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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열세번째

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요즘 눈을 크게 뜨고 봐도 헌 책방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간간히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던 신촌의 모 책방이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특히 이 책 속에서 나오는 배경에 대한 애착이 더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전기를 쓰는 마거릿 리.

그녀는 아버지의 헌책방에서 일하며 책을 벗 삼아 오로지 책에 묻혀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책에 대한 애정이 크다.

어느 날 발신자는 ‘금세기의 디킨스’로 불리는 유명 작가 비다 윈터란 이름으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내용인즉슨, 평생 거짓 인터뷰로 일관해온 그녀가 진실을 말하겠다고, 왜 하필이면 자신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을까 하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비타 윈터의 저택을 찾아간 마거릿은 18세기 영국 시골 마을 앤젤필드 가(家)의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대저택이 폐허로 변해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쌍둥이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베스트셀러이고 여러 나라에 번역이 되는 초일류 작가임이 분명한데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비다가 지은 「열세 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에서  열두 가지의 이야기만 들어 있을 뿐 열세 번째 이야기가 빠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마거릿은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만남을 수락한 것이었다.

즉  그 나머지 이야기가 궁금해서, 혹시 그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의 진실이란 것이 바로 열세 번째에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그녀의 숨겨진 인생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 독자들은 읽어나가면서 마거릿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분위기는 폐허가 된 대저택의 이야기를 필두로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엄마의 방치와 선생의 지도 아래 서로가 분리되어 살아가는 쌍둥이에 대한 인생 이야기들은 책 속에 나오는 유명 작품들의 분위기와 워낙 비슷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읽으면서도 유명 작품을 연상하면서 비교해보게 되는 묘한 매력을 지닌 책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별다른 커다란 사건의 진전 없는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 에어.. 고전의 제목만 들어도 당시 읽었던 기억과 감동들, 그리고 비다나 마거릿이 간직했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연결이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전개는 또 다른 읽는 감동 흡입을 이루게 만든다.

 

 

책방은 한때 너무도 사랑받았지만 더 이상은 아무도 찾지 않는 책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다.p25

 

오래된 책의 고유의 냄새조차도 이제는 맡기 어려운 시대,  하루가 멀다 하고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내가 필요로 하는 소중한 책들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이 이 책은 이 이야기의 내용과 함께 다시 한번 책장을 둘러보게 만드는 시간을 만들게 했다.

 

과연 비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니면 소설가 특유의 발단, 전개, 결말에 충실한 허구의 이야기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으로 내려지겠지만 이 모든 것을 뒤로하더라도 모처럼 고색창연한 책들의 속에 파묻혀 지치도록 책을 읽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 책이다.

 

 

                                                                                                                          
                                            

시체 읽는 남자

시체

               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언뜻 제목을 봐서도 알겠지만 시체 부검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주인공은 송나라의 실존 인물이자  1247년 간행된 5권짜리 법의학 전서인 ‘세원집록’을 집대성한 송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3세기 송나라-

송나라의 수도 린안에서 펭 판관의 조수로 일하면서 신임을 얻던 그는 할아버지 죽음을 맞아 온 가족이 예를 지키고자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고 형 ‘루’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고향인 푸젠으로 돌아오면서 곧 린안으로 돌아가 미처 마치지 못했던 학업을 완수하고 꿈에 그리던 시체 검안과 범죄의 진상을 다루기 위해 각오를 다지지만 아버지가 몸담고 있었던 관리직에서 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알게 되고 형 ‘루’가 살인혐의로, 그것도 자신이 밝힌 증거를 통해서  끌려가면서 그의 꿈은 영영 멀어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집마저 화마에 휩싸이면서 간신히 자신과 셋째 여동생만 살아남자 그는 병에 찌든 동생을 살리기 위해 린안으로 향하게 된다.

린안으로 모험을 건 탈출을 견디며 점쟁이 ‘슈’와 함께 시체 매장 하는 일을 하는 동시에 부유한 집안의 시체 매장을 통해서 자신이 배운 학문을 마법사처럼 읊조리며 이미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남은 가족들로부터 돈을 받는 행위까지 하게 되는데, 병들고 어린 동생을 살리기 위해선 자신의 모든 것을 담보로 해야만 했던 자의 인생의 흐름이 책 중반부까지 이어진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밍’교수의 만남은 그를 유심히 보던 그에게 발탁이 되고 꿈에 그리던 공부를 다시 하게 되면서 그의 진가는 발휘를 하게 된다.

 

황궁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토대로 그가 펼치는 인생역정과 온갖 고난 속에 그가 자신을 변호하고 살인의 주범은 누구인지에 대해 시체를 통해 검안하는 그의  행동은 쉼 없이 책장을 넘기게 한다.

 

우선 이 책은 일본, 중국, 한국에 있는  ‘세원집록’의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동양인이 아닌 스페인 공과대학 교수가 썼다는 점에서 의외성을 지닌다.

