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20년 10월월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여자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2019 부커상 수상작. 흑인 여성 최초의 부커상 수상이자 마거릿 애트우드와의 공동수상이라는 타이틀,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 목록에 올라있을 때부터 관심을 두던 작품이었다.

 

 
첫 등장인물인 앰마-

 

그녀가 쓴 희곡 [다호메이의 마지막 여전사]  첫 공연이 내셔널 시어터에서 열리는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녀를 둘러싼 혈연관계, 친구, 그 친구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선을 통해 그려낸다.
앰마는 순수혈통 영국인이 아니다.

오십 대의 여자, 아니 정확히는 레즈비언이다.

가나 독립을 위해 활동했던 기자 출신 아버지가 영국으로 도망치면서 엄마와 만나 결혼해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영국인이다.
일찍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고 같은 레즈비언인 도미니크와 함께 연극극단을 만들게 되는데 부시 위민(bush women)이란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도미니크가 미국인 레즈비언 응징가를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그녀는 프리랜서로 여전히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나간다.
그녀의 딸 야즈는 게이 커플인 롤런드 박사의 정자를 기증받아 태어난 아이다.

부모 사이를 오고 가면서 성장한 그녀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자신의 진로와 자신의 성장배경을 통해 미래에  대한 걱정을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대학생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여기엔 야즈 외에도 이슬람을 믿는 친구, 잘난 아버지를 둔 덕에 호화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친구, 다양한 이야기들이 또한 엮인다.

 

 

한편 미국으로 건너간 도미니크는 같은 레즈비언들이 사는 공동체에 들어가 살지만 모든 일에 편집증으로 자신을 가두는 응징가로 인해 스스로의 자각과 기대치를 넘어선 무기력한 생활을 이어나가다 탈출에 성공, 제2의 인생을 찾는 노력을 한다.
캐럴-

고국에서의 엘리트로 인정받은 아버지와 엄마였지만 이민 온 영국에서의 삶은 운전기사와 청소부로 삶을 이어나가는 부모 밑에서 13살 집단 윤간을 당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여성이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열심히 공부한 덕에 유명 은행에 취업, 백인 남성과 결혼한다.

 

이들 외에도 작품 전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순수 영국인이 아닌 부모세대나 그 훨씬 이전의 세대부터 거슬러 올라간 조상들이 백인들과 연관되어 있거나 결혼을 통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처음 등장하는 앰스의 커밍아웃인 레즈비언의 삶을 필두로 그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들의 삶은 과거의 할머니, 엄마 세대를 거쳐 자식으로부터 한물간 구세대 인식으로 여겨지는 시간의 흐름들이 서로 연관성을 보이면서 풀어나간다.

 
영국 안의 영국인이되 같은 백인인 영국인으로부터 차별 어린 시선을 받으며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성장의 기억들은 비단 이들 여성에 한해서만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이민세대들의 아픔들이 함께 느껴지는 대목들이 많았다는 것은 인종의 색깔을 넘어선 차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물음, 더 나아가서 부모들이 힘들어도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던(캐럴의 엄마 버미) 여인의 삶이 있다는 사실이 이민 1.5세대에 해당되는 캐럴의 인식과 대비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그려진다.

 

 
이런 부모의 바람대로 같은 혈통인 아프리카인과의 결혼을 거부한 채 사랑하는 사람인 백인 남성과 결혼한 캐럴의 경우 자신의 피부 색깔과 어려운 환경을 탈피하고자 기를 쓰고 공부에 매진한, 그러면서도 아픈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기성세대와는 다른 또 다른 인생관을 보인다.
책의 첫 흐름인 앰마의 레즈비언의 삶은 기존의 사회에서 인식되는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에 반하는 모습과 사회 인식에 반하는 삶, 규정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의 기조에 반발하는 모습들은 그녀의 친구인 셜리와는 우정을 이어나가되 셜리가 생각하는 앰스의 레즈비언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임으로써 같은 사회 안에서의 우정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엿보게 하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여자1

 

셜리 또한 같은 피부색을 지녔지만 학교 선생님으로서 살아가는 모습 속에 중산층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은 앰스와는 다른 생활의 이면을 보이는 여성으로 그려지며 교육이란 것을 통해 그녀 자신의 성공 성취도와 그럼에도 여전히 불운한 환경으로 인해 그곳을 타파하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처벌들을 통해 고민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셜리의 엄마, 윈섬은 읽으면서 이해를 할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통해 두 손녀까지 본 할머니가 사위와의 불륜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그것이 사위가 딸의 곁을 떠나는 것보단 낫다는 자신 스스로의 핑계 내지는 사위가 먼저 자신과의 사이를 통해 욕구 해소를 발산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할머니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의 사랑의 또 다른  행동을 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한 인물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저자는 성 정체성에 대한 페미니즘의 변화와 여성들의 적극적인 행동과 모습들을 그리면서 메건이 모건이 되는 과정, 레즈비언이 아닌 좀 더 확장된 성의 구분을 드러내는 젠더 확정, 젠더 프리를 통해 또 다른 그들만의 삶 모습, 인종 간의 차별은 물론 남녀 차별, 같은 젠더 안에서도 차별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과감하게  표현한다.

 

모건의 할머니 해티의 숨겨진 아픈 자식의 비밀, 그녀의 엄마 그레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해 그녀의 자식이 만나러 오는 장면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12명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린 그들만의 사연은 여성이란 이름으로 구분된 성에 대한 의미, 여성, 남성이란 이름으로 구분 짓고 그 안에서 사회의 인식대로 살아가는 통념적인 의미, 그에 벗어나 자신의 진정한 성 정체성을 통한 사회의 차별을 견디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소외된 여성들의 삶을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장대한 서사로 그려냈다.

 

어린 시절 소녀로서의 삶, 성장한 뒤의 여자로서 불리는 시기의 삶, 여기에 그녀들과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 같은 여성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으며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 비 혈연이지만 가족이란 개념으로 맺어진 관계, 퍼넬러피의 경우를 통해 그 자신이 백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 또한 흑인의 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아가는 과정은 저자의 글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바라보는 차별 섞인 시선과 고정관념들, 야즈의 친구 와리스가 한 말은 현재의 우리들 모습 속에 감춰진 부끄러움을 드러낸 대목이 아닌가 싶다.

