래서그는발에꼭맞는건강신발을신는다.225m의자그마한신발의끈이풀릴듯말듯묶여있다.

국제협력담당관인그는국제회의에서인권에관한우리측입장을밝히고다른나라의입장을수용,전달한다.또각국의인사들과만나면서국제사회에서인권의식을높이는일도그의몫이다.부임한지이제갓한달을넘겼지만그는마치이제껏해온일같다며능숙하게업무보고를하고계획서를쓴다.자면서도일하는꿈을꾸는그의지독한일중독증은쉽게고쳐지지않는모양이다.첫날부터밤12시를넘기는야근행진을하다몇일전과로로꼬박3일을앓아누웠어도언제그랬느냐는듯이"바쁜시간,쉬는시간모두좋다"는그다.

"인권위로올때한후배가40대중반이면이제슬슬일을정리할나이가아니냐고하더군요.그때’어머,내나이가벌써그렇게됐나’하고놀랐어요.난늙는거몰라요.아직도대학다닐때그마음이거든요."재작년연세대정치학박사과정을시작할때도주위에선쉰이다돼서학위받아봐야뭐하냐고했지만그는의연했다."공부하는데나이가있나?뭔가할일이있어서준비하는거라고생각했어요.결국물흐르듯이자리로왔고."모대학에서강의를할때학생들에게"늘꿈을가져라"라고강조한것처럼그역시항상새로운일들을구상하고실천한다.꿈꾸는만큼미래는만들어진다면서.그리고세상에는할일이많다면서.

충전기혹은신의용사

그는82년이화여대영문과를졸업하고현대중공업에입사했다.무역업무등을맡으면서"기업의역동성과참을성을배웠다"고한다.여직원수는손으로꼽던시절,’청암회’라는여직원모임을만들어사회적으로불리한그들에게힘이돼주려고했다.여걸중에여걸,잘나가는’커리어우먼’이었다.하지만과장승진을앞둔89년,사표를썼다.그리고경희대평화복지대학원에서국제경영학석사과정을밟는다.서른한살의나이에안정된직장을버린이유는’세계평화와인류복지를위해기여할인재를키운다’는학교의교육목표만큼이나순진했다."졸업하면서른중반인데그때새로운일을시작하는것도쉽지않다면서저를설득하는교수님도계셨습니다.하지만공익을위한일,가능하면국가의일과국제적인일을하고싶었습니다."

91년대학원을졸업하고는소망대로공익을위한국가기관,그것도국제적인업무를하는외무부산하한국국제협력단에7년간몸담게된다.봉사사업과장,민간협력과장,태국사무소부소장등을역임하며제3세계에봉사단을파견하고어려운나라를돕는20여개국의NGO들과협력해세계빈민들에게다가갔다.의료봉사활동과국제회의참가를위해대만,태국,필리핀,몽골,케냐등을방문하며30대를보냈다.95년해외로파견될70여명의봉사단원들을훈련시킬때는프로그램진행에서부터단원들간식거리정하는것까지모든일을챙기느라몸이망가지는줄도몰랐다."그때외국어를가르치러온외국인강사들이충전기(rechargingmachine)란별명을붙여줬어요.저러다쓰러지겠다싶은데도여전히일한다고."그3개월의훈련기간이후얻은장염과위염은조금만무리해도재발한다.하지만그저’조심해야지’하고넘기는그다.

유네스코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의이삼열원장은작년교육원의기획행정실장을맡아의욕적으로일하던그를’신의용사’라고정의한다.독실한크리스천으로신의의지에따라사는사람이라는뜻이다.강명옥씨역시이를부인하지못하리라."평화복지대학원다닐때,새벽마다학교근처에있는광릉수목원까지왕복2Km를달렸어요.그때숨이가빠지면서’아,목숨은순간이구나’하고깨달았죠.살아있다는것,숨쉬는것자체에감사하게됐고.진인사대천명이라고하느님이부르시는자리라면최선을다할뿐입니다.이미내삶은내게아니란생각이듭니다."지금의자리에올때도그런마음이었다."인권을다루는일,결국은하나님이가장사랑하시는사람들의권리를지키는일을하기위해그렇게오랜시간여러곳에서일하며교육받은것같습니다."

내삶은’아이’보다’사회’에

공부와일에밀려결혼은포기하고있던서른여덟,지금의남편을만나결혼을했다.남편이야기가나오자얼굴에생기가돈다.주저없이"오래기다린보람이있다"며남편자랑에잠시열을올린다."남편은제가끊임없이새로운걸배우도록자극하고도와줘요.남편덕에운전도배웠고.피아노나서예처럼그동안하다만것도다시할생각입니다."하지만그가올초에완전히단념한것이하나있다.바로아이엄마가된다는것.

결혼후아이를가지는것을의심하지않았다.그래서남편과함께아이이름도미리지어두었다고한다.집안의돌림자’영’에온갖글자를대입시켜보다정한것이’영중’이.아이를갖기위해그좋아하는일도잠시접었다.이름모를한약도먹어보고쑥뜸에요가,인공수정까지시도해봤지만영중이는끝에얼굴을보여주지않았다.마흔이넘으면임신이어렵다지만특별한이유가있는건아니라고한다.

"친정어머니가세상에태어나남는건자식뿐이라는하셨을때내가낳지않아도세상에는돌봐줄아이들이많다고대답했는데…아마세상모든아이들을영중이로보고살라는뜻인것같습니다."이제는마음이편하다는그는"아이가없어서이많은일들을할수있잖아요.내삶은’아이’보다’사회’에있겠다싶습니다"라고말한다.그의책상벽에는세계어린이1억5천만명이영양실조로신음하고있다는기사가붙어있다.

평화엄마,사람이사람답게사는세상을위해

사실그에게는3명의아들과4명의딸이있다.큰아들과는12년차를필두로시집간막내딸과는19년차가난다.95년모신문사홈페이지채팅방에서이야기하며’평화가족모임’이란이름으로만나오다가수양아들과딸로맞아들인특별한인연이다."하느님이날이렇게위로하시는구나,감사할뿐입니다."큰딸이용재씨는"어머니뵈면서아직제가해야할공부가많구나하는생각이들어요.여자대통령처럼당당하면서도모든사람들에게한결같이자상한분이십니다"라고전한다.그의인터넷아이디를딴’평화엄마’는그의또다른이름이다.

지난6월3일,그는지방의한교도소를찾았다.교도소내의인권침해와차별행위에관한수인들의진정을받기위해서다.작은응접용탁자를사이에두고50cm도안되는거리에앉아그들의억울한이야기를들었다."천하의흉악범이라는생각보다는그저불쌍한사람들이라는생각이들었습니다.죄는미워해도사람을미워해선안되지.돌아오면서사람이사람답게사는세상을위해,국민의눈물을닦아주기위해,더열심히일해야겠다고다짐했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에서유네스코로,그리고지금의인권위까지굽이돌아왔지만결국’사람을위한한길’을걸어온’평화엄마’강명옥씨.남은길을가기위해건강신발을두둑이준비해놓아야할일이다.

정순화기자
(http://dew.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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