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전사의 저항과 투쟁

이슬람

이슬람 전사의 저항과 투쟁 – 이슬람과 중동,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맨몸으로 저항한 민중의 역사
램지 바루드 지음, 최유나 옮김 / 산수야 / 2016년 6월

한 농부가 조상 때부터 대대로 이어받은 땅을 열심히 일구고 해마다 그 철에 맞는 열매와 곡식을 경작하며 식구 수를 불리고 가장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말을 들으니 저 먼 방에서 오는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고 있는 땅에 이민을 오기 시작한단다.

이들은 점점 그 수를 불려 나가더니 이제는  그 농부의 땅마저 자신들의 조상들이 원 주인인 만큼 후손인 우리들이 당연히 그 땅의 원 주인이요, 따라서 당신네들은 이제 이 땅에서 살 권리가 없는 고로, 다른 곳으로 떠나가란다.

 

너무나 어이없고 기막히고 코 막히는 그 상황에서 항의도 해보지만 그 사람들은 아예 작정하고 들어와 살기로 한 사람들이었던 만큼 철저한 계획과 도움을 받고 있었기에 순진하게 살아온 농부의 가족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하며 당나귀나 나귀에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기고 정처 없이 무작정 떠나가게 된다.

 

이런 세월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며 그들은 누구인가? 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아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제 땅을 빼앗기고 이런 처지에 놓인 바보 같은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하고 고개를 절로 흔들겠지만 현실에서 정말로 일어나는 비일비재한 일들 중의 하나란 것이 문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이슬람을 믿는 극도 주의 성향의 자살폭탄 테러가 난무하고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그들에 대한 인상이 각인이 되어지면서 곱게 펼쳐 든 책은 아니다.

 

사람의 인식 속에 박힌 어떤 생각들의 차이가 이처럼 깊게 박혀 있는 상태에서 달리 보이는 관점의 범위에 대해서 이 책은 그런 의미로 본다면 나의 무지와 또 다른 생각의 범위를 넓혀 준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화약고’란 말이 있다.

언제 어디서 터져버릴지 모르는 상태, 바로 중동지역을 일컬어 불리는 말인데, 역사적으로 본다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시작된 열강 제국의 서로 나눠먹고 헤쳐 분리하기 작전에 희생양이 된 중동의 아픈 역사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게 된다.

 

저자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기자이자 작가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성인이 된 후까지도 살아왔던 팔레스타인이란 고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고국 이야기를 자신의 삼대에 걸친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자신, 그 이외에 여러 자료들과 취재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얽히고 설킨 복잡한 내면의 속 사정을 들려준다.

 

계급의 사회였던 만큼 상류층에 진입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생(生)에 대한 이야기는 팔레스타인들의 생활상과 영국의 통치 기간 중 벌어진 유대인들의 시오니즘에 입각한 당시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유대인들의  유입 정책부터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평범한 일가가 어떻게 무너지게 되는지를 역사적인 사건과 함께 그려진다.

 

벨푸어 선언에 이어 영국이 빠지고 유엔으로 넘어가게 된 팔레스타인들, 그중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저자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고향인 베이트 다다스에서 벌어진 이동의 역사는 결국 난민이라 이름으로 불려지면서 살게 되는 고난의 역사를 시작으로 한다.

 

가자

 

그전까지는 같은 땅 아래의 유대인, 팔레스타인이란 구분 없이 서로가 돕고 살았던, 심지어는 팔레스타인들이 오히려 이웃인 유대인들에게 농사기법까지 가르쳤던 그런 평화로운 시절이 원수 보듯 한  순간에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으로 엮어진 그들의 삶을 모조리 말살해 버리려는 정책의 일환들은 정말로 끔찍하단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 책에서 보이는 일련의 인종청소와  불도저식의 정책들은 팔레스타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세계정세에 무지했고 순박했는지, 오히려 안쓰러울 정도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유엔의 발표가 있을 적마다 한가닥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던 한 평범한 일가족이 이스라엘 정부의 무자비하게 갈라서게 만든 하나의 땅덩어리를 통해 가족 간의 왕래조차 쉽게 할 수 없게 만드는 과정, 이스라엘 병사들의 무차별 가정집 침입에 이은 연약한 아이를 학대하면서 놀리는 행동, 서로 이간질을 시키는 과정을 통해 팔레스타인들 간의 고립 작전을 이행하는 일,,,,