자신의 나라 사람도 아닌 지리상으로도 멀리 떨어진 중국의 실존인물에 대한 관심도가 이렇게 좋은 역사소설로써 탄생이 됐다는데서 독자들은 서양인이 바라 본 동양의 역사, 그것도 그 당시 유교가 중심을 잡고 있었던 시대였으며 죽은 망자에게도 혼이 있기에 시체 부검을 한다는 것 자체에 염두를 두지 않았던 당시 세태의 시선을 무시하고 오로지 죽은 자의 몸에 나타난 상처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통증(선천성 무통증: 저자의 상상력)을 못 느끼는 송자란 인물이 동생을 살리기 위해 위험한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현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일시에 무너뜨린 공직자로서의 아버지 죄를 온몸에 담고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꿈을 향해 나갔던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송자의 험난한 일대기들은 저자의 꼼꼼한 조사와 상상에 기대어 펼쳐진 이야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동료의 모략과 믿었던 사람의 실체와 배신, 그러면서도 역사 속에 힘없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끝까지 삶에 대한 의지와 자신이 관철한 주장을 굽히지 않고 변호하는 장면은 지금의 시체 부검을 토대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데 일조를 하는 이런 병리학적인 부분들이 송자란 인물이 엮은 책으로 하여금 빛은 보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류 최초의 법의학자 ‘송자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도록 그가 실천했던 죽은 자들의 억울함을 푸는 과정들은 지금의 발달된 기술의 원초적인 근본을 제공했다는 점, 백정과 다름없었던 당시의 대접을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과학적인 수사방법을 동원해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송자의 활약이 책의 두께가 56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다음 장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을 지닌 책이다.

 

서로 실타래처럼 서서히 풀리는 종반부의 범인의 실체, 과연 그는 어떻게 사건을 풀어나갈지, 감옥에서 자신의 증명을 통해 황제로부터 풀려날 수 있을지…..

 

반전의 묘미와 함께 시체 검안 부분을 다룬 부분들은 재미와 상식도 함께 느끼게 해 주는 책이기에 책을 덮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상대적이며절대적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6년 11월

한나라의 말이란 것은 그 국민들이 사용하고 어떻게 발전이 되는가에 따라서 지속 여부와 함께 다양한 언어의 체계는 물론이고 더없이 소중한 자산임을 깨달을 수가 있다.

제목을 언뜻 봐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 다시 후속 편이 나온 줄(^^?) 착각하기도 했지만 우리말의 소중함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우선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포켓용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한 손에 쥐고 쉽게, 어디서든 펼치면서 읽을 수 있게 만들어졌단 점이다.

 

대개 이런 책들의 내용들은 일반 책 크기로도 손색이 없을 듯도 하지만 이런 크기로 출판했단 자체도 좋게 여겨질 만큼 아주 다양한 단어와 이와 비슷한 단어들 간의 비교를 통해 일상적으로 흔히들 문장 속에 포함되어 내뱉는 말의 정확한 어휘와 뜻을 이번에 다시 한번 제대로 알아가는 책이 아닌가 싶다.

 

우리말상대

사전이라고 해서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이해도가 들어있지만 한 단어 안에 품고 있었던 과거와 현재의 변화된 흐름 속에 어떻게 이 단어의 뜻을 알고 사용하면서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편찬 부분들이 그동안 알게 모르게 사용해왔던 우리말의 실체에 대해 좀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게 한다.

 

사람, 동식물, 가성, 자연현상… 그 밖에 실 생활에서 마주칠 수 있는 도량형, 법률 약속, 규정, 지리, 지형, 24절기의 해당되는 자세한 계절의 구분 기준, 시간, 시각의 차이….

 

사례2

사례3

 

책 속에 파묻히다 보면 어느새 일반 책들처럼 재미와 함께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다가오게 설명한 부분들을 통해 온갖 부분에 해당되는 단어들을 알아가는 재미를 준다.

 

주변의 질문에도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을 갖게 하는 책으로서, 저자의 앞부분 들어가기에 들어있는 내용들을 되새기면서 읽어가는 것 또한 이 책의 장점을 더욱 기억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한자권에 속한 나라인 만큼 9장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한자어> 차트는 단어 끝자 하나가 틀림으로써 어떻게 달라지고 이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룬 부분들은 지금의 청소년들이 한문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기회에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 말과 한자권의 다양한 정보를 접함으로써 보다 원활하고 자신의 뜻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게 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은 우리말 어휘를 더 바르고 정확하게 정의한 사전이다. 아울러 우리말 어휘에 생명과 힘을 부여한 성과물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시리즈’와 함께 우리말을 가다듬고, 키우고, 늘리고, 또렷하게 자리 잡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 중에서-

 

 

토정비결의 저자로서 창작활동을 하면서 느꼈을 실제의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단어 알기와 상용하기에 중점을 둔 책인 만큼 우리들이 실제 생활에 체감하면서 접했을 단어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었기에 가볍게 소지하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읽어도 좋을 책이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킬러안데르손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시작으로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를 통해 거침없는 유머와 세상 풍자에 대한 비판을 그려낸 저자의 신작이다.

