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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기증

올 연초부터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이 차츰 쌓이다 보니 발 디딤 틈이 없어서 가족들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고 책장을 모두 채우고도 방바닥에 이사를 갓 온 것처럼 이리저리 차곡 모으다 보니 벽기둥을 넘어서 언제 무너질지 아슬아슬 고개를 넘어가기 시작한 지도 꽤 됐다.

 

보통 한 달을 기준으로 정리하곤 하는데 집안의 일이 있어 그쪽으로 온통 신경을 쏟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거의 6개월을 방치하게 된 꼴이 됐다.

내가 읽은 책은 되도록이면 소장할 것은 소장하되 아는 지인들이나 동생에게 주거나 읽어보라고 권하곤 하는 식으로 정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연말에  아는 지인으로부터 책 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기증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었으나 책에 대한 애착이 심해 기증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하던 차에 이번 기회에 기증을 통해 조금이나마 작은 도움을 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증을 받는 곳은 거제도에 있는 카페다.

다른 카페와는 다른 것이 책 기증을 통해 중고로 판매를 한 수익금을 유기견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 사실을 듣게 되자  요즘 반려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넓어진 반면 그 이면에는 유기견 발생 또한 심각한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서 즐겨보는 세. 나. 개 란 프로그램이나 동물농장 같은 것을 보게 될 때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애꿎은 동물들의 피해가 생긴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이런 정성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인다면 좋은 소식들이 생길 것이란 생각에 책 정리에 들어갔다.

 

알다시피 책의 두께도 천차만별이고 소장용은 소장용대로, 보낼 책은 그 나름대로 선별하기 시작, 어느새 하루 종일 시간이 흘러갔다.

대략 권 수를 세어보니 130권에서 1~2권 빠진 분량이 나왔고 박스로는 5 상자가 됐다. (그래도 여전히 책은 쌓여있지만 말이다.^^)

 

 

책2

 

 

첵3

 

택배를 시켜서 보낼까 하고 비용을 검색해 보니 ‘중’ 에 해당되는 상자라도 20KG 내외는 9,000이란다.

그나마도 앱을 설치해서 다른 사이트를 찾아보니 그쪽은 5,000원을 받는데 착불일 경우엔 내가 먼저 선불로 택배 회사에 넣어주고 나중에 다시 택배를 받은 사람으로부터 돈을 입금받는 체계였다.

절차가 복잡하고 이리저리 적어 넣을 사항도 많아, 그냥 다음 날 우체국으로 향했다.

우체국도 중량 위주와 박스의 총길이를 정확히 재서 금액을 받는 체계는 거의 같지만 일단은 택배가  정확하게 들어가고 익일에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뽑혔다.(온라인이나 앱으로 신청해서 집으로 직접 우체국 직원이 오면 이 또한 비용 발생이 1000원 정도 많아진다.)

 

먼저 세- 개의 상자를 낑낑대며 작은 바퀴가 달린 휴대용 카트기에 칭칭 동여매고 우체국에 도착하니  우체국 직원 왈, ” 작은 상자 두 개를 큰 상자에 합치면 중량이 20kg이 채 못될 것 같다. 어떻게 하시겠느냐?” 하고 묻는다.

이왕이면 선불로 부칠 것이기에 비용 절감이라면 수고도 마다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다시 두 개의 상자를 개봉해서 우체국 직원이 건네준 일반 상자에 담아 테이프 포장하고 나머지 상자와 같이 택배를 신청했다.

 

다시 집에 돌아와 두 개의 상자를 싣고 가니 우체국 직원이 놀란다.

책이라 무게도 만만찮고, 총 4개를 보내니 좀 놀란 눈치다.

보낼 곳이 거제도라 무척 먼 거리로 생각했는데 바로 다음 날 받게 된다고 하니 세상 참, 교통이 이렇게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땀에 젖은 옷이었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

나의 기증  책으로 인해 그 누군가는  저렴하게 책을 구매하고 즐겁게 읽으며, 그 수익금은  불쌍한 유기견 구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니 , 이래저래  카페 사장님은 참 좋은 일을 하신다는 생각과 존경심이 들었다.

 

날로 각박해져 가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주위를 살펴보면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구나 ~ 하는 생각을 한 하루였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04

본격한중일표지

본격 한중일 세계사 4 – 태평천국 Downfall 본격 한중일 세계사 4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한, 중, 일-

 

여전히 세계 속에서 동북 시아를 대표하는 나라답게 치열하고도 선의의 경쟁관계를 유지하는 나라들이다.

