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민주묘지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성지인 4,19 묘지, 서울에 처음 왔을때

그 부근에서 한 10년 살았다. 그러다가 서초동으로 이사를 하고,

또 평촌으로 온 뒤로는 한번도 가보질 않았다.

며칠전 친구들과의 점심약속이 마침 우이동에서 있어서 밥 먹은후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4,19 묘지를 찾아 갔었다.

날씨는 약간 추웠지만 햇살이 좋은날이라 4,19 묘지를 다녀 가자는

내 제의에 아무도 반대를 하지 않았다. 서울에 살면서도 한번도

이곳을 못 찾았다는 친구도 있어서 소풍삼아 들렸는데,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말을 잊은채 4,19 그때 그날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엄숙해 졌다.

국립 4,19 민주묘지는 1960년 4월 19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부정과 부패, 독재 권력에 항거하여 싸우다 희생되신 분들이 잠들어 계신

성스러운 곳이다. 4,19 혁명은 8,15 해방과 남북분단 이후 형성된

1950년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모순에 대해 학생과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적 변혁을 요구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이 4,19 혁명은

집권 정부의 독재와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정권교체를 촉발하였고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것을 깨우쳐 주었다. (안내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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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대상은 4,19 혁명 사망자, 부상자, 공로자로 총 547 기가

안장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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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은 1, 2, 3, 4 묘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옛날보다

많이 늘은것 같다. 아마 부상자들이 돌아가셨기 때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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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민주묘지 연혁

1961, 2월 국무회의에서 공원묘지 설립 결의

1963, 9월 묘지준공 및 기념탑 제막 (서울시 관리)

1995, 4월 성역화 사업 후 국립묘지로 승격(국가보훈처 관리)

1997, 4월 유해봉안소와 4,19 혁명기념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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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아서인지 묘역 뒷편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떠들지 않고 모두들 조용 조용히

걸어다니는 모습에서 이곳이 경건한 장소임을 알고 조심하는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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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퀴 돌아 본 후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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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은 1, 2층으로 되어 있으며

4,19 혁명의 원인, 진행과정, 의의 등을 알게 쉽게 설명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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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2, 28 대구에서 학생들이 민주당 유세에 가지 못하도록 일요일임에도

교육 당국이 학생들을 강제로 등교시키자 학생시위가 일어나 3,14 까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으며 대통령 선거일인 3,15일 에는 마산에서 부정

선거를 폭로하며 선거 무효를 외쳐대는 시위대에 경찰이 총을 쏘며

진입하였던 사건들을 날짜별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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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성여중 2학년이었다는 진영숙 학생의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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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분은 사후 영혼결혼식을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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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06:00 부터 18:00 까지 개방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없으며 묘지는 연중무휴, 기념관은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이제 4,19 기념일이 한달도 채 안 남았다.

자유, 민주, 정의를 꽃피운 아름다운 민주성지를 찾아보는것도

좋을것 같다. 봄에는 진달래도 많이 피고 가을이면 단풍도

곱고 또 북한산 인수봉이 바라보이는 위치라 나들이 삼아 참배를

한번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58 Comments

  1. 미뉴엣♡。

    2015년 3월 24일 at 8:09 오후

    4.19 민주묘지가 민주주의 휏불의
    성지가 되어야하는데 요즘 보면
    정당의 정쟁의 도구가 되는듯해서..^^

    정릉에서도 아직 못 가보았지만
    사진상으로, 숙연한 마음입니다.

       

  2. 揖按

    2015년 3월 24일 at 8:14 오후

    몇개의 혁명이 더 일어나야 우리도 반듯하게 될 수 있을까요…   

  3. mutter

    2015년 3월 24일 at 8:33 오후

    4.19
    순수한 정신으로 일으켰던 혁명이었어요,
    그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요.
    잘 다듬어 놓았네요.
    그 근처는 가끔 가면서도 초창기에 다녀오고는 못가보았어요.   

