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20년 8월 21일

도시를 걷는 여자들

도시걷는여자  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출근길에 일부러 걷는 것을 선호한다.

지하철까지 가기 위해선 빠른 걸음으로 20분, 좀 느긋이 걷는다면 30분 정도 걸려서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기상 시간도 좀 빠르게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우선은 비용 부담이 없는 내 몸을 통한 걷기를 통해 잠깐이나마 에너지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위로를 삼곤 한다.

 

 

이렇듯 매일 출근하다 보면 계절상의 변화, 나무에 달린 잎새들의 색깔, 거리의 휴지가 쌓여있는데 퇴근길에 보면 어느새 깨끗해졌다는 느낌, 무수히 꼭 같은 시간대에 마주치는 직장인들, 그 속에서 하루의 마무리까지 하게 되는데, 누구나 걷는다는 것이 모두에게 통용되지 않았던 시대라면 어떠했을까?

 

 

산보자 란 의미의 프랑스 말은 ‘플라뇌르(flaneur)’라는 남성형 명사다.

 

산보라는 것 자체가 천천히 걷으며 도시를 관찰한다는 의미라면 이를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남성들, 그중에서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여유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들은 남성들과는 달리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 수 없었고 오히려 우리나라 양반네 여인들처럼 거리를 나설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시대를 포함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점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관찰함으로써 남성들과는 다른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창조했던 여성들을 살펴본다.

 

작가, 비평가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주 근거지인 파리와 그밖에 다른 도시들을 경험하면서 그 속에서 살다 간 여성들에 대해 그녀들이 그녀들만의 세상을 일구고 세상 밖으로 손을 내밀었는지를 그 장소에 가거나 머물면서 그들과 함께 한다.

 

 

흔히 말하는 페미니즘이란 말, 물론 그 당시에는 이런 방향으로 자신을 인생을 결정지으며 의도적으로 나선 사람들은 없었지만 자신의 활동을 통해 지금의 현대 여성들은 그녀들과 함께 한다.

 

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마가 겔혼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캐리어를 쌓은 그녀들의 삶에는 가정에서 안주하기보단 밖으로 나선 것을 통해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자신의 사랑과 경험을 통하거나 실제 직업을 가졌던 것을 통해 문학으로 표현한 여성들, 일례로 진 리스는 댄서로 일했던 경험, 울프는 거리에 산보를 함으로써 창작의 불을 지폈단 사실, 조르주 상드의 경우에도 아내, 엄마로서의 삶이란 가정 울타리를 박차고 파리에 홀로 가면서 자신만의 인생을 펼친다.

 

 

진.버.조

                     (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다음에서 발췌)

 

이외에도 누벨바그의 대표자 여성 영화감독으로서 영화와 말년에 새롭게 도전했던 분야에서도 이름을 알린 아녜스 바르다, 독특한 실험과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작품 활동을 펼친 소피아 칼, 기자로서 글을 통해 세상과의 교류를 했던 마가 겔혼까지, 저자는 그녀들이 머물렀거나 상주했거나, 잠깐 머물렀던 도시에 그녀 자신도 머물면서 그녀들이 생각했던 사랑, 결혼, 창작의 욕구에 대한  생각과 자신만의 생각을 함께 보인다.

 

바,소피

(아녜스 바르다, 소피 칼…다음에서 발췌)

 

산보자‘플라뇌르(flaneur)’에서 자신이 스스로 만든 여성을 뜻하는 플라뇌즈(flaneuse)는 이렇게 탄생했다.

 

 

저자는 길 위에서 당시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과 멸시, 조롱, 희롱을 넘어 남성들이 보지 못했던 미세한 부분들을 관찰함으로써 여성들의 진취적이고 활동적이었던 부분들을 드러냄으로써 도시가 주는 매력과 위험성을 모두 보인다

 

거리여자

단지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안전한 새장의 문을 연다는 것조차도 생각할 수 없었던 시대에 활약했던 여성들의 모습은 특히 조르주 상드를 통해서 인상적으로 남는다.

