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7년 11월 12일

돌 위에 새긴 생각

돌위푲;돌위에 새긴 생각
정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0월

옛 선인들이 좋은 글귀들은 두고두고 읽어도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는다.

그만큼 살아온 지혜와 선견지명들은 지금의 우리가 읽어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책에 나오는 주된 내용들의 발췌는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에서 간추린 글들이다.

 

‘학산당인보’는 명나라 말엽 장호張灝란 이가 옛 경전에서 좋은 글귀를 간추려 당대의 대표적 전각가들에게 새기게 해 엮은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 속에서 나오는 전각들은 마치 서예가들이나 화가들이 자신의 글씨나 그림을 완성한 후 찍는 낙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돌1

 

요즘은 한자 세대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런 책들을 읽을 때면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면서 써 나간 글들일까?를 고민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전각 안에 새긴 글자 하나하나와 저자가 풀어쓴 해석들을 비교해 보면서 읽다 보면 빙그레 웃음 짓게 만드는 글과 좋은 글귀로 인해 행복함을 느낄 수가 있게 된다.

 

돌2

 

– 전각이란 것이 서예, 조각, 회화와 구성을 포함한 종합예술이다.-p8

 

그런 만큼 한 가지 주제에 머물지 않고 각기 다른 주제를 포함한 글들은 일상생활에서 묻어 나오는 선현들의 말씀을 작은 공간 안에 요점만 새겨 넣은 듯한 느낌마저 받게 한다.

 

세월의 흐름과 사소한 일에 욕심을 부리는 마음, 자연의 순환을 바라보며 느끼는 인간의 마음 정화, 효과 충성, 가족의 사랑을 포함한 단순하면서 깊은 뜻을 내뿜고 있는 글들을 읽고 있노라니 내 마음속의 정화마저 시켜준다는 느낌을 받게 해 준다.

 

돌3

 

다만 안타까운 점은 [학산당인보]의 원본이 하버드 대학교 희귀본 서가에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연유로 그곳까지 가게 돼어 보관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동양적인 정서와 글들이 있는 책인 만큼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정판으로 나온 책인 만큼 좀 더 보강한 글들도 들어있기에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하나하나 되새겨가며 읽어도 좋을 책이다.

                                                                                                                          
                                            

달콤한 노래

달콤한 노래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p 9

 

첫 문장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 문구는 누가, 왜, 어떤 이유로?를 연신 묻게 만든다.

 

결혼해서 첫 아이를 출산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초보 엄마로서의 즐거움과 생활의 안정을 누리던 미리암이 둘째를 출산하고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흔히 말하는 독박 육아-

사회에서의 각자 위치대로 일을 하고 있었던 남녀가 결혼과 동시에 여성은 출산이란 것을 경험하고 육아를 하게 되면서부터 남편이 사회에 동참하고 일하는 과정이 자신이 누렸던 과거와 비교하게 되고 지금의  생활과 점차 격차가 벌어지면서부터는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씨름하다 지친 짜증을 풀어내지 못하는 복잡한 심경을 책에서는 그려낸다.

 

결국 자신의 일을 다시 되살리면서 사회에서 경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 보모를 채용하는 부부, 그들에게는 루이즈라는 체구가 작고 금발인 한 여성이 면접을 오면서 그들의 생활 속으로 스며든다.

 

오로지 육아에만 머물지 않는 루이즈, 집안의 곳곳에 그녀의 숨결이 스며들고 아이 둘은 엄마보다는 훨씬 루이즈를 가깝게 대하는데, 살인범이 보모라니!

 

책은 루이즈의 자라온 환경과 그녀의 딸과 죽은 남편으로 인해 빚더미에 앉아 졸지에 거리에 내쫓기게 되는 상황들을 그려낸다.

 

그녀의 내밀한 생각들, 같은 공원 안에서 마주치는 다른 가정의 보모들과의 접촉마저 최대한 피하는 그녀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책은 자신이 아무리 모든 정성을 쏟아붓고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일하는 루이즈를 바라보는 미리암과 남편 폴의 시선들, 그녀에게 육아를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함께 루이즈가 그들 안에 온전히 자신도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머물기 위해 최대한 계획을 짜는 일들까지를 비교하면서 그린다.

 

독자들은 책 속에 루이즈의 정확한 생각들을 모른다.

아기를 죽여야만 했던 그 간절하고 염원했던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면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하던 어느 순간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육아에 대한 지친 짜증이 폭발해서?  두 아이가 시간 차로 죽고 그녀마저 죽음에 실패하면서 아이들을 잃은 미리암의 울부짖는 괴성과 함께 두 여인에 대한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미리암은 보모로서 채용한 루이즈에 대해 자신이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들이 많이 없다는 사실들을 깨닫는 순간, 그녀에 대한 빠른 조치가 아쉽다는 느낌마저 들게 하면서 우리들은 긴밀한 접촉을 하고 있는 타인들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루이즈에 대한 믿음이 점차 그들의 눈에 불편함이 되어 돌아오면서  시선과 시간을 멀리 두게 된 두 사람을 바라보는 루이즈의 느낌은 바로 보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하나의 직업인으로서만   느끼고 있었다는 굴욕감이 크지 않았을까?

 

직업에서 오는 굴욕적인 말과 행동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보모들이 느끼는 무언의 감정과 행동들은 알고서도 알지 못한다는 이중성의 생활고와 함께 루이즈가 느꼈던 감정의 장애를 통해 섬뜩한 심리 스릴을 이루어낸다.

 

– 누군가 죽어야 한다.

– 우리가 행복하려면…..

 

이 문구는 읽는 것 자체도 끔찍하게 다가온다.

자신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무서운 일을 저지른 루이즈의 행동 안에 깃든 외로움과 굴욕감, 이 모든 것을 방해하는 것들을 없애야만 자신이 안주할 공간이 생긴다는 그릇된 행동에서 발생한 아이 살해는 무심코 하루하루 보내는 일상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이러한 평범하지 못한 공포가 스며들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책이 아닌가 싶다.

 

– “얘들아, 이리 와, 목욕할 거야.”

 

오르골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 그것은 결코 책 제목에서 말하는 달콤한 노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