  4. 김현수

    2015년 3월 24일 at 9:46 오후

    저는 한번도 못 가본곳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대한민국을 있게한 진정한 혁명이 4.19의거 이지요.
    4.19가 5.16을 촉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저 아래에도 민주묘지(?)가 하나 있는데 반드시 재고되어야 합니다.    

  5. 데레사

    2015년 3월 24일 at 9:59 오후

    미뉴엣님
    그러셨군요
    언제 한번 들려보세요.

    정치인들이 언제나 그렇지요. 자기 유리한 쪽으로 끌고가는….   

  6. 데레사

    2015년 3월 24일 at 9:59 오후

    읍안님
    그러게 말입니다.
    4,19 야 말로 불순세력의 개입이 없는 순수한 시민 혁명이었지요.   

  7. 데레사

    2015년 3월 24일 at 10:01 오후

    김현수님
    언제 한번 가 보셔요.
    이곳에 누워 계시는 분들이야 말로 정치색이 전혀 없는
    순수한 애국시민들이죠.   

  8. 데레사

    2015년 3월 24일 at 10:03 오후

    무터님
    저역시 수십년만에 갔어요.
    그러나 좋게 달라져 있어서 마음이 흐뭇했어요.   

  9. 가보의집

    2015년 3월 24일 at 10:11 오후

    데레사님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당시 이기봉 가족은 청와대에 피신 하였다가
    아들이 쏜 총으로 모두 사망한 일도 4 .19 학생 의거 때문이기도 하지요
    끝내는 이승만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 났고요

    국립 묘지 잘 다녀 오셨네요
    97년도에 목사님 하고 한번 다녀 왔어요
    서울살때 는 몇번 갔지요

    감사 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10. 睿元예원

    2015년 3월 24일 at 10:14 오후

    우리나라는 언제 정치적 질서가 잡히려나요.
    무고한 젊은이들의 희생은 더이상 없어야 할텐데요.
    매일 어디서든 들리는 들끓는 싸움의 소리들
    정말 싫어집니다.
    데레사님 덕분에 ..잊어 버릴뻔 한 역사의 한부분
    되 새겨 봅니다.
       

  11. 데레사

    2015년 3월 24일 at 10:18 오후

    가보님
    옛날 보다 더 잘 가꾸어져 있어서 좋았어요.
    그때의 일들을 우리는 다 기억하고 있지요.
    그래서 더 경건한 마음이었습니다.   

  12. 데레사

    2015년 3월 24일 at 10:21 오후

    예원님.
    맞습니다. 무고한 학생들의 희생이 더 있어서는 안되지요.

    고맙습니다.   

  13. 선화

    2015년 3월 24일 at 11:11 오후

    한번도 못 가본 곳입니다
    4,19 같은 의거가 있어서 지금의 울나라가 있는게
    아닐까 합니다

    말씀대로 정치색이 없는 순수한 나라 걱정 &사랑으로
    정치사회에 참여하는 그때가 오히려 더 좋았던것 같습니다

    뻑~하면 촛불시위하는 요즘과 비교가 됩니다!!!   

  14. 산성

    2015년 3월 24일 at 11:59 오후

    정말 오래 전에 가보곤 다시 보는 느낌이 새롭네요.
    깔끔하게 단장이 되었네요.

    4.19날 수유리 묘지 돌아오는 마라톤 대회
    요즘도 하고 있을걸요.

       

  15. 바위

    2015년 3월 25일 at 12:51 오전

    4.19 의거가 일어났을 때 저는 중3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언론매체가 많질 않아 소문들이 늦었지요.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다가 죽은 김주열 학생의 주검이
    의거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오래 전 신마산에 세워진 3.15의거탑은 보았지만,
    아직까지 수유리에는 가보질 못 해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때의 의거는 순수했고 애국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요즘의 시위는 너무 정략적이고 용공적이어서 걱정입니다.
    나라를 위해 산화하신 영령들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16. 샘물

    2015년 3월 25일 at 2:31 오전

    중1때 419가 났었는데 왜 419가 터졌는지는 알았지만 데모대에 선다는 것은 (대학생이던
    외삼촌이 집에서 혈서를 쓰는 것은 보았지만) 상상도 못했는데 진영숙 학생은 무엇을 제대로 보았기에 그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졌는지…
    엄마는 남편을 잃고 외딸을 잃고 어찌 살았을지…
    참으로 가까운 것 같은 기억인데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나 봅니다.   

