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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온 아이

눈에서온아이

눈에서 온 아이
에오윈 아이비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가끔 동화책을 집어 들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린 조카에게 읽어 줄 책을 고르다 보면 어린 시절에 즐겨 읽었던 책들이 눈에 띄게 되고 머리 속에 간직했던 당시의 설렘과 두근거림, 그리고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유명 동화가 주는 이야기들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내용들이 훌륭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읽힌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백설공주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와는 조금 다르게 설정이 되어 있는 내용들, 저자가 실제 알래스카란 지역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책 전체를 아우르는 배경의 묘사가 추운 날씨를 싫어함에도 매혹적으로 이끈다.

 

잭과 메이블, 이 부부는 갓 태어난 사내아이를 잃고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알래스카로 왔다.

1920년대가 배경인 책의 풍경은 지금처럼 비행기라든가 철도, 기차, 자동차라는 이기 문명의 혜택이 없었던, 기껏 이용할 수 있는 것 정도가 철도, 막 광산의 개발 붐으로 인해 추운 계절이 닥치면 광부로서도 일하는 사람들을 받는 곳이다.

 

메이블은 잭을 사랑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알래스카로 이사를 왔지만 잃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 주위의 교류가 없는 단조로움에 자살까지 시도해보게 되지만 이내 집으로 돌아온다.

 

첫 눈이 내리던 날, 부부는 밖에 쌓인 눈을 이용해 눈사람을 만든다.

모자, 옷, 장갑까지 모두 걸쳐 입은 여자아이 눈사람, 그 눈사람은 하루 밤새에 자취를 감추고 이내 한 여자아이가 소리도 없이 그들 주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 어느 때는 죽은 토끼가 집 앞에 있을 때도 있었고 그 소녀의 발자취를 따라 쫓아가 보려 하지만 이내 소녀의 행방은 오리무중, 그 와중에 끈질기게 그 아이에 대한 접근은  아이가 서서히 경계의 벽을 허물면서  친근감을 만들게 된다.

 

파이나-

소녀의 이름이다. 봄, 여름, 가을을 산속에서 지내는 아이, 추운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릴 때쯤이면 이들 부부를 찾는 아이는 그렇게 그들 부부 사이에 소리 없이 가족이란 의미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 아이로 하여금 얘깃거리가 생기고 대화가 이루어지며,  이웃과의 소통을 통해 그 소녀에 대한 수소문을 하지만 모두가 모른다는 말, 설령 그 소녀의 존재가 있다 하더라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 진기한 풍경이 이어진다.

 

이 책의 특징은 한없이 넓게 펼쳐진 알래스카란 땅을 배경으로 각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과 열매, 농경지 개간을 위해 말을 사용하고 블루베리를 이용한 잼 만들기와 파이 굽기, 닭을 키우고 한 겨울을 나기 위한 양식으로 사용할 무스를 사냥하는 모습들이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점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지금의 매연과 이기 문명이 하루라도 단절이 된다면 겪게 될 불편한 사항들을 감안한다면 요즘의 슬로 시티란 개념의 말이 무색할 정도의 당시 생활상들의 모습이 추운 계절에만 찾아오는 그 소녀의 이미지와 그 소녀를 기다리면서 한 해를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들의 겹쳐지면서 잔잔한 동화의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파이나를 보면서 메이블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주었고 소장하고 있는 동화책 속의 이야기가 실제로 자신들과 파이나에게 닥쳐올 것처럼 두려움에 떨지만 파이나 자신의 삶은 그녀 스스로 결정하는 것, 이 책의 전개 과정은 눈이  내리는 알래스카의 풍경과 더불어서 아름답고  쓸쓸하면서도 시린 이야기를 그린다.

 

과연 파이나는 어디로 갔을까?

아직도 파이나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사람들을 파이나는 알기나 한 걸까?

 

책 속의  파이나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대화체 따옴표가 없다.

그래서 더욱 신비하게 느껴졌던 파이나란 소녀의 존재는 동화 속에서 나온 인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착각과 함께 사랑하지만 자신의 일부분들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발자취가 여전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이야기, 연일 무덥고 습한 날씨에 추운 설원의 나라를 배경으로 읽는다는 것도 무더위를 날려 줄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러시아 설화 스네구로치카의 ‘눈 소녀’에서 이야기를 착안해 이 책을 썼다는데, 그러고 보니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아넘긴 아픈 사연이 있었네.~

 

2013년도 퓰리처 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작품인 만큼 대중성을 제대로 겸비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눈에서 와서 눈으로 돌아간 파이나, 책 묘사처럼 실물로 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미스터 하이든…쉿! 그 남자를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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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인간이 지닌 인격 중에서 자신 스스로도 몰랐던 품성을 지니고 있다면?

아마도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 패턴과 그 실행에 있어서 커다란 일을 저지르게 됨을 볼 때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완전범죄는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범죄란 말은 아마도 심증은 있으되 어떤 결정적인 단서나 물증이 없이 미완결의 상태로 남아 있는 미제사건이 다른 말로도 쓰일 수 있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을 접했다.

 

 

헨리는  유명한 소설가다.

그의 작품은 영화로도 판권이 팔릴 만큼, 유명 인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현시점에서 아내 마르타와 같이 살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말 못 한 비밀을 간직한 채, 몸을 사리고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소설가로서의 평판에 걸맞은 그의 글 솜씨는 소설가로서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그 까닭은 그의 작품 모두 아내 마르타가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은둔형에 가까운 마르타-

자신은 오로지 글을 쓰는 것에 만족한 삶을 영위할 뿐,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출판사에 작품을 보낸 헨리가 졸지에 소설가로서 행세를 하게 된 것으로 인생역전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된다.

 

두 부부 사이에 합의는 묵언적으로 그렇게 실행이 됐고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는 베티와는 어느덧 불륜의 사이로 발전, 뜻하지 않게 임신이란 소식을 듣게 된다.

 

마르타를 사랑하는 헨리, 아내에게 말을 해야겠다는 결심 하에 베티를 죽이려는 결심까지 하게 되고 베티를 절벽에 위치한 곳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 장소에서 차를 몰고 온 베티를 멀리에서 본 순간 차를 밀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정작 죽은 사람은 아내 마르타란 사실을 알고 경악을 하게 된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자신과 베티와의 불륜을 알고 있던 마르타가 베티의 차를 타고 만남을 약속한 장소로 갔던 것이 불행을 자초한 결과로 이어진 사건은 이후 헨리의 교묘한 전략에 의해 경찰 조차도 범인으로서 생각을 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그를 옭아맬 증거가 없기에 난항을 거듭하는 과정이 스릴의 맛을 즐기게 한다.

 

헨리는 그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비밀에 싸인 남자,  마르타는 그를 그렇게 부부로서 사랑을 해 왔고 베티 또한 자신의 임신을 알고 행동을 보인 헨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사건의 진행을 지켜보지만 헨리의 전략에 또 하나의 희생물로서 이용을 당한다.

