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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킬러안데르손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시작으로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를 통해 거침없는 유머와 세상 풍자에 대한 비판을 그려낸 저자의 신작이다.

아마도 위의 두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그의 취향에서 과연 이번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질까를 무척 궁금해하고도 남는 것이 북유럽의 이런 유머가 독자들에게도 일말 시원스러운 해소를 날려 버릴 수 있게 도와준다는 데서 더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목부터가 킬러다.

그는 무슨 죄목으로 킬러란 이름을 붙여가며 자신의 본명보다 이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힘을 쓰는 일이라면 천하장사도 당해내지 못할,  폭행과 살인을 주무기한  안데르스-

 

덕분에 도합 30년을 감옥에서 지내고  이제야 자유인의 몸으로 풀려나 ‘땅끝 하숙텔’이라 불린,  호텔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찜찜한 장소로 기억되는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곳엔 할아버지 때부터 부를 이루고 살았지만 할아버지의 세월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투자에 실패한 결과로  가난에 찌들어 살아가던 리셉셔니스트 페르 페르손이 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오직 자신의 이러한 생활에 불만을 갖고 있던 청년, 어느 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며 접근한 여자 목사를 만나게 되니, 그녀의 이름은 요한나 셸란데르다.

 

그녀의 집안 내력?

대대로 목사로서 일하던 집안인 관계로 남자아이가 생산되지 못하고 딸만 줄줄이 출산이 이어지나 냉철한 아버지는 딸들 중에 요한나에게 목사로서 승계직을 이어 주기 위해 억지로 신학대학을 보내게 되며 이런 불만은 그녀의 성장 과정에서 항상 목마른 갈증이 된다.

 

자신이 근무하던 교회에서 뜻하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쫓겨나게 되면서 떠돌이 목사로 전락하고 페르와 이내 의기투합, 두 사람은 모종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

바로 안데르스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보자는 것-

 

온갖 음지의 청탁을 받아주고 돈을 받게 된 후 안데르스로 하여금 행동 개시를 부탁하게 되면 안데르스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일정 금액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이런 사업은 매체를 이용해서 안데르스를 더 없는 악랄한 악당으로 몰아가게 되고 이들의 사업은 번창하게 되지만 여기서 일이 꼬이고 만다.

바로 여 목사의 설교를 듣던 안데르스가 더 이상 패는 일도 없이 ,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하단 말씀을 따르기로 한 것-

두 사람은 안데르스가 청탁할 일을 미리 선금을 받고 안데르스를 떼어놓고 도망칠 계획을 세우게 되지만 엉뚱하게도 여전히 안데르스를 데리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익명의 돈으로 돈을 뿌린 안데르스는 졸지에 유명 인사가 되고 이  두 남녀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바로 교회를 세우고 안데르스를 설교자로 내세우면서 헌금을 거둬들이는 돈을 또다시 갈취한다는 것인데, 과연 이들의 계획은 성공할 수가 있을까?

 

종교에 얽힌 이야기를 시의 적절하게 각 대화마다 그럴듯한 포장으로 그려놓은 저자의 풍자와 유며는 여전하다.

시종 낄낄거림과 웃음을 유발하는 가운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선의적인 태도와 헌금을 어떻게 이용하고 유익하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비판, 더군다나 선한 일반 보통 사람들이 아닌 특이하게도 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제목 자체만으로는 무거움을 줄 수도 있었을 문제들을 저자는 부드럽게 진행시킨다.

 

세상 사에 불만이 많았던 두 남녀, 그들이 미워해야 하고 제거해야 할 사람들의 목록은 어느 순간 돈이 쌓이고 일정기간 호화스러운 호텔의 생활에서 오는 단조로움을 통해 과연 ‘행복’한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가난하고 종교에 대한 불만에 싸였던 두 사람은 어쩌면 킬러 안데르스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이를 이용하려다 오히려 자신들이 한발 더 나아가 세상과 타협하고 마음의 부자가 되려는 행동으로 변해가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킬러 안데르스가 아닌 행복의 길을 전도하는 안데르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을 패고 부러뜨리는 일을 다반사로 했지만 유독 어린아이만은 손을 대지 않는다는 안데르스의 주장에서 폭소를 터트리게 되고 이는 곧 그가 차후 어떤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지에 대한 변수를 제공한다.

 

「내가 소싯적에 우리 엄마가 가르쳐 줬던 어떤 기도가 생각나. 전에 얘기했잖아. 그 이빨 빠진 늙은 멍청이 말이야. 술독에 빠지기 전에는 그렇게 형편없진 않았어. 그 기도가 뭐였더라? 그래,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여기 엎드려 있는 저를 굽어살피소서······.」

?

「그래서요?」

?

「<그래서요>라니! 전에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신다고. 그런데 우리 모두가 어린 아이들이란 말이야! 이건 내가 바로 어제 변기에 앉아서 읽은 건데······.」? – p.111

 

저자의 성경말씀을 어리숙하게 해석하는듯한 안데르스란 인물의 묘사도 웃기지만 그 안에서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믿음이란 실체에 대한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의 행동, 킬러를 죽이려는 백작과 백작부인, 킬러가 밉지만 킬러가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질까 봐 오히려 백작과 백작부인을 죽이려는 암흑가의 사람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동들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전히 웃긴다.

 

웃음 가운데 또 다른 깨달음인 인생의 진정한 행복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대한 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도 깨닫게 해 주는 저자의 이번 책은 또 하나의 행복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책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