  17. 데레사

    2015년 3월 25일 at 3:33 오전

    선화님
    요즘의 시위와는 많이 구별됩니다.
    그때는 모두가 순수했지요.
    새삼 그런 마음가짐이 그리워 집니다.   

  18. 데레사

    2015년 3월 25일 at 3:34 오전

    산성님
    4,19 전후로 마라톤대회도 있고 고려대의 행진도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그쪽에 안 살기도 하지만 좀 무심했었나 봅니다.   

  19. 데레사

    2015년 3월 25일 at 3:35 오전

    샘물님
    그러게 말입니다. 중학생이 뭘 안다고 결연하게 집을 나서서
    죽음을 맞았는지…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또 머리숙여 집니다.

    그 어머님 아직 생존해 계실지도 모르는데… 그 세월 어떻게
    살아 오셨을지 마음이 아픕니다.   

  20. 데레사

    2015년 3월 25일 at 3:35 오전

    바위님
    마산 바다에서 김주열 학생의 시체가 떠오른것이 도화선이
    되었지요.
    저도 그때 일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지금은 순수한 마음들로 데모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21. 홍낭자

    2015년 3월 25일 at 4:17 오전

    국립 419 민주 묘지 강북구 수유동에 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960.4.19….
    이미 세대가 한 대이상 지나 그 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사는 사람이 더 많은 지금이지만
    민주와 자유를 지키기기위한 뜨거운 피를 흘린 젊은 희생이 있었음을 그분들이 흘린 뜨거운피와 땀방울을 오래도록 영원히 그 가치를 지켜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합니다
    기억할 필요가있다는 마음과 생각입니다
    그날의 자유와 민주의 외침을 되새기게 합니다   

  22. 연담

    2015년 3월 25일 at 6:36 오전

    이렇게 다 잊고 살면 안되는데…
    몇년에 한번이라고 가봐야 되는데…
    데레사님, 고맙습니다.
    순수의 시절을 일깨워주셔서요.   

  23. 왕소금

    2015년 3월 25일 at 7:45 오전

    4.19의 저항 정신은 그 후에 이어진 정권의 국정 운영에 보이지 않는 견제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봅니다.
    ‘의거’라고 표현하든 ‘혁명’이라 표현하든 상관없이요^^   

  24. enjel02

    2015년 3월 25일 at 7:46 오전

    데레사님은 국군묘지에 일찍이 찾아가셨군요
    아직 꽃이 없어 더욱 허전 합나다

    수많은 젊은 영혼들에 절로 머리 숙여 지고 숙연해지는 곳
       

  25. 배흘림

    2015년 3월 25일 at 8:35 오전

    시간이지나야 역사의 순간들이 객관화 되는것 같습니다.
    젊은 학생들의 희생도 기억해야 하고
    먼 시간이 지나면 갈등이 아니라 통합의 역사관으로 재 해석하는 날이 오길 기대 합니다   

  26. 데레사

    2015년 3월 25일 at 8:50 오전

    연담님
    그러게 말입니다.
    어느새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곳이네요.
    안타까워요.   

  27. 데레사

    2015년 3월 25일 at 8:51 오전

    배흘림님
    그렇겠지요.
    아직은 생존자들이 많으니까…
    먼 훗날 어떤 식으로 자리매김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정권의
    논리로 해석되어서는 안되리라는 생각입니다.   

  28. 데레사

    2015년 3월 25일 at 8:52 오전

    홍낭자님
    어느새 한 세대가 지나갔지요.
    그러나 아직은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제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것도 사실이고요.

    고맙습니다.   

  29. 데레사

    2015년 3월 25일 at 8:53 오전

    왕소금님
    맞습니다.
    표현이야 뭐라고 하든 그 정신이야 똑 같죠.   