 

알게 모르게 서로 간의 영향을 주고받은 역사 속의 관계들, 그중에서 특히 이번 책은 지난 시리즈에 이은 중국의 ‘태평천국’의 난의 진행과정과 다른 사건들이 겹치면서 벌어지는 시대를 그린 만화 역사책이다.

 

역사를 공부할 때 개인적으로는 근대와 현대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보다 고대의 역사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터라 이번에 이 책을 통한 중국의 대변혁의 과정은 딱딱한 역사책 속에서 그린 과정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청의 멸망 가운데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 태평천국의 난은 청의 정치에 환멸을 느낀 과정부터 발화돼 태동이 된 시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이들을 저지하려는 청군과의 싸움, 그 가운데 2차 아편전쟁, 청 황제인 함풍제의 갑작스러운 붕어와 이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쟁취하려 한 모종의 합의, 신유 정변까지를 다룬 내용들은 시종 끊임없는 청의 딜레마를 보인다.

한중일1

 

책의 중간에 굽시니스의 오만 잡상을 통한 나름대로의 정리는 쉽게 펼쳐서 이해하기 쉬운 만화의 이야기를 더욱 집약해서 보임과 동시에 미처 다루지 못했던 부분들을 제공하고 있기에 더욱 재미를 준다.

 

삼하 대첩, 2차 다구 포 대전, 팔리교 전투, 원명원 방화사건, 베이징조약 체결, 우화대 전투에 이르는 청의 난세 시대는 일본과 조선의 정세를 같이 보임으로써 어떻게 처신들을 해왔고 그 결과에 이르는 후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세계정세를 바라보는 자세의 결과가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져오고 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한중일2

 

정치를 하는 위정자들의 백성을 생각하는 자세, 외세의 침략에 현명한 선택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되는 시대상의 흐름들은 안방에만 안주하다시피 했던 세 나라의 변혁 과정을 토대로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다음 시리즈에선 과연 어떤 과정들이 더 그려질지 궁금하게 하는 책, 저자의 빠른 출간을 기대해 본다.

디 아워스

디아워스

디 아워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자기만의 방’으로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를 책 속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 특히 소설 부분에서 그녀에 대한 오마주를 작가의 섬세한 의식 흐름을 통해 드러낸 작품이란 점에서 다시 반가움을 느낀다.

 

개정판으로 다시 만나보게 된 이 책의 제목, 등장하는 세 여인의 삶, 그중에서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그녀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시대는 달라도 따로 또 같이란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디아워스전

 

책은  프롤로그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으로 시작이 되는데 그녀의 생애를 관통하고 있는 삶에 대한 회의적인 성향과 우울증은 자라온 성장배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책을 읽는데 보다 쉽게  적응을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의붓오빠의 성적학대의 충격은 그녀의 삶 전체를 통해 병적인 증세를 더욱 악화시키는데 일조를 했고 이 책에서는 그녀가 쓰기 시작하는  댈러웨이 부인이란 작품이 등장한다.

 

다른 시대  1949년  브라운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있는 중이며 1999년 의 클래리사 보건은 댈러웨이 부인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여성이다.

 

이렇게 다른 이름을 가진 세 여인이지만 그녀들에겐 모두 댈러웨이 부인이란 공통점이 있고 버지니아 울프는 언니와 조카들의 방문을, 브라운 부인은 남편의 생일을 맞아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케이크을 만드는 과정 중에 문득 큰 아이를 이웃집에 맡겨놓고 집을 나서는 행동을 한다.

세 번째 여인인 클래리사는 예전 애인이었던, 병중에 있는 리처드를 만나러 간다,

 

무심히 흐르는 듯한  세 여인의 삶은 죽음이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이는  각기 세 여인들이 속해 있는 환경과 사회적인 관계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의 시간을 살고 싶어 했지만 현실적인 환경인 자연생활은 오히려 갑갑함을 느끼게 되고 이는 결국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길은 자살뿐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브라운 부인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완벽하고도 예쁜 케이크를 만들어 남편의 생일을 축하해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그녀 스스로를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몰아가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이는 맞춤식의 보여주기처럼 보이는 자신의 삶에서 탈출구는 자살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 클래리사 또한 시대적인 개방에 따라 동성애가 인정되고 여성의 사회활동도 활발해지는 시기를 맞지만 전 남자 친구인 리처드에게 속박당해 살아간다는 사실은 그녀를 또 하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그럼으로써 그녀 또한 오로지 댈러웨이 부인이란 애칭으로 불렀을 때에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처럼 느끼는 삶을 살아가는 삶을 보이는 과정들이 들어있다.

