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8년 7월월

검은 모래

검은모래검은 모래
구소은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6월

역사 속의 아픈 기억들, 특히 한 시대를 드러내는 사건들은 여전히 그때의 날이 다시 돌아오면 여전히 가슴 한편이 아프다.

 

한반도란 땅에서 떨어진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읽으면서 역사의 한 부분을 관통하고 있던 부분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를 주었다.

 

2013년 제1회 4.3 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검은 모래>란 이 작품이 다시 출간이 되면서 접한 기분은 여전히  당시의 삶을 이어간 사람들에 대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평생을 해녀로 살아간 제주도의 해녀들의 삶, 거친 자연환경도 그녀들의 삶을 같이 부여잡고 살아갔지만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한 일제의 강제 점령기는 결코 그녀들에게 평온한 삶을 주지 못했다.

 

제주 여인인 구월과 해금의 삶을 통해 본 그녀들의 삶과 그 삶 안에서 살아가려 했던 모진 세월의 극한을 그들의 자손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그린 이 책은 일본 속에 재일 한국인이란 신분의 세계를 같이 이어가면서 더욱 먹먹함을 지니게 한다.

 

세계 속의 각 나라들이 처했던 이러한 상황들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한 나라의 국민이 어떻게 자신의 고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 그 안에서 한국인의 뿌리가 점차 일본이란 나라에 살면서 어쩔 수없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워버려야만 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현실적인 고통, 고뇌,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생각들은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책은 4대에 걸친 제주 여인의 삶과 그 자손들의 삶까지 포함시키면서 육지에 극한 됐던 한국의 아픈 역사가 제주도라는 섬에까지 넓혀 그 역사의 현장으로 오게 만들었고 일본까지 그 범위를 펼친 저자의 필력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역사의 한 부분을 보다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다뤘다.

 

일본 내에서 같은 한국인이라도 조총련, 북송 귀국 민, 재일 조선일들에 대한 처우 개선들은 알고 있었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그렸다는 점에서 이 책은 책 제목처럼 한 손에 모을 수는 있지만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모래, 특히 제주 여인들의 한 많은 삶을 토대로 그린 개인의 삶과 역사가 검은 모래 그 자체를 연상시켰다는 점에서 깊은 감동을 준 책이다.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해리오거트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책들이 많이 나오는 가운데 좀  독특한 책을 만났다.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처럼 주인공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과정들은 같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주인공 해리 오거스트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남을 반복하는 삶을 살아가는 초인들의 집단인 칼라차크라(우로보란)다.

 

그는 처음에 1919년 1월 1일에 태어나 1989년 70세의 나이로 외롭게 죽을 때의 삶까지 모조리 기억한 채 계속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원하지도 않았지만 이미 그의 생은 이러한 반복 작업을 통해 초인 집단들 가운데서 기억술사란 더욱 특이한 점을 지닌 삶을 살아간다.

 

한번 죽었고 다시 태어나게 되면 그 이전의 삶은 모두 망각이란 것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지만 해리는 오히려 이러한 몇 번의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다음 생애에서 일어날 일들의 경험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이용해 보려고 노력한다.

 

이들의 특징은 미래를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연대 조직인 ‘크로노스 클럽’을 창설하여 유지하게 되지만 현재에 개입해 미래를 조작할 수 있다는 능력은 역사에 대한 그 어떤 것에도 개입을 불허한다는 방침을 세운다.

 

하지만 그런 일부들 중 해리의 환생하던 삶 중에서 교수의 신분으로서 맞게 된  제자이자 친구처럼 여긴 빈센트 렌키스와의 의견 충돌은 해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미래를 알지만 개입을 꺼리는 해리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선 이에 개입을 함으로써 더  나은 지향을 해도 괜찮다는 빈센트의 충돌, 그들은 그렇게 만나고 죽고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드디어 빈센트가 계획한 거대한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책 속에는 이러한 반복적인 패턴과 그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해리의 인생들, 그 안에서 저자의 해박한 세계사와 양자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접목시켜 인생의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러한 반복적인 삶은 과연 행복할까?

 

책을 읽다 보면 태어남과 죽음은 그렇게 긴 격차가 아님을,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리는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사랑하는 여인마저도 그가 말한 진실에 대해 정신병자로 오해를 했으니, 죽고 태어나고 다시 만남을 거듭하면서도 해리의 삶은 오히려 외로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는 느낌을 준다.

