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헌기념관 둘러보기

양재시민의 숲에 간 길에 매헌 기념관도 들렸다.

언젠가 예산을 지나오면서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생가와

고향마을을 다녀오면서 양재시민의 숲에 있는 매헌기념관도

한번 다녀와야지… 했었는데 이제사 찾아보게 되었다.

매헌 윤봉길 의사는 1908, 6, 21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광현당에서 파평윤씨 윤황 공과 김원상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우의이고 호는 매헌, 봉길은 별명이다.

의사께서는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나라 잃은 백성들의 설음과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각곡독서회, 수암체육회, 축산장려회,

효실천위천계, 월진회등을 조직하여 농촌계몽운동과 농촌부흥운동을

주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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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때 농민독본을 저술하고, 부흥원을 건립하여 야학, 강연회, 학예회

체육대회등 왕성한 활동을 통하여 나라 살리기 운동에 앞장 서신

농민운동가요 문필가이면서 행동하는 사상가, 실천하는 선구자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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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때인 1930년 3월 농촌 부흥 운동의 한계를 느낀 윤의사께서는

독립운동에 몸을 바쳐야겠다는 큰 뜻을 품고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이라는 비장한 글을 남기시고 고향산천, 부모형제, 처자식까지도 뒤로

한 채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압록강을 건너 이역만리 상해 임시정부를

향해 망명길을 떠나,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1932,4,29 상해 홍구공원(현 루쉰공원)에서 일제 침략 수뇌들을

정의의 폭탄 한방으로 통쾌하게 응징함으로써 그 큰 뜻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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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는

1. 침체되어 꺼져가던 대한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리고

2. 국권을 침탈한 일제의 만행과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조직적이고

맹렬한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다는것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는

횃불이 되었다.

3. 만보산사건으로 극도로 악화되었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중국이 우리 민족을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해 함께 싸우는 동반자로

재인식하게 되었고, 중국과 공동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4. 한편 기세등등하던 일제는 전의가 상실되어 침략전쟁을 중단하고

화해정책으로 돌아서면서 동양평화가 앞당겨지게 되었다.

5. 당시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백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 라고 극찬하면서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여

상해 임시정부가 부활하게 되었고, 광복군과 의용군 활동도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이는 후일 대한민국의 독립과, 정부수립, 국군의건군

등에 초석이 되는 매우 의미있는 역사적 쾌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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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 12, 19 일본군의 사형집행으로 25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순국하신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애국 애족정신과 살신성인 하신

독립투쟁 정신이야말로 천추에 길이길이 빛날 것이다.

(매헌 기념관 팜플릿에서 옮겨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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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안에는 우리일행을 비롯, 나이든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어린이날이라 아이들이 공원에 많이 왔는데 부모들이 손잡고

이곳 관람도 좀 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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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서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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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은 3층 건물인데 1층이 전시실이고 2층은 윤봉길 새책도서관,

세미나실이며 3층은 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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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는 없으며 주차는 1시간 1,800원, 6시간이상 10,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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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사의 생애가 한장씩 그려져서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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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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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숲에 세워져 있는 윤봉길의사 동상

상해의거 60주년 기념으로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가

심정수선생 조각으로 건립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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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사 숭모비

일생을 아름답게 살고 값있게 목숨을 바친 윤의사의 생을

표본으로 삼고자 상해의거 61주년인 1993,4,29 세워졌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은 윤봉길의사의 업적과 살신성인 정신의 높은뜻을

선양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어 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정성어린 성금을

보아 양재시민의 숲에 1988,12,4 준공되었다.

기념관을 둘러 보고 나오면서 뭔가 마음이 허전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이곳을 방문해서 애국심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나이 든

사람들만이 감격에 겨워 고개를 끄덕이며 때로는 옷깃을 여미며

관람하고 있는 광경에 그냥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28 Comments

  1. 최용복

    2015년 5월 7일 at 5:55 오후

    20대 중반에 독립을 위하여 보여준 모습,

    마주할때마다 감동과 아픔이 함께 찾아오네요.

    네, 요즘 아이들은 매헌기념관의 의미를 얼만큼 느끼는지 궁금하네요.

    기념관안의 모습들 덕분에 바라봅니다.   

  2. 진수

    2015년 5월 7일 at 7:20 오후

    아이들은 모릅니다.
    우리나라가 그냥 세워져 있는 줄 알고
    아이들의 부모가 그냥 돈 버는 줄 알며
    아이들은 그냥 부모가 주는 돈 쓸 줄만 압니다.

    일본 놈들을 싫어하긴 하더군요.

