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8년 7월 7일

모스크바의 신사

모스크바의 신사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격동의 시대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그 안에서 적응하며 살아갈까?

사실 이미 지나간 역사를 통해 비춰보면 무수히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이란 그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야만 했던 그런 날들이 많았고 차츰 그런 분위기에 젖어 들어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 듯 살아지는 것이 인생의 한 모습들이 대부분 일것이다.

 

여기 그런 대격동의 역사적인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한 남자가 있었으니 고귀한 신분의 백작님이다.

 

이름하여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이며 경마 클럽 회원이고 사냥의 명인이시며 <<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 >라는 프롤레타리아를 고무 찬양한 위대한 시집을 낸 시인인 일렉산드로 일리치 로스토프 러시아 백작이었으니 어렸을 때부터 어려움이 없던 그가 겪을 시대는 분명 생각하지도 못했을 시대였을 것이다.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리고 혁명의 깃발을 내세운 인민의 나라, 볼셰비키는 그런 백작을 가만두지 않았다.

다만 다른 사람들처럼 어떤 제한된 공간이나 지역에 가둔 것이 아닌 다행이라고해야 할까, 불행의 시작이라고해야 할까, 찬양한 시 덕분에 그는 그가 머물렀던 메트로폴 호텔에 갇히게 되는 < 호텔 연금 종신형 선고 >를 받는다.

 

특급 방에 머물렀던 그가 졸지에 맨 위층에 자리한 하인들의 숙소였던 방으로 좌천되던 날, 그는 꼭 필요한 것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지위도, 호화스럽던 생활도, 그저 어릴 적 자신의 대부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던 말 되새기며 전혀 다른 그만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1922~1954년, 그 이후를 다룬 이 책은 한 인간의 삶에 미친 역사와 그 역사 안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역사를 마주 보고 자신의 삶을 인정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제목 자체로도 흥미를 끌었던 만큼 이 책의 내용은 백작에서 웨이터 로스토프 씨로 불리며 살아간 한 남자의 지난한 인생을 보인다.

 

자신의 인생 속에 몽테뉴나 톨스토이, 호두까기 인형, 안통 체호프나 자신의 친구가 혁명의 깃발 아래 어떻게 끌려가는지, 거대한 러시아란 나라 안에서 좁은 호텔 안에서 생활한 그의 삶은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정말 다양한 신분차별을 넘어선 우정과 신뢰, 여배우 안나와의 사랑을 이루어 나가는 행보를 보인다.

 

어린 소녀였던 니나가 건네준 호텔 만능키를 통해 자신이 호텔 구석구석 전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그저 한쪽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그를 바라보면서 결코 쉽게 수긍할 수만은 없었을 그의 인생 변화가 용기가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과감하게 환경을 지배하면서 살아가려 결심한 그가 만난 인연들은 모두 그처럼 저마다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주방장 요리사, 지배인, 전직 장군, 여배우 안나, 그리고 니나의 딸 소피아까지….

 

혁명의 시대를 겪으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과연 몽테뉴와 톨스토이의 책을 통해 대변되는 그의 변해가는 모습들은 70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2016~2018년까지 미국의 독자들을 사로잡은 책이라고 하고, 오마바 전 미국 대통령까지 추천한 책이라고 한 만큼 시대적인 배경만 놓고 보자면 지루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자는 이런 것을 무난히 넘겨가며 읽을 수 있을 만큼의 잔잔함과 감동을 엿보게 만들었다.

 

전작을 살펴보니 시대적인 배경들이 과거를 주로 대상으로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저마다의 주 특기로 다뤄지는 시대가 있는 것처럼 저자 또한 이러한 암울하고 우울할 수도 있는 시대를 배경으로 특히 미국인이 러시아의 격동기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도 신선했지만 시대의 흐름, 역사의 변화기에 맞춰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 가며 자신만의 삶으로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현명하게 보인 글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화로 확정됐다고 하니 각 중요한 인물들의 캐스팅도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한정된 호텔을 배경으로 그린 인생의 삶, 웨이터 로스토프 씨의 삶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어리석은자1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5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제2의 사와자키 시리즈의 본격적인 부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작이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내가 죽인 소녀>, <안녕, 긴 잠이여>부터 단편집 <천사들의 탐정>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들의 세계를 1부로 말한다면 지금의 이 작품은 제2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만큼 출간 시기도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나왔고 이 작품을 읽은 후의 느낌은 여전히 작가의 필력은 녹슬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의뢰인이 찾아오고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아닌 동업자인 와타나베를 찾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건에 휘말리며 해결한다는 흐름도 인상적이지만 이 작품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관련된 일들은 전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긴밀함을 가진다는 데서 작가의 철저한 계산에 의해 쓰인 책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아버지의 무고를 증명해 달라고 찾아온 여인-