 

선형적인 역사 속에서 해리처럼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없이 역사 속의 한 부분에 개입을 하게 되었고 빈센트의 계획을 저지하려는 그의 욕망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교차의 시. 공간들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장면들로 인해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말미에 빈센트의 계획은 과연 저지할 수 있을까?

해리가 남긴 편지는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의 허를 찌른 대미의 장식을 했다는 점, 해리는 과연 다음 생애에서 다시 태어나 또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이야기의 진행은 결코 끝이 아님을 느끼게 해 준 저자의 글은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건지감자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7월

한 권의 책과의 만남도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읽는 것이고 그 인연으로 인해 또 다른 느낌의 책을 연속적으로 접하게 됨으로써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연찮게 집어 든 이 책과의 인연은 바로 다른 책으로 연이어 이어졌고 그런 때문인지 오랜만에 다시 접해보는 편지체 형식의 글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책 제목이 기타 다른 다른 책들처럼 와 닿지는 않았지만 그 속 내용은 정말 감동적이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마 올해 영화 개봉에 맞춰서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것만 봐도 그렇고 내겐 이 책이 세 번째 읽는 것이기에 다른 책들과는 좀 다르게 읽게 된 책-

 

전쟁이 참혹하고 인간들이 저지르는 일들 중에서 생각하기조차도 하기 싫은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 책의 배경이 된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1946년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전쟁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줄리엣의 직업은 영국의 인기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어느 날 그녀는 채널 제도에 있는 건지 섬에 사는 한 남자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는데, 이 사람이 속한 클럽 이름이 바로 책 제목인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이다.

 

‘도시’ 란 이름을 가진 그 남자는 줄리엣이 소장했던 책을 갖고 있다며 작가의 다른 작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알려달라는 편지를 보낸 것이 인연이 되어 줄리엣과 서신 교류가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점령하에서 5년의  세월을 견딘 건지 섬사람들, 생각만 해도 무척 암울하고 희망조차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의 시대지만 책은 그런 분위기를 일쇄하고 보다 적극적이고 따뜻한 영감과 서로 돕고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우정과 사랑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려낸다.

 

소설이 주인공인 줄리엣, 출판사 발행인 시드니, 절친한 친구 소피, 그 밖에 건지 섬사람들 간의  주고받은 서신만으로 책 내용을 다룬 이 책은 책을 통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그런 가운데 진정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행복을 이루는 이야기까지 , 시종 전쟁이란 분위기를 느낄 수조차 없을 정도의 유쾌함을 지니게 한다.

 

실제 저자의 이력은 이 책이 처녀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됐다고 하는데서 더욱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할 만큼 물자 부족과 전쟁이 주는 치열한 삶의 생존을 어떻게 이런 분위기로 바꾸면서 이끌어나갔는지에 대한 감탄을 금할 수가 없게 만든 책이다.

 

책을 통한 서로 간의 감정 교류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이룬 건지 사람들, 책을 읽을 때마다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책, 언젠가 건지 섬을 방문해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게 하는 책이다.

 

 

시인장의 살인

시인정살인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7월

2018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시작으로 처녀작으로 기존의 유명한 상을 휩쓸었다는 전대미문이 신인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다.

 

대학 1학년생인 하무라는 ‘미스터리 애호회’ 회원이다.

그것도 회장 아케치 선배와 그, 단 둘뿐인 비공인 동아리라고 할 수있다.

평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만큼 그 둘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길 좋아하는데 어느 날 ‘영화 연구부’에서 심령 영상을 찍기 위해 여름 합숙을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수차례 참여의사를 밝혔음에도 거절을 당한 가운데 겐자키라는 여학생의 제의로 무사히 합류를 하게 된다.

 

합숙장소는 영화부 선배인 나니미야의 아버지가 주인인 ‘지담장’이란 곳이고 그곳에 도착한 후 저녁에 그들은 신사로 담력 시험에 도전하게 된다.

 

한편 가까운 곳에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곳에서 원인불명의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면서 신사 담력에 참여했던 일행 몇 명은 봉변을 당하게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가까스로 지담장에 모이게 된다.

 

흔히 말하는 밀실 살인사건을 다룬 이 책은 좀비로 변한 사람들의 공격을 피하는 가운데 지담장에 모인 사람들 중에 작년에 불미스러운 일에 가담했던 선배들이 하나둘씩 죽은 시체로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다룬다.

