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복수 ㅣ 발터 풀라스키 형사 시리즈 1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단숨 / 2016년 6월
요즘의 후덥지근하고 연일 습한 기온이 있는 가운데 복수극이라….
제목부터가 여름의 복수다.
복수 중에서도 뭔가 화끈하게 다가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소재의 내용도 역시 강하게 와 닿는다.
책은 두 명의 인물 중심으로 보이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발터 솔라스키 형사 시리즈로 서막을 알리는 이 책은 1권에 해당이 되겠고, 주인공인 폴라스키는 아내를 병으로 잃은 후, 어린 딸과 같이 시간을 내며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강등을 지원한 경찰이다.
먼저 현장에 가서 대충 사건의 형태라고나 할까, 서류전형의 처음 부분을 다룬다는 위치에 서 있는 격인데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특정 질환 전문 정신과 병원에서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
19세로 이름은 나타샤 좀머라 불리는 여인은 다중인격장애로 불리는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고 있던 환자였다.
그녀가 왜 자신의 왼팔에(왼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수위가 높은 주사량을 맞으면서 죽었는지에 대해 조사하던 중 오랜 감각의 경험상 자살이 아닌 살인 사건처럼 느껴진다.
이에 병원의 다른 환자를 조사하던 중 바로 며칠 전에 다른 환자가 심장마비로 죽은 것을 발견하게 되고 두 환자가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이곳에 오게 된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수사의 범위는 넓혀지게 된다.
한편 오스트리아 빈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에블린은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감금당하고 성폭행당한 상처, 부모와 여동생을 모두 여의고 간신히 살아남은 존재다.
자신의 멘토로서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던 상사가 자살로 죽게 되고, 자신이 맡았던 사건의 현장 사진을 우연히 보다가 어떤 소녀가 찍힌 것을 주시하게 되는데….
요즘 연일 유명인들의 성폭행 사건으로 시끌벅적하다.
외국에 나가 있는 운동선수도 이런 사건에 연류 되어 더욱 충격적인 가운데 이 소설은 소아성애자들을 노리는, 인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찾아 복수를 감행하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외국의 경우엔 특히 법의 형량을 무겁게 내리는 형벌 중의 하나가 성폭행 사건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러한 사건 자체에 대한 인식을 깊게 생각하고 있으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란 말을 철저히 지키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데서 어느 정도의 법의 형평성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는데, 이 책에서 그려지는 어린아이들, 특히 고아 거나 길거리 아이들을 데려다 크루즈에 태워서 사회 유명인사들을 데리고 여행이란 명목하게 철저하게 유린한 과정에서 죽어 가야만 했던 아이들의 현장, 모두가 죽었거나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살아가야 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들의 구성이 시종 두 사람의 활약과 범인의 의도를 드러내 보이는 심리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돌아간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란 두 나라의 연관성이 없을 듯한 만남은 이 두 사람이 사건 해결을 하는 과정에서 마주치게 되고 서로의 사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또 다른 충격에 휩싸이는 에블린의 심정이 드러나는 대목이 독자들로 하여금 기로에 서게 만든다.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킨 그 범인은 고작 여동생 나이보다 2년 더 형량을 마치고 나왔을 뿐, 자신에게 남겨진 상처는 아물지를 못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의 감정을 외면하는 에블린의 마음이 그려진다.
범인을 만나고 그 범인이 살인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유일한 사건 해결의 마침표라 생각하는 폴란스키의 생각과는 같은 동조를 하면서도 자신이 당한 것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그녀가 범인을 막아야만 한다는 역설에 갈등을 하는 부분들은 법의 형량이 아무리 제대로 선고가 된다고 하더라도 남겨진 이들의 아픔은 누가 보상을 해 주어야 하는지, 스스로 과거와의 인연을 끊고 과감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란 한계에 에블린이 느꼈던 한 순간의 고민과 갈등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에서 보이는 10년 후에 복수를 벌이는 범인의 아픔은 여전히 독자들로 하여금 안쓰러움을 안겨준다.
금발의 머리에 가냘픈 몸매, 어린 남동생이 자신 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된 여자 아이의 충격은 컸을 터, 그럼에도 여전히 잘 살고 있던 인간말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죽음은 조금 이나마 속 시원함을 느끼게 해 준다. (나만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다.)
10여 년 전의 일을 복수하기엔 날씨는 여전히 변함없다는 사실이 왠지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