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7년 11월 6일

마쉬왕의 딸

마쉬왕마쉬왕의 딸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극적인 설정의 몰입도는 때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흠뻑 빠져서 마치 내가 그 일을 당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때가 있다.

드라마, 영화, 연극, 그 외의 모든 것들, 특히 책 속에서의 강한 이미지의 주인공을 만날 때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의 사뭇 다른 소재 때문에 심리 스릴러의 또 다른 새로운 면을 감상했다면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 수긍을 할 수 있는 책-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법을 배운 사람을 죽여야만 한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들의 손을 빌리는 것이 아닌 내가 그 사람의 모든 습성과 행동을 알기에 그 사람 또한 나를 원한다면?

 

미국 미시간주 어퍼반도-

그곳에서 나고 자란 헬레나는 두 딸과 남편, 그리고 젤리와 잼을 야생에서 채취해 제품을 만들고 파는 생활을 하는 주부다.

어느 날  제품을 판매하고 오던 길에 차에서 들려온 탈옥수의 소식은 그녀를 과거로 데려간다.

이송 중 교도관 두 명을 죽이고 탈옥한 죄수, 유괴범이자 살인자인 그는 다름 아닌 그녀 스스로가 감옥에 넣은   그녀의 아버지다.

 

왜 그녀는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

원죄라고 말하기는 너무나도 그녀의 가혹한 인생 자체도 그렇고 그녀의 어머니 삶 또한 평탄치 않았던 일들이 그녀가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며 그린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부모의 존재,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지닌 자, 특히 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경험을 토대로 그녀에게 인디언의 피가 흐르는 유전자를 각인시키기 위해 모든 지혜를 쏟아부었던 아버지란 존재, 하지만 어린 소녀였던 엄마를 납치하고 자신의 생을 태어나게 한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 그 사람의 존재-

 

책은 심리 스릴러의 느낌을 충분히 느끼는 매 차트마다 헬레나가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존경, 감사, 가혹한 힘에 의한 무기력과 공포를 당했던 고통까지를 그린다.

 

남편에게조차 자신의 과거를 묻어두어야만  했던 사실들이 온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늪을 지배했던 자란 의미의 ‘마쉬 왕’이란 존재는 그녀에게 행동을 통해 말을 걸어오고 끝내는 그녀의 딸들까지를 원하는 사람, 그녀의 아버지다.

 

책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동화인 [마쉬왕의 딸]이란 내용을 들려주며 주인공 헬레나와 동화 속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미지를 매치시키는 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자신의 피 속에 흐르는 야만적인 유전자를 지우며 살아가고자 했던,  세상 물정에 대한 아무런 것도 몰랐던 한 연약한 여인이 자신의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란 존재를 지워야만 하는 급박한 상황과 대치 상황은 끈끈한 핏줄이란 것 앞에 머뭇거리면서 과거의 기억을 통해 다시 한번 부성애에 대해 생각해보는 아픔을 간직한 여인상을 동반한다.

 

아버지가 그럴 수밖에 없었을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보통의 인간 존재라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던 아버지이기에 용서를 해야만 하면서도 끝내는 결정을 봐야만 하는 끈끈한 과정들이 밀림의 형태를 간직한 숲의 각기 다른 계절의 모습과 그 천혜의 자연 적응을 통해 아버지의 생각을 읽고 행동에 나서는 헬레나의 반전이 숨 막히게 만든다.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를 사냥해야만 한다는 책 띠지의  문구처럼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진 보기 드문 새로운 형태의 여성의 존재를 부각한 책이다.

 

아버지를 버리고 엄마를 택했던 그 순간부터 이미 그녀 자신은 아버지를 죽여야만 했던 운명이었던 것일까?

간혹 가다가 방송에서도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말을 통해 갇혀있던  사람과 그를 납치한 사람 간의 모종의 연대의식을 엿볼 수 있다지만 이 책은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 보다 확실한 매듭을 지었다는 점에서 안타깝고 슬픈, 그러면서도 사이코패스란 성격을 지닌 사람의 존재를 죽여야만 했던 그 상황 설정들이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했다.

 

종전의 타 책들과는 또 다른 새로운 여자 주인공이 탄생을 알린 책, 책 속에 담긴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 그 안에서 또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기억이 될 만한 책이다.

                                                                                                                          
                                            

배반

  • 배반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2016년도 맨부커상 수상작이자 미국 작가로서는 처음 수상한 작품이란 것이라는, 제목부터가 의미하는 바가 큰 작품을 읽었다.

책 표지의 색상 자체가 보색 관계로 표현된 것처럼 이야기의 흐름은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이자 세계 각지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 정책과 각종 정치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허구의 가상 마을인 캘리포니아 주 디킨스에서 농장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주인공인 나. 즉 Me는 미국 대법원 법정에 서는 장면으로 시작이 된다.

 

그의 죄목은 다름 아닌 21세기에 인종분리 정책과 노예 제도를 지지한다는 것-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옛날의 시행제도로 돌아가자는 의미는 무엇인지, 저자가 자신의 피부색인 흑인이란 점을 두고서 자신이 살아오고 느낀 미국의 문제들을 때론 풍자식으로, 때론 배꼽 잡게 웃음 짓게 만드는 블랙유머의 통쾌한 역설이 독자들의 마음을 휘감는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삶의 터전인 마을이 없어진다면, 그래서 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애를 쓰는 미가 생각한 방법은 차라리 옛날로 돌아가는 흑인 노예의 시절을 시행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는  자신의 타고난 피부색과 이를 이겨내고 위대한 사람이 되라는 뜻의 영감을 불어넣어줬지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 그리고 과거에 삶을 잊지 않고 사는 호미나와의 관계를 통해 현재의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직시한다.

 

책의 전개 과정은 정말 탄탄하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만 미국 내의 흑인의 역사와 미국의 역사를 좀 더 잘 알고 읽는다면 책 속에 묘사된 부분 부분들과 패러디 부분들을 이해하는 데에 빠르고 재미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받게 했지만 그럼에도 만장일치의 심사위원회로부터의 지지를 받았다는 데서 이 작품이 품고 있는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았나 싶다.

 

특히 자신이 직접 재배한 마리화나를 대법정에서 피워대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말과 정책적으로도 인종 용광로란 한계를 품고 있는 미국이기에 그 나름대로의 다방면으로 제도적인 장치를 취하고는 있다지만 영원한 숙제처럼 간직하고 있는 인종 차별적인 문제와 사회에 걸친 전반적인 문제점들은 앞으로도 미국이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이자 운명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짧게 끊어지는 문체가 아닌 긴 만연체처럼 여겨지는 문장들, 그 안에서 무방비 상태로 빵빵 터지는 블랙유머를 통해 오늘날의 미국을 바라보게 한 작품, 앞으로도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