 

그런 과정 중에서 팔레스타인들이 점차 어떻게 세계의 강국들이 이스라엘 편을 들게 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저마다의 이익을 위해 우선순위 목록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제외하게 되는지의  과정들을 지켜보는 일들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한 대 맞고 두대 맞다 보면 내성이 생기게도 된다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의미도 모른 채 맞는다면 어느 사이에 자신의 내면의 생각을 통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바로 팔레스타인들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1차 중동 전쟁에서 4차에 이르는 전쟁과 두 차례의 인티파다를  통해, 자신들이 살 길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들 속에는 유대인들의 막강한 입김과 재력 앞에 같이 동조하는 강대국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 아랍권의 실리외교를 따지는 행동들에 대한 실망, 헨리 키신저의 활약, 유엔의 무늬만 유엔이란 것을 생각할 만큼의  결재 안 사항들은 힘없는 민족의 해결조차도 제대로 말을 들어보지 못한 행동에 대한 저자의 글이 힘입게 다가오게 만든다.

 

처음부터 아랍인들이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할 만큼 무자비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 끼의 식사를 배급받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팔레스타인 난민들, 살기 위해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 외 여러 나라로 들어가 힘든 노동일을 하면서까지 살아내야 했던 그들, 이스라엘인들이 제공하는 싼 값에 해당하는 노임을 받더라도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다시 무참히 공격해오는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정착민 수용 문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한계에서 온 그들만의 최후 표현과 의지의 보루였던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중동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두 차례의 인티파다를 거치면서 자신들의 뜻을 표현하고자 했던 팔레스타인들의 저항은 언론의 보도가 어떻게 일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해석도 달라짐을 이 책에선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들이라 불린 그들의 오랜 숙원이던 구약성서에 나오는 땅을 찾아오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이런 안타까운 해결 방안들은 자신들이 히틀러가 구상했던 계획에 따라 무참히 많은 유대인들의 희생을 생각했다면 좀 더 온건주의적인 방안으로 해결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들이 팔레스타인들에게 행한 폭력과 폭행의 행동들은 마치 또 다른 홀로 코스트의 변주를 보든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하며 유대인들의 막강한 파워를 과시한 국제정세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행동들과 강대국이란 이름 하에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어버리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약소국의 비애를 현실감 있게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작은 불씨의 시작이 서구 기독교 세력과 중동 이슬람 세력 간의 문명 충돌이란 문제의 시선으로  커지고, 이는 다시 자살 폭탄 테러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순된 절차들을 보면서 국제관계의 실리 속에 힘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결코 큰 욕심 없는 자신의 땅에서 자신이 거둔 수확물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르길 희망해 보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그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이슬람 문화와 종교에 대해 어느 한쪽에만 치우진 생각만 가졌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이슬람 전사라 불리는 그들의 행동이 국제관계 속에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것인지, 아니면 평화로운 해결 방안으로 이끌 하나의 불씨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팔레스타인이란 국민과 그 나라가 가진 고립되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좋지 않은 일들은 더 이상 발생되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 들게 한 책이기도 하다.

 

 

지난날들을 생각하면서 아버지는 이렇게 읊조렸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순간적인 고통으로 끝나지만 지금까지 살아서 그 모든 공포를 눈으로 목격한 사람은 더 심한 고통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 p 175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이슬람전사의 저항과 투쟁”에 대한 2개의 생각

  1. 데레사

    이스람 하면 자꾸만 폭력, 테러, 이런것만 생각납니다.
    무하마드의 정신은 그런건 아니었을텐데 종교가 중간에 변질된것인지
    그냥 무섭다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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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정원 글쓴이

      보통의 이슬람이란 말로 떠오르는 것이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 사실이고, 자살폭탄 테러란 끔찍한 행동을 하는 그들의 행동에는 수긍을 할 수가 없지만, 그들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그들만의 시선으로 그려진 책이란 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생각과 함께 다른 시야의 관점으로 들여다 볼 수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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