아마도 위의 두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그의 취향에서 과연 이번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질까를 무척 궁금해하고도 남는 것이 북유럽의 이런 유머가 독자들에게도 일말 시원스러운 해소를 날려 버릴 수 있게 도와준다는 데서 더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목부터가 킬러다.

그는 무슨 죄목으로 킬러란 이름을 붙여가며 자신의 본명보다 이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힘을 쓰는 일이라면 천하장사도 당해내지 못할,  폭행과 살인을 주무기한  안데르스-

 

덕분에 도합 30년을 감옥에서 지내고  이제야 자유인의 몸으로 풀려나 ‘땅끝 하숙텔’이라 불린,  호텔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찜찜한 장소로 기억되는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곳엔 할아버지 때부터 부를 이루고 살았지만 할아버지의 세월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투자에 실패한 결과로  가난에 찌들어 살아가던 리셉셔니스트 페르 페르손이 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오직 자신의 이러한 생활에 불만을 갖고 있던 청년, 어느 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며 접근한 여자 목사를 만나게 되니, 그녀의 이름은 요한나 셸란데르다.

 

그녀의 집안 내력?

대대로 목사로서 일하던 집안인 관계로 남자아이가 생산되지 못하고 딸만 줄줄이 출산이 이어지나 냉철한 아버지는 딸들 중에 요한나에게 목사로서 승계직을 이어 주기 위해 억지로 신학대학을 보내게 되며 이런 불만은 그녀의 성장 과정에서 항상 목마른 갈증이 된다.

 

자신이 근무하던 교회에서 뜻하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쫓겨나게 되면서 떠돌이 목사로 전락하고 페르와 이내 의기투합, 두 사람은 모종의 계획을 세우게 된다.

바로 안데르스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보자는 것-

 

온갖 음지의 청탁을 받아주고 돈을 받게 된 후 안데르스로 하여금 행동 개시를 부탁하게 되면 안데르스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일정 금액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이런 사업은 매체를 이용해서 안데르스를 더 없는 악랄한 악당으로 몰아가게 되고 이들의 사업은 번창하게 되지만 여기서 일이 꼬이고 만다.

바로 여 목사의 설교를 듣던 안데르스가 더 이상 패는 일도 없이 ,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하단 말씀을 따르기로 한 것-

두 사람은 안데르스가 청탁할 일을 미리 선금을 받고 안데르스를 떼어놓고 도망칠 계획을 세우게 되지만 엉뚱하게도 여전히 안데르스를 데리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익명의 돈으로 돈을 뿌린 안데르스는 졸지에 유명 인사가 되고 이  두 남녀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바로 교회를 세우고 안데르스를 설교자로 내세우면서 헌금을 거둬들이는 돈을 또다시 갈취한다는 것인데, 과연 이들의 계획은 성공할 수가 있을까?

 

종교에 얽힌 이야기를 시의 적절하게 각 대화마다 그럴듯한 포장으로 그려놓은 저자의 풍자와 유며는 여전하다.

시종 낄낄거림과 웃음을 유발하는 가운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선의적인 태도와 헌금을 어떻게 이용하고 유익하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비판, 더군다나 선한 일반 보통 사람들이 아닌 특이하게도 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제목 자체만으로는 무거움을 줄 수도 있었을 문제들을 저자는 부드럽게 진행시킨다.

 

세상 사에 불만이 많았던 두 남녀, 그들이 미워해야 하고 제거해야 할 사람들의 목록은 어느 순간 돈이 쌓이고 일정기간 호화스러운 호텔의 생활에서 오는 단조로움을 통해 과연 ‘행복’한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가난하고 종교에 대한 불만에 싸였던 두 사람은 어쩌면 킬러 안데르스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이를 이용하려다 오히려 자신들이 한발 더 나아가 세상과 타협하고 마음의 부자가 되려는 행동으로 변해가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킬러 안데르스가 아닌 행복의 길을 전도하는 안데르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을 패고 부러뜨리는 일을 다반사로 했지만 유독 어린아이만은 손을 대지 않는다는 안데르스의 주장에서 폭소를 터트리게 되고 이는 곧 그가 차후 어떤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지에 대한 변수를 제공한다.

 

「내가 소싯적에 우리 엄마가 가르쳐 줬던 어떤 기도가 생각나. 전에 얘기했잖아. 그 이빨 빠진 늙은 멍청이 말이야. 술독에 빠지기 전에는 그렇게 형편없진 않았어. 그 기도가 뭐였더라? 그래,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여기 엎드려 있는 저를 굽어살피소서······.」

?

「그래서요?」

?