 

 

남자의 옷을 입고 담배를 거리나 카페서 피우는 행위 자체가 파격적이었던 그 시대, 자신의 연애와 사랑, 창작 활동을 통해 인생의 또 다른 항해를 실행했던 그녀의 모습은 시대가 요구했던 여인들의 모습에서 한창 멀게 느껴질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녀 외에 다른 이들은  모두 여성이자 한 인간으로서 자신만의 인생길 개척, 특히 도시에서 걷는다는 행위를 통해 무언의 의지를 보였던 그녀들을 통해 걷는다라는 의미를 새롭게 들여다보게 한다.

 

 

 

 

자동차로 다니면서 보는 눈에 들어오는 시선과 걷기를 통해 눈에 들어오는 시선은 분명 달리 받아들여진다.

 

 

걷기를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아가는 기쁨, 그런 가운데 한 발짝 더 나가면서 이루어지는 창작의 세계를 탐구한 책이라 눈길을 끈 책이다.

 

이제, 신발끈을 묶고 도시를 나서보자.

 

 

 

 

도시에서 걷는다는 의미를 넘어선 시, 공간과 나의 일체감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 그 공간 안에 나가 있고 나 속에 공간이 차지함으로써 일체감을 느껴볼 시간을 느껴보길~~

 

 

 

 

웃는 남자

웃는남자웃는 남자 (186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빅토르 위고 지음, 백연주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월

워낙 유명한 작가가 쓴 작품이란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던 책중에 하나였던 ‘웃는 남자’-

 

 

요즘 유행하는 초판본 ~~ 시리즈의  책들이 출간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의 초판본이 정말 마음에 든다.

 

강렬함이 넘치다 못해 검붉은 자주의 빛깔을 띠고 있는 색채의 표지는 초판본이 출간됐던 당시에도 눈길을 끌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의 유명한 작품들인 노트르담의 꼽추, 레 미제라블에 이른 이 책의 이야기는 저자의 작품세계를 접해본 독자라면 역시~라는 말을 담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690년 추운 1월, 포틀랜드 만의 해변에서 한 소년이 배에 오르지 못하고 버려진다.

일부러 버려진 것인지, 기회를 잃어버려 낙오된 것인지조차 모르는 채, 인간의 생존 본능의 욕구대로 정처 없이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 배회하는 소년, 그 와중에 동사한 여인의 몸에서 아기를 발견하게 되고 자신이 그 아기를 거두면서 함께 머물 곳을 찾아 나선다.

 

 

이윽고 소년이 발견한 곳은 늑대와 살고 있는 우르수스 라 불리는 남자의 집이었다.

그때부터 호모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늑대와 우르수스, 그리고 그윈플렌이란 소년, 데아란 이름의 소녀가 함께 가족처럼 살아가게 된다.

 

 

 

당시의 사회적인 흐름 중 하나는 귀족들이  자신들의 취미이자(?) 오락처럼 여겼던 것들 중 하나로  비정상적인 형태의 몸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즐기는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 있었으니, 이런 수요가 있다면 공급도 있게 마련, ‘콤프라치코스’ 또는 ‘콤프라페케뇨스’를 통해 인간의 몸을 훼손하고 흉하게 변형시켜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대상에 해당되는 그윈플렌은 자신의 찢어진 입의 모양, 결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는 얼굴의 형태를 통해 그 자신이  광대가 되어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닌 기이한 모양의 웃는 남자, 슬퍼도 웃는 모양이 되어버리는 기묘한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하게 되고 이는 곧 소문으로 퍼져 조시안이란 여공작의 눈에 들게 된다.

 

 

눈이 먼 상태지만 데아의 순수한 마음과 자신의 용모 때문에 데아 앞에 선뜻 나설 수 없는 그윈플렌의 아련한 마음은 조시안이란 여공작이 등장하고,  자신의 태생 비밀이 밝혀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전개를 맞게 되는데….