모슬렘 한 명이 총기 난사를 하거나 폭탄을 터뜨려 사람을 죽이면 그는 테러리스트라고 불리지만, 백인 한 명이 똑같은 일을 하면 그는 미친 사람이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흑인 남성들은 안전한가?
셜리의 오빠들이 겪고 있는 생활 속에서의 행동 다짐은 그 또한 다르지 않다.

 
-셜리는 오빠들 역시 어릴 때부터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해 오래전부터 오빠들 편에서 분노를 느꼈다.

모든 흑인 남자는 이런 일에 대처하는 법을 알아야 하고 모든 흑인 남자는 거칠어져야 했다

경찰은 누군가를 죽이거나 구타하고도 자체 조사를 받거나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마치 지금의 미국의 어떤 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은  운문 형식이라는 것을 빌려 내용 전체를 마치 긴 시처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긴 문장의 호흡을 통해 이야기의 끊임없는 궁금증 유발을 유도하게 만들기도 하는 독특한 장치를 이용해   읽은 후에도 여전히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저자는 작품 전체를 통해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인종, 피부 색깔, 국적, 혈연도 아닌 인간 그 자체의 본모습인 존재의 가치를 그려낸 것이란 생각에 공감을 느끼게 한다.

 
앰마를 통해 저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한 모습도 보이고, 각기 개성이 뚜렷한 여성들의 삶을 통해 진지한 토론을 해보게 만드는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이 작품이 왜 그토록 많은 찬사를 받았는지에 대한 문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인간 가족에 속한 자매, 여자 형제, 언니 동생, 자매 같은 사이, 여성, 우먼(woman), 위민(womyn), 남성 동지 남성 동포, 남자 형제, 형제, 남성, 남성 친구, LGBTQLI에게 바친다란 책 장에 나오는 이 문구로 모든 것을 표현한 책이다,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캐슬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귀하를 블랙히스 하우스의 가장무도회에 초대합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숲 속에 있는 나, 에이든 비숍은 기억을 잃은 채 초대받은 블랙히스에 발을 들인다.

그곳은 피터 하드캐슬 경과 그의 부인 헬레나 하드캐슬 부부가 초대한 가장 무도회장이었고, 그들 부부에겐 19년 전 살해된 막내아들 토마스를 기리기 위한 모임이었다.

 

숲 속에서 한 여인의 죽음을 목격한 그는 블랙히스에 도착해 도움을 요청하게 되지만 타인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비숍이 아닌 세베스찬 벨이라고 불리는 나 자신은 얼굴도 목소리도, 행동도 모두 자신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곳의 딸인 에블린 하드캐슬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는 흑사병 의사로 불리는 자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다.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야만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블랙히스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게임, 단 주어진 시간은 8일, 같은 하루가 8번 반복됨과 동시에 그때마다 다른 호스트의 몸으로 깨어난다는 설정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마지막 호스트가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비숍의 기억을 전부 지워버린다는 것이다.

 

자신이 왜 이곳을 방문했으며 애나라고 불렀던 미지의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대상인지, 에블린을 죽인 범인은 누구인지를 알아내야 하는 시간의 다툼은 자신이 무도회에 초청받는 호스트의 몸속으로 들어가 하루의 일을 통해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면서 사건의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을 그린다.

 

매일 밤 11시의 총성, 에블린이 연못 쪽으로 다가가 총으로 자살하는 모습은 자살을 위장한 살인 사건인가, 아니면 어떤 사연에 얽힌 협박에 의한 자살인가?

 

책의 띠지 문구처럼 애거서 크리스티와 인셉션의 절묘한 만남으로 그려진 미스터리다.

음침하고 칙칙한, 살인사건이 벌어진 블랙히스를 멀리했던 하드캐슬 부부가 왜 이곳으로 사람들을 19년 전 벌어졌던 그 장소로 사람들을 불러들인 것일까?

 

비숍은 한 사람의 매번 다른 호스트의 몸속으로 들어간 자신의 생각과 호스트의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면서 사건의 해결을 풀이해야만 하는, 그러면서도 같은 반복의 일을 통해 호스트들의 감춰진 비밀들을 알아가고 그에 덧붙여 혼돈의 미로를 탈출해 진정한 자신의 비숍이란 인생을 살기 위해 활약하는 모습이 시종 긴장감을 조성한다.

 

지루함을 동반할 수도 있는 같은 반복의 패턴을 다른 호스트의 몸속으로 환생한 듯한 설정의 그림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의 동선과 말, 그에 담긴 것들을 다른 관점으로 보는 구성을 통해 한 사건에 담긴 여러 단상의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공포가 있고 초자연적인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느낌, 그가 왜 블랙히스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와 기막힌 반전의 설정들은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촘촘히 엮은 이야기의 토대를 따라가야 하는 집중력을 통해 이야기의 맛을 느끼게 한다.

 

한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제대로 시간을 채우지 못하거나 중간에 낙오된다면 그 전의 호스트 몸으로 다시 돌아와 다시 겪어야 하는 설정 과정도 기막힌 과정이었지만 하나의 게임 툴 속에 갇힌 인물이 벗어나기 위해 하나씩 장애물을 허물듯 반전의 비밀들을 알아가는 재미를 추리로 엮은 설정 구도도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비밀과 배신, 사랑이 있고 욕심과 경계, 용서가 있는 복합적인 이야기를 담은 600쪽이 넘는 추리 미스터리라 기존의 어떤 간략한 이야기로 들려줄 수 없는 플롯의 구성이란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일단 읽어보란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특히 사건의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터진 독자들의 허를 찌른 진짜 범인의 실체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끝까지 완독을 하면서 읽을 수 있는 짜릿함을 모처럼 느껴보게 한 내용이었다.

 

곧 tv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 잘 짜인 구성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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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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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람은 백인 주인 아버지와 흑인 노예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그에겐 특출 난 능력이 있으니 바로 초능력 ‘인도’를 가진 점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에게 자신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것에 대한 것을 귀담아듣는 사람, 한번 본 것은 놓치지 않고 ‘기억’이란 것을 통해 담아두는 그,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본질적인 기억이나, 트라우마를 떠올리면, 지금 속한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으로 순간 이동을 하거나 사물을 보낼 수 있는 특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한때는 아버지가 가진 영토에서 주인을 꿈꾸었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백인 형의 시종으로 일하게 된 것일 뿐 그 꿈은 더 이상 현실성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날 그가 사랑하는 소녀 소피아가 아버지의 사촌인 너대니얼 노예로서 그의 집에 데려다주고 오길 반복하는 동안 소피아는 탈출 이야기를 하고 둘은 곧 자유 흑인이자 언더라운드 조직원이라고 알려진  조지에게 부탁해 도망을 감행하게 된다.