「<그래서요>라니! 전에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신다고. 그런데 우리 모두가 어린 아이들이란 말이야! 이건 내가 바로 어제 변기에 앉아서 읽은 건데······.」? – p.111

 

저자의 성경말씀을 어리숙하게 해석하는듯한 안데르스란 인물의 묘사도 웃기지만 그 안에서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믿음이란 실체에 대한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의 행동, 킬러를 죽이려는 백작과 백작부인, 킬러가 밉지만 킬러가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질까 봐 오히려 백작과 백작부인을 죽이려는 암흑가의 사람들의 이율배반적인 행동들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전히 웃긴다.

 

웃음 가운데 또 다른 깨달음인 인생의 진정한 행복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대한 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도 깨닫게 해 주는 저자의 이번 책은 또 하나의 행복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책이 아닌가 싶다.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조선무너짐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정병석 지음 / 시공사 / 2016년 10월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우리들은 반면교사로서의 지침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지구상의 많은 왕조들이 생성되고 쇠퇴기를 거치면서 지속하는 기간이 짦았거나 길었던 통치를 통해서 과감히 취할 점은 취하되 현재의 실정에 맞는 정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일들이지만 우리나라, 특히 지금의 현대사회가 있기 바로 전의 왕조인 ‘조선’이란 나라를 통해서 알아가는 비판과 고수해야 할 점들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00여년의 역사 속에서 찬란한 많은 유산을 남긴 왕조였지만 달이 차면 기울듯이 역시 조선왕조 또한 세태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쇠망한 그 원인을 다룬 책인만큼 , 요즘의 시국이 그다지 평탄치 못한 점이 있어서일까? 더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된 책이다.

 

저자는 30여년간 노동부에서 근무하면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펴냈다.

왜, 무엇이 조선을 망하게 했을까에 대한 접근 방식을 통해 오늘 날 우리들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는 사뭇 고찰적인 생각을 하게함과 동시에 무엇이 가장 옳바른 정치의 길인지를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저자는 ‘제도’란 부분에 입각해서 글을 다뤘다.

 

조선순서

 

실패한 요인을 살펴보자면 많은 부분들을 세세하게 구분할 수도 있었지만 저자의 말처럼 ‘제도’가 주는 중요성에 비춰어 볼 때 이 책은 이 점에 근접해서 다뤘고, 그 ‘제도’안에서 벌어졌던 안타까운 정책들과 위정자들의 권력고수들을 통해 여전히 안타까움을 던지게 한다.

 

고려 멸망 후에 건설된 조선이란 나라의 이념이 이성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성리학자였던 정도전과 그 무리들에 의해서 건국이 되었고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이 ‘성리학’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활용하고 이용하는데서 오는 차이들은 조선이 유독 두 나라와는 상반된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에 대한 사례들을 들려준다.

 

조선은 태동부터가 중국의 조공국가로서 출발을 했다지만 중국이 성리학을 받아들이되 현실적인 사회간접자본에 역성을 두고 집중 활용, 일본의 경우엔 쇄국 정책을 펼쳤어도 일부 지역에 한해서 외국 문물을 접함으로써 보다 빠른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여건이었던 반면 조선에는 이러한 상반된 행정들을 고수했기에 퇴화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례들을 들려준다.

 

조선일깨침

 

일례로 서양의 구텐베르크의 활자 발견 시기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금속활자개발을 갖추고 있었음데도 종이에 대한 국가의 독점권과 원할하지 못했던 계급층의 유동을 이용하지 못했던 결정적인 문제, 초기의 계급간의 유동이 원활했던 것들이 중기를 거치면서 양반제도, 사농공상으로 구분되어지고 노비제도의 혁신적인 제도를 반대했던 기득권자로서의 양반들의 세력을 넘지 못했던 중앙 왕권의 한계 때문에 조선사회를 취약하게 만들었단 사실들이, 읽으면서 여전히 답습되다시피한 오늘날의 모습들을 비추는 것아 안타까움을 지니게 한다.

 

피로인으로서 납치되 갔던 한국인들이 대부분 고국행을 거절한 사유 또한 나라의 제도적인 한계와 우대정책이 실패한 결과로써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점, 관료사회라 지칭된 조선의 관료주의로써의 등용문제와 교육의 불균형, 같은 학문을 받아들이더라도 우리의 실정에 맞는 법을 수용해야함을 무시한 채, 근본적인 원리만 내세우다 폐쇄적인 정책으로 변질되버린 조선의 ‘제도’의 한계를 통해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할 지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오늘도 여전히 광화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일 계획이라고 하는데, 국가가 해야할 일들은 무엇이며, 위정자들은 문제점이 발생 될 때마다 어떤 행동을 통해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들을 대표해 나라를 이끌 것인지, 저자가 말하는 조선의 제도에서 배움으로써 한 발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됐음 하는 바람이 들게 한 책이다.