 

이 책의 특징은 악인은 악인으로서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 안에 또 다른 품성을 지니고 있는 하나의 인간을 보는 재미를 준다는 데에 있다.

헨리의 행동을 보면 악인은 분명한데, 그 안에 내재해 있는 또 하나의 착한 심성을 가진 또 하나의 자아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읽게 되는 과정이 독자들로 하여금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죽은 사슴이 고통 없이 빨리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나 자신을 미행해 온 보육원 동기생을 죽음에 몰아넣을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그를 구해주고 오히려 그가 헨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상황을 연출하는 장면에선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은 행동이 오히려 사건의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격이 되어버리는 타이밍의 여건이 작가의 촘촘한 구성의 틀에 짜여서 빈틈을 보일 수가 없게 만든다.

 

그도 알고 있다.

자신이 언젠가는 범인으로 밝혀질 것임을, 그러기에 그는 생각한다.

비밀을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것과 진실 안에 거짓이 들어감으로써 어떻게 사람들을 혼돈에 빠뜨리게 되는지를….

 

– 거짓말쟁이들은 잘 알겠지만 거짓말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려면 아주 약간의 진실이 들어 있어야 한다. 한 방울만 들어가도 충분할 때가 많지만 중요한 것은 거짓말 속의 진실은 마티니 속의 올리브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자신의 행동의 차후의 결과까지 생각해서 보인 행동들은 헨리란 인물에 대한 탐구를 하게 만들고 완전범죄로 가기 위해 그가 실행한 일련의 일들은 대사와 대사의 맞물림이란 톱니바퀴가 어떻게 맞부딪쳐 돌아가는지, 그것을 따라 읽어가는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이런 맛에 책을 읽는다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 “비밀이 있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 자네는 모를 걸. 그건 마치 기생충과 같은 거야, 영양분을 빨아먹으면서 점점 크게 자라지. 급기야는 심장을 갉아먹고 이제 밖으로 나오려고 해. 까딱하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눈 위로 기어 나온다고.!” -p 51

 

 

– 체포되어 무거운 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거의 백 퍼센트에 육박하는데도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마도 검거율이 ‘거의’ 백 퍼센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통계란 어디까지나 내 얘기가 아니라 남의 얘기니까. 그리고 통계라는 것이 ‘드러난’ 범죄를 다루기 때문이리라. 드러나지 않은, 말하자면 들키지 않고 ‘성공한’  범죄는 비공개의 천국에 머문다.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결과는 내년에도 올해만큼 많은 범죄와 복수가 발생하리라는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다.

 

범인이 잡히지 않고 유유히 사라지는 것을 생각해 보니 문득 ‘유주얼 서스펙트’란 영화가 생각이 난다.

천연덕스럽게 형사와 마주 앉아 강심장을 드러내며 조목조목 일련 하게 알리바이를 성사시키는 주인공의 허를 찌르는 마지막 압권을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장면 중에 하나이기에 이 책에서 나오는 헨리의 심리를 따라가 보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된 살인, 정확히 말하면 사고로 시작해서 그럴 듯 하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계획하에 저지르는 행동들이 범인은 실제 가까이 있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들이 그럴듯 하게 그려진다는 점에서 완전범죄의 성립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살면서 항상 바른 말, 참된 진실만을 얘기하고 살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는 삶이겠지만 때때로 뜻하지 않게, 아니면 상황에 맞춰서 고의적인 거짓말을 하게 된다.

헨리의 심리를 따라가다보면 일말 그의 행동에 왜 그런일들이 벌어져야했으며 고도의 두뇌게임을 벌이는, 그러면서도 영화 리플리를 연상시키는 듯 하지만 다른 패턴의 구성들이 촘촘하게 그려진다.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는 것보다는 항상 혼자인 것이 낫다’란 문구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 속의 문장, 정확히는 아내 마르타가 쓴 구절이기도 하지만 헨리의 인생을 대변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악몽으로부터 살기 위한 인생의 길을 간파한 그 답게 나머지 인생의 길도 여전히 혼자이니 말이다.

 

 

악인은 그 형량에 맞는 벌을 받은 것이 마땅하지만 때론 정의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돌아가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책이기에 색다른 스릴을 읽길 원한다면 실망하지 않을 것 같다.

 

 

                                                 
                                            

킨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단편집을 처음 접한 것을 뒤로하고 이번에 장편소설을 통해  작가를 다시 만났다.

처음 접한 작품이 SF를 다룬 소설집이었기에 이 책에 대한 기대도 커짐을 느끼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느낌이 참 좋다.

 

가끔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나와,  만일 타임슬립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어느 시대, 어떤 장소, 누구로 경험해보고 싶은가 하는 질문들을 던지고, 각 개인들마다 내놓는 기발한 답들은 나도 모르게 현실에선 비록 어렵지만 공상적으로나마 상상을 해보곤 하던 시간이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게 했다.

 

아인슈타인은 머지않아 인간이 시간을 정복할 날이 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그렇다면 과연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의 어느 시대로 가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예측한 이론의 근거들에 비추어보면 가상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과학의 발달로 인한 앞날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방송 드라마에서도 이런 장치를 이용한 극들을 보고 있노라면 허구지만 재미를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배경은  1976년 6월 9일이다.

이날은 흑인 여성 다나의 생일이자 약혼자인 케빈과 새로 살 집에 이삿짐을 정리하게 되면서 시작이 된다.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는 다나, 깨어나보니 케빈과 새 집은 온데간데 없고 어느 숲 속에 자신이 있다.

이 곳은  1815년 메릴랜드 주의 숲. 왜 자신이 이상한 과거의 장소로 와 있는지도 깨닫기도 전에 호수에 빠진 한 소년을 보게 되고 본능적으로 그 소년을 구하게 된 다나, 하지만 소년의 엄마는 흑인이 자신의 아들을 구한 사실을 알고 경악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시간의 역 이동은 순간적으로 반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인 1970년대와 과거 백인이 소위 말하는 흑인 노예를 다루던 시대를 오가며 겪게 되는 일들을 다나란 여인을 통해 보여주는데, 다나란 흑인 여성이 처한 당시 1815년의 시대를 살아갈 때는 오로지 그 당시에 맞추어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대적인 의식 속에 살아가는 현재의 흑인 여성 다나는 노예를 하나의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백인들의 시선에서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 도망 다니다 잡혀오면서 매 맞고 다시 노예의 생활을 하는 다나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뿌리와 인종적인 차별, 그 안에서도 힘없는 여성이란 존재가 지닌 연약함을 무방비로 강간하고 이용가치가 없을 시에 다시 팔아버리는 행위를 하는 백인들의 행동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케이블에서 방영한 뿌리 4부작이 생각났다.

