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전의 사람들은 간곳도 없고…

고래불 해수욕장에서 영덕읍내로 들어오는 해안길은 정말 아름답다.

날씨조차 맑아서 흰 파도가물결치는 바다를 끼고 해맞이공원, 삼사해상공원의

이정표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언니는 아무 관심도 없이 읍내로 빨리 가자고만 한다.

빨리 가서 "등내" 라는 동네의 "술이" 를 찾아 보자고 한다.

언니의 60년전의 기억속의 사람들과 기억속의 동네를 찾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우리가 다녔던 영덕초등학교를 기점으로 해야겠기에 위선 찾기 쉬운 학교부터

찾아 갔다.

강구항1.JPG

영덕 초등학교, 언니는 이 학교를 졸업했고 나는 3학년 때 6,25 를

만났다. 어릴적의 학교를 찾아 가보면 운동장이 언제나 작아 보이곤 하는데

이 영덕학교의 운동장은 60년만에 찾아갔어도 아직도 넓고 커 보인다.

그때는 얼마나 컸을까?

강구항 영덕학교간판.JPG

언니는 여기서 자동차에서 내린다. 그러면서 웬일로 사진까지 한장

찍어달라고 한다. 아무것에도 관심없던 언니가 이곳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일상으로 돌아오는것이 반갑고 신기하다.

강구항 언니사진.JPG

강구항2.JPG

학교옆으로 우체국이 보인다. 아버지가 근무했던 곳이다.

저 우체국을 지나 내를 건너고 멀리 사진으로 보이는 산밑 어디쯤이

"등내" 라는 마을이었는데….

자동차를 그쪽으로 몰았다.

옛 마을이 그대로 있을리가 없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서 길가는 사람들

에게 위선 "등내" 가 어디냐고 물었드니 모두 모른다는 대답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와 산을 보면 여기쯤이 맞는데 모두 모른다고 하니

자동차는 두고 걸어서 찾아 나서 보기로 했다.

마침 지나가는 나이드신 할머니 한분에게 다시 물었다."등내" 가 어디냐고?

그런데 할머니는 알고 계신다. "여기가 등내에요" 다.

그러면서 동네 이름이 덕곡동으로 바뀐지가 오래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은 알리가 없지….

다시 그 할머니에게 물었다. 혹시 이 동네에 오씨네 집이 있느냐고.

바로 이집이 오씨네 집입니다 하고 가르쳐 주는 한 집을 찾아 들어갔드니

92세의 할머니가 세탁기도 없이 빨래를 손으로 하고 계셨다.

강구항3.JPG

(영덕을 흘러가는 오십천의 사진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린시절 멱감기를

했었다)

할머니는 기억력이 아주 좋고 귀도 밝아서 우리가 찾아 온 사연을 얘기

하니 언니가 찾는 그 "술이" 라는 사람은 포항으로 시집가서 살고 있다고

하면서 희안하게도 어린시절의 우리를 기억하고 계신다.

먼 친척뻘 되는 분이다.

우리 아버지도 우리 어머니도 다 기억하시고 내가 서울에 살고 있는것 까지

다 알고 계신다. 얼마나 반가운지 언니는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인다.

‘ 그러면서 호주머니에서 돈까지 꺼내서 할머니 손에 쥐어 준다.

강구항4.JPG

기억력도 좋고 귀도 어둡지 않지만 불행하게도 글을 몰라서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한다. 걸려 오는 전화만 받고 자기가 전화를 걸줄은 모르니까

"술이"의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한다.

‘ 언니가 만나고 싶어하는 친척분들은 다 돌아가셨다는 얘기도 할머니에게서

들었다.

집 찾느라 카메라도 핸드백도 다 자동차에 두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같이 사진 한장 못 찍는걸 언니는 내내 아쉬워 한다.

강구항5.JPG

영덕에서는 더 찾을 수 있는 사람도 없기에 자동차를 경주로 향했다.

여기는 강구항.

어릴적 우리가 소풍으로 많이 왔던 곳이다.

강구항6.JPG

잠깐 강구항에 자동차를 세웠드니 언니는 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렇게 가보고 싶어하던 강구항인데도 역시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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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항8.JPG

강구항9.JPG

대게철이 지나서 강구항은 한산하다. 혼자서 입구길을 조금 걸어보니

재미도 없고 덥기만 하다.