                                                 

 

 

요시와라 유녀와 비밀의 히데요시

요시하라

요시와라 유녀와 비밀의 히데요시 – 조선탐정 박명준
허수정 지음 / 신아출판사 / 2016년 11월

***** 박수영이 임진년의 변란을 당하자 적 속으로 들어가 나라를 배반하였으니  형벌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윤허 한다고 답하였다.

                                                       1665년 선조 38년 6월 17일

                                                                         조선왕조실록 

 

 

팩션의 구상 중에서 이런 글 하나로 인해 커다란 재미를 선사해주는 책들을 만나게 될 때면 이야기 소재로써 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의 풍경과 실정들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재미가 있다.

 

윗글에서 상상력을 깃대어 글을 펴냈다고 하는 작가의 말을 곱새기면서 이 책을 들었던 바, 의외적으로도 배경이 일본의 에도 시대이고, 주인공이 기존의 책에서 다뤘던 박명준이란 등장인물을 다시 내세워 시종 그 시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재미를 준다.

 

에도시대로서 부산 왜관에 있던 상인 박명준에게 어느 날 10여 년 전에 알고 있었던 마쓰오 바쇼란 청년이 찾아온다.

그는 현재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에도 막부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의 쌍둥이 동생으로서 몇 달 전 오사카에서 벌어진 살인 참사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기 위해 박명준을 찾아온 것-

 

단순히 야쿠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세력다툼이라고 생각했던 이 사건은 죽은 인물들 가운데 쇼군의 하타모토(무사)인 야마나카 사효에노스케의 시신도 발견되어 의문을 더하게 되고 야마나카의 죽음에 석연치 않음을 느낀 바쇼에 의해 다시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두 사람은 일본으로 오게 된다.

 

유일하게 사건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중 야마나카와 같이 있었던 불한당의 오야분의 양녀로서 입적이 되어있던 15살의 오하루, 그녀는  그 현장에서 참살을 목격했으며 그녀의 품 안에는 소설책이  종반부가 찢긴 채 발견이 된다.

 

그런데 이 소설이라 불리는 책의 제목부터가 왠지 서늘함과 궁금증을 유발한다.

<히데요시 모노가타리>라 쓰인 제목의 내용은 누가 썼으며, 어떤 내용이길래 최고 막부가 금서를 내렸을까?

이 책이 금서로 내려진 이후에 발생한 이 살인 사건과의 연관성은 무엇 일지에 대해 바쇼와 박명준의 활약은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오사카를 비롯해서 요시와라 유곽으로까지 가게 된다.

 

요시와라의 유녀들 중에서 최고 등급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유란 명칭을 갖고 있는 노가제란 여인과의 만남, 그녀는 이 책과 어떤 연관이 있으며  죽은 야마나카와 오야분과의 관계는? , 그리고 야마나카의 행실을 감시했던 류조지와 그 윗선의 관직을 갖고 있던 사람의 죽음까지 얽히면서 파헤쳐지는 이 사건의 스릴들은 당대 에도 시대의 풍경과 어우러져 또 다른 재미와 추리로서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소설 속의 소설이란 형식을 갖춘, 금서로 지정된, 막부로부터 금서 명을 받은 히데요시 모노가타리의 내용은 임란을 조장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을 둘러싼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현재의 내용을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전혀 다른 발상으로서의 죽음을 다뤘기에 읽는 동안 정말로 위의 역사 한 줄로 인해 실제로 벌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독자로서의 상상력을 더하게 만든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후에 남겨질 어린 아들의 후계문제와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야망으로 맺어진 역사적인 사실들이  소설 속의 ‘린’이라 불린 항왜자 출신의 기구한 운명과 그려지면서  지키려는 자와 전복을 꿈꾸는 자들 간의 첩보전을 연상케 하며 그 와중에 역사 속에서 힘없는 백성들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대대로 전해져 오면서 벌어지는, 최종적으로  두 가지의 이야기들이 합쳐지면서 진실들이 밝혀지는 구상들이 색다른 재미를 준다.

 

한국 작가가 일본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그린 점도 색달랐지만 지금도 간간히 독립을 원한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오사카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들, 오사카가 상업도시로써 발전이 될 수 있었던 조닌(町人:도회지에 거주 하는 상인이나 장인들)의 활성화가 이후 일본의 역사 속 한축으로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이야기, 박명준이란 인물의 출신(피로인:被虜人:임진전쟁 때 일본으로 끌려 간 일반 백성들)도 이 사건의 해결에 한층 더 다가설 수 있었던 이점이 그려진 책이기에 이미 전란이 끝나고도 자신의 가문 유지와 후세에까지 권력을 이으려 전쟁 침략을 세웠던 히데요시의 야심을 간파했었던 당시 일본의 상황을 들여다볼 수도 있는 책으로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또한 사건을 통해 공부할 수도 있는 재미와 민초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얽힌 역사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착잡함을 느끼게도 해 주는 책이다.