그 여인을 따라나선 사와자키는 결국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경찰서에서 벌어진 총격사건, 야쿠자 간의 음모들이 뒤섞이면서 사건은 하나의 커다란 밑그림으로써 충실함을 기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왜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 즉 다른 지역의 은행에서 야쿠자 두목과 은행원을 총격 살해한 당사자가 아님에도 그 사람을 대신해서 허위 자수를 했던 것인지,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경찰이 사와자키의 행동으로 인해 죽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경찰들로부터 동료가 죽었다는 비판까지 감수해가며 해결의 일선에 나서는 사와자키란 인물은 역시 변하지 않는 냉혹함의 인물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전 시리즈들이 나온 출간 시기의 흐름이 웬만한 기타 작가들의 출간보다 느린 탓에 세월의 흐름을 느껴볼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수사 방법을 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고 시리즈란 이름으로 끌고 가기에 여러 가지 사건의 테마를 넣어 사와자키란 인물을 활동을 그려내기도 쉽지는 않을 텐데 저자는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해소시킨다.

 

제목 자체에서 오는 어떤 기시감들이 들어있는 이야기인 만큼 인간의 탐욕과 그런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는 사건의 이야기 흐름은 역시나 하라 료만의 하드보일드 작품이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그리고 밤은 다시 되살아난다.

밤은되살아난다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를 가장 먼저 대한 것은 [안녕, 긴 잠이여]를 통해서였다.

영미 문학권의 하드보일드를 읽고는 있었지만 일본의 하드보일드란 장르에 속하는 이 작품에 대해서는 모른 채 추리 스릴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처음 만난 작품이었기에 남다르게 다가온 시리즈다.

 

이번에 작가가 탐정 시리즈라 불리는 이름으로 발표한 첫 작품의 개정판을 다시 새롭게 만나봄으로써 초창기 사와자키란 인물의 배경과 그가 일하는 활동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화려한 도심의 고층빌딩 숲 외각에 있는 ‘와타나베 탐정사무소’가 있다.

실제적으로 이름이 붙어있는 와타나베는 도망 중이고 그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자는 탐정 사와자키다.

 

어느 날, 30대의 한 남자가 르포라이터인 사에키라는 사람이 여기 찾아오지 않았냐고 묻고 그가  떠난 뒤에 유명 미술 평론가 사라시나 슈조의 대리인이라는 변호사가 다시 사와자키에게 사에키라는 남자를 아느냐고 물어온다.

 

생명부지의 그 남자에 대해서 모르는 사와자키는 이후 도쿄 도지사의 저격 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 사건을 밝히는 과정을 다룬다.

 

매 작품마다 빠른 출간이 아닌 장고 끝에 출간하는 시리즈인 만큼 이 사와자키란 인물을 좋아는 독자라면 끈질긴 인내를 필요로 한다.

 

하드보일드의 특성에 따른 사와자키란 인물의 특징은 탐정이란 직업에 맞는 행동이 있는가 하면 사색을 중시하는 면을 보이는 장면에서는 의외성을 갖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재적소의 숨어있는 대화나  문장의 틈을 독자들이 알게 모르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사와자키가 사건의 결말에 이르는 순간 그의 날카로운 탐정으로서 갖추는 예리한 실력, 경부의 필요성을 그때그때마다 활용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결을 이루는 과정은 왜 이 작품의 첫 신호탄을 시작으로 좋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돈이 많은 자는 더 많은 돈을 얻고 그 돈을 유지하기 위해서, 권력의 쟁점에 있는 자들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힘을 이용한다.

 

이 사건에 숨어있는 이러한 냉정한 이기심과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사와자키의 활동은 그래서 더욱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면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책, 미처 몰랐던 사와자키의 세계 입문을 계획 중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