강구항10.JPG

강구항11.JPG

호객하는 사람들이 불렀지만 그냥 다시 자동차에 올랐다.

강구항12.JPG

강구항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꽁치통조림 공장이 있어서 어릴적

그 통조림 공장 구경도 가곤 했는데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강구항13.JPG

이 강구항에서 부터 고래불 해수욕장까지 50킬로 미터의 길이 ‘불루로드" 다.

우리는 걷는길을 버리고 그 옆 자동차길로 위에서 부터 거꾸로 내려

왔지만 거꾸로 내려오나 바로 올라가나 동해의 경치야 다를리도 없고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지만 아무곳에도 들리지를 않았다.

강구항14.JPG

언니는 경주로 빨리 가자고 조르기만 한다.

포항을 거치면서 호미곶도 들려보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도 가보고 싶었지만 그냥 열심히자동차만 몰았다.

강구항15.JPG

경주의 외가마을인 동천리 이다.

어머니는 칠남매였다. 배우자까지 합쳐서 열네명중 오직 한분의 외숙모만이

살아 계신다.

그 외숙모님을 뵙고 가자고 해서 경주로 온 것이다.

강구항16.JPG

외사촌 오빠는 논 일을 나가고 86세의 외숙모는 마침 장날이라 장에

가셨다고 한다.

강구항17.JPG

동네 전체가 팬션으로 고쳐져 있는데 외가집만은 그대로 있는걸

보니 돈이 넉넉하지 않은가 보다.

언니는 그게 또 마음이 아픈가 보다. 내내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강구항18.JPG

모내기가 끝난 논 위로 보이는 숲이 현덕왕릉이다. 어릴적 저 능에서

화전놀이를 하던 동네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도 안 보인다. 이사도 갔고

돌아가시기도 했고…

외숙모는 어두워서야 장에서 돌아 오셨다.

내가 봉투를 준비해 가서 드리는데도 언니는 호주머니에서 또 얼마인가를

꺼내서 외숙모에게 건네면서 운다.

"외숙모님, 마음씨 좋은 외숙모님!! 어릴때 배고파서 찾아오면 얼굴 한번

안 찌푸리고 상차려서 주시던 외숙모님" 하면서 운다.

이번 언니와 함께 한 3박 4일의 여행 내내 언니는 밤마다 가방을 뒤지고

경치나 이런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지만 사람에는 유난히 집착같은 그리움을

갖고 있었다. 영덕에서 애타게 찾던 "술이" 라는 분은 못 만났지만 먼친척

할머니 한분 만난걸 아주 행운으로 알고 좋아라 했었다.

물론 경주의 외숙모님이 살아계시는것도 너무나 좋아했고.

어제도 전화가 왔었다.

가을에 그분들 만나러 다시 한번 가보자고.

이번에는 선물도 좀 사가서 그 집에서도 하룻밤 자고 오자고 조른다.

그래 그게 언니의 소원이면 또 와야지….

53 Comments

  1. 4me

    2011년 7월 7일 at 10:10 오후

    에고, 데레사님
    글을 읽는 동안 언니분의 마음이 그려지고
    함께 하신 데레사님의 심정도 헤아려져 정말 가슴이 아프네요.
    세월 지나간 자리는 아무것도 남기는 것이 없나 봅니다.
    그래도 극적으로 어르신을 만나서 보고 싶던 분의 안부를 전해들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주머니 돈을 꺼내 건네는 언니분의 마음을 알 것만 같습니다.

    안개가 짙은 아침이네요.
    건강한 하루 되세요.   

  2. 데레사

    2011년 7월 7일 at 10:22 오후

    포미님.
    고맙습니다.
    여행에서 돌아 온 언니는 아프지도 않고 활기차게 돌아 다닌다고
    그러네요.
    병원을 아직 안갔나 보지만 아주 좋아하고 계신다고 해서 마음이 좀 편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3. 해맑음이

    2011년 7월 7일 at 10:34 오후

    사람에게 유난히 집착하는 그리움…….
    이 말이 참 마음에 와닿으면서 안타깝고 아픕니다.
    그리움이란….
    고향땅을 밟는 기대감과 설레임보다 사람에게서 더 짙어지나봅니다.
    다음 가을엔 꼭 언니랑 한번 더 다녀오셔야 될 것 같네요, 데레사님.

