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38도 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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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해안 여행 중 38선이라는 조형물을 보고 마음이 찐하여 멈추었다.
이곳이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잔교리에 위치한 양양 38선 휴게소이다.
탁 트인 동해의 넓은 바다와 해수욕장이 착잡한 내 마음과는 달리 반갑게 맞아준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이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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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소 양국이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점령한 군사분계선이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이 일제의 굴레에서 해방된 직후부터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으로 인한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남한과 북한과의 정치적 경계선이 되었다. 이 경계선은 순전히 타의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책정된 것이며, 한국 민족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민족적 비극과 고통을 안겨 준 한 많은 경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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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단순히 군사작전상의 업무 분담을 위해 일시적으로 분계선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세계 적화(赤化)를 노리는 소련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남북 분단의 정치적 경계선으로 바뀜으로써, 우리 민족에게는 더없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수천 년 간 단일 생활권을 형성하였던 우리 민족은 일시에 두 개의 이질적인 생활영역으로 분할되어, 부모 형제 간의 생이별은 물론 그 밖에도 수많은 고통을 강요당하였다. 특히 우리 남한 측은 그때까지 북한의 공업기반에 의존하였던 전력(電力)·비료·석탄·관개수리(灌漑水利) 등의 공급 단절로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남·북한이 각기 민주와 공산이라는 대립적 이데올로기와 체제로 맞서게 됨에 따라, 한반도는 격화되는 동서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북한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이 유발되었다. 또 휴전선이 현재와 같은 위치에 책정된 것은 군사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그보다도 38선을 의식한 국제정치적 고려가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조형물에 새겨진 가슴 뭉클한 글을 읽으며, 6.25전쟁 중에 태어난 無頂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적셔왔다.
( 설명은 조형물에 적힌 글과 두산백과를 참조 했음 )

여기가 38도 선입니다.”에 대한 2개의 생각

  1. 맞아요
    이 38 선!
    일개 미군 대령과쏘련 대령이 테이불에 앉아 그은 이 선이
    결국은 이 민족을 어느날 까지 비극으로 몰고 있죠
    사실 태평양 전쟁 후 쏘련이 일본을 가르자는
    야기도 했었다죠
    워낙 미국이 먼저 차고 앉아 있었지만
    사실 그래야 제대로 되는게 아니었을까요
    그럼 오늘 날 일본이 저렇게 까불지도 못하고 ㅠ
    근데 엉뚱하게 고생만 실컨한
    우리 한반도가 대려 이렇게 되고…
    아무튼 참 역사라는 아래에는 믿을 나라는 없어요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더 이상 남하하지 않은 것도
    말씀 하신 그런 이유도 좀 잇었겠죠

    • 동감입니다.
      패전한 나라를 반으로 나눠서, 물에 말아 먹던 국에 말아 먹던 했어야 마땅한것 아닌가요?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 놔야하는데……
      어서 빨리 통일이되어야 하는데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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