 

원 제목은 ‘제국의 역습’이라고 하던데, 다시 좀 더 보완을 해서 지금의 책으로 나왔다고 한 만큼 저자의 세세한 자료 조사와 함께 전쟁이 주는 아픔 뒤에 여전히 지속되어오고 있는 우리 한민족의 피로인에 대한 관심도 들여다보는 계기를 제공해 준 책이 아닌가 싶다.

 

 

                                                 
                                            

실화를 바탕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델핀 드 비강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책의 표지가 앞. 뒷면을 경계로 같은 여인이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듯도 하고, 앞 면의 다른 여인인지 동일 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을 외면하고 있다.

 

저자의 첫 작품을 읽은 것은 2013년도에 출간된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란 책이었고, 얼마 전  읽은 ‘길 위의 소녀’에 이은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지 며칠 안됐지만 이 작가의 세 작품의 느낌은 상당히, 모두가 전혀 다른 색깔을 지닌다.

자신의 어머니의 자살 사건을 다룬, 자전적인 소설로 이름을 알리게 된 저자는 이 작품 때문에 오히려 주위의 아는 친척들로부터의 다양한 호응성을 받고 고심도 하고 또 다른 문학의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 이 시점부터가 바로 이 소설의 출발점이다.

 

처음 시작은 ‘L’이란 여인과의 만남이 우습지도 않게 이어지는 상황으로 전달되는 것으로 회상의 형식으로 이어진다.

 

뜻하지 않게 독자들과 문단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게 된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란 작품으로 인해 독자와의 만남과 여러 문화 초대 행사의 게스트로서 바쁜 생활을 해나가던 중 주인공인 델핀은 ‘L’이란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책 사인을 거절했고 이후 파티에서 만나게 된 후부터 마치 쌍둥이처럼 자신의 마음과 너무나도 잘 맞는 그녀를 델핀은 다른 친구들처럼 가깝게 대하기 시작한다.

 

작품의 성공에 이은 꾸준히 독자들로부터 받는 질문, 다음 작품을 언제 쓸 것인지, 준비 중인지, 언제 출간이 될 것인지, 기존의 작품의 연장선으로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다음 이야기를 쓸 것인지….

 

자신은 이 책을 내면서 실제 자전적이라고 해서 전부 사실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썼다지만 문학이란 진실된 것만이 제일이 아닌 허구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진실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델핀에겐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그녀 옆에 ‘L’ 은 전혀 다른 상반된 의견을 내놓는다.

즉 문학이란 진실만이 있을 때 그 기능을 다하는 것이며 곧 허구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고 계속 되뇌는데, 그런 가운데 델핀 조차도 자신의 문학적인 생각을 저버리고 점차 ‘L’이 말한 부분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초대 메일에 대한 답장이나 행사에 가는 절차, 그리고 뭣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글을 쓸 의지가 없어진 것이다.

컴 앞에서 않아 있을 수도 없으며 ‘L’의 도움 없이는 모든 일을 해 나갈 수 없게 될 정도의 의지를 하게 된 델핀은 점차 남자 친구와 주위의 아는 친구들, 그리고 쌍둥이 아이들에게조차도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말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타 책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글자 한 글자 두 사람이 나누는 문학적인 태도와 독자들이 어떻게 문학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른 책임감, 그리고 책이란 진실과 허구 사이, 양갈래 사이에서 어떻게 조절을 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이 이루어지고 선택이 되는지, 창작자로서의 고뇌와 취재에 얽힌 절차와 그에 따른 심리적인 압박감들이  사실적으로 전해지면서도 이것이 저자 자신을 대표하는 주인공 델핀(실제 저자의 이름과 동일)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드러낸 부분인지, 아니면 이마저도 독자들로 하여금 진실에 가까운 허구성을 내세운 작품인지를 헷갈리게 한 작품이었다.

 

 

***** 그렇다면 인물이 아무 데도 닻을 내리지 않은 채 순전한 상상 속에서 태어날 권리는 없단 말인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독자는 다 알고 있으니까. 독자는 언제나 환상을 탐닉할 의향이, 픽션을 현실로 간주할 의향이 있으니까. 독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줄 알면서도 믿을 줄 안다. 그럴 능력이 있다. 가공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사실처럼 믿을 줄 안다. 독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죽음이나 몰락 때문에 얼마든지 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기만도 위선도 아니었다. -P118

 

우리는 흔히 책 속에서 델핀이 말하듯 책 안에 인물을 통해 현실적인 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마치 진짜 우리의 곁에 있는 인물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현상을 더러 겪기도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는 더욱 그런 현실이 뚜렸하게 박히는 것으로 봐서는 델핀의 말이 맞다.