 

하지만 조지의 배신으로 소피아와 떨어진 하이람은 그 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모진 고생을 한 후 자신을 테스트했던 사람들이 그의 능력을 시험해보고자 한 언더그라운드’의 요원이었단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그가 알고 있던 능력을 이용해 거짓 서류를 만들고 북부의 필라델피아까지 가게 된 그는 버지니아에서 살았던 생활과 이곳의 천지차이인 생활의 모습을 통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고향에 두고 온 소피아의 행적과 나머지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없었던 하이람은 초능력 ‘인도’를 경험하게 되면서  ‘인도’가 일어나려면 고통스럽지만 자신을 본질적으로 성장시키는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과연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소피아를 만날 수 있는 것인지, 고향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인도’를 통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쥐어줄 수 있을까? 에 대한 서사가 이어진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남부와 북부에 걸친 흑인 노예제도는 과거의 역사에 속한다.

그렇지만 저자가 그리고자 한 모든 내용들은 현재에도 완전한 차별과 자유에 대한 모든 것이 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환상적인 소설 장치를 이용해 묻는다.

 

가해자가 기억하는 것과 피해자가 기억하는 것에는 다른 점이 많다.

이 책 속에서는 하이람이 가진 ‘기억’과 ‘인도’라는 능력을 통해 약자들이 겪는 개인의 역사와 그 윗대의 역사들, 인종, 빈부, 성별에 따라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 어떻게 변질되고 감추어지며 고통 속에 살아가는지에 대한 면들을 그려낸다.

 

소피아처럼 여성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갈 의지를 지닌 대사는 스스로의 속박에서 그것을 뚫고 나가 자신이 꿈꾸던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자유로워지는 건 시작일 뿐이야.
자유롭게 사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지.”

 

소설 속에서 여러 사연들을 지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내는지를, 약자에 선 입장에서 그 누구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주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없기에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역사와 기억을 남겨야 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들이 환상과 실제 역사 흐름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지? 넌 자유로워진 거야.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사람의 주인이기도 해. 그 어떤 형편없는 노예 주인보다도 완고하고 끈기 있는 주인이지. 네가 지금 받아들여야 하는 건 우리 모두가 무언가에 매여 있다는 점이야. 모두가 자신이 모실 주인을 골라야 해. 모두가 선택해야만 하는 거야. 호킨스랑 나는 이쪽을 선택했어. 우리의 자유란 비자유와의 투쟁에 참여하는 소명이라는 복음을 받아들였어. 우린 그런 사람들이야, 하이람. 언더그라운드. 네가 찾던 바로 그 사람들.”

 

 

엄마가 물 위에서 추는 워터댄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속해서도 안되고 자기의 소유물처럼 착취해서도 안된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기억을 통해 남겨야 함을 보인 작품이다.

 

불평등한 사회적인 시선들, 같은 인종이라고 계급 차이로 느낄 수 있는 모습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지닌 ‘인도’란 능력을 십분 발휘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하이람이란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은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도 이런 점들을 간과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던진 작품이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란 작품과 함께 읽는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가깝게 이해하며 느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워터 댄서

원터댄스1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하이람은 백인 주인 아버지와 흑인 노예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그에겐 특출 난 능력이 있으니 바로 초능력 ‘인도’를 가진 점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에게 자신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것에 대한 것을 귀담아듣는 사람, 한번 본 것은 놓치지 않고 ‘기억’이란 것을 통해 담아두는 그,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본질적인 기억이나, 트라우마를 떠올리면, 지금 속한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으로 순간 이동을 하거나 사물을 보낼 수 있는 특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한때는 아버지가 가진 영토에서 주인을 꿈꾸었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백인 형의 시종으로 일하게 된 것일 뿐 그 꿈은 더 이상 현실성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날 그가 사랑하는 소녀 소피아가 아버지의 사촌인 너대니얼 노예로서 그의 집에 데려다주고 오길 반복하는 동안 소피아는 탈출 이야기를 하고 둘은 곧 자유 흑인이자 언더라운드 조직원이라고 알려진  조지에게 부탁해 도망을 감행하게 된다.

 

하지만 조지의 배신으로 소피아와 떨어진 하이람은 그 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모진 고생을 한 후 자신을 테스트했던 사람들이 그의 능력을 시험해보고자 한 언더그라운드’의 요원이었단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그가 알고 있던 능력을 이용해 거짓 서류를 만들고 북부의 필라델피아까지 가게 된 그는 버지니아에서 살았던 생활과 이곳의 천지차이인 생활의 모습을 통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고향에 두고 온 소피아의 행적과 나머지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없었던 하이람은 초능력 ‘인도’를 경험하게 되면서  ‘인도’가 일어나려면 고통스럽지만 자신을 본질적으로 성장시키는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과연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소피아를 만날 수 있는 것인지, 고향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인도’를 통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쥐어줄 수 있을까? 에 대한 서사가 이어진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남부와 북부에 걸친 흑인 노예제도는 과거의 역사에 속한다.

그렇지만 저자가 그리고자 한 모든 내용들은 현재에도 완전한 차별과 자유에 대한 모든 것이 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환상적인 소설 장치를 이용해 묻는다.

 

가해자가 기억하는 것과 피해자가 기억하는 것에는 다른 점이 많다.

이 책 속에서는 하이람이 가진 ‘기억’과 ‘인도’라는 능력을 통해 약자들이 겪는 개인의 역사와 그 윗대의 역사들, 인종, 빈부, 성별에 따라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 어떻게 변질되고 감추어지며 고통 속에 살아가는지에 대한 면들을 그려낸다.

 

소피아처럼 여성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갈 의지를 지닌 대사는 스스로의 속박에서 그것을 뚫고 나가 자신이 꿈꾸던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자유로워지는 건 시작일 뿐이야.
자유롭게 사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지.”