 

 

 

 

전체적인 사회적인 분위기, 그 당시의 시대상 흐름에 대한 장면 할애가 만만찮게 설명하는 부분이 길어서 초반부터 읽는 데에 끈기를 필요로 한 책이었다.

작가의 이런 한 템포 고르기를 넘어가면서 이어지는 웃는 남자, 우르수스, 호모, 데아의 운명은 예측하지 못했던 그윈플렌의 비밀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되는데,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스릴처럼 느껴지는 긴장감이 들게 한다.

 

 

같은 인간이되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마치 장난감 오락 인형처럼 여겼던 당시 귀족들의 행태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의식 속에 한때는 장사로 인식되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이 그윈플렌이 겪은 생활을 통해 더욱 부각된다.

 

저자의 기존 작품들을 통해서도 그렇지만 이 작품 또한 소설이란 장르를 통해 당시의 인간 이하의 그릇된 행동양식을 보인 귀족들의 행태와 이를 묵인했던 위정자들의 모습, 사회 전반적으로 이어지는 힘든 삶에 몸부림치는 서민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는 주인공인 그윈플렌의 삶과 인간이하의 취급 생활, 하류층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드러내는 상황들을 통해  이런 밑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상류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역설을 보인다.

 

 

 

***** “사람들의 인상은 의식과 일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인상은 신비하게 깎아낸 무수한 삶의 결과이다. 그윈플렌이 본 얼굴 주름 중 고통, 노여움, 모욕감, 절망감으로 파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어떤 아이들의 입은 한동안 먹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다. 어떤 남자는 아버지였고, 어떤 여자는 어머니였으며, 그들 뒤에는 파멸해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얼굴은 못된 습관에서 나와서 범죄로 들어서고 있는 얼굴이었다. 굳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알아야 한다면 그것은 무지와 가난 때문이었다. 그들은 얼굴에는 사회적 압박에 의해 삭제되어 증오로 변해 버린 선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노파의 이마에서는 굶주림이 선명하고, 어느 처녀의 이마 위에서는 매춘이 음산하게 드러났다. 어린 시절의 얼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소녀에게도 역시 음울함 뿐이었다.

 

이 무리들 속에는 무수한 팔만 있을 뿐 연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꾼들은 더 나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일거리가 없었다.

 

가끔은 군인 하나가 노동자 곁에 와 앉았다. 가끔은 부상당한 병사였다. 그리하여 그윈플렌은 이 광경, 전쟁이라는 유령을 보았다.

 

한쪽에서는 실업, 다른 쪽에서는 착취,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노예를 보았다. 몇몇 얼굴에서는 무엇인지 형언하기 어려운 인간이 짐승으로 돌아가는 퇴행 현상을 보았다. 인간이 짐승으로 퇴행하는 것은 높은 사람들의 행복이 만들어 내는 막연한 무게의 압박으로 인해 아래에서 생겨나는 것이었다. 이 암흑 속에서, 그윈플렌에게는 빛이 들어오는 환기창 하나가 있었다.

 

그와 데아 두 사람은 고통의 날 속에서도 얼마간의 행복을 누렸다.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 저주였다. 그윈플렌은 자신의 위에서 권력자와, 부자들과, 멋있고, 위대한 사람들, 우연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짓밟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진 것 없는 불우한 사람들의 창백한 얼굴 한 무더기를 구별해냈다. -p 520-522

 

 

 

 

처음엔 너무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데아에게 자신의 용모로 인한 좌절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사이가 신분이 밝혀지면서 더욱 멀어지게 되는 안타까운 이야기 전개는  아픔을 느끼게 했다.

 

 

 

 

냉, 온탕의 인생 경험을 했던 그윈플렌이란 웃는 남자를 통해 시대의 사회적인 생활상과 밑바닥 하층민들이 애환을 그린 작품, 이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평등, 인권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보게 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