아주 어릴 적 보았던 알렉스 헤일리란 작가의 뿌리는 무척 길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방영된 것은 진액만 뽑아서 만든 것인지 좀 짧다는 아쉬움을 주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쿤타킨테의 딸이 주인집 딸의 때로는 친구로서, 때로는 장난감이란 존재로서 동거하다 끝내는 팔려가고 팔려간 백인 주인에 의해 강간을 당하고 아이를 낳는 장면들, 백인 감독관들의 무차별적인 흑인 노예를 길들이거나 총살하는 장면들은 흑인의 역사를 보는 듯한 느낌과 울분, 통탄을 다시 느끼게 해 준 드라마였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의 전개를 보면 여성의 필치답게 흑인 여성인 다나의 시선과 행동을 통해 인종과 노예란 제도, 특히 젠더란 문제를 공상이란 장치를 이용해 결합해서 시도한 점들이 상당히 어색하지 않게 그려졌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공상 속의 시간으로 들어가 이미 과거의 결과물을 알고 있는 주인공이 위험에 닥쳤을 때 어떤 행동을 하면 위기를 모면한다는 식의 모험극이 아닌 인간이 이룬 사회란 토대 위에서 벌어졌던 각 역사 속의 인식 문제를 소설이란 장치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줬단 인상이 기억에 남게 하는 작품이다.

 

이 책 속에서 나오는 힘없이 당하고 사는 흑인들의 삶은 저자 자신들의 조상의 일들을 그린 것이었고,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인종 용광로란 이름을 달고 사는 미국이란 나라의 독특한 정치와 인종들 간의 불화는 이미 일찍이 이런 점을 느끼고 있었던 저자의 생각을 드러내 보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속도감이 좋게 읽힌다.

이 말은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심을 증폭시키는 저자의 구상력과 필치, 그리고 소설이라고는 하나 인간 사회에서 벌어진 인류학적인 문제점과 사회적으로 바르지 못한 처사에 대한 일들을 풀어낸 저자의 역작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신분차별이 있던 시대가 있었던 만큼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도 생각나게 만든 작품, SF계의 ‘그랜드 데임’이란 이름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윈제인 KINDRED를 한국식으로 드러내 책 제목으로 삼았으면 훨씬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디마프

자식들은 모두 이기적이다…..

요즘 종편에서 방영하고 있는 디어 마이 프렌드(일명 디마프)를 보고 있다.

드라마를 별로 즐겨하는 편은 아닌지라 tv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몇 편, 그것도 주위에서나 인터넷을 통해서 접하고 볼까 말까 하는 정도에 머무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에 방영 중인 디마프는 자발적으로 요일을 챙겨가며 시청중이다.
노희경,…

이름 석자만 대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드라마 작가로서 이름을 당당히 올린지도 꽤 됐고 그가 출간한 책과 대본집도 접해본 터라 그의 글 솜씨는 두말없이 내가 꼽을 수 있는 작가의 이름에 올린다.
이 작가가 나를 웃기게도 하고 울리게도 한다.

그것도 매주, 본방을 사수하면서까지, 이렇게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디마프는  그동안 그가 써온  타 드라마와 같은 계열의 인간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넘어선 어떤 희. 노 .애 . 락을 제대로 드러내 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 일어날 때 머리가 무척 아팠다.

마치 두통이 일어난 듯한 그 느낌은 어제저녁의 드라마가 발단이다.

김혜자란 탤런트의 연기가 좋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가슴을 통렬히 긁을 줄은 몰랐다.

물론 그 원천적인 뒷 배후엔 노희경이란 작가가 쓴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고, 박완(고현정 분)이 자신의 뺨을 무참히, 가감 없이 때릴 때의 그 심정과 내래이션 고백은 정말 눈물바다를 이루게 했다.
노희경 작가가 쓴 글을 더듬어 보니 언젠가 읽은 대목 중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마지막에 용서했다는 글 구절이 생각났다.

가장으로서 가정에 무관심했던 아버지, 엄마가 고생한 것을 보면서 컸던 자식의 입장에서 바라 본 아버지란 존재, 결코 용서를 할 수 없었던 아버지였지만 막상 돌아가시는 시점에서 아버지를 보니 눈물이 그렇게 나더란다.

어머니 때도 마찬가지였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작가가 바라 본 디마프에 나오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면 한없이 편안하고 무난한 삶을 살아오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저마다의 모두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하루하루 지탱해가며 그렇게 하루를 살아갔고, 때로는 죽일 듯이  미워하면서도 신체가 불편해지니 마나 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장난희 아버지, 그런 남편을 젊은 평생 맞아가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원수처럼 보여도 남편이기에 보살펴 줘야 하는 오 쌍분 여사의 삶, 장애가 된 아들의 앞 날을 걱정하는 노년의 인생은 그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어제의 압권은 김혜자의 한 맺힌 울분과 암이란 소식을 받게 된 장난희, 두 여성의 이야기였다.

새벽 2시쯤에 저절로 집을 나간 희자(김혜자),  성당 안에서  잘못을 빌었다는 그 말은 무엇일까? 치매에 걸려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발길이 머문 곳은 바로 첫 아이의 생사 갈림길에 섰던 신혼집, 바로 남편의 고향이었고, 그녀는 정희에게 쏟아붓는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자식을 잃기는 두 여인의 처지가 같지만 다른다.

희자는 아픈 아들로 인해 정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당시 정희에게도 삶의 고난은 있었기에 친구의 도움을 들어줄 수 없었고, 그렇게 희자의 아들은 세상을 저버리게 된 사연이 있지만 정희에게도 유산이란 아픔이 있다.

버럭 화만 내는 남편, 아프다는 말 한마디만 제대로 들어줬더라면 아이는 살릴 수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했던 무심했던 남편에 대한 원망을 저버리고 그렇게 남편과 부대끼며 살아온 처지는 자식을 잃었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여인에 대한 행동들이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어머니는 위대했다고 했던가?

장난희는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도 가게 일과 통장 정리로 바쁘다.

완이에게 했던 말처럼 자신보다는 남겨진 가족 걱정 때문에 한 시간이라도 쪼개써야했던 고난했던 시간들과 세월, 이제 좀 살만했더니 병에 덜컥 걸려버리고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완이의 입장에선 엄마가 답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엄마와 딸이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작가는 대사 한마디마다 힘을 싣는다.
엄마가 아프단 말을 들었을 당시에 희자의 아들은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치매 가족을 둔 시청자들이 봤다면 엄청 공감했을 부분들을 작가는 놓치지 않았다.)
누워있는 엄마의 얼굴, 손, 발에 입을 맞추고, 다시 엄마 옆에서 누워있는 장면, 자신도 한 가정의 가장이자 불편한 장모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엄마의 치매 소식은 하늘이 무너질 듯한 심정이었음을, 완이가 엄마의 병 소식을 들었을 때 고백하듯이 엄마보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했다는 말 앞에선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는 옛 말의 근거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엄마들은 강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인 적은 없었고, 자라면서 꿈 많은 소녀의 시절을 살았을 그녀들, 살아오면서 자연히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낳게 되면서 부여받는 이름표, 엄마란 이름 두 자,…

그런 이름 두 자는 평생을 가족, 남편,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자신의 인생을 찾아보지 못했고 모두의 사연들을 통해 보이는 이러한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세대들의 삶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오게 만든다.