진짜 허구이지만 이 허구를 통해서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것, 또는 허구는 어디까지나 허구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독자들의 선택이기에 창작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꼭 모두가 ‘진실’만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하지만 ‘L’이 말하는 ‘진실’을 토대로 쓰는 것만이 독자들이 기대했던 바이고, 이런 문학적인 기대감은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란 주장 하에 계속 델핀과 설전하는 대목들은 이 내용들을 통해 문학이 주는 가치성, 즉, 진실이 반드시 들어 있어야만 이야기는 가능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다리를 다친 후에 두 사람이 같이 살게 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는 스릴 성의 느낌도 주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L’의 존재를 밝힐 수 없는 증거 부족의 현장들과 흔적의 부재 때문에 오히려 델핀이 우울증 증세와 무기력증에 걸려 여기까지 왔다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의 상황들이 여전히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읽다 보면  델핀이 혼자만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공의 인물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게 할 만큼 글의 흐름은 책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궁금증이 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진 문학적인 물음이 아닐까도 싶다.

 

사실인 듯한 묘사들, 즉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란 작품 이후 펼쳐진 글 중 저자의 심리와 생활상의 일상적인 모습들과  ‘L’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일란성쌍둥이처럼 보이는 행동들과 말씨, 그 이후의 진정으로 문학이 지녀야 할 진실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서로가 오고 가는 대화들은 심리 스릴러이자 실제이면서도 또 픽션인듯한 경계의 모호함을 독자들에게 선사함으로써 또 다른 독서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 작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아침에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수필가로 유명한 사노 요코의 에세이-

당시 이 책을 쓸 때의 나이가 40대이고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작가이지만 글 속에 담긴 저자의 색채는 솔직하다 못해 상대방이 얼굴을 붉힐 정도의 당당하고 돌직구적인 말들이 많이 담겨 있는 책이다.

 

원제는 <<내 고양이들아, 용서해줘>>라고 하는데 국내 제목이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저자

고양이1

 

저자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들 할머니들이 겪었던 격동의 전쟁 시대와 고스란히 닮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전쟁 중에 먹었던 음식, 태어난 연도로 보면 그 당시 무척 획기적이고 도전정신이 강했다고 여겨질 만큼의 외국 유학생활, 아버지의 말대로 예쁘게 태어나지 않아 미래에 먹고 살 걱정거리 없이 어떤 재주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술을 전공했지만 디자인 쪽과는 멀다는 것을 느끼고 판화 쪽이나 그림 쪽으로 선회 해서 오늘날에 책을 내기까지의 사연들이  전개된다.

 

고양이2

에세이다보니 어떤 특별한 주제 없이 당시 저자가 느꼈던 40대에 들어서면서 가졌던 기억과 회상들, 그리고 뜻밖에 결혼을 일찍 하게 되고 , 아들을 낳으면서 느끼는 모정이란 감정 앞에 당신 자신보다는 아들이 80이 되었을 때를 상상해 그려보는 글의 대목에선 엄마의 마음이 무엇인지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도 들어있다.

 

고양이를 많이 그려서인지 책 속에는 내용 속에 고양이 그림이 각기 개성 있게 그려져 있고 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고양이를 그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아들과 얽힌 사연, 어린이 그림책을 그리는 이유와 글 속에 드러난 누구나 느끼는 평범한 일상들을 그녀만의 세밀한 관찰력을 복원해 낸 글들이 돌직구 할머니답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고양이3

 

시간이 그저 흘러가기에 무심코 보내버리는 ‘시간’에 대한 생각은 《사는 게 뭐라고》, 《열심히 일하지 않겠습니다》와는 또 다르게 와 닿는 부분들이 있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 시간을 본 사람은 없는데, 어떻게 시간이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시간이라는 말이 생겼을 때, 내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바람을 본 적이 없는데 어릴 때부터 바람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어릴 때부터 누구나 시간을 알고 있다.

(중략) 시간이 딱 적당한 정도로 사람을 따라가는 일은 정말로 드물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시간이 부족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시간은 헐렁한 양복 같을 게다.-P62~63

 

 

막상 죽음에 대한 선고를 듣게 되면 당사자로서의 생각은 그다지 밝지 못할 텐데도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죽기까지 2년의 시간 동안 정말 즐겁게 살다 간 저자였다고 하니 솔직하고 시원한 성격답게 아마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그 연장선에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의 기억의 파편들을 드러낸 글들은 여전히 활기가 넘쳐흐르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글의 향기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파리에 비가 오면,,,,,

피리에비가

  파리에 비가 오면
현현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가을은 남자의 계절?

한 때는 이 말이 무척 정답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처럼 가을이 주는 분위기는 봄보다는 무겁고 약간의 사고력과 논리를 중시하는 것과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지만 이제는 이런 분위기도 옛 말이 아닐까?

 

추남, 추녀..

당연히 가을이 주는 분위기, 특히 오늘처럼 비가 올 것처럼 잔뜩 하늘에 구름이 무게를 잡고 언제든 내릴 것만 같은 이런 날에는 이런 그림이 곁들인 책이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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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운영하고 있는 ‘그라폴리오’ (그랜드(Grand) + 포트폴리오(Portfolio)에서 2014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현현 작가의 일러스트가 풍성한 책이다.