    비가 하늘에서 잠시 대기 중인 것 같아요.
    시원한데 어둡네요. 한바탕 쏟아질 것 같구요.
    비 많이 왔죠?
    요즘 같은 날 조금은 따뜻하게 지내셔도 될 것 같아요.
    ^^   

  4. 왕비마마

    2011년 7월 7일 at 10:38 오후

    코가 찡합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다보니 돌아가신 분들도 많으시구
    타지로 나가 사신 분들의 발자취는 찾을 길이 없구…

    뭐든지 드리고 싶어한 언니의 그 마음을 알 것같네요.
    타관같은 고향에서 알아 봐 주신 분들이 그저 고마웠겠지요.
    오늘은 저도 방콕입니다~ㅎ   

  5. 추억

    2011년 7월 8일 at 3:10 오전

    고향으로의 Sentimental Journey를 하셨군요. 옛날 마음의 고향이 현실의 그 고향과 너무나 다를 때 느끼는 당혹감은 한국사람이면 다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변했으니가요. 그래도 사람이 살아있으면 그 때의 추억을 나눌수 있겠죠. 그런면에서 친척한분이라도 살아계시니 다행입니다. 또 더 나은 모습으로 가는 것도 좋았을터이고.,,,   

  6. 이정생

    2011년 7월 8일 at 3:12 오전

    언니분과 함께 60년 정의 추억을 찾아 떠나신 나들이… 참 그냥 읽기에는 가슴 한 쪽이 알싸해져 와 중간 중간 쉬다가 다 읽었습니다. 연세 드신 분이 이렇게 고향을 찾고 예전의 향수에 매달리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군요.
    그리고 감히 말씀드리자면 데레사님 언니분의 그 말씀… 가을에 또 한 번 가시자는 그 말씀에 왜 이렇게 공감이 가는지 말이죠. 저도 늘 마음 속에 그리움을 묻고 사는 사람이라 더욱 그런가 봅니다. 잘 보고 잘 읽었습니다.^^*   

  7. mutter

    2011년 7월 8일 at 4:17 오전

    글읽는 내내 눈물이 배속에서부터 올라오네요.
    언니는 책갈피를 넘기며 생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였을까요?
    데레사형님같은 아우가 있어 참 다행이네요.
    저도 데레사형님같이 82살의 언니에게 잘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8.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4:22 오전

    해맑음이님.
    그래도 여행 다녀와서 언니는 아주 명랑해지고 아프다는 소리도
    안한다고 하네요.
    웬만하면 가을에 다시 가보고 싶은데 그때 언니가 아프지나 말아야
    할텐데….

    고마워요.   

  9.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4:23 오전

    왕비마마님.
    오늘은 방콕이시군요.
    그런줄 미리 알았드라면 점심이라고 할텐데….

    이상하게도 이번 주일은 내내 약속이 있어서 저는 내일까지도 쏘다녀야
    합니다. ㅎㅎ   

  10.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4:24 오전

    추억님.
    6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학교는 그대로였어요.
    우체국도 그대로인것 같았고요. 그런데 마을은 너무도 많이 변해
    버렸더군요.

    날씨가 꽤 우중충 하네요.   

  11.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4:26 오전

    이정생님.
    60년전의 추억을 찾아서 그래도 우리를 기억해 주시는 분을 만나서
    너무 좋았어요.
    92세에 어쩌면 그리도 정정 하시던지….. 카메라를 자동차에다 두고
    걸어서 다녔기 때문에 사진을 못 찍은게 좀 유감이에요.

    가을에 웬만하면 한번 더 가볼려고요.   

  12.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4:27 오전

    mutter 님.
    언니가 82세군요. 우리 언니는 79세에요.
    그냥 마지막이겠거니 하면서 뭐든 해줄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신도 좋지 않은것 같고 몸도 불편하고 그래서 마음이 아픕니다.

