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군자란 이야기

30년전쯤 일이다.

그때 우리는서초동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 바로 앞 마당에 수도가 있었다.  어느날 보니 수돗가에

누군가가  군자란 화분을 하나 버려놓고  가 버렸다.

화분의 꽃은 곧 죽어갈듯이 시들시들하고 영 생기가 없었다.

그래서 평소 꽃가꾸기에는 취미도 열성도 없는 내가 한번

살려보자 하고  과감하게 집안으로 들여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군자란이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마다 봄이되면

꽃을 피워서  내 삶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군자란1

게으런 나는 분갈이는 커녕 물도 마음 내킬때만 주니까  꽃잎이

윤기도 안나고  싱싱해 보이지도 않지만  꽃은  잘도 핀다.

 

지극정성으로 꽃을 가꾸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인실이네

군자란은  기름을 바른듯  윤기가  나고 싱싱한데도  꽃은 절대로 안피는데

우리집 군자란은  이렇게 홀대를 받으면서 꽃을  잘 피워내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불가사의한  일이다.

 

군자란2

한포기였던  군자란이 새끼를 쳐서 지금은  화분이 세 개가  되었다.

오늘은  화분 한 곳에서만  이렇게  새색씨처럼  수줍게 꽃대를

내밀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세 화분에서  다  꽃이 활짝 피어

날  즐겁게 해주리라는걸….

 

버려져서 쓰레기통으로 갈걸 살려줘서  고맙다고  은혜 갚는건지

아니면  게으런 나에게  “당신이 아무리 푸대접 해도 나는 잘 살아요”

하고  대항하는건지는  모르지만  올 해도  군자란이  피고 있다.

 

꽃을 보는 기쁨,   오늘  아침  나는  랄랄랄라 로  응답한다.

꽃에게.

 

 

10 Comments

  1. 예원

    2016년 2월 26일 at 11:00 오전

    군자란 꽃 빛깔이 얼마나 마음을 환하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늘 탐내는데 어째 기회가 안생기더군요.
    베란다가 환하겠어요! ㅎㅎ

    • 데레사

      2016년 2월 26일 at 1:11 오후

      해마다 봄이면 어김없이 피네요.
      화분을 보면 너무 허접해서 꽃이 필까 싶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ㅎ

  2. 카스톱

    2016년 2월 26일 at 1:28 오후

    박씨를 물고 온 흥부네 제비가 떠오르네요 ㅎ

    • 데레사

      2016년 2월 27일 at 4:26 오전

      비유가 재미있습니다.
      그렇게 까지는 아닌데요.

  3. 참나무.

    2016년 2월 26일 at 1:38 오후

    그 군자란 데라사님과 인연 맺길 잘 했습니다
    은혜모르는 사람보다 낫네요

    저도 군자란 있는데 기다리는 중입니다

    • 데레사

      2016년 2월 27일 at 4:27 오전

      오늘은 다른쪽에서도 또 꽃대가 올라오고 있더라구요.
      이제 며칠있으면 우리 베란다가 환해 질것 같습니다.

  4. 초아

    2016년 2월 26일 at 5:17 오후

    란 종류는 조금 게으른(?)사람들이
    키우기 좋은 식물입니다.
    물을 너무 자주 주면 뿌리가 썩어버리기도하고
    잎이 너무 싱싱하면 꽃을 잘 안피우지요.
    꽃을 피울 영양분을 잎이 다 가져가서..
    어쩌면 약간 괄시를해야 꽃을 잘 피운다고나할까요.

    데레사님집 군자란은 제가 생각하기에도
    은혜를 갚기위해 해마다 철따라 꽃을
    피우는것 같습니다.^^

    • 데레사

      2016년 2월 27일 at 4:28 오전

      그런가요?
      쓰레기통으로 안 들어간 은혜? ㅎㅎ

      정말 게으런 사람이 꽃을 잘 피우나 봅니다.
      내친구네는 잎이 그렇게 윤기가 나는데도 절대로
      꽃이 안 피거든요.

  5. 벤조

    2016년 2월 27일 at 1:19 오전

    허참, 그거 또 쫒겨날까봐 그런가보지요?
    군자 체면 안서게…ㅎㅎ

    • 데레사

      2016년 2월 27일 at 4:28 오전

      맞습니다.
      갖은 천대를 다 받으면서도 계속 꽃이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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