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박경리 선생님은 시에서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것을

버리고 갈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고 하셨는데

나는 아직까지 죽음에 대해서 별로 준비한것도 정리한것도 없다.

아직은 내가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건방진 안도감(?) 때문이겠지…

옛날의 그집 – 박 경리 –

비자루 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그루가

어느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년을 살았다.

빈 창고 같이 휑뎅그레한 큰 집에

밤이오면 소쩍새와 쑥쑥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심고 고추심고 상추심고 파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밖에는

짐승들이 으르렁 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 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오늘 박경리 선생님은 통영 산양읍 미륵산에 안장된다고 한다.

아아 편안하시겠지. 돌아가셔서 편안하시겠지 하고 생각 해 본다.

어머니와 함께 옛날의 그집과 또 한편의 시를 현대문학 4월호에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가신

박경리 선생님.

편히 잠드소서 !

32 Comments

  1. 왕소금

    2008년 5월 9일 at 1:02 오전

    죽음이란 육체만 무너지는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아닌게 아니라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의지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2. 본효

    2008년 5월 9일 at 2:11 오전

    아름다운 통영에 잠드시는 분 ..
    그리고 나의 고향 ..
    함께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목요일 밤입니다

       

  3. 참수리

    2008년 5월 9일 at 3:40 오전

    나이들어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라고 말할수 있는 시간이 되려면
    젊었을때 자기관리가 잘 되어야 한다고 느껴 봅니다 ..
    아름다운 노후가 되기위한 오늘의 시간도 예쁘게 살아야 겟습니다 ^^
    생각하는 좋은 글에 추천입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요.
       

  4. 데레사

    2008년 5월 9일 at 10:03 오전

    왕소금님.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힘들고 지칠때 의지할 수 있는 그 무엇, 그게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5. 데레사

    2008년 5월 9일 at 10:06 오전

    본효님 고향이 통영이시구나?

    통영에는 절친한 친구가 둘 있었어요. 한 친구는 아버지 통영여고 교장을
    하셨고 서울에서 코리아 헤러드에 근무하다 시집갔고
    또 한친구는 수산대학을 다녔던 남자친구.
    원양어선을 타다가 후배하고 결혼했고

    그 둘 때문에 통영을 자주 들락거렸답니다.
    폰디골 나폴리에도 가고 남망산에도 가고 그리고 산양…..
    나도 그리움으로 닥아오네요.   

  6. 데레사

    2008년 5월 9일 at 10:08 오전

    참수리님.
    오늘 박경리 선생님은 통영 산양에 잠드셨을 겁니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것을……

    오늘 여고 동창들이 밥 먹으면서 얘기 했어요.
    우리도 늙어가니까 편안하다고.
    모든걸 벗어놓는 준비를 하자고 ….

    고마워요.   

  7. 천왕

    2008년 5월 9일 at 10:51 오전

    늙는다고 다 편안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 만큼 자신과 우주와의 관계를 알았기에
    편안하셨을 겁니다.

    노년의 시간도 지금까지의 삶보다 더 아름답게 가꾸면 …
    버리기가 수월하겠지요?….
       

  8. 슈에

    2008년 5월 9일 at 11:43 오전

    마흔에서 아흔까지란 노년을 준비하는 책을

    어제 친구가 빌려줘서 읽기 시작했어요.

    마음가짐에서부터 실질적인 준비같은것을 조목 조목 편하게 씌인글인데

    <인생수업>이라는 책은 죽음을 앞에 맞이한 사람들이 줄수있는 삶의 교훈을

    적은것과는 다른 천천히 그러나 철저히 준비할 시간이 잇다는것의 차이겠지요.ㅎ    

  9. 솜사탕

    2008년 5월 9일 at 1:16 오후

    아침 뉴스에 진주여고 들렸다.
    산양에 ……

    몸 안아프고 건강하게
    우리 모두의 노년도 그랬음 좋겠어요.
    앉았다 갑니다.   

  10. 지안(智安)

    2008년 5월 9일 at 2:41 오후

    박 경리 선생..
    앞으론 시를 쓰시겠다고 하시더니 훌쩍 떠나셨지요.

    선생의 시엔 혹독했던 세월이 배어나오는듯 합니다.
    그런 환경이 또 그런 작품들을 쏟아 내시기도 했겠지요.