먼저 떠나버리게 만들었단 죄책감에 싸인 엄마로서의 희자,  수술에 앞서 남은 가족들 걱정에 싸인 엄마 난희, 그렇다면 자식들은 과연 엄마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까?

마지막 대사에 자식들은 이기적이다란 말이 정말 통렬하게 다가왔다.

죽을 때까지 자식들은 부모의 걱정덩어리의 존재다.

밥 한 끼 잘 먹고 다니고는 있는지…. 100세가 넘어도 80세의 자식은 아직도 어리게 보인다는 말이 있듯 여전히 부모란 존재는 죽을 때까지 자식 걱정으로 인해 당신의 안위는 강 건너 물이다.

디마프를 보면서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었어도 여전히 그들의 삶 자체는 젊음이요, 시간의 성숙함이 지닌 삶의 지혜와 혜안 속에 젊은 청춘들은 이들의 삶에 대한 그릇된 생각은 접어야 함을 알려주는 드라마란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도 분명 젊었던 시절엔 지금의 청춘들이 겪었을 사랑도 있었을 것이고 노년에 다시 온 첫사랑과의 재회도 잔잔한 강물의 흐름처럼 다가오지만 그것이 보기 흉하다거나 주책 맞다는 생각은 들지 않기에 그들이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실린 힘들이 작가의 세밀한 관찰력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 이 드마도 종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한다.

특별하지도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 겪어 온 인생의 이야기를 통해서 노년에 나도 저런 베프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러움과 많은 생각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 소통과 그에 따르는 행동들, 젊은이로서 노년을 바라보는 생각과 시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 이 드라마를 통해 반성을 하면서 보게 됐다.

이제 50에 접어든 작가 노희경이 바라 본 디마프의 세계는 언젠가 모두에게 닥칠 시간들임을, 젊다고 결코 함부로 생각과 행동을 내세우지 말 것임을, 함께 살아가고 느껴가야 할 시간들이 점점  짧아짐을 느낄 때는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해 줬다.

노희경, 그대는 정말 멋진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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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차일드

블러그차일드

 

블러드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보통 SF계열의 소설가들을 꼽으라면 대표적인 작가들이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인 , 로버트 하인라인, 스티븐 킹이 생각나는데, 이 작가의 이름은 처음이었고 따라서 작품도 처음 접해본다.

 

알고 보니 일부 이 작가에 대한 작품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것이었고 절판되다시피 했던 작품들과 더불어서 처음으로  작가의 단편집과 저자의 에세이 두 편을 포함한 것으로 책이 출판이 되었다.

 

저자는 흑인이다.  흑인이면서 여성, 더군다나 SF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남성 위주인 것으로 생각하고 또 대부분 그런 작품들을 대해왔기에 이 작품은 어떤 다른 점이 도드라져 보이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한마디로 정말 독특한 시선, 생각과 사고력, 그에 따르는 작가의 흑인이면서 여성이란 범주에 머물지 않는, 소개면을 보지 않았다면 여성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처음부터 빨리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기존의 판에 박혀있는 듯한 설정과도 약간 다르고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들을 다시 들춰보게 만드는, 여기에 덧붙여 작가의 해설 부분들을 접할 때와 그렇지 않고 읽을 때 받아들이는 느낌들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이 책에 대한 소장가치를 더해준다.

 

여러 내용들 중 책의 제목인 블러드 차일드가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각종 상을 휩쓴 작품인 만큼 인류에 대한 가치와 그에 따른  먼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도 무방할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배경은 인간이 숙주의 몸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설정인데, 여성이 아닌 남자 주인공의 몸에 자신의 종족을 심어 퍼트리는 트가토이란 외계 생명체와 그들이 보호하고 보살펴주는 대가로 자신의 몸을 빌려주는 일을 하는 지구인들의 삶을 그린 이야기다.

 

여성이 아닌 남성의 몸에 기생하고 여성처럼 임신한 몸으로 변해가는 남성들의 변화, 어떤 반기를 들 생각조차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지구인들의 삶을 그린 이 책은 비록 가상의 소설이긴 하지만 인간의 오만에 가득 찬 세상을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슈왈제네거가 출현한 영화가 문득 생각난다.

그 영화는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였지만 역시 남자가 임신한 상태를 그린 영화였던 기억이 남는데,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갖가지 임신 증상과 점점 불러오는 임산부들의 상태를 여러 상황에 맞춰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엔 웃으면서 봤지만 이 책 속에서 그려지는 인간 남성 숙주들의 삶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게 그려진다.

 

흑인이면서 여성이기에 그런진 몰라도 책 중간에 나오는 대사들을 보면 자신의 조상들의 삶을 투영하는 듯한 대사들을 통해 외계 종족이 지구 인간들을 다루는 부분들은 형식만 SF를 빌려 왔을 뿐 작가가 드러내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들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밖에도 DGD특정 인자를  가진 화자가 등장하는 저녁과 아침과 밤, 가족이란 단어를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가까운 친척. 버스 안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넘어감, 이 외에도 다른 내용들을 다룬 것들도 마찬가지로 디스토피아의 어두운 세계를 조명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미래는 디스토피아로 가는 것이 아닌 오로지 인간들이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는지에 따라 미래의 모습은 달라질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휴고상과 네블러상을 동시에 수상한 저자다운 이력을 느끼게 해 준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자전적인 에세이  두 편, 또한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기에 단편이지만 중,장편 같은 느낌들을 받을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경관의 조건

경관조건경관의 조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작가들마다 선호하는 장르가 있듯이 그 안에서도 시리즈로 출간하는 작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찰관이나 형사가 주인공인 시리즈가 많은 것을 보면 독자들의 호기심과 주인공들의 활약이 그만큼 활력이 있게 그려진다는 뜻이란 생각이 든다.

 

일본의 대표적인 경관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사사키 조-

그동안 출간한 작품인 ‘안조 시리즈’란 이름으로 각인이 될 만큼 경찰관들의 세계를 가장 내밀하게 그려낸 작가가 아닐까 싶다.

 

오랜 공백을 깨고 출간한 시리즈가 바로 이 책, ‘경관의 조건’이다.

전 작인 ‘경관의 피’에 이은 세월의 연결 고리로서 안조 가즈야가 등장한다.

