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드라이

드라이 – 죽음을 질투한 사람들
제인 하퍼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다른 나라의 언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그 의미가 그대로 전달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그 나라 고유의 언어 그 자체만으로도 훨씬  뉘앙스가 강하게 와 닿을 때가 있다.

 

이 책의 제목 또한 그렇게 받아들여져야 할 만큼 뭔가가 한국 말로는 그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100여 만에 나타난 지극한 가뭄, 그 안에서 농장들의 작물들, 동물들은 이미 말라가고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으며, 사람들 또한 날카로운 신경으로 곤두세우고 살아가는 곳, 호주 안에서도 도시에서 떨어진 키와라가 바로  그런 곳이다.

 

가족단위의 생활을 영위해가는 사람들, 그 안에서 어느 집안사람이라면 바로 연상이 되고 탄생과 죽음까지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20년 전 엘리 디컨이라는 소녀의 죽음에 대해 살인범으로 몰리다시피 한 포크와 그의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이후 포크는 연방경찰로서 금융에 얽힌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이다.

 

그의 오랜 죽마고우인 루크가 자신의 집에서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그 자신은 집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머리의 형체는 날아간 채 총을 입에 물고 죽은 사건이 발생한다.

 

– ‘루크는 거짓말을 했어, 너도 거짓말을 했지’

 

루크의 아버지로부터 전해받은 편지의 내용은 포크를 다시 어린 시절의 아픈 곳으로 데려가게 되고 장례식에 오라는 말을 거절할 수 없어 고향에 발을 내딛는다.

 

그가 과거에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건, 엘리가 죽었던 그 시간에 포크는 루크와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진짜 범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마을 사람들의 증오에 찬 의심의 눈길, 엘리의 아버지인 멜 디컨의 집요한 행동과 말들은 결국 다시 루크의 죽음과 함께 원점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루크의 아버지가 결코 자신의 아들은 스스로 그렇게 가족들을 몰살시킬 만큼은 아니었다는 사실, 다시 수사를 해줄 것을 부탁받게 된 포크는 마을 경찰인 라코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데….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피해는 실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조그마한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마을이라면?

멜 디컨을 싫어하면서도 그가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섣불리 어떤 행동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그의 딸 엘리가 죽었을 때 네 명의 친구들인 루크, 포크, 엘리, 그레천의 서로 얽힌 관계는 청소년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그 나이에 느끼는 사랑의 느낌, 친구로서 감싸주지 못했던 회한들이 현재와 과거를 회상하면서 동시에 진행이 되고 각자가 품고 있었던 비밀들이 밝혀지는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현재의 살인사건과 과거의 살인사건을 모두 해결해보려는 포크의 행동은 그가 내내 지니고 있었던 엘리에 관한 생각과 누가 범인인지를 알아가는 과정들, 루크에 얽힌 사건의 본질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설정들이 메마름 그 자체를 연상시키는 배경과 함께 물을 흠뻑 들이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자가 묘사하는 풍경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은 시종 건조하다.

 

– 거대한 강은 땅 위로 난 먼지투성이 흉터에 불과했다. 척박하고 텅 빈 강바닥이 길게 양쪽으로 이어졌는데, 구불구불한  강의 곡선은 물이 흐르던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수백 년 넘게 깎여나간 빈 공간은 이제 찢어진 조각보 위를 바위와 바랭이가 덮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둑을 따라 울퉁불퉁한 회색 나무뿌리들이 거미줄처럼 드러나 있었다._p152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이 선택하는 최후의 보루는 과연 자연의 기후와 맞물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활활 불타 오르는 듯한 뜨거운 뙤약볕의 느낌은 턱턱 막히는 설정과 함께 사건의 진상과 그 뒤에 밝혀지는 인간사의 쓸쓸한 죄의 형벌에 대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준다.

 

 

호주의 삭막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그린 이 책은 가족 간의 사랑, 오해, 두려움, 억울함, 진실이란 감정을 모두 드러내 놓는 작품으로써 이미 영화화 결정이 되었다고 할 만큼 삭막한 영상미가 어떻게 조화롭게 그려질지 궁금증을 유발한 책이다.

 

네가 알고 있는 비밀, 내가 알고 있었던 비밀, 왜 그 시절에 밝히질 못했었는지, 봉인된 기억 속에서 살아는 것이 차라리 편안한 삶인지, 아니면 진실을 알아버린 후에 남은 삶에 대한 또 다른 희망을 기약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 여전히 포크에게는 고향인 키와라를 향해 던지는 질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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