    어른들의 잘못이고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3. 오병규

    2015년 5월 7일 at 8:49 오후

    저도 소시적’장부출가생불환’의 심정으로
    부모님 패물 전당포에 맡기고 제주도로 출가 했지만
    100일을 못 견디고 생환 하여 D지게 고문을 당하고
    오늘까지 살아 가고 있습니다.

    요즘 저런 구국의 청년 하나 안 나오나?
    젊은 놈들은 몽땅 빨굉이 짓이나 하려드니….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4. 흙둔지

    2015년 5월 7일 at 9:59 오후

    제목 매헌기념관을 보고는 무슨 기념관인가 했습니다.
    윤봉길의사의 호를 잊고 지냈다는게 창피하군요.
    세월이 흐를수록 일제의 만행이 잊혀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언젠가는 바다속으로 침몰할 나라라고 위안을 삼지만요…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스위스처럼 영원히 낙농업 국가로 전락했을 나라인데
    작금에 그들의 정치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5. 김현수

    2015년 5월 7일 at 10:07 오후

    20대의 피끓는 윤봉길의사가
    이 땅의 피끓는(?) 청춘들에게 일갈했는데..
    오늘날 젊은이들은 피가 끓기는 하는지 궁금합니다.ㅎㅎ,
    자기 몸하나 건사치 못해서
    툭, 하면 자살이요, 나라사랑은 고사하고 좌빨질이나
    하는 판국이니, 윤의사가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판입니다.
    그래도 건실한 청년들이 많으니까 다행이지요..    

  6. 말그미

    2015년 5월 7일 at 10:38 오후

    윤봉길 의사,
    짧은 생애지만 의로운 생애였습니다.
    일본의 만행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지요?
    아주 통쾌한 그 분의 쾌거에 다시 숙연해집니다.   

  7. 데레사

    2015년 5월 7일 at 10:38 오후

    최용복님
    저도 상해여행시 루쉰공원에 들려 윤봉길 의사의 의거
    장소에서 사진도 찍었어요.
    중국에서 기념해 주는것이 많이 고맙더라구요.   

  8. 데레사

    2015년 5월 7일 at 10:39 오후

    진수님
    요즘 부모와 선생님들이 문제겠죠.
    아이들이야 가르키는대로 따라 올텐데…
    그냥 마음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9. 데레사

    2015년 5월 7일 at 10:40 오후

    종씨님.
    넘 웃깁니다.
    어릴때 부모에게 안 맞아 본 사람 있을까요?
    우린 맞아가면서 자랐지요.

    요즘 젊은이들은 옛날처럼 애국심은 없다고 봐야죠.   

  10. dotorie

    2015년 5월 7일 at 10:41 오후

    윤봉길 의사의 부모님과 아내 되시는 분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요?

    윤봉길 의사는 25세에 순국을 하셨는데
    뉴저지의 23세의 한인 청년은 어떤 목적으로
    북한으로 걸어 들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데레사

    2015년 5월 7일 at 10:44 오후

    말그미님
    상해의 루쉰공원에서 의거장소를 볼때 마음이 무어라
    형언키 어려웠어요.
    목숨을 기꺼히 나라를 위해 내 놓기가 어디 쉬운 일이라야죠.
    정말 존경해야 할 분이지요.   

  12. 데레사

    2015년 5월 7일 at 10:45 오후

    흙둔지님
    맞습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사과하고 또 사과하던데 아베는….
    입에 올리기 조차 싫어요.

    독일은 아우토반을 이웃나라에 사죄하는 심정으로 요금을
    안받는다고도 하던데, 일본, 특히 아베정권은 끝간데를 모를
    정도로 얄미운 짓만 하고 있으니 속 상하고 밉습니다.   

  13. 데레사

    2015년 5월 7일 at 10:45 오후

    김현수님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희망은 우리 청년들뿐이지요.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줘야 하는게 또 우리들
    몫이기도 하고요.   

  14. 데레사

    2015년 5월 7일 at 10:46 오후

    도토리님
    생가 마을에 가니까 윤의사님의 부인 묘소가 있더라구요.
    윤의사께서는 효창공원에 묻히시고.
    내 짧은 생각으로는 돌아가셔서라도 가까히 계셨으면 싶었습니다.