본인 자신의 전공을 저버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했을 때, 지금을 곁에 없지만 든든한 용기와 힘을 주었던 사람을 그리면서 그린 한 폭, 한 폭에 담긴 사연들은 촉촉한 감성을 물씬 풍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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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만남과 이별을 겪으면서 긴 여정을 이어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특히 자신에게 잊지 못할 그리움과 추억, 그리고 당시에 같이 했던 모든 것들을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긴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이 책을 통해서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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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의 시간을 거치고 다시 봄이란 계절이 오면서 맞는 , 그 당시의 저자의 추억은 이렇게 감성 어린 따스한 색채와 때론 정반대의 무채색의 그림을 통해 같으면서도 상반된 분위기 연출을 시도해 놓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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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누구나 그곳에 가면 낭만적인 시인이 될 수도 있는 곳, 서둘러 바삐 지나가는 파리지엔들을 뒤로하고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이국의 땅에서 맞는 비는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를지라도 아마도 ‘사랑’이란 공통분모를 통해 느끼는 이별의 감정과 상실감,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있었던 그곳에 대한 추억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색채로 표현되지 않을까?

(실제 파리에서 비를 맞아본 사람들 중, 저자와 같은 이별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될 수도 있겠으나 실제 비를 맞아본 소감은 한국과 별 차이는 없다는 현실성의 사실이 조금은 삭막하게 느껴지려나?^^)

 

 

저자는 실제 파리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의 파리에 대한 느낌을 다시 감상할 수 있는 색채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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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히 떨어지는 낙엽들을 뒤로하고 점차 깊어가는 늦가을의 정취와도 정말 잘 어울리는 책, 이 책 한 권에 푹 빠져 다시금 파리의 인파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하는 책이다.

                                                                                                                          
                                            

 

임신중절

임신중절

임신중절 – 어떤 역사 로맨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 송어낚시’ 를 통해서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로 이름을 알린 저자의 이 작품은 기존의 작품에서 보아왔던,  그가 표현해내고자 했던 문학의 연장선으로도 여겨질 만큼 이야기의 주제는 연애와 관련된 소재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의  또 다른 어두운 면을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31살의 ‘나’는 28살부터 도서관에서 일하고 잠자고 생활하는 생활을 해오고 있다.

도서관이라 함은 책을 소장하고 정리하고 대출해주면서 다시 신착도서에 대한 정리를 하고 그 밖에 여러 도서관 행사에 관한 일정들을 검토하면서 일하는 곳이란 생각과는 달리 ‘나’가 근무하는 도서관은 특이한 곳이다.

 

일명 책으로 출간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쓴 원고와 문서를 받아주고 그들이 원하는 도서관 장소 아무 곳에나 두고 가는 방식을 취하는 곳이다.

따라서 대출도 없고 신착이란 개념도 없는 그곳에서 만족을 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어느 날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을 가지고 온 바이다란 여인을 맞이하게 되고 그녀가 느끼는 그녀만의 신체적인 결함(사실은 육체적으로 무척 섹시하며 모든 시선들을 집중시키는 자신의 몸에 대한 좌절을 가지고 있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연애라는 것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곧 임신이란 문제에 봉착하는 두 남녀-

아직은 아기를 가질 준비가 되어 있질 않고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중절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분량은 짧지만 마치 로드무비 형식처럼 처음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서부터 만남, 사랑, 연애, 임신에 이르는 과정과 중절을 위해 멕시코로 가서 중절을 받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일을 치른 후에 다시 두 사람이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되는지를 그린 이 책은 기존의 작가가 주장한 것을 내포하고 있다.

 

 

 

도서관 밖을 한 번도 나서지 않았던 ‘나’,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살았던 내가 임신중절을 위해 밖을 나서게 되고 기존에 여전히 있었던 길의 바닥 감촉을 느끼는 사회적 물질이란 감정,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일을 통해 느끼는 물질의 혜택, 자신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겪는 같은 공간 속에서의 임신중절 현장을 보면서 느끼는 세 번의 임신중절이란 부분에서는 저자가 그린 이 책의 최고 순수함과 생명에 대한 저버림을 비판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

 

도서관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살아왔던 순수함을 간직한 ‘나’가 현실과 부합되면서 어떻게 이기적인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저자가 그동안 줄곧 천착해왔던 물질 만능주의와 그 안에서 하나의 소모품처럼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저자의 책은 은유적인 기법들이 예전 작품에서도 있어 읽기에는 여러 번 생각을 해보게 되기도 하고 방향성의 제시 면에서도 여러 각도에서 다뤄도 좋을 글의 흐름을 유지하는 작가 중의 하나란 생각을 또 하게 된다.

 

 

책 내용 중에서도 자신들이 쓴 책을 가지고 오는 부류들 중에서 저자인 자신이 직접 책을 들고 오는 장면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저자의 이름을 딴 ‘브라우티건 도서관’이 만들어지기도 했다는데 이 책을 통해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