    선생의 명복을 다시한번 빌면서.
    이젠 멀기만한 남의 일이아니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11. 샘물

    2008년 5월 9일 at 9:10 오후

    이곳 어디서 박경리 선생님의 부음을 들었던지 모르겠네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 그분 책을 많이 읽고 참 좋아했었습니다.
    이모의 영향이었지요.

    어떻게 혼자 살 수 있을까요?
    더구나 호젓한 곳에서…
    제게는 참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

    버려도 좋은 것만 가지고 살면 얼마나 가벼울까요?
    저라고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젊어서보다 애착이 많이 생겼을까 저어됩니다.

    다시 박경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12. 데레사

    2008년 5월 9일 at 10:57 오후

    천왕님.
    늙었다고 다 편안한건 물론 아니겠지요.
    그러나 나이 들수록 편안해 지는것 또한 사실이에요.

    집착, 욕심, 이런게 점점 엷어져 가네요.
    벗어놓고 갈것만 남기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13. 데레사

    2008년 5월 9일 at 10:58 오후

    슈에님.
    누구나 다 가야하는 길이니까 미리 부터 준비해 두면 한은 남지
    않을것 같은데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아서…..

    박경리 선생님의 시 읽으면서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있는
    요즘입니다.   

  14. 데레사

    2008년 5월 9일 at 11:00 오후

    솜사탕님.
    죽어서 고향땅에 묻힐수 있다는것도 큰 행운이겠지요.
    비록 젊어서는 모진 세월을 사셨다 해도 박경리 선생님도
    노년에 편안하셔서 좋았을겁니다.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게 우리들 모두의 바램이지요.
       

  15. 데레사

    2008년 5월 9일 at 11:01 오후

    지안님.
    멀기만 한 남의 일은 아닌데, 모든걸 버리기가 쉽지는 않네요.
    아직도 욕심, 집착…. 이런걸 다 털어버리지 못하고 산답니다.

    행복하세요.   

  16. 데레사

    2008년 5월 9일 at 11:03 오후

    샘물님.
    이모님께서 박경리 선생님 팬이셨나 봐요.
    저도 표류도 이후 선생님이 집필하신 책은 거의 다 몇번씩 읽었거든요.
    그 책들속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꿈도 숱하게 꾸었고요. ㅎㅎㅎ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17. 타는 불

    2008년 5월 10일 at 12:10 오전

    내누이는 ‘손자 손녀’때문에 늙는다는 게 편안하고 좋다고했어요.
    박선생님은 모든걸 놓으셨기때문일가요.
    나는 미망이 많아서 아직 편하질 않네요.

    주말 연휴 즐거히 보내시도록.   

  18. 아리랑

    2008년 5월 10일 at 2:39 오전

    박씨 여자분들이 참 대단해요!박완서씨의 그 남자네집을 읽고 저도 그 책에 푹빠져
    그남자네집을 생각했던적이있지요^^
    2년전 봄 이맘때쯤 저도 고향의 옛집을 가보았던 생각이 떠오르구요

    통영의 산양읍 산양일주도로를 드라이브 했던 적이있는데
    아름다운곳에서 영면 하시기를,,
       

  19. 데레사

    2008년 5월 10일 at 7:51 오전

    타는불님.
    저역시 아직은 편하질 않아요. 편할려고 노력하는 정도지요.

    지금 자동차란 자동차는 죄다 밖으로 나온것 같네요. 연휴동안
    모두 어디로들 가는지…..
    저도 내일 미사 다녀와서 어디로든 휙 갔다 올까 하고 생각중입니다.

    건강하세요.   

  20. 데레사

    2008년 5월 10일 at 7:54 오전

    아리랑님.
    그 남자네집 뿐만 아니라 박완서 님의 작품도 어느것 하나 빼놓지
    않고 다 읽었답니다.

    통영의 산양일주도로 참 멋있지요? 나도 몇번 갔었는데…..

    여기는 이제 여름같은 날씨에요. 연휴라 모두들 어디로 가는지
    밖을 내다보면 자동차들이 행열을 이루고 있네요. 나도 낼 미사
    다녀와서 어디로든 훌쩍 갔다 올까 봐요.

    아리랑님도 건강하세요.   

  21. 봉쥬르

    2008년 5월 10일 at 9:45 오전

    충무 살던 기억
    그리고 통영으로 바뀌고.