 

소설 속에서 여러 사연들을 지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내는지를, 약자에 선 입장에서 그 누구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주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없기에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역사와 기억을 남겨야 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들이 환상과 실제 역사 흐름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지? 넌 자유로워진 거야.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사람의 주인이기도 해. 그 어떤 형편없는 노예 주인보다도 완고하고 끈기 있는 주인이지. 네가 지금 받아들여야 하는 건 우리 모두가 무언가에 매여 있다는 점이야. 모두가 자신이 모실 주인을 골라야 해. 모두가 선택해야만 하는 거야. 호킨스랑 나는 이쪽을 선택했어. 우리의 자유란 비자유와의 투쟁에 참여하는 소명이라는 복음을 받아들였어. 우린 그런 사람들이야, 하이람. 언더그라운드. 네가 찾던 바로 그 사람들.”

 

 

엄마가 물 위에서 추는 워터댄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속해서도 안되고 자기의 소유물처럼 착취해서도 안된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기억을 통해 남겨야 함을 보인 작품이다.

 

불평등한 사회적인 시선들, 같은 인종이라고 계급 차이로 느낄 수 있는 모습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지닌 ‘인도’란 능력을 십분 발휘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하이람이란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은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도 이런 점들을 간과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던진 작품이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란 작품과 함께 읽는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가깝게 이해하며 느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고양이를 버리다.

고양이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무라카미 하루키 하면 생각나는 것이 대표적으로 마라톤, 와인, 음악, 고양이..
특히 에세이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이미지라고 할까 그가 쓴 작품들을 통한 내용들은 유쾌하면서도 찡하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이번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제목이 ‘고양이를 버리다’인데  요즘 말하면 길고양이를 연상하게도 하는 고양이의 등장으로 인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18살에 집을 떠나오기까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보통의 모자간이나 모녀관계보다는 부자간의 관계는 또 다를 것이다.

 

꼬마 남자아이가 성인이 되고 아버지보다 체격이 월등히 커지면서 바라보는 아버지란 존재, 작가는 어린 시절 고양이 한 마리를 버리러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지역에서 가까운 해변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고양이를 버리고 오지만 웬일인지 집에 와보니 고양이가 벌써 와있다는 사실을 그린다.

 

고1

 

이내 아버지는 고양이를 키우기로 하는데, 아버지의 생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 작품은 험한 시대를 견뎌낸 그 시대의 아버지 모습들, 동시대의 우리나라 한국 아버지들도 이렇게 힘들게 사셨을 것이란 생각을 함께  연상시킨다.

 
‘나날의 습관’이라고 붙인 아버지의 하루 일과 중 하나인 불단에 기도하는 행동은 아버지가 겪었던 전쟁의 참상을 통한 위로의 기도라고 해야 할까, 스스로 자신의 위안처럼 보인 행동을 지켜보는 아들로서의 기억을 그린 장면이라 인상적이다.
친할아버지 때부터 절과 인연이 닿았던 분위기는 아버지의 형제가 많음으로 인해 당시에 익숙한 절차처럼 보인 양자로 들어가거나 동자승으로 생활하는 모습, 이후 전쟁의 시대가 되면서 징집을 당하고 태평양 전쟁 전에  제대를 한 시간차의 세월, 이후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조명들은 작가라기보다는 아들의 시선으로 그렸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자신도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삶, 아버지와의 불화는 긴 시간 속에 흘러가게 됐고 이후 병이 완연한 상태에서 마주한 아버지와의 짧은 화해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연이란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어린 시절 고양이를 버렸지만 다시 돌아온 고양이를 거둬들인 아버지의 마음은 당신 자신의 유년 시절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듯한 느낌이라 읽으면서 어린 시절 겪었던 어린 아버지의 모습이 상상돼 코끝이 찡하게 다가왔다.

 

고2

 

특히 고양이를 보면서 느낀 저자의 글이 아버지와 작가 자신의 관계를 이어주듯 이어가는 매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특히 시대적으로 힘든 일들을 겪은 당시의 아버지들 모습들도 대부분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힘들어도 힘든 내색 없이 자신의 내적인 공간 안에서 삭히며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 비단 작가의 아버지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 평범하게 살다 간 인생들의 한 단편을 보는 듯했던 이야기다.

 

작품 속에 함께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 더욱 여운이 짙게 남는 이야기…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인간 섬

인간섬  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10월

한 대의 관광버스가 크로아티아를 출발해 슬로베니아로 넘어가는 경계선에서 잠시 정차한다.

관광객들의 여권을 모두 걷어들인 가이드는 차에서 내리고 한참 동안 버스에 승차하지 않는 동안 관광객들은 우리나라 고속버스 톨게이트를 연상시킨 그곳에서 여러 무리의 사람들을 창밖으로 볼 수밖에 없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아랍인들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 톨게이트 기둥 구석구석에 군인들 행렬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고 일부는 그 너머 보이지도 않는 까만 점들로 인식될 만큼 모여 있었다.

 

여행용 트렁크를 동반한 그들, 그들은 누구일까?

 

무려 40분~1시간 사이에 관광객들은 내리고 버스 안을 조사하는 군인들(?), 나중에 알고 보니 난민들이 우리들 중 도움을 받아 버스에 있을 경우를 대비해 검사하는 것이란 말에 뉴스에서 보던 기사가 내 눈을 통해 직접 보게 된 이 광경을 잊을 수가 없었다.

 

5년 전  당시 기억을 되살리게 한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린 난민 문제-

 

여전히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지금 이 시각에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탈출한 그들을 우리들은 ‘난민’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탐욕의 시대』, 『빼앗긴 대지의 꿈』을 읽은 독자라면 이 책에서 보인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양심적인 글과 함께 지금의 유럽 난민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게 된다.

 

유럽 난민의 문제는 시간을 거슬러 2003년 이후 이라크 전쟁 이후 계속된 문제였지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유럽 국가들에게 닥친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저자는 2019년 5월 유럽 인권 이사회 자문위원회의 부위원장 자격으로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을 방문한다.

 

유럽의 핫 스폿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다섯 개의 섬들 중(레스보스, 코스, 레로스, 사모스 키오스) 하나인 레스보스, 이름은 아름답지만 난민들에게 있어선 유럽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의 끈인 곳이자 험난한 곳이다.

 

그러나 이들이 여기에 도착하기까지에는 어려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중산층 정도가 되어야 가능한 일인 이 여정은 2011년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난민이 생김과 더불어 본격적인 시리아 내전을  통한 시리아인을 비롯해 쿠르드인, 아프리카인에 이르는 긴 난민의 행렬로 바뀐다.