  30. 데레사

    2015년 3월 25일 at 8:53 오전

    엔젤님
    아직은 좀 삭막하지요.
    그러나 곧 그곳에도 꽃은 만발할거에요.   

  31. 말그미

    2015년 3월 25일 at 2:08 오후

    4.19 혁명기념관, 민주묘지…
    다시 숙연해집니다.
    학생 시민들이 정치 변혁을 요구하다 항거한
    민주 혁명!
    그때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몇 년 전 저도 그곳을 마침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32. 좋은날

    2015년 3월 25일 at 8:20 오후

    서울 근교에도 이렇듯 구경꺼리가 산재해 있구먼유.
    역사의 산증인같은 저런 조형물들을
    한창 커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현장학습을 했음 좋겠굼서나
    먼노무 교육의 비틀림이 심화되어져
    공부만이 능사인 세상이 되었으니.. 원.

    봄날이 오고있습니다.

    안부인사 드립니다.

       

  33. 데레사

    2015년 3월 25일 at 10:46 오후

    말그미님
    그때의 기억, 제게도 아주 많아요.

    그러나 점점 잊혀져 가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묘지 정비가 아주 잘되어 있어서 좋았어요.   

  34. 데레사

    2015년 3월 25일 at 10:50 오후

    좋은날님
    맞아요. 서울근교에도 볼거리가 아주 많아요.
    특히 역사의 현장도 많고요.
    유치원생들은 소풍오는것 같기도 했어요.   

  35. 최용복

    2015년 3월 26일 at 5:53 오전

    초봄에 저곳 오랜만에 봅니다!

    둘레에 산책로가 생겼군요.

    기념관은 들어가보질 못했는데, 가보아야겠네요~~   

  36. 우산(又山)

    2015년 3월 26일 at 8:21 오전

    아아~ 그 날을 잊을수가 없지요.
    사실 그 속에는 불순한 무리들도 있엇지만
    우린 순수했지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우리!
    요즘 젊은이들도 그런 환경이 되면 그럴까?
    비행기 타고 먼저 이 나라를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을까?
    정말, 그 때와 같은 애국심과 열정이 있으면
    벌써 통일이 되엇을 것 같은 허상을 그려봅니다.   

  37. 구산(久山)

    2015년 3월 26일 at 10:25 오전

    안녕 하세요? 데레사 님!
    오랜만에 방문드립니다. 건강하시지요?

    사일구 혁명이 있던날 저는 고등학교 학생이었지요.
    저희 학교가 이기붕 국회의장 댁 근처라서 그날의 일을 더욱 선명히 기억합니다.
    그날 수믾은 대학생들이 앞장을 섰던게 기억납니다.

    의미있는 방문을 하셨군요!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을 존경합니다.   

  38. 데레사

    2015년 3월 26일 at 6:46 오후

    최용복님
    기념관이 아마 최근에 생긴것 같았어요.
    옛날에은 없었거든요.
    나중에 귀국하시면 한번 들려 보세요.   

  39. 데레사

    2015년 3월 26일 at 6:47 오후

    우산님
    4,19는 순수한 시민혁명이었지요.
    지금처럼 정치적 의도가 깔린 그런 행동들은 아니었는데
    지금을 생각하면 그저 답답합니다.   

  40. 데레사

    2015년 3월 26일 at 6:47 오후

    구산님
    오랜만이에요.
    그때 고등학생이었군요.

    저는 대학생이었지만 데모에 참가했던 기억은 없어요.
    부산이라서 학교에서 데모를 안했던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41. 흙둔지

    2015년 3월 26일 at 8:03 오후

    완연한 봄인 요즈믕 좋은 곳을 다녀 오셨군요.
    뜻깊은 곳을 다녀오셨으니 봄기운이 충만해지셨겠지요.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들 맞이하셔유~
       

  42. 데레사

    2015년 3월 27일 at 1:17 오전

    흙둔지님
    고맙습니다.
    연식이 오래되서 이곳 저곳 수리하러 다니느라 좀 바쁘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43. 그리움

    2015년 3월 27일 at 1:58 오전

    슬픈 역사가 너무 많아서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해요
    알면 알수록 더———
    밝은 미래를 꿈꾸며 앞으론 손주들이 행복하기만을 빌어보려합니다

    꽃샘 추위가 아닐까 해요 고향엔-
    나들이 가실땐 몸 따스하게 하시구요 감기같은건 하지 마시와요 데레사님!!