 

정확한 시간, 한정된 공간, 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밀폐된 공간 안에서 좀비의 영향을 받아 처참한 몰골로 죽은 사람들, 과연 이들 중에서 범인은 있을까? 그렇다면  누가, 왜, 어떻게 죽였는가를 두고 추리를 이어가는 겐자키와 하무라의 활약은 읽는 동안에도 도통 범인을 짐작할 수 없게 만든다.

 

 

일측 일발의 좀비들의 공격과 이를 피해 사투를 벌이는 한편 같은 일행들 중 한 명이 살인자라면?

 

죽음의 원인을 자초한 사람들의 행동, 그 원인 때문에 안타까운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생겨나는 사연과 함께 일본판 좀비라고 생각될 정도의 변모해가는 좀비들의 모습들은 그 가운데서도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고,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겐자키의 논리와 미스터리 애호가답게 추리를 해나가는 하무라의 콤비는 다음 작품을 통해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게 만든다.

 

 

밀실 살인이란 주제 하에 좀비의 출현을 더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허를 찌른 살인 기법, 색다른 추리물의 조합이란 생각과 함께 이 신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마지막순간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장르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 단편문학, 특히 순수문학에 대한 갈망이 있었나 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여러 작품들을 접해 왔지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이 작가의 첫 작품집인 단편 수록들은 곱씹으며 읽게 됐다.

 

책을 펼치면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이 일본에 이미 자신의 번역으로 소개한 저자에 대한 평을 읽을 수가 있는데 중독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과연 첫 작품부터 나의 허를 찌를 초간단 단편이라고나 할까?

만일 해로를 약속하고 결혼한 커플이 이혼을 했고 시간이 흐른 후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의  기일이 체납되어 반납하러 가던 날, 전 남편을 그곳에서 만나게 된다면, 과연 서로는 어떤 말들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실제 이 책에서 보인 두 사람의 대화는 마치 그동안 할 말을 미처 못 하고 회한에 젖은 듯한 상대에게 바란 점을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끝맺음은,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끝맺음을 할 수가 있지 라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파격적인 도마뱀 꼬리 잘려나가듯 무심히 끝내버린다.

 

그 뒤를 이어 다양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그린 내용에는 작가의 페르소나처럼 여겨지는 페이스란 여인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여러 다양한 면을 다룬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올리브 키터리지를 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와 비교하게 되는데, 확실히 두 작가의 느낌은 다르다.

 

하지만 인생의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주종의 패턴들은 주위에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고 그 결과물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패턴들이 있어 총 17편의 단편 어느 것 하나 손에 놓을 수가 없었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녀 작품 속에 드러낸 삶의 다양한 이면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단편보다는 장편 장르의 이야기 흐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번에 또 다르게 접해 본 단편의 맛, 때론 시니컬하고 냉소적이고 은유를 통한 유머의 문장들은 읽는 맛을 더욱  느끼게 해 주었을뿐더러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인 엄마가 아들의 결혼 상대자에 대한 반대하는 부분들은 인생을 웬만히 살아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아주 짧은 단편의 이야기부터 중편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의 분량까지, 저자의 이번 첫 소개 작품을 통해 그녀만이 쓸 수 있는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게 한 책이다.

한낮의 방문객

한낮의 방문객

한낮의 방문객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2월

택배 문화가 발달해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엔 특히 아주 추운 계절이나 요즘처럼 푹푹 찌는 폭염이 있는 계절에 아주 유용하게 이용되는 것 중의 하나다.

 

옛날에는 이웃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로 서로가 터놓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생각조차 하지 못할,  서로 이웃 간의 서먹한 정도는 이제는 당연한 듯이 지내는 시대가 됐다.

 

이 작품은  2011년 <크리피>로 제15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마에카와 유타카 교수의 화제작으로 현대인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 허점을 파고든 스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빌라에 28세 여성과 다섯 살짜리 딸이 시신을 발견이 된다.

 

요금 체납으로 인해 수도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나선 56세의 저널리스트이자 대학 시간강사인 다지마는 공기관의 처사에 울분을 느낀다.

 

다행히 지식인을 위한 월간지 <시야>에 이 기사를 실릴 원고를 쓰게 되는데, 우연찮게 이웃에 살고 있는 두 자매에게 도움 요청을 받게 된다.