 

 

시리아

(다음에서 발췌)

 

그렇다면 이들은 레스보스 섬에 도착한 이후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난민 인정을 받고 유럽의 희망하는 나라로 갈 수 있는 것일까?

 

우선 유엔 난민 망명 지원 사무소에서 1차 심사를 거친 뒤 레스보스 섬으로 이첩시킨 후 자국의 심사에 따른 결과에 따라 난민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3곳의 기관들은 각기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심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난민들에 대한 처우는 인권이란 문제를 대두시키는 문제로 떠오르게 한다.

 

푸시 백 작전을 통한 시초부터 망명 신청을 저지시키려는 목적에서 행해지는 작전은 쇠파이프로 구타하기, 인원 초과의 보트에 있는 난민들 배 주위로 돌면서 난민선 기울기, 포격 가하기, 심지어 고무보트 찢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루소

이런 가운데 일단 난민으로 섬에 도착했지만 그들의 끝 모를 여정은 끝은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긴 시간을 요한다.

 

입에 먹지도 못할 식량배급,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인원 초과, 올리브 숲이라 불린 곳에서 변변치 못한 생활로 버티는 그들에겐 이곳이 사각지대이자 희망의 지대란 점은 두 양면성의 유럽 모습을 보는 듯하게 다가온다.

 

이런 틈에 무기 로비스트들의 이익을 남기는 장사, 손이 찢어질 정도의 날카로운 철조망 건립, 보이는 즉시 사살할 수 있는 총기 난사 문제는 1948년 제3차 UN 총회에서 발표한  문구를 묻는다.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은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에서 피난처를 구할 수 있다”

 

유럽의 딜레마는 솅겐 조약과 더블린 조약에 따른 이중의 잣대를 보임으로써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취약한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교육의 문제까지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심각한 양상을 보이는 난민의 문제는  각국의 이익과 정치적인 문제까지 겹쳐지면서 더욱 심각한 상황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월드비젼                                                             (다음에서 발췌)

 

여기엔 유럽인들이 갖는 종교가 다른 이슬람인들에 대한 생각, 외국인 혐오에 일자리 고용문제와 잠시 거쳐가는 경유지의 유럽을 택한 것이 아닌 정착지로서의 유럽을 택하는 난민들의 문제까지 책 속에 담긴 관계 기관들과 실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욱 실감하게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저자는 난민의 기준으로 또 다른 문제인 기근에 관한 난민 규정이 필요함을 말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수정과 협약을 통한 실천, 난민 신청의 시간 절약과 간소화, 전문인력 보충, 유럽 연합의 그리스 핫 스폿에 대한 지원금의 확실한 사용처에 대한 요구들은 주장한다.

 

부패온상을 이어지고 있는 핫 스폿-

난민 재배치 거부를 하고 있는 나라들에게 주는 지원금 혜택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엔 유럽 국가 간의 협약이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

 

지금도 계속 자국을 탈출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몸만 나오는 난민들, 바위틈에 숨어 있는  물고기를 찾듯이 난민들을 찾는 사람들과의 신경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기에 다시 고국으로 되돌려 보내는 나라들, 그들의 마지막 희망인 유럽은 이 문제를 여전히 유지하고만 있을 것인가를 묻는 저자의 글이 잊히질 않는 책이다.

 

제목이 ‘인간 섬’인 것은 이들의 고달프고 긴박한 심정을 대변한 듯한 느낌과 함께 인간이 아닌 마치 바다의 기타 생물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숨어 있는 난민들을 연상시킨다.

 

동일한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책, “그들의 상처보다 그들의 두 눈을 바라보는 일이 훨씬 힘들다.”는 본문이 잊히질 않는다.

 

 

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로마사  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 1,000년을 하루 만에 독파하는 최소한의 로마 지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10월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로마제국에 관한 글들은 읽어도 지루함을 모를 정도의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분야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을 읽다 보면 로마제국이 지닌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바, 이 책에서는 음식을 통한 로마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로마인들의 기본 식사는 빵, 죽을 주식으로 하면서 와인, 올리브, 생선젓갈인 가룸, 채소를 곁들여 먹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소박하지만 본토에서 기른 주된 것을 섭취하던 패턴은 포에니 전쟁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영토의 확대를 통한 타국에서 먹는 음식들을 공수해 오면서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음식들은 로마제국이란 거대함을 더욱 부각하고 강대국으로 나서게 되는 여러 음식들과 연관이 되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로마식량조달

 

흔히 영화에서 보는 장면 중 하나가 누워서 먹는 그들의 식습관이다.

귀족 출신의 남자가 다른 손님들을 초대하고 함께 식사하면서 먹는 형태는 그리스에서 배워왔을 영향성을 고려하게 되며, 이는 곧 승자의 식사 문화란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에 본격적으로 이미 우리들 식탁에 오르내리는 음식들은 로마시대에 있어서는 타국과의 전쟁을 통한 공수, 이에 더해 항로 개발과 육로 개발의 일종인 도로의 발달로 인해 더욱 풍성해진다.

 

최초의 도로로 알려진 ‘비아 살라리아’는 ‘소금길’이란 뜻이다.

 

소금이 주는 영향력은 막강해서 당시 로마에서는 로마제국 건설의 원동력이 되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이는 소금을 취하게 되면서 도로와 그 중간에 도시가 들어서고 정치적으로도 소금을 통해 갈등을 푸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샐러리맨의 원형으로 알려진 소금이란 존재를 벗어나면 소시지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담고 있는 로마인들의 식탁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갈리아 지방에서 수출하는 형식으로 식탁에 오른 소시지는 육가공품 식품산업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으로 무역의 산물임을 드러낸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다양한 젓갈이 있듯이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가룸’이란 젓갈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는데 이미 가룸을 섭취하기 위해 발달한 무역 네트워크와 암포라라고 불리는 그릇은  금융산업과 수산업, 염장 업까지 발달을 가져온 핵심을 이룬다.

 

로마인들은 빵을 집에서 만들어 먹다 빵가게에서 사다 먹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고된 노동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갖게 하는데 이미 손님을 남편과 함께 맞는 형식은 안주인으로서 실제적인 집안의 경제권을 유지하고 늘리는 데에 집중하는 로마시대의 모습을 비춘다.