    곧 꽃밭의 나들이 기대해 보려해요 노랑꽃 무늬옷 입으시고~~~

       

  44. 데레사

    2015년 3월 27일 at 3:56 오전

    그리움님
    이제 따뜻해졌어요.

    내일은 모처럼 카나다에서 온 후배와 발레공연을 보러가기로
    했어요. 문화인 되어 보는 날이랍니다. ㅎ
    고마워요.   

  45. 한국인

    2015년 3월 28일 at 5:14 오전

    동작동, 수유리, 망월동…
    참 많이 변했습니다.   

  46. 아지아

    2015년 3월 28일 at 5:16 오전

    역사의 흐름에 다녀오셨네요
    한 참 혈기 왕성하든 때의 일이라 생생합니다

    어쩌다 그 때의일을 데레사님이 깨우치시네요
    기막힌 의미있는 일들이었습니다   

  47. 怡到

    2015년 3월 29일 at 12:12 오전

    산행을하며 하산코스로 이곳으로 내려와서 둘러본적이 있지요
    저절로 숙연해지고 존경스런 마음으로 거닐다 왔습니다
    다시금 생각케해주셔 고맙습니다   

  48. 데레사

    2015년 3월 29일 at 12:34 오전

    한국인님
    많이 변했어요.
    그러나 잘 가꾸어져 있어서 기분 좋았습니다.   

  49. 데레사

    2015년 3월 29일 at 12:35 오전

    아지아님
    부산에서는 용케도 구덕파출소만 피습을 안 당했었지요.
    그리고 서면에서는 경찰옷을 줏어 입은 거지가 얻어맞기도
    했고요.
    제게도 생생한 기억들이 많습니다.   

  50. 데레사

    2015년 3월 29일 at 12:41 오전

    마지막분
    한문이 좀 어렵습니다. 뭐라고 읽으시는지요?
    반갑습니다.
       

  51. 노당큰형부

    2015년 3월 29일 at 9:09 오전

    4.19 학생 혁명이 나던 때
    세상은 참 살기 힘들었지요..

    그분들의 함성이 들리는듯 합니다.

       

  52. 無頂

    2015년 3월 29일 at 9:32 오전

    희생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역사와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53. 시원 김옥남

    2015년 3월 29일 at 1:07 오후

    역시 귀감이 되실만한 나들이셨군요!
    높은 이상과 국가관 등 자기 한몸 희생하려는 정의가 오늘을 있게 한 것일텐데요.
    참으로 순수한, 당시 젊은 학생분들의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54. 雲丁

    2015년 3월 29일 at 1:39 오후

    뜻깊은 곳에 다녀오셨군요.
    장만영 시인의 시를 읽노라니 독재와 불의에 맞선
    정의로운 항거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아픈 희생의 역사입니다.   

  55. 데레사

    2015년 3월 29일 at 4:31 오후

    노당님
    그렇습니다. 그때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어느덧 반세기가 흘러가 버렸네요.   

  56. 데레사

    2015년 3월 29일 at 4:31 오후

    무정님
    그렇습니다.
    희생없는 역사란 없나 봅니다.   

  57. 데레사

    2015년 3월 29일 at 4:35 오후

    시원님
    그땐 정말 순수했지요.
    지금은 어떤 목적하에서 움직이는 데모가 많아졌지만
    저 때는 순수한 시민운동이었지요.   

  58. 데레사

    2015년 3월 29일 at 4:35 오후

    운정님
    장만영 시인의 시를 읽으며 저도 마음이 한참동안
    얼얼 했습니다.
    그때가 떠 올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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