    그 한인청년, 정말 왜 북한으로 갔을까요?
    지옥으로 스스로 걸어갔으니 참…   

  15. 바위

    2015년 5월 8일 at 2:23 오전

    다른 데 놀러가지 말고 저런 곳에 학생들을 데려와야 하지만
    정신 나간 전교조 노동자들은 애들을 빨치산 추모제나 데리고 갑니다.
    윤봉길 의사가 지하에서 피눈물을 흘리겠지요,

    의사님의 고귀하고 뜨거운 피가 오늘 우리 후손들 가슴속에도 흐르건만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붉은 세력에게 진상하려는 얼치기들이 날뛰고 있으니,
    선열이여, 이 나라를 굽어보시사 저 악의 세력들을 진멸해 주시옵소서.

    값지고 시의적절한 포스팅, 감사합니다.
    저도 손주들 데리고 반드시 다녀오겠습니다.    

  16. 데레사

    2015년 5월 8일 at 4:53 오전

    바위님
    그렇게 손주들 데리고 한번 다녀오시면 좋지요.
    우리라도 나서야 할것 같아요.

    오늘 어버이날
    복된 나날이시길 바랍니다.   

  17. 나의정원

    2015년 5월 8일 at 6:35 오전

    뜻깊게 다녀오셨군요.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
       

  18. 카스톱

    2015년 5월 8일 at 8:06 오전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버이날에
    윤봉길 의사의 유서를 접하니
    더욱 가슴에 와 닿네요.    

  19. 睿元예원

    2015년 5월 8일 at 1:12 오후

    국회의원들이 윤봉길 의사 반만이라도 닮았다면
    나라가 얼마나 평화롭고 조용할까요.
    몇사람의 의원은 제외 하고 말입니다.
    진정 젊은 청춘에 가신 윤봉길의사를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20. 아지아

    2015년 5월 8일 at 6:38 오후

    좋은 역사 기념관이 있네요
    외국에 있는 우리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정치인들의
    정신 차리는 모습을 기대 해 봅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저력이 있어 잘 될 겁니다
    우리 모두 기 죽지 말고 기대해 봅시다    

  21. 데레사

    2015년 5월 8일 at 8:13 오후

    나의정원님
    네, 뜻깊은 곳 다녀왔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22. 데레사

    2015년 5월 8일 at 8:15 오후

    카스톱님
    그렇습니다.

    자식들에게 이런 유서를 쓸수 있다는 용기, 그리고
    나라사랑, 우리가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어요?
    그래도 마음만이라도 닮고 싶긴 하죠.   

  23. 데레사

    2015년 5월 8일 at 8:16 오후

    아지아님
    그럼요. 기죽지는 말아야죠.
    그러나 한숨이 절로 나오는 행태를 너무 많이 봐서
    언제가 정신 차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런지요.   

  24. 데레사

    2015년 5월 8일 at 8:18 오후

    예원님
    국회의원들이 반만이라도요?
    발끝만큼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 신문보니까 중요한 의결장에서도 문자로 취직부탁하고….   

  25. 선화

    2015년 5월 9일 at 12:07 오전

    무엇보다 윤봉길의사는 명필이였네요

    저런분들의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요즘 구캐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너무도 기가막히지요
    그 수많은 카메라맨, 기자들 앞에서 막말을 하는 의원들
    거기다 양념으로 노랫가락까지 부르는…( 보좌관이 부르라 시켰던듯하네요)
    암튼 울나라 정치수준은 언제나 보통 순준이 될런지요

    "봄날은 간다"를 부르는 그 여인은 정말 수준없어 보였습니다
    상황을 봐 가면 불러야하는데…ㅎ

    덕분에 애국심이 더 생깁니다!! ㅋ~~   

  26. 데레사

    2015년 5월 9일 at 7:43 오전

    선화님
    ㅎㅎㅎ
    세상에 국회 회의도중 봄날은 간다 하고 한곡조 뽑다니…
    미쳤나봐요.
    그 기사 읽으며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따지고보면 나보다도 못한 국회의원도 많아요. ㅎㅎ   

  27. enjel02

    2015년 5월 9일 at 3:58 오후

    서울 가까운 곳에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이 있었군요
    아직도 못 가봐서 부끄러워지네요 윤봉길 의사의 본명이 우의라는 것도 몰랐거든요
    데레사님 덕분에 상세히 설명해주어 다시 생각하게 해 주셨어요

    애국이란 누가 시킨다고 애국이 되겠습니까
    하 어수선한 즈음에 진정 애국이 뭔지도 모르고 살고 있으니
    다시 보고 느낌과 참 애국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28. 데레사

    2015년 5월 9일 at 5:06 오후

    엔젤님
    양재시민의 숲 안에 기념관이 있어요.
    물론 예산의 생가마을에도 있습니다만 서울의 공원안에
    있으니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지요.

    많이 알려져 있을텐데도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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