 

이밖에도 지금의 패스트푸드 격인 거리 음식의 발달, 물이 좋지 않아 함께 섞어 마시는 와인에 대한 확보와 포도재배를 위한 경작에 힘을 쓴 로마 정치가들의 노력은  자신의 정치 능력을 보장하는 역할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여행을 하거나 피자를 먹다 보면 짜지지 않는 것이 올리브다.

 

서양인들의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인 올리브는 열매를 짜서 흐르는 기름을 통해 여러 음식과 함께 곁들여 먹거나 목욕 시에도 오일을 이용한다는 점, 여기에 스트리길이란 도구를 사용해 몸의 불순물을 제거했다는 것까지, 올리브는 우리나라가 콩을 갖고 나머지 찌꺼기인 비지까지 이용해 먹듯이 이도 마찬가지로 ‘아무르카’라고 불린 부산물을 이용해 여러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목욕도구

또한 로마인들이 가장 사랑했다는 굴에 대한 사랑은 인공 굴 양식이란 것까지 개발하게 만들었으며 신선한 굴을 운반하기 위한 운송로 개척과 저장창고의 발달 여기에 목욕문화까지 발달하게 한 점은 음식이 주는 무한한 한계의 끝이 없음을 알게 해 준다.

 

굴운반

 

음식의 다양한 맛을 섭취하려면 빠지지 않는 향신료에 대한 로마인들의 관심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인한 길이 개척됨과 동시에 아우구스투스 초대 황제에 의해 인도양 무역을 통해 귀족부터 중산층에 이르는 계층들이 먹을 수 있게 된 계기를 마련한다.

 

한 나라 또는 제국이 강대해지려면 정치, 경제,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서로 원만하게 이루어져야 가능하단 사실을 과거의 역사를 통해 배우고 있다.

 

로마제국이 오랜 세월 동안 강대국으로써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근거들이 많지만 식탁에 오르는 음식을 통한 발전사는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동방에서 전해오는 계피, 후추, 생강, 정향, 육두구에 이르는 귀한 향신료들을 섭취할 수 있게 한 노력, 이에 따라오는 부산물인 수송수단과 항로 개척, 로마인들이 중국인들처럼 다양하게 섭취했다는 근거인 철갑상어, 캐비아, 송로버섯 트러블, 푸아그라에서부터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 쥐요리, 새 요리에 이르기까지 식탁에 오른 것은 끊임없는 정복과 영토 확장을 통해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정서에 맞는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음으로써 제국을 이룬 과정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부작용 또한 있었다는 사실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큐라 아노라라고 불리는 공공복지제도에 대한 부분도 다룬다.

원래의 취지인 변동이 심한 곡물값에 대한 해결책이 주된 목적이었으나 나중에는 선심성 제도로 변질되면서 무상급식의 취지에 어긋나는 결과를 초해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나 현재나 좋은 제도의 활용성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나라의 근간의 변화가 올 수 있음을 느끼게 한 대목이다.

 

 

로마라는 나라의 시작은 전쟁을 통한 영토 확보로 시작했지만 이를 통한 여러 음식들의 섭취와 이를 유지하려는 노력에 대한 다양한 활로 모색들을 통해  로마사 발전에 대한 색다른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책, 이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즐기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골짜기의 백합

flqb  골짜기의 백합 을유세계문학전집 4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7월

 

‘고리오 영감’이란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의 다른 작품인 연애 이야기를 그린 작품을 접해본다.

 

발자크의 총서 [인간희극]이란 부분 중에 소개되는 이 작품은 작가의 사랑에 대한 생각과 연애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다각적인 면모를 드러낸 작품이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자란 주변인처럼 여겨진 나,  펠릭스가 나탈리라는 여인에게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는 서간체 형식을 빌려 들려주는 작품이다.

 

때문에 그가 경험했던 어쩌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찬란했던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회상이자 이야기 속의 이야기 형식을 갖춘 액자 형식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부모나 형제들 사이에서도 원만하지 못했던 유년의 성장기는 그를 외롭고 고독한 생활, 다른 이들이 겪었던 청춘의 사랑이란 감정을 뒤로하고 학업에 몰두하게 만든다.

 

어느 날 앙굴렘 공작의 도시 환영식인 축제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한 여인을 보게 되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어깨에 입맞춤을 하게 되는 과감성을 보인다.

 

그 후 그녀를 잊지 못하고 휴양차 머물던 시골 어느 성에서 골짜기에서 퍼져 나오는 향기에 이끌려 가게 된 그곳은 백합이 어우러진 곳이었고 그곳에서 자신이 그토록 한 번만 더 만나보길 기대했던 여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모르소프 백작부인, 이미 나이차가 많은 병을 갖고 있는 남편과 아픈 두 아이의 엄마, 자신보다 15살 연상인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아픈 마음을 이해했던 두 사람은 플라토닉 한 사랑, 연애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녀는 그에게 앙리에트란 이름으로 불러줄 것을 말한다.

 

이어 풋풋한 청년의 가슴 뛰는 사랑과 열정 앞에 그녀는 오로지 두터운 신앙과 사회적인 신분에 갇힌 아내, 엄마, 정숙한 여인으로서의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오로지 둘 만의 의미를 담고 있는 백합 꽃송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간직하면서 서로의 사랑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그가 성공하길 바라고 사교계에서의 안정적인 이름을 갖기 위한 도움을 주었지만 그에게 다가온 달콤한 유혹은 뿌리치질 못한다.

 

영국 여인 레이디 아라벨의 공세는 정신적인 사랑 앞에 정열적인 육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하는 마술을 부렸고 이는 부인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지금의 빠른 사랑 패턴으로 보면 완전히 은근히 끊어 오르다 못해  애간장이 타는 듯한 연애의 행보를 보는 듯한 내용이다.

 

어린 시절의 불우했던 트라우마처럼 다져진 펠릭스의 외로움은 모성애를 느끼듯 모르소프 부인으로 인해 두 사람 간의 공통분모였던 고독과 외로움이란 동반자가 함께 있음으로 해서 그들의 사랑은 찬란했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는 이들을 호락호락 이해하지 않는다.