    통영은 우리 아부지 고향 그리고 저의 본적지..
    박경리 선생님 의 소설속 지명이 많이 와닿고요.

    데레사님
    내일 멋있는 시간 되십시요!   

  22. 데레사

    2008년 5월 10일 at 12:14 오후

    봉쥬르님.
    고향이 통영이시군요.

    제가 알기론 통영이다가 충무로 바뀌었다가 다시 통영으로 바뀐
    아름다운 도시.
    통영에 고등학교때 친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래서 여러번을 갔었는데
    정말 살고 싶은 곳이에요.

    봉쥬르님도 행복한 주말되세요.   

  23. 다사랑

    2008년 5월 10일 at 4:31 오후

    가슴이 내려 앉도록 서운했답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작고가..

    우리 모두 편안한 임종을 맞기를 늘 기도해야겠지요?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4. 데레사

    2008년 5월 10일 at 10:52 오후

    다사랑님.
    통영에 사는 친구들은 안장식에 참석한다고들 알려 왔어요.
    우리 젊은 날의 우상이셨던 선생님을 생각하면 너무도
    아쉬워서….

    편안한 휴일되세요.
       

  25. 아멜리에

    2008년 5월 11일 at 1:34 오전

    오늘도 박경리 선생님 이야기.. 데레사님도 차분한 글 잘 쓰시네요.
    이 시는 제가 좀 퍼가겠습니다.

    통영에 사는 친구분은 그래도 뿌듯하시겠어요.. 저두 통영 가고 싶네요. 그저 마음만..
       

  26. 데레사

    2008년 5월 11일 at 3:14 오전

    아멜리에님.
    우리 한번 같이 갈까요?

    통영, 제일 아름다운 곳이에요.   

  27. silkroad

    2008년 5월 12일 at 3:03 오전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가 울었고–
    배추심고 고추심고 상추심고 파심고–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것 같아–

    모진 세월가고

    아아 편안하다—

    님의 인간적인 외로움과 고뇌 다 버린 편안함이 한데 어우려져 있군요
    마지막 글이라니—미리 예감한 듯한–

    내게도 꽃같이! 시끌벅적한 방을 살짝 피해
    댓글겸 안부인사드립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하여튼 신났어!^^   

  28. 데레사

    2008년 5월 12일 at 5:19 오전

    실크로드님.
    박경리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 이 시 와 그리고 어머니.
    참 좋은 시지요.

    우리에게도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고 해야 하는데

    왜 자꾸 살아 온 날들이 돌아봐 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뭐 지금이 안 편한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고마워요.   

  29. 사슴

    2008년 5월 14일 at 2:09 오후

    저도 무척 슬펐답니다.
    그런 분들은 안떠났으면 좋겠어요.
    우리 역사의 한 진실한 세월이 영영 닫히는 기분이랄까요
    그분의 책들이 있기는 하지만요..

    저도 통영을 참 좋아해요.
    아무 연고도 없지만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는 상상을 자주 하지요.
    하지만 통영에서 살려면
    무슨 자격증같은게 있어얄 것 같네요..
    문학 음악 미술…
    어떤 <고전>을 남겨야만 될 것 같아요^^

       

  30. 데레사

    2008년 5월 15일 at 10:23 오전

    사슴님.
    통영, 참 좋은 곳이에요.

    몇번 갔었는데 갈때마다 좋고, 특히 섬들이 아름다워요.
    욕지도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진주양식을 시작했지요.

    그 진주 양식장에 후배가 남편따라 가서 근무하면서 보내 온
    편지들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데 멸치가 하얗게 널리던 풍경을
    묘사한게 너무 아름다워
    멸치가 널리때쯤 통영을 찾아가기도 했지요.

    통영에는 박경리, 윤이상, 유치환 선생님들의 고향이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나전칠기의 명인들도 많고…

    암튼 참 좋은 곳이에요.   

  31. 미륵산

    2009년 4월 14일 at 12:43 오전

    그으참!
    아직도 묘소엘 가보지 않았으니———-같은 미륵도에 살면서리.
    어째 데레사님께 미안한 맘이네요.   

  32. 데레사

    2009년 4월 14일 at 4:01 오전

    미륵산님.
    가보시고 사진 좀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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