 

 

그저 보통의 우리들처럼 모두가 겪는 자그마한 일에 속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당사자들인 그녀들에겐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 일상을 한순간만이라도 벗어나고 싶다는 유혹과 일탈을 꿈꾸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 설정들이 천천히 흐르는 강물처럼 겹쳐 보이면서 그리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책은 세 여인들의 시. 공간의 흐름을 좇아 서로가 서로에게 의도적이진 않지만 은연중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데 결국엔  지루한 일상이라도 그것조차도 삶의 일부임을, 그러므로 스스로 주어진 삶 자체를 인정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미 영화로도 나온 만큼 원작에서 그리는 의식의 흐름이 영상에서는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도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후 항설백물어(하)

속항설백물어 후항설백물어 – 하 –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9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상편에 이어 빠르게 만나본 후 항설백물어다.

 

전편에 이어 여전히 네 사람의 저마다의 괴담을 좋아하는 취향은 여전하다.

아마도 이런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선의의 경재이라도 벌이듯 이야기를 풀어내고 문제를 넌지시 던져보는 그들의 습성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는 귀여운 악동이란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번에도 세 가지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잇파쿠 옹에게 달려가는 그들이 행동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전래동화나 민담 같은 이야기들 속에는 때론 실제로 그것이 굳어져서 마치 일어난 일인듯한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이것이 허구인지 실 상황인지조차 모를 정도의 오리무중 이야기란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의 묘미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첫 번째 이야기인  [산사내]는 산사람이라고 불리는 남자에게 끌려갔던 여인이 아이를 안고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 아의의 아버지는 산사람인가, 평범한 인간의 아이인가를 두고 독자들도 나름대로 추측을 하게 만드는 묘한 존재감의 실체, 요과란 존재에 대해 실존이냐 허구냐를 두고 생각을 해보게 된다.

 

두 번째 [우품의 빛]은 한 여인이 자신이 품고 있던 아기를 자신 앞에 있던 남자에게 아이를 주게 되고 그녀는 푸른 백로가 되어 날아갔다는 이야기다.

 

마치 허구와 전설이 묘하게 접하는 지점에서 느껴지는 이 이야기는 과연 사람이라면 백로가 되어 날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이 정말 가능하다면 실제로 인간 세상에서는 믿지는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이러한 일들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믿거나 말거나 일까?

 

세 번째 [바람의 신] 이야기는 방송에서 보이는 추운 겨울날 저마다 한두 가지씩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들려주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돌아가면서 괴담을 들려주는데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불의 심지를 하나씩 뽑게 되고 마지막 순번인 백 번째 이야기가 끝나게 되면 심지를 뽑았을 때 어둠 그 자체밖에 남지 않는다는 설정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함을 준다.

 

과연 그들에겐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활자를 통해 읽는 괴담은 언제나 오싹한 느낌을 주지만 때론 그것이 허구일지라도 믿고만 싶어 지는 묘한 설정들이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잇파쿠 옹과 네 명의 청년들이 벌이는 이야기 잔치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저자가 그동안 자료조사와 그에 걸맞은 상상력의 나래를 더해져 한층 재미를 준다는 느낌과 함께 이제는 완결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잇파쿠 옹의 건재함을 드러낸 책, 자신 스스로가 이야기 속의 젊은 모모스케가 되어 현재와 교차되어 연결되어 이어지는 이야기의 패턴은 기존과도 동일하다.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적재적소에 풀어놓는 그의 이야기 솜씨도 인상적이지만 다양한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시간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적의 벚꽃

적의 벚꽃적의 벚꽃
왕딩궈 지음, 허유영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중국 문학의 소개가 활발한 가운데 이번에는 책 띠지에 있는 문구 때문에 이끌려서 읽고 싶었던 책이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대목,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이란 표현을 썼다고 했다던 중국 작가의 칭찬에 과연 어떤 내용일까를 궁금하게 한 책-

 

어느 한적한 카페, 그 카페의 주인은 떠나간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다.

홀로 운영하고 있던 그 카페에 첫 손님으로 뤄이밍이 오고 그 둘은 아는 듯 모르는 듯 석연치 않은 행동을 보이고 이후 뤄이밍은 자살의 길을 걷는 행동을 보인다.

 

은행에서 중요 직책을 맡고 선한 행동엔 앞장서던 그가 왜, 무슨 이유로, 카페를 방문하고 난 이후 이런 행동을 벌인 것일까?

마을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카페 주인을 배척하는 행동 속에 어느 한 여인이 카페를 찾아오게 되는데 바로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다.

 

어린 시절 카페 주인의 부인인 추쯔가 자신의 아버지인 뤄이밍으로부터 사진을 배우게 된 것을 알고 있었던 그녀는 부인이 떠난 그 남자에게 두 사람 간의 무슨 사연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책은 현재, 과거, 회상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남자와 뤄바이슈의 대화를 통해서만 아내인 추쯔와 뤄이밍이  등장하는 방식을 취한다.