 

남편의 폭언과 조울증 섞인 행동과 말들로 인한 상처, 펠릭스와는 같은 듯 다른 듯한 친정 엄마의 냉대함, 아픈 두 자녀를 건사해야 했던 그녀가 외부로부터 이 모든 것을 감추고 살아야만 했던 당시의 주변의 인식들, 추락의 날개 직전까지 갔다가 지위와 부를 회복하고 이루면서 막대한 재산을 거머쥐게 된 경위들은 당시 역사적인 흐름과 함께 사회적인 계급층들의 몰락과 부의 상승의 이면을 보인 장면이다.

 

그런 반면 사회적으로 인식되던 여인들이 갖추어야 할 소양이랄지, 내적인  욕망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표면에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정숙을 요하는 흐름은 마지막 모르소프 부인이 보인 글들을 통해  펠릭스로 하여금 그동안 자신이 알던 모르소프 부인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된 부분이지, 아니면 미처 몰랐던 내면의 진실을 보게 된 장면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성격의 패턴과 펠릭스라는 인물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느낀 순수한 연정을 통해 알듯 모를 듯, 어느 때는 다가설 수 있게 하다가도 이내 정숙함의 부인상을 보인 모르소프 부인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듯한 아나벨과의 욕정에 사로잡힌 사랑의 패턴은 마음속으로는 모르소프 부인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쉽게 연을 끊지 못하는 면을 보인 한 남자의 지지부진한 면을 드러냄과 함께 두 여인을 비교하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마음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솔직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랑비교

 

마치 연극무대처럼 느껴지는 대사들의 향연, 그 끈적함의 오글거림을 넘기고 나면 저자가 그려보고자 했던 낭만적인 사랑의 느낌, 첫 만남의 설렘부터 오로지 스킨 접촉이라고는 손을 내밀어 손키스 정도를 허용하는 부인의 모습, 정반대로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아나벨이란 여인의 행동과 말들은 독자로서 비교해가면서 읽는 재미를 준다.

 

사랑맹세

 

사랑의 형태에도 다양함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두 여인의 사랑방식과 그 중간자 입장에 선 펠릭스란 인물의 심리를 통해  작가가 문장과 문장 사이에 드러낸 사랑의 첫 단계에서 느끼는 감정의 시작과 점점 익숙해져 가면서 다른 면들을 보게 되는 과정의 글들이 읽으면서도 전혀 오래된 글이 아니란 생각이 들만큼 솔직하게 다뤘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시대적 배경인 왕정복고란 흐름  안에 각기 정해져 있는 위치에서 그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며 이루어나가는지를 때론 따스함으로 때론 비판의 눈길로 쓴 내용들 또한  인상적이다.

 

끝내 부인의 죽음을 막지 못한 팰릭스의 결단 부족의 결과물인 이런 아픔은 골짜기에 홀로 피다 저물다 간 백합꽃처럼 여인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반전의 내용과 함께 차후 나탈리란 여인에게 들려줌으로써 제대로 당한 또 다른 편지 내용들이 이 작품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당신 펠릭스가 원하는 여인상, 이처럼 둘을 합쳐 놓은 듯한 완벽한 여인은 없을 터, 제대로 정신 차리세요~~ 그런 당신은 완벽한 남자인가요?를 묻고 싶다.)

여자들의 집

여자들의집 (2)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세 갈래 길’이란 작품으로 만났던 저자의 신작을 만나본다.

 

촉망받던 여변호사 솔렌의 시선을 따라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자신의 의뢰인 자살사건으로 인한 충격으로 번아웃이란 진단을 받은 후부터 시작된다.

 

살아갈 이유도 없어진 그녀에게 의사는 대필작가 자원봉사를 해 볼 것을 권유하게 되고 그녀가 찾아간 곳은 집 없는 여성들이 거주하는 여성쉼터, 여성 궁전이란 곳이다.

 

400명이 모여 산다는 곳, 그녀 자신은 이곳에 모여 살게 된 그녀들의 사연을 대필해주리란 기대감에 나섰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정함과 비난에 찬 눈길, 모든 만사에 삐뚤어진 시각으로, 때로는 발길질하며 격렬한 행동을 통해 울분을 드러내는 그녀들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속사정들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녀들이 세상에서 어떤 차별과 대우를 받았으며 억압이란 이름 아래 학대와 사회에서 버림을 받았는지를 알게 된 후부터 솔렌은 이들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소외계층이란 말, 연말이나 지금도 방송을 보게 되면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공익단체의 멘트 속에는 이런 사각지대에 머물고 살아가는 취약 여성들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 책이다.

 

그녀들이 여자란 이유만으로, 배우지 못했고 남편으로부터 긴 세월 동안 학대를 당했으며 할례를 피해 딸과 함께 도망쳐 온 여인이 아들을 그리워하며  편지를 부탁하는 모습들은 그동안 사회의 중상류층 이상의 삶을 살아왔던 솔렌에게는 또 다른 인생 터닝포인트를 마련해 준 계기를 제공한다.

 

자신의 우울증을 고치려 자원봉사를 시작한 일을 통해 오히려 그녀들과 함께 웃고 울면서 공동체 이상의 연대와 사명감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그녀가 오히려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도움을 받고 있다는 따뜻한 시선이 감동을 준다.

 

인간은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하루하루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생길에 자신과 같은 공감대,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함께 갖고 이어 간다면 피부에 크게 와 닿는 변화는 아닐지라도 서서히 변하는 시대의 흐름은 느껴보지 않을까?

 

스스로 성공하기 위해서 부단히 뛰어왔던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며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솔렌의 변화하는 인생의 모습과 불행과 차별 어린 시선의 변화를 촉구하는 느낌을 주는 책, 감동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줄레이하 눈을 뜨다

줄리에트줄레이하 눈을 뜨다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3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 지음, 강동희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9월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의 세 번째 작품집으로 만나본 구젤 밀례브나 야히나 란 작가의 작품이다.

 

이미 차세대 유망작가로서 많은 수상을 한 작품이란 소개에 이어 러시아 역사의 한 축을 그린 유배 문학이란 점이 눈길을 이끈다.

 

15살의 줄레이는 45 살의 무지하트란 부농 출신의 남자와 결혼한 30대 여성이다.

