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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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며칠 전 광복절이 지나갔다.

그 세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은 광복의 기쁨을 무엇보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고, 가족들 중에서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계신 가정이라면 일제시대의 만행과 아픔을 들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삶에 대한 고통, 특히 나가 겪어 보지 못한 그 참혹하고 기억조차 하기 싫은 경험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하나 걸러 듣고 배우는 입장에서 이해를 한다고는 하나 당사자들이 겪었던 경험에 비춘다면 같은 공감을 느낄 수는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특히 이제 얼마 안 계신 위안부 할머니분들의 증언들은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의 충격과 함께 다시 역사 속의 개인의 삶, 죽음과 살아간다는 삶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나의 나이는 15 살, 대대로 머슴살이를 한 집안에 태어난 나는 금자란 이름을 가졌다.

하지만 그 금자란 이름은 후유코란 이름과 몇 개의 이름으로도 더 불린다.

 

 

어머니, 나는  아가를 가졌어요.

 

첫 문장의 충격,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태아를 품에 안고 글씨를 모르는 상태에서 흐르는 물에 써 내려가는 문장들은  심금을 울린다.

 

만주의 낙원 위안소에서 위안부로 살아가는 ‘나’의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위안부의 삶에 대한, 각 개인들이 어떻게 위안부로 살아가야만 했는지에 대한 사연과 함께 아기가 태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의 심정이 아프게 다가온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았던 나이,  하나라도 집에 보탬이 되고자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따라나선 그 길이 이런 무섭고도 허망한 삶에 바쳐질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배가 불러옴에 따른 생명의 태동부터 눈, 코, 심장, 귀, 그 어느 것 하나 자신이 당하고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길, 밤마다 받아들여야 하는 지긋지긋하고도 무서운 공포, 두려움들은 차마 그 어떤 감정으로도 해석될 수 없는 고통의 심정을 드러낸다.

 

한 개인의 삶, 특히 생명에 대한 가치의 소중함을 ‘나’는 원치 않은 생명의 잉태로 인해 오히려 그 생명의 탄생을 주저하며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되길 바라지만 역설적으로 같은 위안부였던 은실의 죽음이나 에이코의 화장을 통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반대편인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되는 정반대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책은 전쟁이란 테두리 안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반된 시선을 그리되, 가해자 역시 피해자 못지않은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음을, 전장에 나가는 비장함 속에 살아올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두려움을 광기로 위안부에게 퍼붓는 행위, 그 안에서 ‘나’조차도 그런 병사들에게 연민을 보인다는 점은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처절함 속에 삶에 대한 애착을 같이 보인다.

 

삶에 대한 애착, 특히 눈만 뜨면 널린 시체들과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갖게 되는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란 것을 ‘나’의 시선으로 그려냈기에 더욱 아픔이 배가 된다.

 

그렇기에 아기의 탄생은 곧 죽음을 바랐던 ‘나’의 심정이 살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동반된 또 다른 삶에 대한 애착으로도 보인다.

 

사실 이런 책들은 쉽게 손에 가지 않는 편이다.

이 책을 읽기까지 시간의 텀을 두었던 이유도 그분들의 아픔을 알긴 하지만 당사자만큼의 뼈저린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같이 느낀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오히려 죄송스러운 마음이 앞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저자가 이 책을 쓰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는 점은 많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

역사란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보고 미래의 계획을 세운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아픈 개인사는 결국 한 나라의 역사를 반추하게 되고 그 역사 안에서 죽기 싫기 때문에 받아들인 살아야 한다는 애착은 비난받을 일이 아닌 인간이라면 그 상황에서 누구나 가지게 되는 보편적인 감정임을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이 가슴에 모두 새겨진다.

 

아픔을 느끼면서 읽게 된 작품, 작가의 필치로 그려낸 이 작품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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