    살아 계실때 잘해 드리기로 해야 겠지요?   

  13. 가보의집

    2011년 7월 8일 at 4:35 오전

    데레사님
    한토막의 소설같은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60연년의 이야기 그때 그시절 같은 것을 연상하게도 하였지요   

  14.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4:47 오전

    가보님.
    고맙습니다.
    앞으로 이런 여행을 자주 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15. 무무

    2011년 7월 8일 at 5:03 오전

    제일 친하기도 하고, 제일 믿기도 하고
    제일 의지하기도 하고, 제일 고맙기도 하고
    제일 많이 사랑하기도 하지만

    제일 껄끄럽고, 제일 눈치보이고
    제일 부담스럽고
    제일 걱정스러운

    그리고 어릴 적엔 참 많이 미워했던..

    저한테 언니는 그런 존재입니다.

       

  16. 綠園

    2011년 7월 8일 at 5:23 오전

    언니를 모시고 옛고향을 찾아 좋은 시간을 보내셨군요.
    60년이면 한평생의 시간이니 찾고픈 분들이 없으실 수 밖에요.
    비도 많이 오고 무덥기도 한 여름철 건강관리 잘 하십시~ ^^   

  17. 아바단

    2011년 7월 8일 at 7:05 오전

    글 읽는내내 마음이 짠~하네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여행 다녀 오신 후에도 건강하시니 다음해에도 다시 다녀오세요.
    덕분에 영덕여행 잘했습니다.   

  18. 말그미

    2011년 7월 8일 at 7:30 오전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읽는 동안 사뭇 가슴이 저렸습니다.
    저도 고향에 가면 대소가 외엔 거의 그 수준입니다.
    저의 고향은 산천도 의구하지 않답니다.
    옛날에는 민둥산이 많았지만,
    지금은 숲들이 우거져 어릴 때 뛰어놀던 산에는 올라갈 수조차 없답니다.
    가을엔 언니 분을 모시고 또 한 번 나들이를 하셔야겠습니다.    

  19. 풀잎사랑

    2011년 7월 8일 at 7:44 오전

    60년전의 사람이 아직도 그곳에 살고 계시다느 자체가 정말 용하네요.
    산천이 바뀌어도 여섯번인데…
    그래도 기왕 가셨으니 술이라는 분을 꼭 만나셨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언니가 간 보람도 있고 무척 기뻐하셨을건데…

    가을에 또 가실라고라?
    언니 건강이 괜찮을지 걱정스럽습니다.
       

  20. 寒菊忍

    2011년 7월 8일 at 7:47 오전

    1977년 여름, 학과 답사여행을 가면서
    시골 만원 버스를 타고 비포장 돌길을
    털털거리면서 내려간 강릉-포항간 경관은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그후 십여 차례 똑 같은 길을 오르내리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하였지만
    한번도 실증나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길은 이곳 중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특이한 경관은 많지만,,,

    넓지는 않지만 정말 아름다운 강산입니다.
    훗날 강토가 많이 넓어질 날도 있겠지만…   

  21. 최용복

    2011년 7월 8일 at 7:50 오전

    고향 가셔서 만감이 교차하신것 같습니다

    저도 대구에서 여름마다 멱감으며 어린시절을 보냈죠~~

    논과 항구의 모습 정겹습니다.

    언니분에게 좋은 일 하셨네요.   

  22. 김현수

    2011년 7월 8일 at 10:20 오전

    데레사 님,

    제가 어릴때 ‘누야 뭐하노’ 하고 소리쳤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23. 노당큰형부

    2011년 7월 8일 at 10:42 오전

    년로하신 언니와 고향길을
    찾아 여행을 하셨는데
    그리운 그옛날 분들을 못 보셨군요

    오십천은 유구한데 오랜 지인은 간곳이 없고
    어즈버 60년전의 추억이 꿈이련가 합니다.
    ㅎㅎㅎ
    그옛날 보지 못해서 알수 없는
    길재가 읊은 노래 두구절을 인용 해보았습니다.
    쿡~~~
       

  24. okdol

    2011년 7월 8일 at 1:02 오후

    가을에 다시 가시게 되면 운전병으로 징발하시지요.
    편히 모시겠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25. 구산(久山)

    2011년 7월 8일 at 1:12 오후

    한편의 아름다운 소설 내지 다큐멘타리를 보는 느낌입니다.
    언니와 데레사님의 오랜 추억속의 동네!