알라신을 믿으며 이미 네 딸을 저세상에 보낸 어머니이자 눈먼 시어머니 우프리하로부터 천대와 구박을 온몸에 담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순종적인 여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가 다르게 집안의 양식과 가축들을 차출해가는 마을 지도부의 등쌀에 차후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숲으로 종자씨를 숨기고 돌아오던 중 이그나토프가 이끄는 붉은 군대에게 심문을 당하게 되면서 예기치 못한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남편을 잃은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전 재산 몰수, 시어머니를 남겨둔 채, 한 번도 떠나본 적도 없던 율바시를 떠나 강제 이주란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된다.

 

기차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부농인들, 레닌그라드의 지식인들, 범죄자들, 이교도들까지 모두 이들은 길고 긴 시베리아로 향하게 된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에 시베리아 강제이주를 시작으로 1946년까지 이르는 세계 역사 사건의 하나인 제2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시대적 상황 속에 끈질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종교적인 신념 속에서 여성으로서 세뇌되어오다시피 한 무슬림 여성의 삶 속에서 펼쳐지는 시베리아 여정은 임신이란 기간, 탈주를 감행한 사람들 속에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뚜렷이 이어가지 못한 순종적인 여인으로 험난한 삶을 이어간다.

 

두 차례로 이어진  많은 사람들의 탈주와 생명을 잃어가는 과정 속에 생명력이란 힘은 그녀에게 또 하나의 다른 인생을 부여한다.

간신히 도착한 타이가에서의 삶은 생명의 출산과 함께 힘들게 자연 속에서 각박하게 생명의 끈을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과 곁들여져 정착지로서의 모습을 그려낸다.

 

자신의 남편을 죽인 아그나토프를 향한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스스로 자신 안에 내재된 사랑이란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려 애를 썼던 두 사람의 열정은 그녀 자신 스스로 아들의 앞날을 위해 거부함으로써 또 하나의 다른 인생의 삶을 이어나가는 여정은 인물들 간의 심리묘사와 시대가 요구했던 흐름, 그 안에서의 배신과 시베리아란 땅에서 심룩이란 마을을 이루기까지, 지난한 세월 속에  강제 이주자들의 노력과 저항,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고뇌, 예술가로서의 그림을 향한 열정을 그린 대서사시를 그렸다.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시베리아 사할린 강제이주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졸지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라의 명에 강제로 새로운 땅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들의 삶 속에서의 하루하루 살아가는 시간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신을 외면하면서까지(줄레이하) 버팀목이 되는 것은 뭐든지 붙들 수밖에 없었던 삶에 대한 투쟁이자 의지력을 드러낸 부분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겹치는 부분들이 많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간 줄레이하 란 여인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삶에 대한 의미는 무엇인지, 그녀의 아들로 이어진 새로운 세상으로의 탈출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 장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벽돌 두께의 책 내용이 지루함 없이 이어지는 글의 흐름은 그동안 러시아 문학, 현대에 이르는 작가의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독자로서 이번에 출간된 이 작품을 통해 러시아 문학의 새로운 면모들을 접하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카낙

카낙카낙 형사 카낙 시리즈 1
모 말로 지음, 이수진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20년 9월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을 다룬 최초의 범죄소설이자 카낙 형사 시리즈로 첫발을 내디딘 작품이다.

 

춥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극한의 상반된 계절을 담고 있는 그린란드-

 

그곳에서 이누이트 가족의 한밤중 몰살 살인, 범인은 모두 죽였다고 생각했겠지만 한 아이는 생명을 가까스로 부지하고 시간은 훌쩍 뛰어넘어 현재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곳으로 초대한다.

 

반 이누이트 출신의 덴마크 형사 카낙은 그린오일이란 회사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세명이 너무도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이 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다.

 

잘린 후두 윗부분, 파헤쳐진 복부, 닦인 혀, 곰이 했다고 생각되는 미스터리, 범인의 발자취는 없는 상태에서 누가 이런 행위들을 했을까?

 

국적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진 그들의 연관성은 없으니, 사건은 더욱 오리무중, 더군다나 해당 경찰서장 리케 에넬을 비롯한 수사진들의 비 협조성은 더욱 카낙을 난감하게 만드는데, 여기에 이어 또 하나의 시신이 발견이 되면서 카낙은 주위 동료들을 위주로 탐문수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용의자의 알리바이는 뚜렷하고 이에 더해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이 모여 살고 있는 곳에 두 구의 시체가 같은 모습으로 발견이 되면서 사건의 방향은 광대한 그린란드 서쪽에서 북쪽까지 넓혀간다.

 

지구 상의 그린란드란 대륙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륙빙하는 녹고 있으며 여기에 빙하가 녹음으로써 강대국들 간의 자원 확보 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그런 그린란드에서 토박이 원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누이트족들의 생활과 서구의 영향으로 변해가는 젊은이들의 모습, 여기에 석유를 추출하기 위해  설립한 석유회사의 외국인 노동자 고용, 더불어 삶의 터전을 관통하는 현주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외국인 혐오와 고용기회의 박탈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충실히 그리고 있다.

 

외국인들의 척박한 삶의 모습 뒤에 원주민 여성들의 매춘 행위를 통해 그녀들 삶에 고통을 주는 자들로 여긴다는 역설은 지금의 그린란드의 현 모습을 대변해 주는 모습 중 하나란 생각이 든다.

 

여기에 그린란드가 갖고 있는 자치령에서 벗어나 진정한 하나의 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함인지, 아니면 정치인들 스스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이를 이용한 방법으로 다루는 것인지에 대한 고위층과 석유회사 간의 담합은 추리 미스터리란 장르 속에 정치, 경제문제를 모두 보인 작품이다.

 

카낙 그 스스로도 자신이  태어난 곳인 카낙에 다시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뿌리의 원천을 찾아가는 모습 또한 아픔이 전해오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살인사건의 전체적인 배후가 누구인지를 함께 쫒아가는 여정 속에 그려지는 그린란드란 대륙의 자연경관, 그저 화면 속에서만 보았던 현실 속의 이누이트들의 고립된 정체성과 이를 유지하려는 자들의 사연들은 살인사건과 석유란 물질이 개입됨으로써 벌어지는 살인이란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전해져 온다.

 

이누이트의 투펙과 개썰매가 함께 등장함으로써 그들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순응해가는 모습을 잘 포착한 추리 미스터리 작품은 기존의 타 작품들보다 신선함을 준, 읽은 후에도 여전히 아련한 아픔이 전해지는 작품이었다.

 

 

첫 카낙 시리즈의 출발인 만큼 다음 이야기에선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