안조 가즈야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대(代)를 이은 경찰관 신분은 책 전체에 짜릿한 스릴과 흥분, 그리고 점점 조여 오는 실체들과 마주하게 되는 구성들이 지칠 줄 모르는 독서력의 힘을 뒷바침 하게 해 준다.

 

아버지가 각성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인질 살해범에 의해  현장에서 순직 한 후인 9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아들 안조 가즈야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관이란 신분을 달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타 동료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수사력과 범인 검거망을 자랑하는  가가야 히토시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되는 그는 사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가가야의 행동에서 경찰관으로서 어긋나는 점을 포착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는 상태다.

아무리 뛰어난 실적을 자랑한다지만 타 경찰관들에 비해 경찰과 범죄 조직 사이를 넘나드는 그만의 특화된 친화력이 오히려 경찰 내부에선 감찰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 것.

 

범인을 잡기 위해 각성제를 보유한 혐의는 곧 안조의 고발에 의해 검거가 되고 이는 각성제 불법 소지죄로 체포되었지만 법정에서 범죄조직의 이름과 경찰관과의 관계를 폭로하지 않은 채 경찰 조직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마약밀매에 대한 조직들의 변화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경찰로서 파악하는데 한계를 느끼던 차, 서로 다른 부서 간의 정보 교환 실패로 현장에서 경찰관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경부 시험에 합격한 후 조직범죄 대책부 제1 과 제2대책 계장으로 발령받은 상태에서 안조가 행동한 결정은 타 부서의 부하 죽음으로 결말을 맺게 되었고 이는 같은 경찰관이란 조직 내에서도 서로 원망과 불만, 질타의 시선을 느끼는 신세가 된다.

 

고심 끝에 다시 가가야를 불러들인 경찰은 그를 예전의 경부라는 계급으로 역시 조직범죄 대책부 제5과의 계장으로 복직시키게 되고 이후 두 과는 같은 목적을 두고 다른 방향을 통해 밀매조직에 대한 검거를 위해 조사를 해 나간다.

 

언뜻 보면 자신을 고발한 부하에 대한 원망 때문에 안조에 대한 사사건건 불만에 싸인 가가야의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었을 글의 구성은 전혀 달리 흐른다.

 

안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통적인 수사기법대로 지휘를 하면서 범인을 색출해나가는 과정을,  여전히 독단적인 개인행동으로 그의 예전 실력을 발휘하는 가가야의 행동은 녹슬지 않은 그의 연결고리 답게 뒷골목 세계 두목들과 뒷 배의 다른 정보원을 통한 범인 색출 방법이란  상반된 면을 갖고 있기에 읽는 독자들은 어떻게 한 지붕 아래에 두 가족이 한 곳에 모이게 되는지를 때때로 안조의 생각으로, 다른 한편으론 가가야의 행동과 말, 시선으로 같이 들여다볼 수가 있는 점이 재미를 돋운다.

 

뒷골목 세계의 룰을 알고 그에 따른 상응 법을 이용해 범인을 색출하는 방법이 과연 경관이란 직업을 가진 자로서 올바른 수사법인가? 아니면 안조처럼 경관으로서 지닌 모든 정보와 직감을 이용한 것을 토대로 범인 조직을 잡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

 

책은 이 두 갈래 길에 들어선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보이던 두 사람 간의 처신과 방법들을 보여주지만 책을 읽으면서 어느 누가 바른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범인 잡는 목적은 같되, 경관으로서 지닌 사명감만은 분명 두 사람 사이엔 다른 의견은 없을 테니까…

 

호루라기, 그것은 경관으로서 지녀야 할 하나의 몸에 지니고 다니는 필수품이지만 같은 경찰 조직 내에서의 경쟁 심리는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가 명예심과 성취도를 먼저 이루려는 점 때문에 여러 번 결점을 드러낸 점, 가가야처럼 경쟁 심리가 아닌 오로지 자신이 뜻하는 목적을 이루고자 했을 때처럼 행동했더라면 결말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생각해보게도 된다.

 

동료들부터는 범죄 조직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의심을 받은 남자, 하지만 그는 뼛속까지 경관이었단 점을 드러낸 부분들이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일본 아마존 독자평 전원 별 다섯이란 신화의 책 띠지가 정말 와 닿을 만큼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모두가 실제처럼 느끼게 만든 저자의 섬세한 표현들이 마치 실제 경관이란 직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들게 할 정도로 철저하게 그들만의 세계를 표현해냈다.

 

오랜 시간 끝에 나온 책인 만큼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한 저자의 책을 기다려온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경관의 조건, 책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가가야 히토시, 그는 진정한 경관이었다.

 

                                                                                                                          
                                            

성전의 상인들…프란체스코 교황의 개혁은 진행중~

성전상인

성전의 상인들 – 프란치스코 교황 vs 부패한 바티칸
잔루이지 누치 지음, 소하영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매경출판주식회사) / 2016년 6월

가톨릭을 믿고 있든 안 믿고 있든 간에 새로운 교황의 선출 소식은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바오로 2세 전 교황 때도 그랬었고, 매번 콘클라베란 신성한 의식을 통해 선출된 교황이란 자리는 전 가톨릭을 믿는 모든 신자들이 굳건한 믿음을 갖고 그분의 뜻에 따라 자신의 신앙심을 더욱 굳건히 하는데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임엔 틀림이 없다.

그러기에 가톨릭 역사상 두 번째에 해당되는 선종이 아닌 현역에서 물러난 전 교황의 자리를 이어받은 프란체스코 교황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더욱 크게 와 닿았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란 것이 어떤 고난이나 힘든 일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의지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곳에서 자신이 보고 믿고 행동하고자 하는 도움을 준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신앙을 갖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싶은데, 종교가 지니고 있는 방대한 구조가 점차 커짐에 따라 여기에 따르는 좋지 않은 일들도 발생하기 쉽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전무후무한 새로운 기록을 갖고 선출된 교황은 그런 만큼 자신의 역량을 힘껏 발휘해 좀 더 가톨릭의 본래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이  ‘개혁’이란 칼을 휘두르게 된 배경으로 이해가 되며, 오랜 세월 견고하게 다져온 성을 허물고 보다 더 나은 미래의 성을 개축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 책에선 여실히 보이는 책이다.

 

 

책은 먼저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가 연설문 발표를 앞둔 시점에서 갑작스레 죽은 사건부터 시작한다.

그 후 제 266번째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체스코 교황이 국제 감사관으로부터 받은 편지는 그에게 커다란 일대의 결심을 일으키게 되는데, 바로 바티칸과 교황청에 관한 실사 보고를 토대로 한 그간의 부실행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선출된 당시부터 개혁의 의지를 생각하고 있었던 교황이었던 만큼 오랫동안 비밀유지 차원에서 밖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일들과 문서들이  발표를 통해서, 그리고 본격적으로 교황이 직접 선출한 외부 인사들을 파격적으로 내세운 구성단을 차림으로써 개혁이란 이름의 박차를 가하게 된다.