 

어릴 적 불우했던 그 남자에게 아내는 벚꽃처럼 다가왔던 여인이자 그녀가 있어야만 할 이유를 알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 간접적인 인물의 주변을 묘사함으로써 감정과 분위기를 이끄는 저자의 서술 방식은 고전 기법의 전형처럼 길게 이어진문장, 그 안에서 넘쳐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인해 천천히 읽을 것을 요한다.

 

이처럼 모처럼 낯선 방식에 익숙해 읽을 즈음에 느끼는 사랑에 대한 슬픔은 타 책에서 보인 것과는 또 다른 아픔을 갖게 한다.

 

언뜻 보면 진정으로 믿었던 아내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지는 사랑에 대한 비애를 생각할 수도 있고,  좀 더 생각해본다면 이상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느껴지는 아픔을 다룬 책으로도 볼 수가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완결된 결말이 아닌 독자들로 하여금 전체적인 이야기의 내용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결말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 볼 수 있도록 열어 놓는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찬란하고 화려했던 벚꽃의 계절을 다시 맞을 수 있을 것인지, 그 남자의 고백과 독백에서 진한 잔상이 깊게 남는 책이다.

용과 지하철

옹과지하철용과 지하철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장안 24시’에 이은 저자의 신작이다.

 

‘장안 24시’를 너무나도 재밌게 읽은 터라 이번에 대한 작품 속 내용은 과연 어떨 것인지, 제목에서 말하는 용과 지하철의 연관성은 무엇인지를 탐색해 보게 된다.

 

판타지의 속성상 독자들의 나래를 무궁무진한 세계로 이끈다는 점에서 일단 이 책은 합격이다.

 

더군다나 전작인 ‘장안 24시’의 배경이었던 장안을 다시 무대로 삼아 그리는 이 책의 내용은 처음에 비행기가 출격하는 장면에서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장안이란 용어가 나오고 황제나 공주가 나오는 설정 나오는 대목에선  역시 저자의 시. 공간을 뛰어넘는 창작의 세계에 흠뻑 빠져버렸다.

 

장안에 이사를 오게 된 첫날 얼룡의 습격을 받고 놀랐던 소년 나타는 옥천 공주의 손에 이끌려 장안의 구석구석을 구경하게 되는데 사람을 태우는 교통수단으로 지하에 용을 이용해 승선하는 방식을 보고 놀라움과 호기심이 커지게 된다.

 

용의 비늘을 열고 덮는 방식의 승선 개념은 장안 사람들의 대중교통수단으로 정착이 됐지만 정작 용의 신세는 사슬에 매여 있고 시간마다 자신들이 운행해할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자유가 없는 생활이었다.

 

막대사탕이라고 이름을 붙인 용과 친하게 된 나타는 폭포를 거슬러 올라 넘어선 잉어가 용이 되는 용문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 “우리는 잉어였을 때 정말 최선을 다했어. 언젠가 용문을 통과해 잉어 허물을 벗고 용이 되면 단숨에 하늘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고 잔뜩 기대했지. 하지만 용문을 통과하자마자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지. 우리는 용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장안성 군대에게 잡혀 이곳으로 끌려와 매일 터널을 달리고 있어. 하늘은 고사하고 햇빛도 보지 못해.” –   p.56

 

 

용이 되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릴 수도 없는 그 찰나의 시간 이후 용 스스로가 역린을 버림으로써 그 역린은 원한으로 뭉쳐 커다란 얼룡으로 변해 버리고 이는 곧 장안을 위협하게 되는데,,,,

 

 

일단 장안이란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용의 존재를 그려내고 그 용을 이용해 지하 수송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배경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인간의 탐욕이 그치지 않는 점, 그것 때문에 넓은 하늘을 날아보지 못하고 하나의 수송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용들의 세계, 도술과 무법, 전투기와 조종사들의 활약, 그 가운데 그들이 황제로부터 우선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과정들은 순수한 한 소년의 모험과 용의 우정이 합쳐져 감동을 선사한다.

 

경고를 무시한 인간들을 비웃듯, 역린의 한이 모여 걷잡을 수없이 커져버린 얼룡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는 장면도 인상적이지만 막대사탕 용와 나타의 우정은 따뜻함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고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고전의 활극처럼 여겨지는 전작의 작품과는 다른 활기 넘치고 생동감 넘치는 이 이야기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즐겨 읽을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아울러 뒤편에 수록된 3편, 고북구 출입금지구역, 고고 물리학, 대접근 대이동 작품들 또한 판타지의 성격을 잇되 개성으로 무장된 작품들이라 읽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