    92세의 노인의 주름만큼이나 세월이 흘렀군요! ㅋ

    언니의 소망이 가을에는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6.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2:03 오후

    무무님.
    저역시 그래요. 언니란 믿음직하면서도 한없이 불쌍해 보이기도
    하는 그런 모습이, 바로 언니거든요.   

  27.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2:04 오후

    녹원님.
    고맙습니다.
    여긴 많이 무덥고 비도 많이 내립니다.   

  28.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2:05 오후

    아바단님.
    영덕여행 잘 하셨다니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건강하게 다시 갈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9.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2:06 오후

    말그미님.
    60년의 세월이니 산천이 바뀌어도 여러번이라 정말 산천이 의구하지
    않더라구요. 동네 이름조차 바뀌어 버렸으니…

    고맙습니다.   

  30.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2:08 오후

    풀사님.
    이름도 끝엣글자 술이만 알고 포항어디메로 시집갔다는 말만 가지고는
    찾을수가 없어요.
    그분은 언니보다 나이가 많다니까 시집간지도 60년 가까이 되었을텐데
    어떻게 찾을수가 없었어요.
    언제고 다시가서 그 할머니네 자제분들이라도 만나면 정확한 이름이라도
    알게 될려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의 자손들은 부산에 살고 있다고 하고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해서
    그냥 왔지요.   

  31.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2:09 오후

    한국인님.
    정말 그 길은 아무리 다녀도 실증나지 않는 아름다운 길이지요.
    그런데 우리 언니는 바다쪽으로 눈길 한번도 주지 않았어요.
    늙는다는게 너무 기가 막혔어요.   

  32.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2:10 오후

    최용복님.
    대구 출신이시군요.
    우리들 어린 시절에는 개울에서 멱감고 놀았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
    찾기가 쉽지는 않지요.
    고맙습니다.   

  33.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2:10 오후

    김현수님.
    누야, 누부야… 모두가 정다운 이름이지요.
    누나가 계셨군요.   

  34.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2:11 오후

    옥돌님.
    운전병 자원 입대하실려고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입니다.   

  35.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2:11 오후

    구산님.
    고맙습니다.
    가을에 꼭 다시 가고 싶은데 그것도 그때 가봐야 알겠지요.   

  36. 데레사

    2011년 7월 8일 at 2:13 오후

    노당님.
    세월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데 계실리가 없지요.
    그래도 우리들 어릴적을 기억해 주는 먼 친척 한분이 계셔서
    다행이었습니다.   

  37. 오병규

    2011년 7월 8일 at 7:53 오후

    아! 뜬금 없이 하는 소리…
    저는 누님이 대게 잡수시러 그곳엘 간 줄 알았습니다.
    철지난 대게…냉동….

    고향이 그곳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같은 갱상도인 줄은 알겠는데,
    여쭙기도 그렇고…아하! 영덕.

    저 어릴 적 상주에는 요즘의 찹쌀떡과 메밀묵 팔듯,
    "영덕 대기요!"라며 대게를 ‘대기’라고 발음 하며
    팔러 다니든 장사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리 하나에 얼마…
    그 땐 흔해 빠져서 무척 쌌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금값이라 먹기가 무척 힘듭니다.

    년 전에 울진엘 다녀 왔습니다.
    울진이나 영덕이나…   

  38. 오병규

    2011년 7월 8일 at 7:55 오후

    교정이 너무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외가 마을도 또한….   

  39. 김규용

    2011년 7월 8일 at 9:45 오후

    저도 한번 가본 영덕 오십천 너무나 맑고 깨뜻하엿는대요 너무 반갑읍니다    

  40. 데레사

    2011년 7월 9일 at 12:08 오전

    종씨님.
    우리 어릴적 영덕에서는 대게를 새끼에 묶어서 길거리에서 팔았어요.
    그렇게 싼게 대게였는데 지금은 아니지요.
    아무렴 대게 먹으러 그곳까지 갔을라구요?
    ㅎㅎㅎ   

  41. 데레사

    2011년 7월 9일 at 12:08 오전

    김규용님.
    반갑습니다. 영덕을 가보셨군요.   