 

바티칸계열

 

저자는 이탈리아 저널리스트로서 쉽게 접해볼 수없었던 바티칸시국 안의 여러 내부 사정과 관련 기관들의 역할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음으로 해서 그동안 알고 싶었어도 알 수 없었던 바티칸의 내부를 통해 그곳에 안주한 추기경들의 암투와 현재의 현상유지를 원하는 보수적인 집단과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 기관들과 교황파 간의 대결들이 어떻게 거쳐 왔는지를 소상하게 알려준다.

 

가톨릭의 본산인 교황청과 바티칸시국의 현상유지는 가장 대표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전 세계 교구로부터 들어오는 ‘베드로 성금’이란 이름으로 붙여진 것 외에도 세계 각 처에 분산되어 있는 부동산과 유가증권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원래대로 하자면 베드로 성금의 이용은 가톨릭 교회의 목회자를 지원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감사관의 보고에 따르면 바티칸의 행정의 부실금액을 채우기에 이용이 되었고  부동산의 정확한 실체와 개수, 현 시세에 맞는 정확한 부동산의 가치와 임대를  주지 않아 임차인들로부터 현 경제의 시세에 맞는 임대료를 제대로 계산해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부동산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는 재무제표란 말을 모를 정도의 무지의 사람들이 관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 시 복성인에 대한 추천 과정과 그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경비들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자료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는 사실들을 읽으면서 정말 막막하다는  안타까움마저 내뱉게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양파처럼 겉껍질을 벗기고 보니 그 안의 속이 겹겹이 쌓여 있어 그 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모를 정도로 오랜 세월 그렇게 유지를 해 온 것이 밝혀졌다.

 

어떤 보수를 할 계획에 있어서도 입찰경쟁 식이 아닌 알음알음 추기경이 알고 있는 사람, 그 추기경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 이런 식으로 보수를 맡기게 되고 바티칸 박물관에서 나오는 수입의 금액과 재고의 차이, 연기금의 불안정한 미래, 예산을 측정하기 위한 자료 요청에도 각 부처와 부서마다 태업이나 모르쇠, 시간 끌기를 통해 교황의 개혁을 저지하려는 반대파의 행동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 개혁의 어려움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추기경들의 화려한 아파트 생활과 추기경으로서의 이름과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이중적인 생활의 면모를 보이는 일부 추악한 성스캔들에 나오는 추기경들, 이 때문에 바티칸의 ‘동성애 로비단체’는 고위 성직자들의 취향에 맞춘 성매매를 알선함으로써 안정적인 정부 일자리와 수고료를 받고 있다는 현실이 그동안 소설책에서만 다뤄왔다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서의 각 사건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가톨릭의 또 하나의 부끄러운 일들을 낱낱이 밝혀내고 있는 책이다.

 

교황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프란체스코란 이름을 사용하는 교황의 개혁 의지는 가톨릭이란 종교의 본질은 무엇이며 이를 행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의 방안을 고심하는 것을 바티칸시국 외에 각 본분에 맞는 역할을 하는 추기경들은 적극적으로 지지를 하며 새롭게 변신할 수 있는 의지를 표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 보게 된다.

 

무엇이든지 처음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선대의 교황들도 노력을 해왔지만 결국엔 행동으로 나서지 못했던 어려운 현실적인 부분들(어느  부분을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정확한 자료 자체가 없거나 없애버렸거나, 아니면 종교 특유의 암묵적인 동의로 인한 비밀문서 해제 거부….)을 과감히 개혁이란 것을 통해 깨끗하고 투명한 가톨릭으로 태어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보는 것 같아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비밀문서 도난과 경고에 해당하는 암묵적인 행동들, 도청장치 사건을 겪음으로써 사람들의 의지를 위축시키는 행동들은 이제는 이 책이 출판이 된 만큼 신도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을까?

 

프란시스코 교황의 개혁의 성과는 아직까지 뚜렷하게 나아졌다는 것은 볼 수가 없단다.

오래 썩은 물을 제대로 깨끗한 물로 바꾸려면 여러 차례 물을 퍼내야 하고 다시 새로운 물을 채워 넣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프란체스코 교황의 개혁은 여전이 ~ING….

그러기에 교황이 그동안 말한 내용들이 더 실감 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교황1

 

교항2

 

교황3

프란체스코 교황이 실천하는 이런 개혁의 의지들이 좋은 결실의 열매가 맺어지길 기대해 본다.

 

이슬람전사의 저항과 투쟁

이슬람

이슬람 전사의 저항과 투쟁 – 이슬람과 중동,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맨몸으로 저항한 민중의 역사
램지 바루드 지음, 최유나 옮김 / 산수야 / 2016년 6월

한 농부가 조상 때부터 대대로 이어받은 땅을 열심히 일구고 해마다 그 철에 맞는 열매와 곡식을 경작하며 식구 수를 불리고 가장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말을 들으니 저 먼 방에서 오는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고 있는 땅에 이민을 오기 시작한단다.

이들은 점점 그 수를 불려 나가더니 이제는  그 농부의 땅마저 자신들의 조상들이 원 주인인 만큼 후손인 우리들이 당연히 그 땅의 원 주인이요, 따라서 당신네들은 이제 이 땅에서 살 권리가 없는 고로, 다른 곳으로 떠나가란다.

 

너무나 어이없고 기막히고 코 막히는 그 상황에서 항의도 해보지만 그 사람들은 아예 작정하고 들어와 살기로 한 사람들이었던 만큼 철저한 계획과 도움을 받고 있었기에 순진하게 살아온 농부의 가족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하며 당나귀나 나귀에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기고 정처 없이 무작정 떠나가게 된다.

 

이런 세월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며 그들은 누구인가? 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아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제 땅을 빼앗기고 이런 처지에 놓인 바보 같은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하고 고개를 절로 흔들겠지만 현실에서 정말로 일어나는 비일비재한 일들 중의 하나란 것이 문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이슬람을 믿는 극도 주의 성향의 자살폭탄 테러가 난무하고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그들에 대한 인상이 각인이 되어지면서 곱게 펼쳐 든 책은 아니다.

 

사람의 인식 속에 박힌 어떤 생각들의 차이가 이처럼 깊게 박혀 있는 상태에서 달리 보이는 관점의 범위에 대해서 이 책은 그런 의미로 본다면 나의 무지와 또 다른 생각의 범위를 넓혀 준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화약고’란 말이 있다.

언제 어디서 터져버릴지 모르는 상태, 바로 중동지역을 일컬어 불리는 말인데, 역사적으로 본다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시작된 열강 제국의 서로 나눠먹고 헤쳐 분리하기 작전에 희생양이 된 중동의 아픈 역사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게 된다.