 

정수기 판매를 목적으로 들이닥친 두 사람의 강압적인 말과 행동에 두려움을 느낀 것인데 이 일은 먼 15년 전에 벌어진 살인사건과 연관이 되면서 두 모녀의 아사 사건은 급기야 정수기 판매 사건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자신의 문 앞에서 친절하고 정갈한 입성의 바른 자세의 남자들이 수질 검사를 무료로 한 번 해주겠다고 한다면, 그것도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출. 퇴근 시간이 아닌 한가한 시간대를 노린 범행이라면 누구라도 당황해하며 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은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 속에 살인 현장의 정황 묘사가 무섭게 다가오고 이런 일들을 서슴지 않게 벌이고 내빼는 진짜 범인의 뻔뻔한 행동과 말들이 법의 체계와 그 안에서 법망을 피할 수 있게  법의 허점을 노린 장면들이 저자의 전공분야답게 잘 표현이 되어 있다.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결말의 뜻하지 않는 또 다른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은 통쾌하기보단 왠지 씁쓸하고 허망한 인생의 말로를 보는 것 같은 회한을 지니게도 한 작품이다.

 

어떤 사건의 발생 시점에서 나타난 시신의 형태를 통해 살인인지, 자연사인지를 판단하는 검시의 단계에도 여러 절차가 있고 이를 토대로  한 인간의 죽음을 두고 어떤 방향으로 결말을 나타내야 하는지에 대한 상황들이 들어 있어 기타 다른 스릴 장르에서 보인 것보다는 훨씬 체감 있게 다가오게 한다.

 

현대인들의 홀로 살아가는 삶, 그 안에서의 고독과 더불어 이웃과의 교류마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생활 패턴의 부정적인 면을 살인이란 사건을 통해 보인 책이라 인상이 깊게 남는다.

                                                                                                                                

녹색섬광

녹색섬광녹색섬광 – 김은주 미스터리 소설
김은주 지음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8년 7월

요즘 한국 드라마를 보면 소재의 유행이란 것이 있긴 있나 보다.

특히 지상파는 물론이고 케이블 방송에서도 단골처럼 등장하는 메디컬 소재 드라마는 때론 로맨스적인 면도 들어있지만 거대한 조직 앞에서 힘없는 인간의 진실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에 대한 다각도의 이야기들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작품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 사업 선정작으로 당선된 작품이다.

한국적인 메디컬 스릴러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를 궁금하게 한 책, 그런 점에서 앞으로 이런 류의 작품성 소재는 더욱 활발하게 다루어졌음 하는 바람이 든다.

 

이야기는 15살 소녀 수인이 5년 만에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던 날, 같은 동갑내기 소년 고윤이 투신자살하면서 시작이 된다.

 

단순한 자살이라고 결정된 이 사건은 수인이 진실은 그것이 아님을 말함으로써 본격적인 진행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 모두 코마 상태에서 빠진 상태였다가 고윤이 먼저 1년 만에 깨어났고 고윤은 자신과 같은 처지로 누워있는 수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뜻 보면 코마 상태에서 타인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의학이란 사람의 관점에서 확실히 보이는 면이 있는가 하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발생하기에 이 부분은 확실히 모르는 나로선 패스~

 

한편 고윤의 죽음의 원인은 수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반적인 자살이 아님을 짐작하고 있는 간호사 희정과 기타 경찰과는 다른  의문을 갖고 있는 형사 무원까지 합세하면서 이 사건 뒤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어떤 확실한 결정적인 쾌감을 선사하진 못했다는 아쉬움을 준다.

 

왜 증거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음에도 간호사나 형사는 의지박약처럼 행동에 옮기지 못했을까?

백지장도 만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이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보다 적극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장면이 과감하게 펼쳐졌다면 한국형 메디컬 스릴러의 새로운 장르를 보인 작품으로써  확실한 느낌이 들었을 텐데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흔한 거대한 대학병원의 감춰진 비밀과 거대 알력들의 보이지 않는 힘,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이 그저 아픈 속만 끓여야만 하는 유족들의 심리들까지를 두루두루 선보인 작품답게 현실성 있는 고발을 드러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의 소설 장르에서도 점차 다양한 소재의 패턴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가 된다는 점을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 만일 드라마로도 나오게 된다면 다를 차원의 메디컬 소재를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한 작품이다.