  42. 아멜리에

    2011년 7월 9일 at 1:59 오전

    데레사 님, 데레사 님의 여행기 중에서 이 블루로드 여행기가 젤 좋아요.
    언니, 옛날 이야기, 추억이 서려있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어서 인생이란 단편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입니다.

    중요한 건 경치가 아니라 거기 깃든 추억이란 거죠!

    전 펜션으로 개발 되는 게 썩 좋은 게 아닌 것 같아요.
    경주 가보니 신개발지는 관광객두 없고, 다 텅 비어 있던데요… 고도 경주는 너무 많이 개발하지 않았으면 .. 천천히 조심스럽게 개발해 나가야죠.
       

  43. 데레사

    2011년 7월 9일 at 7:38 오전

    아멜리에님.
    그런데 나는 이번 여행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언니도 그렇고 경주에 가니까 외사촌 동생들이 많이 죽어 버리고
    없는게 아주 힘들게 했어요.

    이제 비가 그치네요. 지겹게도 내리드니.   

  44. 풀잎피리

    2011년 7월 9일 at 1:33 오후

    추억이 어린 초등학교에 가보면 운동장이 왜 이리 작은지요.
    그렇게 넓었던 추억의 운동장이…
    좁게 살아온 마음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언니와 함께 그 추억의 학교에 가셨군요.
    멋진 여행입니다.   

  45. 데레사

    2011년 7월 9일 at 2:17 오후

    풀잎피리님.
    그런데 이곳은 운동장이 좁지 않고 더 넓어 보였어요.
    그때와 똑 같이요.
    이상 하지요?   

  46. 揖按

    2011년 7월 10일 at 4:16 오전

    나에게도 모두 친숙한 지명들이군요 …   

  47. 금자

    2011년 7월 10일 at 7:17 오전

    저는 자매분이 오래 건강하셔서 두분이 어릴적 고향도 찾아가시는 모습이 너무 부럽기만 합니다. 저도 엄마같이 좋은 언니가 있는데 두분처럼 저도 그렇게 언니와 오래 살아서 언니와 여행 같이 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48. 데레사

    2011년 7월 10일 at 8:20 오전

    읍안님.
    그러세요? 아시는 곳들이군요.   

  49. 데레사

    2011년 7월 10일 at 8:21 오전

    금자님.
    아, 언니가 계시군요.
    좀 더 나이들면 언니랑 함께 고향을 찾아 가보세요.   

  50. 도리모친

    2011년 7월 11일 at 6:27 오전

    추억이란 그런건가 봅니다.
    어린시절 계시던 곳을 다녀오셨으니
    언니분의 그리움이 좀 사그라들었으면 좋겠습니다.   

  51. 와암(臥岩)

    2011년 7월 13일 at 8:32 오후

    영덕 ‘등네’,
    경주 동천리 외갓댁,
    .
    .
    .

    이 글 읽으면서 눈물이 자꾸 쏟아집니다.

    나이 들었다는 증거이겠죠? ^^*
    초등동기 한 사람이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지요.
    그 친구,
    일년에 한 번 꼴로 고향을 찾는답니다.
    먼저 친구들 만나고,
    그리곤 혼자서 어릴 때 즐겨놀던 그 놀이터들을 찾아 긴 시간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데레사’님!
    언니 모시고 또 고향길 다녀오세요.
    그 ‘술이’란 분도 꼭 만나고,
    ‘등네’의 그 아흔 넘은 노인네도 뵙고,
    외가에서 하룻밤 묵기도 하고요.

    자매가 그렇게라도 시간 함께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겁니다.

    추천은 물론이고요.   

  52. 데레사

    2011년 7월 14일 at 12:27 오전

    와암님.
    그렇게 할려고 합니다.
    언니 건강만 허락하면 가을에 다시 한번 갈려고요.

    고맙습니다.   

  53. 데레사

    2011년 7월 14일 at 12:27 오전

    도리모친님.
    고맙습니다. 저도 언니가 너무 걱정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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