 

저자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기자이자 작가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성인이 된 후까지도 살아왔던 팔레스타인이란 고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고국 이야기를 자신의 삼대에 걸친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자신, 그 이외에 여러 자료들과 취재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얽히고 설킨 복잡한 내면의 속 사정을 들려준다.

 

계급의 사회였던 만큼 상류층에 진입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생(生)에 대한 이야기는 팔레스타인들의 생활상과 영국의 통치 기간 중 벌어진 유대인들의 시오니즘에 입각한 당시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유대인들의  유입 정책부터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평범한 일가가 어떻게 무너지게 되는지를 역사적인 사건과 함께 그려진다.

 

벨푸어 선언에 이어 영국이 빠지고 유엔으로 넘어가게 된 팔레스타인들, 그중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저자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고향인 베이트 다다스에서 벌어진 이동의 역사는 결국 난민이라 이름으로 불려지면서 살게 되는 고난의 역사를 시작으로 한다.

 

가자

 

그전까지는 같은 땅 아래의 유대인, 팔레스타인이란 구분 없이 서로가 돕고 살았던, 심지어는 팔레스타인들이 오히려 이웃인 유대인들에게 농사기법까지 가르쳤던 그런 평화로운 시절이 원수 보듯 한  순간에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으로 엮어진 그들의 삶을 모조리 말살해 버리려는 정책의 일환들은 정말로 끔찍하단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 책에서 보이는 일련의 인종청소와  불도저식의 정책들은 팔레스타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세계정세에 무지했고 순박했는지, 오히려 안쓰러울 정도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유엔의 발표가 있을 적마다 한가닥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던 한 평범한 일가족이 이스라엘 정부의 무자비하게 갈라서게 만든 하나의 땅덩어리를 통해 가족 간의 왕래조차 쉽게 할 수 없게 만드는 과정, 이스라엘 병사들의 무차별 가정집 침입에 이은 연약한 아이를 학대하면서 놀리는 행동, 서로 이간질을 시키는 과정을 통해 팔레스타인들 간의 고립 작전을 이행하는 일,,,,

 

그런 과정 중에서 팔레스타인들이 점차 어떻게 세계의 강국들이 이스라엘 편을 들게 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저마다의 이익을 위해 우선순위 목록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제외하게 되는지의  과정들을 지켜보는 일들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한 대 맞고 두대 맞다 보면 내성이 생기게도 된다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의미도 모른 채 맞는다면 어느 사이에 자신의 내면의 생각을 통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바로 팔레스타인들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1차 중동 전쟁에서 4차에 이르는 전쟁과 두 차례의 인티파다를  통해, 자신들이 살 길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들 속에는 유대인들의 막강한 입김과 재력 앞에 같이 동조하는 강대국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 아랍권의 실리외교를 따지는 행동들에 대한 실망, 헨리 키신저의 활약, 유엔의 무늬만 유엔이란 것을 생각할 만큼의  결재 안 사항들은 힘없는 민족의 해결조차도 제대로 말을 들어보지 못한 행동에 대한 저자의 글이 힘입게 다가오게 만든다.

 

처음부터 아랍인들이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할 만큼 무자비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 끼의 식사를 배급받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팔레스타인 난민들, 살기 위해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 외 여러 나라로 들어가 힘든 노동일을 하면서까지 살아내야 했던 그들, 이스라엘인들이 제공하는 싼 값에 해당하는 노임을 받더라도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다시 무참히 공격해오는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정착민 수용 문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한계에서 온 그들만의 최후 표현과 의지의 보루였던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중동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두 차례의 인티파다를 거치면서 자신들의 뜻을 표현하고자 했던 팔레스타인들의 저항은 언론의 보도가 어떻게 일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해석도 달라짐을 이 책에선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들이라 불린 그들의 오랜 숙원이던 구약성서에 나오는 땅을 찾아오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이런 안타까운 해결 방안들은 자신들이 히틀러가 구상했던 계획에 따라 무참히 많은 유대인들의 희생을 생각했다면 좀 더 온건주의적인 방안으로 해결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들이 팔레스타인들에게 행한 폭력과 폭행의 행동들은 마치 또 다른 홀로 코스트의 변주를 보든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하며 유대인들의 막강한 파워를 과시한 국제정세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행동들과 강대국이란 이름 하에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어버리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약소국의 비애를 현실감 있게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작은 불씨의 시작이 서구 기독교 세력과 중동 이슬람 세력 간의 문명 충돌이란 문제의 시선으로  커지고, 이는 다시 자살 폭탄 테러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순된 절차들을 보면서 국제관계의 실리 속에 힘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결코 큰 욕심 없는 자신의 땅에서 자신이 거둔 수확물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르길 희망해 보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그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이슬람 문화와 종교에 대해 어느 한쪽에만 치우진 생각만 가졌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이슬람 전사라 불리는 그들의 행동이 국제관계 속에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것인지, 아니면 평화로운 해결 방안으로 이끌 하나의 불씨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팔레스타인이란 국민과 그 나라가 가진 고립되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좋지 않은 일들은 더 이상 발생되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 들게 한 책이기도 하다.

 

 

지난날들을 생각하면서 아버지는 이렇게 읊조렸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순간적인 고통으로 끝나지만 지금까지 살아서 그 모든 공포를 눈으로 목격한 사람은 더 심한 고통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 p 175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죽기 위해 산다.

죽기위해 산다

죽기 위해 산다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5월

제목부터가 무척 반어적인 느낌이 오면서 뭔가를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 책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한 사람의 작가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두 사람의 콤비가 합작을 이룬 작품이라서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는데, 우리가 흔히 접해보는 듯한 첩보원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주인공의 삶, 이름은 기드온 크루, 그리 평탄치만은  않다.

 

12 살 적에 암호 연구에 필요한 일을 하던 아버지가 발견한 암호의 오류에 대한 지적을 무시한 미 정부 당국이 26명의 첩보원의 생명을 앗아간 작전의 책임 회피를 위해 아버지를 희생양으로 삼았고 현장에서 즉사한 것을 목격한 뒤로 알코올 중독에 빠져나오지 못한 엄마를 둔, 우울한 삶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종을 둔 엄마로부터 아버지의 불이익에 대한 처사를 듣게 되면서 기드온은 무려 10여 년간의 노력 끝에 착실히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게 되는 데 성공을 한다.

 

이 이야기의 구성으로 보자면 위의 장면을 펼치고 늘리고 늘려도 한 권의 책 구성이 될 듯 싶은데, 막상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 된다는 점이 흥미를 돋운다.

 

국가정보로부터 인정받은 사설 업체 ESS란 곳으로부터 기드온은 그곳의 수장에게 거액의 임무 완수 협상에 대한 돈 제시를 받고 아마추어 격으로 자신의 임무를 행하게 되는데, 바로 망명을 신청한 중국의 ‘우’박사가 갖고 있는 어떤 설계도 내지는 비밀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을 무사히 안착할 수 있게끔 모시고 오는 임무였다.