                                                                                                                                

헬리콥터 하이스트

 

헬리콥터

헬리콥터 하이스트
요나스 본니에르 지음, 이지혜 옮김 / 생각의날개 / 2018년 7월

 

 

 

 

단순 강도가 아닌 확실하게 각인되는 강도사건을 심층 취재해서 소설화한 작품이다.

실제  2009년 9월 23일에 벌어진 강도사건의 실화를 다룬 이 책은 스톡홀름의 한 건물, 그것도 보안 업체이자 현금 수송업체를 겸하고 있는 G4S란 회사의 현금 보관소를 강탈한 사건을 재 구성한다.

 

전혀 다른 국적을 가진 강도들, 그들의 속사정을 알고 보면 평범한 가장도 있고, 뛰어난 전기 수리공도 있으며, 침착하고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인성을 지닌 사람, 이 모든 재정을 담당하는 사람, 결정적으로 헬리콥터를 이용해 조종사까지 구해 이 사건에 뛰어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사건이 전개되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다뤘다.

 

 

철저한 보안을 자랑하는 회사, 그것도 헬리콥터를 이용해서 돈을 강탈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그들이 모의를 도모하고 설계도와 경찰들을 따돌리기 위해 펼친 행동들은 철저한 시간 계산 아래 이루어진 일사불란한 특공대를 연상시킨다.

 

차단 경보를 해제하는 방법이 아닌 지붕을 뚫고 현금이 보관된 6층까지 가기까지의 시간을 다투는 계산, 그 안에서 다뤄지는 심리적인 압박감들은 비록 나쁜 범인들의 행동이었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의 맛을 느끼게 한다.

 

더군다나  경찰들의 심리를 이용한 압박작전, 이를 허용한 나머지  이들의 사전 강탈 계획을 알고 있었음에도 허탈하게 당하고 마는 경찰들의 판단력 저하는 오히려 이들의 강도 사건을 더욱 부각하는 도움을 주는 장면이 마치 진짜 영화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타임지 선정 세계 10대 강도 사건 중 탑으로 꼽히는 사건인 만큼 저자가 이 사건에 관계 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설정한 작품 속의 장면 장면들은 영화도 이런 영화는 없을 것이란, 그렇지만 실제 이런 사건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믿을 수가 없게 만든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실제 사건이 정말 그렇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갖는 식의 결말이 그들이 그렇게 애쓴 노력(?)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나 하는 반전의 맛이 기막히게 다루어 그려졌다는 점이다.

 

 

서스펜스와 재미를 모두 갖춘 실제 이야기의 구성은 제이크 질렌할 주연으로 영화화 제작 확정이라고 한다.

어떤 인물을 맡을지도 궁금해지는 만큼 책 표지에서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맞춰보는 것도 재밌을 듯 하다.

 

테미스의 검

테미스 검

테미스의 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일본의 추리 소설 중에서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는 많은 시사성을 드러낸다.

그중에서 이 저자의 작품은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저력이 있음을 느낀다.

 

200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수상 작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편에 속하는 이 작품은 주인공인 와타세란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의 해결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우리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지만 일본에서는 사용되고 있는 말이라고 하는 원죄(寃罪:억울하게 뒤집어쓴 죄)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법과 그 법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넓은 저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쇼와 59년(1984년) , 폭우가 내리던 밤, 러브호텔 사이에 낀 부동산 주인인  업체 사장과 그 부인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에서 형사 신분으로 상승한 새내기 와타세는 선임 선배와 함께 사건의 현장을 둘러보고 죽은 사람을 둘러싼 주변인들을 조사, 그 가운데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구스노키를 심문하게 된다.

 

강압적이고도 고압적인 수사 방식과 회유를 거쳐 거짓 자백에 이르게 한 경찰, 그 이후 판사 앞에서 자신의 부당한 대우와 거짓 자백임을 항변하는 구스노키의 항소심은 들어주지 않은 채 법원은 사형 판결을 내린다.

 

그 이후 구치소에서 자살로 마감한 구스노키-

시간이 흘러 5년이 지난 후 우연히 발생한 사건의 현장을 조사하던 와타세는 지난 사건의 패턴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용의자로부터 5년 전의 사건 또한 자신이 했음을 자백받게 되는데….

 

 

방송이나 영화에서 보이는 여신, 법하면 떠오르게 되는 테미스 여신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이다.

