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6년 12월 6일

대리 사회

대리사히

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전직이 교수도, 학생도 아닌 경계인’이란 표현을 한 지방대 시간 강사로서의 현실을 이야기한 저자의

신작인 ‘대리 사회’다.

 

8년 동안 오로지 집과 학교, 연구 논문을 쓴다는 것에 집중을 했던 그가 왜 그동안 쌓아왔던 경력을 그만두고 제 발로 대학을 나오게 되었는지, 그 이후 대리기사로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살게 된 르포르타주 형식의 이야기를 접한 지금 마음의 한편이  씁쓸함을 남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대학강사란 직업이 주는 외면적인 형태는 그저 학식이 쌓인 사람, 강단에 서 있고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 생각되기 쉬운 현실이지만 이것도 알고 보면 교수와 학생 간의 대리 사회란 점, 강사로의 현실적인 생활의 형태는 4개월 비 정규직 계약직이라는 자리, 의료보혐증 조차도 발급되지 않는 상태에서 아이의 탄생은 그를 제 발로 대학이란 자리를 떠나게 만들었고 이후 맥도널드에서 일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리운전기사를 하게 되면서 느낀 전 사회적으로 흐름을 타고 있는 ‘대리’란 것에 주목해서 쓴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대리사회

 

하나의 온전한 주체로서의 ‘나’가 대리기사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자신의 주체는 이미 없어지고 오로지 운전자 석에 앉은 대리의 자격으로 변하게 되고 운전을 맡긴 차량 운전 주인이 주체로서 변하게 되는 통제된 현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부터가 잊을 수가 없게 한다.

자신이 통제를 쥐고 있는 것이라야 핸들, 브레이크, 엑셀 이외에는 건드리면 안 되는 ‘행위’의 통제, 차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말’의 통제,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영혼 없이 운전만 하는 ‘사유’의 통제를 통해 비로소 운전석을 내리고 나서야 나 자신의 주체를 찾게 된다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삶의 생활권이 주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는 과정들은 체감지수가 올라가게 만든다.

 

대리호칭

 

가끔 택시를 부를 때면 이용하게 되는 카카오 택시의 서비스 체제를 들여다보는 계기, 대리 기사님들의 애환들을 알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지만 이 안에서도 기존 업체와 신 업체 간의 경쟁과 치열한 기사들 간의 다툼 조차도 대표자인 책임자는 뒤로 물러나 있고 정작 공생을 같이해도 모자랄 판인 같은 ‘을’의 존재들이 ‘을’과 ‘을’의 대립으로 번지는 양상들은 사회 속에서 여전히 만연되고 있는 ‘갑’질의 묘사들을 보는 듯하다.

 

대리사회2

이 책의 대리 사회는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과연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는가, 저자 자신이 스스로 대학의 교육 체제에 대한 현실을 그린 책을 출간했을 때 자신이 생각했던 위의 압력은, 오히려 같은 처지의 선배나 후배들에게 왜 그랬냐는 질타를 듣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대목들이 같이 일하고 있을 때는 동료이지만 일단 한 발 물러나 위의 자리에 머물게 되면 이미 ‘을’의 생각은 과거로, ‘갑’의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이미 저 멀리 남의 이야기라는 질타에 수긍을 하게 된다.

 

사회적인 일반 현상에 대한 쓴소리도 같이 들을 수가 있는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그린 책이라 책 곳곳에 넘치는 가벼운 이야기로 한 템포 여유를 주는 센스, 진상 손님과 좋은 손님, 부부와 불륜의 자리 배석을 통한 감별을 하게 되는 대리기사로서의 느낌, 가장 무서운 손님은 브레이크가 제대로 듣질 않는 차를 가진 주인…..

 

곳곳에 푹 하고 웃음도 나지만 아내에게 주는 대리기사를 하고 받은 돈이 물건을 장만하면서 이름을 붙이게 된다는(이것은 제 1 대리로 번 돈, 이 물건은 제 2 대리로 번 돈…) 대목엔 부부로서의 같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애정과 애환을 같이 느껴 보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힐링’이라는 단어의 소멸 이후 ‘분노’와 ‘혐오’가 우리 사회를 뒤덮었다. 개인들은 이제 더 이상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둘러싼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N 포 세대’로 대변되는 허무와 고독, ‘노오력’이나 ‘헬조선’이라는 비아냥과 냉소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차근차근 임계를 향하던 개인의 감정들이 최근에 이르러 실체를 드러냈을 뿐이다. 하지만 대리사회의 괴물은 여전히 개인들이 그 분노를 온전히 발산할 수 없게 만든다. 대신 대리만족의 기제를 계속 내보내면서, 행복하지 않은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마취되고 나면 개인의 분노는 자신을 둘러싼 구조, 그 괴물에게 향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개인이나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더욱 자극적인 마취/환각제를 원하게 되고, 그에 따라 점점 더 강한 쾌락의 기제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아주 잠시 즐겁고, 오래 외롭다. -p213

 

 

 

여전히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삶은 고달픈 가운데 때론 행복이란 것이 있기에 참고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여기저기 경쟁에 치이기도 하는 자본주의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나’란 주체는 대리 인간으로 밀려날 것인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가는 주체가 될 것인가의 직면한 문제를 자신만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낸 책이기에 더욱 나 자신과 주변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하다.

사회 전반부에 흐르는 나, 너 할 것 없이 모두 대리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정한 ‘나’의 주체를 가지고 노력하는 삶의 모습이 필요하단 느낌을 준 책,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