하지만 괴한으로부터 우 박사는 자동차 충돌로 인해 생명을 다하게 되고 그가 마지막에 불러준 수열만이 해결의 열쇠가 되는 셈인데…..

 

마치 현란한 첩보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아마추어적인 행동 하나하나와 변장술이 첨단을 걷는 지금의 세계와 약간은 동떨어진 듯하면서도 몰입을 좋게 만든다.

 

아무리 아마추어라고는 하지만 그가 이 일의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한 이점이 있다면 바로 시한부 인생이란 것이다.

 

뇌의 이상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심하면서 살아갈 수도 없는, 언제 어디서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시한 선고를 받은 그로서는 이러한 일에 대한 부담이 없을 수도 있었던 상황-

두 작가는 이러한 배경을 깔아 두고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지도록 글의 극대화된 설정까지 그려놓은 점이 인상적이다.

 

 

우 박사가 발명한 초절전 도체의 행방을 알 수 있게 사방팔방으로 뛰어든 기드온의 활약은 이를 저지하려는 중국의 비밀 인간 병기의 출현과 미 CIA 소속의 직원의 배신으로 이어지면서 점차 걷잡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장면 장면 하나하나에서 간신히 빠져나오고 다시 위험에 빠지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장면들이 영화 속의 장면들을 생각나게 한다.

 

빠른 속도와 전개, 그리고 세계를 놀라게 할 초절전 도체의 발명은 가히 획기적이라고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읽는 독자들로 실제로 이러한 물질이 발견이 된다면 세계사를 바꿀 명단에 오르고도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우울함을 같이 짊어지고 가면서 또 다른 해방구를 찾는 기드온의 활약은 다음의 활약을 기대하게 하는 미지의 여지를 주었다는 데서 독자들의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도 한다.

 

죽기 위해 산다.-

제목도 글의 내용과 맞아떨어지고 그가 비록 철저하게 훈련을 받은 첩보원은 아니지만 오히려 적재적소의 장소를 교묘히 빠져나오는 변장술은 오래간만에 옛 영화를 보는 듯한 즐거움도 주는 책이기에 이런 빠른 전개를 즐기는 독자들이라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아이를 낳아도 행복한 프랑스 육아

프랑스 육아

아이를 낳아도 행복한 프랑스 육아 – 유럽 출산율 1위, 프랑스에서 답을 찾다
안니카 외레스 지음, 남기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힘들게 공부하고 어렵다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막상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적인 일로 자리를 잡아간 지도 오래다.

흔히 말하는 삼포세대라 불리는 그들의 고충이 얼마나 심각한지, 한창 자신들의 뜻을 이룰 나이에 그마저도 모든 여건을 포기해야 하는 배경 중 하나에 출산이란 것도 포함이 되어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에 힘을 쓰면서 자신의 적성을 살린 직업을 병행한다는 것, 완벽한 아내, 엄마, 며느리, 딸이란 타이틀을 원하는 사회적인 시선들 때문에 눈물을 삼키고 직업을 포기한 채 가정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볼 때는 더욱 갑갑하기만 하다.

 

실력을 갖추고 얼마든지 경쟁 사회 속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이러한 여건들이 충족되지 못하다 보니 막상 결혼이란 것을 하더라도 차일피일 미루기 마련인 출산의 문제는 비단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국가적으로도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가 없다.

 

우스개 소리이자 실제로 6.25 전쟁 때 중공군을 물리쳤다고 생각하면 바로 들이밀고 온다는 말이 있듯이 중국은 땅도 넓고 크기도 하지만  인구도 워낙  많기에 그만큼 그들의 인력 수요에서 오는 이점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한 나라의 출산율은 이것을 생각해 볼 때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15년 기준 1.24명으로 OECD 국가 중 꼴찌라고 한다.

쟁쟁한 국가들의 순위 다툼에서도 여전히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국가적으로  당장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는 바, 이 책의 저자의 글을 통해 앞으로의 우리나라의 여성들의 진취적인 활동과 육아에 대한 계획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독일 출신 기자이자 워킹맘이다.

자신의 나라인 독일과 프랑스를 비교해서 쓴 이 글을 읽다 보면 독일의 정책들은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한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보다 더 나은 직장을 갖길 원하고 그러기 위해선 선진국 유럽이라는 학력과 직업의 차별이 없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못지않은 대학에 대한 높은 경쟁률, 그리고 뭣보다 독일은 부부 중심의 정책을 우선시한다면 프랑스는 출산 정책에 비중을 크게 두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결혼 뿐만이  아닌 동거하는 사람들이라도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건강보험이나 교육지원을 한다는 내용을 방송에서 본 기억이 있다.

워낙 출산율이 낮고 결혼 인구가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에 맞춘 발 빠른 행정력의 결과라고 볼 수가 있는 만큼 프랑스 여성들이나 엄마의 입장이 된 프랑스 여성들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완전한 엄마는 될 수 없다는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단 점이 눈에 띈다.

 

 

*****프랑스 여자들은 엄마 역할에 부족한 점이 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엄마 역할과 동시에 한 남자의 안내, 직장인, 친구, 동생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p 271

 

 

직장에 다니고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는 입장에서 행여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엄마들은 내가 돌보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겨 놓았단 스스로의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그것이 엄마로서 자녀를 보는 안쓰러운 마음에 우러난 감정이긴 해도 프랑스 여성들은 출산을 하게 되면 그 아이에 대한 양육과 교육을 정부가 책임진다는 의식의 전환점이 있다는 사실, 그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여건의 조성이 오늘날 유럽 내에서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게 된 원동력이 된 것이라는 저자의 내용들은 그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고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렇기에 프랑스에서의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란 말은 없으며 임신과 동시에 적절한 체중 조절과 출산 이후의 관리 차원까지 두루 정책적으로 실행을 해 온 정부의 노력이 돋보인다.

 

저자 자신 또한 독일의 여건에서 생활해오다 프랑스로 오게 되면서 실제 부딪치고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 한 개인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선 정부와 각 국민들이 어떤 노력이 필요하며 그 실행 과정에서 사람들의 인식 자체의 전환의 변화가 얼마큼 큰 효과를 보는지 조목조목 알려주는 사례들을 통해 이미 저출산 국가로서의 이름을 남기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책들의 내용들은 많은 참고가 될 듯하다.

 

 

각 차트마다 실려 있는 제목들은 현실적으로 강하게 와 닿는 문구들이 많은데, 가장 첫 차트인’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와 두 번째 차트인 아기를 갖기에 ‘완벽한 때’는 없다! 란 말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통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활기차고 건강한 사회로 가는 길, 해답은 바로 이 책에서 찾아봐도 무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