한 손에는 검을, 한 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는 모습은 흔히 정의의 여신을 알고 있지만 그 동상이 의미하는 두 개의 상징은 엄격하기만 하다.

 

5년 전 범인이라고 확신을 갖고 있던 사람이 진범이 아닌, 정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살로 몰고 가게 한 그 사건은 와타세에게 자신이 현 위치에서 감당하고 있던 양심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책은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건 해결을 빨리 결정지으려는 윗 선의 고압적인 질책과 서로 다른 현경과 경찰 간의 사건 인수의 경쟁심과 우위권 확보, 거기에 더해 범인의 증거조작까지 서슴지 않고 행하는 법의 조직 형태, 그 윗선들의 몇 명의 해고조치를 통한 얼버무리기를 보임으로써 법 체계의 허점을 드러낸다.

 

초반부가 이러한 패턴의 양상을 지닌 사건의 발생을 다루는 가운데 와타세 형사의 양심적인 폭로를 다뤘다면 후반부는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다.

 

생각할 수도 없었던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일말의 과정 속에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부분들이 있으나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권력을 쥐고 있는 자와 그 권력 앞에서 진정한 형량을 바라는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 끝내는 항변의 한마디 말조차도 듣지 않았던 판결을 내리는 과정 속의 각 위치에 속한 인물들의 고뇌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  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천칭을 든 법의 여신 테미스. 검은 힘을 뜻하고 천칭은 선악을 판단하는 정의를 뜻한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는 뜻일까-p 107

 

판사의 입장에서 판결을 내리기 전에 다시 한번 고민에 고민을, 인간이 죄를 저지른 인간에게 판단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경각심을, 피해자 가족들의 울분은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을, 그리고 뭣보다 지금 이 순간 판결 한마디로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그 사실 자체 앞에서 던지는 이러한 테미스 검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말의 겸손함을 지니게 한다.

 

한 사건을 통해 법 안에서 이루어지는 절차들을 보인 이 작품은 법이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있음으로 인해 보다 나은 사회, 형평성이 고루 배분된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와타세 경부 시리즈인 만큼 이번 작품에서는 와타세의 형사가 사건 해결을 통해 자신의 성장 발판을 이루어나가는 이야기도 포함이 된 만큼 다음 시리즈에선 어떤 활약을 보일지 자못 기대되는 작품이다.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거룩한게으름배이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표지 그 자체로 내용을 확연히 와 닿게 하는 책,

저자의 독특한 책을 통해 또 한 번 재밌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여기 천하에 게으름뱅이가 있으니  교토의 회사원 고와다 라는 사람이다.

평소엔 자신의 회사에 충실한 회사원이지만 주말엔 이끼가 낀 지장보살을 자처하며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가 꿈꾸는 삶, 또한 그런 연장선에 있으니 남쪽 섬에서 망고 프라푸치노를 마시며 ‘의미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바로 이상향처럼 느껴지는 게으름뱅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런 사람도 있기 마련, 즉 교토의 명물 혹은 괴인 ‘폼포코(너구리) 가면을 쓴 인물이다.

그가 행하는 행동들은 타인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그의 정확한 생업은 정해져 있는 듯 하지만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고, 그저 거리를 누비며 미아 구해주기, 행패를 부리는 취객들 제압하기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고와다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줄 것을 제안하는데,,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가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없는 듯, 하지만 이런 조합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구성은 저자만의 색깔을 드러내기에 부담 없 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으름뱅이라면 고와다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탐정 우라모토, 그를 보좌하는 주말 아르바이트생 다마가와의 행동은 탐정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약간 부족한 어설픈 모습의 인물들이다.

 

여기에 고와다의 직장 선배인 온다와 그의 애인 모모키, 상사인 고토 소장, 알파카와 판박이 모습을 한 거대 조직의 수령까지, 저자가 그리는 인물들의 활동들은 고와다와 폼포코의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한여름밤의 대모험을 펼치는 과정까지 이어진다.

 

전작도 그렇지만 교토를 중심으로 그려나간 이야기는 일본답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책을 읽다 보면 교토의 곳곳을 탐방하고도 싶게 만드는, 게으름뱅이의 대표자 격인 주인공의 활약을 통해 익살스럽고 재치 있는 한편의 만화를 보는 듯한 기분도 들게 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